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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니 성녀 같다-16화 (16/80)

〈 16화 〉 성흔 (2)

* * *

"이, 이단 심문관님이시래!"

"그, 잘못 걸리면 뼈도 못 추린다는 그 이단 심문관?"

갑작스럽게 한 무리의 이단 심문관들을 받아들이게 된 시네티 마을의 분위기는 상당히 흉흉해져 있었다.

'악마와 내통했다는 혐의가 걸린 사람을 산 채로 불구덩이에 집어 던졌다더라.', '이것은 부당한 심문이라며 항변하는 이를 악마에 홀린 자라며 철퇴로 머리통을 그대로 부숴버렸다더라.'하는 이단 심문관에 대한 과장 섞인 소문은 이미 시네티 마을에도 충분히 퍼져있었다.

그러니 시네티 마을의 주민들은 얼마 전 악마와 악마가 이끄는 마수들이 쳐들어온 일로 말미암아 억울하게 악마숭배자로 몰려서 몰살당하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두려움 섞인 시선으로 이단 심문관들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어디서나 보던 시선이군.'

하지만 이미 오랜 시간 이단 심문관으로 활동해온 마르셀에게 있어 두려움과 경계가 가득한 시네티 마을 주민의 시선은 딱 그 정도의 감흥을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솔름 백작…. 의외로 선선히 시네티 마을로 가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왜지?'

오히려 마르셀의 심기를 어지럽히는 것은 시네티 마을로 오기 전, 조사를 허락받기 위해 만났던 헬리아스 솔름 백작의 태도였다.

키니아 제국에서 이단 심문관이라는 직책을 상징하는 붉은 바탕에 하얀 십자가가 그려진 갑주는 일반적인 영지민이나 사람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백작 정도 되는 귀족으로 올라가게 되면 그들은 그저 자신의 영지에 분란을 일으키는 재수 없는 무뢰배나 다름없는 존재로 취급받았다.

이단 심문이라는 일이 결코 평화롭게 진행되기만 하는 일은 아니다 보니, 영지에서 이단 심문을 벌이기 시작하면 필연적으로 영지민의 민심이 어지러워질 수밖에 없었고, 결국 그것을 수습해야 하는 영주인 그들의 심기가 불편해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혹여 이단 심문으로 영지민의 수가 줄어든다면 그 말은 곧 세금을 거둘 영지민이 줄어든다는 말과 동일했기에, 번듯한 영지를 가진 정상적인 영주라면 이단 심문관의 활동을 간접적으로 방해하기 위해 조사허가를 질질 끌거나, 촉박한 조사 기간을 주는 식으로 강짜를 부리기 일쑤였다.

"물론입니다. 마르셀 이단 심문관님 일행이 조사에 전념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솔름 백작은 마치 마르셀 일행이 오는 것을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그들을 직접 나서서 환대하며 영주로서 할 수 있는 어떠한 방해공작도 걸어오지 않았다.

마르셀로선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르셀 님."

"음. 알았다."

하지만 마르셀이라고 언제까지 의심만 하면서 멍하니 서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단 심문관이라 불리는 그들은 그저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주민들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이단 심문관 마르셀 코르파다. 마을의 촌장과 해당 교구의 책임자를 만나고자 한다."

종자 로나가 눈치를 주자 마르셀은 상념에서 벗어나 시네티 마을을 찾은 용건을 곧바로 꺼내 들었다.

"에단이라고 합니다. 제가 이 시네티 마을의 촌장입니다."

마르셀의 말에 응답하여 웅성거리는 인파 사이를 헤치고 중년의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몸을 상당히 단련했던 흔적이 보이는군. 병사나 용병 출신인가. 한동안은 단련을 쉬었던 모양이지만.'

조사를 업으로 삼게 된 그가 지닌 일종의 직업병이라고나 할까, 마르셀은 에단을 마주하면서 그의 외모에서 그의 신상명세를 추론했다.

"만나서 반갑군. 얼마 전 시네티 마을을 악마가 습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조사를 위해 파견된 몸이다. 자세한 내막에 대해서 듣고 싶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곳에 서서 이야기를 듣는 것은 서로 불편할 테니, 집에서 이야기를 듣는 것이 어떠십니까? 아, 코니엘 신부님도 그곳으로 오시도록 말을 전해놓도록 하겠습니다."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마르셀을 비롯한 이단 심문관들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는 에단의 제안에 마르셀은 동의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

─다각, 다각

시네티 마을로 가는 짐마차.

