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2화 〉 83. 누나를 따르려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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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컨 갤러리][개념글][아 TU경기 씹노잼이네]
(웃는_추수기.jpg)
그런건 없다 게이야 ㅋㅋㅋㅋ
(비웃는_추수기.jpg)
무슨일이 있어도!!!
(정면_추수기.gif)
절대!!!
(신난_추수기.gif)
TU는 안 진다 게이야 ㅋㅋㅋㅋ
(추수기_매드무비.gif)
ㅋㅋㅋㅋㅋㅋㅋ
(추수.gif)
뭐 시발 ㅋㅋㅋㅋㅋㅋ
(나만_아니면_돼.jpg)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전체 댓글 92개]
— ㅇㅇ(111.203) : 튜갈 강점기 ㄹㅇ 역하노
— ㅇㅇ : 솔직히 빡치는거랑 별개로 ㅈㄴ 잘하긴 해
└ ㅇㅇ : 그래서 더꼴받음 시1발
— ㅇㅇ(39.8) : 포기해라 올해 안해 튜갈강점기 안끝난다 ㅋㅋ
└ ㅇㅇ : 수능 잘보게 해주세요
└ ㅇㅇ : 로또 당첨되게 해주세요
— 추수희망자 : 나 겨울누나랑 친구먹음 ㅋㅋ
└ ㅇㅇ : 이새낀 또 뭐임?
└ ㅇㅇ(104.11) : 어그로임 무시하셈
이틀 뒤 America Freaks와의 일전도 2:0으로 깔끔하게 잡아낸 TU는 그야말로 승승장구.
2:0, 2:0 완승을 두 번 거두며 승점 +4점으로 단독 1위를 달렸다.
예정된 다음 주 경기가 목요일이라 앞으로 6일의 여유가 생긴 관계로, 진겨울은 한여름의 부탁을 들어 마침내 하재욱과의 온라인 미팅을 가졌다.
처음엔 누군가 했는데, 개막전 경기 인터뷰 끝나고 나서 마지막으로 인사했던, 그 20대로 보이던 학생이었다.
“안녕하세요.”
— 와! 안녕하세요!! 와! 진짜 진겨울이네.
“아. 아으. 그, 볼륨 좀만 낮출게요.”
— 헉. 죄송합니다. 너무 반가워서 그만.
“예. 그, 이해해요.”
진겨울이 된 직후 집에 찾아온 이도진을 만났을 때가 떠오른다. 그때 진겨울이 보였던 반응이 이것과 비슷했지.
‘아니다. 이 정도까진 아니었나…?’
이도진을 보긴 했는데 대포 먹고 그 게임 마무리하느라 정신없었나 싶기도 하고.
뭐, 아무렴 어떻단 말인가.
어느 정도 팬들을 거느린 시점부터는, 그들의 성원에 부응하고자 전보다 더 열심히 했다.
원래 열심히 했기에 연습량에 차이가 생긴 건 아니지만, 어떻게 하면 팬 서비스를 늘려볼 수 있을지 고민하다 보니 밴픽이 좀 더 재미있어졌달까.
America 전에서 선보인 바텀 블라디메르가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겠다.
탑과 미드에서 주로 쓰이는 챔피언이지만, 숙련도가 높은 진겨울이기에 그대로 바텀에 가져와 썼고, 상대가 예측하지 못한 허점을 찔러 완벽한 승리를 만들었다.
대비해도 완벽히 대비할 수 없게끔 자꾸만 변수와 수상한 픽이 튀어나오는, 그야말로 전략 병기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팬을 넘어선… 나를 롤모델로 한 지망생이라.’
확실히 감회가 남다르다. 다른 선수도 아니고 진겨울을 보고 프로가 되고 싶단다.
하지만 진겨울은 장난기가 동한다.
생각해 보라. 이도진을 비롯한 수많은 레전드들이 살아 숨 쉬는 이 CCK가 아닌가.
그 쟁쟁한 틈바구니에서 진겨울을 콕 집었으니, 그 이유가 있어야 함이 마땅하다.
하정욱의 동생이라 이미 가산점을 먹고 들어가지만, 지인이기에 더욱 철저히 검증해야 하는 것이 진겨울의 철칙.
과연 그는 뭐든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진겨울의 까다로운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을까?
“그럼, 간단한 테스트부터.”
— 네! 방 만드시면 들어갈—.
“아니. 그 전에 퀴즈부터요.”
— 엥? 퀴즈요?
진짜 팬이고. 정말 진겨울을 롤모델로 삼았는지.
