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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역공녀에게 후회는 필요 없습니다 (17)화 (17/109)

17화

“에이프릴이 돌아오는 날이 바로 네가 나가는 날이 될 테니.”

속삭이듯이 말하던 그가 허리를 펴고는 양 입술 끝을 치켜올렸다.

그 자신만만함에 웃음이 크게 터지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에이프릴이 1년 안에 치유될 수 있는 것도 내 손에 달려 있는 걸 그는 몰랐으니까.

모르기에 가지는 저 자신감이 얼마나 같잖은지, 그는 모를 것이다.

그리고 알게 되고 난 이후에 가질 절망감도, 수치심에 대해서도 말이다.

“저도, 그러면 좋겠네요.”

전처럼 상처받지 않는 게 그의 속을 더 뒤틀리게 만드는 것이라는 걸 잘 알았다.

이제 그의 위협은 내게 아무것도 아니기도 했다. 바라크는 본인이 가진 것들로 날 위협할 수는 없을 테니까.

전과 같이 내가 상처받기를 바라는 눈치였으나, 아무렇지 않아 하는 내 모습에 그가 못마땅한 기색을 여실히 드러냈다.

“아가씨, 이만…….”

더는 큰 소란을 만들지 말자는 듯이 날 제지하는 패트릭의 말을 못 들은 체하며 고개를 들었다.

바라크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법이 없던 내가 그를 향해 한 발자국 내디뎠다.

“제가 공작저로 돌아온 걸 왜 이렇게 싫어하세요?”

무슨 이런 멍청한 질문을 하냐는 듯한 얼굴이었다.

“제가 에이프릴의 자리를 빼앗을까 봐요?”

“그래.”

그의 말에 내가 인상을 찡그리다 재밌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공작가에서 저를 어떻게 내쫓았는지 잊으셨어요?”

식당 안에 숨 막히는 정적이 맴돌았다.

표정들을 보아하니 전부 잊은 눈치는 아니었다.

비 오던 겨울날 차갑게 내쫓고, 내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던 공작가가 이용하겠다는 심사로 다시 날 부른 건 기만이나 다를 바 없었다.

바라크 힐 라이즈는 열세 살 적, 이곳에 처음 왔을 때부터 나를 싫어했었으니까.

“……입 닥치고 꺼져, 내 앞에서.”

하지만 전처럼 순순히 꺼질 리가 없었다.

“생각해 보면 에이프릴 공녀님을 잃어버리게 된 것도 바라크 오라버니 때문이고.”

그 말과 반대로 다시 한번 다가간 내가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다시금 되물었다.

“공작부인이 미치셨던 이유도 그럼 바라크 오라버니 때문 아닌가요?”

“이리나!”

“아가씨, 그만하십시오.”

그만하긴 뭘 그만해.

공작저에서 오랫동안 일한 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었다.

바라크 힐 라이즈가 축젯날 동생을 데리고 나갔다가 실수로 잃어버린 일 말이다.

“그 입…… 닥쳐.”

이 집안에선 꺼내서는 안 될 금기어가 있었다.

바로 에이프릴을 잃어버리게 된 이유.

에이프릴을 잃어버린 장본인인 바라크가 긴 시간 동안 죄책감에 시달렸다는 걸 이중에서는 내가 가장 잘 알았지.

잘 보이고 싶은 마음 때문에 늘 바라크 주변을 맴돌았으니까.

바라크가 왈패 같은 짓을 할 때 그를 저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지금 되레 내가 공격하려 들자 하나같이 나를 저지하려고 드는 이 상황에 헛웃음이 터졌다.

“그럼 본인 스스로에게 화를 내야 하는 거 아니에요?”

“…….”

“왜 나한테 분풀이하는지 모르겠네요. 되게 못난 행동이라는 거 본인도 알고 있죠?”

“이리나, 이제 그만하고 방으로 돌아…….”

성큼 다가온 리안이 내 손목을 잡아채자, 빠르게 쳐냈다.

왜 하나같이 내게만 참고 그만하라고 말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저한테 모질 게 구는 건, 어떻게든 에이프릴에게 보답하기 위해서인 건가요? 에이프릴에게 미안하니까?”

토끼처럼 새빨개진 눈으로 날 보는 그의 모습에 푸핫, 하고 웃음이 터질 뻔했다.

“에이프릴이 열아홉 살 때 돌아왔고, 잃어버렸던 때가 여섯 살 때였으니까…….”

바라크의 앞에서 손가락을 하나둘씩 접었다.

