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빌 메이든-114화 (114/296)

〈 114화 〉 59. Welcome, Freyja!

* * *

친구들과 웃고 떠든 건 혼겨울이었지만, 어째 함께 잠드는 것은 진겨울의 몫이 되었다.

침대가 커서 세 명이 다 같이 올라올 수 있다는 것도 놀라운 점이지만, 한여름의 잠버릇이 생각보다 나쁘다는 것도 충격적이었다.

‘같이 잠들어 본 적이 없으니 당연한가….’

겨울이지만 난방은 충분했다. 한여름이 밀착하니 따뜻하기보단 더워서 땀이 난다.

몸을 움직여 달라붙은 한여름을 떼어 보지만 어림도 없다. 그녀는 무슨 꿀단지 안고 자는 곰처럼 떨어질 생각하지 않았다.

속옷 위에 얇은 티 한 장만 걸친 보드라운 상체가 밀착해 있어서 딱히 싫은 건 아니지만.

덥다고.

리컨 클라이언트를 켜 두었기에, 잠들 수 없는 소녀가 픽 웃는다.

— 여름이 잠버릇은 여전하네.

잠든 두 친구가 듣지 못할 정도로 작게 속삭여 진겨울이 화답했다.

“잘 때가 평소랑 어째 다를 게 하나도 없구나.”

평소에도 그렇게 사람들 껴안는 게 좋은지, 심심하면 선수들에게 들러붙으려 해서 통제하느라 애 좀 먹었지.

유민재야 상관없지만, 최도윤 이놈은 또 쓸데없는 오해를 할 수도 있어서 관리가 필수였는데도 말이다.

— 이렇게 보고 있으니까 확실히….

혼겨울은 하던 말을 얼버무린 채 흠하고 낮게 신음했다.

“확실히, 뭐?”

— 아니야.

하여간 여자애들이란. 차가을도 종종 이해할 수 없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번씩 던지는데. 그때마다 그 속에 담긴 뜻을 해석하기가 영 쉽지 않다.

그나마 같이 지낸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해석하는 것뿐이다.

— 딱히 문제는 없겠다 싶어서. 내가 아니라 네가 그 자리에 있어도.

“?”

지금도 그래. 저런 말은 구태여 왜 한단 말인가.

마치 어딘가 떠나버리려는 사람처럼.

눈치가 빠른 편이라 저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너 행여나 쓸데없는 생각 하고 있으면…. 하지 마라. 부탁인데.”

— 에이. 무슨 쓸데없는 생각. 그런 거 안 해.

“그럼 불안하게 그런 말은 왜 하는데. 떠날 사람처럼.”

— ….

혼겨울의 침묵이 길어졌다. 방금 발언 실수를 했음을 본인도 인지한 것이다.

— 끙…. 그…. 잊어 줄래? 뭐 대수로운 것도 아니니까. 헤헤….

그 사납고 흉포하던 혼겨울이 ‘헤헤’하고 귀엽게 웃는 것부터가 정상이 아니다. 그녀라면 웃기지 말라며 일축하는 편이 좀 더 어울렸을 테지. 1년 정도 그녀와 함께 지내본 진겨울이기에 분명히 알 수 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속내를 숨기고 있구나.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조심스러워하고 있어.

문득 그 순간, 진겨울의 머릿속에 최근 기억 침식도가 50%를 넘기며 생겼던 영혼동화의 새로운 스테이터스가 떠올랐다.

【 영의 운명 ─ 동행령(진겨울) 】

─ (조건을 충족하지 않아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대충 넘어간 감이 있지만, 영의 운명이란 분명 동행령 상태인 혼겨울의 운명을 지칭한다고 봄이 맞다.

조건을 충족하면 드러난다는 저 내용은 무엇인가? 정말 진겨울이 걱정하고 있는 그것이 맞단 말인가?

“어디 가지 마. 계속 곁에 있어 줘.”

— …….

그나마 혼겨울이라도 있어서 이 몸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사정에 대해 이해하고, 주변인들과의 관계를 정리해나가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혼겨울이 사라지면, 그때는 어쩌지.

망망대해에 작은 쪽배 한 척과 버려진 기분이 들지는 않을까.

모두가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는 세상이지만, 배도현에게는 상냥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학력이 부족한 그를 깔보았다.

