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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역공녀에게 후회는 필요 없습니다 (55)화 (55/109)

55화

“아, 그래서 사람들이 뛰어가나 보네요.”

토너먼트전부터 이렇게 사람들이 몰려다니는 일은 거진 처음이었는데, 그 이유가 남매간의 싸움이어서 그런 거였군.

하긴, 보통의 기사들끼리의 검술 대결보다야 우승을 위해 남매끼리 검을 맞대는 게 훨 재밌는 일이기는 했다.

원래 남의 집안싸움이 불구경만큼이나 재밌는 게 아니겠나.

베트리체 가문 자제들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수도에서도 유명한 편이었다.

여자로 태어났지만, 그 능력이 출중해 황태자의 근위대에 소속된 장녀와 베트리체 가문에서 귀하게 컸지만 능력은 따라주지 못하는 아들까지.

가십거리로 소비하기 딱 좋은 이야기에 내가 방긋 웃으며 물었다.

“이렇게 나왔는데, 돌아가는 거 너무 아쉽지 않나요?”

페르포네와 데미안의 시선이 내게 박혔다.

마찬가지로 검술로 유명한 발슈타인 가문도 베트리체 가의 토너먼트전이 궁금했을 것이고, 페르포네 역시 자신의 수하가 참가한 토너먼트전이 궁금할 것이다.

“구경하러 가보는 거 어떠세요?”

나도 페르포네와 수도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받을 수 있도록 오래 있는 편이 더 좋았으니까.

* * *

“우오오오!!”

토너먼트전이 열리고 있는 경기장에선 구경꾼들의 우레와 같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들어가시죠, 전하.”

구경하고 싶다는 내 말에, 그리고 페르포네가 함께한다는 이유에 데미안이 다른 구경꾼들과는 자리가 전혀 다른 곳으로 안내했다.

경기장 안, 구경꾼들이 들어오지 못하는 귀빈석이었다.

그들은 자리에 앉고는 기사들의 검술 대결을 바라봤다.

새삼, 아주 옛날 사자들과 싸우던 검투사가 왜 인기가 많았는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트리체 경이 나오는군.”

데미안의 말에 내 시선이 경기장 쪽으로 스르륵 향했다.

그가 말하는 베트리체 경은, 아도니스 경을 말하는 걸까 아니면 아돌프를 말하는 걸까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전하께서는 이번 검술대회에 아도니스 경이 승리하길 바라시겠죠?”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경이 내게 우승을 바치겠다고 하기도 했으니까요.”

“…….”

“다만, 아도니스 경은 이런 검술대회에 관심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근위대에 들어간 뒤로 검술대회에 참가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었으니까.

“갑자기 왜 마음이 바뀌었는지 모르겠네요.”

그렇게 말하는 페르포네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꼭, 내가 아도니스 경을 만나러 베트리체 백작가로 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물끄러미 향하는 금색 눈동자에 그저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그나저나 대진표를 짠 이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악질이군요.”

“굳이 남매를 싸움 붙이겠다는 의미니까, 아무래도.”

제국민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한 처방으로 보이긴 했다.

그 순간 진행자가 높게 들었던 손을 아래로 내렸고, 아돌프가 빠르게 아도니스 경에게 달려들었다.

“성급하군.”

그런 아돌프를 보며 혀를 짧게 차는 데미안을 보다, 다시금 두 사람을 바라봤다.

검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 게 없지만, 아도니스의 검술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아도니스 경이 여성이기에 어느 정도는 힘으로 밀리는 부분이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런 것도 느껴지지 않았던 데다 몰아붙이는 아돌프의 검을 유려하게 넘겨받았기 때문이다.

검을 알지 못해도 아도니스와 아돌프의 상태는 쥐를 데리고 노는 고양이와 같다고 느껴졌기에 경기는 길지 않을 듯했다.

“승부가 곧 나겠네요.”

검술대회에 참가한 아도니스가 더는 시간 낭비 같은 걸 하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 끝나자마자 챙! 하고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아돌프의 검이 날아가는 게 눈에 들어왔다.

아돌프의 검이 대회장 바닥에 푹 박히고, 아도니스의 검은 아돌프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아도니스 베트리체 승!”

숨이 막힐 것처럼 조용한 경기장에 심판의 목소리만이 들려왔다.

붉으락푸르락한 아돌프를 무심하게 바라보던 아도니스가 손등으로 대충 이마의 땀을 닦아낼 때 고개를 돌리던 그녀와 시선을 마주쳤다.

“아도니스 경!”

눈이 마주치자 내가 불렀고, 아도니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내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는 빠르게 귀빈석 쪽으로 다가왔다.

“공녀님? 그리고 전하께서 어째서 이곳에 계십니까?”

“제가 보러 오자고 했어요.”

작은 손가방 안에서 아도니스가 내게 주었던 손수건을 꺼내 내밀자, 그녀가 조심스럽게 받았다.

“발슈타인 공자께서도 계신 줄은 몰랐습니다.”

“전하의 호위로 함께 왔습니다.”

