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3화 〉 CCK 섬머/3주차, vs Falcon (2) ★
* * *
리그 최강팀 간의 매치답게 치열한 전투가 계속 이어졌다.
“와 정말. 용호상박! 그 자쳅니다!”
“한 수를 두면, 무조건 그 수에 맞춰 다음 수를 두고 있어요. 서로 근거 없는 플레이가 하나도 없습니다. 다 이유가 있고 목적이 있어요. 그게 거미줄처럼 계속 이어집니다!”
“이게 TU가 불리한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절대 유리하다고 볼 수가 없는게, 소라가 있으면 일단 Falcon은 게임 극후반을 이미 보장받은 거나 마찬가지란 말이에요.”
“맞습니다. 심지어 아칼린도 아예 못 큰 게 아니에요. 재수 없으면 드레이든 한 방에 터지는 수가 있습니다.”
“그래도 일단 골드는 TU가 많이 앞서고요, 드래곤도 바람, 대지 챙겨 놨고요. 이게 또 딜이 엄청 좋은 조합이라, 공성 굉장히 빠르거든요? 라이스 궁 이용해서 깜짝 공작이라던가 깜짝 돌파 시도할 수 있습니다?”
소라 바텀을 꺼내 들고서도 상체의 힘으로 탑 바텀 스플릿을 이어가는 Falcon을 응징하기 위해, TU는 미드 한점 돌파라는 강수를 두었다.
덕분에 억제기까지 파괴하는 데 성공하지만, 리스크 있는 전략이었던 만큼, 후퇴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손해는 감수해야 했다.
천상계 롤은 턴제 게임이다. 얻은 게 너무 많으면, 반드시 잃는 게 생긴다. 방금도 킬 두 개 내어준 정도면 무난한 교환이었다.
이 턴제 게임에서 이득은 많이 챙기고, 손해는 최소화하는 것이 승리로 향하는 지름길이지만.
맵의 모든 걸 파악하는 선수가 이쪽에도 있고, 저쪽에도 있다.
아무리 좋은 노림수를 던져도 파훼 될 확률이 높고. 상대도 그걸 알기에 서로 사릴 수밖에 없는 결과가 만들어진다.
절정 고수들의 대결이 기나긴 전초전 끝에 단 한 합에 싱겁게 끝나버리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적당한 노림수는 던져 봐야 잘 버티고 활로를 쉽게 뚫어 버리니, 서로 상대를 단번에 제압할 결정적인 한 방을 노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경기가 길어질수록, 웃는 건 Falcon 쪽이다. 이는 TU도 알고 Falcon도 안다.
결정을 내려서 게임을 굳혀야 하는 건 TU고, Falcon은 경계수위를 높여 TU의 변수 플레이를 원천 봉쇄해야 하는 타이밍이었다.
“자 일단 시간은 계속 끌려요.”
“TU가 여기서 굳힐 방법이 있긴 합니다.”
“뭔가요.”
“지금 미드 억제기를 밀어 놓은 덕분에, 탑 쪽 푸쉬 하면서 정글 시야를 아예 다 먹어버렸어요. 이럴 때 갑자기 라이스 궁 타고 깜짝 공작 트라이 가능하거든요?”
“맞아요. 지금 TU가 갑자기 회전해서 공작 먹고 빠지기 딱 좋은 타이밍이긴 합니다. 대지 드래곤 버프도 있고, 잘 큰 드레이든도 있고. 공작 사냥 속도 굉장히 빠를 거거든요?”
“아트로크가 지금도 바텀에서 라인 먹으면서 쭉쭉 크고 있거든요. 저거 데려와야 한단 말이에요. 유리한 입장인 TU는 화나거든요.”
“말씀하신 그 Odin의 성장세가 계속 이어지고 있거든요. 아트로크 잘 키워 놓으면, 나중에 아칼린과 전장을 휩쓸 수 있죠! 소라가 힐 빵빵하게 넣어주거든요!”
“맞습니다! Falcon은 시간을 벌어야 하고, TU는 시간 주면 안 되죠? 뭔가 해야 합니다!”
Falcon과 TU의 경기는 팬들이 보기에 다소 지루할지도 모른다.
제대로 꽝 붙기보다는, 서로 간 보면서 깔끔하게 교환하고 내어줄 건 주고, 얻어갈 건 얻어가는. 클린한 딜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소 평이한 분위기 속에서도 팬들은 긴장감을 늦출 수 없다.
