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보니 성녀 같다-7화 (7/80)

〈 7화 〉 누군가 오른뺨을 치거든 (3)

* * *

학생이라는 죄로, 학교라는 교도소에서 교실이라는 감옥에 갇혀, 출석부라는 죄수명단에 올라, 교복이란 죄수복을 입고, 공부란 벌을 받고, 졸업이란 석방을 기다린다.

과거에 제법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렸고, 지금 와서는 오글거리기만 하는 중2병의 헛소리로 취급되는 말이지만, 지금 내 상황을 설명하기엔 이만큼이나 잘 어울리는 표현은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수녀원 생활은 교도소의 생활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으니 말이다.

해가 뜨는 새벽녘에 일어나 하루의 첫 기도를 올리고, 아침 식사를 마치면 곧바로 오전 일과로 자신에게 배정된 노동을 수행한다.

수녀원 중앙의 종탑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을 신호로 낮 기도를 위해 다시 성당으로 가 기도를 올린 뒤, 점심 식사를 마치면 다시 오후 일과로 노동, 혹은 수녀가 되기 위한 교리 공부가 시작된다.

또다시 종탑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지면 그날의 마지막 기도 시간이 찾아온다. 이쯤 되면 눈치챘겠지만, 당연히 기도가 끝나면 저녁 식사 시간이며, 그 이후에는 모자란 교리를 복습하거나 묵상을 하는 시간을 가지며, 이후에야 조금의 숨돌리기를 할 수 있는 짧은 자유시간이 주어진다.

"이래서야 영 진척이 없겠어요."

요컨대, 따로 뽑아낼 시간이 너무나도 없다는 말이다. 티아 이글라스와 니어 파른헴, 브렌다 발렌의 뒤를 캐기에는 너무나도 조건이 좋지 않았다.

"잠시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요?"

"미안! 나는 일이 바빠서!"

게다가 정보를 얻기 위해 다른 수습 수녀에게 말을 걸어도, 그들은 에일라를 보면 피하는 것이 이미 조건반사로 각인이 되어버렸는지, 내가 말을 건네기 무섭게 화들짝 놀라며 도망치는 일만 빈번하게 벌어질 뿐이었다.

'이래서야 세이사가 가져오는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솔직히 말해서 지금까지 내가 해 온 일이라고는,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지내면서 세이사가 가져오는 정보를 어미 새가 물어온 먹이를 받아먹는 아기 새처럼 받아먹기만 하는 것 말고는 없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세이사에게 의존할 수는 없어.'

세이사가 가져오는 정보는 이미 여러 사람을 거치며 열화한 정보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렇게 영양가가 있는 정보도 아니었기에 대응책을 세우는 것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에일라, 무슨 생각해?"

게다가 따지고 보면, 이 일은 에일라의 악행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일이었다.

이번 일에 관련이 없는 사람인 세이사를 끌어들여도 되는지 망설임이 없을 수가 없었다.

영문도 모르고 에일라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된 내게, 아무런 속내 없이 순수한 도움의 손길을 건넨 그녀에게 큰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고, 더 부담을 지우고 싶지 않았으니까.

"이번 담당 일과가 축사 청소가 아니길 바라고 있어요."

"아하하…. 그때 일은 티아네가 좀 심했지."

내 실없는 핑계에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세이사.

그 모습을 보며 '그래. 세이사는 이렇게 항상 웃는 얼굴로 있으면 된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내게 세이사는 의외의 제안을 건넸다.

"아, 그러고 보니 조금 있으면 시네티 마을에서 봄맞이 축제가 열린다고 들었는데, 그때 같이 나가지 않을래?"

"축제…말인가요? 하지만 수습 수녀는 수녀원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을 텐데요?"

