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16. 화송고 자선 리컨 대회 - 후편 (2) ★
16. 화송고 자선 리컨 대회 - 후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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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트는 진겨울이 활약할 여지가 많지 않았다.
최고윤이 도대체 동생에게 뭘 전수받았는지는 몰라도, 자르갈 4세를 들고 혼자 다 해처먹었기 때문이다.
후반부 한타에서 묵묵히 잘 큰 블라디가 전투 때마다 적진을 헤집고 다녔음은 부인할 수 없지만, 어쨌든 초중반 큰 골드차를 벌리는 데 가장 크게 공언한 것은 최고윤이었다.
1세트를 손쉽게 승리하고 맞는 쉬는시간.
최고윤이 진겨울의 무성의한 픽에 불만을 토로했다.
“야. 아무리 그래도 3연블은 좀 너무한 거 아니냐?”
“뭐.”
“아니… 좀… 다른 것도 보여주면 좋잖아.”
“아 뭐. 쟤들이 정 아니다 싶으면 밴 하겠지.”
물론 공포심 조금 사라졌다고 해서 모근 탈곡기 앞에서 핏대를 세우는 것은 불가능했다.
최고윤은 아까 게임하며 툴툴거렸던 것을 잊기라도 한 것인지, 다시 쭈구리가 되어 육민수의 어깨를 가격했다.
퍽 하는 소리가 육민수의 어깨에서 한 번, 최고윤의 등짝에서 한 번 났다.
진겨울 말대로, 블라디메르로 인해 게임이 터지는 것 같다면 상대팀에서 먼저 밴을 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만났던 그 어떤 팀도 블라디메르를 밴하지 않았다.
카닐, 신시드, 이렐리자, 피오나 같은 현 메타 1티어픽이자, 진겨울이 선호할 확률이 높은 픽을 먼저 밴해야 해서 밴 카드가 부족했던 것이다.
다른 라인을 터트리는 방법도 있었지만, 계속되는 경기 속에 진겨울을 막지 못하면 절대 못 이긴다는 인식이 쌓였다.
그것이 강박관념처럼 작용하니, 상대는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1:0으로 세트스코어를 리드하는 상황에서 시작되는 2번째 세트.
이번엔 놀랍게도 시작부터 블라디메르가 밴 당했다.
물론 진겨울에겐 큰 영향이 없었다.
그녀는 피로감을 늘리기 싫어 일부러 하던 것을 계속 하는 것 뿐이었다.
이미 블라디메르로 잘 풀리고 있는데, 굳이 다른 챔피언을 꺼내들 필요는 없지 않은가.
상대팀에서 밴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진겨울은 결승전 끝날 때까지 블라디만 했을 것이다.
첫 밴 페이즈를 마치고 보니, 의미 없는 진겨울 저격밴만 세 개.
블라디메르, 카닐, 이렐리자를 밴하고서, 상대가 블루 1픽으로 먼저 어른을 꺼내들었다.
그걸 본 최고윤이 중얼거렸다.
“결국 어른 쓸거면 블라디는 왜 밴했대.”
진겨울은 픽 웃으며 대답했다.
“빡쳤나보지. 모기가 오죽 짜증나냐.”
“그건 맞아.”
1세트에 상대가 모기 퇴치 시도를 안 했던 것은 아니다.
다양한 방법을 썼지만, 결국 손해만 봐서 그렇지.
피 빠는 것도 짜증나지만 더 짜증나는 건 생존력이었다.
스프레이 모기약을 맞고도 안 뒤지는데 어쩌라는 건지.
“그러면… 나도 또 보여줄 게 있지.”
“뭐 보여줄라고.”
“아. 재밌는거.”
그렇게 말하는 진겨울의 표정이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어른이 아직 락인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레드 1픽인 진겨울이 챔피언 하나를 찾아 냈다.
— 트롤 한 판 해볼까!
팟 하고 올라오는 못생긴 트롤의 초상화.
그걸 보고, 최고윤이 경기를 일으켰다.
“야! 미쳤어? 너 진짜 트롤하려고? 이건 즐겜픽 수준이 아닌데?”
“무슨 헛소리야. 상대 어른이라 하는 건데.”
“아니… 않이 씝… 이거 괜찮나?”