직접 플레이하며 압박감을 느끼는 선수들이 경기 바깥에서 분석하는 해설위원들이 예상하는 그대로 움직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와, 말씀드리는 순간. 라이스 바로 갈 준비 하죠!”
“네. 이런 거! 이런 거 해 줘야죠!”
“아트로크 텔 빼야죠. 좋은 판단이에요 TU!”
“가자—!”
라이스 궁극기를 타고 다섯 챔피언이 한 번에 공작 봉인지 안에 떨어졌다.
제이크, 라이스, 드레이든의 폭딜이 와르르 공작에게 쏟아지니, 때리기 시작한 지 4초도 되지 않아 공작 체력이 절반이다.
“와, 이건 먹었습니다.”
“사냥 속도 진짜 빨라요. 상대 바로 못 오는 거 아니까 맘 놓고 칠 수 있죠!!”
“시야 다 먹어놨거든요. 이러면 TU가 순수하게 이득 보는 거죠!”
[ 빨강 팀이 의회 공작을 처치했습니다! ]
“자 Falcon 어떻게 하나요. 망원 렌즈로 확인은 했는데…!”
“쫓아가나요? 집에 못 가게 시간 끌 생각이죠!”
“아트로크가 오긴 오는데…!”
우르르 뭉쳐서 위쪽으로 빠져나가는 TU를 그냥 둘 수 없었는지, 뤼신이 음파를 맞추고 날아온다.
목표는 드레이든.
그를 먼저 자른다면, Falcon은 전투 지속력으로 충분히 한타 대승을 노려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날아오는 뤼신을 보자마자 번개처럼 슈퍼 플레이를 펼치는 챔피언이 있었으니.
“으아악 뤼신을! 제이크가!”
“제이크가 망치로 뤼신을 쫓아내 버렸어요!! Khal! 반응속도 끝내줍니다!”
“뤼신이 머리를 그냥 떵! 얻어맞았죠 그냥!”
“어 이러면 뤼신만 위험해졌어요? 황금 시계로 시간 벌긴 하는데…. 지금 딜 장난 아니거든요? TU가 마음먹고 챔피언 하나 터트리고 시작하면 암만 전투 유지력이 좋아도 못 이겨요 Falcon이!”
“아칼린이 커버를 위해 장막 깔고 들어오는데…!”
“갈레오 궁도 덮고요!”
어떻게든 뤼신을 지키고 아트로크의 전장 합류 각을 보려던 Falcon의 계획이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 TU Doyoon ▶ FAL Cheetah ]
“아! 뤼신 죽었어요!”
“아칼린도 빠졌어요?!”
“이러면, 이러면 전선 밀립니다. 아트로크도 궁 안 켰어요! 이거 이길 각이 안 나온다고 판단된 모양인데요!”
“어 TU 귀환 포기?”
“전투로 전환했죠! 아칼린, 쫓깁니다!”
“와, 이거. 포위당했습니다. 라이스 그새 집 갔다가 텔 탈 거거든요!!”
뤼신을 살리겠다고 아트로크를 뺀 모든 챔피언의 궁극기가 투자되었는데, 결국 뤼신은 죽고 TU는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왔다.
심해 터널을 지나온 탐켄츠가 퇴로를 틀어막고, 그 옆으로 라이스의 텔레포트가 떨어지려 하니 아칼린은 갈 곳이 없어졌다.
어쩌겠는가. 상대의 실시간 판단이 너무 빠른데.
게다가 뤼신 살리겠다고 사용된 궁극기가 너무 많았다.
죽은 뤼신 궁, 갈레오 궁, 아칼린 궁, 심지어 소라의 궁마저 빠졌다.
아트로크 궁이 남아있긴 하지만, 그 시간 동안 TU가 안 싸워주면 그만이었다. 돌격병에게 타워 철거를 맡기고, 조금 뒤에서 뿅뿅 쏴댈 수도 있는 조합이다.
심지어 그 포킹의 주축이 진겨울이라, 해설진들도 TU의 승리가 코앞에 왔음을 직감한 듯 외쳤다.
“자아 이거 쌍둥이 어떻게 막나요!”
“라인 클리어가 잘 안 돼요. 너무 들어가면 라이스 속박 걸리고, 엘리스 고치 맞고. 그냥 두들겨 맞다 돌아와야 하거든요!!”
