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그리고 결승전을 나가는 것도 또 다를 것이고.
“준결승전 앞이라 연습하셔야 할 텐데, 이렇게 시간 내주어서 고마워요.”
“아닙니다. 그러잖아도 집에 있는 건…….”
꽃다발의 꽃잎을 만지작거리던 아도니스 경이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
“불편한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래, 그럴 것 같긴 했다. 베트리체 백작의 성미를 보아하니 가만히 있을 이는 또 아니지.
아마 한참 눈칫밥만 먹고 있는 상황이었을 테니까.
“이렇게까지 축하해 주지 않으셔도 됐는데.”
말을 그렇게 하는 것치고는 꽃다발에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는 아도니스 경의 모습이 제법 귀여웠다.
갖고 싶었던 장난감을, 난생처음 가져보는 보물에 시선을 떼지 못하는 게 꼭 꽃다발을 받아보고 싶어 한 사람처럼 보였다.
“이렇게 좋아하실 줄은 몰랐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저번에도 꽃다발을 드릴 걸 그랬나 봐요.”
“티가 많이 났습니까?”
“예.”
차를 한 모금 마시면서 고개를 주억였다.
아도니스 경의 두 볼이 분홍빛 장미꽃잎처럼 은은하게 물들었던 데다 녹색의 눈동자가 비를 머금은 것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누가 봐도 기뻐하고 또 좋아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내가 확신에 찬 의미로 대답하자 살짝 민망해진 아도니스 경이 꽃다발을 옆의 의자에 올려두고는 큼, 헛기침을 했다.
매번 융통성 없이 딱딱한 그녀의 모습만 보다 지금 모습을 보니 신선하게 다가왔다.
“처음 받아봤습니다, 꽃다발.”
생각하지 못한 말이 앞에서 들리자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있던 내가 멈칫했다.
“아카데미 입학식 때도, 졸업식 때도 못 받아봤습니다.”
서품식 때도요.
노골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뒷말이 자연스럽게 들려왔다.
베트리체 백작은 아도니스 경이 검을 잡는 걸 싫어했던 만큼, 축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입학, 졸업 때도 선물하지 않았더라면 기사 서품식 때는 더더욱 빈손이었겠지.
새삼 아도니스 경이 고작 꽃다발에 이런 반응을 보인 이유가 이해 가는 순간이었다.
백작이 축하하지 않는데 다른 이들이 축하 인사를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을 것이고.
아마 베트리체가의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친인척들 모두가 백작 부부와 아돌프 경의 눈치만을 살폈을 것이다.
“아도니스 경.”
“예, 공녀.”
아도니스 경의 녹색 눈동자가 올곧게 날 향하고 있었다.
가족들에게 섭섭함도 서러움도 드러내지 않는 이유는 익숙해진 것이 아니라 그들을 포기한 것이겠지.
“축하드려요.”
그 한마디에 노골적으로 동요를 드러내는 그녀에게 다시금 또박또박 말했다.
“곧 있을 검술대회에서 우승하실 것도 미리 축하드리고요.”
“하, 하하…….”
마지막 말에 조금은 당황한 듯, 수줍은 듯 실소를 흘렸다. 이내 부끄러운 기색이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인 아도니스 경이 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제가 우승하지 못하면 어쩌려고요.”
“아도니스 경 말고 우승할 사람이 누가 있겠나요.”
여기사 최초로 황족의 근위대원이 된 사람이었다. 사내들만이 드글거리는 곳에서 여성이 ‘최초의’ 동시에 ‘최연소의’라는 타이틀을 달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를 것이다.
그녀가 그런 수식어를 받게 된 건 그녀의 재능과 노력의 합작이었다.
나의 단언에 그녀가 민망한 듯한 얼굴을 했지만, 나는 당당했다.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으니까.
당황한 듯, 기쁜 듯, 약간의 슬픔과 그리고 아주 조금의 허탈함이 뒤섞인 아도니스 경의 얼굴이었다.
왜 저런 얼굴이지. 머리 위로 물음표가 생길 때, 아도니스 경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기분이 묘해요.”
예상외의 한마디였다. 찻잔을 든 손을 내려놓고 그녀를 바라봤다.
“뭐가요?”
“그 축하한다는 말을, 공녀에게 들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었요.”
시선을 살짝 내리깔고 있었지만, 얼핏 보이는 표정이 조금 울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말 정말 듣고 싶었던 말이었거든요.”
숨을 살짝 들이마신 아도니스 경이 자세를 똑바로 고치면서 날 바라봤다.
아도니스 경은 눈물 같은 건 흘리지 않았다. 하지만 슬픔이 조금 가신 얼굴에서는 지치고 동시에 허탈한 기색이 느껴지기도 했다.
“몇 번이고 해줄 수 있는 말이에요.”
