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 목줄 (6)
* * *
"에일라님, 죄송합니다. 모두 제 불찰입니다."
"…우선은 몸의 상처부터 돌보는 것이 좋겠어요."
나를 향해 고개를 숙이며 연신 사죄하는 이단 심문관의 몸 상태는 그야말로 처참했다.
온몸에 날카로운 것에 찔리고 베인 상처가 가득했으며, 왼손은 무거운 물체에 깔리기라도 했는지 손이 완전히 짓이겨져 본래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지경이었으니, 무척이나 격렬한 전투가 있었음을 짐작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이단 심문관쯤 되면 결코 약한 호위가 아니었을 텐데….'
이단 심문관이 되려면 우선 성기사로서 교단의 성기사단에 입단하는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게다가 단순히 성기사단에 입단하여 성기사가 되었다고 모든 이에게 이단 심문관이 될 기회가 제공되는 것도 아니다.
최대 12단계까지 존재하는 성기사 승급 시험을 통과하여 최소 6단계 이상에 오른 성기사여야만 정식 이단 심문관이 될 기회를 얻을 수 있고, 조금 눈을 낮추더라도 최소 4단계는 통과해야 이단 심문관을 보좌하는 종기사에 지원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엄격한 심사과정을 통과하여 정식으로 이단 심문관이 된 성기사가 이런 꼴이 되어 돌아왔다.
'이건 내 실수야. 상대의 전력도 제대로 가늠할 수 없는 상황에 무장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이단 심문관 하나를 호위로 붙여 보냈으니.'
나는 내 실수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빈약한 무장 상태로도 이단 심문관이 목숨을 부지하여 돌아온 것만 해도 기적적인 일이었다.
'…마르셀 이단 심문관에게 고개를 들기 어렵겠는걸.'
성수로 상처를 씻어내는 동시에 소독하고, 약초를 잘게 짓이긴 것을 기름과 섞어 만든 일종의 연고를 상처에 바르는 치료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팔다리에 입은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충분히 아물겠지만, 저 짓이겨져 본래의 형체조차 완전히 잃어버린 왼손은 다시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세상은 '기적'이라 불리는 놀라운 힘이 존재하는 세상이었지만, 신성력을 활용하여 악마를 쓰러뜨리거나 여러 편리한 효과를 걸어주는 기적은 여럿 있어도, 상처를 치유하고 불구가 된 자도 다시 멀쩡한 몸으로 되돌려 놓는 치유에 관한 기적은 무척이나 적었으니 말이다.
'최소 주교급은 되어야 미약한 성능이나마 '치유'라는 기적을 사용할 수 있다고 했는데….'
나는 도서관에서 읽었던, '기적'에 관해 연구한 책의 내용을 머리에 떠올렸다.
책의 내용에 따르면 치유 효과가 있는 기적은 막상 사용한다 하더라도 그 성능이 너무 미약해, 소모하는 신성력에 비해 그 효율이 매우 떨어진다고 했다.
예를 들자면 평범한 신부가 '치유' 기적을 사용했을 경우, 일주일 동안 앓을 병이나 상처가 1분 정도 빠르게 치유되는 극악의 효율을 보인다고나 할까.
'이런 비효율적인 것을 내게 써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던 세이사는 대체….'
아마 세이사도 치유의 기적에 관해서는 제대로 된 지식이 없었기에 그런 말을 했을 테지만, 인제 와서 생각해보니 참 고마운 말이었다.
아, 세이사 보고 싶다.
'아니, 이게 아니지. 일단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시험이라도 해 볼까.'
시네티 마을에서 내 나름대로 '성스러운 화살'을 창 크기로 개조해서 사용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치유' 역시 내가 가진 막대한 신성력을 욱여넣으면 효과가 올라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악마가 아닌 대상에게 거는 기적은 그것이 어떤 종류의 기적이든 부정적인 효과는 최대 기절 정도에서 끝난다고 했으니까.'
길더스텐을 모시는 사제가 사용하는 공격용 기적은 악마가 아닌 자를 대상으로 했을 경우 그 위력이 딱 제압용으로 줄어든다.
요컨대 내가 시네티 마을에서 악마를 쓰러뜨릴 때 썼던 빛의 창을 사람을 향해 집어 던져도 그것을 맞은 사람에게는 전기충격기를 맞은 정도의 위력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내가 '치유'라는 기적을 다친 이단 심문관에게 사용했을 때, 최악의 결과가 나오더라도 이단 심문관이 기절하는 선에서 끝난다는 말이기도 했다.
