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화 〉 CCK 스프링/5주차, vs KC Rollercoast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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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욱이 진겨울의 제안을 거절한 이유는 별것 없었다.
진겨울에게 너무 미안했기 때문이다.
‘이런 말까지 하면서 날 걱정해주다니….’
자신이 기대했던 만큼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니 동기를 유발하려고 평소엔 하지 않던 말까지 하는 그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던 것이다.
평소의 진겨울이었다면, 게임 뭐같이 한다면서 한마디 하지 않았을까.
지금처럼 다독이면서 내 곁에 한 자리 내어줄게, 따위의 달콤한 말을 할 리가 없다.
‘더 잘하자.’
진겨울이 자신을 챙긴답시고 부담감 느끼는 건 하재욱에겐 죄악이나 마찬가지다.
이 팀에 계속 남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건 자신이지. 진겨울이 아니지 않은가.
진겨울이 걱정하지 않게끔.
위기 상황에 불러준 몫은 할 수 있게끔.
하재욱은 사냥에 나서기 위해 발톱을 갈고 닦는 야수처럼, 더욱 강하게 투지를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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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0일.
vs KC Rollercoaster.
TU는 천신만고 끝에 두 번째 상대에게서 승리를 받아냈다.
2:0 깔끔한 매치 승리였지만, 세트 하나씩 파 보면 문제점은 산재해 있었다.
우선 진겨울의 의도를 파악한 하재욱이 공격적으로 나서면서, 탑에서 꽤 무리한 플레이가 많이 나왔다.
솔킬을 딸 수 있는 각이었는데 궁극기를 맞추지 못해 역으로 당하는 모습이 보여주며 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것이 대표적이었다.
하지만 미드에서 진겨울이 상대를 끌어당겨 잡아먹고.
바텀 듀오가 능동적으로 상대 서포터를 물어뜯어 밀어냄으로써 포탑 골드를 뜯어내는 등 공세를 펼쳤다.
이어진 켈베로스를 두고 펼쳐진 상체 대 상체 싸움에서 최도윤이 말도 안 되는 드리블로 상대를 농락하고.
점멸이 없는 진겨울은 이속 증가 스킬만으로 상대 리산드리아를 가지고 놀았다.
게다가 적기에 내려온 하재욱이 상대를 밀어내면서, 상대가 사냥 중인 켈베로스를 기분 좋게 넘겨받기까지 했다.
그러나 잔뜩 긴장한 탓인지, 하재욱의 우르고트는 두 번째 궁극기 미스를 일으키고. 시간이 끌리는 바람에 상대 미드 리산드리아의 합류를 허용하면서 또다시 사망.
심지어 다음에 벌어진 5:5 한타에서도 궁극기 실수를 보여주며 팬들을 절망케 했다.
그것이 방아쇠가 되어 TU는 0:3이라는 손해 막심한 교환을 하게 된다. 그나마 라인전으로 벌어둔 골드가 있었기에 킬 스코어가 2:7로 밀리고 있음에도 글로벌 골드를 앞서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30분이 넘는 시점까지 골드 차이 1천으로 무척 팽팽한 싸움이 이어졌다.
평소 같았으면 이미 밀어붙이고도 남을 타이밍이지만, TU는 쉽게 승기를 굳히지 못했다.
라이너들이 불안했다. 그래서 진겨울도 경기를 끝낼 방법을 확신할 수 없었던 것이다.
상대의 실수를 초조하게 기다릴 수밖에 없던 그때.
운 좋게도 상대 원딜러가 그 시간까지 남아있던 미드 1차 타워를 파괴하기 위해 다소 무리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마침내 보인 승리의 한 줄기 빛. 최도윤, 하재욱, 김종하 3인방이 날카롭게 달려들며 한타를 연다.
3:0 기분 좋은 교환이 이뤄진다. TU는 골드 차이를 3천까지 벌렸고, 이때부터 분위기를 탄 진겨울의 약 올리는 플레이가 시작된다.
1세트 진겨울의 픽은 질리얼이었다.
상대를 약 올리고, 아군을 보호하며, 동시에 지역 장악 능력까지 뛰어난 서포팅 챔피언.
픽의 이유는 명확했다.
한타에서 김종하와 하재욱을 살린다.
부활 변수로 상대를 교란한다.
헛다리 짚기로 상대를 우왕좌왕하게 만든다.
한타 구도에서 상대에게 원하는 위치를 내어주지 않는다.
이 네 가지였다.
초반에 다소 불안했던 그녀의 의도는 게임이 후반에 접어들면서 완벽에 가까워졌다. 팀원들이 점차 안정적으로 변모한 덕이었다.
진겨울은 최도윤과 김종하 특공대가 몰래 공작을 치는 사이. 용 앞에서 혼자 리산드리아와 자르갈 4세를 죽을 때까지 괴롭히는 데 성공한다.
미친 듯한 폭탄 적중률. 자르갈 4세의 체력은 눈 떠 보니 곤죽이었으며, 그걸 또 끝까지 따라가서 죽여버리기까지 한다.
