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 성녀의 자격 (3)
* * *
[얼빠진 반응이네요.]
'응?'
갑자기 변해버린 에일라의 외모에 놀라 멍하니 거울 속을 바라보는 와중, 내 머릿속으로 사념파가 울려 퍼졌다.
[바보처럼 두리번거리지 마세요. 지금 당신의 눈앞에 있잖아요.]
'뭐? 서, 설마?'
내가 당황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사념파의 주인은 스스로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맞아요. 정식으로 인사드리죠. 제 이름은 에일라 넬런. 당신이 차지한 몸의 본래 주인이랍니다.]
…큰일 났다.
에일라의 몸에 두 개의 영혼이 존재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이런 일이 언젠간 있을 것이라 예상했긴 했지만, 예상보다도 빠르게 진짜 에일라의 영혼이 깨어나고 말았다.
'어쩌지….'
[…숙녀의 소개를 들었다면 곧바로 자기소개를 시작하는 게 예의 아닐까요?]
예상 밖의 상황에 당황한 내가 어쩌면 좋을지 고민할 시간도 주지 않겠다는 듯, 에일라는 부루퉁한 사념파를 보내왔다.
'어…일단은 만나서 반가워? 내 이름은 윤시후라고 하고…. 나도 어떻게 된 건지 영문은 모르겠지만 일단 네 몸에 들어온 불청객…이라고 할 수 있겠네. 일단 미안.'
본래 몸의 주인이었던 에일라의 영혼이 깨어난다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설마 그대로 몸에서 쫓겨나는 건 아니겠지?
쫓겨나면 원래의 몸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건가?
아니면 되돌아갈 몸을 찾지 못해 내 영혼만 망령처럼 떠돌게 되는 걸까?
그런 불안감에, 나는 에일라가 무작정 나를 몸에서 쫓아내지 않기를 바라며 사과부터 건넸다.
[…너무 불안해할 필요는 없어요. 이 세계에 속한 존재가 아닌 당신이 제 몸에 들어온 것은 어떻게 보면 제 탓이기도 하니까요.]
'뭐?'
에일라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영문도 모르고 내가 에일라의 몸에 빙의한 것이 사실은 에일라가 원인이라니.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줄 수 있겠어?'
[그 전에 옆에서 덜덜 떠는 티아 이글라스 영애부터 챙기는 게 어떨까요.]
'아, 잊고 있었다.'
에일라의 말에 티아를 바라보니, 티아는 두려운 무언가를 보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야 티아의 눈에는 내가 한참이나 거울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있는 것으로 보였을 테니, 무언가 이상한 일이 내게 생긴 것은 아닌가 두려워하는 것이 당연했다.
"…티아."
"네, 네? 저는 잠시 나가 있을게요!"
눈치도 빠르게, 티아는 내가 퇴실을 요청할 것이라는 사실을 곧바로 짚어내며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저걸 처세술이 좋다고 해야 할지….'
황급히 방을 나서면서도 문이 큰 소리를 내지 않게 조심스럽게 닫는다는 위업을 아무렇지 않게 이루어내는 티아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티아 이글라스 영애도 알아서 자리를 비켜줬으니,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를 해도 좋겠네요.]
'그래. 피차 질문할 게 많은 모양이니 바로 시작하자.'
의견이 서로 일치한 나와 에일라는 그렇게 절대 짧지는 않을 것이라 예상되는 대화를 시작했다.
*
과거, 강력한 힘을 지닌 신들을 숭배하며 자신에게도 그런 은총을 내려주기를 간구하던 자들이 있었다.
신들은 그런 그들의 신앙심을 갸륵하게 여겼는지, 그들 중에 신들의 힘을 일부나마 내려받은 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신들의 힘을 일부나마 사용할 수 있게 된 그들은 자신들의 기도가 신들에게 닿았다며 기뻐했다.
그러나 공짜로 주어지는 힘이란 존재하지 않는 법.
그들에게 신의 은총이 내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악마라 불리는 존재들이 '차원'이라 불리는 세계의 틈을 넘어 이 세계를 침공하기 시작했다.
