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2화 〉 기다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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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컨 갤러리][개념글][추수기 몸값 최신버전 떴다]
중국쪽 믿을만한 에이전시 썰
15억
[전체 댓글 751개]
— ㅇㅇ(39.7) : 지랄났네
— ㅇㅇ(104.224) : 15억이 뉘집 개 이름이냐?
— ㅇㅇ : 찌라시는 찌라시로
— ㅇㅇ : 진짜 요즘은 뭐 갖다붙이면 다 말이 되는 줄 아나보네
— ㅇㅇ(151.204) : 어차피 오피셜로 공개될 리가 없는데 추측해서 뭐함? ㅋㅋ
— ㅇㅇ : 이대로 가면 내년엔 20억 그냥 넘겠노…
— ㅇㅇ(1.224) : 이도진 은퇴하는 거 생각하면 더 불러도 되지 않나?
— ㅇㅇ : 추수기가 돈보고 움직일 거 같진 않은데, TU도 양심상 너무 낮게는 못부르겠네 ㅋㅋ
— ㅇㅇ : 광고 찍고 인방 제일 많이 하고 이도진 대신 미드로 포변까지 했는데 저정도는 줘야지 ㅋㅋ
— ㅇㅇ : 솔직히 추수기가 올해 한 거 생각하면 첫 계약금이 너무 싸다고 느껴질 정도긴 함 ㅋㅋ
— ㅇㅇ(182.11) : 인센티브 엄청 줬을거 같은데. 광고료 일부만 떼어줘도 몇억은 됐겠다
└ ㅇㅇ : ㄹㅇ 광고 찍은게 한둘이어야지
스토브리그 소식이 속속들이 들려오는 동안, CCK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올스타전 투표가 함께 이루어졌다.
예상치 못한 투표지가 나한테 쏟아졌고, 덕분에 3위 이하 순위 싸움이 아주 치열해졌다.
Onair 강등 확정된 마당에 진겨울과 같이 게임 하고 싶어 안달 나 있는 Daddy를 올스타전에 보내줘야 한다는 쪽과 난놈 유민재를 꼭 올스타전에 보내봐야 한다는 TU 맘들의 첨예한 대립이 볼만했다.
그러나 어째 둘이 싸우다가 결국 둘 다 떨어질 것 같은 건 나뿐인가. 두 사람 말고도 쟁쟁한 후보가 한둘이어야지.
“겨울겨울. 우리 만나러 와서도 폰 들여다보기야?”
“어, 뭐야. 벌써 왔어?”
“벌써는 무슨!”
“아니 너 화장실 가면 맨날 한참 걸리잖아.”
“한참 아니거든? 여자 평균이거든?”
지금 내가 친구들과 함께 와 있는 곳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카페.
손님이 우리뿐이라 거의 전세 낸 듯한 기분으로 음료를 홀짝이고 있다.
가게 주인이 키우는 고양이를 무릎에 올려놓은 채로, 가을이가 후후 웃는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누구 생각이 안 날 수가 없다.
편의점에 눌러앉은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는데, 그 녀석이 유독 봄이를 잘 따랐기 때문이다.
“아 겨울겨우울! 놀아줘! 심심해! 놀자! 심심해! 으아아아악!”
“넌 애가, 왜 갈수록 지랄발광이 심해지냐.”
“와. 친구한테 지랄발광? 진짜 너무하네?”
“아, 아악. 악.”
커다란 가슴과 묵직한 헤드락이 내 머리를 조여 온다.
살려줘, 추수기 부서진다.
간신히 여름의 구속으로부터 빠져나온 뒤 외쳤다.
“그래서 너. 요즘 아리아 사무실 출석은 하고 있어?”
“가고 있거든?”
“왜. 일거리가 들어왔어?”
“하기 싫은데 자꾸 여기저기서 부른다잖아…. 어떡해 가야지.”
여름이는 툴툴거리며 입을 빼쭉 내밀었다.
정말 누굴 닮아 저렇게 일하는 걸 싫어하는지.
