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빌 메이든-219화 (219/296)

〈 219화 〉 CCK Night (1)

* * *

【 영혼동화??化 】 【 활성 】

─ 현재 기억 침식도 “진겨울, 74.14%”

─ 특정 추억록 달성으로 인해 '영의 운명', 세 번째 선택지가 드러납니다.

【 동행령(진겨울) ─ 추억록 】

─ 동행령의 잘못된 선택을 바로잡았습니다. [기록 완료]

└ [1회/완료] '영의 운명' 세 번째 선택지 활성화

【 영의 운명 ─ 동행령(진겨울) 】

─ 기억 침식도 100%를 달성하기 전에, 동행령의 운명을 결정하십시오. 미리 결정하지 않는 경우 강제로 1번이 선택됩니다.

1. 동행령을 소멸시킵니다. 기억은 영매에게 남습니다.

2. (조건을 충족하지 않아 자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3. 동행령과 공존합니다. 각자의 기억을 지닙니다. (단, 맞닿은 인연으로 동행령을 몸에 불러 영력을 유지해야 합니다. 최소 1주일에 하루를 권장합니다.)

마침내.

세 번째 선택지가 열렸다.

개인 방송실만큼 조용히 울이와 대화할 수 있는 곳이 또 없어서, 나는 오늘도 커피 한 잔을 사 와서 그녀와 대화를 나눈다.

울이는 소식을 전해 듣고 굉장히 기뻐했다. 선생님과 사과했다는 소식을 전했더니, 혼자 엉엉 울기까지 했지.

사람 잡을 것처럼 날뛰던 아이도, 그래봤자 한 명의 어린 소녀였다는 걸 다시 깨닫는 순간이었다.

— 다행이다.

“그렇지.”

— 그리고… 미안해. 내가 사과했어야 하는데.

“아니야. 네 일이 내 일이고, 내 일이 네 일인데 뭐.”

— 그렇게 말해 줘서 고마워. 이제… 봄이만 찾으면 되겠네.

“응. 그렇네. 걱정 마. 내 느낌인데, 서머 시즌 끝날 때쯤이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지?”

— 정말? 그게… 9월인가, 그쯤이지?

“그래. 얼마 안 남았어. 앞으로 다섯 달.”

— 대박… 진짜. 볼 수 있어? 봄이 지금 어디 있는데?

이제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확신하기 전까지는 말하지 않으려 했던 봄이의 위치를 말이다.

“장재홍 안에.”

— … 말도 안 돼. 진짜?

“응. 최근에 깨달았어.”

— 무슨 그런…. 왜 하필이면 걔 안에 있대?

그게, 사실 나도 너무 궁금하다.

그래서 봄이를 만나게 된다면 꼭 묻고 싶다. 아니면 울이가 묻겠지.

도대체 어쩌다가 장재홍 같은 놈의 손을 잡게 된 거냐고. 왜 겨울이가 아니라, 재홍이었냐고.

‘아귀가 잘 맞았다면, 겨울이 몸속에 진짜 봄이가 들어올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면 나도 죽지 않을 수….’

있었겠지만, 생각하지 말자.

이러면 괜히 봄이 탓을 하는 느낌이잖아.

아무튼.

나와 겨울이는 이제 떨어지지 않고 계속 함께 지낼 수 있게 되었다.

고된 하루하루. 옆에서 재잘거릴 귀여운 여동생 하나 생긴 기분이라 괜히 기분이 좋았다.

— 3번을 선택하시겠습니까? 한번 결정하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 Y/N ]

*

겨울의 전우조로 따라온 이도진은, 방 밖에서 작게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여전히 봄이와 사이는 좋아 보이는구나.’

그러나 무슨 말을 하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방송 소음을 확실히 잡아주는 방음 시설 덕에, 김종하처럼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지 않는 이상에야 말을 하는 줄은 알 수 있어도,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없었던 탓이다.

지금의 진겨울이 겨울일까 아니면 봄이일까.

이야기 나눌 때 봄이 같다는 인상은 받지만, 확실히 말해 준 적이 없으니 도무지 알 수가 있어야지.

만약 봄이라면,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그걸 언제쯤 이야기해줘야 할지 타이밍 잡기가 어려웠다.

‘기회가 된다면… 꼭 말해 줘야지.’

겨울이 덕에 다시 동생과 만날 수 있게 되었으니. 감사 인사를 100번은 해도 모자를 테다.

**

새로운 체제하에서 진행되는 CCK 스프링. 시즌이 끝나고 나서도 그 열기는 이어졌다.

결승전이 있었던 날로부터 열흘 뒤, 4월 23일.

종로 LoC Park에서, CCK 리그 관계자, 구단, 선수들이 한데 모여 처음으로 큰 교류회를 가졌다. 교류회 이름은 CCK Night. 인방 플랫폼인 하데스에서 연말마다 개최하는 하데스 파티와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1부는 LoC Park에서 CCK 스프링을 돌아보는 시간. 간단한 퀴즈 이벤트와 기념촬영이 메인이었다. 진행은 전용문 캐스터와 이수정 아나운서가 맡았다.