신들이 내려준 힘은 악마를 물리치는 것에 있어 더없이 뛰어난 효율을 보여주었고, 그들은 신들의 더없이 뛰어난 안배에 감탄하며 신들을 향해 더 많은 기도를 바쳤다.
그리고 수없이 오랜 시간이 흘렀다.
신들의 힘을 순수하게 믿으며 흔들림 없는 기도를 바치는 이의 수는 점차 줄어들었고, 이에 반비례하여 호시탐탐 이 세계를 침략할 틈을 노리는 악마의 힘은 점점 더 강해져만 갔다.
이런 상황에 불안감을 느낀 몇몇 이들은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면서 인공적으로 강력한 신의 힘, 다시 말해 '신성력'을 부여하는 실험을 시도했다.
그들의 실험은 어떻게 보면 신의 힘만을 탐하면서 신들을 향한 기도는 도외시하는 이단행위였고, 신들 또한 그들을 탐탁지 않게 여겼는지, 그들은 곧바로 난관에 부닥쳤다.
이 세계에서 살아가는 이들 개개인이라는 그릇에 담을 수 있는 신성력의 양은 한정되어 있었고, 그것을 억지로 하나의 그릇에 부어 넣어 강대한 신성력을 지닌 개인을 만들어 내는 것은 풍선에 끊임없이 바람을 불어넣는 어리석은 행동에 불과했다.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가 발생했다.
말 그대로 풍선처럼 터져서 핏자국만을 남긴 채 스러져간 수많은 이들의 희생조차 무색하게 만들어 버리는 실험의 지지부진함.
그들은 절망했다.
처음은 수많은 이들을 구하기 위해 어떠한 희생이라도 받아들이겠다고 생각했던 그들이었지만, 그 희생이 그들의 예상을 한참이나 넘어서자 그들의 순수했던 이상은 점차 타락하기 시작했다.
악마를 물리쳐 무고한 이들을 지키겠다는 처음의 신념은 온데간데없이, 그들은 강력한 신성력을 지닌 존재를 만들어 내는 일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무고한 이들의 목숨이 이 집착을 달성하기 위해 밑 빠진 독으로 흘러 들어갔고, 그 막대한 희생이 비로소 효험을 보였는지, 마침내 그들은 불완전하게나마 성공을 거두는 것에 성공했다.
마침내 탄생한 첫 성공작이 그들의 의지에 거역하며 스스로 자신을 불량품으로 만들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
교황이 친히 집전하는 성녀 후보들의 합동 세례가 예정된 미사가 있는 날.
수도 리아트의 대성당은 그 의식을 참관하기 위해 모인 구름과도 같은 인파에 둘러싸여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이번에 뽑힌 성녀 후보님들은 모두 하나 같이 쟁쟁하시다던데?"
"그야 당연하지!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성녀 후보라는 자리에 오를 수 있겠어?"
시답잖은 잡담을 나누며 이번 성녀 후보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평신도들.
"흠흠, 우리 클라우디아라면 잘 해내겠지."
"물론입니다. 백작 각하. 클라우디아 아가씨라면 차기 성녀로 손색이 없으십니다."
성녀 후보로 뽑힌 자기 딸을 걱정하는 팔불출 백작과 그런 백작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백작을 진정시키려 애쓰는 시종.
"기왕이면 이번 대의 성녀처럼 정치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후보가 성녀가 되었으면 하는군."
"동감일세. 교단이 자꾸 세속의 일에 끼어들려고 하는 것은 지나친 월권이지."
거기에 성녀로 뽑히게 된다면 교황과 함께 거대한 교단을 이끌게 될 각 성녀 후보의 성향을 파악하러 찾아온 수도를 비롯한 각지의 귀족들까지.
저마다 생각하는 것은 달랐지만, 그들의 관심사는 하나같이 정식으로 교단의 인정을 받게 될 성녀 후보들이었고, 모두가 그녀들에게 어떠한 기대를 품고 있었다.
"입당을 허가하겠습니다. 모두 입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닫혀 있었던 본당의 문이 열리면서 본당으로의 입장이 허가되자, 구름처럼 몰려들었던 인파들은 하나의 파도가 되어 본당 안으로 들이닥쳤다.
"길더스텐님, 이 성수로 저희의 죄를 씻어 주시고, 다가오는 악의 유혹에서 벗어나게 해 주소서."
