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옙.”
“네.”
촐랑거리며 뛰어가는 아벨과 보리스와 제시도 기사들의 제일 뒷자리에 어정쩡하게 자리를 잡았다.
전부 소집했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는지 기사단 내의 사람들이 전부 모인 상태였다.
얼굴을 쉽게 보기 힘든 기사들까지 모여 있자, 보리스가 짧게 휘파람을 불었다.
인력이 이렇게 많이 필요한 일인가? 북부의 마수들을 잡으러 갈 때도 이렇게까지 사람들이 모이지는 않았었다.
기사들을 쭉 훑어보는 단장에 참지 못한 건 역시 성격 급한 아벨이었다.
“단장, 무슨 일 때문에 그러세요?”
성격 급하고 말하기 좋아하는 아벨을 보면서 보리스는 일순, 그가 사람이 아니라 사실은 촉새의 수인이 아닐까란 생각이 일순 들었다.
선입견이지만 말이다. 단장인 챔프가 헛기침을 한 번 큼, 하면서 두 손을 뒷짐 지며 입을 열었다.
“수도에 계신 도련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수도에서 언제 오신답니까?”
“한동안은 계속 수도에 계실 거라고 말씀하셨…… 아니, 아벨.”
중요한 건 이게 아닌데 말을 새게 만드는 아벨에 챔프가 쯧, 인상을 구기면서 손가락질했다.
“너 내가 말 끝날 때까지 입 열지 마.”
“아니, 궁금해서…….”
“방금 또 입 열었군. 나중에 연무장 열 바퀴 돌아.”
“단장님, 억울……!”
“열 바퀴 더 추가.”
그제야 입을 다무는 아벨에 챔프가 후, 숨을 내뱉었다.
물론 단원들이 데미안을 기다리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수인이 아니면서 수인만큼의 강한 힘이나 단장보다 강한 검술 실력까지.
강한 자를 선호하는 북부답게, 누구보다 강한 데미안을 모두가 좋아했다. 데미안과 칼을 섞을 때면 느껴지는 짜릿함과 오싹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도련님께서 사람 하나를 찾고 싶어 하신다. 아무도 몰래 움직여서 찾고 싶어 하시고.”
찾는 사람이 대체 누구길래……?
“그래서 몇 팀이 나눠질 거다. 북부와 타 지역들로 나누어 사람을 찾을 거다.”
이렇게까지 찾는 거면 분명히 중요한 인물일 텐데.
황실과 관련된 인물? 아니면 대공가와 관련된 인물? 단원들 머리 위로 물음표가 착착 떠오를 때, 챔프가 말을 덧붙였다.
“찾을 이는 수인이다.”
“예?”
“수인이요?”
동시다발적으로 튀어나오는 수군거림에 챔프가 입을 다물었다.
하긴, 이런 반응을 예상 못 한 건 아니었으니까. 자신도 대공 전하에게 들었을 때 이와 같은 반응이었다.
예상과 다른 인물이지. 데미안이 기사단원들도 아니고 수인과 엮일 일은 크게 없었으니까.
“나이는 이십대 중후반, 늑대수인이라고 하더군. 잿빛 눈동자인데 흥분하면 동공이 금색으로 변한다고 했고.”
챔프가 손을 들어 자신의 어깨 정도를 가리켰다.
“그리고 키는 이 정도라고 하더군.”
“성별이나 이름은요?”
“성별은 여성이라고 했다.”
혹시 데미안이 반한 수인인가? 챔프가 아벨의 생각을 읽었다면 분명히 연무장 스무 바퀴를 더 추가시켰을 것이다.
“이름은 알리샤라고 하더군.”
……알리샤?
그 이름이…… 뭐랄까, 흔한가……?
제시가 방금 전까지 알리샤와 함께 있었던 보리스와 시선을 교환했다.
“그자를 찾으면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그자의 신변 보호다. 그 후 당장 대공가로 데리고 오도록.”
이내 기사들이 가장 좋아할 만한 말을 또 꺼내기로 했다.
“그리고 그자를 찾아내는 자에게는 일주일간의 휴가와 더불어 도련님께서 따로 보상까지 내린다고 하셨다.”
“오오오!”
흥분을 감추지 못한 기사들 사이로 작은 손 하나가 위로 슥 올라왔다.
“저, 단장.”
손의 주인은 제시였다.
신변 보호라는 말까지 듣고 보니, 짐이 한 가득하고 편지를 보내기 위해 급급해하던 알리샤의 모습이 생각났다.
설마 찾는 사람과 동일인물이겠나 싶긴 했지만, 확실히 해서 나쁠 건 없었다.
“이름이 정말 알리샤인가요? 성도 따로 없고요?”
“성은 없다고 들었지만, 굳이 성을 쓴다면 데빈이라는 성을 쓸 것이라 하더군.”
“…….”
“이름은 알리샤가 확실하고. 왜 그러지?”
제시가 당황해서 한참을 어버버거리고 있자, 보다 못한 보리스가 대신 말을 이었다.
“찾는 사람이 저희 집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이내 기사단원들의 시선이 죄다 보리스와 제시에게로 쏠렸다.
몰리는 시선에 제시가 어설픈 웃음을 흘렸다.
“진짜야?”
“예…….”
“너희 원래 이렇게 운이 좋나?”