당연히 안 괜찮다.
최고윤의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아아… 정글… 정글 뭐 해야 하지…”
겨울왕국 정글러의 고민이 깊어져가는 와중, 마침내 상대 어른이 픽 시간을 다 쓰고서야 락인.
조금의 지체도 없이 진겨울의 트런들이 락인되어 버리니, 관중석에서 개탄에 가까운 함성이 터져나왔다.
“진짜, 저게 딱 내 반응이었다.”
“아하하하!”
장난기 가득한 진겨울의 천진한 웃음소리에, 최고윤은 게슴츠레한 눈으로 입꼬리를 늘어트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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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 라인전, 모두의 예상을 깨고 밀리는 쪽은 진겨울의 트런틀 쪽이었다.
정확히는, 처음부터 밀릴 것을 예상한 진겨울과 최고윤, 이도진을 빼면 말이다.
오른이 아무리 탱커라고 해도, 스킬콤보에 이어지는 패시브 누킹은 틀림없는 초반 강점.
반면 트런틀은 초반에 생각보다 할 게 없다.
트런틀은 일단 궁극기를 배워야 그 진가가 본격적으로 발휘되기 때문이다.
궁극기 ‘억제’는 상대의 방어력과 마법 저항력을 훔치고, 적에게 지속딜을 주면서 트런틀을 회복시켜주는 스킬.
어른를 물렁하게 만들고, 자신은 한타 때 엄청난 체력회복으로 버티면서, 얼음기둥으로 상대 길을 틀어막아 몽둥이찜질을 하려고 집어든 것이 트런틀이다.
그러니 당연히 6렙 전까진 트런틀이 힘들 수밖에.
하지만 이를 잘 이용하면, 상대를 역으로 잡아먹을 수도 있다.
“어어. 이건 어른이 위험한데요!!”
경기 시작 3분.
체력이 반쯤 빠진 트런틀이 레드 팀 자기 타워 앞에서 어른을 상대하며 꼬리를 흔드는 동안, 세주웨니가 탑 골렘 정글을 포기하고 빠르게 삼거리로 달려왔다.
“이건 킬이 나왔네요.”
“아 벌써 킬각이 보이나요?”
“네.”
이미 킬을 예측한 이도진의 코멘트.
해설자는 당황한 채 모니터로 시선을 돌려서, 이어지는 장면을 열심히 말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아! 어른이 트런틀의 도발에 걸렸습니다!”
그 사이 진겨울의 트런틀이 어른의 사거리가 닿을락말락 한 거리에서, 감정표현으로 어른을 도발했다.
양 발이 번갈아 폴짝거리는 경박한 춤.
이건 탑라이너인 이상 못 참는다.
참지 못한 어른이 따콩 한 대라도 때리려고 저지불가 효과가 붙은 ‘W/풀무질’로 남은 라인을 정리하는 그 순간, 트런틀이 갑자기 어른에게 달려들었다.
“뒤늦게 어른도 갱 오는 거 눈치챘죠!”
“하지만 지금 빠지면 늦었죠.”
이어지는 몽둥이질과, 어른의 도주로 약간 앞에 솟아오르는 ‘E/트롤 기둥’.
그리고 이것이, 정확히 같은 타이밍에 출발한 어른의 ‘E/용암돌진’을 완벽히 틀어막았다.
“와악! 예측 기둥!! 미쳤습니다!!”
해설자는 감탄하면서 거의 비명을 지르다시피 했다.
용암돌진 충돌 반경으로 트런틀이 잠시 떠올랐지만, 이후는 볼 것도 없었다.
뒤이어 도착한 세주웨니의 합류.
어른은 빠르게 점멸까지 쓰며 도망쳤지만, 진겨울이 점멸로 추격해오며 ‘Q/물어뜯기’로 어른을 둔화에 빠트렸다.
이어지는 세주웨니의 얼음땡 패시브까지 맞으며 어느덧 어른의 체력은 반 이하.
어찌어찌 라인의 5분 능선은 건너왔지만, 아직 갈 길이 너무 멀었다.
“죽었네요.”
“이야! 역시 이도진 해설위원의 말씀 대로군요!”
초반이라 약해빠진 트롤 몽둥이와 플레일.