물론 본당으로 들어오기 직전에 성수로 손을 씻어내며 간단한 기도를 외우는 것은 빠질 수 없는 의식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많은 수의 사람을 받아들여야 하는 대규모의 미사이다 보니 본당 입구에 놓인 성수반 한두 개로는 이 인원을 감당할 수 없었고, 미사를 보조하는 복사들이 깨끗하게 닦아내어 반짝반짝 빛이 나는 은접시에 성수를 담아와 본당으로 입장하려는 신도들이 성수로 손을 씻을 수 있도록 도왔다.
"교황 성하께서 입장하십니다."
모여들었던 신도들이 성수로 손을 씻어내는 의식을 마치고 착석하자, 이번 미사의 보조역을 맡은 추기경이 교황의 입장을 알렸고, 본당 안에 모인 모든 사람의 시선이 입구 쪽으로 쏠렸다.
"교황 성하께 길더스텐님의 영광이 함께 하시길!"
새하얀 장백의 위에 순백색의 제의를 걸치고, 금실로 화려하게 장식을 수놓은 영대까지 착용한 교황의 등장.
신도들은 교황에게 길더스텐의 축복이 함께하기를 바라는 성가를 부르며 고개를 숙여 교황에 대한 존경을 드러냈고, 교황 역시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미사를 위해 찾아온 신도들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첫 번째 성녀 후보, 클라우디아 앨러나흐 자매가 입장합니다."
"오…성녀 후보님들이야."
미사가 진행 중인 본당 안은 성가를 부르거나 소리 내어 기도를 올리는 경우가 아니라면 큰 소리를 낼 수 없는 곳이었기에, 교황의 뒤를 이어 모습을 드러낸 성녀 후보들의 모습에 신도들은 소리를 죽여가며 감탄성을 터뜨렸다.
교황의 뒤를 곧바로 따라온 첫 번째 성녀 후보, 클라우디아 앨러나흐는 검은색 수녀복 위에 새하얀 제의를 두르고 있었다.
순백색의 제의.
그것은 영광과 결백, 기쁨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 성녀 후보가 지금까지 단 한 점의 티도 없이 모범적인 수도 생활을 이어왔음을 의미했다.
"두 번째 성녀 후보, 에리올 루펜 자매가 입장합니다."
그리고 뒤이어 등장한 것은 붉은빛의 제의를 두른 에리올 루펜.
붉은빛의 제의가 의미하는 것은 뜨거운 사랑과 피.
다시 말해 그녀가 어떠한 고난에도 흔들림 없이 신앙을 지키는 순교자에 가까운 인물이라는 사실을 신도들은 어려움 없이 추측할 수 있었다.
"세 번째 성녀 후보, 에린 에드피드 자매가 입장합니다."
세 번째로 등장한 성녀 후보는 여름철의 싱그러운 잎사귀처럼 푸르디푸른 녹색의 제의를 걸친, 에린 에드피드라는 이름의 소녀였다.
녹색의 제의가 상징하는 것은 생명의 희열과 희망.
그것은 에린 에드피드라는 소녀가 교단에서 행하는 의료 활동에 누구보다도 헌신해온 수녀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마지막 성녀 후보, 에일라 넬런 자매가 입장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등장한 성녀 후보, 에일라 넬런이 두른 제의는 자색이었다.
자색의 제의가 뜻하는 것은 죄에 대한 뉘우침과 속죄.
그것은 에일라가 한때 큰 잘못을 저질렀으나, 그 죄를 참회하고 다시 올바른 길로 되돌아온 수녀임을 의미했다.
"자색 제의라니…."
"성녀 후보가 자색 제의를 두르는 경우는 처음 보는군."
성녀 후보가 자색 제의를 두르는 것은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었기에 신도들 사이에서 작은 웅성거림이 일었다가, 교황과 성녀 후보들이 제대 앞으로 올라가자 이내 잦아들었다.
"길더스텐님께서 내리시는 빛과 질서, 은총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
교황이 팔을 벌리며 신도들에게 정식으로 인사를 건넸고, 신도들은 정해진 미사의 절차대로 이에 응답했다.
본격적인 미사의 시작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