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겨울이 시작된다는 입동의 날이 밝았다.
그저 계절이 부리는 변덕인가.
아니면 한 많은 이들의 구슬픈 울음인가.
전날까지만 해도 쾌청하던 하늘에 먹구름이 드리우더니, 자정이 지난 밤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빗줄기는 쉬이 그치지 않을 것처럼 고요한 회색빛으로 서서히 땅을 물들였다.
오늘은 결의 가족들을 위한 제사를 드리는 날이었다.
하여 달이 중천에 올랐을 때쯤 자리에서 일어난 단이는 이르게 준비를 마치고 방을 나섰다.
처마 너머로 손을 뻗자 하얀 손바닥 위에서 토독토독 물방울이 부서져 튀었다.
“나리…… 비 맞으시면 안 되는데.”
걱정스럽게 하늘을 보던 단이는 곧 짚으로 얽어 만든 도롱이를 쓰고 다신당으로 향하였다.
보선 어멈과 함께 진하디 진한 차를 준비하고 향도 가득 내왔다.
그것들이 비에 젖지 않도록 잘 챙겨 보선 어멈의 뒤를 따라갔다.
이윽고 도착한 곳은 세 칸으로 지어진 사당이었다.
마당으로 들어서자 이미 다른 종들이 바삐 움직이며 준비를 하고 있었다.
결은 그 가운데 행랑아범에게 지시를 내리며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뒷모습이 여느 때보다 쓸쓸해 보이는 건 비단 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지친 어깨를 끌어안아 다독여주고 싶었으나 지금은 쉬이 다가갈 수조차 없었다.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거리에 단이는 괜스레 가슴이 먹먹해졌다.
“가자.”
“예, 보선 아주머니.”
단이는 어렵게 시선을 거두고서 보선 어멈을 따라 사당 안으로 들어갔다.
한창 제사 준비가 진행되던 와중, 찾아올 이 없는 집의 대문을 누군가 크게 두드렸다.
이윽고 밖에 다녀온 덕원이 커다란 비단 함을 들고 돌아왔다.
“민 주수(主帥)께서 보내신 것이라 합니다.”
함을 받아든 결의 눈동자가 검은빛으로 물들었다.
민 주수는 결의 외숙부인 민지청이었다.
시집간 누이는 출가외인이라. 하나뿐인 여동생의 제사였으나 차마 함께할 수 없어 이리 제사 음식이나마 보태는 것이었다.
결은 함에 든 음식도 함께 상에 올리라 명하였다.
제사는 길고도 느리게 이어졌다.
달빛 아래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줄지어 놓인 위패마다 향을 피워 올렸고, 모사에 술을 따라 하늘과 땅에 깃든 신에게 제사를 알렸다.
축문을 읽는 나직한 소리가 이어지는 동안 촛대 위 일렁이는 불꽃을 향로에서 피어오른 연기가 휘감았다.
증조부모로 시작하여 부모와 친척, 형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가족의 제사를 단 한 사람이 지내는 기괴한 풍경이라.
하나 그 누구도 함부로 이에 말을 얹을 수 없었다.
그만큼 원통하고 한없이 서러운 제사라.
단이는 제사가 끝날 때까지 담장 너머에서 비 내리는 풍경에 잠긴 사당을 멀거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결이 합문을 위해 사당 밖으로 나왔다.
모든 문을 걸어 잠근 그는 고스란히 비를 맞으며 읍을 하였다.
단이는 당장이라도 달려가 결의 몸 위로 떨어지는 비를 막아주고 싶었으나, 감히 이 집안의 누구도 제사가 끝날 때까지 중문을 넘어설 수 없었다.
하여 단이는 애타는 마음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설움에 젖어가는 결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없이 쓸쓸하고 외로운 제사가 끝이 났다.
결은 덕원에게 일러 음복하고 남은 제수를 모두 준하여 이웃들에게 나누라 명하였다.
“그리고…….”
결의 뒤이은 명에 덕원이 잠시 눈을 크게 떴으나, 이윽고 고개를 숙이며 알겠다 답하였다.
가솔들은 곧 음식을 정리하여 저희들 먹을 것과 이웃에 나눌 것을 구분하였다.
제사가 끝난 뒤의 사당 앞은 쓸쓸한 적막만 남게 되었다.