처음 시네티 마을을 방문했을 때는 다른 수습 수녀와 각종 물자가 든 상자로 가득 찬 짐마차였지만, 지금 시네티 마을로 가는 짐마차는 별다른 짐도 없었고, 탑승객이라고는 나와 짐마차를 모는 레이첼 수녀 말고는 없었기에 무척이나 휑한 느낌을 주었다.

"에일라 자매. 이단 심문관의 조사를 받게 되었는데 어째서 그렇게 태연할 수 있는 겁니까?"

짐마차에 흐르는 적막을 더는 견뎌낼 수 없었는지, 먼저 입을 연 것은 레이첼 수녀였다.

그녀로서는 무척이나 어이가 없을 것이다.

아직 성년조차 되지 않은 소녀가 자신이 이단 심문관의 조사에 소환되었음에도 침착함을 유지한다는 것은 어지간한 강심장이어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니까.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나로서는 굳이 이단 심문관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이단 심문관은 에일라가 지닌 강력한 신성력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훌륭한 증인이 되어 줄 수 있었다.

'지금 에일라는 힘을 숨겨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

이미 에일라의 목숨을 노리는 음모가 한차례 벌어진 뒤였다. 언제 다시 에일라의 목숨을 노린 음모가 벌어질지 모르는 이상, 에일라는 자신이 가진 힘을 드러낼 필요가 있었다.

'괜히 어쭙잖은 재주로 용쓰는 것보다는 확실하게 눈에 띄는 능력이니 탐내는 사람이 나오겠지.'

이단 심문관을 보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수도 리아트에 위치한 교단에도 시네티 마을에서 있었던 일이 전해졌을 것이다.

악마를 쓰러뜨릴 만큼 막대한 신성력을 지닌, 아직 소녀에 불과한 수습 수녀. 교단의 관계자가 듣는다면 단박에 입맛을 다실 조건이었다.

'솔름 백작 같은 야심가가 곧바로 거래를 제안할 정도였으니 교단도 마찬가지겠지.'

애초에 솔름 백작, 헬리아스가 에일라 넬런을 지원한다는 거래는 에일라가 차기 성녀 후보로 뽑힌다는 전제하에 맺어진 것이었다.

비록 만난 기간은 짧았지만 차기 황제를 뽑는 선제후 회의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겠다는 야망을 품고 있는 솔름 백작이 아무런 가능성도 없는 도박수를 던질 리가 없었다.

교단 쪽의 누가 되었든, 분명 에일라 넬런이라는 인재에 탐을 내고 무언가 제안을 던져올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중학생밖에 되지 않은 소녀가 할 생각은 아니네.'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얼굴에 쓴웃음이 올라왔다.

"에일라 자매…."

내 쓴웃음을 보고 내가 괜한 허세를 부린다고 생각하기라도 했는지, 나를 향하는 레이첼 수녀의 뜨뜻미지근한 시선이 느껴졌다.

"……."

나는 레이첼 수녀의 오해를 정정하고 싶었지만, 그러자니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기에 내가 선택한 대응은 침묵이었다.

"……."

참으로 고맙게도 레이첼 수녀 역시 내 침묵에서 거부의 의사를 읽었는지 이후로는 아무런 말도 없이 묵묵히 짐마차를 몰았고, 우리를 태운 짐마차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시네티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

"……."

"저기요! 언니는 무슨 사람이길래 마을 사람들이 다 무서워하는 거에요? 그리고 이름은요?"

종자 신분의 이단 심문관, 로나 리브레는 난감한 표정으로 자신의 옆에 찰싹 들러붙은 소녀를 바라보았다.

'이 아이를 어쩐다….'

