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시녀가 이상했다. 쓴 차를 내오긴 해도 규칙적으로 오던 그녀는 시간을 지키지 못하고 있었다.
‘딱히 시킨 일도 없어서 바쁘지 않을 텐데.’
다른 시녀였다면 언제 오는지, 시간을 지키고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시녀는 아니었다.
‘처음부터 눈에 띄었지.’
시간을 지키지 못한다고 해도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에겐 이 미묘한 시간 차가 꽤나 크게 느껴졌다.
똑똑.
작은 노크 소리와 함께 히나가 들어왔다. 예민한 신경은 고개를 들어 보지 않아도 그녀가 어떻게 걷는지, 무엇을 하는지 알려주었다.
처음 왔을 때와는 다르게 주변을 둘러보며 뭐든 하나 얻어가려고 하던 히나의 행동이 많이 바뀌었다. 비틀비틀, 힘없이 다가온 그녀가 천천히 손이 닿는 곳에 홍차를 두었다.
“드세요.”
대마법사의 시녀가 할 일은 딱 두 가지였다. 응접실의 청소를 하는 것. 그리고 하루에 세 번 아침, 점심, 저녁에 차를 내오는 것.
그가 머무는 곳은 마법으로 먼지 하나 날리지 않았고, 깊은 숲속과도 같은 청정한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질려서 하다 만 연구들로 어지럽고 산만하긴 해도, 알지 못하는 재료와 약품들을 잘못 만졌다가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청소하지 못하게 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의 별궁에서 시녀가 할 만한 일을 아무리 찾아도 그녀가 지내는 숙소 청소밖에 없었다. 항상 제시간에 맞춰 오던 아이가 늦을 이유를 찾기 힘들었다.
며칠 관찰해 본 결과, 히나는 지극히 수상한 행동을 하고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성실했다. 덤벙대고 엉뚱하긴 해도 천성이 착실하다. 보기 안타까울 정도로 꾀를 부릴 줄 모르는, 요즘에 보기 드문 아이였다.
히나가 오고 나서 여태 단 한 명도 손님이 오지 않았던 응접실은 매일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었다.
사람이 오지 않는 걸 깨닫고 나태해질 만도 한데 매일같이 청소를 하는 것을 보면 절대 꾀를 부리는 성격이 못 된다는 말이었다.
“잠깐.”
카신은 물러나려는 히나를 불러 세웠다. 고개를 들고 몸을 돌려 돌아보는 히나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반짝반짝 생기가 돌던 눈은 퀭했고, 한 번 만져 보고 싶은 충동을 끌어냈던 말랑말랑한 볼은 어느새 핼쑥해져 있었다.
‘몸에 문제가 있군.’
그를 보는 초점도 흐렸다. 혈색도 좋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며칠 사이에 저렇게 되는 거지?’
수상한 시녀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본인은 스스로의 행동에 전혀 이상할 것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지만, 그녀의 티 나는 행각을 하루, 아니 한 시간만 지켜봐도 알 수 있었다.
무슨 목적으로 접근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히나는 겁 없이 홀로 황궁까지 들어온 첩자였다.
‘설마 첩자로 들어오면서 자기 관리가 필수인 걸 모르진 않겠지?’
히나의 배후에 있는 인물이 아무리 기대 없이 그녀를 보냈다고 해도 첩자를 보내면서 자기 관리에 대한 당부도 하지 않았을까.
그 배후의 적이 누군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정도로 멍청할 것까진 않았다.
성실한 사람이 기본을 지키지 않고 있다면 필히 다른 이유가 있어서였다. 어리숙해도 꾀부리지 않고 나름대로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첩자 노릇을 하고 있는 히나라면 점점 좋아지지 않는 자신의 상태를 그냥 두진 않았을 것이다.
“뭐 시키실 거라도 있으신가요?”
히나는 뚫어지게 쳐다보는 카신에게 조용히 물었다. 어서 돌아가 쉬고 싶었지만, 그의 강렬한 시선을 무시하고 나갈 수 없었다.
벌떡.
히나는 큰 보폭으로 단숨에 앞까지 다가온 카신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눈을 천천히 끔뻑이던 그녀는 뒤늦게 앞에 있는 카신을 알아채고 화들짝, 뒤로 물러섰다. 아니, 물러서려고 했다. 카신에게 손목이 잡히지만 않았다면.
“왜, 왜 이러시는 거예요!”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낀 히나는 다급히 소리를 질렀다. 감히 대마법사의 앞에서 소리를 쳤다는 무례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분명 음식이나 물이다. 약품을 타놓은 음식이나 물을 먹지 않는 걸 눈치챈 그가 이제는 대놓고 인체 실험을 할 생각인 걸까?