누가 보면 전생에 너무 열심히 살아서 번아웃 온 사람인 줄 알겠어.
“찾아주는 사람 있는 걸 다행으로 알아. 안 그랬으면 평생 내 연봉이나 축내는 귀신 됐을 테니까.”
그 말에 여름이가 활짝 웃는다.
“와, 그러면 나 겨울이가 평생 먹여 살려주는 거야? 대박 좋은데?”
“내가 언제 그래도 된다고 했지?”
“아 왜! 왜! 나같이 예쁜 애가 어? 옆에서 이렇게 앙탈도 부려주고, 계속 놀아주는데. 싫어? 그게 싫어?”
“프로게이머한테 가슴 큰 여친은 죄악이라는 거 몰라?”
“누가 그래! 그리고 내가 왜 여친이야! 친구지!”
“가슴 큰 친구도 죄악인 걸로 하자.”
“크아악!”
여름이는 도저히 못 참겠는지 이제 아예 내 어깨를 붙들고 앞뒤로 마구 흔들어댄다.
힘도 좋아.
머리가 마치 용수철 장난감처럼 앞뒤로 마구 꺾여대고 있다.
“한여름. 적당히 해. 겨울이 그러다 목디스크 오면 네가 책임질 거야?”
“…. 그건 안 되지.”
“착하지.”
가을이는 여전히 여름이를 완벽하게 컨트롤해낸다.
도대체 어떻게 저렇게 사람을 잘 조련… 다루는지 신기할 정도다.
“겨울이가 목디스크 걸리면? 내가 함께 누릴 연봉이 사라지고? 그러면 평생 놀고먹을 수가 없잖아?”
“생각하는 것 하곤. 그렇게 내가 먹여 살려주길 바라? 그럼 싹싹 빌어보시던가?”
“싹싹 비는 대신에 머리를 꽉꽉 졸라주마.”
“야! 그게 부탁하는 사람 자세야?”
아하하하!
까랑까랑한 웃음소리가 한적한 카페 안에 울려 퍼진다.
성격은 제멋대로에 남 의견은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가을이처럼 차분하면 좋겠다 싶다가도, 고분고분해지면 한여름이 아니라는 생각에 마냥 지켜보게 된다.
겨울이가 남긴 기억 때문인지 여름과의 실랑이는 내게 묘한 익숙함을 남긴다.
… 아니지 잠깐, 이거 설마 겨울이 기억 때문이 아닌가?
딸랑딸랑.
가게 유리문에 달려있던 풍경 소리가 고즈넉이 울려 퍼진다.
나타난 사람의 얼굴을 보자마자 멍했던 정신이 퍼뜩 들었다.
“… 어! 저 사람! 인성 쓰레기!!”
“한여름…. 사람 앞에서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하지만 쓰레기 맞잖아! 어! 이도진 은퇴하라고 고사 지내고, 겨울이 귀찮게 하고! 어!”
한여름의 손가락이 출입문을 향해 연신 삿대질을 퍼붓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웃음이 터졌다.
“아하… 아하하하! 으하하하하핳!”
배꼽 빠져라 웃고 있으니 어느새 다가온 장재홍이 내 귀에 대고 속삭인다.
… 속삭이려는데, 여름이가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야! 저리 가! 누구 맘대로 겨울이한테 들러붙으래?!”
“한여름. 좀 진정해!”
“야 차가을. 넌 지금 누구 편을 드는 거야? 저 사람 당장 쫓아내야지!”
“쫓아내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잖아….”
떨떠름한 표정으로 한여름이 차가을에게 끌려가는 걸 끝까지 지켜본 장재홍이 내게 속삭였다.
“여기 있었구나.”
나는 히죽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눈치 하난 빠르네.”
“…. 왠지, 네 주변에 나타날 것 같더라고.”
“너 설마… 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던 건 아니지?”
“감시? 좀 하긴 했지. 아무리 생각해도 두 사람이 내 주변에 나타날 것 같진 않더라고.”
