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 목줄 (2)
* * *
"나더러 스스로 내 팔다리를 자르라는 거냐."
내 제안을 들은 아이셀의 표정은 당연하게도 잔뜩 일그러졌다.
그 모습만 놓고 보면 자신을 위해 자신의 부하를 희생시킬 수는 없다고 말하는 훌륭한 상사의 모습이지만, 진상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절로 코웃음을 치게 되는 위선이었다.
"그런 주제에 필요하다면 언제든 잘라낼 준비를 했던 건 오스라드 씨 아닌가요? 아니면 오스라드 씨의 팔다리는 탈부착이라도 가능한가요?"
그에게 그런 눈물 나는 동료애가 있을 리가 없었다.
운이 좋게 시네티 마을에 쳐들어온 악마와 마수를 막아내지 못했다면 시네티 마을 사람은 물론이고, 시네티 마을에 와 있던 나와 티아를 포함한 수녀들은 모두 전멸했을 것이다.
그에게 부하란 그저 자신의 계획을 수행하는 기계장치의 톱니바퀴에 불과할 뿐, 언제든 그 가치가 다하면 새로운 부품을 찾아 대체하면 되는 존재일 뿐이었다.
"……."
내 빈정거림에 일말의 가책이라도 느낀 것인지, 아이셀은 입을 꾹 다물었다.
아니, 정확히는 대꾸해 보았자 자신만 손해 본다는 사실을 아이셀 자신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
"……."
그렇게 방에는 잠시 적막이 흘렀다.
나로서는 여유롭게 웃음을 짓는 것만으로도 아이셀을 압박할 수 있었기에 하나도 서두를 이유가 없었고, 아이셀은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며 최대한 시간을 끄는 것이었다.
"…딸꾹."
그 적막을 가장 먼저 깨트린 것은 나도, 아이셀도 아니었다.
내가 아이셀을 몰아붙이고, 아이셀이 필사적으로 방어하는 팽팽한 신경전이 계속 이어지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관전한 탓에 절로 불안해진 티아의 심리를 드러내듯 티아의 입에서 딸꾹질이 튀어나온 것이다.
"…티아. 코를 막고 차를 한 모금 마시면 딸꾹질은 금방 그칠 거에요."
아이셀을 압박하기 위해 형성했던 팽팽했던 분위기를 와장창 무너뜨린 티아의 행동에 절로 미간을 짚고 싶어졌다.
그래도 대화에 방해되는 딸꾹질을 계속하게 둘 수는 없었기에, 일단은 간단한 딸꾹질 대처법을 알려주며 접대용으로 나온 홍차가 가득 담긴 찻잔을 티아에게 건네주었다.
"…내가 대체 뭘 본거지?"
그런데 이번에는 아이셀의 표정이 마치 못 볼 꼴을 봤다는 듯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아, 생각해보니 아이셀이 기억하고 있을 에일라의 모습은 내가 에일라의 기억에서 봤던 악역영애 에일라의 모습이겠구나.'
언제나 저택 내에서 음험한 계획을 짜고, 수도 귀족가의 자제라면 거의 빠짐없이 참석하는 사교파티에도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영애.
그리고 그 음험한 계획이 향하는 대상인 셀린 엘리어드 영애를 향한 무척이나 강렬한 적대감.
거의 편집증에 가까울 정도로 셀린 엘리어드를 괴롭히는 일에 몰두하던 에일라가 살갑게 남을 챙기는 모습을 보였을 리가 없었다.
"흐음, 같은 자매를 챙기는 것이 이상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도 방법이 없었다.
여기서 괜히 어색한 모습을 보였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될 것이 너무나도 뻔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에일라가 수녀원 생활을 통해 사람이 바뀌었다고 아이셀이 멋대로 생각하게 두면서 뻔뻔하게 나가는 것이 훨씬 나았다.
"…할 말이 있다는 건 알겠는데, 지금은 입 다물고 있으세요."
물론 아이셀이 듣지 못하도록 입 모양만 보일 정도로 목소리를 낮춰 티아에게 신신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알았…딸꾹."