이룬 게 없이 아르바이트와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그를 무시했다.

계약 위반임에도 바보처럼 속아주길 바랐다.

그래서 배도현은, 이제 진겨울이 되어버린 남자는.

다시 세상에 혼자 남는 것이 두려웠다.

그때와 지금의 사정이 완전히 다르고, 그걸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음에도. 한 번 사람들에게 데어 본 기억이 쉽사리 사라지지는 않았으니까.

“솔직히 이건 네 인생이잖아. 나는 그저 잠깐 끼어든 방해꾼일 뿐이야.”

최도윤, 공제현, 유민재, 하정욱.

소중한 사람들이었지만, 누구 하나에게 제대로 마음을 줘본 적은 없다.

친구는 맞지만 팀장 노릇 위주로 했지 딱히 그들과의 사적인 교류는 하지 않으려 했다.

그 모든 행동의 이유에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이 몸은 내 몸이 아니잖아.’

진겨울의 인생이다.

배도현은 그녀의 인생길, 그중에서도 험난한 절벽 길에서 만난. 다음 마을까지의 여정을 함께 하는 잠깐의 동반자에 불과하다.

차라리 배도현이 실재했다면. 살아있었다면 이런 고민은 절대 하지 않았겠지만.

그는 죽었다. 이제 영혼마저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사후세계는 있을까? … 그 어떤 것도 알 수 없다.

배도현은 지금 무척이나 불안한 상태였다.

앞날이 캄캄했지만, 그 감정 상태를 혼겨울 앞에서도 차마 드러내지 못했다. 몸 주인이 틈만 나면 배도현에게 몸을 떠맡기고 겉돌려 하는데 어떻게 티를 내겠는가.

조금이라도 말실수를 하면, 혼겨울이 “네게 모두 맡길게”라는 말만 남기고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릴까 두렵다.

그녀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어설프게 붙여 둔 셀로판테이프가 말 한마디에 잘릴 수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혼겨울에게 몸을 되돌려주는 것이 도의적으로 옳음을 알면서도….

‘즐거운데…. 지금 이 생활이….’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었고.

큰 팀에서 뛰어보고 싶었고.

팬들의 관심도 한 몸에 받아보고 싶었고.

그 외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래서 바라던 일을 즐기고 있음에도, 진겨울은 쓴웃음을 짓고 만다. 한 레일 위에 마주 선 두 대의 기관차처럼, 두 개의 생각이 완전한 교착 상태에 빠졌다.

자아가 계속 이대로 살고 싶다는 쪽과 혼겨울에게 몸을 돌려줘야 한다는 쪽으로 나뉘어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혼겨울이 떠나든, 배도현이 떠나든.

둘 중 하나가 사라지는 건 절대로 싫어서, 차라리 싸움이 길어졌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진겨울은 애절한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쭉 친구로 곁에 있어 줘. 내가 불안하지 않게….”

**

차가을은 가장 먼저 일어나 냉장고를 뒤적거렸다. 친구 집이긴 하지만 이미 어제 몇 번이고 열어보았으니 익숙했다.

팩 두유 하나를 꺼내 쪽쪽 빨면서, 그녀는 어젯밤 있던 일을 되짚어보았다.

‘어디 가지 마. 계속 곁에 있어 줘.’

자다가 더워서 잠깐 깼는데, 진겨울이 분명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 대상을 추측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어디 가지 말아라. 떠나지 말아라.

“봄이…?”

당장 떠오르는 얼굴은 작년에 세상을 떠난 친구 한 명뿐이었다. 그녀가 없으면 죽고 못사는 사람이 진겨울이었으니 말이다.

‘솔직히 이건 네 인생이잖아. 나는 그저 잠깐 끼어든 방해꾼일 뿐이야.’

문제는 그다음에 이어진 진겨울의 말이었다. 그녀는 마치 지금 몸의 주인이 자신이 아닌 것처럼 말했다.

‘쭉 친구로 곁에 있어 줘. 내가 불안하지 않게….’

이 말을 마지막으로 진겨울은 다시 잠들었지만. 덕분에 차가을은 잠들지 못했더랬지.

덕분에 지금 새벽 세 시부터 깨어 있는 상태다.

“사람이 갑자기 변한 게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정말 헛것이라도 보는 걸까. 진겨울의 눈에는 죽은 봄이가 보이는 건가?

