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보니 성녀 같다-3화 (3/80)

〈 3화 〉 수녀원 적응 (2)

* * *

“에일라, 무리하는 것 아니야? 괜찮겠어?”

“됐어요. 내가 스스로 정한 일이에요.”

세이사는 아직 상처가 제대로 아물지도 않았는데도 기도에 참석하겠다는 내 말에 무리하는 것 아니냐며 걱정했지만,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어차피 미룬다고 될 일이 아니니까.’

강약약강인 에일라의 입 때문에 걱정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할 수 없는 사실을 몹시 유감스럽게 여기며, 나는 예배당을 향하는 길을 세이사와 나란히 걸었다.

‘으음… 아무리 내가 에일라 넬런이 되면서 여자가 되긴 했다지만 역시 부담스러운데….’

세이사는 지금 내 바로 옆에서 내 왼팔에 팔짱을 끼고 무엇이 그리 좋은지 콧노래까지 부르고 있었다.

서로의 몸이 밀착되는 자세다 보니 왼팔로 부드럽고 따스한 세이사의 체온이 느껴졌고, 나는 그 대담한 스킨십에 부담감을 느꼈다.

“…에일라 아니야?”

“자해를 했다던데, 다시 기도에 나오나 봐?”

“리피샤 수녀원장님이 강제로 참여하게 했겠지. 조만간 또 안 나올걸?”

하지만 어떻게 세이사를 떼어놓아야 할까 고민하며 뜨거워졌던 내 머릿속은 또다시 두런두런 들려오는 에일라를 향한 뒷담화를 듣자, 빠르게 식었다.

‘뭐, 저런 뒷담화가 나올 것쯤은 예상했어.’

내가 에일라의 몸으로 들어오기 전부터 이미 에일라의 평판은 더 나빠질 구석이 없을 정도로 최악이었다.

어차피 이곳은 수습 수녀라고는 해도 현대로 치면 중학생 정도의 나이에 가문에서 버림받거나 정치적 이유로 여기로 보내진 영애가 대부분이다.

남의 험담으로 저들끼리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쯤이야 특별할 것도 없었다. 오히려 나이에 맞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겠지.

“에일라….”

하지만 묵묵히 뒷담화 아닌 뒷담화를 무시하며 걸어가는 내 모습이 세이사의 눈에는 차마 못 볼 꼴이었던 모양이었는지, 세이사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괜찮아요. 저런 근거 없는 헛소문은 알아서 잦아들게 되어있으니까요.”

‘역시 세이사야. 이 세상에 천사가 있다면 아마 세이사가 아닐까?’

나는 괜찮다는 말을 굳이 빙 돌려서 말하는 에일라어(?)로 대답하며, 에일라는 어째서 이렇게 착한 아이를 모질게 대했던 것인지 고민했다.

‘자존심 때문이려나.’

이전과는 달리 가문에서 버림받아 의지할 곳을 잃은 에일라로서는 참으로 막막하고 비참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세이사처럼 무한한 호의를 보여주는 사람은 쉽게 만나기 어려울 텐데. 항상 다른 이의 우러름을 받는 것이 당연했던 귀족 영애의 한계였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에일라의 행동을 정당화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무리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지만, 에일라가 세이사에게 했던 행동은 분명 배은망덕한 행동이었고, 세이사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그릇된 행동이었다.

‘이제라도 잘 대해줘야지. 어차피 지금 수녀원 안에서 내 편은 세이사 말고는 없다시피 하니까.’

다시금 세이사를 잘 대해주자는 다짐을 하며 뒷담화를 하던 수습 수녀들을 스쳐 지나가자, 수녀원의 건물 중에서도 가장 웅장한 크기를 자랑하는 성당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후우. 긴장하지 말자. 나는 지금 평범하게 성당에 들어가는 것일 뿐이야.’

수녀원의 중앙에 우뚝 선, 종탑이 딸린 성당은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범한 죄를 참회하며 경건한 마음을 품게 될 것만 같은 신성함이 감돌고 있었다.

‘성당에 들어서자마자 퇴마 당하지는 않는구나.’

이곳은 실제로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신으로부터 내려받는 권능이 존재하는 판타지 속 세상이었다.

성당에 발을 들이는 것으로 에일라의 몸에 빙의하고 있던 내 영혼이 쫓겨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잠깐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후우.”

