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다시 보니 성녀 같다-43화 (43/80)

〈 43화 〉 전조 (7)

* * *

'대체 무슨 생각이지? 성녀 후보와 성기사를 앞에 두고 악마화라니….'

가면을 쓴 수수께끼의 인물이 보인 행동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대응이었다.

길더스텐을 모시며, 길더스텐의 은총을 내려받아 성스러운 힘을 휘두르는 성기사나 성직자는 악마에게 있어 천적이나 다름없는 존재다.

길더스텐이 아닌 다른 신을 모시는 종족들이 다루는 신의 권능 역시 악마들에게 있어 효과적인 공격수단이긴 하지만, 악마들의 성질인 어둠과 혼돈과는 상반되는 빛과 질서의 힘을 다루는 길더스텐의 권능과 비교했을 때, 그 효율성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다시 말해, 다른 신을 믿는 사제가 자신이 믿는 신의 권능을 빌려 악마를 공격해서 주는 피해를 1이라는 기준점으로 놓을 때, 길더스텐의 권능을 사용하는 사제가 악마를 공격했을 때 줄 수 있는 피해는 개인 기량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략 4~5의 피해를 주는 것이 가능하다.

그야말로 극 상성이라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악마가 자체적으로 지닌 말도 안 되게 뛰어난 신체적 능력과 무시무시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마력은 그런 이점을 가지고도 악마를 상대하기 어렵게 하는 요소였다.

'그래도 시네티 마을에서 봤던 그 악마보다는 약해.'

이번에는 방책을 사이에 두고 있었던 시네티 마을과는 달리 거리가 무척이나 가깝다는 문제가 있었지만, 내가 시네티 마을에서 했던 것처럼 기적을 사용하고, 이 자리에 있는 두 성기사인 티롤프와 칼린이 나서준다면 에나프 남작을 비롯하여 악마로 변이한 이들 모두를 쓰러뜨리는 것은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면을 쓴 수수께끼의 인물은 에나프 남작과 그 수하들을 악마로 만드는 것으로 우리를 충분히 압도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리고 자리를 떠났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지? 굳이 나와 티롤프, 칼린의 수가 변이한 악마들에 비하면 밀린다고 해도, 만약을 대비해서 지원을 요청한 이단심문관들까지 온다면 쉽게 토벌이 가능할 텐데?'

[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놈들은 그런 생각도 하지 못할 정도로 수가 얕은 자들은 아니에요. 분명 무언가가 있어요.]

에일라와 의견을 교환해 보아도, 놈들이 목적으로 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는 답이 나오지 않았다.

"…으으."

그리고 그 해답은 갑자기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바닥에 주저앉은 티아에게서 찾을 수 있었다.

"뜨, 뜨거워! 몸이 뜨거워!"

작열감을 호소하며 몸을 부르르 떠는 티아.

혹시 불의 신을 모시는 포티아족 특유의 증상인가 싶어 같은 포티아족인 칼린에게 설명을 요구하는 시선을 보냈지만, 칼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어릴 때부터 키니아 제국의 길더스텐 교단에서 거둬져서, 포티아족의 특징은 사납고 빨간 머리를 가진단 것 말고는 잘 모름다!"

"그러면 일단 저 악마들부터 처리해 주세요!"

"말하지 않아도 그럴검다!"

칼린에게서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하고, 일단 티아를 이단심문관들이 대기하고 있는 저택 외부로 끌고 가려다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잠깐, 그 가면…. 분명 '꿈의 노예'라고 했었죠…."

가면을 쓴 정체불명의 인물이 에나프 남작과 그 수하들을 악마로 변이시키면서 했던 주문.

그 주문에는 분명 '꿈의 노예'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그 가면을 쓴 정체불명의 인물이 속한 조직과 악마가 손을 잡고 키니아 제국 내부에 퍼뜨린 마약은 '뤼네의 꿈'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리고 티아 이글라스는 이 '뤼네의 꿈'을 일종의 진정제처럼 여겨, 포티아족 특유의 성급하고 감정적인 성격을 누르는 용도로 오랫동안 복용한 전적이 있었다.

이 사실들을 조합한다면?

"으…아아아아…!"

연신 괴로운 비명을 질러대며 몸에 불이라도 붙은 사람처럼 바닥을 구르던 티아의 몸에서 조금씩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머리에 뿔이…!"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티아의 머리에서 붉은 빛을 띠는 뿔이 조그맣게 돋아난 것이었다.