혹시 최도윤처럼 이상한 마음먹은 건 아닌지. 진겨울에게 다른 걸 기대하는 건 아닌지. 확인해야 한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미드 챔피언은?”
— 몽블랑.
딩동댕. 아주 빠른 정답이다.
사실 진겨울이 좋아한다기보단 울이의 픽이지만. 뭐 그게 그거인 셈 치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진겨울은 몽블랑보다는 이렐리자가 좋다. 어검으로 사각사각 베는 맛이 일품이고, 스킬 이펙트와 스킨이 화려하니까.
“제가 제일 좋아하는 탑 챔피언은?”
— 으음…. 이건 좀 어려운데….
진겨울은 최근 탑에 거의 서지 않았다. 심지어 솔랭에서도 미드와 바텀만 돌리는 중이라 하재욱에게는 꽤 어려운 문제였으리라.
— 블라디메르?
“오. 의왼데?”
— 정답인가요?
“어.”
— 이야. 역시. 저 그것도 봤거든요, 화송고 자선 리컨 대회 영상.
하재욱, 의외로 진짜 진겨울에 진심이었다. 데빌 메이든 뉴튜브에도 올라와 있지 않은 영상을 볼 정도면 인정해 주는 것이 옳다.
영상을 찾으려면 김선경 선생님이 만드신 개인 뉴튜브까지 심해 탐사를 해야 하는데, 보통 거기까지 생각하기는 쉽지 않거든.
— 그때 블라디 엄청 쓰시길래 왠지 주캐 같았어요. 반쯤 찍었네요.
뭐, 정답이긴 하니까.
어려운 챔프로 분류되긴 하지만, 배도현식 늪컨과 가장 잘 어울리는 챔피언이 바로 블라디메르였다.
적을 늪으로 끌어들이고 피 웅덩이로 삼키는, 그만의 유니크한 점이 있었달까.
… 그래봐야 다이아긴 했지만.
“그럼, 바로 겜 돌릴까요?”
— 아, 듀랭 돌리실 거죠?
“네. 저는 바텀이나 미드 갈게요. 탑라인전 하는 거 보여주세요.”
— 알겠습니다!
자신 있게 외치는 하재욱. 과연 그는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
‘형제가 둘 다 많이 차분하네.’
성격적인 부분에서 마이너스 될 만한 점은 보이지 않는다. 온갖 도발을 했는데 넘어오지 않았다는 한여름의 평가도 만족스럽다.
심지어 천부적인 센스를 타고 나서, 리컨 시작한 지 2년 만에 그랜드마스터까지 올라왔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하정욱은 끝내 포기했지만, 형제의 피는 확실히 이어져 있는지. 그 의지는 하재욱에게 넘어간 모양이다.
확인해보고 마음에 들면, 감독님께 추천해드리자.
얼마나 진겨울의 오더를 잘 이해하는지.
또 진겨울과 얼마나 게임 읽는 눈을 맞출 수 있는지.
그가 지금 연습생인 다른 선수들보다 낫다고 평가되면, 진겨울은 그를 예비 전력으로 2라운드 로스터에 포함시키고 싶었다.
‘엄마가 파트 오너인 게 썩 나쁘진 않네….’
든든한 백이 이래서 중요한 건가 싶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이도진 없이 TU의 대격변이 가능했을지도 의문이다.
진겨울이 자신의 군단을 끌고 합류한다? 그걸 누가 공인해준단 말인가. 사무국이 리스크를 짊어질 리가 없다.
이도진과 민청하에게 감사하게 되면서도, 새삼 이도진은 걱정되고, 민청하에게는 괜히 짜증이 나는 오후다.
‘그나저나 이 아줌마. 그새 또 광고 촬영 예약을 걸어놨드만….’
다 좋은데 광고 촬영은 정말 계속할 속셈인 걸까. 팬들에게 알려지면 어쩌려는 속셈일까? 분명 시즌 중에 광고 촬영했다고 잔소리 엄청 날아올 텐데.
뭐. 그건 파트 오너가 알아서 하셔야 할 문제겠지. 어차피 진겨울은 자기 임무에만 충실하면 되는 것이다.
‘어떻게든 팀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한다….’
원래는 사무국의 일이지만, 투자한 이상 절대 손해 보게는 하지 않겠다고 민청하와 약속했으니까.
이도진의 손목에 갑자기 문제가 생겨 팀이 삐걱거릴 상황은 미리미리 대비해야 한다.
“너, 진짜 제대로 해라. 설렁설렁하지 말고.”