나도 모르게 에일라 특유의 날카로운 표정을 지었는지, 딸꾹질과 동시에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는 티아의 눈가에는 물기가 조금 서려 있었다.
'어째선지 내가 학교폭력 가해자가 된 기분인데.'
엄밀히 따지자면 아이셀의 명령을 받아 나를 괴롭혔던 가해자는 티아고, 피해자는 나였지만 말이다.
"…다시 이야기하던 주제로 돌아오죠. 이제 슬슬 선택을 내릴 시간이 다 된 것 같군요. 오스라드 씨의 현명한 선택을 기대하죠."
아무튼, 나는 다시 주제를 되돌려서 아이셀에게 빨리 선택을 내릴 것을 종용했다.
티아 때문에 분위기가 애매해지긴 했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매듭을 지어놓지 않으면 아이셀이 이후에 무슨 짓을 꾸밀지 모르니 말이다.
"…알았다. 네가 제시한 두 번째 안을 따르지."
"현명한 선택이에요. 그렇다면 자세한 사항을 논의해 보도록 할까요?"
"어차피 내게 선택권은 없으면서 선심 쓰듯 말하기는."
아이셀은 자신의 자존심만큼은 지키고 싶었는지 나를 향해 빈정거렸지만, 그 반응은 이미 목줄을 채워둔 개가 요란하게 짖어대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이단 심문소가 납득하려면 적어도 간부 1명은 당연히 목록에 들어가야겠죠."
"…알고 있다. 시네티 마을에 파견했던 녀석들도 당연히 들어가야 하겠지."
애써 담담한 척 말하고 있었지만 아이셀의 손은 스스로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애써 키워둔 부하들이 모조리 잘려나가게 생겼으니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분명했다.
"직접 일을 저지른 사람까지는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아니면 그중에서 빼내고 싶은 사람이라도 있는 건가요?"
"……."
내 질문에 입을 꾹 다물어 버린 아이셀의 태도가 '그렇다.'라고 대답하고 있었다.
"흠, 오스라드 씨가 이번 일로 상단의 후계자에서 멀어진 것을 기회로 여기는 이들이 있는 모양이군요? 아무래도 평소의 행실이 그리 좋지 못했던 모양이죠?"
아이셀이 어떤 부하를 잘라내는 것을 망설인다는 것은 그만큼 그 부하가 지니는 중요도가 높다는 것.
앞으로 아이셀에게 목줄을 채워 이용할 생각인 나로서는 어느 정도 아이셀의 힘을 빼는 것은 필요했지만, 차기 상단주의 자리를 두고 벌어지는 경쟁에서 아이셀이 탈락해 버리는 것은 별로 이득이 없었다.
"제가 그 부탁을 들어준다면 오스라드 씨는 제게 무엇을 제게 제공할 수 있죠?"
그러나 그것을 먼저 입에 담는 것은 하수나 할 행동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자신을 위한 행동이지만, 절박한 상대방에게서 최대한 뜯어낼 것을 뜯어내는 것이야말로 협상의 묘리니까.
"…오스라드 상단주로서 제공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제공하지."
과연 오스라드 상단의 후계자라고나 할까, 아이셀은 무엇을 제시해야 상대방이 만족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오스라드 상단주로서 제공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제공한다.
이 말은 바꿔말하면 키니아 제국 제2의 규모를 지닌 상단이 사실상 내 수중으로 들어온다는 말이었다.
"당장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말이로군요."
단, 어디까지나 아이셀이 후계자 싸움에서 완승하고 내 통제하에 있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이미 한 번 에일라를 죽이려 했던 아이셀이다.
그만한 악연을 해소하면서 최소한의 신뢰를 얻으려면 아이셀은 말로 공수표를 남발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무언가를 제시할 필요가 있었다.
"…죽음의 신께 맹세하는 계약을 맺도록 하지."
"뭐? 죽음의 신께 맹세하는 계약?"
아이셀이 표정을 굳히며 제시한 조건을 들은 티아가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아."
또다시 자신이 분위기를 깨트렸다는 것을 자각한 티아가 짧게 감탄사를 내뱉었고, 나와 아이셀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어찌할 줄 모르며 안절부절못했다.
