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법사를 훔쳐라-35화 (35/128)

#35.

“히익!”

루터는 카신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뒷걸음질을 치며 꼴사납게 뒤로 넘어졌다.

“너, 너! 어서 나와!”

카신 위에 올라타 있는 히나를 보며 루터가 비키라고 두 손을 마구 저어댔다.

“아, 네!”

루터의 말에 히나가 기다시피 옆으로 물러났다.

카신은 자신의 품에서 사라지는 히나를 보며 더 살벌한 눈으로 루터를 쏘아보았다. 그는 눈빛으로 어째서 히나를 내려오게 했냐는 추궁을 하고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무엇에 대한 사과인지도 알 수 없었다. 루터는 무작정 사과의 말을 내뱉었다. 그러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다.

“카신 님?”

살벌한 분위기를 뒤늦게 눈치챈 히나가 조심스레 카신을 불렀다.

어딘지 모르게 카신의 심기가 가라앉아 있었다. 살벌한 시선으로 루터를 노려보는 카신은 당장에라도 사냥감의 목덜미를 물어뜯으려는 맹수처럼 보였다.

“이 작전, 리베리아 군이 세운 건가?”

살려달라는 얼굴로 루터가 학생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살며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미리 짜기라도 한 것처럼 하나같이 루터와 눈이 마주치기를 거부했다.

루터는 자신의 시선이 닿기도 전에 고개를 돌리며 외면하는 전우들을 보며 울상을 지었다.

“제, 제가 하자고 했습니다!”

루터에게는 구원 같은 목소리였다.

카신의 시선이 히나에게로 향했다. 방금 전까지 맹수의 눈을 하고 있던 카신의 분위기가 한층 부드러워졌다.

‘뭐, 뭐야, 이거!’

아무리 히나를 소중히 여긴다고 해도 저렇게 단번에 분위기를 바꾸다니!

왠지 억울한 차별 대우를 받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루터는 카신의 시선을 돌려준 히나에게 너무나도 고마웠다. 눈물이 날 만큼.

“제가……! 던져 달라고 했어요!”

손까지 번쩍 들며 죄를 고백하는 히나의 모습에 카신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주…… 아주 잘했구나, 히나.”

“그럼 저희는 제대로 된 수업을 받을 수 있는 거죠?”

해맑은 목소리가 히나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기대에 찬 그녀의 두 눈엔 두려움이란 일절 없었다.

히나는 아무런 재능도, 학식도 없었다. 신분이 높지만, 인정받지 못하는 양녀였다. 아무런 능력도 없이 세인트에 들어왔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제국 제일의 강심장을 가지고 있어서 들어온 걸지도 몰라.’

그곳에 있는 모든 학생들은 히나의 강단에 속으로 찬사를 내뱉었다. 모두가 하고 싶지만, 절대 꺼내지 못하는 질문을 당당히 말한 히나의 용기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하아, 그렇군.”

외부적 충격에 의한 고통인지, 내부적 충격에 의한 것인지 이제 구분도 되지 않았다. 비틀거리며 겨우 자리에서 일어난 카신은 무시무시한 눈으로 학생들을 훑어보았다.

“내가 졌으니 수업을 해야겠지.”

카신은 한 명, 한 명 학생들을 쳐다봤다. 그 시선은 마지막으로 루터에게 닿았다.

이 모든 게 다 네 계획이라 이거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카신의 눈이 그리 말하고 있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겪는 생명의 위협에 루터가 고개를 크게 도리질 쳤지만 소용없었다. 카신은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다음 시간엔…… 쉽게 깨져 버리는 보호 마법부터 갈아엎어 주지.”

히나를 제외한 모두가 루터에게 닿았던 살기 어린 눈빛을 보았다. 아슬아슬한 긴장감에 숨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약속대로 다음 시간엔 이곳, 대련장에서 제대로 된 수업을 하겠다. 단단히 각오하도록.”

그 말을 끝으로 항상 느긋하게 나갔던 카신은 눈 깜짝할 순간에 사라졌다.

마법을 구현하는 시늉도 내지 않고 이동 마법으로 사라진 카신에게 감탄하는 것도 잠시였다. 학생들의 시선이 곧 히나에게 닿았다.

“괘, 괜찮아?”

“아까 부딪힐 때 소리가 엄청나던데.”