“아니면 진짜 인격이 쪼개지기라도 한 건가….”

두 친구가 화송고로 전학 오게 된 것은 민청하의 부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집을 마련해 주고 사람도 붙여주겠다는 말로 독립하고 싶던 두 사람을 유혹하고.

차가을의 부모님은 학군 이야기로 설득했다.

그렇게 해서 이곳으로 전학 와 부여받은 첫 임무가, 진겨울이 사고 못 치게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미친개가 되었나 걱정하면서 왔더니 이게 웬걸. 사납기는커녕 지독하게 평범해서 오히려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그저 봄이의 죽음 이후 혼란한 진겨울의 마음이 정리되어 가는 과정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것 같다.

사람이 바뀌었다는 느낌을 받긴 했지만, 4년이라는 공백기가 있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넘어갔는데.

“왜…. 하필 이걸 이제 발견한 거야….”

혼란한 차가을의 머릿속에 한 가지 단어가 떠오른다.

해리성 인격장애.

“봄이가 겨울이 대신 몸을 차지했다? 뭐 그런 건가?”

진겨울의 자아는 이봄을 내세우며 장막 뒤로 숨어버렸고, 현실로 나온 이봄의 자아는 진겨울이 도망치려는 걸 막고 있는 느낌.

그러나 이봄의 성격이 사회생활에 적합했고, 그렇기에 진겨울은 점점 주인격에서 밀려나 뒷방으로 쫓겨났다…. 그렇게 보는 게 타당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아니, 좀 이제 진겨울 같다 싶어서!’

한여름도 분명 그런 말을 했었더랬지. 차가을과 달리 이성보다는 감성에 의존하는 소녀이니 더욱 정확히 느꼈을 것이다.

모든 정황증거가 맞아들어가고, 하나의 결론이 난다.

진겨울이 지금 해리성 인격장애를 겪고 있는 것은 맞는 듯하지만….

이미 TU와의 계약도 좋게 마무리되었고, 진겨울의 데뷔 역시 확정되었다. 이제 와서 계약을 무를 수도, 정해진 것들을 취소할 수도 없다.

따라서 차가을도 침음하며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당장 문제는 없으니 조용히 넘어가는 방법 말곤 없겠네.”

누군가 이 사실을 알면 곤란하니 입을 다물지만, 그래도 민청하에겐 알려야 한다. 겉으로는 냉전을 벌이는 척하면서 겨울이를 가장 걱정하는 게 그녀이니.

**

[리컨 갤러리][개념글][진겨울 TU 오피셜]

공식 SNS펌

올해 아마추어 월드 챔피언십에서 한국 대표팀 탑라이너로 최고의 활약을 보여주었던 진겨울 선수가, Freyja로 닉네임을 변경하고 TU의 탑라이너로 합류하였습니다. CCK 최초의 여성 프로 선수로 뛰게 된 진겨울 선수에게 큰 응원 부탁드립니다! — Welcome Freyja! Joins League of Council 2019

[전체 댓글 371개]

— ㅇㅇ : 그래 시발, 알바야 이런 걸 좀 퍼가라고

— ㅇㅇ(108.202) : 드디어 올 것이 왔군

— ㅇㅇ : 프로필 사진 무냐고~

— ㅇㅇ : 사진 진짜 ㅈㄴ 예쁘게 나왔노

— 겨울이노예 : 찬양하라

└ ㅇㅇ : 오늘은 해줌

└ ㅇㅇ : 이건 사진이 일 다 했다 ㅋㅋ

└ ㅇㅇ(39.9) : 예쁘긴 해;

— ㅇㅇ : 튜의 탑혜지는 다르다!!

— ㅇㅇ : 튜탑혜지 on

└ ㅇㅇ(114.112) : 이거 진겨울이 튜브탑 입어준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됨?

└ ㅇㅇ : 미친새낀가

└ ㅇㅇ : 빈유라 입어도 볼 거 없음

다음 날 진겨울의 입단 소식이 TU 공식 SNS를 통해 팬들에게 전해졌다.

최도윤과 유민재의 합류 소식도 함께였지만, 팬들의 관심은 온통 진겨울에게 쏠려 있었다.

있지도 않았던 중국 쪽 오퍼 거절 이야기가 돌아다니고.