그 이후에도 진겨울은 잘 큰 질리얼의 시계 폭탄으로 상대를 농락하면서, 그녀가 해야 할 모든 플레이를 정말 완벽하게 선보였다.
그대로 게임이 끝나면 좋았겠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
게임이 길어지며 골드 차이가 무의미해지는 타이밍이 오니 김종하가 위치 잡는 데 어려움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엎치락뒤치락 하는 한타가 계속 이어지고, 공작 두 번. 장로 드래곤 두 번을 획득하면서 게임 시간은 45분을 돌파했다.
그리고 벌어진 세 번째 공작 한타.
TU의 세 선수가 공작 버스트를 하고. 진겨울의 질리얼이 길목을 폭탄으로 장악. 이윤호가 상대 접근을 방해했다.
적 정글러가 억지로 뛰어들면서 아찔한 강타 싸움이 연출되었지만, 알다시피 최도윤은 긴장할수록 더 강해지는 선수.
그는 침착하게 강타 싸움에서 승리했고, TU는 스틸을 위해 뛰어든 상대 정글러도 잡아낸다.
그대로 한타에 승리하며 1세트 끝.
45분이라는 긴 게임에 숨넘어가던 팬들은 간신히 이승으로 돌아왔다.
이어지는 2세트. 질리얼이 밴 되고, 1세트 하재욱의 궁극기 미스를 세 번이나 본 진겨울은 리산드리아를 픽했다.
확실한 이니시로 상대를 묶어 두고 패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은 정확했고, 초중반 아슬아슬한 구도 속에서도 계속해서 진겨울이 지역을 장악하고 상대를 밀어내며 TU는 드래곤을 모두 챙기는 데 성공했다.
2개의 바다 드래곤과 1개의 대지 드래곤으로 무얼 할까 고민하던 TU는.
상대의 정글러가 죽어서 잠시 자리를 비웠다는 점에 착안해 20분이 되자마자 햇공작을 쳤다.
기가 막힌 타이밍을 노린 덕에 사냥은 쉬웠다. 이어지는 2번째 공작도, TU는 기다렸다는 듯이 타이밍을 노려 바로 사냥을 시작했다.
김종하가 장착한 신무기, 칼리스타인이 1세트에도 그랬지만 2세트에서도 오브젝트 사냥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공작의 몸에 창이 쌓이기 시작하니, KC는 마음이 급해졌는지 제대로 진형을 갖추지 못한 채 끌려오기 시작했고.
그 사이로 진겨울의 리산드리아가 파고들어 한타를 열었다. TU의 다른 선수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공작 딜을 멈추고 한타에 참여했고, 기분 좋게 버프까지 챙긴다.
이후 다 같이 미드 억제기를 민 뒤 하재욱을 바텀으로 내려보내고 4/1 스플릿 개시.
공작 버프가 끝나기 직전, 상대가 먼저 최도윤의 뤼신을 물며 벼랑 끝 한타를 시작했지만.
잘 큰 리산드리아가 쿼드라킬을 만들어내며 포효했고. 탑 억제기를 깨며 그대로 게임은 끝이 났다.
1세트와 비교해 훨씬 짧아진 30분의 경기. 팀 전체의 호흡도 상당히 가다듬어진 의미 있는 승리였다.
[ MVP ] Game 2
MID ─ Freyja
MVP Points ─ 1,000 pts
K/D/A ─ 5/1/8
“Freyja!”
“이건 뭐 인정할 수밖에 없는 MVP였죠.”
“1세트 질리얼로, 2세트 리산드리아로 할 수 있는 거 다 했어요. 팀에 구멍이 생기면 거기 꼭 Freyja가 있습니다. 텔레포트를 한 10개씩 싸 들고 다니는 느낌이에요.”
“맞습니다. 지금 MVP 포인트도 1위 아닌가요? 이제 겨우 1라운드 끝났는데 벌써 천 포인트예요.”
진겨울 개인적으로 MVP 포인트 순위 1위를 달리는 것에는 의미가 있었지만, 해설은 이게 TU에게 긍정적인 신호는 아니라는 의견을 덧붙였다.
“TU의 Freyja 의존도가 그만큼 높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바텀 라인에 섰을 때도 그랬지만, 미드에 오니 그 영향이 더 커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래도 어쨌거나. 이겼으니까요.”
“맞습니다. 승리가 제일 중요한 거 아니겠습니까? Plum 선수의 부상으로 크게 흔들릴 수 있었던 TU였어요. 저번 경기 아슬아슬하게 패배하면서 팬들을 걱정시키기도 했잖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승리를 가져오면서 분위기를 반전시켰습니다.”
“그렇습니다. 자, MVP 인터뷰가 준비되어있다고 하네요. Freyja 선수를 만나보시죠!”
*
DB전에 이어 두 번째로 서게 된 단독 MVP 인터뷰.
그러나 전과 달리, 지금은 이도진이 수술 회복으로 인해 병상에 누워있는 상태라 인터뷰하는 무대 주변에 모인 팬들의 표정은 썩 좋지 못했다.
