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 성녀의 자격 (6)
* * *
─짝, 짝, 짝
대성당 가득히 차올라 숨이 막힐 것만 같았던 침묵을 깨뜨린 것은 갑자기 들려온 박수 소리였다.
"하하하하하!"
그리고 이어서 들려온 것은 조금 전만 하더라도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던 교황이 터뜨린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호탕한 웃음소리였다.
"'타인이 정한 자격 따위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 말하면서 자신은 반드시 성녀가 되겠다.'라! 그래, 성녀라는 자리를 노리는 성녀 후보라면 응당 이런 배짱은 있어야지!"
무척이나 흡족했는지 교황은 체통마저 잊고서 박장대소했고, 설마 교황이 이런 반응을 보일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람들은 모두 멍한 시선으로 교황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래. 에일라 자매의 대답은 나로서는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대답이나, 한 가지 지적할 점이 있다네. 아마 에일라 자매라면 그것이 무엇일지도 알고 있겠지."
"…교황 성하께서 말씀하시려는 것은 제가 독선으로 빠질 것을 염려하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내가 곧바로 내 대답의 약점을 시인하자, 교황은 다시금 손뼉을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곧바로 인정한다는 것은 그것 또한 각오를 마쳤다는 것이겠지. 그 나이에 벌써 그런 각오를 다졌다니, 참으로 보기 드문 일이야."
교황으로부터 조숙하다는 칭찬을 받게 되었지만, 솔직히 나로서는 그 칭찬이 달갑지 않았다.
'이미 난 스무 살도 넘은 어른인데 그런 말을 들어도 말이지….'
비록 겉모습은 에일라의 몸이라 어쩔 수 없다지만, 그 몸에 들어온 나는 어리다는 소리를 들을 나이는 이미 지난 어른이었으니 말이다.
[…키니아 제국에서 성년은 17세예요. 고작 2년 남았다고요.]
"과찬이십니다."
어째서인지 내게 항의하는 에일라를 무시하며, 나는 얌전히 교황의 칭찬에 감사 인사를 돌려주었다.
"좋습니다. 그럼 모든 성녀 후보들의 대답을 들었으니, 지금부터 세례 의식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웃음을 터뜨리기 전의 말투로 다시 돌아온 교황이 엄숙하게 선언하자, 사람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저마다 웅성웅성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건 교황 성하께서 에일라 후보가 가장 뛰어나다고 인정한 것이 아닌가?"
"아니지. 에린 후보에게도 앞의 두 후보와는 달리 무어라 반박하지 않았으니 아직 결과는 모르는 거야."
"그보다 에일라 후보는 소문대로 정말 대주교급의 신성력을 다룰 수 있는 건가?"
"아마 그렇겠지. 악마 하나를 일격에 거꾸러트리는 기적을 사용했다는데 그 정도는 오히려 과소평가된 게 아닐까 싶네."
"그런데 에일라 후보는 그…수도에서 악명이 높았던 악녀가 아니었나?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변할 수 있지?"
당연히 그 주제는 '누가 이번 시험에서 가장 큰 점수를 가져간 것인가?' 하는 논쟁과 갑작스레 성녀 후보로 합류한 에일라에 관한 이야기였다.
'뭐, 이 정도면 성공적이네.'
이 정도면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교황의 마음에 드는 대답을 하여 나름대로 점수를 따기도 했고, 미사에 참석했던 수많은 사람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에 성공했으니까.
'…에린을 제외한 다른 후보의 경계심이 크게 오른 것만 빼면 말이지.'
등 뒤로 나를 빤히 바라보는 클라우디아와 에리올의 시선이 느껴졌다.
호승심을 자극받은 듯 묘한 열기가 감도는 클라우디아의 시선과 찌르는 것처럼 날카로운 예기가 느껴지는 에리올의 시선.
아마 이후의 경쟁에서 만만찮은 견제가 들어올 것은 자명해 보였다.
'뭐, 그런다고 내가 눈 하나 깜짝할까.'
그녀들은 아직 20살도 넘기지 못한 소녀들이다.
거기다 저 둘이 문답에서 보인 모습을 바탕으로 추론하건대, 클라우디아는 귀족 가문이라는 배경을 바탕으로 성장한 온실 속의 화초, 에리올은 자기 생각과 다른 주장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하는 고지식한 원칙주의자였다.