그렇게 약 1시간 30분짜리 행사가 끝나고 이어진 2부 만찬 행사.

이날도 겨울은 전우조 때문에 강제로 이도진과 함께 다녔다. 그러나 요즘 리컨의 최대 이슈가 바로 두 사람 아닌가?

꽤 넓은 공간이었는데도, 유독 두 사람 주변만 정체가 심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두 사람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Chocobi 선수!”

이미 한 번 결승전 오프닝 촬영장에서 만났던 전적이 있어서인지, 겨울은 무척 반갑게 Falcon의 미드라이너인 Chocobi와 인사했다.

비록 결승전 무대에서는 완전히 힘으로 짓밟았지만, 그건 냉혹한 승부의 세계니 어쩔 수 없지. 겨울은 멋쩍은 미소를 띤 채 악수했다.

파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맞잡은 손이 몇 개고 듣게 된 이름이 몇 개인지.

그렇게 러닝머신을 뛰며 체력을 길렀는데도, 이런 사교적인 행사의 부담감은 막을 수 없었나 보다.

다른 팀 선수들이나 감코진은 적당히 알아먹겠는데, 이스포츠 협회 관계자나, 마이어트 한국 지사 관계자, 각 팀 사무국 관계자를 내가 어떻게 아냐고.

대회 스폰서 쪽에서 온 대표?

그딴 걸 내가 어떻게 알아.

다 꺼졌으면 좋겠다.

“안녕하세요 진겨울 선수?”

도진이 잠시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또 누군가 겨울의 뒤통수에다 대고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그의 목소리가 꽤나 익숙했다.

“겨울겨울… 보고 싶었어어!!”

누군고 하니, Daddy 선수였다.

“… 어우. 오랜만이에요.”

이전부터 계속 SNS로 친근함을 과시하고, 솔랭 돌릴 때마다 계속 듀오 신청을 하던 놈이, 마침내 기회를 잡았다는 생각에 접근해 온 것이다.

확실히 오늘은 교류회다 보니, 이적 관련 이야기만 하지 않으면 사담은 자유. 눈치 보지 않아도 되니 Daddy도 꽤 홀가분해 보였다.

“왜 나랑 듀오 안 해줘?”

“아. 그… 연습하느라. 하하.”

“그럼 오늘 가능? 가능, 가능?’

“아 어… 오늘은 좀 피곤하지 않을까….”

“그럼 내일은.”

계속 미루기에도 눈치가 보이니, 아무래도 내일쯤 한 번 듀오 해줘야겠다. 서폿 해주면 좋아하려나?

재미없는 포지션이긴 하지만, 저번에도 서포터로 듀오 뛰었으니 뭐. 킬 각 잡아줄 때마다 시끄럽게 떠들던 그 분위기가 재밌어서 나름 즐거웠다.

“내일은, 되겠네요.”

“나이솨아아.”

“진짜 끈질기시네요.”

“나? 엄청 끈질기지. 그래서 눈치 없다는 소리도 많이 들어.”

그걸 알면서 그러냐.

대단한 집념이다 정말.

“근데 내가 이렇게 했으니까 친구 많이 사귀었지. 이렇게라도 안 했으면 다들 도망갔을걸.”

“에이. 설마요.”

“진짜야. 겨울찡이 착하니까 이렇게 듀오도 해주는 거지. 나도 그거 아니까 들이대는 거고.”

그거 완전 악질이잖아 이 자식아.

“아무튼 내일 듀오, 기대할게~?”

“네네. 끝내주는 서포터 기대하세요. 미포 서폿이나 할까.”

“와우. 그거 대박 기대되는데.”

던지겠다는 의미로 한 말인데, 기대감만 키워버린 느낌이다.

이걸 기대해?

Daddy 선수는 웃으면서 자기 팀 선수들이 있는 돌아갔다.

슬쩍 이도진의 사정을 살피면, 여전히 모르는 아저씨들에게 붙잡혀 있다.

누가 CCK 인성왕 아니랄까 봐, 다가오는 사람 하나도 안 거르고 다 맞아주고 있는 모양이다.

저런 놈이 왜 내 앞에서는 항상 바보짓만 하는 거지? 리빙 레전드를 그렇게 봐야 하는 내 입장도 좀 생각해주면 오죽 좋아.

적당히 좀 쉬게 해주고 싶어서 설렁설렁 그의 주위를 맴돌며 데려갈 각을 보는데, 갑자기 코스프레한 두 여자가 불쑥 튀어나왔다.

“겨울 선수!!”

“와 겨울 선수다.”

누군고 하니, 유명한 코스프레 팀 아리아. 쌍둥이 자매가 원작 캐릭터를 99% 재현해 내는 걸로 유명한 분들이었다.