"죽음의 신이라…. 키니아 제국에서 활동하는 할렌디스의 사제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죽음의 신 할렌디스.
카르실리안 대륙의 종족들이 섬기는 열두 주신 중의 하나로, 말 그대로 죽음의 영역을 관장하는 신이다.
그런 신에게 맹세하는 계약인 만큼, 아이셀이 제안한 '죽음의 신께 맹세하는 계약'은 계약을 충실히 이행하지 못하면 자신의 목숨을 잃게 되는 계약이었다.
아마 계약을 우회하려고 잔꾀를 부려도 계약을 충실히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판정하여 죽음을 내린다고 하던가.
'교리 수업에 졸지 않고 잘 기억해둔 것이 이렇게 도움이 되네.'
수녀원의 일과 중 하나였던 교리 수업을 집중해서 듣고, 틈틈이 시간을 내서 수녀원에서 보관하고 있는 장서를 읽어둔 보람이 있었다.
그런 생각에 입꼬리 올라가려는 것을 억누르며, 나는 아이셀에게 시선을 옮기면서 재차 물었다.
"교단에서 할렌디스의 사제를 박해하거나 적대하는 것은 아니니 계약을 맺는 것은 상관없지만…이해가 되질 않는군요."
할렌디스를 상징하는 것이 하나같이 죽음, 어둠, 침묵, 혼돈 같은 어두컴컴하고 불길한 것투성이인 탓에 빛과 정의, 질서 등을 관장하는 길더스텐을 모시는 사제들이 주류인 키니아 제국에서 할렌디스를 모시는 사제를 보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
"별것 아니야. 내가 살리려고 하는 부하…. 그 녀석이 할렌디스를 모시는 사제여서 제시할 수 있는 조건이니까."
"…재미있는 사실을 알았네요."
제국에서 주로 모시는 길더스텐이 아닌 다른 신을 모시는 사제를 부하로 둔 상단의 후계자라.
무언가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내 직감이 외치고 있었다.
"좋아요. 그 조건을 받아들이죠."
아이셀이 데리고 있다는 할렌디스의 사제에 호기심이 동하기도 했고, '죽음의 신께 맹세하는 계약'이라면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서 빠져나갈 방법도 없으니 아이셀에게 확실한 목줄까지 채워놓았다.
"좋은 협상이었네요. 이건 그 거스름돈이에요."
그러니 이제는 채찍을 거두고 당근을 던져줄 차례였다.
"…이건 뭐지?"
내가 종이뭉치를 건네는 것을 의아하게 바라보는 아이셀에게 그 종이뭉치의 정체를 알려주었다.
"제 나름대로 생각해본 사업 아이디어에요."
"…지금 날 놀리려는 건가?"
장사에 대해 네가 무엇을 알겠느냐며 코웃음 치는 아이셀.
그 모습에는 지금까지 자신이 쌓아온 상재(??)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 묻어나왔다.
"글쎄요? 일단 한 번 살펴보고 이야기 하는 게 어떨까요."
하지만 아무리 아이셀이 코웃음 친다고 한들, 나로서는 반드시 이 사업이 성공한다는 확신이 있었다.
내가 아이셀에게 사업 아이템으로 제시한 것은 아직 이 세계에는 없었지만, 이 세계의 기술력으로도 충분히 생산할 수 있고 충분히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 만한 가치를 지닌 것이었으니까.
"어디…상품의 이름은…제조법과 효능은…."
내가 내민 종이뭉치의 페이지를 넘기는 아이셀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화했다.
보기 편하도록 깔끔하게 정리된 양식을 지켜 작성된 문서와 이해를 돕기 위해 첨부된 각종 도표와 그림 등의 보조자료를 본 아이셀이 놀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떤가요? 이 정도라면 이번 일로 잃었던 입지를 회복하기엔 충분하겠죠? 오스라드 씨와 앞으로도 좋은 '거래'를 할 수 있다면 좋겠네요."
"…믿을 수가 없군."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이셀.
역시 아이셀도 '그래놀라'의 성공 가능성을 이미 꿰뚫어 봤음이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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