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뭔가가 많이 이상했다.
아도니스는 리안의 후배였고, 동시에 바라크와는 아카데미 동문이기도 했다.
학부가 달랐던 만큼 크게 부딪칠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남들에 비하면 얼굴을 종종 보고는 했는데 그 이유는 아도니스가 리안의 직속 후배였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둘 사이는 데면데면, 혹은 나쁘다고 표현할 수 있었는데 그 원인이 에이프릴 힐 라이즈 때문이었다.
아도니스와 에이프릴의 사이가 그닥 좋은 편이 아니었고, 바라크도 저를 멀리하는 건 당연지사였다.
“바라크의 휴가도 오늘로 끝이기도 하고요.”
황실 연금술부의 사람들이 새삼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지 모르겠다.
도대체 마음에 무슨 바람이 들어서는. 아도니스가 물 한 모금을 마시면서 눈을 가름하게 떴다.
“사람이 바뀌기는 하는가 봅니다.”
“무슨 의미지?”
제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하는 리안이 굉장히 이상했다.
타인인 아도니스가 느낄 정도라면 가족인 리안도 느끼기에 충분할 텐데.
정말 몰라서 묻느냐는 아도니스의 녹빛 눈동자에 리안이 움찔했다.
“바라크 말입니다. 아카데미 시절에만 해도 에이프릴 공녀와 데면데면하지 않았습니까.”
말이 좋아 데면데면한 거지, 타인보다 못했었다.
굳이 따지자면 바라크 힐 라이즈가 에이프릴 영애를 싫어하는 것처럼 보였었다.
에이프릴 영애는 그런 바라크에게 안절부절못하기까지 했으니까.
아도니스의 한마디에 리안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꾹 다물었다.
그때는…… 에이프릴이 아니라 이리나였을 때였으니까.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영애에게 쩔쩔매기에 드디어 철이 들었나 싶었습니다.”
두 사람 사이의 기점이 뭐였는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어느 순간부터 바라크 힐 라이즈가 에이프릴 힐 라이즈에게 쩔쩔매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도니스와 바라크의 사이가 데면데면해지기 시작한 것도 그 시점부터였다.
에이프릴 공녀가 자신을 싫어하는 이유를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아도니스 베트리체는 에이프릴 힐 라이즈를 제외하면 유일하게 황태자의 곁에 있는 여자였으니까.
뻔한 이유였던지라 그녀가 짧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의 말을 듣고만 있는 리안에 아도니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라크가 곧 돌아온다고 해서 연금술부의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습니다.”
“무슨 기대?”
“공녀께서 드디어 수도로 돌아오셨으니, 그 성질머리가.”
바라크의 성질머리를 아카데미 동기로서 아주 잘 알고 있는 아도니스가 질린다는 듯이 대꾸했다.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죠.”
“하하.”
그 말에 리안이 어설프게 웃었다.
나아지기는커녕 더 나빠지기만 할 것이다.
지금 저택에 있는 사람은 에이프릴이 아닌 이리나였기 때문에.
그러니 연금술부의 사람들 기대가 처참하게 무너지리라는 것도 쉽게 예상이 되는 바였고.
“여튼, 공녀께서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아도니스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방긋 웃었다.
모두가 축하한다고 말했지만, 리안은 그 인사를 순순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 * *
‘진짜 딸이 되려고 해도 될 수 없어. 결국 넌 내 대용품이었을 뿐이니까.’
마치 본인이 승자라도 되는 것마냥 시원하게 웃고 있는 에이프릴의 모습에 마른침을 삼켰다.
바짝 굳은 내 모습에 에이프릴이 피식 웃고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려는 에이프릴을 붙잡고 아니라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에이프릴이 공작가로 돌아오면서 내 처지가 완벽하게 바뀌었으니까.
아무도 없는 긴 복도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을 때, 어깨 위로 뚝 떨어지는 빗방울의 느낌에 고개를 들었다.
복도인 줄 알았던 주위의 배경이 이제는 공작가 문 바로 앞이 되었다.
억지로 무릎을 꿇게 만든 기사단장인 클리프 경의 손길과, 나를 차갑게 내려다보는 공작의 얼굴에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내보내.’
‘아, 아버지. 왜, 왜 그러세요.’
무릎으로 공작 앞으로 기어가려고 했지만 날 가로막고 붙잡는 공작가의 기사들에 의해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클리프 경, 이것 좀 놔줘요. 아버지……! 왜 그러세요! 저, 저를 딸이라고 생각하신다 하셨잖아요!’
‘너는 더 이상 공작가의 딸이 아니고, 라이즈라는 성도 더는 쓸 수 없다.’
몸을 홱 돌리는 공작부인을 향해 ‘어머니!’라고 애타게 불렀지만, 나를 돌아봐 주는 사람이 없었다.
