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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 아찔하게 흐르는-71화 (71/100)

71화

방 안에 홀로 앉아 있던 선정은 굳은 얼굴로 허공만 바라보았다.

그녀 앞에 놓인 다탁에선 이미 한 김 식은 차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본디 차란 손님 앞에서 직접 우려 그 온기를 고스란히 전하는 게 예이거늘.

선정은 곧 맞이할 손님에게 그 정도 예도 차릴 의향이 없다는 듯 차가 식도록 그저 내버려 두었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옹주 아기씨, 영의정 대감을 뫼시었습니다.”

문밖에서 고하는 소리에 선정의 서늘한 눈동자가 앞을 향하였다.

“들라 하게.”

곧 문이 양옆으로 열리며 준백의 얼굴이 나타났다.

“저를 찾으시었다 들었습니다, 옹주 아기씨.”

준백을 향한 눈빛 속에선 호의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가증스러운 속과 달리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입술을 늘이고 있는 낯짝을 보니 선정은 절로 속이 뒤틀렸다.

요 근래에 준백이 조정 대신들을 선동하여 부마 간택으로 조정의 분위기를 흩트리고 있다 들었다.

부마 간택에 관하여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단체로 사직을 표하는 상소를 올려 관직에서 물러날 것이란 겁박까지 했더랬다.

‘감히, 나를 정쟁의 도구로 썼겠다.’이미 혼기가 훌쩍 지난 옹주의 혼사를 두고 조정 대신들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것도 불쾌하였고,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 지어도 될 일을 이리 크게 부풀렸다는 것도 불쾌하였다.

한치 앞만 보고 이 자의 흉계에 걸려들어 아바마마께 밤잠 설칠 심려를 끼치게 한 것도 치가 떨리도록 수치스러웠다.

하나 무엇보다 분이 치미는 이유는, 결과 단이의 목숨을 빌미로 자신의 처지를 우습게 만들었다는 점이었다.

자신이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이들을 인질로 삼아 말이다.

얼마나 어리석어 보였을까.

그저 눈앞의 불만 끄기에 급급하여 스스로 덫에 발을 들이고만 내 모습이.

“…….”

하나 준백이 충고한 대로 함부로 적대감을 드러내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

선정은 전처럼 적의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대신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적당히 사교적이고 적당히 좋아 보이는, 그러나 철저히 속을 숨기는 미소였다.

잘못된 길을 이제라도 바로잡기 위하여.

“일전에 말씀하셨던 일은 어찌 되고 있습니까?”

언제나 자신의 앞에서는 가감 없이 싫은 내색을 보이던 옹주라.

그녀가 처음으로 보이는 미소에 준백의 얼굴 위로 의아한 빛이 스쳤다.

그러나 곧 선정이 마음을 풀었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경계 없이 답을 하였다.

“저희 사대부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옹주 아기씨의 뜻을 받들려 노력하고 있사오나, 상감마마께옵서 법도에 어긋난다며 쉬이 들어주시지 않고 있사옵니다.”

“이미 관직이 있는 자인 데다 세운 공로 또한 적잖으니, 의빈으로 묶어 두기엔 아까우신 어심이겠지요.”

“그것이 더욱 서결 장군을 사지로 내모는 일임을 어찌 모르시는 것인지…….”

준백이 쯧쯧 혀를 차며 안타깝다는 듯 웃었다.

기실 웃음 속엔 딱한 마음보다는 이 상황을 우습게 여기는 뜻이 짙었지만.

선정은 부러 모른 척 외면하며 은근슬쩍 속내를 꺼내 보았다.

“아바마마께서 걱정하시는 바를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한 번 두 번 예와 법도를 어기는 선례가 생긴다면, 이후 질서에 차질이 생기는 법이지요.”

“무릇 질서란 정도(正道)이나, 어찌 모든 세상사가 정도만을 걷겠사옵니까. 수십의 세월을 거치다 보면 이리 예외도 생기기 마련이지요. 옹주 아기씨께선 이미 순령 옹주 자가의 선례를 아시지 않사옵니까.”

“저는…… 그리 어려운 길을 굳이 따라가고 싶지 않습니다만.”

그 말에 내내 웃음을 띠고 있던 준백의 눈매가 삽시간에 날카로워졌다.

“어찌 벌써 걸음을 무르시려 하십니까. 이제 겨우 시작인 것을.”

일말의 타협조차 없다는 듯이.

그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선정은 가슴에 얼음송곳이 박히는 것만 같았다.

하나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는 터라.