히나는 두려움을 느끼며 카신의 손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고개를 도리질하며 거부반응을 나타내는 행동을 취하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날 만큼 힘들었다.
나흘.
딱 나흘째 음식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심한 갈증을 참지 못하고 어제, 그제 새벽에 몰래 성을 나와 정원에 장식된 분수대의 물을 미친 여자처럼 벌컥벌컥 들이마셨다. 그 외엔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았다. 힘이 나지 않는 건 당연했다.
“……밖에 나갔다 왔나?”
카신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히나를 훑었다. 그리고 어떻게든 손목을 비틀며 도망가려는 그녀를 꽉 잡은 채,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모든 기운을 살폈다. 머리카락에서 희미하게 바깥 기운이 느껴졌다.
“바깥 냄새가 나.”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오랜만에 느끼는 불쾌감이 조금은 생소하게 다가왔다.
배후의 인물과 어떤 방법을 통해 내통하던 도중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만약 배후의 인물이 그녀에게 가혹한 짓을 했다면…….
불쾌했다. 카신은 자신의 감정을 깨닫고 미간을 일그러트렸다.
‘어째서 불쾌하지?’
사실 출입이 금지된 시녀가 새벽에 몰래 밖을 나가는 게 이상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아는 것과 모르고 지나가는 것은 큰 차이가 있었다. 몰래 나갈 거였다면 그녀는 끝까지 자신의 눈을 속였어야 했다.
히나가 본래 스파이일지라도 지금 그녀는 그의 시녀였다.
‘그래, 그녀는 내 시녀고, 나의 소유지.’
소유물인 시녀가 도중에 어딜 나가 누굴 만나고 무슨 짓을 당하는 것에 불쾌감을 느끼는 걸까?
이유야 어찌 됐든 간에 자신의 소속인 이 조그만 시녀를 누군가가 몰래 건드리고 있다는 것을 안다는 건 그다지 유쾌한 기분이 아니었다.
“카, 카신 님.”
카신에게서 흘러나오는 미묘한 분노의 기운을 느끼며 히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바르르 떨었다.
‘무서워.’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물론 하늘에 있는 비구름까지 전부 없애 버리는 대마법사인 카신은 무서운 사람이었지만, 겉으로 보기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무성한 소문이 아니었다면 자그만 동네에 눈에 띄게 잘생긴 백수, 아니 한량으로 착각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겉모습도 소문처럼 악독하고 포악한 대마법사처럼 무서웠다.
“노, 놓아주세요.”
본능적으로 두려움이 엄습해 오며 몸이 떨려왔다. 덩치가 큰 것도, 험상궂게 생긴 것도 아닌데도 무성한 소문 덕분에 공포감을 불러일으켰다.
“어딜 갔다 온 거지?”
어떻게 안 거지?
중요한 건 그가 어떻게 알았는지가 아니었다. 계속 마주하고 있다간 잡아먹힌다. 잘못했다고 용서를 빌고 모든 비밀을 실토할 것 같았다. 죽음보다 더한 두려움이 그녀를 옭아맸다.
살며시 시선을 피한 히나는 생각에 잠겼다.
‘몰래 잠입한 걸 들킨 걸까? 아니야, 아직 들키진 않았을 거야. 그냥 어딜 갔다 왔는지 물어봤을 뿐이잖아.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해. 그래, 이성적으로.’
하얗게 질린 얼굴로 파르르 떨고 있는 히나를 보며 카신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흥분과 불쾌감을 조절하지 못하고 겉으로 힘을 내비친 모양이었다.
‘꽤나 예민한 몸을 가졌군.’
공기를 무겁게 짓누르던 힘이 사라지자마자 긴장이 풀린 건지 히나의 몸이 휘청거렸다. 다리에 힘이 풀린 모양이었다.
털썩 주저앉으려는 히나의 팔을 잡고 몸 전체를 위로 들어 올리며 카신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흐음.”
히나는 허공에 뜬 자신의 몸을 깨닫고 눈을 크게 떴다. 또래에 비해 작은 체구를 가지고 있긴 해도, 카신이 자신을 한 손으로 손쉽게 든다는 것이 놀라웠다.
방 안에 틀어박혀 연구만 하는 마법사라고 하기엔 엄청난 힘이었다. 히나는 겁을 한껏 더 짊어진 채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쓸 만한 구석은 있군 그래.”
어리숙해도 스파이는 스파이라는 건가.
마법사나 마력에 민감한 사람이 아니라면 대부분은 거의 느끼지 못하고 넘겼을 힘이었다. 본능적으로 위험함을 깨닫고, 그 위기가 없어지자마자 긴장이 풀려 버린 히나를 보며 카신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에겐 마력도, 다른 어떠한 힘도 딱히 느껴지지 않았다. 일단은 지금으로서는 그랬다.