다행인지 불행인지, 성당 안으로 발을 들인 뒤에도 여전히 나는 여전히 에일라의 몸이었다.

그 사실을 확인한 나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설령 에일라의 몸에서 빠져나온다고 한들 다시 원래의 몸으로 돌아간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으니 말이다.

“오랜만에 기도를 드리려 하니까 긴장한 모양이구나?”

세이사는 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을 오랜만에 기도에 참석하는 것이 부담되어 한숨을 내쉰 것으로 착각한 모양이었다.

“아뇨. 그저…. 낯서네요. 모든 게.”

사실 세이사의 말도 틀리지는 않았다.

성당에 다니시던 부모님 덕에 책장의 한구석을 차지하던 성경 정도야 어렸을 적에 흥미본위로 몇 번 뒤적거리며 내용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막상 기억을 되살려보자니 미사나 예배, 기도에 관한 기억은 많지 않았다.

당연히 기도를 올리는 과정도 모르고, 방법을 모르니 나도 모르게 실수를 저지를 수도 있었다.

당연히 긴장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괜찮아! 에일라 말고도 기도와 미사를 어려워하는 자매들은 많은걸!”

“…그건 위로가 아니에요. 세이사. 머리가 나쁜 건가요?”

뭐, 독실한 신앙심을 가진 것도 아닌 안하무인의 귀족 영애들을 모아다 수용하는 일종의 수용소나 다름없는 수녀원이니 미사가 순탄하게 진행되는 일은 드물 터였다.

하지만 에일라는 이미 지은 죄가 있는 탓에 이번 미사에서 실수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었다.

‘분명 리피샤 수녀원장이 지켜보고 있을 거란 말이지.’

이미 리피샤 수녀원장에게 찍혀있던 것을 성 베르기스를 들먹이며 설득해서 새로운 기회를 막 얻은 차였다.

그런데 미사에서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불량한 태도를 보인다? 그러면 정말로 에일라의 인생은 끝장난다. 평생을 이 수녀원에서 썩으며 보내야겠지.

‘그럴 수는 없지. 나로서는 사양이야.’

종신서원을 하고 평생을 외롭게 수녀원 안에서 갇혀 지내는 것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수를 쓰더라도 교단에서 촉망받는 인재로 뽑혀 수녀원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성녀 후보가 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에일라를 벼르고 있는 원수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교단이라는 뒷배를 둘 수 있고, 수녀원에 평생을 묶여 살아야 하는 수녀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조건을 동시에 만족하는 선택지는 그것 말고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아, 본당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성호를 긋고 여기서 손을 담가야 해. 그리고 이렇게 기도를 올리면 돼.”

세이사는 내 옷소매를 잡아끌며 본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양옆에 배치된 조그마한 물그릇 앞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세이사는 곧바로 물그릇 앞에서 성호를 긋더니 두 손을 물그릇 안에 살짝 담갔다가 중얼중얼 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길더스텐님, 이 성수로 저희의 죄를 씻어 주시고, 다가오는 악의 유혹에서 벗어나게 해 주소서.”

나 역시 세이사가 했던 행동을 그대로 답습하며 중얼중얼 기도문을 외웠고, 그러는 와중에도 엉뚱한 생각을 품었다.

‘그럼 성당을 들어오는 사람은 다 여기에 손을 담갔다는 건데…. 으, 나중에 다시 손 씻어야겠다.’

수많은 사람의 손을 거친 물에 손을 담갔다는 생각에 묘한 찝찝함이 올라왔다.

역시 나는 독실한 신앙인은 되지 못할 모양이었다. 신앙심이 깊으면 이런 불경한 생각도 하지 않았을 텐데.

“자, 그럼 들어가자.”

먼저 기도를 마치고 내 손을 잡아끄는 세이사의 손길에 나는 잠깐 품었던 불경한 상상에서 벗어나 본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엄청나네요.”

에일라의 기억에도 분명 남아있는 장소였지만 나로서는 처음 접하는 본당의 모습에 감탄사를 흘릴 수밖에 없었다.

널찍한 본당의 모습은 물론이고, 아침 햇살을 받아 형형색색의 빛을 뽐내는 스테인드글라스의 모습, 본당의 한구석에 위치하여 존재감을 뽐내는 거대한 크기의 파이프오르간까지.

