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하루가 멀다 하고 조정에서 풍겨오는 피비린내가 역겨웠던가.
충선이 세월보다 일찍 쇠해버린 몸, 요양이나 하며 여생을 보내겠노라고 사온서를 나온 것이 벌써 한 달 전이었다.
관직을 내려놓자마자 오래전부터 눈여겨보았던 산 중턱 집터를 구해 술도가를 세우고, 그저 소일거리로 삼던 차 또한 본격적으로 다루기 시작하였다.
본디 물과 함께 섞이는 것은 주정이든 차든 같은 성질이라.
가향주의 일인자라 불리던 충선은 차에 척박한 조선 땅에서도 다도의 꽃을 피워내기 시작했다.
그간 바쁜 탓에 자주 왕래하지 못하던 왕 노인과도 이때쯤부터 다시 왕래를 시작하였다.
오가는 거리만 하여도 천 리는 족히 넘는지라.
그럼에도 두 노인은 늘그막에 귀한 벗을 보기 위해 기꺼이 먼 길을 오르곤 하였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보내며 평온하게 여생을 보내던 어느 겨울.
늙은이 허허벌판에서 동지섣달 귀신에게라도 홀릴까.
팥이라도 전해주련다, 해괴한 핑계를 대고서 충선은 치원 심 다점으로 향하였다.
대한까지 맞이하고 한양으로 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더라.
하여 매일같이 왕 노인의 애정 어린 구박을 받으면서도 충선은 아예 다점의 다락방을 차지하고 객식구로 지냈다.
그러던 중, 유난히 눈보라가 심하게 불어닥치던 어느 날.
한창 심혈을 기울여 차를 우리던 충선의 귀에 웬 여인의 처절한 외침이 들려 왔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알큰하게 술에 취해 입가심으로 차를 마시려 하는데, 갑자기 문밖에서 웬 울음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잠시 귀를 기울여도 들리는 것은 빈 나뭇가지를 흔드는 스산한 바람 소리뿐이라.
왕 노인은 괜히 소피만 마려워졌다며 충선을 나무랐다.
“소리는 무슨 소리? 이 염병할 노인네가 이제 귀도 망가졌나. 바람 소리잖은가.”
“분명 누가 우는 소리 같았는데…….”
“예끼! 노망난 늙은이 같으니라고. 동지도 지났는데 이 양반이 뒤늦게 귀신에 홀렸나.”
“젠장, 이 노인네가 조선말이라곤 욕만 할 줄 알아 가지고. 말 곱게 안 할 텐가?”
“이게 다 자네한테 배워먹은 말본새 아닌가. 이제 와 고치라 한들 누굴 보고 고치는가? 콩 심은 데서 콩 나고 팥 심은 데서 팥이…….”
“쉿!”
그때, 또다시 늙은 귀를 건드리는 가냘픈 외침에 충선이 재빨리 입술 위로 검지를 세웠다.
두 노인 다 숨소리까지 죽이고 가만히 귀를 기울이니.
“……거두어 주시오! 우리 아이 좀……!”
과연 충선의 말대로 바람 소리에 웬 여인의 울음소리가 섞여 있었다.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신음에 찬 절규 소리는 그 잠깐 새에도 수없이 심 다점 문을 두드려댔다.
미약하게나마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도 들렸다.
두 노인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의자를 박차고 밖으로 나왔다.
한 치 앞도 보기 힘든 눈 폭풍 속에서, 사립문 밖 두 사람의 인영이 보였다.
“거 뉘시오? 뉘신데 이 밤에 장사 끝난 다점에 온 것이오?”
“우리 아이 좀…… 아이 좀 제발 숨겨…….”
추위에 입술이 얼어붙은 것인지, 아니면 본디 이 땅 주민이 아닌 것인지 여인은 서툰 여진어로 같은 말을 반복하였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사립문을 짚고 겨우 버티고 선 여인과 달리, 사립문 안에 이제 겨우 두 돌이나 지났을까 싶은 어린 계집이 진 빠진 울음을 흘리고 있었다.