훌륭한 바스트의 두 여성이 들러붙어 나를 끌어안고, 볼을 만지작거리며 웃는다.

이거 어디서 많이 봤던, 상황인데.

왜 갑자기 한여름이 생각날까.

하지만 나는 덩치도 작고 근력이 약한지라, 몸매 관리를 위해 근력운동을 하며 인고의 시간을 보낸 이 두 사람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훌륭한… 미드다….’

푹 꺼진 겨울이와는 다르다.

솔직히 푹 꺼진 건 아니지만, 빈약한 건 맞으니까.

— … 오빠. 그렇게 바보 같은 표정 좀 안 지으면 안 돼?

겨울이가 내 말은 들어도, 생각까진 알아듣지 못해서 다행이었다.

헤실헤실 웃고 있으니 쌍둥이가 내게 동시에 물었다.

“겨울 선수, 혹시 같이 사진 찍을래요?”

좋다고 대답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이런 유명인이랑 또 언제 사진을 찍어보겠어.

“네! 저야 영광이죠!”

애초에 나는 여자와의 교류를 매우 좋아한다.

여름과 가을이 함께 어울려줄 때도 얼마나 즐겁게 놀았는데.

교류회 파티장에 온통 시커먼 남자뿐이라 불편했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두 분이 계시니 마음마저 편해진다.

앞으로도 더 다가와 주시면 좋겠다.

“어머, 우리가 영광이지!”

“맞아맞아. 이리 와요! 가까이!”

두 누님 사이에서 사진을 찍고 이야기도 나눴다. 와! 내가 유명 코스플레이어와 사진도 찍고,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도 나누고!

유명인 좋구나. 나 계속 유명인 할래.

이도진보다 더 유명해지면, 온갖 셀럽들이 먼저 인사하자고 찾아오려나?

‘…는. 꿈이겠구나.’

어차피 게임 하는 사람에게 관심 보이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 아마 누군가 다가온다면, 내 선수 경력이 아니라 뒷배경에 관심을 보여서겠지.

지금이야 다들 인맥 관리 차원에서 인사하니까 이 정도지.

만약 민청하 아줌마에 대한 소문이 더 널리 퍼지면 귀찮은 남자들까지 달려드는 거 아닐까 모르겠다.

“진짜, 겨울 선수 너무 보고 싶었는데.”

“맞아. 선수라 맨날 바빠가지고, 좀처럼 얼굴을 볼 수가 있어야지.”

그 말을 들으니 문득 한여름이 떠올랐다.

“혹시 후배는 안 키우시나요?”

요즘도 여름이는 카톡 안 읽는다고 어마어마한 잔소리를 한다.

놀아주고야 싶지. 하지만 바쁜 프로게이머인데 어떻게 그러냔 말이다. 나는 연습 다 끝났으니까 그냥 놀아? 선수들 보는 눈이 있는데 어떻게 그래.

모바일 게임을 같이 하면서 친구들과 이야기는 나누는데, 여름의 경우는 어떻게든 얼굴을 봐야겠다는 쪽이라 문제다.

기회만 되면, 한여름을 바쁘게 만들려고 머리를 열심히 굴리는데도 답이 나오지 않아 고심하던 차였는데.

이게 웬걸.

생각해보니 호박이 넝쿨 째 굴러들어왔다.

물론 자기들 사업 하시느라 바쁘실 테니 부탁을 들어줄지는 미지수지만.

“어떤 친구?”

그런데 쌍둥이가 내 이야기를 듣더니 눈을 크게 떴다. 뭔가 크게 기대하는 듯한 모양새라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뭐야 반응이 생각보다 뜨거운데…?’

“겨울 선수 친구면 좀 궁금하긴 한데!”

“겨울 선수처럼 엄청 예뻐요? 어때요?”

“어… 어. 그러니까.”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할 일은 해야 하니 급히 주머니의 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한여름이 꼭 가지고 있으라 하여 가지고 있던 코리안 컵 결승전 때의 우리 코스프레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번 결승전에도 코스프레 했다는데, 그 사진까지는 내가 확보를 못 했다. 방송에 잠깐 스쳐간 캡처 화면이 전부라 아쉬울 따름이다.

“어라?”

그런데 이게 웬걸. 두 사람, 이미 한여름을 만난 적이 있었던 모양이다.

“뭐야, 겨울 선수 친구였어요?”

“얘 우리가 메이크업해 줬었는데?”

그게 무슨 소리람.

가을이가 화장 잘해주는 사람 알아봐서 코스프레를 준비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그게 아리아였다고?

“어 네… 제 친구인데…. 그럼 가을이도 아시겠네요?”

갑자기 아리아 멤버 두 사람의 얼굴에 진한 영업용 미소가 번졌다.

뭘까.

두 사람, 왜 갑자기 나를 하늘에서 떨어진 금화처럼 바라보기 시작하는 걸까.

“뭐야~ 친구였구나!”

“대박 대박. 이런 우연이 다 있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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