그 모든 것이 어우러져 종교와는 거리가 멀었던 나조차도 감탄하게 만드는 성스러움을 자아내고 있었다.

“자,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감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리피샤 수녀원장이 얼마 안가 본당으로 들어오는 것을 시작으로, 아침기도가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

정적.

리피샤 수녀원장이 기도를 시작한다는 말을 하는 것과 동시에 본당에 흐르는 것은 정적뿐이었다.

본당에 모인 수습 수녀와 정식 수녀 모두가 두 손을 모으고 두 눈을 감은 채 저마다 기도를 올리는 그 모습에 나 역시 눈치껏 기도하는 자세를 취했다.

‘익숙해져야해. 그렇지 않으면 나는 그저 이곳에서 평생을 보내는 처지가 되어버리겠지.’

1시간이 지나도록 계속되는 침묵기도에 인내심이 바닥날 것 같았지만, 이것도 견뎌내지 못한다면 더 이상 미래가 없다는 절박함이 인내심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계속 눈을 감고 있었더니 솔솔 몰려오는 잠기운에 내가 고개를 떨어뜨리려고 하던 즈음, 기나긴 침묵을 깨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이것으로 아침기도를 마치겠습니다.”

리피샤 수녀원장의 말과 동시에 기도를 올리던 자세를 하던 모든 수녀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물론 그 중에는 정말로 기도하는 척하며 잠에 빠졌었는지 행동이 굼뜬 이들이 드문드문 섞여있었고, 리피샤 수녀원장의 시선은 그런 이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포착하고 있었다.

‘진짜 무섭네. 에일라가 괜히 무서워한 게 아니었어.’

괜히 더 오랫동안 훔쳐봤다가는 시선이 마주칠 위험이 있었기에 나는 시선을 아래로 늘어뜨렸다.

“…게시판에 이번 주의 일과표를 게시해 두었습니다. 자매들 모두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비로소 모든 수녀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리피샤 수녀원장은 그 말만을 남기고 조용히 본당을 벗어났다.

“아, 드디어 끝났네.”

“점심이랑 저녁 때 또 해야 하잖아.”

그리고 그것을 신호로 본당에 모여 있던 수녀들은 저마다 친한 이들과 어울려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 대화의 대부분은 기나긴 침묵기도에 대한 불평과 푸념이었다.

“에일라. 어서 가자.”

“다음엔 어디로 가는 건가요?”

멍하니 서있던 내게도 세이사가 다가와서 소매를 잡아당겼고, 나는 다음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를 물었다.

“먼저 수녀원장님이 말씀하신 일과표를 확인하고 아침을 먹으러 가야지.”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렸던 아침식사시간인 모양이었다.

‘여태껏 먹은 것이라고는 세이사가 가져온 묽은 죽밖에 없었으니까.’

세이사의 입장에서는 환자인 내가 빠르게 기운을 차릴 수 있도록 소화가 잘 되는 묽은 죽을 내왔겠지만, 여태껏 온갖 맵고 짜고 단 음식을 섭취해왔던 내 입맛에는 너무나도 심심하고 맛이 없었다.

‘진짜 살기 위해 먹는 수준이었지.’

그 끔찍할 정도로 맛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던 허연 죽을 떠올리니 절로 몸서리가 쳐졌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는 끝이다.

‘일반식이면 적어도 빵 정도는 나오겠지.’

물론 제과점에서 파는 달달하고 부드러운 빵이 아니라 식사용의 시큼하고 거칠기 그지없는 빵이 나오겠지만, 적어도 맛이 아예 실종되어버린 오트밀보다는 나을 터였다.

“에일라! 어서 가자!”

“네. 그러죠.”

아침식사에 대한 기대로 조금은 기분이 좋아진 탓인지, 에일라의 입 또한 자꾸 옆에서 소매를 잡아당기는 세이사에게 독설을 날리지 않았다.

좋아! 이 기세를 이어서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열심히 일하자!

“…….”

하지만 그렇게 한껏 즐거워졌던 기분도 일과표를 확인한 순간, 간밤에 잠깐 내렸다 녹아버린 눈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어…힘내?”

당황한 탓에 멍한 표정으로 일과표를 바라보는 나와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내게 격려의 말을 건네는 세이사.

이번 주의 일과표에서 발견한 내 담당일과는 축사청소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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