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세상 만물이 그러하듯 만남은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
이른 새벽부터 시작된 진통에 급히 의원을 부른 결은 산실 앞에 우두커니 선 채 초조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벌써 두 시진이 넘도록 이어지는 단이의 앓는 소리에 속이 다 문드러지는 것만 같았다.
의원이 무어라 말하는 소리에 단이가 또 한 번 숨을 참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내 맥이 탁 풀리는 소리와 함께 지친 숨을 고르는 소리가 이어졌다.
차라리 그녀의 곁에 있어 줄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산실에 아비가 들어가면 어미가 써야 할 기를 누른다는 말 때문에 차마 문 가까이 다가설 수조차 없었다.
기껏 할 수 있는 건 산파로 들어간 보선 어멈이 괜찮다, 잘하고 있다 다독이는 소리에 그 역시 가까스로 불안한 감정을 억누르는 것뿐이었다.
초산인 데다, 하필 어제 낮부터 체기가 들어 아무것도 먹지 못한 탓이라.
기력이 많이 떨어진 단이였기에 더욱 불안감이 커진 결이었다.
신이 있다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단이와 아이 모두 건강할 수 있게 해달라 빌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안과 밖에서 고통의 시간을 보내기를 한참.
“조금만 더 힘내십시오! 곧 아기가 나옵니다!”
“그래, 단이야! 할 수 있다, 조금만 더!”
두 사람의 다급한 외침과 함께 단이의 괴로운 신음이 들렸다.
순간 이성을 잃고서 산실 안으로 들어갈 뻔하였던 결은 가까스로 발을 멈추고서 눈을 질끈 감았다.
부디 조금만 더 힘을 내어주기를.
조금만 더 버텨주기를.
진심을 다하여 간절히 기도하던 그때.
“으아, 애! 으앵!”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애타게 기다리던 아기의 울음소리가 온 집 안으로 울려 퍼졌다.
힘이 빠진 결은 휘청거리다 간신히 기둥을 짚어 중심을 잡았다.
무어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짙고도 깊은 감정이 북받쳐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웠다.
그로부터도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드디어 보선 어멈이 산실에서 나왔다.
단이 옆에서 얼마나 고통을 함께하였는지, 녹초가 된 그녀의 얼굴도 땀으로 범벅이었다.
그럼에도 보선 어멈은 지친 입꼬리를 올려 환하게 미소 지었다.
“감축드립니다, 나리. 아드님이십니다.”
“단이는, 단이는 괜찮은 것이냐.”
“예. 조금 기력이 쇠하긴 하였지만 괜찮습니다. 들어가 보시지요.”
보선 어멈이 살짝 몸을 틀기 무섭게 결이 산실 안으로 들어갔다.
아궁이에 잔뜩 불을 떼어 더운 공기가 가득 찬 가운데 단이가 기진맥진한 얼굴로 누워 있었다.
“서방님…….”
눈앞이 흐릿한 와중에도 지아비의 얼굴만은 뚜렷하게 보인 터라.
단이는 결을 발견하자마자 다 쉰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곧장 그 옆에 꿇어앉은 결이 그녀의 손을 잡고 땀으로 흠뻑 젖은 이마를 쓸어주었다.
“잘하였다, 잘하였다. 정말 고생 많았다…….”
든든한 지아비로서 의연하게 말해주고 싶었는데, 핼쑥해진 단이의 얼굴을 보니 목부터 메어 제대로 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 고맙다, 고생했다, 잘하였다. 이 세 마디 말만 반복해서 읊조릴 뿐이었다.
단이 역시 뜨거운 눈물이 핑 돌았으나 억지로 울음을 삼켰다.
실은 많이 무서웠더랬다.
섬돌에 벗어 놓은 신발을 뒤돌아보며 저것을 다시 신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하였더랬다.
하나 까무룩 정신을 잃을 때마다 그녀를 버티게 하였던 것은 의원에 대한 믿음도 아니요, 보선 어멈의 응원도 아닌 바로 결이었다.
창호지 위로 서성이는 그의 그림자가 보일 때마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무너져버릴 그를 생각하며 악착같이 힘을 내었다.
세 가족이서 함께 무사히 만나자 약조하였으니까.
서방님께서 어떤 약조든 전부 지켜주셨던 것처럼, 나 또한 서방님께 약조한 것을 지켜야만 하니까.
하여 이렇게 무사히 우렁찬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단이는 힘없는 입술을 길게 늘이며 잡은 손에 여리게나마 힘을 주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서방님. 그나저나 우리 백호는…….”
때마침 의원이 아기를 보에 잘 감싸 단이의 품에 안겨주었다.