'교황도 아마 그 사실을 꿰뚫어 보고서 허점을 찌르는 반론으로 후보를 흔들어 본 것이겠지.'
클라우디아가 성녀가 된다면 지나친 이상주의를 앞세우다 실패를 겪을 위험이 있고, 에리올이 성녀가 된다면 극단적인 목소리를 내는 세력에 힘이 실려 교단의 방향성이 극단으로 치달을 위험이 있었다.
'역시 교황 자리를 도박판에서 따낸 것은 아닌 모양이네.'
[…당연하잖아요. 그것보다 그거 신성모독이에요.]
다소 불경스럽게도 교황의 능력에 감탄하는 내 생각을 읽고 에일라가 태클을 걸어왔지만, 나는 능청스럽게 받아쳤다.
'그렇게 따지면 애초에 우리 존재부터가 신성모독 그 자체인걸. 우연이 겹쳐 만들어진 '천사'라니.'
[…부정할 수 없네요.]
우연이 겹쳐 만들어진 천사.
지금 에일라와 나의 상황을 표현하기에는 무척이나 적합한 단어였다.
에일라가 말하길, 본디 '천사'라고 함은 강력한 신성력을 한 사람에게 부여했을 때 막대한 양의 신성력을 제어하지 못하고 육체가 붕괴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어장치로 고안된 개념이라고 했다.
오로지 신성력의 제어와 활용에 모든 기능이 집중된 또 다른 인격…아니, 단순한 연산용 소프트웨어에 가까웠던 '천사'였지만, 계속해서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켜가며 실험을 강행하는 모습에 환멸을 느낀 에일라가 스스로 '망가지는 것'을 선택하면서 이 '천사'는 극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에일라가 자해를 통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 어떻게 된 영문인지 자유의지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을 '천사'에 에일라의 인격이 덧씌워지며 '천사'는 자신이 '에일라'라는 자각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자유의지를 가지게 되었어도, '천사'는 어디까지나 본체의 신성력 제어를 돕는 보조 인격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에일라의 몸은 메인이 될 다른 인격, 혹은 영혼이 필요했고, 마침 파장이 잘 맞았던 내 영혼이 불가사의한 이유로 에일라의 몸에 깃들게 된 것이 에일라로부터 들은 사건의 전말이었다.
'내가 네 기억을 살펴봤을 때 그런 기억은 없었는데?'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라는 생각에 의도치 않게 기억이 봉인되었던 모양이에요. 세이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비밀이니까요.]
내가 볼 수 있었던 에일라의 기억 중에 그런 기억은 없었던 것을 근거로 내가 의문을 제기하자, 에일라는 다소 미심쩍긴 하지만 나름의 근거를 들어 항변했다.
'그럼 네가 자해를 하기 전까지 며칠간의 기억이 없던 것도?'
[…그건 제 의도가 맞아요. 제 몸에 맞는 영혼이라 하더라도 무조건 호인일 리는 없으니까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볼 시간이 필요했어요.]
'자, 잠깐만. 그럼 너는 내가 깨어난 시점부터 뭘 하는지 그대로 보고 있었다는 말이잖아!'
내가 에일라의 몸으로 깨어나 벌였던 일들을 진짜 에일라가 모두 보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등에 소름이 쫙 올라왔다.
'그러면 시네티 마을에서 내가 했던 말이나 생각도….'
[…세이사를 소중히 여겨준 것에는 감사하다고 생각해요.]
갑자기 쥐구멍을 찾고 싶어졌다.
무슨 영웅담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세이사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던질 각오를 했던 것이 질풍노도와도 같았던 중학교 시절의 흑역사보다도 부끄럽게 느껴졌다.
[그래도 제 덕분에 기적을 손쉽게 사용할 수 있었으니 이건 비긴 걸로 쳐 두죠.]
'너….'
딴청을 피우며 이야기를 마무리하려는 에일라의 태도에 주먹이 부르르 떨려왔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이대로 거울에 주먹을 내지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무튼, 교단에 이 사실을 그대로 밝히면 바로 마녀 취급을 받으면서 화형대로 직행이겠네.'
결국 내가 택한 것은 이 주제에서 도망치는 것이었다.
[아마도요.]
다행히도, 에일라 역시 내 의견을 존중해서 더는 그 일에 관해서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그…'인공 천사'라는 실험을 벌인 조직에 붙잡혀도 평생 죽어라 이용만 당할 테니 그대로 인생이 끝장날 테고.'