선정은 두려움을 삼키며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뜻을 내보였다.

“옹주 된 자로서 한낱 욕심으로 조정을 시끄럽게 만들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본디 순탄한 길이란 곧 허물어져 도태되기 마련이옵니다.”

“고작 옹주의 혼례로 시간을 허비하기엔 나라를 위한 더 큰 것들이 많지 않겠습니까?”

“이제 와서 발을 빼실 생각이십니까.”

준백의 형형한 눈동자가 바짝 조여졌다.

“약조를 어기면 가만두지 않겠다 하실 땐 언제고.”

남아 있던 한 줌의 미소조차 찻잔 위 연기처럼 증발하고 말았다.

한순간 뒤바뀐 공기의 흐름에 선정은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제아무리 숨긴다 하여도 준백의 앞에선 아직 투명한 수정 같은 선정이라.

그녀의 속내를 진즉에 파악하고 있던 준백은 가소로운 행태를 비웃듯 한쪽 입꼬리를 비틀었다.

“하니 옹주 아기씨께선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소신들이 다, 알아서 진행할 터이니.”

준백은 허락도 없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이곤 화선당을 나갔다.

선정은 준백이 나간 문을 노려보며 주먹을 쥐었다.

“영상은, 나를 그저 온실 속 화초로만 보는 게지.”

이런 순간에서조차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베갯잇만 적실 나약한 여인.

“한데 어쩌나. 그대가 생각하는 것만큼, 나는 그리 고분고분한 여인이 아닌데.”

선정은 단단히 결심 어린 눈으로 앞을 응시하였다.

그대가 그토록 쉬이여기는 그 목숨.

나도 한번 걸어보리다.

“천 상궁, 이 차들을 모두 버리게.”

“예, 옹주 아기씨.”

준백이 나갈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천 상궁이 궁녀들을 불러 다탁을 치우게 하였다.

누구 하나 마시지 않은 채 차갑게 식어버린 차는 전부 화선당 앞마당에 버려졌다.

흙을 붉게 물들인 차가 채 땅에 스며들기도 전에, 그 위에 차디찬 거적이 깔렸다.

밤사이 상선이 화선당으로 전하고 간 거적이었다.

***

하루가 지났다.

흰 소복만 입은 채 거적 위에 무릎을 꿇고 앉은 선정은 단 한 걸음도 벗어나지 않은 채 부마 간택을 거둘 것을 애원하였다.

“아바마마! 부디 소녀의 충심을 헤아리시어, 나라의 종묘사직을 해하려는 부정한 부마 간택을 멈추어 주시옵소서!”

이에 천 상궁과 화선당의 나인들까지 죄 바닥에 엎드리어 그녀와 함께 눈물을 흘렸다.

“부디 소녀의 청을 어심으로 살펴 주시옵소서!”

구슬피 울부짖는 목소리가 화선당 담장을 넘으니, 어명으로 그 앞을 지키고 선 상선은 눈물로써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틀이 지나자 차가운 가을비가 화선당을 적셨다.

선정은 내리는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읍소하였다.

하나 매일같이 따스하고 안락한 옹주궁에서만 지내던 그녀가 어찌 이 험한 일을 쉬이 견딜까.

화초 같던 몸은 눈에 띄게 쇠하여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듯하였다.

싸늘하게 식은 몸은 주체할 수 없이 떨려왔고, 파랗게 질려 갈라진 입술은 말 한마디 꺼내는 것조차 힘겨워 보였다.

눈물인지 빗물인지 모를 것이 하염없이 볼을 타고 흘러내려 그녀의 치맛자락을 적셨다.

“아바마마……. 부마 간택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그럼에도 선정은 목소리를 쥐어짜내 자신의 뜻을 전하였다.

과오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은 이 방법뿐이라.

헛된 욕심을 품은 것도 나의 죄.

감히 아바마마를 믿지 못하고 홀로 일을 저지른 것도 나의 죄.

하니 이것으로 자신의 죗값을 치를 수만 있다면, 그리고 준백으로부터 결과 단이를 지킬 수만 있다면.

이 한 몸 바쳐서라도 백 번이고 천 번이고 고개를 조아릴 수 있었다.

사흘이 지났다.

곡기까지 끊고서 버틴 탓에 선정은 앉아 있는 것조차 간신히 버틸 정도였다.

생기를 잃은 눈은 초점도 없이 겨우 앞만 바라볼 뿐이었다.

“옹주 아기씨!”

순간 눈앞이 어질하여 휘청거린 선정이 가까스로 바닥을 짚으며 몸을 지탱하였다.