이 황무지 같은 땅에 어찌 이런 모녀가 헤매고 있다던가.
의아함도 잠시, 충선이 다급한 목소리로 여인을 가리켰다.
“이보게, 저 여인 몸이 심상치 않네! 당장 안으로 들이게!”
자세히 보니 여인의 너덜너덜해진 옷 위로 굳은 피가 덕지덕지 엉겨 붙어 있었다.
땟국물이라 생각하였던 것이 죄 피였던 것이다.
언뜻 보인 등 뒤는 더욱 심각하였다.
“조선…… 조선 사람이신…….”
하나 이미 늦었던 것일까.
억지로 목소리를 쥐어짜내 무언가를 물으려던 여인이 갑자기 입을 틀어막았다.
“욱……!”
여인은 크게 등을 들썩이며 휘청하더니, 이윽고 선지피를 한바탕 게워내고선 그대로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아앙, 엄마아!”
어미가 고꾸라지니 딸아이는 놀라 더욱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이대로 있다간 아이까지 잘못될 것 같은 터라.
“일단 안으로 들이세. 얼른!”
충선은 왕 노인과 함께 여인과 아이를 심 다점 안으로 들였다.
피를 토하고 쓰러진 여인은 이미 온몸이 만신창이였다.
피가 심하게 엉긴 옷자락을 조심스럽게 살피니, 뚫린 구멍 사이로 웬 나뭇가지 같은 것이 박힌 흔적이 있었다.
상처를 살피던 왕 노인은 이미 가망이 없다는 듯 다시 여인의 옷을 정리해 주었다.
“……화살이네.”
“화살?! 대체 누가……!”
“쉬이.”
왕 노인이 눈짓한 곳엔 따듯한 숭늉 한 잔으로 속을 달랜 어린 계집이 불기운에 노곤해져 곯아떨어져 있었다.
앞섶에는 무언가 집어넣었는지 불룩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아이가 깨지 않게 조심조심 그것을 꺼낸 충선이 일순 미간을 구겼다.
‘이 문양…… 분명 부인께서 갖고 계시던 것과 똑같은 것인데.’물결인 듯, 바람결인 듯한 것 위에 둥그런 원이 그려져 있고, 그 안에 꽃잎 두 장과 세 가닥의 꽃실이 뻗어 나온 문양.
분명 서현덕 장군의 부인인 숙부인 민 씨가 서신을 보내곤 할 때 몸종들에게 들려 보내던 통의 그것과 같은 것이었다.
‘하면, 설마 그 집에…….’충선이 심각한 눈으로 여인을 보았다.
그 사이 여인은 발작을 일으키듯 몇 번을 더 몸을 튕기더니, 이내 완전히 움직임을 잃고 말았다.
“……멎었네.”
여인의 코에 손가락을 댄 왕 노인이 고개를 내저었다.
어린 것 하나만 남겨두고, 손쓸 겨를도 주지 않고서 결국 이름도 없는 먼 타지에서 숨을 거두고 만 것이다.
왕 노인은 착잡한 눈으로 웬 대나무 통을 들고 있는 충선을 보았다.
“그 통은 무엇인가?”
“……아무래도 조선에 돌아가 봐야겠네.”
“갑자기?”
“내 아는 집에 무슨 변고가 생긴 듯허이.”
“설마 이 여인을 아는 것인가?”
“내 짐작이 맞다면, 그 여인은 내 오래전 은혜를 입었던 부인의 몸종인 듯하네. 자세한 것은 직접 가서 알아봐야 하겠지만.”
충선은 더 이상의 말을 아끼곤 날이 밝는 대로 바로 길을 떠났다.
요 며칠 이어진 폭설에 발 한 걸음 떼는 것조차 힘겨웠으나, 그럼에도 충선은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갔다.
마침내 달포 만에 한양에 당도하였을 때.
충선은 충격적인 소식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숙부인께서…… 돌아가셨다고.”
“예. 숙부인과 더불어 집안 어르신과 그 자식들까지 죄 참상을 당했답니다. 살아남은 것은 오직 종들과 첫째 아드님뿐이라고…….”