“13년이네.”

양손을 전부 접어도 모자란 긴 시간에 내가 조소 섞인 웃음을 흘렸다.

“그 시간을 어떻게든 보상해 주고 싶었겠죠. 13년 동안 그 애를 데리고 있었던 남자가 도박쟁이라고 했었죠?”

“…….”

“솔직히 바라크 오라버니 아니었으면 겪지 않아도 될 일이었죠.”

비단 에이프릴뿐만이 아니라 나도.

바라크가 에이프릴 그 애를 잃어버리지만 않았어도, 내가 내 아버지와 그렇게 떨어져 지내지도, 아버지가 허무하게 돌아가시지도 않았을 것이다.

“입 닥치라고 했지!”

화가 잔뜩 난 그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눈동자에는 눈물까지 한 가득이었다.

바라크의 성질머리가 더러운 거야 수도 내에서도 아주 유명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르는 다른 하나는, 그의 성질이 고약하고 더러운 것과 별개로 여리기도 더럽게 여린 이라는 점이었다.

그러니 지난 13년 동안 죽을 정도로 힘들었겠지.

미쳐 버린 제 어머니를 보면 얼마나 죄책감에 시달렸는지 알 만한 일이었다.

“한 번만 더 입 놀리면 가만 안 두겠다, 이리나.”

몸을 바짝 붙이며 물었다.

“죽이기라도 하려고?”

이 집에서 생활했을 적에, 에이프릴을 잃어버렸다는 죄책감 때문에 울던 모습을 종종 봤던 기억이 고개를 들고 일어났다.

눈물을 보이던 모습이나 낮잠을 청할 때 한 번씩 에이프릴을 부르며 악몽까지 꾸던 것도.

“말뿐인 협박은 안 믿어요.”

“내가 못 할 것 같아?”

황실 연금술부에서 부부장이라는 걸 잘 알고 있는 만큼, 그가 날 죽이려고 한다면 언제든, 어떻게든 죽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내게 손 하나 대지 못할 것이다.

“그럼 그렇게 해보세요. 멀쩡히 두 발로 걸어 공작저로 입성한 공녀가 다시 몸이 나빠져서 별장으로 돌아갔다는 얘기밖에 더 듣겠나요.”

말이 좋아 그 정도의 소문이지, 별별 소문이 다 돌 것이다.

“그러니까 좋은 쪽으로 생각해요. 아가씨가 지금 공작저로 돌아와 봤자 아무것도 못 할 거 알잖아요.”

다정한 목소리로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대답하고는 방긋 웃었다.

“좋게. 응?”

툭툭, 가볍게 어깨를 두드린 뒤 허망하게 서 있는 바라크를 뒤로한 채 식당을 벗어났다.

고작 이런 한마디 때문에 울 것 같은 얼굴인 그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바라크 본인이 던진 말 때문에 내가 남몰래 뒤에서 울었던 건 죽어도 모르겠지.

“내 앞에서 울지 마.”

“소리 내서 울면 네 입부터 틀어막아 버릴 거니까.”

습관처럼 던지던 폭력적인 언사 때문에 남들 앞에서 울긴커녕, 뒤에서도 끅끅 소리 내지도 못한 채 울었던 기억이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본인 상처만 중요한 법이지.”

내가 겪었던 것의 반의반만큼도 하지 않았는데 눈물을 보이던 바라크의 모습에 입술 끝을 비죽였다.

아무도 내 뒤를 따라오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내 예상과 달리 카나가 내 뒤를 조용히 따라왔다.

한 소리 하려나? 에이프릴 아가씨는 이렇게 행동하지 않았다, 라던가, 아니면 공작님께서 에이프릴 아가씨로 대우한다고 해서 진짜 아가씨라도 된 것마냥 행동하지 말라던가.

그런 생각을 하며 내 방문을 활짝 열었다.

침대에 털썩 걸터앉자 카나가 방문을 조용히 닫으며 말문을 열었다.

“식사를 제대로 못 하셨으니 방으로 들고 올까요? 따로 더 드시고 싶은 건 없으신가요?”

이죽임 없이 업무에 충실한 말이었다.

방 안이 조금 덥다 생각했던 건지 창문을 열기 위해 카나가 방 안으로 성큼 들어왔다.

“없으시다면 준비되어 있던 음식들 그대로 챙겨오겠습니다.”

당연히 한마디 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기에 의외란 기색을 숨기지 못하면서 그녀를 빤히 쳐다봤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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