'시도해볼 만한 가치는 충분해.'
결정을 내린 나는 여전히 상처에 연고를 바르고 있던 이단 심문관을 향해 다가가 입을 열었다.
"상처는 괜찮으신가요."
"예. 괜찮습니다. 이 정도의 상처쯤이야 금방 털고 일어날 수준에 불과합니다."
거짓말이다.
팔 하나를 쓸 수 있고 없고의 차이는 전투에서 크나큰 차이를 만들어 낼 수밖에 없다.
하물며 악마와 마수라는 무시무시한 마물(?物)을 상대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성기사가 팔 하나를 쓸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은 무척이나 큰 손실이라 할 수 있었다.
적어도 앞으로 성기사를 그만두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손실 말이다.
'이대로 가만히 있는 것도 찝찝해서 싫으니까.'
따지고 보면 내 판단 미스 때문에 남의 인생을 망쳐놓은 셈인데, 그냥 뻔뻔하게 있으면서 불편한 마음으로 있는 것보다는, 실패할 가능성이 있더라도 일단 시도해 보는 것이 훨씬 나았다.
"…잠깐 따끔할 수도 있으니 참고 가만히 있으세요."
"예? 에, 에일라님?"
갑자기 짓이겨진 자신의 왼손에 손을 뻗는 내 행동에 당황한 이단 심문관은 몸을 움직이려다, 상처에서 고통이 몰려오는 것인지 표정을 미미하게 찡그리며 금방 저항을 포기했다.
"내가 너희에게 묻나니, 너희의 상처가 어떠하더냐."
'치유'는 엄연히 기적 중에서도 중급 이상의 난이도를 가진 기적이었다.
'성스러운 화살'이 아무런 주문도 외울 필요 없이 신성력을 조작해서 화살을 만들어 낸다면, '치유'같은 중급 이상의 기적을 사용할 때는 마법사가 주문을 외우듯 정해진 기도문이나 경전의 구절을 읊는 사전작업이 필요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저희가 더는 이 광야를 걸을 수 없나이다."
성기사 출신답게,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금방 알아차린 이단 심문관은 내가 읊은 경전의 바로 다음 구절을 답했다.
"너희의 말이 참으로 온당치 않구나. 어찌 너희에게 그런 상처가 있더냐?"
나 역시 곧바로 다음 구절을 이어서 말하는 동시에, 내가 손을 대고 있는 이단 심문관의 상처로 신성력을 집중했다.
'역시 섬세한 조절은 어려운 모양이야.'
'치유'를 사용하면서 드는 느낌은 '성스러운 화살'을 사용할 때와 비슷한 감각이었다.
거대한 댐에 갇혀있던 대량의 물이 수문이 열리면서 일순간 폭발적으로 쏟아지는 것 같은 감각.
그리고 그 신성력의 급류는 내 팔을 타고 흐르다가 이단 심문관의 짓이겨진 손으로 향했다.
"어서 일어나 걸어라. 너희의 몸은 강건하여 이 광야를 능히 하루 만에 지날 수 있으리라."
'치유'를 사용하는 데 필요한 경전의 마지막 구절을 읊는 동시에, 내 손끝에서 눈부신 섬광이 터져 나왔다.
'실패했나?'
너무나도 눈부신 섬광에 눈앞을 확인할 수 없었던 나는 내 '치유'가 성공했는지, 아니면 실패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에, 에일라님. 제 손이…."
번쩍이던 섬광이 잦아든 이후, 마침내 결과를 확인한 이단 심문관은 경악한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성공한 모양이네요."
이단 심문관의 몸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짓이겨졌던 왼손은 물론이고, 온몸에 가득했던 상처까지 말끔하게 고쳐져 있었다.
"다행이네요. 그럼 티아에게 어떤 일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연신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는 이단 심문관의 모습에 나는 안도하며, 티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들으려 했다.
─휘청.
'아, 맞다. 시네티 마을에서도 과도하게 신성력을 썼다가 기절했었지.'
'치유'는 '성스러운 화살'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고위의 기적이니 당연하게도 사용했을 때, 소모되는 신성력의 양도 어마어마했다.
"에일라님!"
정말 멍청하게도 똑같은 실수를 다시 반복한 나는 흐려지는 의식을 필사적으로 붙잡으려 했지만, 결코 떨쳐 낼 수 없을 정도로 밀려오는 수마에 삼켜지고 말았다.
*
"으…."
티아 이글라스는 낮은 신음을 흘리며 천천히 눈을 떴다.
'아, 나…납치당했었지…여기서 나가야….'