불법적인 행위를 아주 당당하게도 말한다.
갑자기 미투 운동이 마려워지는 건 왜인지.
“언제 눈치챘어?”
장재홍의 질문에, 나는 나지막이 대답했다.
“오늘.”
“…. 마침 잘됐네. 지금 당장 두 사람에게 전생을 일깨워주면—.”
“아니. 그러지 마.”
“뭐? 왜?”
그의 목울대를 가볍게 때려서 목소리가 높아지려는 걸 차단했다.
캘록캘록 마른기침하던 그가 볼멘소리한다.
“쿨럭, 쿨럭… 무슨 짓이야…!”
“그냥 이대로 두자.”
“뭐? 왜? 이러려고 환생시킨 건 아니잖아?!”
“이대로 두는 게 좋을 것 같아. 당분간은.”
나의 시선은 이쪽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짓는 두 사람에게 향한다.
“지금, 둘 다 행복해 보이거든.”
둘 다 자기 자리를 잘 찾아갔다.
가을과 어울리는 가을이.
여름과 어울리는 여름이.
이것만으로도 나름의 행복한 결말이 아닐까.
“저 둘이 어릴 적 봄이나 겨울이와 얽힌 시간도 꽤 길어서, 괜히 과거를 깨웠다가 뭔가 꼬여버리기라도 하면 곤란하지 않을까 싶은데.”
“….”
장재홍도 그건 부정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알아서 뒷조사를 다 끝냈을 거라 부연 설명도 필요 없다.
못난 인간의 불타는 시선이 따가웠는지 가을이는 당황한 듯 시선을 피한다.
“야야. 가을이 얼굴에 구멍 나겠다.”
여름이가 그걸 보고 버럭 성을 낸다.
“야! 이젠 겨울이로도 모자라서 가을이까지 괴롭히려는 거야? 너 내가 어? 리갤에 유동 분신술 써서 안 좋은 소문 내줄 줄 알아! 어!!”
“진정해 한여름. 그런 거 아니니까.”
“으아아악. 왜 다 못 하게 하는데!”
과거의 누구를 떠올리게 하는 요란한 성격.
진지한 분위기인데도 웃음을 참을 수가 없어서, 입을 가린 채 한참이나 끅끅거려야 했다.
서글픈 표정이었던 장재홍도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대충 알겠지? 애들 전생을 굳이 깨울 필요 없는 이유.”
그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선은 여전히 차가을에게 향해 있다.
나는 장재홍의 의도가 뭐든, 둘의 전생만 일깨우는 게 아니면 상관없다는 투로 이야기했다.
“가을이랑 친하게 지내는 거 나는 방해할 생각 없으니까. 알아서 잘해봐. 내 친구들이라 다 챙기고 싶긴 한데. 사실 프로 생활하는 이상 한계가 있으니까.”
장난감 사달라고 떼쓰는 어린아이를 진정시키듯, 가을이는 여름이를 끌어안고 살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뭐 프로 생활 안 해?”
두 사람을 멍하니 보고 있다가, 장재홍의 말에 뒤늦게 반응했다.
“엥? 프로 계속하게? 이렇게 바로 찾아버려서 나는 네가 프로 관둔다고 할 줄 알았는데.”
장재홍이 리컨 프로게이머로 계속 남는 이유는 나와 대립 구도를 형성해 인기를 끌어모으고, 그를 통해 봄과 겨울을 찾으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미 가까운 곳에 있었고, 우리는 동시에 그 사실을 깨달았다.
당연히 장재홍은 이제 후계자 수업받으러 가고, 나만 남아서 홀로 쓸쓸히 리컨을 하게 될 줄 알았더니 이게 웬걸.
“이미지 관리 해야 해.”
“…?”
“이미 미운털은 미운털대로 박혔는데 어떡해 그럼.”
“역시 전생의 기억을 돌려줘야 하나…. 그러면 좀 낫지 않을까?”
“아니.”
장재홍은 한숨 쉬며 고개를 푹 숙인다.
