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정말 루터의 동생이라고?”
“그렇게는 안 보이는데. 닮은 곳이 없잖아.”
“리베리아 후작가에는 여자가 없지 않아?”
교실로 돌아가자마자 히나에 대한 관심이 다시 시작됐다. 계속된 질문 속에 루터가 동생이라는 짤막한 대답을 하자마자 더 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히나는 정식으로 우리 리베리아 사람이야.”
루터의 퉁명스런 목소리가 히나의 존재를 돌려 말했다. 어디까지 말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던 히나가 고개를 돌려 루터를 쳐다보았다.
“그런데 어떻게 세인트에 들어온 거야?”
“그것도 바로 상급반에…….”
“우리는 매년 시험 쳐서 여기까지 왔는데.”
몇몇의 시샘 어린 목소리가 이어졌다. 다들 힘들게 상급반에 올라왔기에 당연한 것이었다.
“후작님께 부탁한 거니?”
“아니면 너 벌써 엄청난 마법을 마구 구현할 수 있다든가…….”
“딱히 마법에 소질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데.”
“설마 아무런 능력도 없이 상급반 졸업장을 따는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그렇게 되면 하급반이나 중급반 졸업생들이 난리를 칠걸?”
까다롭기로 유명한 세인트황실학교는 능력에 따라 졸업장이 달랐다.
세인트는 입학 후 일괄적으로 일 년간 들어야 하는 기초반을 시작으로 하급반, 중급반, 상급반, 이렇게 총 4개의 반으로 분류됐다.
일 년간 기초반의 수업을 들어 하급반으로 들어가면 정식으로 세인트 학생으로 인정이 된다.
하급반 학생들은 다시 일 년의 수업을 수료하면 시험을 통해 중급반으로 갈지, 아니면 하급 졸업반으로 갈지에 대한 선택을 할 수 있다.
중급반으로 들어가길 원한다면 까다롭고 어려운 진급 시험을 치러야 했다. 떨어지면 다시 일 년 동안 하급반 수업을 듣고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진급 시험보다 무난한 시험을 통해 하급 졸업반으로 바로 가서 일 년의 수업 후 바로 졸업을 하는 학생들도 꽤 많았다.
상급반으로 올라가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중급반에서 상급반으로 올라가기 위해선 일 년의 수업을 듣고 진급 시험을 치러야 한다.
중급반으로 올라가는 진급 시험도 어렵지만, 상급반으로 올라가는 시험은 열의 여덟, 아홉이 떨어졌다.
유능한 가정교사를 여럿 고용하여 공부했던 루터도 상급반으로 올라가는 시험에서 낙제를 세 번이나 했다.
중급반에 4년이나 머물러 있다가 이번에 겨우 올라왔다. 하지만 그 누구도 루터에게 재능이 없다고 하지 않았다. 진급을 하는 데 있어 몇 번의 낙제는 당연한 거였다.
“만약 정말 그렇게 온 거라면 나도 불만이야. 내가 상급반에 올라오려고 얼마나 노력한 줄 알아?”
“나도야. 난 여기 오는데 다섯 번이나 떨어졌어.”
“나도 네 번 떨어졌다고.”
“난 일곱 번 떨어졌다.”
히나가 상급반에 들어온 것에 불만을 갖는 소리가 잦아지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점점 험악해졌다.
기초반, 하급반, 중급반, 상급반, 상급 졸업반까지 순차적으로 졸업을 하는 데는 최소 5년이 걸렸지만, 이 모든 걸 5년 안에 끝내는 사람은 손에 꼽았다. 상급 졸업장을 따는 데 10년이 넘어가는 일은 무척 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급반의 졸업장을 받으려는 이유는 간단했다.
까다로운 시험과 험난한 수료 과정을 거친 만큼 상급 졸업장을 따면 간단한 절차 하나만으로도 신분과 상관없이 황궁 마법사단에 스카우트 됐다. 그게 아니더라도 밖에서 마법사로서 엄청난 대우를 받으며 일할 수 있었다.