“맞아요. 정말로, 몇 번이고 할 수 있는 말이죠.”
내 말에 아도니스 경이 긍정했다.
‘축하한다’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상대가 따로 있었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 상대는 남인 내가 아니라 백작가의 가족이었겠지.
초콜릿의 끝 맛처럼 씁쓸한 모습이었다.
“처음엔 좋아하니까 잘하고 싶었고, 잘하고 싶으니까 열심히 했어요.”
표정이 다채롭지 않는 편에 속하는 아도니스 경의 얼굴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다.
살짝 일그러지려는 아도니스 경의 얼굴을 보다 말고 내가 앞에 있는 조각 케이크를 포크로 쿡 찔렀다.
그녀가 마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인정받고 싶어서 열심히 하기도 했거든요.”
“…….”
“너무 철없는 말이지만.”
“그게 왜 철없는 말이에요.”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생각 안 하세요?”
“전 경이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비꼼이 아니라 정말로 궁금해서 하는 말이었다.
베트리체 가문이 검으로 명성이 자자한 명문가이니만큼, 가주인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은 건 당연했다.
“내가 잘하고, 또 열심히 하는 것에 대해 지지와 찬사를 받고 싶다는 건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음일 거예요.”
“…….”
“타인에게도 인정받길 원하는데, 가족에게 바라는 건 더더욱 당연한 거죠.”
날 똑바로 보고 있던 아도니스가 고개를 푹 숙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녀를 바라보다 나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런 아도니스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다. 한때 내가 바라크를 보면서 가지기도 했던 생각이었으니까.
귀족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정도의 학식과 매너를 갖추게 된다면, 연금술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된다면 제게 한 번쯤은 시선을 줄 거라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정말로 가족으로 인정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했다.
어린아이나 다 자란 어른 모두에게 있을 것이다, 그런 욕심은.
“그런 욕심조차 없다면 어디 사람인가요.”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아도니스 경에게 내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설마, 울기라도 하는 걸까.
조금 머뭇거리면서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짚으려고 하던 순간이었다.
고개를 스르륵, 느리게 든 아도니스 경의 눈가에서 눈물은 보이지 않았다.
울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일순 들었다. 아도니스 경이 운다면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으니까.
“공녀님에게서 이런 말을 들을 거라 생각 못 했습니다.”
“백작가로 찾아갔을 때처럼 주제넘는 말이었나요?”
눈물을 보이지 않으니 다행이긴 하군.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여유롭게 찻잔을 잡고 향을 즐겼다.
“그냥, 제가 듣고 싶었던 말을 공녀님께서 할 줄을 몰랐거든요.”
“…….”
“정말로 듣고 싶었던 말이었는데.”
아도니스 경이 말 끝을 길게 늘렸다. 조금은 울고 싶어 하는 얼굴로 그녀는 허망한 듯 중얼거렸다.
“새삼 검술대회에 나가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2층에는 사람이 오지 않도록 내가 막아뒀기 때문일까, 디저트 가게 안이 유독 조용하게 느껴졌다.
주변의 소리가 점점 멀어지고, 아도니스 경의 뒷말이 나오기만을 한참 기다릴 때였다.
“가족보다 남이 내 맘을 더 알아준다면.”
“…….”
“그건 가족이 아니라는 말이겠죠.”
테라스 바깥을 보던 아도니스 경의 시선이 내게로 천천히 다가왔다.
“고맙습니다, 공녀.”
아도니스 경이 처음으로 한결 가벼워지고 시원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이런 미소를 짓는 이유는, 내가 마음을 알아줬기 때문인 건지, 아니면 본인 안에 있던 고민이 비로소 해결됐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공녀께서도 그런 생각을 가진 적 있었나요?”
왜 없겠나.
“내가 열심히 하면……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알아주겠지, 라고 생각한 적이 있긴 했어요.”
언젠가 에이프릴이 아닌 이리나로 바라봐 주겠지. 라는 생각도 했었다.
날 에이프릴이라고 부르고, 어머니라고 부르라던 죽은 공작부인에 대한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공작가의 딸로 입양되어 새 이름을 받은 것과는 전혀 다른 감각이었다.
날 모두가 가족으로 받아들인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나는 정신이 나가 버린 공작부인의 신경안정제 노릇을 해주는 대역에 불과했다.
그렇게 생각했기에 알렉시스 공작이 내 열일곱의 생일에 정식으로 입양하겠다는 말을 노력의 대가처럼 받아들였던 순간이 있었다.
드디어 에이프릴이 아닌 이리나로 바라봐 주겠구나, 라고 한 생각이기도 했다.
에이프릴을 찾으면서 많은 게 바뀌긴 했지만 말이다.
정식으로 입양된 것도 아니었고, 친딸을 찾았으니 이리나라는 이름을 되찾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수포로 돌아가긴 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