에나프 남작과 그 수하들이 겪었던 악마로의 변이는 상당히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지만, 그다지 신실하진 않았어도 길더스텐을 모시는 수녀원 생활을 하고, 시네티 마을에서 다른 수습 수녀들과 마찬가지로 길더스텐의 권능을 빌려 기적을 사용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인지, 티아의 변이는 상당히 느린 속도로 진행되고 있었다.

"…최악의 상황이에요."

[…상황이 이렇게 된다면 이단심문관들을 부르는 선택은 할 수 없겠군요.]

티아가 보이는 것은 분명히 악마화의 전조증상이었다.

그리고 악마와 이단에 관해서는 결코 타협이나 자비가 없는 이단심문관들이 악마화의 전조증상을 보이는 티아를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었다.

분명 티아를 마녀로 지정하거나, 악마로 취급하여 악을 정화하는 성화로 다스릴 것이 분명했다.

'외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인간에서 악마로 변이한 이들을 물리치는 것은 그렇다 쳐도, 티아의 악마화는 어떻게 저지하지?'

이전에도 언급하였지만, 에일라가 일종의 신성력 제어기라 할 수 있는 '천사'로서의 기능에 심각한 하자를 만들어놓은 상태였기에 내가 사용하는 기적은 출력의 조절이 상당히 불안정한 상태였다.

즉, 악마화를 어떻게든 늦춰보겠다고 티아의 몸에 내 신성력을 불어넣었다가는 티아의 몸에 뿌리내려 악마화를 촉진하는 사악한 기운과 내 신성력이 충돌하여, 이전에 내 기적에 당했던 악마처럼 티아가 재가 되어 사라질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뜨거워…불…전쟁…피…."

하지만 내가 예상 밖의 상황에 당황하고 있는 동안에도 티아의 악마화는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다.

더불어 악마화와 함께 포티아족으로서의 본능이 발동되기라도 했는지, 포티아족이 신앙하는 플레온을 상징하는 요소인 불과 전쟁을 몽롱한 시선으로 언급하기 시작한 티아의 정신은 분명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시간이 없어.'

지금은 팔자 좋게 고민이나 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우선 지금 전력이 될 수 있는 사람은 나와 티롤프, 칼린, 그리고 황실 호위대 소속이라는 필라스 정도가 최대다.'

우선 아덴츠 위클라인과 아이셀 오스라드는 전력에서 제외했다.

그들이 악마에 맞설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신체 능력을 지닌 것도 아니었고, 아니면 악마에게 유효한 타격을 줄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이들은 셀린 영애를 곁에서 지키는 역할을 맡았다.

특히 조금 전만 하더라도 날뛰던 아덴츠의 모습은 졸렬하다면 무척이나 졸렬한 모습이었지만, 지금 내게 그들에게 쓴소리를 쏟을 신경 따윈 없었다.

'졸개 악마들은 저 세 명의 실력이라면 간단히 처리할 수 있을 거야. 문제는 에나프 남작이 변이한 저 악마.'

"바라나이다. 저에게 악에 맞설 힘을 주소서!"

"바라나이다. 저에게 악에 맞설 힘을 주시는 검다!"

티롤프와 칼린은 각각 성기사들이 전투 시에 사용하는 약식 기도문을 읊는 것으로 기적을 사용하며 사방에서 달려드는 악마에 맞섰다.

"……."

이에 질세라, 필라스 역시 키니아 제국의 기사라면 모든 검술의 기본으로 삼는 제국 검술의 자세를 취하며 달려드는 악마를 묵묵히 베어 넘겼다.

"크, 하하! 고, 작, 이거냐!"

제대로 된 발음을 하지 못해 괴성만 질러대는 다른 악마들은 키니아 제국 내에서도 한 손에 꼽는 기재라 불리는 세 기사의 실력에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졌지만, 에나프 남작이 변이하여 만들어진 악마만큼은 어눌한 말투로나마 인간의 말을 하면서 그들의 공격을 막아내거나 회피했다.

아직 추측에 불과하지만, 같이 악마로 변한 졸개들보다 더욱더 강하게 악마화 마법의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했다.

우선 저 악마부터 처리하지 않으면 악마화가 진행 중인 티아를 구하는 것은 더욱 늦어지리라.

'에일라, 준비해줘.'

[알았어요. 하지만 여전히 출력 조절이 어렵다는 것은 유념해 두세요.]

에일라가 이전처럼 기적을 사용한 뒤에 기절할 위험성을 경고했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경고를 받아넘겼다.

시네티 마을에서처럼 거창한 기적을 사용할 생각은 없었다.

그랬다가는 바깥에서 대기 중인 이단심문관들이 이상을 눈치채고 저택 안으로 돌입할 것이고, 티아를 지킬 수 없게 된다.