부디 하재욱이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를 바라며, 진겨울은 큐를 돌렸다.
그러자 하재욱이 유쾌하게 대답했다.
— 누나. 전 완전 진심이거든요. 누나랑 한 팀에서 뛰고 싶어 죽겠거든요!!
그러든가 말든가. 어차피 이놈 감정은 알 바 아니다.
진겨울은 가볍게 픽 웃고 넘겼지만, 듣고 있던 울이가 난처한 듯 중얼거린다.
— 쟤 좀….
“좀?”
— ……. 아니다….
**
디코 음성 채팅으로 소통하면서, 하재욱은 천국에 온 듯한 착각을 느꼈다.
그녀의 핑을 잘 해석하면 킬이 따라 들어오고. 데스가 줄었다.
말수는 적지만, 하는 말에는 모두 의미가 있다.
다소 사무적이면서도, 필요할 때는 악센트를 줘 가며 긴장시키기도 하고.
괜찮은 성과를 보이면 잘했다고 짧은 칭찬도 해줬다.
좋은 리더다. 어째서 겨울 군단이 그토록 완벽하게 아마추어 월챔을 우승할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달까.
‘선수들과의 거리 조절을 이렇게 하시는구나.’
저렇게 예쁘고, 귀엽고, 연약하고, 사랑스러운데. 왜 추수기라는 별명이 붙었을까 궁금했다.
뭐 예전에 악마처럼 반 친구의 머리털을 뜯었다고는 하는데, 사실 얼굴만 봐서는 전혀 모르겠는 걸.
더불어 숙소에서 선배들에게 너무 귀여움받는 건 아닌지, 그래서 다들 진겨울을 여동생으로만 보는 건 아닐지.
그런 걱정들을 했더랬다.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네.’
하지만 일단 게임에 들어온 순간, 그녀는 한 명의 까칠한 지휘관에 빙의한다.
오더에는 티끌만 한 사족도 들어가 있지 않다. 오래 연습해 깔끔해진 발음과 철두철미하게 계산된 짧은 명령들.
코리안 컵에서 공개된 오프 더 레코드에서 선수들과 잡담도 주고받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승리 후 여유가 있을 때다.
그때를 제외하면, 그녀는 항상 진지했다. CCK 시작 후 항상 보이는 선수 캠과 선수 개인화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엄청난 속도로 이뤄지는 맵 스캔과 라인 상황 파악. 그러면서도 자기 라인전은 놓치지 않는 섬세함.
뭐 이런 선수가 있나 싶다.
팬들이 장난으로 추파고, 핵 유저, 이런 별명을 붙였나 의심하기까지 했는데.
추파고가 맞다. 이건 사람이 아니다. 어떻게 사람이 맨날 보는 자기 팀 선수들도 아니고 공방 유저들까지 이렇게 수족 부리듯 컨트롤하냔 말이다.
— [전체] 수정과충 : 아 좀 봐조오오오오오!
— [전체] 수정과충 : 진짜 넘하네???!!!?
상대 바텀 라이너로 맞닥뜨리게 된 Daddy 박민성 선수가 전체 채팅으로 아양을 떨 정도다.
— [전체] ValKyrie : ㅋㅋ ㅈㅅ; 지금 봐드릴 수가 없어서
— [전체] 수정과충 : 친추 언제 받아줄건데 그래서
— [전체] ValKyrie : 2라운드에서도 져주시면요
— [전체] 수정과충 : 나 그러면 쫓겨나 겨울찡…
Daddy가 허울 없이 선수들과 잘 지낸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진겨울과도 이렇게 친한 줄은 몰랐다.
이렇게도 남성 친화적인 여성 프로게이머가 다 있단 말인가.
‘보통 리컨 하다 보면 남자들한테 질려서 짜증 낼 만도 한데. 진짜 천사야….’
앙탈도 받아주고. 조금 심하다 싶은 장난도 유쾌하게 받아준다.
대인배. 누님, 그 자체다.
— 카닐, 라즈 노플. 정글 부르기 좋은 타이밍.
“넵!”
같은 팀이었던 친형, 하정욱은 대회가 끝나고 본인의 자리에 돌아온 뒤에도 입에 닳도록 진겨울을 칭찬했다.
그의 반복적인 진겨울 칭찬이 아니었다면 하재욱이 그녀에게 관심을 보일 일도 없었으리라.