정식 수녀가 된다면 수녀원의 운영을 위해서 인근의 마을이나 도시를 방문하는 것이 허용되지만, 수녀원 안에서 정식 수녀가 되기위한 과정을 밟는 수습 수녀에게 그런 것이 허용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응? 아, 에일라는 여기에 온 지 이제 한 달이 넘었으니 모르겠구나. 시네티 마을은 우리 수녀원에서 만든 물건을 가장 많이 사주는 마을이라서 봄맞이 축제가 열리면 우리 수녀원에서 봉사활동을 겸해 축제에 도움을 주러 가거든."

세이사의 말에 따르면, 시네티 마을과 수녀원은 일종의 자매결연을 맺은 모양이었다.

수녀원이나 수도원이 제아무리 외부와 단절되어 자급자족하는 곳이라지만,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곳은 아니다.

키니아 제국의 각지에 세워진, 노동을 미덕으로 삼는 수도원과 수녀원은 수도자와 수녀라는 공짜 인력을 이용해서 여러 다양한 물자를 생산하는 공장이나 다름없었고, 그 물자를 키니아 제국 각지에 판매할 상단과의 계약이나 정기적으로 물자를 납품할 마을과의 계약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모든 수습 수녀가 시네티 마을에 봉사활동을 갈 수 있을 수는 없을 텐데요."

"괜찮아, 에일라도 요새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으니 이번 기회에 시네티 마을에 보내도 좋지 않겠냐고 이야기하는 수녀님들과 리피샤 수녀원장님의 이야기를 들었거든."

"…그런가요."

솔직히 에일라의 평판이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수녀님들과 리피샤 수녀원장에게는 에일라가 변한 모습이 조금씩 보였던 모양이다.

에일라의 이미지를 쇄신하려던 내겐 좋은 징조였다.

"시네티 마을은 엄청 멋진 마을이야! 봄맞이 축제가 열리는 이 시기엔 마을 입구부터 수선화와 시클라멘이 여기저기 피어있어서 무척 예쁘거든! 마을 안에 들어가면 곳곳에 동백나무도 여기저기 피어있고."

세이사의 말을 들어봐서는 시네티 마을이란 곳은 꽃을 재배하여 꽃 기름을 짜는 것으로 수입을 내는 마을인 듯했다.

그것이 돈이 되지 않는 한, 괜히 농사지을 땅을 버려가며 꽃을 심을 사람은 없을 테니까.

'아니, 난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시네티 마을의 축제가 기대된다며 눈을 반짝이는 순수한 세이사의 모습을 보자니, 찌들대로 찌든 어른의 생각을 하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그래요. 무척 기대되네요."

무안함에 세이사의 말에 맞장구를 치면서 나는 세이사의 시선을 피했고, 세이사는 그런 나를 보면서 싱글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가만히 내 뒤뒤로 다가와 가만히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에일라! 너무 좋아!"

세이사의 너무나 스스럼없는 스킨십에 내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것을 숨기려고, 나는 고개를 푹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네. 왜 에일라의 입이 조용하지?'

에일라의 기억에서, 세이사가 이런 스킨십을 시도하면 에일라는 세이사를 거칠게 밀어내며 강아지처럼 뭐 하는 짓이냐느니 하며 날을 세우기 일쑤였다.

하지만 지금 마음대로 통제가 되지 않는 에일라의 입은 굳게 닫힌 채 움직일 기미가 없었다.

'드디어 에일라의 입도 완전히 나랑 동화된 건가?'

계속 말썽을 부리던 에일라의 입이 드디어 내 통제를 듣기 시작한 것이라면 이것 역시 희소식이었다.

'아, 그럼 이제부턴 말할 때도 신경을 써야 하나? 갑자기 내 말투로 말한다면 바로 이상하다는 걸 눈치챌 텐데.'

평소의 말투대로 말하면 큰일 나겠다는 걱정거리가 생기긴 했지만, 그래도 골칫거리가 하나 사라졌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다.

"세이사, 그래서 시네티 마을의 봄맞이 축제에선 어떤 것을 하나요?

홀가분해진 마음 탓일까, 나는 답지 않게 들떠서 세이사와 함께 시네티 마을의 봄맞이 축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

"시네티 마을의 봄맞이 축제가 곧이네."