“쌍둥이, 쌍둥이 하나 깨지죠!”
“Falcon. 선택해야 합니다!”
두 번째 쌍둥이 타워가 깨지기 직전, 궁지에 몰린 Falcon이 결단을 내린다.
“자 결사항저어언!”
“아트로크가 궁 켜고 선봉장으로 들어가요!!”
“아 근데. 드레이든. 드레이든!”
“드레이든 딜 너무 아파요!”
“아니 TU. 진짜 오랜만에 Falcon에게 세트 패배했거든요? 그래서 긴장하지 않았을까? 내심 그런 생각을 했는데…. 아무도 안 그래요! 무빙 아직도 살아 있잖아요. 아트로크한테만 안 맞아주면 된다. 궁 끝나면 보자!”
“말씀드리는 순간 아트로크 궁극기 끝났고!”
[ 파랑 팀 포탑이 파괴되었습니다! ]
“쌍둥이 또 하나 무너졌어요!!”
TU는 말도 안 되는 한타 집중력으로 소라가 활약할 수 없게끔 한 챔피언, 한 챔피언. 차례차례 우물로 돌려보냈다.
수적 열세로 인해 전투 지속력이 좋아도 버틸 수 없었다.
뤼신이 급발진하지 않고 구도를 완벽히 잡은 상태에서 들어갔다면 어땠을까.
아니면 뤼신을 깔끔히 포기하고 빠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Falcon 선수들에게 남는다.
하지만 결국 Falcon이 공작 앞에서 내린 다소 조급한 판단이 이런 결론을 만들었다.
진겨울은 이미 몇 번의 맞대결을 통해 Falcon의 장단점을 완전히 파악했다. 이 괴물은 이제 장재홍 혼자 힘으론 못 막는다.
그녀는 앞으로도 Falcon의 선수들이 보여주는 모든 스타일을 뇌에 때려 박은 다음 경기에 임할 테지.
선수들 스스로 한정적인 플레이에 고립되지 않아야 한다.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장재홍에게 모든 걸 의지하지 않아야 한다.
그걸 위해서 패배는 아프지만 불가피하다. 선두에 서고 싶어도 그 자리를 TU가 차지하고 있으니 별수 있겠는가.
“넥서스, 넥서스, 넥서스!”
“이야아아앗. 막아야 한다아아!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하지만! 막을 수 없을 것 같죠!!”
“역시 아직은 TU가 조금 더 앞서는 것 같습니다.”
“경기 내내 긴장감이 멈추지 않았지만, 이렇게 TU가 깔끔한 마무리로 이번 경기를 마무리합니다!”
“GG—!!”
**
패배했지만, Falcon의 분위기는 전과는 전혀 달랐다.
“와, 진짜 아깝네. 이길 뻔했는데.”
“역시 소라 바텀이 좀 별로인 거 아냐?”
“아냐. 야 1세트 3세트, 다 충분히 이길 만했어.”
“그렇지. 3세트 마지막에 싸움 조금만 늦게 걸었으면 이겼을 수도 있는데.”
일단 핵심인 장재홍이 전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고. 그것만으로 선수들과 감독들이 전보다 훨씬 편해졌다.
마음이 편해지니 의견 개진이 자유로워지고, 누구 하나 부담 없이 경기에 대한 피드백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승리 욕심은 전보다 강해졌고, 내 팀, 내 플레이에 대한 책임감이 높아졌다.
장재홍도 팀이 이 정도로 극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될 줄은 몰랐으리라.
“괜찮아. 간발의 차이였어. 해석의 문제였으니 내가 다음번엔 핑 타이밍을 좀 더 조절해 볼게.”
“아냐. 아무튼 미안하다. 충분히 이길 수 있었는데.”
“다음 경기 동화생명 전인데, 한 번 더 써보든가. 어떠세요 코치님. 솔직히 스크림 깡패 픽인데.”
장재홍이 봄을 떠올리며 계속 행동에 변화를 주며 분위기를 주도하는 Falcon.
그 가능성은 무궁무진해 보였다.
“그러자. 아니 스크림 때는 그렇게 잘 된 픽인데. 역시 TU라 그런가? 스크림 때 TU도 한 번 졌었잖아?”
장재홍은 머릿속으로 진겨울의 모습을 떠올린다. 상상 속의 겨울이 장재홍을 놀린다. 스크림 한 번 져 줬다고 진짜 그걸 쓰냐, 멍청한 놈.