천 상궁이 재빨리 부축하려던 찰나, 선정은 손을 들어 그녀를 제지하고서 도로 허리를 꼿꼿하게 세웠다.

아바마마께서 확실히 일을 매듭지으시기 전까진 결코 일어날 수 없었다.

힘겹게 고개를 들어 올리던 선정의 눈동자가 어느 한곳에 머물렀다.

‘……서결 장군.’비가 만들어낸 신기루인가.

갈망하는 마음이 빚어낸 환각인가.

저 멀리 서결이 보이는 듯도 하고 보이지 않는 듯도 하다.

언뜻 언뜻 스치는 잔상은 언제나 그랬듯 무뚝뚝하고 차가운 얼굴이었으나, 그 위에 처음으로 안타까운 빛이 어린 듯도 하였다.

아, 이런 흉한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았거늘.

내 그대에겐 어여쁜 모습으로 남고 싶었거늘.

그조차 욕심이었나 보다.

그대를 잠시나마 탐했던 것처럼.

“옹주 아기씨! 옹주 아기씨……!”

이제 남은 기력도 다하였는가.

어디선가 단이의 애타는 부름도 들리는 듯하였다.

환청이라도 좋았고, 환각이라도 좋았다.

그들이 자신을 걱정하여 준다는 생각만으로도 선정은 조금이나마 힘이 났다.

되레 그들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이 그저 버티는 것뿐이라는 게 한없이 미안할 뿐이었다.

선정은 애달픈 미소를 머금으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오늘따라 다향이 그립구나.”

젖은 눈가에서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끝이 얼마 남지 않음을 직감하였다.

선정은 이를 악물며 마지막 힘을 끌어내었다.

***

선정의 일은 삽시간에 온 관료들의 입으로 퍼져나갔다.

옹주가 직접 나서 부마 간택을 물려달라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거적에서 내려오질 않으니.

사상 초유의 사태에 조정은 연일 시끄러웠다.

처음엔 그저 치기 어린 항변이라 생각했던 준백도 사흘이 넘도록 식음을 전폐한 선정에 조금씩 초조해지기 시작하였다.

일이 이렇게 되니 대신들은 물론이고, 누구보다 크게 힘을 실어주던 중전 역시 서서히 등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예상치 못한 선정의 행보에 간택령에 대한 준백의 주장은 점점 힘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이선은 무슨 생각인지 그저 사태를 지켜보기만 할 뿐, 이렇다 할 확실한 뜻을 보이지 않았다.

침묵과 상황으로써 대신들을 압박하고, 그들 스스로 이 일을 포기하게끔 만들려는 생각임이 분명하였다.

이대로 가다간 얻는 것 하나 없이 되레 비난만 받을 위험이 높았다.

“대감마님, 옹주 아기씨께옵서……!”

설상가상 머뭇거리는 사이에 기어이 선정의 혼절 소식이 전해졌다.

옹주 하나쯤 죽는 것이야 아무 상관없었으나, 그로 인하여 이번 간택령을 주장한 이들에게 책임이 돌려진다면 그것이야말로 큰 파란이 될 수 있었다.

“선정 옹주, 감히 이런 식으로 발을 빼다니……!”

준백은 이를 바득 갈았으나 더 이상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결국 그날부로 조정에서는 선정 옹주의 부마 간택에 대한 이야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

며칠 후.

얼굴에 근심이 가득한 천 상궁이 초조한 눈으로 뒤를 살피다 걸음을 멈추어 섰다.

화선당 앞에 도착한 그녀는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억지로 움직여 선정에게 고하였다.

“옹주 아기씨, 서결 장군을 뫼시었습니다.”

“……들라 하게.”

멍하니 허공을 보고 있던 선정이 고개를 들었다.

곧 문이 열리자 그토록 그리워 마지않던 결이 보였다.

“소장 서결, 옹주 아기씨를 뵈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함께하는 찻자리인지라.

선정은 한순간 흔들리는 눈빛을 애써 다잡으며 그를 향해 웃어 보였다.

퍼석하게 마른 입술을 붉은 연지로 가려 보았으나, 쇠한 기운까지는 전부 덮을 수 없었다.

“와주어 고맙네. 그대를 내 다탁에서 보는 날이 오긴 하는구려.”

그리 말하는 선정의 얼굴은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 훨씬 더 야위어 있었다.

차가운 바닥 위에서 며칠이 넘도록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버티었으니, 여린 몸이 많이 상하고 만 까닭이었다.

