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화
수국의 꽃잎 같은 연한 푸른 눈동자에 눈물방울이 그득하게 맺히기 시작했다.
내 부모님의 과거를 유일하게 알고 있는 존재에 절로 아버지가 떠올랐다. 그리고 돌아가신 어머니도.
아버지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한 번도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었다.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왜 돌아가셨는지 같은 것들 말이다.
그저 어느 날 작은 무덤을 어머니의 무덤이라고 말씀해 주셨던 기억만 생생했다.
그리고 그 무덤을 바라보던 아버지의 눈동자도.
“공작가 밑에 있으니 괜찮아요.”
그렇기에 원래라면 드러내지 않았을 모습을 드러내고 싶었다.
여기서 공작가가 왜 나오는지 몰라 얼떨떨한 얼굴로 날 바라보는 타미타르테 신관에 목에 하고 있던 아티팩을 천천히 벗었다.
“속여서 미안해요, 신관님.”
오렌지빛을 띠던 머리카락이 연한 베이지색으로, 눈동자는 청회색으로 돌아갔다.
바뀌는 나의 이목구비에 눈물이 가득 맺혀 있던 타미타르테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대로 정체를 드러낸 것에 대해 불안해하는 앨런에 괜찮다는 미소를 지어주며 타미타르테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공……녀님?”
“제 소개를 제대로 할게요.”
놀랐는지 살짝 휘청거리는 타미타르테의 손을 잡아끌며 부축했다. 졸지에 악수하듯 맞잡게 된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리나 데빈이에요.”
에이프릴 힐 라이즈의 얼굴로 이리나 데빈이라는 이름을 꺼내니 그는 이 상황이 그저 혼란스러운 듯했다.
“그러니까……. 공녀님께서 진짜 공녀님과 똑같이 생겼다는 이유로 대역이 되었었다고요?”
도무지 믿겨 지지 않는 얼굴로 되묻는 그에 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웃으며 긍정하는 내 모습에 타미타르테 신관은 ‘웃을 일이 아니다!’라고 외치고 싶어 하는 얼굴이었다.
“그것도 어린 시절부터 쭉, 말입니까?”
“네.”
“다니엘 님, 그분은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화내듯 말을 하려던 타미타르테 신관의 말이 뚝 하고 끊겼다.
마을의 광장에서 이어지던 대화는 입간판이 없는 가게로 옮겨진 상태였다.
앨런이 차를 내놓으면서 내 옆에 앉았다. 맨 처음 만났을 때보다 경계심이 옅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상대가 신관이라 그런지 영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무슨 마음으로 공작가로 보낸 건지 알 것 같기도 하네요.”
“…….”
“도망자의 자식이면 자식도 자신들처럼 살아야 하니까…….”
“이리나 님, 이자에게 전부 다 말씀하셔도 되겠습니까?”
살풋 인상을 찡그리며 묻는 앨런에게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지. 진짜 공녀가 돌아왔을 때 신관님께서 말실수를 하시면 안 되니까.”
“믿으셔도 됩니다. 제가 만약 배신할 생각이 있다면 신전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을 테니까요.”
들었지? 앨런에게 눈으로 물어보자 그는 여전히 불퉁한 얼굴이었다.
“저는 아버지가 신관이신 줄은 몰랐어요.”
“정확히 따지자면 다니엘 님은 신관은 아니셨습니다.”
그럼? 내가 고개를 짧게 갸웃 기울였다. 어두운 바깥 풍경보다 더 어두워 보이는 건 타미타르테의 얼굴이었다.
“다니엘 님과 함께 지내셨으면 알고 계시겠죠? 다니엘 님이 성력과 치유력이 있다는 걸요.”
“……네.”
“신전에서 다니엘 님만큼 성력을 가진 이는 없었습니다. 저도…… 성력이 있긴 하지만 다니엘 님에 비하면 새 발의 피 같은 능력이고요.”
아버지에 대해 직접적으로 알게 된 건 이번이 처음이었던지라 귀가 절로 쫑긋했다.
“성력이 있는 다른 신관들과 다른 점은, 다니엘 님이 갖고 있는 본인의 자가치유력이겠지요.”
“…….”
“다니엘 님이 계셨을 땐 고아원에 직접적인 실험이 덜해지던 시기이기도 했고요.”
이 말은 고아원으로 향해야 했던 실험들이 죄다 아버지에게로 향했다는 말과 일맥상통했다.
“본 적은 없지만, 다니엘 님의 치유력이 대단하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왔었거든요.”
“…….”
“보통 고아원 출신들은 성별과 나잇대로 나뉘어서 실험이 행해지는데, 20대 남성에게 갔어야 할 실험들은 죄다 다니엘 님이 당했습니다.”
“…….”
“다우스 제국이 약물치료로 유명한 것도 이 때문이고요.”
아직도 역한 약물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소독 냄새가, 사람들의 피 냄새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으니까.