건물 안으로 끌려가며 기절한 이후, 아직 완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해 비몽사몽 한 상태였지만, 티아는 아직 흐릿한 시야로나마 주변 상황을 살피기 시작했다.
지하인지 눅눅한 습기가 섞인 공기가 느껴졌고, 나무로 만든 상자와 술통이 여기저기 놓여있는 것이, 마치 티아가 솔름 백작의 성 지하에 갇혔을 때를 떠올리게 했다.
'아, 팔이….'
차이점이라면 그래도 그때는 밧줄로 팔다리를 묶지는 않았는데, 이번에는 팔다리를 아주 튼튼한 밧줄로 꽁꽁 묶어놓는 동시에 입에는 재갈까지 물려놓은 상태였다는 점을 들 수 있었다.
"이런 멍청한 놈들!"
티아가 어떻게 해야 온몸을 구속하고 있는 이 밧줄을 끊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사이, 가까운 곳에서 벽력같은 고함이 터져 나왔다.
'흐읍!'
그 고함에 깜짝 놀란 티아는 크게 숨을 들이쉬는 동시에 기절한 척을 시작했고, 다행히도 방금 고함을 내지른 사람은 물론, 그 고함을 들은 사람들은 티아가 깨어났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단 심문관을 건드리다니 제정신이냐! 건드릴 거면 차라리 죽여서 완전히 입을 막을 것이지, 멍청한 놈들이!"
이어서 악을 쓰듯 고함을 내지르는 남성의 목소리와 함께, 사람의 뺨을 있는 힘껏 후려갈겼을 때 나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서, 설마 그 자식이 이단 심문관일 줄은 저희도…."
"이 모자란 자식이!"
뺨을 얻어맞은 것이 억울했는지 항변하는 남자의 졸개로 추측되는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이번에는 발로 있는 힘껏 정강이를 걷어찼을 때 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악!"
고통을 참지 못하고 바닥을 구르게 된 졸개의 입에서 울려 퍼지는 비명.
"네놈이 저지른 짓 때문에 힘들여 구축해 놓은 제국 내 유통망이 모조리 망가질 판이 되어버렸단 말이다!"
그것으로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고함을 내질렀던 남자는 바닥에 쓰러진 졸개의 등판을 퍽퍽 밟아대며 분풀이를 계속했다.
"끄어억…."
저러다 숨이 넘어가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의 구타가 이어졌지만, 나름대로 사람이 죽지 않을 정도로 수준을 조정했는지, 바닥에 널브러진 졸개의 숨은 여전히 붙어있었다.
"어서 서둘러! 붙잡은 년은 최대한 빨리 의뢰인에게 넘기고 수도를 뜬다! 자기네들을 건드려 눈깔이 뒤집힌 이단 심문관들이 몰려오면 나도 네놈들도 다 끝이야! 끝! 알겠어?!"
마지막으로 졸개를 짓밟으며, 자신도 저렇게 될까 두려움에 떠는 다른 졸개들에게 소리친 남자는 곧바로 지하실을 떠났다.
"아오, 저 더러운 성질머리."
"야, 그래도 우리는 뺨 한 대 맞은 거로 끝난 게 다행이지."
남자가 완전히 떠났는지 눈치를 살피던 졸개들은 남자가 완전히 지하실을 떠났다는 확신이 들자 저마다 입에서 불평을 쏟아냈다.
"나 참, 귀족 나으리의 뒤치다꺼리나 하다가 이게 뭐람."
"이봐, 그러다가 잡혀 온 여자가 들으면 어쩌려고."
"뭐가? 저기 구석에서 잘만 자고 있구먼."
'귀족 나으리의 뒤치다꺼리? 입막음이 아니라?'
티아는 졸개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며, '뤼네의 꿈'을 유통하는 상인들이 입막음을 위해 자신을 납치한 것이 아니라 뭔가 다른 목적이 있어서 납치했다는 사실에 의아함을 느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진 티아는 졸개들이 무언가 단서가 될 만한 정보가 담긴 대화를 나누지 않을까 숨을 죽이며 기다렸다.
"맞아. 깰 것 같지도 않고, 꽁꽁 묶어 뒀으니 깬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얼른 가서 일이나 하자고!"
그러나 졸개들의 대화를 더 엿들어서 상황을 파악하려던 티아의 시도는 한 졸개가 그렇게 제안하면서 물거품이 되었다.
'에일라…도와줘…!'
결국, 쓸만한 정보도, 이곳을 탈출할 방법도 얻지 못한 티아는 그렇게 에일라를 향해 비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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