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화 〉 13.작시성반(2)
* * *
4.
"와... 님들, 그래서 제가 지금 뭘보고 있는 거죠?"
엿보기 구멍 ㅜㅑ
미친놈ㅋㅋㅋㅋㅋ
근데 좀 유니크한 상황이긴해ㅋㅋㅋㅋ
언제나처럼 방송을 켰을 때,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알람 설정을 해준 윤서의 방송이 어째서인지켜져 있는것을 확인한 층적운이 가장 처음 느낀 감정은 의아함이었다. 애당초 방송 2개씩 켜두는 일이야 흔한 일이라는 것을 몇 번이고 설명했음에도 그녀가 한사코 '그래도 네 방송에 나쁜 영향 미칠지도 모르잖아'라며 같은 시간대에 방송을 켜는 것을 극도로 피하던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시계를 확인했을 때에 보인 시간은 분명 언제나 방송을 켜던 시간대. 그렇다면 윤서 쪽이 무언가 착각을 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착각을 했지? 그런 의문 속에서 시작된 방송.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무언가 있다는 것을 암시해오는 시청자들의반응까지.
층적운이 잠들기 전에 생각해뒀던 일정을 미뤄두고서 슬그머니 윤서의.적란운의방송을 틀어보게 된 것은어찌 보면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방송 시작 시간으로부터 약 7시간.그러고 보니이제부터 금, 토, 일만 아르바이트 간다고 했던가 하는 생각을 떠올리기를 잠시. 뒤늦게, 7시간이라는 숫자가 일반적으로 적란운이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는 러닝 타임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길어야 3시간. 짧으면 1시간 남짓. 언제나 오전에 잠깐 켜서 잡담을 나누다 끌 뿐인 사담 방송만을 해왔던 그녀가 이렇게나 긴시간 동안방송을켜고 있을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곧이어 눈에 들어온 방송 화면과 야트막한 탄식 덕에 어렵잖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 아...
짧은 탄성. 눈으로뒤덮여있는바위가 둥둥 떠다니던 풍경이, 삽시간에 양옥의 지붕 위 풍경으로 변하는 모습. 층적운으로선 꼴도 보기 싫은, 항아리에 하반신을 숨긴 채 망치 하나를 휘적거리며 우스꽝스러운 궤도를 그리며 이리저리움직이고 있는모습. 그리고, 망연자실한 적란운의표정까지.
웃음으로 가득한 채팅창을보고 있자니,층적운 또한 허허허하는 실없는 웃음을 저도 모르게 흘렸다. 짧은탄성뿐인부족한 사운드. 그럼에도, 세상이라도 잃은 듯 공허함으로가득 찬적란운의 모습은 평소 그녀가 보여주던조곤한이미지와 맞물려 어딘지 모르게 희극적인 분위기를 내뿜었다.
요컨대, 평소의 모습에 비해갭이 너무 커서 그냥 웃겼다.
트라이 6시간 30분 째!
"아니, 저걸 누나가 자기돈 주고샀을 것 같지는 않은데. 어쩌다가하게 된 거예요?"
오늘은 뭘 해볼까요, 하고1시간쯤 노가리까다가누가 시간잘가는데해보실? 하며 선물해줌
악마새끼임ㄹㅇ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선물 받은 건데끝까지 해봐야죠! 하고 달리기시작한 지가 6시간30분째ㅇㅇ
"아하..."
대략, 무슨 흐름이었을지알 만했다.성격상 받았으면 성의를보여야 된다며붙잡고 있다가,어느 순간부터인가 오기가 생겨깨고 만다!하는 느낌이 되어버리는. 사람의 눈이 돌아가게 만드는 그런 묘한 마성이 있는 게임이긴 하지. 추락의 충격을 자신이 받기라도 한 듯 움찔거리며 마우스를떨기만 할뿐 도통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적란운의 모습을 보며, 층적운은 그렇게 생각했다.
눈나밥은 먹고해야죠ㅋㅋㅋㅋㅋㅋ
부모님 오시면 밥먹을 거니까,걱정안 하셔도돼요. 오시기 전에 깨고밥 먹으러갈 거예요.
오늘 중으로못 깰 거 같은데
눈산이 너무 가망이없는데ㅋㅋㅋㅋㅋㅋㅋ
본파이어저 인간은왜 또저기 있데.적란운의 방송을보고 있던층적운의 시선에, 익숙한 닉네임이 보여왔다. 의외로 썩여유 있는삶을살고 있는걸까, 저 사람.
"허... 그래서, 님들이 보기엔 어때요?"
개꿀잼이지뭐ㅋㅋㅋ
샤우팅은안 하는데표정에서 익룡이 보임
ㄹㅇ사실 게임은 그냥 평범하게 못하는데표정 변화보는 게개꿀잼임
"음,감정 기복이적긴 해도 표정을 숨기고하는 건잘 못하긴 하지. 우리 누나가."
잠시 자신의 방송을 진행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층적운은그런 적란운의 모습을물끄러미바라보고 있었다. 뭐랄까,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이다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웃으며긍정 받고 있는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해야 할까.자신은 아직 가족을 이용해 도박을 했다는 사실에 대해 죄책감을가지고 있는모양이라고, 층적운은 생각했다. 어쩌면 평생토록 이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오늘컨텐츠는누나 방송관음하기임?