온 세상에 자신의 탄생을 힘차게 알리던 아기는 어미의 품에 안기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뚝 울음을 그쳤다.
그 신이한 광경에 결과 단이는 만감이 교차하여 넋을 잃고 아기를 바라보았다.
벌써부터 또렷한 이목구비는 누가 보아도 부모를 꼭 닮은 얼굴이었다.
“서방님을 꼭 닮은 것 같아요.”
“내 눈엔 단이 너를 더 닮은 것 같은데.”
“아니어요. 눈과 코가 서방님인 것을요.”
옆에서 후처리를 하느라 그 말을 고스란히 듣고 있던 보선 어멈이 산실을 나가기 전 흐뭇한 얼굴로 말을 보태었다.
“내 보기엔 두 분을 딱 반씩 닮았습니다.”
그 말에 서로 시선을 주고받은 단이와 결이 함께 웃음을 흘렸다.
이윽고 보선 어멈과 의원이 밖으로 나가자, 안에는 오롯이 세 가족만 남게 되었다.
그제야 비로소 긴장이 풀린 것일까.
편안하게 번진 웃음 가운데 따듯한 눈물이 각각의 눈에 더해졌다.
결은 단이의 뺨 위로 흐르는 눈물을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
그러곤 그녀의 이마에 깊이 입을 맞추며 말하였다.
“고맙다. 정말 고맙다, 단이야.”
젖은 눈을 지그시 감은 단이도 따듯한 온기를 느끼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 역시 다른 한 팔을 들어 결의 눈물을 지워주었다.
“전부 서방님 덕이어요. 서방님께서 저에게 이리 큰 선물을 주신 것이어요.”
“네가 아니었다면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러니 네가 나에게 준 선물이지.”
그때, 단이에게 안겨 있던 백호가 으앵, 하고 칭얼거리는 소리를 보태었다.
그 소리가 마치 자신의 공은 왜 알아주지 않느냐는 뜻 같더라.
“그래. 백호 네가 우리에게 준 선물이다.”
단이와 결은 함께 웃으며 사랑스러운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세상과 세상이 만나 비옥한 땅을 이루었으니.
이들 가족에게 더없이 완벽한 하늘이 펼쳐진 날이었다.
***
5년 후.
따스한 봄볕 아래, 나비 몇 마리가 마당에 흐드러지게 핀 꽃들 위를 팔랑거리며 날아다니고 있었다.
개중 한 마리가 꽃잎 위에 앉아 차분히 날개를 접었다.
나비가 평화롭게 꿀을 먹는 사이.
그 뒤로 보름달을 닮은 동그란 얼굴이 두둥실 나타났다.
검은색 복건 아래, 어미를 닮아 바둑알 같은 동그란 눈을 한 아이는 아비를 닮은 입술을 오므린 채 나비 구경 삼매경이었다.
멀리서 볼 땐 종이가 팔랑이는 것 같더니, 가까이서 본 나비의 모습은 생각보다 훨씬 더 어여쁘고 귀여웠다.
향기로운 꽃을 먹어서 이리 색이 아리따운가.
하늘 날며 노을을 훔쳐 이리 색이 아리따운가.
어떤 안료로도 이 나비의 색은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우와아…….”
제 콧바람에 다시금 저 멀리 날아가는 나비를 보며 아이가 아쉬움 섞인 감탄을 흘렸다.
때마침 저 멀리서 아이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곤아, 아버지한테 가자.”
“네에!”
아이, 곤은 재빨리 뒤돌아서 단이에게 도도도 뛰어갔다.
“그리 뛰면 넘어진대도.”
“차부를 주시어요, 어머니. 소자가 들겠습니다.”
아이는 해맑게 웃으며 짧은 팔을 쭉 뻗었다.
어머니가 다탁을 들고 아버지에게 갈 적이면 꼭 이렇게 무엇 하나라도 함께 거들려 하는 착한 아들이었다.
어린 것이 어찌 이리 점잖고 기특한지.
“그래, 착한 우리 곤이. 어머니 좀 도와다오.”
그러면 단이는 고사리 같은 작은 손에 작은 찻그릇 두어 잔을 쥐여 주는 것이었다.
두 모자는 함께 사랑으로 향하였다.
“아버지, 차를 들이겠습니다.”
또박또박한 곤의 말에 사랑문이 열렸다.
문을 연 결이 단이와 곤을 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곤이가 또 어머니를 도와주었구나.”
“예, 아버지. 어머니께서 혼자 다탁을 들고 가셔서 소자가 도와드렸습니다.”
“착하구나.”
그러자 사랑방 안에서 곤이 하는 말을 들은 손님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고 녀석, 말 한번 똑 부러지게 잘하는구나. 영특한 놈일세.”
