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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역공녀에게 후회는 필요 없습니다 (66)화 (66/109)

66화

그럴듯한 가십거리의 소문이긴 하지만 도대체 누가? 라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제국 내에서 라이즈 공작가와 적대하는 가문은 없었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도 중립이었기에 그를 적대하는 이도, 그렇다고 유달리 친하게 지내는 가문도 없었다. 라이즈 공작가를 제 편으로 끌어들이고 싶어 하는 인물이 있다면 또 모를까.

하지만 에이프릴 공녀를 건드린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없었을 것이다. 환심을 사고 싶었다면 이것저것 선물을 바쳤겠지. 그나마 에이프릴과 사이가 나쁜 이라면…….

데미안 정도?

“이렇다 할 수확은 없군.”

“그나마 이거라도 건진 겁니다. 저번에는 하나도 못 건졌고요.”

“저번에도 에이프릴 공녀에 대해서 알아봐 달라는 이가 있었나 보지?”

아까 전에도 말실수를 하더니, 이번에도 또 말실수를 하는군.

페르포네의 말에 테란이 입을 틀어막았다. 이놈의 입이 원수지.

제 머리를 퍽퍽 쥐어박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지만, 상대가 눈앞에 있으니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알아차린다고 한들 누가 그런 정보를 원했는지는 모르겠지.

제게 물어보지도 않을 것이고.

“여튼 더 알아보고 있긴 하지만, 알아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알아내기 쉽지 않아도, 시데반의 눈동자를 받은 만큼은 일하도록.”

“……예.”

젊은 놈이 벌써부터 이렇게 얄짤없어서야.

“아, 그리고 사람들이 뭔가 오해하는 게 있더라고요.”

“오해하는 거?”

“예. 공작부인이 에이프릴 공녀를 되게 감싸고 돌았다고 하는데 죽기 직전에는 그러지 않았다고 합니다. 모질고 엄하게 대했다고 하더라고요.”

“이미 죽은 공작부인을 찾아가 물어볼 수도 없으니.”

페르포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테란에 페르포네가 말을 마저 이었다.

“3년 전에 쫓겨났다던 사용인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보도록 하거라.”

하거라? 묘하게 권위감이 느껴지는 말투였다.

“그 사용인 혀는 멀쩡하겠지.”

“뭐, 그건 그렇겠죠. 알겠습니다.”

게다가 3년 전이면 에이프릴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던 시기랑 겹치기도 했다.

공작가 내부에 있었던 이라면 많은 것들을 알 수 있겠지. 원래라면 일했던 집안의 내부 사항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 게 원칙이지만, 더 이상 귀족가 집안에서도 일하지 않는 이고 또 황족이 알고 싶다 한다면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길드를 빠져나온 페르포네가 로브를 좀 더 강하게 여몄다.

가을밤의 공기는 마치 초겨울의 아침처럼 차갑고 싸늘했다.

“다만 전보다 수확이 있긴 한데…….”

“저번에는 하나도 못 건졌고요.”

저번에 라이즈 공작가와 에이프릴의 정보를 구하려고 했던 이는 과연 누구일까.

물어보지 않았지만, 페르포네는 대충 누가 그 정보를 원했는지 알 것 같았다.

“데미안.”

제국에서는 데미안 하나밖에 없겠지.

자신이 이상함을 느낀 것만큼 데미안 역시 에이프릴의 이상함에 대해서 느꼈을 것이다.

달라진 것 같다는 느낌도, 그리고 요즘 들어 에이프릴이 자신이 알던 에피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시간이 늦은 만큼 황실로 들어가야 했지만, 이왕 나온 김에 데미안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혹시라도 자신이 솔직하게 말을 한다면 에이프릴을 찾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서로가 서로에게 훌륭한 조력자가 되겠지.

황실로 향하던 페르포네의 걸음이 수도 내 대공가의 별장으로 향했다.

어두운 새벽이지만, 대공가에서는 여전히 환한 빛이 새어나오고 있는 상태였다.

앞을 지키고 있는 대공가의 사병들이 페르포네를 막아섰다.

“정체를 밝히십시오.”

페르포네가 뒤집어쓰고 있던 로브를 천천히 끌어 내렸다.

신분패 같은 건 없었지만, 페르포네의 존재 자체가 그의 신분을 증명하고 있었다.

“헉……!”

“호, 황태자 전하!”

짙게 내려앉은 어둠을 밝히는 환한 금빛의 머리카락과 태양을 그대로 담은 듯한 선명한 금색 눈동자가 그 증명이었다.

“대공자를 만나러 왔으니 안내하라.”

굳게 닫혀 있던 대공가의 문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 * *

“그래서.”

부탁을 들어주겠다는 확답을 듣고 난 뒤에, 데미안이 나를 퍽 엄한 눈으로 바라봤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에이프릴.”

그래, 내가 내 정체를 밝혔으니만큼 나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많겠지.

전부 다 말해주겠다는 생각으로 꺼낸 말이지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에 눈만 데구룩 굴리면서 딴청을 피우고 있자 데미안이 한숨과 함께 말했다.

“제대로 설명해 줄 때까지 공작저로 돌아갈 생각 하지 마.”