“히나, 너 정말 괜찮은 거 맞지?”

“분명 보호막이 깨졌을 텐데, 어디 안 다쳤어?”

루터는 대마법사에게 정식으로 수업을 듣는다는 희열보다도 더 끔찍한 공포가 옥죄여 오는 걸 느껴야 했다. 왠지 아주 큰 실수를 저지른 것 같았다.

계획에 성공했다는 것도, 다들 히나를 걱정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루터는 보이지 않는 캄캄한 미래에 몸서리를 쳤다.

“그보다도 히나, 너 정말 대단하다. 안 무서웠어?”

“그러니까! 어떻게 거기서 그런 말을 할 생각을 했어?”

“그, 그야 다들 교수님 수업을 듣고 싶어 하니까…….”

처음엔 히나도 카신을 볼 때마다 무서웠지만, 그런 두려움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렇다고 아예 무섭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볼 때마다 겁을 먹고 피할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가끔 수정구로 연락을 하는 카신이 이곳에 있는 그 누구보다 편했다.

이미 카신이 무시무시한 마법을 쓰는 걸 두 번이나 봤다. 히나가 보기엔 카신은 화가 나지 않은 평소엔 무척이나 온순하고 다정했다.

가장 가까이에 있었으니 성공 여부를 대신 물었을 뿐, 별다른 의미는 없었다.

“너 대단하다!”

“그러니까!”

“오, 다시 봤는데?”

삼삼오오 모여드는 학우들을 가만히 보던 히나의 입가가 살며시 올라갔다.

카신의 기분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아 걱정이 되긴 했지만, 지금은 자신으로 인해 계획이 성공했으니, 잠시라도 기쁨을 만끽하고 싶었다.

* * *

“괜찮으세요? 세게 부딪힌 것 같은데…….”

히나가 제 이마를 문지르며 물었다. 심하게 아프진 않았지만, 부딪힐 때 분명 아주 큰 소리가 났다.

[나는 괜찮단다. 그보다 많이 놀라진 않았니?]

당연히 카신이 보호 마법을 걸었다는 걸 모르는 히나는 상급반 학생들의 마법 덕에 무사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눈 깜짝할 시간이었다. 카신이 히나에게 보호 마법을 걸었을 거라는 걸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마법을 건 학생들도 이상해했지만, 멀쩡한 히나를 확인하고는 자신들의 마법이 꽤 쓸 만하다 여기고 말았다.

“괜찮아요! 다들 저한테 보호 마법을 잘 걸어줬는걸요.”

기분 좋은 날이었다. 겁이 났었지만, 그래도 용기를 낸 보람이 있었다. 뒤에서 수군거리던 것과 달리 오늘은 하루 종일 친구들에게 질문을 받으며 칭찬을 들었다. 루터의 말대로 몸은 무사했고, 용기를 낸 것에 인정도 받았다.

“하나도 다치지 않았어요. 그보다 카신 님은 보호 마법도 없이 저랑 부딪혔잖아요?”

정말 순식간이었다. 그 먼 거리를 눈 한 번 깜빡하기도 전에 날아갔다. 무섭다고 느낄 겨를도 없었다.

“정말 안 다치셨죠?”

[난 하나도 아프지 않단다. 아프더라도 치유 마법을 쓰면 금방 나아.]

자상한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작은 빛을 내는 수정구를 보며 히나는 빙긋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끝나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정말 수업하시는 거 맞죠?”

[왜? 너도 수업을 받고 싶었니? 그럼 진작 말하지 그랬니.]

말하면 되는 거였나?

고개를 한 번 갸웃거린 그녀가 손가락으로 침대 시트를 이리저리 휘젓다 꾹꾹 눌렀다. 푹푹 들어가며 생긴 눌린 자국이 그녀가 얼마나 고뇌했는지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카신 님께 수업을 받으면 저도 마법을 쓸 수 있나요?”

[마법은 마력이 있어야 쓸 수 있는 거란다. 왜? 마법을 쓰고 싶니?]

“마법을 써야 졸업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네가 있는 곳이 마법반이긴 하지만, 마법사만 거기 있을 수 있는 건 아닐 텐데?]