니어 파른헴은 창문 너머의 하늘에서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무표정한 표정으로 조용히 읊조렸다.

"니어, 작전은 잘 진행되고 있니?"

니어 옆에서 차를 홀짝이던 브렌다 발렌이 그렇게 묻자, 니어는 여전히 무표정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당연하지. 오스라드 상단의 도움도 얻었으니 절대 실패할 수가 없는 작전이야."

"설령 실패하더라도 책임을 지는 것은 티아 이글라스고?"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한배를 탄 동료를 버린다는 뉘앙스 말을 브렌다가 꺼냈음에도, 니어는 이번에도 표정에 아무런 변화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야. 티아는 어차피 단순한 성격 때문에 이용하기 좋아서 꼭두각시로 내세운 녀석이잖아."

"그것참 너무한 말이네."

니어의 말에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금 차를 홀짝이는 브렌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 역시 티아 이글라스로 꼬리를 자른다는 니어의 계획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차하면 티아 이글라스를 버린다는 계획에 동의하고 있었다.

"그런데 참 궁금하네. 어째서 에일라 넬런이 갑자기 태도를 바꾼 걸까?"

'마치 사람이 바뀐 것처럼.'이라는 말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니어 역시 브렌다가 차와 함께 목구멍으로 넘겨버린 말에 공감하고 있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보통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성격이 바뀐다던데, 에일라 넬런도 그런 걸까?"

"글쎄? 수녀원으로 쫓겨나기 전에도 음험하게 남을 모함하던 에일라 넬런이 그럴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데."

"그건 그렇지. 진짜로 길더스텐님의 계시라도 받지 않는 한은 그렇겠지."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제대로 된 신성력을 쓸 수 있는 성인이 나오지 않은 것도 벌써 수백 년은 지났는걸."

키니아 제국에서 교단의 세력이 줄어든 것은 최근 수십 년간 제대로 된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는 사제가 없었던 것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 차이를 설명하자면, 지금은 주교급의 사제나 되어야 다룰 수 있는 신성력을 수십 년 전에는 평범한 사제들 역시 다룰 수 있었고, 수백 년 전의 교황인 베티우스 3세는 대륙을 침공한 악마들과의 전쟁에서 자신이 가진 신성력으로 구축한 신성방벽으로 키니아 제국의 동쪽 국경선을 침공하려던 수십 만의 악마들을 막아낸 것을 들 수 있었다.

이에 반해 최근 수십 년간 선출된 교황들의 신성력은 기껏해야 성 하나를 지켜낼 규모의 신성방벽을 구축하는 것이 고작이었으니, 이는 엄청난 격차였다.

"그것도 맞는 말이야. 에일라 넬런이 성녀라니, 그것만큼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이 있을까?"

"그래. 애초에 길더스텐님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신다면 머리 위로 벼락이 떨어져야 하는 것은 우리가 아니겠어?"

길더스텐을 비롯한 열두 주신에 대한 불신.

그것은 니어와 브렌다라는 개인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었다.

키니아 제국의 인구 중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들은 아직도 길더스텐에 대한 신앙을 지켜오고 있었지만, 귀족이나 대상인 같은 고위층 사이에서 길더스텐에 대한 신앙은 거의 희미해져 가고 있던 상태였으니 말이다.

"맞아. 기도해 봐야 뭐가 바뀐다는 걸까? 이 빌어먹을 수녀원을 벗어나게 해 달라고 몇 번이나 기도했는데 우리를 수녀원에서 벗어나게 해 줄 것은 결국 돈인걸."

수녀원에 소속된 수녀의 말이라고는 결코 생각할 수 없는 니어의 발언을 끝으로, 니어와 브렌다는 차가 조금 남아있던 찻잔을 깔끔하게 비웠다.

…차가 말끔하게 비워진 두 사람의 찻잔의 바닥에 드러난 것은 이 찻잔이 오스라드 상단에서 취급하는 고급품임을 증명하는 인장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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