보선 어멈을 도와 주변을 정리하고 유삼(油衫)을 챙겨 돌아왔던 단이는 텅 빈 사당을 보고선 결을 찾아 헤매기 시작하였다.
혹 그 사이 나가시었나, 다른 이에게 물어봐도 대문은 다시 열리지 아니 하였단다.
한참을 돌아다니던 단이는 문득 자신이 이 집에서 한 번도 걸음 하지 않았던 곳을 떠올렸다.
안채.
결의 가족들이 모두 끔찍한 모습으로 눈을 감았다던 그곳.
“…….”
잠시 고민하던 단이는 곧장 안채가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마침내 안채를 둘러싼 담장 앞에 도착했을 때, 단이는 안채의 마당에 홀로 서 있는 결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단이는 그의 시선이 묶여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저기가…… 그 연못이구나.’한양 땅에 있다 보면 알고 싶지 않아도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것들이 있었다.
결의 집 깊숙한 곳, 매립된 연못이 그중 하나였다.
한 서린 피를 머금어 결국 흔적도 없이 메꿔버렸다는.
결은 그 앞에서 하염없이 비를 맞으며 끔찍한 잔상을 보고 있는 듯하였다.
적막과 쓸쓸함이 사람이 되어 결이란 이름으로 태어났는가.
그는 침묵 그 자체가 되어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빛으로 텅 빈 땅만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런 결의 곁을 단이는 먼발치서 지켰다.
쏟아지는 빗줄기에 시린 입김까지 나왔지만 결을 혼자 둘 수는 없었다.
감히 그 마음을 헤아릴 수조차 없어서, 이렇게 함께 비를 맞는 것으로나마 그 아픔을 나누었다.
그에게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싶었다.
그리고 결의 뺨을 타고 흐르던 눈물이 옷을 전부 적실 무렵.
단이는 비로소 중문을 넘어 그에게 다가갔다.
이미 빗물에 옷이 죄 젖었으나 뒤늦게나마 그의 어깨에 유삼을 덮어주었다.
그러곤 차갑게 식은 손을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
멍하니 앞을 보던 결이 그제야 고개를 돌려 단이를 보았다.
“날이 무척 춥습니다, 나리. 고뿔에 드실 수 있으니 이만 들어가시어요.”
텅 비어 있던 동공에 단이의 목소리가 스며들어 서서히 초점이 생겼다.
그러나 하늘을 덮은 먹구름이 그의 눈에까지 드리웠는가.
눈빛은 곧 다시 생기를 잃었다.
결은 여전히 아무것도 없는, 그러나 그의 눈에는 여전히 생생하게 보이는 연못으로 눈길을 돌리며 나지막한 목소리를 흘렸다.
“가족들이 죽은 것은…… 나의 죄업이다.”
빗줄기보다 더 황량하고 차가운 목소리가 쓸쓸히 바닥으로 고여 갔다.
“그 수많은 조정 대신들이 피바람에 쓸려 간 것도 나의 죄업. 저주를 받은 것도 나의 죄업. 이 끔찍한 땅으로 다시 돌아온 것도, 나의 죄업.”
“…….”
“모든 것이 나의 죄업이라 여기면…… 차라리 편한 것을.”
나는 필사적으로 그 죄업들을 숨기고 싶었다.
하나 그 죄업과 상처들을, 저들은 한시도 가만 놔두지 않고 득달같이 달려들어 헤집고 벌리고 찢어발기려 하고 있다.
죄업을 외면하려 해서 이리도 괴로움이 끝나지 않는 것인가.
발버둥 치며 달아나려 해서 이리도 벌을 받고 있는 것인가.
매년 이 날이 돌아올 적마다 늘 생각하는 것들이었다.
그날 내가 조금만 더 빨리 깨어났더라면.
아니, 어머니가 나를 숨기려 하실 때 깨어났더라면.
아니, 아버지께서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쓰셨을 때 어떻게든 그 무고함을 밝히기 위해 뭐라도 했더라면.
그렇게 죽을지언정 함께 싸웠더라면.
그랬다면, 이렇게 혼자 살아남아 모든 죄업을 지고 살진 않았을 텐데.