가장 편한 팀이라 들어간 것뿐인데 애국자란 이야기가 나온다.

혹자는 Plum 때문에 간 거라며, 그녀가 튜갈, 나아가서는 플독이라며 까기도 했다.

뭐 그래 봐야, 진겨울 외모 이야기 하나로 모두 압살.

메이크업 선생님의 탁월한 실력이 여기서 발휘될 줄은 진겨울도 몰랐을 것이다.

프로필 사진에서 쌍 따봉을 들고 연한 미소를 짓는 그녀는 그야말로 고등학생의 탈을 쓴 여신 그 자체였다.

[리컨 갤러리][개념글][닉변사유 이거 아닐까?]

북유럽 신화에서 프레이야가 발키리 대빵임.

평범한 발키리에서 여신으로 진화한 그런 느낌인거지.

지금 진겨울도 딱 그렇거든. 하꼬 방송인에서 프로게이머. 완전 초진화 ㅋㅋ

추가로 프레이야가 아프로디테급으로 예쁜 걸로도 유명함.

이걸로 이미 신뢰도 200%

[전체 댓글 102개]

— ㅇㅇ : 난 짱재랑 라이벌 구도 세우려고 그런 줄 알았는데, 이것도 맞는 것 같네

└ ㅇㅇ(104.141) : 장재홍 라이벌 썰도 그럴싸하긴 한데, 그러면 공제현은

└ ㅇㅇ : 공제현? 그새끼 왜?

└ ㅇㅇ(104.141) : 걔 닉 Loki잖아 ㅋㅋ

└ ㅇㅇ : 아 그랬음? 관심없어서 모름 ㅋㅋ

— ㅇㅇ : 얘는 프로게이머 말고 다른거 했어도 ㅈㄴ 잘나갔을 텐데

— ㅇㅇ : 솔직히 인방여신으로 남았어도 됐을 정도지 ㅋㅋ

— ㅇㅇ(201.104) : 근데 여신 프레이야는 문란하기로 유명하지 않나? 헉, 그렇다는 건 튜 숙소에서,,, @.@

└ 겨울이노예 : 착하고 예쁜 말만 쓰자

└ ㅇㅇ(39.8) : 이건 망상이 ㄹㅇ 존나 역하네

└ ㅇㅇ : ㄹㅇ ­틀­ 한남망상 그자체노

닉네임 교체는 팬들이 정확히 그 이유를 짚어냈다.

발키리에서 진화해서 발키리들의 여신 프레이야. 어쩌다 보니 Falcon에 Odin 장재홍과 Loki 공제현이 함께 있어 묘한 대립 구도가 되어버렸지만 말이다.

물론 꽤나 화기애애해 보이는 분위기 속에서도, TU를 걱정하는 팬들은 앞으로의 활동 방침을 단호히 밝혔다.

[리컨 갤러리][개념글][한가지 확실한거]

여기 진겨울 찬양하는 놈들 중 99%는 폼 꼬라박자마자 바로 욕박을 새끼들임

ㅇㄱㄹㅇ

[추천 409개/비추천 0개]

[전체 댓글 142개]

— ㅇㅇ : ㄹㅇㅋㅋ

— ㅇㅇ : 비추 0개 실화냐 ㅋㅋ

— ㅇㅇ(104.132) : 시1발 개추조작기 수준 ㅋㅋ

— ㅇㅇ : 리컨 프로면 피할수 없지 아 ㅋㅋ

— ㅇㅇ : 괜찮아, 든든한 튜갈이 있잖아 ^^7

└ 겨울이노예 : 겨울이노예도 있음

└ ㅇㅇ(102.111) : 호감고닉 겨울이노예 게이게이야…

— ㅇㅇ(39.8) : 성적 꼬라박으면 당연히 욕 먹어야지. 그게 프론데

└ ㅇㅇ : 꼭 이런 새끼들이 패드립으로 선넘던데 ㅋ

└ ㅇㅇ : 나중에 변호사 찾지 말고 미리미리 조심하자고~

요컨대 마냥 머리 쓰다듬으면서 오구오구 응원하는 모양새로 보여도, 언제든 회초리 들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 회초리가 얇은 나뭇가지로 만든 게 아니라 쇠로 된 야구 배트라서 문제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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