“……대공가의 영식께서 할 말은 아닌 것 같네요.”

오히려 늦은 시각이라면 귀족가의 영식이 먼저 데려다주겠다며 말을 해야 할 상황이었다.

끈덕지게 날 쳐다보고 있는 데미안을 보니 확실히…… 보내주지 않을 요량인 듯했다.

이러다가 혹여나 공작가에서 날 찾는답시고 대공가까지 오면 피곤한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입을 열었다.

“눈치챘잖아, 내가 진짜 에이프릴의 대역이라는 거.”

데미안의 눈썹이 사납게 꿈틀거렸다. ‘진짜’ 에이프릴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내가 혀로 마른 입술을 훑었다.

데미안은 자신에게 오히려 내가 ‘진짜’라고 말했지만, 그가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가짜는 진짜가 되지 않는 법이었다.

“10년 전쯤에 공작가에서 내가 잃어버린 딸을 찾았다며 데리고 온 건 진짜가 아니라 나였어.”

“…….”

“너도 알겠지만, 내가 워낙 에이프릴 아가씨랑 똑같이 생겼다 보니.”

쌍둥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똑같았다.

굳이 다른 점을 찾자면 성격 혹은 목소리가 조금 다를 뿐이었다. 하지만 미묘한 목소리 톤까지 알아차리는 사람은 별로 없는 법이니까.

약간 망설이면서 머뭇거리는 모습이 무언가 질문을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고 있는 얼굴처럼 보였다.

그리고 데미안이 어떤 질문을 하고 싶은지 대충 짐작이 갔다.

똑같이 생긴 나를 데려왔다고 했으니 내 친부모님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은 거겠지.

내가 고아인 건지, 아니면 양부모 밑에 있었던 건지, 아니면 친부모가 날 버린 건지.

“돌아가신 공작부인께서 날 아버지에게서 샀어. 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셨거든.”

친아버지가 공작가에게 날 넘긴 이유는 신전 때문이었지만, 그 사실까지 굳이 말해줄 필요는 없었다.

친부의 속사정은 둘째 치고, 공작부인이 아버지에게서 날 산 건 사실이었으니까.

말을 듣자마자 와작 구겨지는 데미안이 한 손으로 본인의 얼굴을 가렸다.

마치 내게 본인이 지금 짓고 있는 살벌한 표정은 보여주기 싫어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망할.”

“대신 화 안 내줘도 돼. 약값 때문에 내가 가겠다고 한 것도 있었어.”

“그래도 공작가에서 억지로 널 데려온 건 변하지 않아. 그리고 널……!”

그가 이를 까득 씹었다.

“공작가가 친딸을 찾으면서 널 버린 것도 변하지 않는 사실이고.”

“그렇지.”

불과 3년 전만 해도 그 사실이 나를 너무 힘들게 하고, 또 화나게 만들었는데……. 지금은 또 괜찮은 것처럼 가라앉았다.

분노가 완전히 사그라져서 없어졌다기보다는 데미안이 날 친구로, 진실로 걱정하는 저 말이 듣기 좋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체스를 두면서 마시려고 놔두었던 찻잔에 처음으로 손이 갔다.

바짝바짝 마르는 목을 차로 축이면서 그를 바라봤다. 데미안은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리고 내가 자주 봐온 얼굴이기도 했다. 공작가에서 쫓겨나 알리샤에게 갔을 때, 그 애가 저런 얼굴로 나 대신 울곤 했었다.

“데미안, 괜찮아.”

“안 괜찮아.”

“…….”

“내가 안 괜찮고, 네가 또.”

숨을 파르르 내뱉은 그가 더는 날 보기 힘든지 고개를 푹 숙였다.

“괜찮을 리가 없고.”

“…….”

“왜 말하지 않았어. 아니, 왜…… 날 안 찾아온 거야.”

“…….”

“친구잖아.”

지난 3년간 한 번도 연락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일까, 친구라는 단어가 왜 이렇게 무겁게 들리는 걸까. 마음 한 켠에 남은 죄책감이 나를 괴롭혔다.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데미안의 모습에 아랫입술을 질근질근 물었다.

“……그냥, 말을 하기가 힘들었어.”

내가 사실은 친딸이 아닌 대역으로 살아왔다는 말을, 내 치부를 어떻게 드러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데미안이 공작가의 친딸이 아닌 나를 친구로 여기고 싶지 않다고 하면 또 와르르 무너져 버릴 테니까.

버림받는 건 한 번으로도 충분했으니까.

“공작가의 이름을 빼면 나한테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생각했었어.”

“똑똑한 줄 알았는데 완전 헛똑똑이였네.”

“그러게. 네가 이렇게 날 찾고 있을 줄 알았더라면 진작에 말할 걸 그랬나 봐.”

눈가 주변이 한껏 발개진 데미안이 마른세수를 하고 날 바라봤다.

“공작가에서 너를 내쫓았다고 했는데, 네가 여기로 왔다는 건…….”

“…….”

“물어보지 않아도 상황이 뻔하군.”

네가 필요해진 거겠지, 그가 작게 뒷말을 중얼거렸다.

그가 무겁게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를 보호해 주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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