참으로 이상한 소녀였다. 종자로서 마르셀 님을 따라다니며 여러 마을과 도시를 방문해 왔지만, 하나같이 이단 심문관이라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끼며 거리를 두려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부모가 아이를 타이를 때 '그런 짓 하면 나중에 저기 이단 심문관님이 잡아간다!'라고 을러대는 것은 차라리 점잖은 편이었고,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내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다시 말해, 아무리 나이가 어려서 그런 복잡한 사실을 모른다 하더라도, 마을 주민 모두가 꺼리는 이단 심문관인 로나에게 일부러 다가와서 말을 거는 이 소녀의 행동은 분명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로나 리브레입니다. 지금은 마르셀 님을 따라 신성한 책무를 수행하는 중이니 방해하지 말아 주었으면 합니다만."

그렇기에 로나가 선택한 대응책은 위압감을 줘서 아이를 멀리 내쫓는 것이었다. 이전의 마을에서도 호기심에 달라붙는 아이들을 떼어낼 때 썼던 것과 같은 방법이었다.

"와! 에일라 언니랑 같은 말투야!"

하지만 이 특이한 소녀는 로나의 대응에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소녀가 보인 예상 밖의 반응에 순간 머리가 멍해진 로나였지만, 소녀의 입에서 나온 이름이 자신들이 찾는 수습 수녀의 이름이라는 사실이 떠올라 간신히 침착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에일라 언니? 에일라 넬런 수습 수녀와 아는 사이입니까?"

"네! 얼마 전에 마을에 엄청 무시무시한 악마와 마수가 나타났는데, 에일라 언니가 번쩍번쩍 빛나는 창을 던져서 악마를 물리쳤어요!"

"…그런가요."

로나는 소녀의 증언에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개 어린아이 특유의 상상력이 첨가되기 마련인 어린아이의 증언은 증거로 채택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번쩍번쩍 빛나는 창이라…. '성스러운 창'이라는 기적이 떠오르기는 하지만 수습 수녀가 다룰 수 있는 기적이 아니야.'

더욱이, 마르셀의 밑에서 이단 심문관의 책무를 배우며 꾸준히 수련해왔던 로나이기에 절로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증언이었다.

본디 신성력을 다루는 것은 인간이 감히 범접조차 할 수 없는 신의 힘을 빌려 쓰는 것이니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었다.

가장 다루기 쉽고, 다루는 이의 몸에 부담이 적어 전투용으로 가장 먼저 익히는 기적인 '신성한 화살'조차 사용횟수가 지나치게 많아지거나, 화살에 신성력을 과도하게 불어넣었다가 폐인이 되어 돌아오지 못하는 사고가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하물며 악마를 일격에 제압할 만큼 강력한 기적이라면 그 기적을 구현하는데 얼마나 많은 신성력이 소모되겠는가.

'아이 특유의 과장이라고 봐야겠지. 그 수습 수녀는 하루 만에 다시 정신을 차렸다고 했으니.'

그렇게 결론을 내린 로나는 이 소녀에게 더 질문해봐야 쓸모 있을 정보는 얻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빨리 대화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흐음. 그러고 보니 이름을 물어보지 않았군요. 증언을 증거물로 삼으려고 하는데, 이름을 알려줄 수 있겠습니까?"

"네! 제 이름은 엘리에요! 꼭 적어주시는 거에요!"

"예. 그러면 저는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니 이만 가 보겠습니다."

사실 보고서를 쓰는 것은 조사에 막 착수한 지금이 아니라 나중에 할 일이었지만, 이런 핑계라도 대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들러붙을 기세인 소녀를 떼어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로나가 굳이 거짓말을 한 보람도 없이, '엘리'라고 이름을 밝힌 소녀는 갑자기 반가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쪼르르 마을 입구로 달려가며 소리쳤다.

"에일라 언니!"

조사를 위해 소환장을 보낸 수습 수녀, 에일라 넬런이 시네티 마을에 도착한 것이다.

"…또 당신인가요."

반가움에 에일라를 향해 쪼르르 다가간 엘리였지만, 막상 그 당사자는 미간을 찡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명백히 엘리를 상대하기 귀찮다는 반응이었다.

'저 수습 수녀가 에일라 넬런….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네요.'

'엘리'라는 소녀가 잘 따르는 것으로 보아, 에일라 넬런은 인자하고 자상한 성격을 가졌을 것으로 예상했던 로나의 추측과 현실에서 직접 마주한 에일라의 모습이 서로 충돌을 일으킨 탓에 로나는 혼란스러운 표정을 가면과도 같은 무표정으로 감출 수밖에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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