하지만 그 숟가락 딜링도 계속 맞으면 죽음으로 이어진다.
[ 선취점! ]
[ 고고윤 ▶ 어른이되세요 ]
“퍼블! 겨울왕국! 기분좋게 먼저 한점을 가져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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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좋게 퍼블을 먹긴 했으나, 게임은 꽤 지지부진했다.
양 팀은 21분이 되도록 킬 하나 없이 치열한 골드격차를 유지했고, 마침내 두번째로 출몰한 화염 드래곤을 놓고 오랜만에 대치구도가 격화되었다.
바텀 강을 끼고 대치하던 중이었다.
이영빈은 미드 아래 부쉬에 숨어들었던 트리스티나의 존재를 모른 채, 무모하게 시야도 없는 부쉬에 진입하며 E-W-Q 포킹을 대충 날렸다.
“아앗! 이즈리언의 엄청난 포킹!!”
그리고 그게 운 좋게도 숨어 있던 트리스티나에게 다 맞았다.
사실 뒷걸음치다 쥐 밟은 격이긴 하지만 그 덕에 원딜이 밀려났으니, 탑라이너 둘을 제외하고 대치 중이던 양 팀의 희비가 엇갈렸다.
마이크를 통해 최고윤의 잔뜩 흥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이영빈. 너 미쳤냐?!”
“아… 아니. 이게 왜 이렇게 되지?”
이영빈이 부쉬에 들어간 이유.
그것은 개돌밖에 모르는 육민수가 진겨울의 통제에 길들여진 나머지, 저번주부터 과도한 신중성을 보이며 시야확보에도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다 못해 답답한 나머지 그나마 생존기가 훌륭한 이즈리언이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시야 없는 부쉬로의 앞비전은 전투 구도에서 완벽한 우위를 점했을 때가 아니면 엄연히 잘못된 행위다.
팀 게임에서 방금같은 짓을 했다간 범인으로 찍혀 온종일 고로시당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야 일단, 빨리 밀고 들어가!”
“자르갈 물까?”
갑작스럽게 이영빈에 의해 시작된 이니시 덕분에, 상금줘 팀의 진영이 완벽히 반으로 갈라져버렸다.
가장 깊숙히 들어왔던 자르갈이 황급히 깃창으로 빠져나갔지만, 테릭의 아찔한 보석 강타와 황홀한 기절은 피할 수 없었다.
조금 전까지 이영빈의 뒤에 숨어 깔짝대던 육민수가 신나서 소리치기 시작했다.
“보석! 보석!”
이어진 딜찍누.
21분 내내 1데스도 하지 않아 무탈히 성장한 이영빈의 딜이 아프게 자르갈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 Zerobin님이 밥선생님을 처치했습니다! ]
결국 상대 정글러 다운.
전투를 지켜보던 진겨울이 빠르게 탑 아래 강으로 뛰며 외쳤다.
“공작타이밍이다. 미드 밀고 다 올라와.”
“엥? 지금? 4:5인데?”
“테릭 무적이랑 우리 스펠 다 있잖아. 오라면 와.”
여왕님이 오라는데 왜라고 묻는 최고윤의 용기.
탈곡의 공포에서 벗어나던가, 해탈했던가 둘 중 하나이다.
동시에 해설자는 잔뜩 흥분해서 혼자 보이스를 다 채우고 있었다.
“잠자코 있던 이영빈 선수의 시원한 한방! 이대로 공작으로 올라가나요? 바로 가요? 시야를 지우면서 가고 있긴 한데, 5:4거든요? 위험할 수 있어요! 아니 진겨울 선수가 이미 치고 있었습니다! 공작 체력 벌써 절반!”
공작 체력이 절반쯤 빠졌을 때, 어른을 필두로 한 상금줘 팀의 네 선수도 봉인지 앞에 도착했다.
이어지는 어른의 뿔피리 소리.
“뿌우—! 일단 용암 신 불렀습니다! 테릭도 그에 맞서 무적기 ‘우주의 휘광’—!”
두 명이 어른이 부른 용암 신에게 맞긴 했지만, 이어지는 무적시간이 따뜻하게 모두를 감쌌다.
공작 체력은 이제 고작 2천 남았다.