“저희가 농락당한 걸 수도 있어요. 진겨울 그거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애라. 애초에 저희 전력이 아직도 조금 부족한 건 사실이니까요. TU의 완성도에 못 미쳐요.”
“끙… 그렇지. 아무튼, 다들 파이팅 하자. 다음 라운드엔 진짜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약간의 가능성을 엿보았을 때, 인간은 더욱 강한 집착을 보이게 된다.
지금의 장재홍과 Falcon 선수들이 그렇다.
이길 수 있다, TU를.
제압할 수 있다, 진겨울을.
그게 서머 시즌이 될 수도 있고, 멀리 보면 CWC일 수도 있으니. 정진, 또 정진하는 수밖에.
*
오늘 경기는 꽤 아슬아슬했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선수 모두 동의했다.
세 경기 모두, 갑작스러운 문제가 발생해 급격하게 패색이 짙어졌어도 이상하지 않다.
나와 상대가 같은 그림을 보고, 그 그림에 각자 변수를 한 개씩만 더했는데도 미래가 삽시간에 뒤틀린다.
굉장히 소름 돋는 경험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울아.”
— 응?
아마 앞으로 장재홍을 서머 시즌에 두 번, 월즈에서 또 한 번 만나야 할 텐데.
그 전에 미리 대책을 세워 두지 않으면. 끝에 가서 발목 잡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Council Rivals. 네가 나 대신 출전 좀 해줘 볼래?”
다음 주는 CCK 서머 4주차이지만, 그 다음 주는 5주 차가 아니다.
Council Rivals.
서머 시즌 중에 치러지는 북미유럽 간, 그리고 중국한국 간 펼쳐지는 라이벌 매치.
도대체 시즌 중에 뭐 하는 짓이냐는 욕을 오지게 처먹었지만, 올해까지도 폐지되지 않은 바로 그 대회가 열린다.
— 엥? 내가? 내가 왜?
“시험해 볼 게 있어. 조금 불안해졌거든. 네가 바라는 대로 도진이 트로피 전부 안겨주려면, 네 도움이 필요해.”
장재홍의 의심을 피해야 하기에, 시즌 중에 보여주는 것보단 국제전, 이벤트 대회에서 시험해 보는 것이 최고다.
당연히 도진이의 일이라면 도와주겠지 싶어 겨울이에게 부탁했는데, 이게 웬걸.
— 오빠는? 오빠는 트로피 따는 거 안 중요해?
어째 반응이 이상하다 싶어, 눈치껏 몇 마디 더했다.
“나도 중요하지. 내가 트로피 따려 해도 네 도움이 필요하긴 해. 그게 그거야.”
— … 그렇단 말이지.
울이는 잠깐 침음하더니 이렇게 말해왔다.
— 좋아. 어떻게 하면 되는데? 그냥 게임만 하면 돼?
절대 대회에 출전하지 않으려던 울이 설득 완료.
“내가 전부 알려줄 테니까, 너는 몸에 기억된 대로 플레이하면 돼. 네가 나고. 내가 너니까. 충분히 할 수 있어. 믿어도 되지?”
나와 같은 걸 봐 왔고, 내 플레이를 기억하고, 우리, 진겨울이라는 강력한 플레이어를 구성하는 것이 울이며.
원래 이 몸의 피지컬을 담당하던 사람이 울이니까.
믿을 수 있다.
울이에게 전투를 맡기고, 난 제6의 눈이 되어 지금까지 놓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전쟁 의회의 실오라기 하나까지 싹싹 긁어모을 예정이다.
그렇게 모은 데이터를 통해, 군사(??)로서 작전을 수행할 거다. 전장에 나간 장수들이 절대 패배할 수 없는 승리 플랜을 짜는 거지.
그러면 실시간으로 코치가 한 명 경기장에 들어와 있는 듯한 효과를 낼 수 있다.
다른 팀이 5명으로 플레이할 때. 우리는 여섯 명으로 플레이하며 사기 치는 셈이다.
— 그런데 이거 좀… 양심에 찔릴 것 같은데….
별수 없지.
영혼동화 얻고 싶으시면 이 향초를 피우고 도로에 뛰어드세요, 라고 말할 수는 없잖아?
승부의 세계는 냉정한 법이야.
— 그렇게 말하니까 더 찔리는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