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역공녀에게 후회는 필요 없습니다 (10)화 (10/109)

10화

10.

재밌기도 하지.

에이프릴의 모습을 보는 순간, 공작가에 어떤 복수를 할 것인지 명확해지다니.

“내가 커튼 열지 말라고 했잖아!”

덜덜 떨고 있는 에이프릴의 목소리에 불안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상처를 봐야 치료를 할 수 있잖아. 잠깐만, 진정하자, 응?”

살살 달래는 바라크의 말까지.

다리가 낫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함과 타인에게 다리를 억지로 보여준 것에 대한 수치심도 느껴졌다.

성력이 없는 신관들을 향해 돌팔이라고 부를 법했군. 성력이 있어도 쉽게 고치지 못했을 텐데, 성력이 없으니 더 어려웠겠지.

다리에 크고 작은 상처는 물론이거니와 사고로 인해 뼈가 잘못된 모양인지 다리 모양이 살짝 뒤틀리기까지 한 상태였다.

“성력을 가졌으니 고칠 수 있겠지? 그렇지?”

바라크가 애원하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난 에이프릴의 다리를 조심스럽게 쓸었다.

글쎄.

“뭐라고 말 좀 해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리만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에이프릴이 고함을 버럭 질렀다.

“통증은 어떻습니까?”

“보면 몰라? 너도 돌팔이야?”

도와주러 온 사람에게 할 말투는 아닌데. 내가 헛웃음을 짧게 삼켰다.

과거 공작가에서 나한테만 보였던 모습이었는데, 다치고 나서 예민해진 건지 바라크 앞인데도 숨길 생각은 없는 듯했다.

“……아파서, 걸을 수가 없어. 사고가 난 지 벌써 한 달 반이나 됐는데 아직도 아파.”

“…….”

“이만하면 답이 됐어?”

그렇겠지.

“앨런, 진통제는 만들 수 있겠어?”

“성력이 필요하다니까 진통제는 왜!”

“밤에 주무시긴 하셔야 하니까요. 아프면 잠도 못 잘 테고.”

눈을 부릅뜨고 있는 그녀를 보고 있을 때, 앨런이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네, 가능해요.”

“그래서, 성력으로 치료할 수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다시 한번 신경질적인 에이프릴의 목소리에 나는 살짝 굽혔던 무릎을 펴고는 대답했다.

“성력으로는 완벽하게 못 고칠 겁니다. 아마 대신전에 가도 똑같은 말을 들을 거고요.”

어지간한 성력으로도 못 고칠 상태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고.

말마따나 내가 가진 성력이라면 고칠 수도 있겠지만, 순순히 고쳐주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리고 그럴 의리도 없고.

지금 상황만으로도 에이프릴은 스스로가 절망 어린 상황에 처해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이 애가 이보다 더한 절망을 맛보기를 바랐다.

나와 비슷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아예 못 고친다는 말은 아니니까요.”

에이프릴의 다리 위에 손을 올리자, 손에서 깨끗한 하얀 빛이 은은하게 퍼져 나오고 있었다.

가까이서 처음 보는 성력에 두 쌍의 눈동자가 오롯이 내 손으로 향하는 게 느껴졌다.

뒤틀린 뼈가 움찔움찔 움직이면서 조금씩 자리를 찾아가는 게 눈으로 똑똑히 보였다.

뼈는 자리를 맞추고 있었지만 상처까지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고 있었다.

“뼈가…….”

울퉁불퉁해졌던 다리에 흉은 여전히 남은 상태이지만, 형태가 매끈하게 돌아오자 에이프릴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아직도 아프세요?”

내 물음에 청회색의 눈동자가 느리게 몇 번 깜빡이더니 격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프지, 않아.”

“다행이네요.”

“모, 못 고친다며? 고칠 수 있는 거였어?”

“어지간한 성력으로는 완전히 고치긴 어렵습니다. 통증은 잠깐 가신 상태이고요.”

“……잠깐이라면.”

“아마 뼈가 완전히 제자리에 붙기 전까지는 아플 거란 말이죠. 그리고 조심히 움직이셔야 하고요.”

아까 전의 날카롭고 오만불손한 태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남매 두 명이서 퍽 순순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지금 이 상황을 충분히 즐기고 싶었고, 저들이 나를 크게 의지하고 믿게 만들고 싶었다.

“힘줄이 끊어진 거라면 상태를 조금 더 두고 봐야 할 거 같네요.”

입꼬리가 비뚜름하게 올라가려는 걸 애써 눌렀다.

침대 위에 누워 있던 에이프릴이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 다리가 신기한지 발가락을 까딱까딱 몇 번 움직이다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려고 했다.

“읏!”

금세 중심을 잡지 못하고 넘어졌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걸 빠르게 부축한 바라크가 에이프릴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에이프릴, 조심해야지.”

걱정을 가득 담은 다정다감한 목소리에 난 손을 말아 쥐었다가 폈다. 걱정하는 꼴을 보고 있자니 속이 꼬였다.

이래서 가족이 있고 핏줄이 있어야 하는 거구나.

아버지만 남았던 난 공작가로 인해서 가족이 사라진 지 오래였는데.

통증을 잠깐 없애주고 뼈를 제자리로 맞추었지만 걷지는 못할 것이다. 힘줄은 치료하지 않았으니까.

“제가 계속 올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니까, 상태가 더 나빠질 때 다시 한번 오겠습니다.”

내가 옆에 서 있는 앨런의 등을 부드럽게 그들 앞으로 밀었다.

“통증이나 남은 상처에 대한 건 앨런이 봐줄 거예요.”

“일단 나을 수 있다는 거구나.”