강타 잘 쓰라는 진겨울의 말, 그리고 당연히 잘 쓴다는 최고윤의 반항이 팀 음성 채팅을 훑었으며, 헤드셋 밖에서는 해설자가 열변을 토했다.
“천 오백! 천! 육백, 삼백! 잡았습니다! 공작은 겨울왕국의 차지!!”
순식간에 끝나버린 공작 사냥.
거기에 그치지 않고, 겨울왕국은 그대로 몸을 돌려 봉인지 밖의 상금줘를 사냥하기 시작했다.
어른에게 일단 궁극기부터 박고 시작한 진겨울이 가장 선두에 섰다.
“트타랑 셴부터 노려! 오른 무시!”
못생긴 몽둥이 깡패가 눈에 불 켜고 쫓아오니, 작은 요글은 놀라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반피가 되어 트리스티나가 이동기로 도망쳐버리니, 구도는 어느새 5:3.
이어진 집단구타의 현장에서, 셴의 목이 가장 먼저 떨어졌다.
[ ValKyrie님이 개구쟁이셴님을 처치했습니다! ]
정신없는 상황에서, 진겨울은 개피인 트리스티나를 혼자 쫓으려던 도호재의 카사딤을 다시 무리 쪽으로 불렀다.
말하기도 귀찮았는지, 그의 챔피언 체크핑이 엄청난 속도로 채팅창을 뒤덮었다.
— ValKyrie(트런틀) : 자르갈 4세 / 생존
— ValKyrie(트런틀) : 자르갈 4세 / 생존
— ValKyrie(트런틀) : 자르갈 4세 / 생존
— ValKyrie(트런틀) : 자르갈 4세 / 생존
— ValKyrie(트런틀) : 자르갈 4세 / 생존
도대체 얼마나 빨리 누른 건지, 제한에 걸리기까지 1초도 안 걸렸다.
도호재의 카사딤은 당황한 듯 바로 몸을 틀었다.
“아, 알았어 핑 그만 찍어. 그쪽 갈게!”
그 와중에도 진겨울은 최전방에서 얼굴로 적의 딜을 다 받아냈다.
이게 바로 트롤의 왕이다.
[ Zerobin님이 어른이되세요님을 처치했습니다! ]
[ 호재호재님이 낄낄방울맛좀봐라님을 처치했습니다!]
이러면 이기는데 왜 혼자 가서 목숨을 버리려고 하냐고, 도호재.
진겨울은 공작 버프에 3킬까지 획득해 기분이 좋아졌는지 크게 소리쳤다.
“자, 드가자!!”
한편 이를 지켜보고 있는 이도진의 심경은 복잡하기만 하다.
‘설마 노리고 고른 건가…’
얼마 전 대회에서, 이도진은 트런틀이 팀에 포함된 경기를 치른 적이 있다.
하지만 현성 유니버스의 탑라이너는 제역할을 하지 못했고, 결과는 당연히 패배.
선두에서 아군을 보호하는 간단명료한 역할이었지만, 팀 동료는 그러지 못했다.
진겨울만큼 라인에서 버티지 못했고, CS수급은 처참했으며, 나중가서는 이게 탱커인지 두부인지 알 수 없는 수준이었다.
물론 모든 상황이 진겨울과 같았다고 볼 순 없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왜 뽑았냐?” 이야기가 안 나올 수 없었다.
‘나 이만큼 잘한다고, 나 도발하는 거지… 그렇지.’
CCK를 밥먹듯이 챙겨보고, 지금은 티를 안 내지만 이도진을 마음 깊이 응원하는 진겨울이다.
이도진이 생각하기에, 그녀가 오늘 아무런 의도 없이 트런틀을 골랐을 리가 없었다.
“아니 그런데 트런들 은근 좋네? 개똥챔인줄.”
그러나 적진으로 향하는 길에 받은 최고윤의 질문에, 이도진은 듣지 못하는 진겨울의 퉁명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개똥챔 맞는데.”
“… 그럼 왜 했는데.”
당황한 최고윤을 향해 고개를 돌린 진겨울이 말했다.
“너희들이 대회 내내 버스 타니까, 나도 너희들 버스 한번 타려고 골랐다 이새끼들아. 느그들 오늘 좀 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