찾고 있던 사람이 때마침 이렇게 나타나니 그리 생각할 법도 하겠지만, 두 사람은 굳이 따지자면 운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보리스의 삶에서 가장 큰 행운은 발슈타인 대공가의 소속 기사로 일하게 되었다는 점 하나일 것이다.
제시 역시 유년 시절을 생각하면 운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어색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가로저었다. 신기한 일이긴 하지.
“딱히 운이 좋지는 않습니다.”
“근데 정말 휴가 일주일 주시는 거 맞으십니까?”
사실 사람을 찾는 것보다 콩고물에 더 관심이 있었다.
기대감이 가득 찬 제시의 물음에 챔프가 어이없다는 웃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은 약속이었으니까.
“오예!” 주먹을 꽉 쥐는 제시를 다른 기사들이 퍽 부럽다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사람은 찾은 것 같으니 괜찮은데……. 이내 기사들이 다른 궁금함이 생겼는지 손을 들며 물었다.
“근데 그 수인은 뭐 때문에 찾는 겁니까?”
“도련님께서 찾도록 부탁받은 인물이라고 하더군.”
“오∼ 저희 도련님한테 부탁이란 걸 할 정도면 제법 친한 분이신가 보군요.”
“어떤 분이 부탁하셨는데요?”
부탁이란 걸 해도 냉랭하게 거절하는 데미안이 순순히 들어줄 정도면 엄청난 관계임이 분명하다.
눈을 빛내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기사들에 챔프가 며칠 전을 떠올렸다.
영상구에 비쳤던 데미안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많고, 궁금한 건 비단 대공 소속의 기사들뿐만이 아니라 데미안의 부모인 대공 부부도 마찬가지였다.
누구의 부탁인데? 궁금해하던 대공부인의 눈빛에 데미안은 대답 대신 그저 보기 좋은 미소만 그려낼 뿐, 누구라고 명확하게는 말하지 않았다.
그저 어떤 사람인지 살짝 표현만 했을 뿐.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눈치였던지라 계속 캐묻지는 못했었다.
“도련님이 가장 걱정하는 사람의 가족이라고 하더군.”
“오……!”
“오오……!!”
챔프의 한마디에 기사단 모두가 설레발 같은 감탄을 내뱉었다.
“하긴, 우리 도련님도 슬슬 사랑에 빠질 나이시긴 하죠.”
“맞아맞아, 첫사랑이 지금인 것도 좀 늦긴 하죠.”
“와, 도련님 짝이 될 분이 어떤 분일지 궁금하네요.”
쓸데없는 말을 떠들어대는 기사들에 챔프가 일갈했다.
“헛물켜지 마.”
“에이, 헛물이라뇨! 우리 도련님이 얼마나 완벽한데!”
누가 완벽하지 않다고 했나. 그냥 쓸데없는 말을 그만하라고 했지. 챔프가 한숨을 내쉬면서 한껏 기대에 부푼 이들을 보고 있을 때였다.
“검은 머리키락이며 붉은 눈동자며. 대공 전하의 모습을 빼다 박은 준수한 외모잖습니까. 게다가 집안이 어디 꿀리기라도 합니까.”
피 한 방울 안 섞였다지만 제국법상으로 인정하는 대공가의 유일무이한 후계자 아닌가.
하물며 어머니인 밀레나는 현 황제의 유일한 혈육이기도 했으니까.
“근데 성격이 좀 딱딱하신 게 흠이죠.”
“그만, 그만.”
아쉽다는 아벨의 말에 챔프가 말을 잘라냈다.
“여튼, 제시, 보리스. 너희 둘은 지금 당장 그 수인을 데리고 오도록 해.”
“옙, 알겠습니다.”
대공가에서 단기로 일하고 싶다고 했으니까, 그걸 빌미로 말하면 방문할 것이다.
“이만 해산.”
챔프의 명령에 기사들이 흩어지려고 하던 찰나였다.
“아, 그리고 아벨.”
“예, 단장님.”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말 몇 번이나 더 했지?”
“……예?”
“넌 연무장 마흔 바퀴다.”
절규하는 아벨을 뒤로한 채 챔프가 몸을 돌렸다.
* * *
“후!”
리안이 칼을 세로로 한 번 긋고는 칼을 칼집으로 조심스럽게 넣었다.
방금 전까지 치열하게 리안과 칼을 주고받던 아도니스 역시 야트막한 숨을 내뱉으면서 칼을 집어넣었다.
“이제 연습은 그만하는 게 어때? 컨디션 관리도 해야지.”
“예, 그래야죠.”
건국제의 검술대회가 코앞으로 다가온 상태이다 보니, 조급한 마음에 괜히 연습을 더 하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괜한 조급함이 부상을 갖고 온다는 리안의 지적에 오늘도 결국 여기까지 할 수밖에 없었다.
검술대회의 결승전이 이제 코앞이었다.
검술대회의 결승전만이 남은 상태에, 아도니스가 결승 후보였으니까.
유력한 우승 후보답게 아도니스가 황실에서 움직일 때면 낯이 익은 기사들이 그녀에게 ‘아도니스 경, 힘내십시오!’라는 인사를 종종 내뱉고는 했다.
“어, 아도니스 경! 결승전 앞두고 연습 중이셨습니까?”
그래, 지금처럼 말이다.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아비드와 그 옆에 있는 아돌프를 비롯한 다른 기사들 몇이 눈에 들어왔다.
“힘내십시오. 경이라면 반드시 우승하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