“형이 말한 대로, 괜한 기억의 혼선만 올 것 같아. 나는 그래도 좀 거리가 있는 곳에서 환생할 줄 알았거든. 이렇게 깊이 얽힌 채로 환생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
동감이다.
아무리 우리의 인연이 질기고 단단하다 해도, 최소 다소의 고난은 겪은 뒤 다시 만나게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이게 웬걸.
한여름과 차가을은 처음부터 진겨울 곁에 딱 달라붙어 있었다.
다시 일어난 겨울과 함께 여러 가지 일들을 해내고.
함께 겨울 군단의 미래를 걱정했으며.
나아가서는, 겨울이를 위해 몸소 코스프레까지 하는 투혼을 보이기도 했다.
“그래도… 이번 생은 행복한 것 같아 보기 좋네.”
참으로 장재홍답지 않은, 부드럽고 따뜻한 미소였다.
이어지는 말은 사뭇 섬찟했지만.
“죽음이란 놈이 다시는 봄이를 괴롭힐 수 없도록, 내가 단단히 지킬 거야. 절대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그 생각에는 지독히 공감하는 바였다.
“당연하지. 절대 그런 일 없게 해야지.”
여름이가 가을이로 인해 슬퍼하는 모습을 본다라.
그것만큼 끔찍한 일이 또 있을까.
“한 번으로 족해. 한 번으로….”
그 말에 긍정의 표시를 하듯, 장재홍은 고개를 끄덕이곤 몸을 돌렸다.
“올스타전 잘 다녀와라. 나는 한국에서 가을이 꼬시고 있을 테니까.”
“괜찮겠어? 네가 근처에서 얼쩡거리기만 해도 여름이가 경비견처럼 으르렁거릴 것 같은데.”
“정 걱정되면 여름이 데려가던가.”
“어… 그래도 되나?”
“처음이라서 몰랐나 본데, 올스타전은 원래 원하는 사람 한 명 동행 가능해. 도와줄 거면 확실히 도와줘. 간다.”
항상 질척이던 놈이 어쩌다 저렇게 어른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시간이 약이었던 건지.
아니면, 봄이를 받아들인 덕분에 한 단계 성장한 건지.
어느 쪽이든, 장재홍의 변화는 지켜보는 사람에게 긍정적일 수밖에 없다.
“저거 뭐야 진짜? 와서 겨울이랑 속닥거리기나 하고. 헉. 설마 그건가? 겨울겨울. 너 설마 장재홍이랑 그렇고 그런—.”
“죽고 싶어?”
“아아, 아아앙. 아파….”
번개처럼 날아들어 여름이의 관자놀이를 짓누르면서, 그동안 게임 연습한다고 그녀에게 소원했던 나 자신을 반성한다.
“가을아. 나 여름이 이번 올스타전 때 좀 데리고 가도 돼?”
“여름이?”
“나? 난 왜?!”
“너 데려가서 일 좀 시키게. 가서 코스프레 좀 해라.”
“아 왜에. 싫어어어어. 싫어 싫어. 싫어싫어싫어잉.”
“나는 일하러 가는데, 너는 놀기만 하려고?”
“그냥 안 데려가면 되잖아….”
가을이에게 지원 사격해달라고 슬쩍 윙크하니, 그녀가 후후 웃으며 여름의 등을 떠민다.
“한여름. 너 해외여행 가고 싶다며.”
“응.”
“그럼 가.”
“… 응?”
“해외여행이잖아? 잔소리하는 나 없이 겨울이랑 실컷 놀 기회고.”
여름이는 혼자 뭔갈 곰곰이 생각하더니, 결론을 내린 듯 손뼉을 쳤다.
“그렇구나! 아니 그러면 가을이 너는! 너만 따돌림당하잖아!”
“나 어차피 대학 입시 준비 때문에 못 가. 그때 면접 있을걸.”
“아…. 그럼 어쩔 수 없지!”
참으로 단순해서 좋다.
… 나를 좋아했다던 그녀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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