“나는 나를 용서하지 못해 살인귀가 되었다. 끝도 없이 나를 벌하고 벌하며, 나의 죄를 잊지 못하게 하였다.”
“…….”
“이 지독한 슬픔을 그토록 잊고 싶어 하면서도.”
어찌 복수를 해야 할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칼날만 갈고 갈아 두 손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것 또한, 나의 죄업.
영영 씻을 수 없을 것만 같은 피가 진득하게 발밑에 고이는 것만 같았다.
피 웅덩이가 서서히 몸을 삼키려던 찰나.
그 애절한 붉은빛 위로 단이의 얼굴이 나타났다.
“저희 할아버지께서 그러셨어요. 슬픔은 잊는 게 아니라, 이겨내는 것이라고.”
심연으로 가라앉던 결의 가슴에 한줄기 빛 같은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그리고 어찌 나리께서 그 모든 걸 다 짊어지시려 하는 것이어요.”
결에게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간 단이가 그의 얼굴에 맺힌 빗물을 닦아주었다.
그러곤 맞잡은 손에 조금 더 힘을 주며 말했다.
“나리께서는 아무 죄도 없으시어요.”
“…….”
“혹여 죄가 있으시다면, 감히 외람되지만 제가 대신하여 용서해 드릴게요.”
결의 눈동자가 크게 일렁였다.
“그러니 스스로를 너무 몰아세우지 마시어요. 정말로, 나리께서는 아무 잘못 없으시니까.”
그 모든 죄업 가운데 만난 너는…… 나의 유일한 구원일까.
그제야 도롱이 아래 언뜻언뜻 젖어 있는 단이의 옷자락이 뒤늦게 결의 눈에 들어왔다.
미간을 살짝 좁힌 결이 단이의 젖은 소매를 꾹 짜듯이 문지르며 말했다.
“어찌 이리 있었으냐. 옷이 젖고 있질 않느냐.”
자신이 비를 맞는 것은 신경도 쓰지 않더니, 고작 빗물 자국 조금 생긴 단이의 옷에는 큰일이라도 난 듯 서두르는 결이었다.
따스하신 나리. 정이 많으신 나리.
단이는 그런 나리의 차가운 손을 제 두 손으로 감싸 녹이며 미소를 지었다.
“나리께서 계시는 곳이 곧 제가 있는 곳이니까요.”
밤바다에 잠긴 듯 한없이 검던 눈동자가 낮게 일렁였다.
언제나 홀로 짊어져야 했던 시간이거늘.
홀로 견디고, 홀로 버티고, 그렇게 홀로 싸워야 했던 한이거늘.
이 작은 아이는 놀라울 만큼 시간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어 준다.
혼자가 아니라는 듯이. 언제나 함께하겠다는 듯이.
기대도 된다는 듯이.
숨을 쉬는 것조차 괴롭던 가슴에 일순 숨결 같은 바람이 날아들었다.
단이가 불어넣어 준 바람이었다.
“……올해는 네가 있어 다행이구나.”
“저도 나리의 곁에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게 입가를 늘인 결은 단이의 손이 젖지 않게 다시 도롱이 속에 넣어 주었다.
그러곤 잠시 시간을 가늠해 보더니, 이윽고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네게 보여줄 것이 있다.”
“어떤 거요?”
결은 따라오라며 단이와 함께 안채를 떠났다.
그가 단이를 데리고 향한 곳은 그녀가 기거하는 방이었다.
방 앞에 뭐가 있나, 의아해하기도 잠시.
별채 한구석에 차려진 낯선 무언가에 단이가 작게 입을 벌렸다.
성대하다 싶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결코 단출하지도 않은 제사상.
그 앞에 적힌 지방문은 분명 단이의 어머니인 정이의 것이었다.
“나리……. 저건, 설마…….”
“소식을 들었는데 그저 넘기는 것은 도리가 아닌 듯하여.”
“…….”
“보선 어멈에게 듣자 하니 ‘그 일’이 일어난 새벽부터 너희 어머니와 네가 보이지 않았다 하더구나.”
차려놓은 상 옆에는 보선 어멈이 덕원과 함께 서 있었다.
결에게 말을 듣자마자 두 사람은 곧장 이리 와서 단이 어머니의 제사를 위한 상을 차린 것이다.