처음에는 조금 중2병 같던 그녀의 닉네임도, 지금에 와서는 찰떡같이 어울린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외모, 성격, 목소리, 게임 실력 등. 보이는 모든 면에서 그녀는 여신 같다. 그녀를 따라가면 정말 승천해 발할라로 향할 수 있을 것 같다.
내려오는 계시는 정확하고, 날카롭다. 괜히 이도진이 자기보다 게임 잘한다고 말했겠는가.
상황을 누구보다 완벽하게 보고, 그에 맞는 오더가 즉시 계산되어 나온다. 합법 맵핵에 합법 헬퍼까지 쓰는 선수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원래대로라면 실수해야 하는 부분에서 실수가 나오지 않으니, 경기 후 피드백 시간도 줄 거고. 선순환이 이어져 선수들의 컨디션 관리에도 도움을 줄 터.
모든 팀이 계속 파고들면 언젠가는 빈틈을 발견할 순 있겠지만, 적어도 데뷔 원년인 올해는 진겨울을 압도할 선수는 절대 나오지 않으리라.
매끄러운 스노우볼링. 게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진겨울의 예측은 빗나간 적이 없다.
그저 그녀의 오더에 집중하고 라인전에 충실하면서 열심히 받아먹다 보면 게임이 기울어져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때로 굉장히 어려운 요구가 주어지기도 해서, 마냥 받아먹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 TU 선수들의 상태도 보통이 아닌 거야….’
조금만 삐끗해도 놓치는 것들이 산더미다. TU 선수들은 이미 진겨울에게 적응했는지는 몰라도, 그저 보면서 ‘진겨울 사기네’ 외치던 사람들은 즉시 적응할 수 없다.
페이스에 맞추기도 쉽지 않으니, 이래서 드림팀 드림팀 하는구나.
분석가들의 말이 하나 틀린 게 없었다. 리갤에서 매번 내려치기 하던 게 잘못된 게 맞았던 거다.
하재욱이 지금까지 했던 게임은 리컨이 아니다. 그건 리컨이 낳은 괴물들과 함께 하는 똥이었다. 진겨울과 함께 하는 승리 플랜만이 진정한 리컨이다.
‘솔직히 나도 가업 아니었으면, 그냥 겨울이랑 계속 같이 팀 했을 것 같아. 마음이 일단 편하거든. 그 왜, 믿음이 간다고 해야 하나? 내가 실수해도 커버쳐주고. 그게 좀 큰 실수여도 이겨줄 것 같은 그런 든든함?’
신중한 형이 괜히 그런 말을 한 게 아니구나. 마냥 기대서는 안 되겠지만, 이런 기사님이라면 얼마든지 운전을 도와줄 수 있지.
하재욱은 히죽 웃으며 크게 외쳤다.
“저, 평생 진겨울 선수와 함께하고 싶습니다!!”
물론 돌아온 대답은 까칠하고도 나른했다.
— 뭐라는 거에요.
*
진짜 어이가 없다.
Daddy선수랑은 개막전 이후로 말도 섞어본 적 없다. 랭겜에서 몇 번 마주치긴 했지만, 상대하면서 오늘처럼 대화를 나눈 적도 처음이다.
— [전체] 수정과충 : 겨울찡 개잘하네 ㄹㅇ
진짜 왜 저러냐고.
‘개막전 날 악수한 것 때문에 그러는거야…?’
그거 한 번으로 친해졌다고 생각하는 건가. 다른 팀 선수들과 악수한단 생각에 긴장해서 기억이 흐릿하다.
그러고 보니 뭐라고 말을 하긴 했는데, 진겨울은 힘겹게 Daddy에게 건넸던 말을 떠올렸다.
‘내가 미쳤지.’
‘파이팅, 잘하셨어요’ 이렇게 말했구나. 자칫 무시 발언이 될 수도 있었는데, Daddy가 성격이 좋아 친구 하자는 말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너무 세게 밟아서 미안하다는 뜻이었는데. 그게 친구모집 멘트가 됐다. 이게 다 얼굴 때문이다. 악수하면서 미소 짓지 말았어야 했나.
— 저, 평생 진겨울 선수와 함께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어린 놈의 새끼는 도대체 뭐라는 거야.
내가 배도현이었으면, 너랑 나랑 나이 차이가 어? 8살이야 이자식아.
“뭐라는 거에요.”
하마터면 “닥쳐!”라고 소리지를 뻔했다. 평소 김종하에게 하던 게 습관이 된 것이다.
“게임 집중합시다.”
— 넵!
잘 참았다. 진겨울.
아무리 그래도 처음 본 팬한테 대뜸 닥치라는 말은 좀 아니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