나는 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간결한 첫인사부터 건넸다.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이겼습니다. 와, 이 기세라면 뭐…. 저희 일단 CCK 스프링 우승은 확정이나 마찬가지네요.”
광고 찍으면서 배운 익살맞은 표정 연기도 곁들였다.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 나를 믿어라. 우리 팀, 아직 정상영업 한다… 따위의 의미를 던지고 싶었다.
“정말 자신감 넘치는 인사말, 잘 들었습니다. 사실 저번 경기, Plum 선수의 갑작스러운 부상 소식으로 팬들보다 Freyja 선수가 가장 놀라셨을 것 같아요.”
해야 할 말은 정해져 있었다.
당황했지만 괜찮았다.
나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저 열심히 응원해달라.
팀원들의 부담이 더 클 테니, 그들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봐 달라.
전부터 생각했지만, 말이 인터뷰지. 속마음을 완벽히 드러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지금 그 누구보다 긴장감 속에서 게임을 치르는 게 선수들임에도. 그런 티를 내서는 안 된다.
팬들에게 불안감을 심어주면, 팬덤 전체가 크게 흔들린다.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도 모자랄 판에 누가 잘했네, 누가 못했네. 각자 응원하는 선수를 끼고 팬덤 내 다툼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감정을 숨기고, 차분한 마음으로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미래를 전한다.
우린 할 수 있어.
우린 뭐든지 할 수 있는 천하무적의 팀이야.
따위의 말을 되뇌면서.
“깜짝 놀라긴 했는데, 뭐 선수들 손목 다치는 거야 흔히 있는 일이니까요. 도진 오빠가 경력이 워낙 길기도 하고… 그래서 항상 대비는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바로 깜짝 엔트리를 보여주셨나 싶기도 해요. 한동안 바텀에 서시다가 미드에 오셨는데, 전혀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여주셔서 굉장히 놀랍다는 반응이 많아요. Freyja 선수 본인은 미드에 서니까 어떤 느낌이신가요?”
사실 피지컬 문제만 아니었더라도 항상 서 보고 싶은 라인이었다.
모두의 로망 아닌가. 미드에서 상대 라이너를 찍어누르고, 종횡무진 전 맵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야말로 게임의 중추.
“이제야, 제자리를 찾은 것 같은 느낌입니다.”
팬들이 환호성을 터트린다.
다분히 도발적인 멘트에 자극된 것이다.
“아 물론, 탑 라인이 싫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요. 그냥…. 도진 오빠의 부담감도 느껴지면서, 동시에 이게 미드 라이너가 보는 세상이구나. 뭐 그런 느낌이 들더라고요. 위로 아래로,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맵 전체가 보이잖아요? 중요한 오브젝트도 가까이 있고.”
말 그대로 미드 라이너는 게임의 중심.
TU가 쭉 강할 수 있었던 이유는, Plum과 그를 받쳐주었던 수많은 선수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둘 중 어느 하나만 없었어도 TU 왕조는 성립할 수 없었을 테다.
“중심에 서니까, 팀원들의 마음이 더 잘 느껴지는 것 같아요. 선수들 실수도 더 잘 보이고.”
“아하하! 그런가요?”
“그래도 저희 팀원들 모두 정말 열심히 하고 있거든요. 다 같이 게임을 이기기 위해 진짜 노력하고 있어요. 그 결과가 오늘 승리입니다.”
“아. 멋진 말이네요. 박수 한 번 주실까요 팬 여러분?”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뛴다.
승리한 직후, 관객석의 팬들이 이름을 연호하고 환호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뛴다.
인터뷰석에 서서, 팬들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 보고 있으면, 가슴이 뛴다.
이 압도적인 고양감에,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제가 개인 방송에서 한 말이 있는데요. 그거 장난으로 한 말 아니거든요.”
“설마 그랜드슬램 달성하겠다고 하신 그 말 말씀이신가요?”
“네.”
못 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하고.
못해선 안 된다고도 생각한다.
책임감을 느끼지만, 동시에 자신감도 충만하다.
이길 수 있다. 오늘 해 보니까 느꼈다. 임시로 끼운 하재욱이라는 기어가 원활히 돌아가는 모습을 보니….
앞으로 두 경기만 더 치르고, 유민재가 엔트리에 들어오면.
TU는 완벽해진다. 앞으로 그 어떤 선수가 교체되더라도. 갑자기 누군가의 공백이 생기더라도.
이 팀은 말랑한 퍼즐 조각처럼 언제든 단단히 뭉칠 수 있을 것이다.
“저희 팀 진짜 단단해지고 있거든요. 이제 얼마 안 남았어요. 완성된 팀. 무적의 팀. 절대 안 지는 팀이 뭔지 보여드리겠습니다. 작년 세계대회에서의 한. 올해 반드시 풀겠습니다.”
이제 겨우 1라운드 끝낸 주제에 너무 오만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겠지만.
이게 진겨울이자 혼겨울이다.
자신을, 팀을 객관적으로 완벽히 파악한 내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이다.
“네, 지금까지 오늘 승리한 TU의 Freyja 선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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