[당연하죠.]
'…그럼 결국 성녀가 되는 것 말곤 선택지가 없잖아.'
그래, 이제 성녀가 되는 것은 선택의 범주가 아니라 반드시 되어야만 하는 일이었다.
'잠깐, 그러면 세이사나 다른 지인도 위험한 것 아니야?'
[그걸 걱정해서 일부러 모든 인연을 잘라내려고 했었죠. 상황이 이렇게 되면서 쓸데없는 짓이 되어버렸지만 말이죠.]
게다가 세이사를 비롯한 지인들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성녀의 자리는 결코 다른 후보에게 양보할 수 없었다.
요컨대, 교황의 질문에 내가 대답으로 내놓은 말은 반드시 성녀가 되겠다는 창대한 포부보다는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기인한 것이 더 컸다.
'뭐, 잘 풀렸으니까 됐지.'
셰익스피어도 희곡의 제목으로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All is well that ends well. (끝이 좋으면 다 좋다)'라고 말이다.
*
교황과 성녀 후보들 사이의 문답으로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지만, 교황이 성녀 후보들에게 세례를 주는 의식은 별다른 차질 없이 물 흐르듯 부드럽게 진행되었다.
"자매는 길더스텐 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한 명의 목자로서, 길더스텐 님의 올바른 가르침을 방황하는 이들에게 베풀 것을 맹세합니까?"
먼저 교황이 이렇게 선창하는 것으로 세례식의 시작을 열었다.
"맹세합니다. 제 모든 삶을 길더스텐 님의 가르침을 베푸는 것에 바치겠습니다."
그러면 성녀 후보들은 고개를 공손히 숙이며 교황의 앞에 무릎을 꿇고, 세례식을 위해 준비된 성수반을 이번 의식에서 부제 역할을 맡은 추기경이 가져오면 교황이 그 성수반에 담긴 성수를 두 손 가득히 떠서 성녀 후보들의 머리 위로 부어주었다.
'침례가 아닌 게 어디야.'
물을 머리 위로 붓는 방식이기에 머리가 물기로 축축해졌지만, 완전히 물에 몸을 담가야 해서 의식이 끝나면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는 침례를 생각하면 참을만했다.
"이것으로 자매들은 새로이 태어나 길더스텐 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성녀 후보가 되었습니다. 자매들의 길에 길더스텐 님의 위광이 함께하기를."
"길더스텐 님의 빛과 질서, 영광이 함께하기를 바라나이다."
교황이 세례식이 끝났음을 선언하고, 나를 포함한 성녀 후보들 모두 정해진 기도문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것으로 세례식이 끝났다.
"새로이 성녀 후보가 된 자매들은 모두 이것을 받아주십시오."
그러나 그것이 모든 의식이 끝났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성수반을 가져왔던 추기경이 물러났다가 흑요석처럼 새까맣고 반질반질한 보석이 여럿 박힌 목걸이를 은쟁반 위에 올려서 가져왔고, 그 목걸이는 성녀 후보들에게 하나씩 분배되었다.
"지금 자매들에게 나눠주는 이 목걸이에는 보석의 빛을 가리는 기적이 걸려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저 까맣고 반질거리는 돌멩이처럼 보이지만, 자매들이 성녀의 자격에 합당한 업적을 이루었다고 목걸이가 판단한다면 이 보석은 그 어떤 보석보다도 찬란하게 빛나는 보석으로 변할 것입니다."
[…기적으로 본래의 빛을 가렸다면 칠요의 성석이네요. 아마 칠요의 성석을 가장 많이 빛나게 한 후보가 다음 성녀가 된다는 의미겠죠.]
교황의 설명을 들은 에일라가 묘하게 굳은 목소리로 부연 설명을 해왔다.
'칠요의 성석?'
['서약의 열쇠'를 만드는 라플리움도 무척 비싼 보석이지만, 칠요의 성석은 더해요. 저 목걸이에 박힌 칠요의 성석 하나만 해도 웬만한 영지의 성 한 채를 살 수 있을 정도니까요.]
'이런 미친.'
나는 에일라의 설명에 경악했다.
그렇게 비싼 보석을 하나도 아니고, 열두 개나 박아넣은 목걸이를 성녀 후보에게 하나씩 나눠준다고?
그냥 이 목걸이 들고 다른 나라로 도망가면 평생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세이사도 같이 데려가야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