충선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 곧장 서 씨네 집으로 향하였다.
그저 산에 틀어박혀 가양주 빚는 소일거리나 해대던 그에게 민 씨는 처음으로 술을 팔게 해주시고 세상을 넓혀 주신 부인이라.
그녀가 아니었다면 언감생심 사온서는 꿈도 못 꿨을 충선이기에, 그에겐 젊은 부인이 그저 생명의 은인이나 마찬가지였더랬다.
세상에 염증을 느껴 은인에게조차 가벼운 인사만 남기고 속세로부터 귀를 막은 것이 끝내 후회로 남을 줄이야.
줄초상에 순식간에 폐허처럼 변해버린 집을 보며 충선은 쓰디쓴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
“혹, 박충선 옹 되십니까.”
서 가의 대문 앞에서 눈물짓는 그를 묵직한 목소리가 돌려세웠다.
뒤를 돌아보니 민 씨와 닮은 눈매의 한 사내가 서 있었다.
자신을 숙부인의 오라버니라 소개한 그는 오래전 여동생에게 말을 들어 알고 있었다며, 그러잖아도 충선을 찾고 있다 하였다.
끔찍한 저주에 걸린 자신의 조카, 민 씨의 아들을 위하여.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충선은 더 이상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하여 충선은 직접 심 다점으로 가는 대신 인편으로 연통을 보내었다.
여인이 남기고 간 그 아이를 거두어 키워 달라고.
그리고 보고 겪은 일들은 그저 우리 둘의 가슴에만 묻자고.
여인이 죽었다는 사실 또한.
처음엔 여인을 보낸 것이 필시 민 씨의 뜻이 있어서일 거라 생각하였다.
하나 떠도는 풍문 속 서 씨 가문을 이리 만든 것은 바로 조선 조정의 대신들이었다.
역모의 누명을 쓰고 죽은 서현덕 장군과 하룻밤 새 자격의 습격으로 아들 하나 남겨두고 몰살당한 일가.
그 모든 끔찍한 일들을 나랏일 하신다는 고관대작들이 꾸몄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근거 없는 풍문이라 하더라도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수는 없는 노릇.
임금조차 쩔쩔매며 어찌하지 못한다는 그들을 상대로 늙은 노인들과 어린 계집이 무얼 할 수 있겠는가.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빈 종이와 대나무 통은 이미 땅으로 돌아간 민 씨의 일가를 돌아오게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한 많은 삶이었겠지만 이미 세상이 외면해버린 일을 어찌할까.
덮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였다.
‘그 계집도 이 일로 어미를 잃었으니, 끔찍한 기억일랑 모두 잊고 조용히 지내기를 바랄 수밖에.’그렇게 단이는 자신의 이름도 잊고, 어미도 잊고, 출신조차 잊은 채 왕 노인의 손에서 자라게 되었다.
***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너희 이야기의 전말이다.”
충선의 말이 끝났음에도 선뜻 입을 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뚝, 뚝. 손등을 적시는 단이의 눈물 떨어지는 소리만이 적막을 두드릴 뿐이었다.
혼란스러웠다. 그저 죄 혼란스러웠다.
여진족이 아니라 조선인이라는 사실도 혼란스러웠고, 엄마가 자신을 버리고 떠난 게 아니라 끝까지 지키다 돌아가셨다는 사실도 혼란스러웠다.
무엇보다 엄마가 돌아가신 이유가 결의 집안에서 일어난 일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니 바닥이 훅 꺼지듯 아찔하기까지 하였다.
‘그래도…… 엄마가 나리를 해하시려던 것은 아니었구나.’이 와중에도 다행이란 생각이 드니, 단이는 안도와 설움이 동시에 북받쳐 흐느낌만 새어 나왔다.
온갖 감정들이 밀려와 황망해하던 그때.
“네가…… 정말 정이 딸이라고.”
넋이 나간 듯한 보선 어멈이 떨리는 손끝으로 단이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고개를 드니 보선 어멈의 눈가에도 이미 눈물이 한가득 고여 있었다.
“네가…… 그 아이였다고.”