마법반엔 드물게 자연의 정령을 다루는 정령술사나 신력을 가진 학생들도 들어오게 되어 있었다. 마법사의 수도 적은 편이지만, 이들의 수는 아주 드물어 따로 반을 개설하지 않고 마법반에 포함됐다.

현재 세인트에는 정령술사나 신력을 가진 학생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자연의 힘을 제대로 다루는 정령술사는 거의 역사에나 나올 법한 인물이었고, 신력을 타고난 아이는 보통 눈치 빠른 신전에서 먼저 데리고 가기 때문에 세인트에 들어올 확률이 무척 낮았다.

“에이, 제가 정령을 다루거나 신력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토록 귀한 능력은 바라지도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히나는 지금 상황에서 마법적인 재능이 조금만 있어도 감사할 것 같았다.

[그건 모르는 일이지. 네게 보이던 빛이 마법은 아니니, 아마 둘 중 하나일 확률이 높을 거야.]

“설마 제게 그런 능력이 있을까요?”

절대 아닐 거라고 말하는 히나와 달리 카신은 확신하고 있었다. 조금은 다르지만, 히나에게서 나왔던 빛은 절대 마법이 아니었다. 그건 조금 더 신성하고 고결했다.

‘분명 어디서 본 적 있는 빛이었어.’

한 번 더 자세히 볼 수 있다면 확실히 알 수 있을 텐데.

아무리 기억을 끄집어내도 떠오르지 않았다. 능력이 없다는 것에 쓸쓸해하는 히나에게 어서 알려주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그 빛을 뭐라 말할 확신이 없었다.

“그 힘이 무엇인지 아직 정의할 수는 없지만, 네게 특별한 능력이 있는 건 확실하단다.”

[하지만 전 그 힘을 알지도 못하고, 언제 나오는지도 모르는걸요. 그건 없는 거나 마찬가지잖아요.]

“언제 나오는지는 알 것도 같다만…….”

카신은 히나가 그 빛을 발현했을 때가 언제인지를 떠올렸다. 처음엔 우연인가 싶었지만, 두 번째를 보니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정말이에요?]

“그 힘에 대해 알고 싶니?”

[그럼요! 정말 궁금한걸요?]

“그럼 다음 내 수업 시간에 한번 시험해 보자꾸나.”

확실한 안전을 확보하면서도 확인은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카신 님! 전 그럼 다시 공부 시작할게요! 루터 오라버니가 마법 역사에 관련된 책을 빌려줬거든요.]

히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카신은 미간을 찌푸렸다. 루터의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이제는 이가 갈렸다.

“그러렴.”

루터와 대화를 하는 것만으로도 히나는 제 오라버니와 얘기를 나눴다고 신나 했다.

그런 그녀에게 차마 가까이 가지 말라 당부할 수 없었다. 애초에 오라버니인 루터와 얘기하지 말라고 할 이유도 없었다.

“그 빌어먹을 애송이 놈.”

수정구의 빛이 사라지자마자 카신은 욕지기를 내뱉었다. 대련장에서 감히 히나를 집어 던질 계획을 세운 애송이를 생각하면 아직도 열불이 났다.

대련장에서 상황을 대충 정리를 하자마자, 카신은 가슴을 부여잡으며 공간 이동으로 겨우 별궁에 돌아갔다. 그리고 전에 만들어둔 회복약을 찾으며 울분을 토해냈다.

아직 새파랗게 어린 꼬맹이가 자신의 약점을 집어내어 철저히 이용했다. 그것도 히나를 위험에 빠뜨리면서까지.

“처음부터 히나는 빼는 거였는데.”

순간적으로 히나에게 마법을 걸지 않았더라면 아찔한 상황이 벌어졌으리라. 자신의 갈비뼈가 부러질 강도였으니, 그녀의 자그만 머리는 깨졌을 확률이 높았다. 숨만 붙어 있다면 살릴 수야 있겠지만, 하마터면 두개골이 갈라지는 고통을 히나가 느낄 뻔했다.

“리베리아 놈, 두고 봐라.”

먼저 내기를 제의해 놓고 이러는 것이 얼마나 치사한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원래부터 이기적이었다. 자신에게는 얼마든지 관대해질 수 있다. 적어도 히나와 관련된 일에는 더 그랬다.

이게 다 루이스의 계략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카신은 오늘도 루이스를 욕했다. 능구렁이 같은 황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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