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
“뭐 때문에 절 보고 싶어 하셨는지 본론만 말씀해 주시죠.”
“……당신이, 뭔데.”
내 이름을 몰랐기 때문일까, 아니면 당황해서였을까. 말을 살짝 더듬던 그가 아랫입술을 세게 짓씹으며 물었다.
“버니스 님의 얼굴을 하고 있는 거지?”
나에 대해 궁금한 성력에 대한 게 아닌 듯했다.
그의 입에서 다시금 나온 친어머니의 이름에 이번에는 내가 표정을 찌푸렸다.
“그러는 당신은 우리 어머니랑 무슨 관계기에 우리 어머니 이름을 알고 있지?”
‘어머니’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푸른 눈동자가 일순 파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파도처럼 보인 착각은 잘못이 아니었는지 뒤이어 커다란 눈물방울이 그의 눈에서 툭 떨어졌다.
“그 말은 당신이.”
“…….”
“아니, 네가…….”
잘게 떨리는 목소리와 무너질 대로 무너진 얼굴에 내가 멈칫했다.
뒤로 물러서야 하는데 슬픔이 가득한 얼굴에 차마 물러설 수가 없었다.
“……다니엘과 버니스 님의 딸인 거구나.”
“아버지와도 아는 사이세요?”
그가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듯 마른세수를 했다.
내 존재에 대해 기뻐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동시에 걱정된다는 얼굴이기도 했다.
무어라 딱 떨어지는 시원한 감정이 아니었다. 내 존재는 반갑지만, 앞으로가 걱정된다는 듯 그가 다급한 걸음으로 내게 다가오려고 할 때였다.
“어……!”
뒤에서 누군가가 이끄는 손길과 더불어 보이는 건 나보다 넓은 등이었다.
“앨런……?”
그리고 그 등의 주인은 앨런이었다.
가게로 돌아갔을 줄 알았는데, 왜 여기에 있어.
신관을 만나러 왔다는 걸 아는 만큼 이쪽으로는 걸음도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함부로 손대지 마라. 가까이 다가오지 말고.”
위협하는 모양새였지만, 두려움은 여전히 남아 있는 듯 내 손을 잡고 있는 앨런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비켜. 너한테 볼일 없으니까.”
“신관 새끼들 속 모를 줄 아나.”
“…….”
“가까이 다가오지 마.”
언제든 도망갈 수 있도록 거리 유지가 목표인 듯했다. 앨런은 마음 같아서는 내가 어서 빨리 이 자리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확인하실 것만 확인하시고 가시죠.”
그의 말에 내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모습을 드러냈다.
감정적인 얼굴로 날 보고 있던 타미타르테의 시선이 지금은 내가 아닌 앨런에게 향하고 있었다.
넋이 나갔다고 말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 푸른 눈동자에 조심스러운 기색이 드러났다.
타미타르테의 시선이 앨런에게 향한 것과 별개로, 앨런의 안중에는 그가 없는 듯했다.
“……혹시 너.”
타미타르테의 ‘너’라는 지칭이 내가 아닌 본인을 가리키고 있다는 걸 눈치챘으면서도 앨런은 내 안위만을 살피고 있었다.
이제는 앨런과도 아는 사이인가? 그 의문이 들기 무섭게 바로 부정이 뒤따라왔다.
만약 아는 사이였다면 앨런이 이런 모습을 보이지는 않겠지.
“신전 고아원 출신이냐?”
나나 로지안 앞에서는 퍽 공손한 어투였던 타미타르테의 말투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신전 고아원? 역시 신전 출신이었구나. 가설이 확신이 되는 순간이었다.
보통의 신전 고아원 출신의 고아들은 성장함에 따라 몇 명이 추슬러져서 신관이 되거나, 혹은 신전 소속의 직원이 되는 길을 밟아오는데 왜 앨런은 거기서 벗어난 거지?
신전 소속이면 안정적인 삶을 보장받는다는 소리였다. 신분도, 지위도, 그리고 어느 정도의 생활비까지.
조심스럽게 묻는 그 눈치에 앨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내 시야에 들어온 앨런의 얼굴은 두려움과 동시에 치미는 분노를 꾹 참고 있었다.
돌처럼 굳었지만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모습에 내가 앨런의 손을 잡아 내 쪽으로 당겼다.
아까와는 달리 쉽게 끌리지 않는 앨런에 작게 한숨을 삼키고는 내가 그의 앞에 섰다.
“말 바꾸지 마시고요. 저희 부모님이랑 무슨 사이냐고 물었습니다.”
“…….”
“어떻게 아셨습니까, 저희 부모님.”
아버지는 자신들이 일평생 쫓겨 다닐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말을 했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해 주지 않았으며 또한 생전 신전의 ‘신’에 관한 이야기도 한 번 한 적 없었다.
나의 물음에 타미타르테의 얼굴이 다시 희게 질리더니 자조적인 웃음이 뒤따라왔다.
앨런을 향했던 시선이 내게 화살처럼 쿡 박혔다. 내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나 해줬으면 좋겠는데.
“네가 정말, 다니엘과 버니스 님의 자식이라면 제국에서 도망치거라.”
“…….”
“혹여라도 신전에서 너와 네 아버지가 살아 있다는 걸 안다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내가 방법을 만들어주마.”
