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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박함에 한글이 발을 동동 구르며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정이도. 대체 어디로 간 거야?”
아까운 후배를 적어도 이런 식으로 녀석의 마수에 걸려들게 할 수는 없었다. 오디션이 진행되던 내내 자꾸만 김분홍을 쳐다보던 정이도의 눈빛이 마음에 걸렸다.
한글이 생각하기론 정이도란 인간은, 모든 인간관계에서 단물만 빨아 먹는 거머리 같은 남자였다. 이제껏, 그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사람들을 밟고 올라섰는지 안다. 분홍 또한 아마 철저하게 이용당하겠지, 이제껏 늘 그래 왔듯.
누군가 자신의 앞에서 이도를 칭찬할 때면 항상 한글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웃기시네. 정이도가 쓴 곡이 아름답다고? 그것도 모자라서 그 자식이 만든 노래가 다 살아 있다고?’
당연히 그렇겠지. 그런데 그건 죄다 눈속임일 뿐이란 걸 한글은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정이도는, 개개인이 지닌 영감을 뽑아 먹고 사는 놈이니까.
정이도가 만든 노래의 주인공들이 각자 어떤 식으로 자멸했는지, 한글은 여러 번 다른 사람들의 입을 통해 들었다.
누군가의 뮤즈가 된다는 건, 그만큼의 대가를 치러야 가능한 일이다. 동화 속 인어 공주는 인간 세상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두 다리를 얻는 대신 자신의 목소리를 잃어야 했다.
아이돌이란 직업 역시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팀이니까.’ 이 사실 하나로 모든 걸 희생을 해야 했고, 가능한 자신만의 목소리를 죽이고 그룹 안에 섞여 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했다.
한글에게는 어떻게든 자신이 이끌어 주어서, 분홍으로 하여금 자신만의 색깔을 찾을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이 생겼다.
때마침 울린 휴대전화를 받자, 그걸 통해 한글은 이도의 행방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군요.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급한 일이 있어서 이만 끊을게요.”
최근에 실장이 정이도를 유난히 많이 끼고돈다고 생각했는데 정말이었다. 6층은 AT 엔터테인먼트 내부에서도 주로 회의실로 이용하는 공간인데, 거기를 통째로 빌렸다고?
찜찜한 얼굴로 매니저의 전화를 끊은 뒤 한글은 곧장 목적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휴대전화로부터 여러 번 진동이 울리기 시작하다가 끊겼지만, 미처 분홍은 그것을 확인할 정신머리조차 없이 이도와의 대화에 몰입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말을…….”
이윽고 분홍의 눈앞이 새하얗게 질렸다. 분한 마음에 어느새 두 눈에서 뚝뚝 눈물이 떨어졌다.
돌아와서 다행이다, 다시 만나 반갑다. 이런 말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지금의 그는 정이도가 어떤 인간인지 알며, 겉치레로라도 그럴 수 있는 위인이 아니란 확신이 있다.
정이도에게는 감정이란 게 없으며, 오로지 원칙만이 중요한 사람일 뿐이란 걸 분홍은 뒤늦게 깨달았다. 거기에 더해진 야망은 함께 걸어 보려는 사람을 더할 나위 없이 비참하게 만들었다.
“대체 왜 우는 거야?”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듯한 의아한 눈을 한 채 이도가 지그시 김분홍을 응시하며 마저 물었다.
“너, 돈 많이 벌고 싶다고 그랬지 않아?”
“…….”
“우리가 함께라면 가능해.”
“……하.”
분홍이 허탈하게 웃었다. 왜 우는 거냐고, 이도의 그 질문에 과거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만 하고서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말과 동시에 아래로 뚝뚝 떨어지던 구슬픈 눈물이 있었다.
조명이 꺼져 어두컴컴한 작업실 내부는 자욱이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로 가득 차 있었고, 테이블뿐만 아니라 기계 장비들 위까지 구겨지고 찢긴 상태의 악보들로 잔뜩 어지럽혀진 상태였다.
그중 하나를 들여다보면 손때가 묻어 나올 정도로 몇 번이고 고쳐 쓴 흔적이 보였다. 쉴 새 없이 덧그려지느라 마치 낙서처럼 형편없이 변해 버린 음표들이었다.
아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노력이 가득한 그저 하찮고, 미련하기만 한 정이도의 세상이라고 과거의 분홍은 안타까워했다.
‘하고 싶은 음악 마음껏 하면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말. 어떻게든 빛을 보기 위해 현실과 타협해야만 했던 정이도가 보인,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에 터진 그의 울분에 그걸 보는 분홍의 가슴이 찢어진다.
그러고 난 직후 이도가 분홍에게 다정하게 물었었다.
‘너는 하고 싶은 게 뭐야?’
하고 싶은 거. 회귀 이후, 지금 다시 곱씹어도 여전히 너무나도 어려운 질문이라고 분홍은 생각했다.
어느 순간 가지게 된 그의 꿈은 그저 연인의 곁에 머무르는 것이었기에…….
그때나 지금이나 그랬다.
사실은 그렇다고, 과거에 분홍이 솔직하게 고백하지 못했던 이유는 이도가 자신을 한심하게 볼까 봐 두려워서였다. 그들이 처음 마주친 그날처럼, 간절하지 않다고 꾸짖을 것 같았다. 애초에 거창한 꿈이란 걸 가져 본 적 없는 김분홍이었다.