사용인들의 시선은 물론이거니와 두 오라비의 시선마저도 차갑고 냉랭했다.
‘리안 오라버니, 오라버니! 제 이야기 좀 들어주세요!’
진짜 제 오라버니이기를 바라던 리안은 나를 못 본 척 고개를 홱 돌렸고, 흐느끼느라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을 때 누군가 내 팔을 거칠게 잡아 일으켰다.
‘오라버니.’
살벌한 노을빛 눈동자가 나를 죽일 것처럼 보고 있었다.
날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을 때, 그의 손가락 끝에서 짧은 빛 같은 무언가가 손 옆으로 팟! 하고 박혔다.
그게 마법이고, 바라크가 내게 마법을 썼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잘 정돈되어 있는 바닥에 움푹 패인 자국이 생겼다.
저게 제 몸에 닿았다면, 일부가 절단되었으리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그 손으로 에이프릴을 밀었다 생각하면 손목을 자른다고 해도 성에 차지 않을 거다.’
‘아니에요, 그런 적 없어요.’
‘그간의 시간을 봐서 봐주는 거니, 두 번 다시 내 앞에 나타나지 마. 그때는 정말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제대로 일어나지 못하는 나를 일으키는 게 아니라 질질 잡아끌며 공작저의 대문 바깥으로 내쳤다.
‘꺼져.’
칼날 같은 눈동자가 서늘하게 날 향하고는, 대저택의 문이 거칠게 쾅! 하고 닫혔다.
“이리나!”
숨을 헉! 하고 크게 들이마시자, 눈앞에 보이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리안이었다.
오해라고, 이야기만 들어달라고 크게 외쳐도 외면하던 푸른색의 눈동자에 걱정이 가득 담긴 채였다.
“괜찮아? 악몽이라도 꿨니?”
그래, 꿈이구나. 이자들이 나를 버리던 3년 전의 그 순간의 꿈을 꾼 거구나.
몸을 일으키자,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주는 리안의 손길은 3년 전 날 외면하던 그 눈빛과는 다르게 지극히 다정했다.
걱정스레 손을 뻗는 걸 탁 내치자 그가 흠칫했다.
“왜 내 방에 있어.”
“그게…… 깨우려고 왔는데, 악몽을 꾸는 듯해서.”
조심스럽게 말을 내뱉는 그에 인상을 찡그렸다.
“저녁은 먹어야지.”
저녁? 인상을 살짝 찡그리다 말고 창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방에 함부로 들어오지 마. 나가.”
걱정을 핑계 삼아 내 몸에 손을 댔다는 것 자체가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에이프릴을 봤다고 이렇게 바로 3년 전의 꿈을 꾸게 될 줄이야.
내 눈치를 살피고 있던 리안은 더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방을 나섰다.
“다니엘은 버니스 옆에 묻어뒀어요.”
“다니엘도…… 좋아할 거예요.”
친아버지는 공작가의 손에 죽었는데, 그들한테 버려졌다고 울었던 과거를 떠올리자 스스로를 욕하고 싶었다.
만약, 아버지가 공작가의 손에 죽었다는 사실을 저가 먼저 알았더라면 그 즉시 이곳에서 벗어났을 텐데.
“공녀님, 일어나셨어요?”
가벼운 노크 소리와 함께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온 건 전담 하녀였다.
“세안하실 물도 들고 왔습니다.”
“네 이름이 앰버라고 했지?”
“예, 공녀님.”
비틀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언제 리안 오라버니를 내 방에 들여도 된다고 했지?”
“아……. 저, 도련님께서 아가씨를 직접 모시러 오셨어서…….”
내 눈치를 살피면서 고개를 푹 숙이는 앰버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래, 공작가의 영식이 동생의 방에 들어가겠다고 직접 말하는데 막아서기 어려웠겠지.
그리고 보통의 오라비와 동생의 관계라고 생각한다면 방에 들어오는 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고.
“앞으로 내 방에 공작가 영식은 아무도 들이지 마.”
“……네?”
“리안하고 바라크가 내 방에 들어오는 일 없게 만들라는 소리야.”
앰버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저 애가 이 집에서 나를 모시는 이상 우선순위는 내가 되어야만 했다.
공작가가 하루 종일 조용했던 걸 보아 바라크가 돌아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공작가로 왔으면 당장이라도 날 죽일 것처럼 소란스럽게 굴었겠지.
가볍게 세안을 한 후 옷을 갈아입고 나서자 문 앞에 서 있는 리안과 시선이 마주쳤다.
“함부로 방에 들어가서 미안하다. 악몽을 심하게 꾸는 것 같길래 걱정이 되어서.”
“제가 꿨던 악몽이 어떤 건지 아신다면 그렇게 쉽게 제 방에 들어오지는 못하셨을 텐데요.”
내가 꿨던 악몽의 주인공들은 바로 당신네들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