“아버지와 신전이 무슨 관곈데요. 알아듣게 설명 좀 하세요.”
횡설수설 말하던 그가 이번에는 꿀이라도 한껏 먹은 사람처럼 입을 꾹 다물다 천천히 열었다.
“그건, 다니엘이, 네 아버지가 저자와 그리고 나와 마찬가지로.”
가라앉은 목소리가 낡은 쇳소리처럼 힘겹고 연약하게 들려왔다.
“신전 고아원 출신이니까.”
뒤에서 앨런이 숨을 크게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신전 고아원이 도대체 어떤 존재이기에 앨런이 이렇게 굳는 건지 모르겠지만, 타미타르테가 내 의문을 해결해 주기라도 하듯 말을 덧붙였다.
“신전 고아원은 단순히 고아들을 보살피는 고아원이 아니라.”
아니라……? 1분 1초의 시간이 억만년처럼 느리다고 생각되었다.
바람 소리도 들리지 않고, 사람의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막만이 맴돈 마을에 멀리서 새의 울음소리만이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인체실험이 행해지던 곳이었으니까.”
“그게 무슨…….”
느리게 고개를 돌렸을 때, 보이는 건 겁에 질린 건지 잔뜩 굳은 앨런의 얼굴이었다.
수도에서 몇 년을 살았지만 소문으로도 들어본 적 없는 말에 나는 당황스러웠다.
“다니엘 님에게 아무 말도 못 들었니?”
“아버진.”
목 안이 바짝바짝 말라왔다. 너무 옛날의 기억이지만, 간헐적으로 악몽을 꾸시던 모습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본인의 옛날 이야기 같은 건 하지 않으셨어요.”
어린 시절 물어봤을 때의 아버지가 해주었던 말은 딱 한 마디였다.
탑 속에 갇혀 있던 자신을 어머니가 기사처럼 꺼내주었다고.
어렸을 때는 혹시나 아버지가 먼 나라의 왕자님이 아닐까란 생각을 한 적이 있었지만, 산속에서 고립된 삶이 길어질수록 그 생각은 멀어지고는 했다.
아버지는 자신이 왜 수도로 내려가지 않는지, 어째서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산속에서만 사는지에 대한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럴 법도 하지. 신전에 있었을 때의 일은 지옥이나 마찬가지였을 테니까.”
타미타르테 신관이 얄팍한 미소와 함께 수긍했다.
“그만큼 신전에 당하고 살았다면 나 같아도 말하기 싫었을 거다.”
“…….”
“네 아버진, 신전에서 이용만 당했으니까.”
“신전에서 인체실험이 행해지는 게 정말이에요?”
“다니엘 님이 아니더라도, 당장 옆에 있는 이에게만 물어봐도 그렇다고 대답해 줄 텐데.”
덜덜 떨고 있는 앨런의 손을 꼭 잡았다.
맨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려 보면, 앨런이 큰 사고를 겪었을 거라고 예상은 했었지만 그게 신전의 실험과 관련이 있다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신전이 고아원을 후원하고 있다는 핑계로 아이들을 가지고 인체실험을 행하고 있다는 사실도 생각도 못 했고.
“버니스 님이 돌아가신 뒤로 다니엘 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시니?”
“…….”
“시간이 너무 늦었으면 다음에라도 한 번 뵈었으면 좋겠는데. 그나저나 다니엘 님은 네가 성력으로 사람을 고쳐주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계시고?”
타미타르테 신관의 태도는 마치 오랜만에 만난 삼촌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정작 나는 신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 사람이 부모님과 어느 정도로 친밀한 관계였는지 알 수가 없었는데 이 사람은 나를 아주 어렸을 적부터 본 것처럼 굴고 있었다.
부모님에게 형제는 없었지만, 형제가 있었다면 타미타르테 신관 같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짧게 들었다.
“아버지는 몇 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아…….”
그의 입에서 탄식이 짧게 흘러나왔다.
“그럼 넌 어떻게 지내고 있고? 혹시 다우스 제국에서 지내고 있니?”
“네.”
“너한테도 성력과 치유력이 있다면…… 다우스 제국 말고 다른 곳에서 지내는 게 좋겠구나.”
타미타르테가 내 어깨를 꾹 잡았다.
“내가 외국에 자리를 만들어주마. 그 정도 능력은 있으니.”
“이리나 님.”
타미타르테의 권유 아닌 권유에 반응한 건 옆에 있던 앨런이었다.
식은땀을 뚝뚝 흘릴 정도로 하얗게 질린 얼굴에 일순 빛이 들어오더니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이자의 말대로 하시죠. 신전이 버티고 있는 다우스 제국은 위험합니다.”
살짝 떨리는 목소리의 그가 말을 계속해서 이어갔다.
“이리나 님이 성력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신전에서 어떻게 나올지 모릅니다.”
“그래, 이자의 말이 맞다. 너희 부모님이…….”
타미타르테는 어쩐지 울 것 같은, 아니, 울고 싶은 얼굴이었다. 더는 만나지 못한 부모님이 그리운 얼굴 같기도 했고 동시에 부모님이 신전에서 겪었던 일을 떠올리고 슬퍼하는 것 같기도 했다.
“신전을 어떻게 벗어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