망자의 밥에 행여 빗물이라도 섞일까, 사당 대신 작은 판자를 얽어 지어주었다.
그것을 본 단이의 눈가에 금세 눈물이 핑 돌았다.
“망일을 알 수 없으니, 대강 같은 날에 제를 지내면 어떨까 싶어 이리 함께 차렸다.”
본디 노비가 죽으면 그저 묻어 주기만 하여도 후하다 이르거늘.
이리 제사까지 지내주니, 단이로선 몸 둘 바를 모를 만큼 감사할 따름이었다.
무엇보다 결 역시 떠난 가족들을 기리던 날이 아닌가.
조금 전 빗속에서 갈 곳을 잃고 허망하게 허공을 떠돌던 그의 눈빛이 아직도 선명한 단이였다.
그런 와중에 이런 것을 준비하였다 생각하니, 단이는 눈앞에 차려진 어머니의 제사상이 더욱 의미 깊게 다가왔다.
“그리 미적거리다간 날 다 밝는다.”
아까부터 붉어진 눈시울로 연신 숨을 고르던 보선 어멈이 단이를 재촉하였다.
단이는 울컥거리는 마음을 추스르고서 차려진 상 앞에 절을 올렸다.
‘너무 늦게 알아서 죄송해요, 엄마. 그래도 저는 이리 감사한 분의 손에 거두어져 잘 지내고 있어요.’
그러니 아무 걱정 마시고 지켜봐 주세요.
엄마가 그리 돌아가셔야만 했던 이유, 나리께서 꼭 밝혀주실 것이어요.
단이는 십수 년이 지난 지금에나마 진심을 다해 엄마의 명복을 빌었다.
그런 단이의 곁을 보선 어멈과 덕원, 그리고 결이 동트는 아침까지 함께 지켜주었다.
종일 비를 퍼부을 것 같던 비구름이 어느덧 걷히고 있었다.
***
새벽, 일찍이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난 정회는 벌써 한참이나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잠이 오지 않아 부족한 명자나 채울 생각으로 먹을 갈고 앉은 참이었다.
생각이 많을 땐 아무 글자나 적는 것이 도움이 되는 터라.
특히 오늘 같은 날에는 쓸모가 없어도 명자든 책의 글귀든 한 가지를 반복하여 적어 내리곤 하였다.
하나 몇 장을 채 넘기지 못하고 붓을 움직이던 손이 천천히 멈췄다.
언제나 복잡한 감정들이 얽히고설켜 있던 눈동자엔 오늘따라 더욱 많은 것들이 얽혀 있었다.
쓰다 만 명자 위에 멈춰 선 붓끝에서 먹물이 짙게 번져 나갔다.
“…….”
쓸 수 없게 된 종이를 보며 미간을 좁힌 정회가 새 종이를 펼쳐 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름 한 글자 쓰지 못하고 가만히 종이만 응시하였다.
잠시 후, 허공에 떠 있던 붓끝이 느릿하게 종이 위에 내려졌다.
붓은 명자에 적히는 이름과 관직 대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아래가 뚫린 동그란 원, 세 가닥의 술과 두 장의 꽃잎, 원을 받치는 물결 같은 곡선.
종이에서 붓을 뗀 정회가 그것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이내 지그시 눈을 감으니, 아득히 먼 기억 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였다.
‘정녕 이것이 제 이름자로 만드신 것이어요? 예쁘다……. 고마워요, 오라버니.’
말간 미소를 머금은 고운 입술, 백옥 같은 피부, 햇살을 품은 듯 따스하고도 아름다운 눈.
오랜 세월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얼굴이 그린 듯 선명히 떠올랐다.
한때는 그 여인을 위해 모든 걸 버려도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던, 단 한 사람만을 위해 살라고 한다면 지체 없이 그 여인의 이름을 말할 수 있었던…….
‘민선영.’
굳게 감겨 있던 눈꺼풀이 서서히 밀려 올라갔다.
그 아래 드러난 눈동자는 이미 후회와 한탄으로 퇴색되어 탁한 색을 띠고 있었다.
매년 그 여인의 망일이 되면 이토록 마음이 어지러워 헛된 생각을 하곤 했다.
지금이라도 모든 걸 되돌려 놓고 싶다는.
그녀의 아들…… 서결의 편에 서고 싶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