“괜히 저 때문에……. 죄송합니다, 전하.”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페르포네가 뿌듯한 미소를 입가에 그렸다.

자신의 기사가 당연히 이길 거라고 확신은 했지만, 막상 실제로 승리한 모습을 눈으로 직접 보고 있으니 그 뿌듯함을 배로 느끼는 눈치였다.

“그나저나 이번 기회에 발슈타인 가의 검을 직접 보게 될 줄 알았는데, 아쉽습니다.”

“축제와는 적합하지 않은 검이니까요.”

아도니스 경의 말에 데미안이 가볍게 대꾸했다.

이런 축제 때도 잘 볼 수 없는 발슈타인 가문의 검술이었다.

베트리체 가문의 검이 기사의 정석이라면, 발슈타인 가의 검은 다르다.

살아남기 위한 검이다.

아카데미 시절 검술과 학생들이 데미안과 검을 맞대는 걸 싫어했던 이유가 이 때문이었으니까.

“경의 대전은 오늘은 이걸로 끝인가요?”

“예. 다음 대진표가 나올 때까지 또 기다려야죠.”

새삼 다음 대진 상대가 누구일지 궁금해졌다.

데미안이 검술대회에 참가하지 않는 만큼, 강력한 우승 후보는 아도니스가 될 것이었다.

그녀가 정말로 우승을 차지할 수 있을지도 궁금했고, 우승을 하고 난 뒤 바라는 한 가지의 소원이 무엇일지도 궁금했다.

베트리체 백작가에서 말했던 ‘새로운 성을 하사받는 것’에 대한 것일지, 아님 다른 무언가에 대한 것일지 말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런 궁금증보다 먼저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축하해요.”

내가 건네주었던 손수건을 조심스럽게 받으며 땀을 닦던 아도니스 경이 날 바라봤다.

땀방울이 눈가에 맺히자 일순 푸른 녹색의 눈동자가 꼭 빗방울이 맺힌 나뭇잎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축하의 말이 그녀는 조금 의문스러워하는 눈치였다.

……못 할 축하를 했나?

토너먼트전이라지만 대결에서 승리했으면 축하 인사를 건네는 건 기본적인 매너 아닌가.

“왜, 축하하십니까?”

“이기셨으니까요.”

“아뇨, 그런 의미가 아니라.”

그럼 뭐가?

그녀에게 악감정이 없으니 축하 인사는 당연한 거였다.

“제가 동생을 이겼잖습니까.”

난 또 무슨 말을 한다고.

코웃음을 가볍게 치며 대답했다.

“대회에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각자 원하는 게 있어서 대회에 나온 건데요.”

그리고 말마따나, 아도니스는 아돌프의 검을 몇 번 넘어가 주기라도 했지, 아돌프는 그것도 아니었다.

“동생인 아돌프 경도 아도니스 경을 이기려고 집중하지 않았습니까.”

“맞아. 그러니 당연히 받아야 할 축하 인사죠.”

내 말에 동감한다는 듯 페르포네가 고개를 끄덕였다.

“축하해요, 아도니스 경.”

“예, 전하.”

아도니스의 볼이 일순 붉게 물들었다.

방금 전에 참가했던 시합 때문에 생긴 홍조가 아닌, 막 칭찬을 받은 아이의 볼에 생기는 홍조였다.

“시합도 끝났으니 자리로 복귀하겠습니다, 전하.”

“복귀하겠다면 두 분 다 황실로 모셔다드리겠습니다.”

데미안이 말했다.

오늘의 일정은 이걸로 대충 마무리된 상황이었으니까.

“마차로 가죠.”

* * *

“데려다줄 테니까 너도 타지 그래?”

페르포네와 아도니스를 황실에 데려다준 뒤, 내 곁을 스쳐 지나가려고 하던 데미안에게 한 말이었다.

“얼굴 보면서 같이 타고 갈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왜 아니라고 생각해? 소문이 나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꽤 사이가 좋은 친구였잖아.”

내가 에이프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지 ‘친구’라는 말에 그가 노골적으로 인상을 썼다.

“그리고 아까 전에 하던 이야기도 마저 하고 싶은 거 아닌가?”

“…….”

날 무시하며 지나치려던 데미안이 날 물끄러미 바라봤다.

데미안이 나를, 이리나 데빈을 찾고 싶어 하는 거라면 내가 하는 마지막 말 한마디는 무시할 게 못 되었다.

“진짜 에이프릴을 찾고 싶은 거잖아.”

“내 앞에서 잘도 에이프릴 이야기를 꺼내는군.”

그 대꾸에 가벼운 웃음만을 흘렸다.

황성에는 보는 눈이 많으니만큼 사이가 소원해졌던 에이프릴과 데미안의 사이가 급격하게 좋아졌다는 이야기가 돌지 모른다.

그리고 데미안은 그런 소문이 도는 게 싫었던 만큼 내 마차에 타고 싶지 않았던 것일 테고.

마땅찮은 얼굴을 하면서 그가 마차에 올라타자, 내가 뒤따라 마차에 타며 문을 쿵 닫았다.

“발슈타인 가로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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