에이프릴이 자기 다리를 만지며 안도의 웃음을 흘렸다. 지금으로서는 그걸로도 만족하는 눈치였다.

통증이 없어지는 것과 뼈가 튀어나온 게 사라졌다는 것 정도로 말이다.

“고맙다.”

고맙다는 인사를 에이프릴에게 받을 줄 알았는데, 영 생각하지도 못한 인물에게서 들었다.

에이프릴을 부축하면서 날 올려다보는 노을색 눈동자를 서늘하게 바라봤다.

감동에 가득 찬, 그리고 온전히 나를 믿는다는 눈동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근 10년을 함께 살아왔고, 어떻게 해서든 그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던 과거를 떠올렸다.

하나부터 열까지, 하녀라고 오해를 받을 정도로 심부름도 해가면서 말이다.

그가 배우는 연금술에 어느 정도 이해력을 가진다면 저를 좀 다르게 받아줄까 싶기도 해서 공부도 했었다.

물론 전부 쓸데없는 노력이었지만.

웃기지도 않지. 고맙다는 말, 다정한 말 한마디를 듣기 위해 8년을 발버둥 쳤는데 고작 이번 한 번으로 저런 말을 들을 줄이야.

“별말씀을요.”

“그래도 네가 우리 라이즈 가문의 큰 은인이다.”

“계약대로 한 건데요, 뭐.”

그리고 에이프릴을 완전히 고친 것도 아니었으니까.

옆에서 빤히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리자, 앨런은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꾹꾹 참고 있는 눈치였다.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니까.”

에이프릴이 감격 어린 얼굴로 본인의 다리를 바라보다 내 손을 덥석 잡았다.

“당신만 믿을게. 내 다리가 원래대로 돌아온다면 얼마든지 보답할 거야.”

이런 날이 있기만을 바랐다.

나를 다정하게 대하고, 나에게 고마워하는 것.

이 바람은 공작저에서 가졌던 바람과 똑같은 바람이었다.

그때는 어떻게 해서든 당신들의 ‘진짜’ 가족이 되고 싶어서 한 선의였다면, 3년 전 그 집에서 쫓겨난 이후론 완전히 달라진 상태였다.

라이즈 공작가에서 날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순간이 오기만을 바랐는데, 신께서 그걸 들어주신 모양이다.

바람은 언젠가 가족 품으로 돌아가길 원한다는 헛된 희망이 아니라, 언젠가 날 찾아온 라이즈 공작가의 등에,

“네, 저와 앨런도 노력하겠습니다.”

칼을 꽂겠다는 일념 하나 때문이었으니까.

그간 내가 당신들 등에 칼을 꽂기만을 얼마나 염원했는지 죽어도 모르겠지.

* * *

“왜 그러셨어요?”

우리를 휘감고 있던 오렌지 빛이 순식간에 사라지자 눈을 슬그머니 떴다.

눈을 뜨자 가장 먼저 보이는 건 가게의 풍경이 아닌 복잡미묘한 앨런의 표정이었다.

“뭘?”

앨런이 얄궂은 웃음을 지었다. 어떻게 자신을 속이냐는 눈빛이었다.

이내 의자에 털썩 주저앉고는 그를 올려다봤다.

“다리 전부 고칠 수 있는데도 일부러 남겨두신 거잖아요.”

“눈치가 빨라도 너무 빠르네.”

겉으로 본 성력이면서 그렇게까지 알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내가 못 고친 걸 수도 있잖아?”

“제가 이리나 님에게 성력으로 치료를 받았었는데 그런 것도 모르겠어요.”

자신만만한 어투였다.

보통 한 번 치료 받았다고 그렇게까지 다 알 수 있나?

“아는 사이시죠? 도대체 무슨 관계세요?”

눈을 가름하게 뜨고 은근하게 던지는 질문에 묘한 신음을 흘렸다.

하긴 나랑 똑같이 생긴 에이프릴을 봤으니 의아하게 생각할 법하지.

“얼굴이 바뀐 상태니 상대는 이리나 님을 잘 모르는 눈치였지만.”

“…….”

“구속구 받은 것도 그렇고, 단순하게 돈 때문에 하신 거 아닌 것 같은데.”

매번 성력을 필요로 하는 손님들을 받는 기준은 오로지 ‘돈’이었다.

돈이 아니고서야 받을 이유가 없었으니까.

알리샤와 함께 생활하기 위해서도, 그리고 내가 없던 시간 동안 아버지를 보살펴 주었던 알리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도 말이다.

“혹시 공작가에 원한 같은 거라도 있으세요?”

“…….”

“그런 게 아니면 구속구를 받으실 필요도 없잖아요.”

눈치가 원래부터 이렇게 빠른 놈인 건지, 아니면 내가 전부 티를 냈던 건지 모르겠다.

침묵이 길어질수록 앨런이 한 질문에 대한 답은 긍정이라고밖에 설명할 수가 없었다.

공작가가 나를 데리고 온 이유가 단순히 기간제 대역이 필요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이곳으로 온 이유는 한 가지였다.

공작가가 날 데려온 걸 후회하게 만드는 것, 내게서 내 아버지를 앗아갔던 것처럼 그들에게서 그들의 유일한 보물인 딸을 앗아갈 것이다.

그래, 내가 가진 감정은 집사가 말한 밉다라는 말보다 앨런이 말한 원한이라는 것에 가깝다.

“……공녀 얼굴을 보면서 대충 눈치챘을 거 아냐. 하필이면 똑같이 생긴 바람에 공작가에서 받은 게 많았거든.”

“공작가랑 정말로 아는 사이셨어요?”

“응.”

질문에 산뜻하게 긍정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