결은 함부로 죄책감이나 동정을 드러내는 대신 그저 묵묵히 선정의 앞에 자리하였다.

선정은 애틋함이 가득 어린 눈으로 그런 결을 보다가, 이내 그를 부른 이유를 떠올리고선 말문을 열었다.

“내 얘기는 미리 듣긴 하였다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찻잔은 그대 몫까지 준비하였네.”

신묘년 생이 우리는 차가 아니면 마시지 못한다던 저주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무자년 생인 선정의 차는 결에게 그저 투명한 물과 같음이라.

나란히 소반 위에 준비된 화자잔을 본 결이 고개를 숙이며 답하였다.

“송구하오나, 감히 옹주 아기씨께 결례를 보일 수 없음을 용서하십시오.”

완곡한 거절이었다.

예견했던 바이나, 역시나 결에게서 듣는 거절의 말은 늘 아픈 것이었다.

선정은 씁쓸한 눈빛을 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입가를 길게 늘였다.

“그럼 다향이라도 취해주게. 그 정도는 괜찮겠는가.”

“황감하옵니다, 옹주 아기씨.”

“나야말로.”

선정은 곧 정성을 다해 차를 우리기 시작하였다.

그와 마주하고 있는 이 시간을 조금이나마 붙잡고 싶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차를 우렸다.

그럼에도 오늘따라 차는 어찌 이리 빨리 우러나는지.

한 다경이 짧은 시간의 대명사로 쓰이는 것이 이런 까닭임을 이제야 깨닫는 그녀였다.

곧 선정이 결의 앞에 찻잔을 놓아주었다.

결은 차를 대접한 선정의 마음에 보답하기라도 하듯, 찻잔을 들어 가까이서 향을 맡았다.

직접 마시진 못하여도 흠향으로 그 예를 다하는 것이라.

그 따스한 마음에 선정은 더욱 가슴이 미어졌다.

그녀는 얼른 차를 머금어 울컥한 감정을 가라앉혔다.

피어오르는 김을 바라보던 결이 먼저 입을 열었다.

“곧 한양을 떠나신다 들었습니다.”

천천히 찻잔을 내려놓은 선정이 뜻 모를 미소를 지었다.

“가을에는 온양행궁의 풍광이 그리 아름답다 하여, 내 처음으로 가보기로 하였네. 아마 남은 해는 그곳에서 모두 보내지 싶어.”

실상은 무리한 몸으로 인해 기력이 급히 쇠하여 요양 차 떠나는 길이라.

결은 그것을 알면서도 부러 모른 척해 주었다.

괜찮은지 묻는 것조차 그녀의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일이란 걸 잘 알고 있으므로.

그저 몸 조심히 다녀오시라, 그녀의 앞날만 걱정해 줄 뿐이었다.

하나 그녀에게 허락된 시간은 차를 우리던 시간보다 짧았으니.

“……이제, 가보아도 좋네. 내 너무 오랜 시간을 잡아둔 것 같아.”

아직 찻잔에 온기가 남았으나, 혹여 남은 미련이 그의 발목을 잡을까 싶어 선정은 이만 자리를 물렸다.

자리에서 일어난 결이 정중히 선정을 향하여 절을 올렸다.

“늘 강녕하시옵소서, 옹주 아기씨.”

“장군의 앞날에도 평안이 깃들기를 내 진심으로 바라겠네. 단이에게도…….”

차마 미안한 마음에 단이를 보지 않고 떠날 생각이라.

한순간 목이 멘 선정은 한껏 입꼬리를 올리며 겨우 말을 이었다.

“잘 지내라 전해주고.”

“그리하겠습니다.”

짧게 스친 시선 끝에 결이 발길을 돌렸다.

멀어지는 뒷모습에 내내 꾹 참아왔던 눈물이 차올랐다.

찰나 같던 짧은 세월 동안 어찌 이리 깊이 박혔나.

몇 번 마주치지 못한 얼굴이 어찌 이리 선명히 새겨졌나.

아른거리는 눈물 속에 갇힌 결의 잔상을 선정은 눈꺼풀로 모두 밀어내었다.

“흐윽…….”

행여 결의 귀에 울음소리가 들어갈까, 입을 막은 손 틈 새로 서러운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부디 자신의 과오를 잊어 주기를.

결과 단이, 두 사람의 앞날이 지금보다 평온해지기를.

선정은 닿지 않을 진심을 조용히 하늘에 빌어 보았다.

찻잔 위에 머물던 하얀 김이 마지막 물결을 끝으로 온기와 함께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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