모든 과정에 까다로운 시험이 따라다녔다. 그렇기에 졸업까지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었다. 하급반 졸업장을 따는 것도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졸업 시험도 어려웠고, 떨어진다면 다시 졸업반에서 일 년의 과정을 수료해야 했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갑자기 상급반으로 들어온 히나에게 의문을 품는 건 처음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그만해! 세인트가 무슨 집안 빽으로 막 들어오는 곳인 줄 알아?”
루터의 불쾌감 어린 소리에 불만의 목소리가 끊어졌다.
“특별하니까 들어온 거야, 특별하니까.”
뭐가 특별한지 알지도 못한 채 루터는 강하게 쏘아붙였다. 하지만 이유를 알지 못하는 루터도 곤욕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이건 도와주는 게 아니야. 괜히 집안 빽이란 소리 들리니까 이러는 거야! 그래, 그런 거라고!’
갑자기 밀려오는 민망함에 루터는 스스로에게 다급히 변명했다.
“오오, 동생이라고 편들어주는 거야?”
카터가 루터를 툭 치며 놀리듯 말했다. 순식간에 루터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편은 무슨! 그게 말처럼 쉽게 되는 거였다면, 나는 몰라도 형은 세인트를 일 년 안에 졸업했을걸?”
말이 끝나자마자 루터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고마운 감정을 듬뿍 내보이는 히나와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하긴. 지금 황궁 마법사단에 계신 루터 형도 세인트를 정식으로 들어와서 졸업했다고 들었어.”
“맞아. 졸업까지 한 번도 낙제하지 않은 엄청 특출한 인재였다고 했어. 그 말은 이수 과정이나 시험 절차를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치렀다는 뜻이겠지?”
5년 동안 베라미가 얼마나 우수했는지, 시험을 어떻게 치렀는지 똑똑히 들었다. 아직까지도 교수님들이 입을 모아 칭찬을 했기 때문에 그들은 베라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역시, 무슨 능력이 있으니까 후작님께서 데리고 오셨겠지?”
“얼마나 우수하기에 상급반으로 바로 특례 입학을 했을까?”
의문은 순식간에 수그러들었다. 천재라고 불리는 베라미도 차순대로 졸업한 것과 대대로 유능한 마법사를 배출해 낸 집안이면서도 시험에 떨어진 루터를 생각하고는 다들 긍정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네 마법 수준은 어디까지야? 아니면 마법이 아닌 다른 능력이라도 있는 거니?”
털썩.
히나의 책상 위에 앉은 줄리아가 자신의 금발 머리를 뒤로 넘기며 물었다. 새침한 목소리 속엔 가시가 박혀 있었다.
“그러니까 난…….”
할 말을 찾지 못한 히나는 말끝을 흐렸다.
아까부터 정신없이 쏟아지는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만약 루터가 없었다면 정말 큰일이 났으리라.
“그만해, 줄리아. 히나가 싫어하잖아?”
히나는 몸 위로 드리우는 그림자에 고개를 뒤로 홱 돌렸다. 뒤에서 툭툭 설명만 하던 루터가 줄리아를 쏘아보았다.
“어머, 그랬어? 난 궁금해서 물어본 거야. 그렇게 기분 나쁜 눈으로 볼 것까진 없잖아?”
태연하게 대답한 줄리아가 책상 위에서 내려왔다.
“후작님께서 아무 생각도 없이 갑자기 신분도 모르는 히나를 데려올 리는 없지. 안 그래?”
분위기가 순식간에 냉랭해졌다.
무슨 말을 해야 이 분위기가 가라앉을까.
히나는 마른 입술을 달싹거리며 불안한 눈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수업을 하려고 하는데. 자리에는 언제 앉을 거지?”
중저음의 미성에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했다. 언제 왔는지도 알 수 없는 카신이 교탁 앞에 서 있었다.
그 누구도 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늘에서 떨어졌나 싶을 정도로 카신은 느긋한 자세로 그들을 보고 있었다.
“내 수업이 싫다면 다 나가도 좋단다.”