‘너 절실하게 뭔갈 해 보고 싶다는 생각, 해 본 적은 있어?’
그게 뭐냐고요? 분홍은 이미 자신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그저 이도의 곁에 있는 것이 그가 가진 작은 소원이었다.
“……흑.”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건 정이도의 노력 같은 게 아니었다. 분홍의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걸 알아주는 건 고작 한 사람 정도면 충분했는데, 끝끝내 정이도는 그걸 몰랐다. 서러움이 밀려와 분홍이 흐느끼는 걸 멈추지 못하고 계속해서 울었다.
“응. 분홍아?”
제발 울지 마. 가엾게도 흐느끼는 이에게 눈앞에 다가온 손가락이 제법 다정하게 눈가의 눈물을 닦아 내었다. 어린아이를 다루는 것처럼 상냥하게 엄지가 젖은 얼굴을 문질렀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정이도는 김분홍의 곁에서 항상 떠나 버릴 사람처럼 굴었다. 곁에 있지만 그건 곁에 있는 게 아니었다. 늘 항상, 자신을 혼자 두고 가지 말라고, 분홍은 이도에게 절박하게 애원하고 싶었다.
그래서 작업실에서 술에 취한 이도가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은 그날, 그의 꿈이 이뤄지길 바라는 대신에 분홍은 아주 조금 이기적인 생각을 했기에 그렇게 답한 것이었다.
‘저는요. 돈이 아주 많았으면 좋겠네요.’
분홍은 생각했다. 그가 돈이 아주 많다면 자신의 곁에서 이도가 떠나지 않을 거라고 여겼다.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면서 사는 게 이도의 소원이라면 그럴 수 있도록 이뤄 주는 게 자신이었으면 했다.
더는 이도가 가난 앞에서 비참한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분홍은 그를 행복하게 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언젠가 이도의 꿈이 이뤄지게 된다면, 그게 바로 부자가 된 자신의 옆이길 간절히 빌고 빌었다.
“만지지 마요.”
정이도의 손길을 김분홍이 차갑게 거절하며 떨쳐 내자 그가 어깨를 으쓱하더니, 한 치의 미련조차 없이 멀어졌다.
어깨를 숙인 채로 김분홍이 허탈하게 웃었다. 정이도가 가진 그 특유의 칼 같음이 이제는 진절머리가 났다. 자신이 이런 남자를 사랑했다니. 분홍은 믿을 수가 없었다.
콩깍지가 벗겨지고 난 이후 보게 된 정이도는 정말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 어느 순간에도, 심지어 사랑에 빠진 순간에도 자신의 앞길이 더 중요했던 남자였다.
노래들, 정이도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음악만은 정말로 아름다워서, 더할 나위 없이 찬란해서, 감히 그걸 만든 창조주인 정이도 역시 그럴 거라고 넘겨짚은 건 그의 본성을 인제 와서 깨달은 김분홍의 오만이었다.
“그래서 어쩔 거야?”
정이도가 다시 한번, 아직 울고 있던 김분홍을 재촉했다. 상대의 감정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한 그 모습에서 과거의 말이 겹쳐진다.
‘대신, 우리 내기하자.’
단지 지금뿐만 아니라 회귀 이전에도 이도는 항상 그래 왔다. 김분홍은 사랑을 하고 있었는데, 정이도는 게임을 했다.
질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깔린 판은 애초에 시작하지도 않는 모순된 도박꾼처럼 굴었다.
과거의 분홍은,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그런 연인의 조금의 온기조차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손바닥 위에 키스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위해 노래를 만들어 달라고 간절히 빌었다.
언젠가 그의 손끝에서도 자신을 향한 사랑이 피어나기를. 그런 날이 반드시 올 거라는 사실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기에 할 수 있는 말과 행동들이었다.
비록 정이도에겐 그 모든 것들이, 자신을 제멋대로 휘두를 수 있는 약점이었음에도, 언젠가 자신이 이 남자를 바꿀 수 있을 거라고 간절히 믿었기에 그럴 수 있었다.
“……제가 거절할 수 없을 거란 걸 알잖아요.”
분홍의 대답에 만족스럽다는 듯 정이도가 이를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잘 생각했어.”
나중에 보자. 정이도의 인사를 무시한 채 그를 뒤에 두고서 김분홍이 열린 문을 통해 먼저 걸어 나가며 생각했다.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아. 길이.’
다시 한번, 숨이 막혀서 분홍이 작게 심호흡을 했다. 그런 뒤에 빠르게 걸음을 옮기는 중에 코너를 돌기 직전 갑자기 튀어나온 인영에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런 그의 얼굴이 웃겼던 한글이 작게 키득거리다가 곧장 심각한 표정이 되어 손을 뻗었다.
“울었어요?”
팔랑거리는 속눈썹이 어느샌가 바로 분홍의 시야 바로 앞에 있었다. 훅. 자신도 모르게 숨을 참은 김분홍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려 그의 얼굴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사탕 문 어린아이도 아니고 오한글의 얼굴을 보자마자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 자신이 이상했다.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눈이 어딘가 화가 난 것 같기도, 아닌 거 같기도 하다고, 분홍이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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