“신전에 새로운 약물을 만든다고 한다면, 부작용이나 문제점 같은 것들을 알아보기 위해 그 실험을 다니엘 님에게 했습니다.”
“…….”
“신전이 다니엘 님으로 별별 실험을 다 했었습니다. 기본적인 약물 실험도, 처음 보는 독초에 관한 실험도, 그리고…….”
이야기를 더는 들을 수가 없었는지 앨런이 입을 틀어막고 벌떡 일어났다.
밀려오는 토기에 자리를 벗어나는 앨런을 따라가려고 했지만, 그는 이리나에게 따라오지 말라는 듯 손을 저을 뿐이었다.
앨런이 저런 반응을 보여도 이상하지 않다는 듯, 타미타르테가 가벼운 한숨과 더불어 말을 마저 이었다.
“남들이면 몇 번은 죽었을 약물실험에도 버틸 수 있었던 건 다니엘 님의 치유력 때문이었죠.”
그리고 그건 이리나가 갖고 있는 능력이기도 했다.
이리나는 자신이 남들과 달리 다쳐도 쉽게 치유되는 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한 번은 로지안이 황실에서 기르던 표범 때문에 알게 되었었고, 다른 한 번은 아카데미 시절 겪었던 사고로 알게 되었다.
표범에 물려서 크게 남을 거라 들었던 흉은 더는 남아 있지 않았으니까.
“성력과 치유력, 두 가지를 갖고 있는 사람이잖습니까. 혹여나 다니엘 님이 다른 마음을 먹을까 신전에서 아주 삼엄한 감시를 했었죠.”
전혀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였다. 기억 속의 아버지는 늘 인자한 미소만을 지어주던 사람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미소로 어머니를 맞이해 주고, 늘 제 곁에 있었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다니엘 님을 신전에서 도망치게끔 도와준 게 버니스 님이에요.”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났는지, 어떻게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리고 어떻게 도망치게 되었는지는 아직도 모르는 이야기였다.
다만, 확실한 건 버니스가 다니엘을 사랑했기에 목숨을 걸고 신전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는 점이었다.
“신전에서 인체실험을 계속해서 행하고 있었는데,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던 건가요?”
이 정도로 비밀리에, 뜬소문으로도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면 신전의 뒤를 봐주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것도 단순한 고위 귀족은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리나는 재빨리 신전의 뒤를 봐줄 만한 귀족이 누가 있을지 머리를 굴렸다.
맨 처음 떠오른 건 라이즈 공작가였지만, 10년 가까이 지내왔던 공작가는 딱히 신전을 가까이하는 이들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대공가인 발슈타인 가문?
그것도 아니라면……. 한참을 생각하고 있다가 이리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누가 뒤를 봐주고 있는 겁니까?”
“……이미 알고 계시잖습니까.”
그 말과 동시에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래, 오랫동안 신전을 후원해 주고 있는 그 사람.
“황실에 계신 그분은, 늙지 않으시지 않습니까.”
귀족은 아니지만, 고위 귀족만큼이나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
“어째서 늙지 않는다고 생각하십니까?”
바로 황제의 정부이자, 현재 황실에서 페르포네와 맞먹을 권력을 가진 유일한 인물.
“……로지안 스타리유.”
이리나의 작은 중얼거림에 타미타르테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이 무엇 때문에 신전에 큰돈을 기부하겠습니까.”
타미타르테가 자조적인 웃음을 흘렸다.
“그가 늙지 않기 위해서 신전이 약을 만들고 있으니까요.”
* * *
새벽, 의뢰를 하겠다며 갑자기 길드에 들이닥친 남자 손님에 길드장인 테란이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라이즈 공작가의 공녀를요?”
테란이 몸을 꽁꽁 싸맨 눈앞의 남자를 바라봤다.
“그래, 공녀에 관한 것들 전부.”
모습을 가리고 있으나, 어둠 속에서 보이는 금색 눈동자는 빛처럼 빛나고 있었다.
실재하는 정보라 테란이 흐음, 짤막한 탄식을 내뱉었다.
고위 귀족에 대한 정보를 알고 싶다며 찾아오는 이들이 없지는 않았으니, 놀랄 것도 없지만 길드장인 테란이 되물은 것은 다른 부분에 있었다.
3년 전쯤에도 라이즈 공작가의 공녀에 대해서 알아봐 달라며 찾아온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별달리 알게 된 정보는 없었다.
“가능한가?”
페르포네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수족도 없이 멋대로 황실을 나와서 이런 일을 벌였다는 걸 레르비앙이 안다면 기겁할 게 분명했다.
곧 날이 밝아오는 만큼 하인들이 제 침실로 오기 전에 돌아가야만 했다.
테란이 머리를 긁적일 때였다.
“의뢰비는 일단 이 정도로 하지.”
망설이는 듯한 길드장의 태도에 페르포네가 팔에 차고 있던 팔찌를 올려두었다.
딱 봐도 값어치가 나가는 장식품이기는 했으나, 테란의 마음을 흔들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생각할 때 페르포네가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