“아, 아니에요!”
“교수님 수업 듣고 싶습니다!”
다다다닥.
학생들이 눈을 빛내며 분주하게 제자리에 앉았다. 차기 마법사가 될 그들에겐 무조건적으로 우상인 카신의 수업을 1초라도 더 듣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넘치고 있었다.
“오늘은 첫 시간이니, 자습을 하도록 하지.”
수업 첫날, 그것도 일주일에 두 번밖에 없는 아주 귀한 시간에 자습이라니.
자리에 앉은 학생들이 서로를 보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감히 대마법사에게 따지고 들 수도 없었다. 불가항력과도 같았다.
“교수님! 질문해도 되나요?”
용기 있는 누군가가 손을 번쩍 들었다.
“질문이라면 아까 받은 걸로 아는데. 자습 시간에 질문은 받지 않도록 하지.”
제대로 된 질문을 하기도 전에 도망갔으면서!
하지만 그 누구도 카신에게 따지지 못했다. 아쉬운 마음을 담아 카신을 바라보는 작은 반항만이 가능했다.
“그리고 히나 피안 리베리아 양은 수업이 끝나면 나를 따라오도록.”
“……네.”
역시 특별한 뭔가가 있었던 거야!
카신이 부른 것 하나만으로도 히나에 대한 일말의 의구심들이 사라졌다. 교실에 있는 학생들은 곧 개인적으로 카신과 대화를 나눌 히나를 부러움이 담긴 시선으로 쳐다봤다.
“뭣들 하나? 자습 중에는 책상을 봐야지.”
그나마 있던 작은 반항도 사라졌다. 학생들은 저마다 눈물을 머금으며 자습을 시작했다.
카신은 조용한 교실을 둘러보며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시끄러운 건 딱 질색이었다.
* * *
“줄리아 카너 루카스. 네 집안과는 대대로 앙숙 사이지.”
“앙숙이요?”
“그래. 제국 루카스 가도 대대로 뛰어난 마법사를 배출한 집안이란다. 하지만 항상 리베리아에게 밀려 최고가 되진 못했지.”
카신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원래도 저렇게 멋있게 차를 드셨나?’
차를 마시는 우아한 자태나 풍기는 묘한 분위기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니면 그때 마신 사랑의 묘약 때문인가?’
아직 사랑의 묘약 효과가 사라지지 않은 거라 여긴 히나는 입술을 샐쭉하니 내밀었다.
“서로 물어뜯기 바쁜 집안이란다. 그만큼 서로를 잘 알고 있지. 아마 네가 양녀가 되었다는 걸 이미 알고서 그런 질문을 한 걸 게다.”
“……세인트는 신분이나 가문은 다 상관없는 줄 알았어요.”
카신의 목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린 히나가 뒤늦게 대답했다. 그리고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가족이 되는 것도, 친구를 만드는 것도 상상 이상으로 어려웠다.
“세인트는 신분 사회의 집결지인 황궁에서 만들어진 학교지. 겉보기만 그럴 뿐, 속은 그렇지 않단다. 사실상 반을 나눠 졸업장을 주는 건 평민들에게 불리한 일이지.”
“그게 불리하다고요? 능력을 인정해 주는 게 아니고요?”
“마법은 유전적인 영향이 가장 많이 미치는 능력이란다. 제국을 비롯한 다른 왕국에서도 유능한 마법사는 전부 귀족이라 봐도 무방해. 그러니 반을 나눈 것부터가 차별 대우인 거지.”
타고난 마력은 노력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마법을 구현하는 능력도 선천적인 자질과 후천적인 노력이 합쳐져야 높아진다.
그건 능력을 겸비한 유전자에 뒷받침이 되는 좋은 환경이 받쳐져야 뛰어난 마법사가 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세인트 상급 졸업생이 다 귀족이라는 것만 봐도 얼마나 불합리한지 알 수 있지 않니?”
평민 중에 가끔 유전과 상관없이 특출한 능력을 가진 인재가 나오는 경우도 있었지만 손에 꼽힐 만큼 아주 드물었다.