그렇기에 이번에 사용할 기적은 '은밀함'을 보장해 주는 동시에, 악마와의 싸움에서 도움이 될 수 있는 기적이어야만 했다.

["길더스텐 님의 비천한 종이 이 자리에서 엎드려 청하나이다. 이 대지에 축복을 내리시어, 사악한 것들이 감히 이 대지에 발을 붙일 수 없게 하시며, 어리석은 이가 이 대지에서 벌어진 참극을 볼 수 없도록 그 모습을 감춰주소서."]

나와 에일라가 동시에 외우기 시작한 기도문.

그 기도문은 '성역 선포'라 불리는 기적을 사용할 때 외우는 기도문이었다.

["지고한 천상의 빛과 질서가 이 대지 위에서도 이루어질 것을 믿나이다."]

'아멘'처럼 기도를 마칠 때 덧붙이는 문구까지 마치자, 나를 중심으로 하여 기적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아, 아악! 무, 슨짓을 한, 거냐!"

찬란한 금빛으로 빛나는 장막이 주위를 감싸듯이 펼쳐졌고, 그 장막이 저택 내부를 뒤덮으며 자신을 스쳐 지나가자 악마는 괴로움에 비명을 질렀다.

'성역 선포'는 일정 범위에 일종의 결계를 구축하는 기적이었다.

기적을 사용한 사제가 지정한 범위 안의 상황은 성역 바깥에 있는 이가 보았을 때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보이게 되며, 그 모습은 목격자가 성역에 절대 접근하지 않도록 환상을 투영한다.

더불어, 성역 내에 존재하는 모든 악마는 성역이 구축되면서 퍼져나가는 빛의 장막에 영향을 받아 온몸이 타들어 가는 고통을 느끼는 동시에, 능력에도 여러 가지 족쇄가 걸린다.

"에, 에일, 라 넬,런! 네, 이, 년…!"

악마는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기적을 사용한 것이 나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를 향해 톱날과도 같은 팔을 휘둘러왔다.

"네 상대는 우리다. 악마."

"…죽어라. 악마."

진한 살기를 담아 휘둘러지는 악마의 팔을 티롤프와 필라스는 각각 한쪽 팔을 담당하는 것으로 막아냈다.

"으아, 에일라 님이 기적을 써 줬는데도 무시무시한 속도임다. 그래도 이러면 도망은 못 갈검다!"

그리고 짐짓 너스레를 떨며 칼린이 악마의 정수리를 향해 기적으로 신성력을 담은 검을 내려쳤다.

"크, 아악! 이, 이렇, 게 끝, 날 수 없,다…!"

칼린의 신성력이 담긴 참격을 맞고 머리가 하얗게 불타오르기 시작하면서도, 악마는 그 끈질김을 발휘했다.

"크윽!"

"윽!"

인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완력을 지닌 악마의 특성을 십분 발휘하여, 팔을 거칠게 휘두른 악마가 자신을 가로막았던 티롤프와 필라스를 떨쳐내고 무작정 나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최후의 발악이라고 할 수 있는 악마의 행동.

하지만 그 발악은 아무런 성과도 남기지 못했다.

"사라지세요. 흉물."

기도나 경전의 구절을 외울 필요도 없이 즉시 사용할 수 있는 기적인 '성스러운 화살'. 아니, '성스러운 창'은 악마의 몸통을 꿰뚫으며 악마가 마지막 단말마를 토해내게 했다.

"아, 안, 돼에! 아, 아악!"

온몸이 신성력에 노출된 악마는 시네티 마을 때도 그랬듯이, 온몸이 새하얀 불꽃에 휩싸이며 재가 되어 사라졌다.

"이야, 굉장했슴다! 성스러운 화살을 그렇게 쓰는 사람은 처음 봤슴다!"

"칼린, 저보다는 우선 티아를 살펴주세요. 아직 늦지 않았으니, 지금 티아에게 신성력을 주입해 준다면 저들처럼 악마로 변하지는 않을…."

기적을 사용한 대가로 점점 흐려지기 시작하는 정신을 필사적으로 다잡으며, 나는 나를 향해 대단하다며 호들갑을 떠는 칼린에게 마지막 당부를 남기고 의식을 잃었다.

[고생했어요. 잠시 쉬세요. 시후.]

'그래, 잠깐 잔다…. 이번에도 고마웠어….'

의식이 암전하기 직전의 짧은 시간.

에일라는 내게 잠시 쉬라는 인사를 건넸고, 나 역시 에일라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며 눈을 감았다.

[천만에요.]

어째서일까, 에일라가 대답하는 그 목소리가 내게는 무척이나 따스하게 느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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