어이층 씨,이건 저쪽에서 보면 되니까 당신은 빨리 일이나 해
"거 가족이 뭐하나 구경 좀하고 있을수도 있지. 재촉은. 잠시만 기다려봐요. 좀궁금한 게생겼음."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자.좋은 게좋은 거지뭘. 층적운은,즐거우려 살기로 마음먹었다는 가족을 향해 괜한 걱정을 할 자격이 스스로에게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흐우우...이번엔넘어갈 거예요.보고 있어봐요.
저러고 있는모습 또한, 그녀에게는 즐거움이겠지. 가족과친구들뿐만아니라, 자신을 긍정해줄 수많은 사람들. 그런 이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충분히 괜찮겠지.씨익입꼬리를 끌어올린 층적운의 손가락이 빠르게 pc와 통용되는 채팅용 프로그램을 켰다. 기본적으로 스마트폰 용이지만, 층적운은 적란운이 노트북에 또한 그것을 깔아두었다는 걸알고 있었다.
"그럼 잠시, 반응만 구경하고 갈까요."
얼마 지나지 않아쿵쿵쿵쿵.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화면 속의 적란운이, 잠시 다른 일을 하는 듯 멈춘 게임 화면 속에서 분함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의자에서일어나고 있는모습이 비쳤다. 끝까지 소리를 지르거나 하지는 않는 모습이 퍽 그녀답다고 생각하며, 층적운은 끝내 참지 못한 큼지막한웃음을 터트렸다.
5.
"으으으으으...!!!!!"
연신 상현이의 방이 있는 벽면을 쿵쿵거리며 두드리던 손이, 이내 맥없이 툭. 떨어졌다. 부끄러움에 귀가화닥거려오는것이 느껴졌지만. 그런 상태로 부끄러움에 몸서리치다 꼴사납게 벽을두드리고 있는내 뒷모습이 캠에 그대로 잡히고있을 거라는것 또한알고 있었지만,그래도 이건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팔을 축 늘어뜨린 채, 힘없는 발걸음으로 뚜벅뚜벅 모니터 앞으로 되돌아왔다. 키읔과 내 추태를 놀리는 채팅으로 가득한 채팅창에 더불어, 새빨갛게 물들어있는 얼굴로 의자에 주저앉아있는 내 모습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왔다.
어찌어찌억누르고 있던감정들이, 뭐랄까. 도저히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들끓는 듯한 기분이 들어, 그대로 책상 위에팔을 괴고서 푹. 얼굴을 파묻어버렸다. 지금 이 순간에도화이팅!거리며 조롱 반 놀림 반으로 내 모습을감상하고 있을채팅창의모습이 보지 않아도 눈에 선했다.
"... 여러분, 이것 좀 봐요."
비쭉 시선만을들어 올려,꾸물꾸물 한쪽 팔을 움직여서는 반쯤 보이지 않는 모니터 위로 마우스 커서를 옮겨갔다. 메신저 프로그램으로 화면을 전환하고는, '동생'이라고 적혀있는 대화방의 모습을 방송 위로띄워 보였다.
"동생 된입장으로서 이건 좀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재차 보여오는 문자의 내용에 또다시 속에서 무언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듯한 기분이 들어, 반사적으로 상체를 벌떡일으켜 세웠다.딜레이 때문인지 잠시 상황을봐야 한다는듯주춤하던 채팅창이, 곧장 웃음과 긍정의 연호에 휩쓸려 떠밀려가기 시작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이건맞말이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
층적운이 어쩐일로맞말을다하네ㅋㅋㅋㅋㅋ
"이럴 때 정도는, 누구 한명쯤제 편을들어줘야 되는거 아니에요?"
'진짜개못하네ㄹㅇㅋㅋ'라고적혀있는 짤막한 문자 하나. 그것만으로, 뭔가 타오르던 열의가얼음물이라도끼얹은 듯 사그라드는 느낌이었다. 분함을 삭힐 방도가 보이지 않아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방송에까지 호소해봤건만, 방송을 끈다며 협박한 대가라도 된다는 듯 유감스럽게도내 편은 보이지 않았다.
"자기도... 자기도 4시간인가 걸렸으면서..."
눈나층적운은 4시간 걸려서 깼는데눈나는7시간다되가도록설원못 넘어갔잖아
이건다르지ㄹㅇ
층적운, 그에게는 자격이 있다
쌓이고 쌓여가던 게 응축되어터져 나오려는것 같았다.갈 곳잃은 시선에 무어라 말을해야 될지몰라, 결국 다시금'으구악!'하는알아듣기 힘든 소리를 내뱉으며 재차 팔에 머리를 파묻어버렸다.
한참을 그러고 있은 뒤에야, 멀리서 들려오는 현관문 열리는 소리에 느릿하게 고개를들어 올렸다.그제야, 울지 말라며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채팅들이 잔뜩올라와 있는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진짜안 울었어요."
당연하다는 듯아무도 믿어주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변명을 하며 방송을 껐다. 박장대소하는 상현이의 목소리가 들렸기에, 허락도 받지 않고 문을 열고 쳐들어가 옆구리를 있는 힘껏 걷어차주었다.
이건 좀 아팠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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