“아저씨, 그간 강녕하시었습니까?”
손님, 성조를 발견한 곤이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하였다.
그 깜찍한 인사에 성조가 또 한 번 웃음을 터트렸다.
곤이 두 손에 찻잔을 꼭 움켜쥔 채 신을 벗고 앙금앙금 방에 올라섰다.
얼른 결의 옆에 얌전히 앉은 곤은 성조의 무릎에 앉아 있던 어린 소녀에게 방싯 웃어 보였다.
“안녕.”
그러자 혜정이 으응, 뜻 모를 칭얼거림을 흘리며 아버지에게 매달리다시피 몸을 돌렸다.
성조가 혜정의 등을 다독이며 나직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혜정아. 오라버니에게 인사해야지.”
하나 부끄러운 모양인지, 혜정은 댕기 드리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성조의 목을 더욱 꼭 끌어안았다.
“이 녀석이 집에 있을 땐 매번 오라버니, 오라버니 해놓고서, 오면 꼭 이리 앙탈이야.”
“아직 몇 번 만나질 못해 부끄러운가 보지요.”
푸스스 웃으며 함께 안으로 들어온 단이가 다탁을 내려놓고서 곤의 옆에 앉았다.
“혜정이 데리고 자주 놀러 오시어요. 우리 곤이도 혜정이 자주 보고 싶어 해요.”
“그래야겠어. 외동이라 그런지 외로움을 많이 타는 것 같아.”
성조는 저를 꼭 닮은 딸아이를 더없이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유배지에서 돌아온 성조는 오래지 않아 다시 관직에 복귀할 수 있었다.
아버지와 가문의 힘으로 걷던 탄탄대로는 아니었지만, 그 나름대로의 실력을 발휘하며 다시 처음부터 차근차근 정도에 오르는 중이었다.
복귀를 한 이듬해에는 지금의 아내와 혼례를 올리고 딸 혜정을 낳았다.
두 가족은 간간이 서로 왕래하며 가족처럼 지냈다.
“내자가 오늘 함께 오지 못해 많이 아쉬워하였으이.”
“아직 몸이 안 좋은 건가?”
“고뿔이 덜 떨어진 모양이야. 혹시나 옮을까 걱정하여 집에서 쉬라고 했네.”
“저도 같이 차 마시고 싶었는데, 아쉽네요.”
“예전엔 내가 우려 준 차를 제일 맛 좋다 해주던 사람인데, 단이 네 차를 마시고 나서부턴 매양 그때 마신 차 얘기뿐이야. 내 살다 살다 여인에게 질투를 할 줄이야…….”
성조의 투정 아닌 투정에 단이와 결이 서로 못 말린다는 웃음을 주고받았다.
한양으로 돌아와 한때는 관직이며 뭐며 다 버리고 속세를 떠날 생각까지 하던 성조가 저리 애처가로 변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지금도 그때 일을 꺼내들면 귀부터 붉히며 말머리를 돌리는 성조였다.
그때까지 차부만 유심히 지켜보던 곤이 혀 짧은 소리로 단이를 불렀다.
“어머니, 어머니. 이제 차가 다 우러난 것 같아요.”
“그래?”
곤의 말에 단이가 각 찻잔에 차를 따라내었다.
과연 알맞게 우러난 차가 고운 색과 향을 풍기며 찰랑거렸다.
누구를 닮았는지,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차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곤이었다.
참새 같은 입술로 호로록 차를 마시는 곤을 보며 결이 물었다.
“맛이 어떠하느냐.”
“아주 좋습니다, 아버지. 저는 어머니께서 내려주신 차가 세상에서 제일로 좋습니다.”
해맑은 곤의 답변에 어른들은 또 한바탕 귀여운 웃음을 터트렸다.
오랜 담소 후, 곤히 잠든 혜정을 안고서 성조가 집으로 돌아갔다.
단이와 결, 그리고 곤은 대청에 나란히 앉아 따듯한 차 한 잔씩을 들고서 달구경을 하였다.
특별한 말이 오가진 않았지만 세 가족에겐 여느 때보다 행복하고 편안한 시간이었다.
봄밤의 정취가 밤하늘에 별로 새겨져 달을 더욱 아름답게 꾸며주었다.
잠을 이기지 못하고 꾸벅꾸벅 조는 곤을 안아든 결이 남은 한 손으로 단이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곤의 새근거리는 숨소리를 들으며 서로 애정 가득한 눈빛을 나누었다.
달빛을 머금은 찻잔이 향긋한 다향을 풍기며 오래도록 그들과 함께하였다.
<다비, 아찔하게 흐르는>,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