소설리스트

〈 93화 〉 12.무부여망(7) (93/125)

〈 93화 〉 12.무부여망(7)

* * *

13.

"아는 사이인 것 같더라."

"그렇지, 뭐."

두서없이 던져진 말이었지만, 그것이 누구를 지칭하는 말인지는알 만했다.조금 전까지 견학이라는명목하에나를 놀려대면서도 머리가 좋은 것만은 사실인 모양인지 내가 외우는데하루 종일걸렸던 기본적인 업무들을두어 시간도되지 않아몽땅 외워버리곤'이 정도면당장 내일부터라도 혼자 일시켜도 괜찮겠다'라는 소리를 아주머니로부터 들은 끝에 빵집을 떠난 시현 씨를 말하는 것이리라...

새삼떠올리고 보니짜증 나네.신은 불공평해.

"어떤 식으로알게 된사람인지,말해주면 안 되냐?"

"갑자기 왜?"

내가 주억거리며 그재수 없는남자... 의 얼굴을떠올리고 있으니,돌연 의아스러운 질문이 들려왔다.이제 와서?라는느낌. 의아함에 되물어진 목소리에도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퇴근 전 마지막으로 홀을정리하고 있던몸을 멈춰세우곤 벽한켠에우두커니 서있던 영진이를 바라보았다.

한참 전부터 제빵실에서 나와 일을 돕지도 그렇다고 무언가 말을 걸지도 않은 채 멍하니 서있기만 하더니,저런 걸로물어도되는 건지아닌지고민하고 있었던걸까.

"그냥..."

그렇게,별생각없이 입을 열려던 순간이었다. 무슨 이야기를 꺼내건, 나와 시현 씨가겪게 된병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없게 된다.즉슨, 시현 씨가 본디 여자였던 사람이라는 것을밝히게 될가능성이 농후했다. 병원 쪽에서어쩌다 보니.어쩌다 보니?그 좀그런 게 있어.네가 병원 가서 볼일이라 해봐야 성별 바뀐일밖에더 있냐?앗. 아앗?

"... 지인이야. 내가 친구가 너희밖에 없는 것도 아니고."

"네가 남자였던 건알고 있어?"

말없이어깨를 으쓱여 대답을 흐렸다.이도 저도 아닌대답이면, 필시 긍정으로도 부정으로도 받아들여지지않을 테니.그럼에도무슨 생각을하고 있는것인지 알기 힘든 묘한 시선이 연신 향해왔기에, 이내 이대로는 끝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옅은 한숨과 함께 느릿하게 대답을 이어갔다.

"이 모습이 된 이후에알게 된사람이야."

옅은 죄책감같은 것이가슴한켠을쿡 찌르고 지나갔다.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지만, 거짓말과 별반 다를 것 없는 말. 그렇지만, 나와 같은 비밀을 공유하고 있는 이의사정을,내 멋대로 남에게떠들고 다녀도좋을 것이라는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도 만약에 내 비밀을알고 있는누군가가 그것을 멋대로떠들고 다닌다면,굉장히. 굉장히...실망스러울 테니까.

지금은 아니다. 최소한 내 입으로는 아니다. 차후 넌지시 '이 사람들은 믿을만하다'같은 말 정도는 그에게 할 수 있을지언정, 내 입으로 이런 것을 떠벌리는 것은 도의에 맞지 않는다. 그렇게 결심을 굳혔다. 느릿하게 감았다 뜨는 시선이, 부디 의심스럽게 보이지 않았기를.

"...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응."

"진짜 걱정돼서 하는 말이니까기분 나빠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는데..."

"뭔데?"

테이블에 드문드문 남아있던 빵 부스러기 따위를훔치고 있던행주를 조심스럽게 테이블 위로 올려두고는, 도대체 얘가왜 이러지?하는 느낌으로눈살을찌푸렸다.이쯤 되니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어오기 시작했다.

영진이 쪽은 쉽사리 호의를 받을만한 인상은 아닐지언정 누군가에게 시비를걸고 다니는성격 또한 아니었지만, 시현 씨 쪽은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으니까. 내가 언제고 그의 옆에 붙어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중간중간 휴식시간을 가지며 영진이랑 교대했던 시간도 있었으니그 사이에시현 씨가 무언가 과격한 발언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뒤늦게 움찔 몸이 긴장되는 것이 느껴졌다. 말을 꺼내기 어렵다는 기색을 풀풀 풍기며달싹거리고 있는영진이의 입술이 무언가 판도라의 상자 비슷한 열리면 위험으로 가득한 것들을 뿜어내는 초현실적인 무언가처럼 느껴지는 듯했다.

"혹시 그 사람, 네 몸이 목적이라던가 그런 사람은 아니지?"

그리고, 그런 영진이의 입에서 끝내 내뱉어진 말은 음...여러 가지의미에서, 내 예상을 뛰어넘는 발언이었다. 이걸 뭐라고반응해야 될까.장난치지 마,같은 소리를 내뱉으려고 해도 나를바라보고 있는영진이의 눈빛이 지나치게 진지해서 도통 웃어넘길만한 말이 나오질 않았다.

"... 하아."

야트막한 한숨. 푹 숙여진 고개를 따라 몇 가닥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귀 너머로 정리하며, 느릿하게 고개를들어 올렸다.역시, 웃어넘기는 쪽이 낫겠어. 무슨 소리를지껄인거야,그 인간은.

"야한만화좀그만 봐."