“드물게 특출한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해도 상급 졸업장을 얻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최소 5년 이상. 인재 양성이 목적인 만큼 모든 교육비, 기숙사비는 면제지만, 풍족한 집안이 아니라면 언제 졸업할지도 모르는 아이에게 그리 오랜 시간 투자를 하긴 힘들지.”
상급 졸업장을 받기 위해선 뛰어난 능력과 더불어 부단히 노력해야 했다. 삶이 풍족하고 유전적으로 유리한 귀족들도 유능한 선생을 고용하여 부족한 점을 보안해서 졸업하는 곳을 일반 평민 출신의 학생이 무난하게 졸업하기는 힘들었다.
사실 히나는 모르겠지만, 카신이 알기로는 처음 세인트가 세워졌을 당시에는 하급 졸업장이나 중급 졸업장이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졸업은커녕 상급반으로 올라가지도 못한 채 포기하고 나가는 학생들이 많아지자 시스템을 바꾼 거였다.
“그렇군요…….”
히나는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역시 삶은 생각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저는 졸업할 수 있는 걸까요? 할 줄 아는 마법도 하나 없는데…….”
“세인트는 간혹 특별한 능력이 있으면 특례로 졸업이 가능한 곳이란다.”
“제가 정말 특별한 능력이 있긴 한가요?”
“너는 걱정할 필요 없다. 능력이 없다고 해도 그런 건 만들면 그만인 거란다.”
카신은 히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가락 사이로 부드럽게 빠져나가는 머릿결이 참 좋았다.
“2년 후에 졸업할 테니, 걱정하지 말거라.”
처음부터 히나에게 아무런 능력이 없었더라도 루이스는 그녀를 세인트에 입학시켰을 것이다. 얄밉긴 해도 그런 쪽으로 머리가 유난히 잘 돌아가는 루이스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졸업만 시키면 된다 이거겠지.’
루이스만큼 카신에 대해 잘 아는 인간은 없으리라.
카신은 없는 능력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어차피 졸업은 시험을 치르고 합격만 하면 된다. 아무리 뛰어난 마법사가 시험 감독을 해도 카신은 그 눈을 피해 마법을 걸어 히나를 합격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전 왜 부르신 거예요? 아! 할 말이 있다고 하셨죠?”
곤란한 점이 많을 텐데도 밝은 히나가 대견하면서도 안쓰러웠다. 하지만 히나가 지금 과정을 겪어야 나중에 그의 옆에 있기 편해진다.
졸업하기 힘든 곳인 만큼 졸업생의 칭호만 갖고 있어도 히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것이다. 양녀라는 점은 그걸로 충분히 보완이 가능했다. 그러면 그 누구도 그녀를 앞에 두고 무시하지 못하리라.
“그래, 네게 할 말이 있어서 불렀지.”
2년간 고된 생활을 할 걸 생각하면 히나를 이곳에 데리고 오는 것이 맞는지 아닌지 아직도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는 선택을 하는 것이 이렇게 어렵다는 것을 오랜만에 깨닫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히나를 아무런 걱정이 없는 곳으로 데리고 갈까 망설여졌다.
“학교생활은 어떠니?”
만약 싫다고 한다면 당장에라도…….
“좋아질 것 같아요! 오, 오라버니도 있고, 카신 님도 있잖아요! 아, 이제는 교수님이라고 불러야 하나요? 아무튼 곧 친구도 사귈 수 있겠죠?”
조금만 더 지켜보지.
환하게 웃는 히나를 데려갈 순 없었다. 카신은 결정을 잠시 뒤로 미뤄두었다.
“그래, 앞으로 좋은 친구를 사귈 수 있을 게다.”
물가에 아이를 내놓은 심정이 이런 걸까. 해맑은 미소가 더럽혀질까 봐 걱정됐다.
카신은 속으로 다시 한 번 능구렁이 같은 루이스를 욕했다. 아무리 다시 생각을 해도 황제는 재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