‘지금은 말이지.’
아무리 작더라도 힘을 드러내는 건 이 시녀의 앞에선 조심하는 편이 좋으리라. 카신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부드러운 어투로 말했다.
“이제 말해보거라. 어젠 어딜 갔었지?”
“저, 정원에…….”
“정원엔 왜?”
히나는 눈동자를 굴리며 짧은 순간 수많은 고민을 했다.
‘아무래도 사실대로 말하는 게 좋지 않을까?’
아직도 두려움에 몸이 떨렸다. 음식을 먹지 못해서가 아니라, 이상한 기운에 의해 본능적으로 겁을 먹은 거였다.
이대로라면 거짓말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어차피 신분을 들킬 만한 것도 아니니, 들킬 자신이 없다면 차라리 어느 정도는 사실을 털어놓는 게 좋으리라.
아무래도 대마법서를 찾는 건 오래 걸릴 것 같고, 그러려면 카신의 옆에 오래 있어야 한다.
솔직하게 인체 실험을 하지 말아달라며 부탁을 하거나 그렇지 않는다면 절대 인체 실험을 당하지 않겠다고 당당하게 선포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무, 물을 마시려고요.”
“물?”
순간 카신은 물에 대한 정의를 다시 생각해야 했다. ‘마시다’가 뒤에 붙는 걸 봐선 알고 있는, 그리고 지금 생각하고 있는 물이 확실했다.
정원에 물이 있었나?
황궁 밖으로 나가는 일이 거의 없는 카신은 곰곰이 생각했지만, 그의 기억으로 식수가 가능한 물은 정원에 없었다. 정원을 나가면 우물이 있긴 했지만, 우물은 거리가 꽤 되는 장소에 있다.
히나가 거리가 떨어진 우물을 찾아 별궁의 정원 밖으로 나간 건 아니었다. 그는 별궁에 마법을 걸어놨기 때문에 사람이 드나들면 바로 알 수 있었다.
“그, 그게…….”
본인이 말하기도 창피한지 히나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 모습이 참 귀엽다고 생각하며 카신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내게 수상한 행동을 하는 건 곧 반역과 직결되는 일이라고 황제 폐하께서 선포를 하셨지. 반역죄로 죽고 싶지 않다면 사실을 말하는 게 좋을 거야.”
하지만 그는 흐뭇해하는 얼굴과 다르게 짐짓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보는 것처럼 겁이 많아 보이니 약간의 협박도 잘 통할 것 같았다.
“내가 누군지 모르지는 않겠지?”
마법사는 어딜 가나 가장 귀한 인재였다. 특히나 황궁 마법사는 귀한 마법사들 사이에서도 특출 난 능력을 가진, 엘리트들 중에서도 몇 번이고 추리고 선출되어 뽑힌 수재였다.
유능하다는 황궁 마법사들조차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 대마법사인 카신이었다. 나라 하나도 쉽사리 멸망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카신은 황제조차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황제가 그런 명령을 내렸다고 한들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사, 살려주세요.”
“그러니 어서 사실대로 말해.”
어차피 대마법서를 훔치지 못해도 죽는다. 여기서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면 반역죄로 잔인하게 고문을 당하다가 죽을 것이다. 사실대로 말한다고 해도 인체 실험한 사실을 들켰다고, 입막음을 위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
“그, 그게…….”
어쨌든 결과는 전부 죽는다. 히나는 세 개의 죽음 중, 그나마 죽을 가능성이 적어 보이는 걸 택하기로 했다.
변명하지 못하고 죽는 것보다 말 한마디 해보고 죽는 것이 낫다. 그리고 고문을 당하다 죽을 바엔 입막음을 위해 한 번에 죽는 편이 더 낫기도 했다.
엄마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죽었다면 더 좋았을 것을.
씁쓸함에 기분이 축 처졌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정신을 바짝 차린 히나는 적은 가능성에 희망을 걸었다.
“……부, 분수에 있는 물을 마시려고 나갔어요.”
“어디에 있는 물을 마셨다고?”
카신은 당혹스런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되물었다.
앞에 있는 시녀는 참 여러 감정을 일깨워 주고 있었다. 오랜 삶을 살아오며 웬만한 일에는 눈 한 번 깜짝 않고, 안색 한 번 바뀌지 않았던 그는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당황스러웠다.
“분수에 있는 물을 마셨다고요!”
창피함에 겨우 말했건만, 히나는 이 노력을 알아주지 않고 다시 되묻는 카신에게 빽 소리를 질렀다.
지금으로썬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죽을 확률이 높았다. 아직 첩자인 건 걸리지 않았으니 조금 성질을 부려도 자비를 베풀어 단번에 죽여줄 것이다.
히나는 다가올 미래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