"그게 아니고­"

"그 사람, 아마 여자보다는남자쪽을더 선호할걸."

무어라 말을 이어가려던 영진이의 목소리가 우뚝 끊겼다. 뭔가 힌트 아닌 힌트를 줘버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뭐... 상식적으로, 이런 얘기를 들었을 때 '아저 사람은원래 여자였구나!'하는 생각보다는 '아저 사람은동성애적인 기호를가지고 있구나!'라고생각하는 쪽이현실적일 테니까.

묘한 오해가 생겨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내 친구 입에서 이런 의심이 생길만한 발언을 한 사람이잘못한 거니까.

"... 엑."

"좀 곱상하게 생기지 않았어?"

"아니... 어, 좀귀티 나게생겼다 생각은 했는데."

단말마처럼 내뱉어진 목소리에 쿡 웃음을 흘리곤, 멈춰있던 손을 다시금 느릿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슬슬 퇴근 준비를해야 할시간이었다.

"아니, 그럼 왜 굳이 그런 말을... 혹시 목표가 저 녀석이 아니고..."

"뭘 그렇게중얼거리고 있어.할 일 없으면 너도 테이블이나 닦아."

"... 와 진짜. 너 진짜 지금 내가 얼마나 깊은 고뇌에 빠져있는지 알면 그런 소리못할걸."

"아주머니! 준영이가 저보고 알아서 하라며 자기는 쉰다면서생떼 부리는데요!"

"아, 비겁한 새끼야!"

14.

그럴지도 모르겠다 생각은 했지만,정말로 바로 다음날 곧장 오늘 하루는 나오지 않아도 괜찮다는 영진이의 전화가 걸려왔다. 어제배운 걸까먹고 싶지않다는 이유로 시현 씨가 아침 일찍부터 빵집에 찾아왔다는 모양이었다. 병원에도들릴 겸출근 준비를하고 있던와중 걸려온 전화에, 나도 모르게 맥빠지는 기분이 들어 나도 모르게입고 있던옷 그대로 컴퓨터 앞에 앉아 방송을 켠 것이 조금 전의 일이었다.

슬그머니 의사 님께 오늘은 점심무렵쯤에가도 괜찮겠느냐는 문자를 보내두었더니, 얼마지나지 않아허벅지로부터 옅은 진동이 느껴졌다. 주머니 속에 넣어뒀던 스마트폰을 확인해보니,시간은 별로 상관없으니 오기만 와라 정도의 내용을 담은 문자가 도착해있었다. 의사 님 다운 대답이라는 생각이 들어 비식 웃음을 흘리곤, 다시금 시선을 모니터 쪽으로 향해갔다.

"그러한 이유로, 감봉당했습니다."

­표현이 굉장히 센티하시네요

­그럼 이참에 돈도벌겸후원을여시는 건?

"코스프레하고 사진찍히는 거꽤 페이가 쎄던데.불러주면 그거라도 가죠 뭐."

­자신감;;;

그러고 보니,받았던 옷들도 옷장에 넣어두고꺼내 입은적도 없었구나. 수녀복같은 건달리 치장할 필요도 없이 수수하게입어볼 만하지않을까.돈 얘기를꺼내니문뜩 플라잉레빗에서의 생각이 떠올라 연쇄적으로 이런저런 생각들이 우후죽순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까선물 받은옷들 있는데. 말나온 김에한 번 입어볼까요."

­?

­??????

­눈나?

­코스프레복을어디에서선물 받음?

"플라잉 레빗 쪽에서 사진이 너무잘 나왔다고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면서 주셨어요."

­여행자?

"음...다른 것도몇 벌 있던데. 잠시만요."

시현 씨가보고 있을지도모른다, 같은 생각이 얼핏 들었긴 하지만 그 사람은 지금 열심히일하고 있는도중이라는 듯하니까. 설마하니 벌써부터여유 부리며카운터 앞에 서서 방송이나보고 있을것 같지는 않고. 가볍게 생각을정리하고는, 의자에앉아있던 몸을 조용히 일으켰다.

"금방 돌아올게요."

­뭐야 진짜로?

­갑자기 이게무슨 일이야

­눈나술마셨어요?

지난번에는 그렇게 해달라 해달라 노래를 부르더니 갑자기 왜 이런 반응일까. 캠에 비칠지안 비칠지는모르겠지만,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고서 방을 나섰다.그러고 보니,굳이 내가 나서서 여자 옷을 입은 모습을 보여주겠다 말한 것은 처음이었을까.

"... 음,게이세요?라고하면 분명 아니라고대답할 텐데말이야."

서서히 거부감이없어지다 보면,어느 순간 그렇게되어버리는 걸까.평생에 비하면 지나치게 짧은 시간일 뿐인지라 아직 별 느낌이오지 않을뿐, 언젠간 그렇게되는 거려나.이전이라면 꽤나 깊이 고민했을 듯한 고민이, 지금은 퍽 무덤덤하게 느껴지는 것을 보니 나도 변하기는 변한 모양이었다.나아진 건지아닌지는둘째치 고서.

"그러고 보니,난 이제 야동을본다 하면어느 쪽을봐야 되는 거지."

남자일 때는 3일에 1번은 출석해야 됐었는데,그러고 보니이 모습이되고 나선별생각이안드네. 나중에 한번노멀 한 거랑아닌 거랑이것저것 찾아보며어느 쪽에반응이오나 실험이나 해볼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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