보선 어멈은 단이를 끌어안고 숨죽여 울었다.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의 행동에 단이가 울음을 삼키고서 물었다.
“우리 어머니를…… 보선 아주머니께서도 아시어요?”
“알지. 잘 알지. 너무도 잘 알지…….”
그런 보선 어멈을 바라보던 충선이 물음에 대한 답을 물음으로 대신 건네주었다.
“한때 언니 동생 했다던 그 여인의 딸이 맞더냐.”
“맞습니다. 어쩐지 처음 봤을 때부터 낯이 익더라니…… 제 어미를 꼭 닮아선…….”
보선 어멈의 마지막 말에 단이는 결국 울음을 참지 못하고 그녀와 함께 감정을 터트렸다.
십수 년 만에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것도.
엄마가 결을 해할 사람이 아니란 걸 알게 된 것도.
무엇보다 자신이 여진족이 아닌 조선인이란 사실도, 모두 벅찰 만큼 간절했던 진실이었다.
“이봐.”
조용히 결을 부른 충선이 문 쪽으로 고갯짓을 하였다.
“우린 잠시 나가 있도록 하지.”
결 역시 두 여인에게 시간이 필요해 보이는 터라.
서로를 얼싸안은 채 우는 두 여인을 두고서 결과 충선은 잠시 자리를 비켜주기로 하였다.
문을 닫아준 뒤 밖으로 나오니, 이제는 제법 서늘한 공기가 결의 몸을 휘감았다.
“젠장……. 뭘 했다고 벌써 가을이야.”
충선이 벌써 노을이 지는 하늘을 보며 작게 투덜거렸다.
잠시 두 사람 사이에 깊은 침묵이 흘렀다.
충선의 말을 듣고 결 역시 생각이 많아진 까닭이었다.
뒷짐을 진 채 그런 결에게 충분히 시간을 준 충선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내 얘기를 전부 들었는데도 저 아이를 계속 곁에 둘 셈이냐.”
결은 충선의 시선이 닿은 하늘에 함께 눈길을 두며 말하였다.
“그러기에 더더욱, 저 아이를 보낼 수는 없습니다.”
“함께 있으면 더 위험해질 수도 있다.”
“제가 지켜낼 것입니다.”
“네 어미와 아비도 하지 못한 일을 네가 무슨 수로.”
결은 몸을 돌려 충선을 똑바로 응시하였다.
명백히 결을 도발하는 말이었으나, 그는 감정적으로 대하는 대신 굳은 의지만을 보여주었다.
“단이는 제 삶만큼, 아니. 제 삶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제게 소중한 아이입니다.”
마치 목숨을 건 맹세를 하듯.
“나라를 뒤엎는 한이 있더라도 저 아이만큼은 반드시 지켜낼 것입니다. 저 아이 어머니의 죽음이 헛되이 묻히지 않도록. 저 아이의 어머니를 보내셨던 저희 어머니의 결심이…… 헛되이 묻히지 않도록.”
충선은 그런 결의 눈동자를 지그시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돌려 다시 하늘을 보았다.
이미 자신이 어찌할 수 있는 지경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는 것처럼.
“한 나라의 장수라는 것이 나라를 뒤엎겠다는 말이나 하고……. 조선도 말세로구먼.”
쯧, 혀를 찬 충선은 삿갓을 다시 머리에 썼다.
“어지러운 것 좀 다 해결되고, 나중에 제대로 차 배우고 싶거든 보선 어멈과 함께 내 술도가에 들리라 전하거라. 뭐, 이미 내가 가르칠 것도 거의 없어 뵈긴 하다만.”
그 말만 툭 내뱉은 충선은 인사도 없이 그대로 발길을 돌렸다.
그래. 살아남은 이들은 살아남은 이들끼리 다시 살 방도를 궁리해야겠지.
설령 그 길이 낭떠러지만큼 위험한 길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이겨내는 것 역시 너희의 몫일 테니.
부디 그 앞길이 조금은 덜 힘들기를.
덜 아프기를.
충선은 마른 마음에 소원 하나를 새기고서 결의 집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