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법사를 훔쳐라-41화 (41/128)

#41.

17년 전.

세이나는 평화로운 작은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수는 적었지만, 소소한 일상으로 모두가 행복했던 화목한 마을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뿜어져 나온 신력은 세이나의 인생을 일순 망쳐 놓았다. 그녀는 한순간에 사랑하는 사람도, 가족도 모두 잃어야만 했다. 작지만 행복했던 그녀의 세상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같이 도망가요. 난 당신을…….”

“안 돼, 히나!”

히나는 세이나가 세례명을 받기 전의 이름이었다. 세이나는 수수하지만 행복이 가득 넘치는 그 이름을 참 좋아했었다. 가족들이 불러줄 때마다, 사랑하는 남자가 속삭일 때마다 항상 행복했었다.

“이 촌구석에 대신녀까지 왔다고! 도망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깊이 사랑하는 남자가 있었다. 하지만 그 남자는 그녀만큼 사랑하지 않았다. 남자에게는 세이나보다 미래가 더 중요했다.

“네가 신녀가 되면 우리 마을을 보다 더 풍족하게 만들어주겠대. 너도 신녀가 되어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너에게도, 우리 마을 모두에게도 좋은 일이잖아?”

풍족하다고 행복한 걸까?

비록 넉넉한 삶은 아니었지만, 모두가 자신의 일처럼 서로 베풀고 도우며 부족함을 채웠다. 큰일이 나면 함께 걱정을 해주었고, 힘을 모아 다 같이 이겨냈다.

“넌 우리 마을이 좋다고 했잖아! 마을이 풍족하고 더 행복해지면 너에게도 좋은 거 아니야?”

마을이 더 행복해지길 바랐다. 하지만 세이나는 행복한 마을 안에 자신도 있길 원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다 같이, 함께 행복하기를 갈망했다.

“너만 희생하면 돼. 어차피 피한다고 피해지는 것도 아니잖아.”

당신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행복할 수 있나요? 마을 사람들도 당신과 같은 뜻인가요?

남을 희생해서 행복해질 수 없을 것 같았다. 적어도 세이나는 그랬다. 하지만 그녀가 가장 사랑했던 남자는, 함께 행복해지고 싶었던 유일한 사람은 그녀의 희생을 강요했다.

“나만 희생하면…….”

“이건 희생이라고 할 것도 아니야. 너에게도 좋은 일이라고.”

“나, 난 신녀가 될 생각이 없어요.”

“그냥 작은 신전도 아닌 대신전이잖아! 너도 나중엔 분명 잘 간 거라고 생각할 거야.”

사랑하는 만큼 실망은 배가되어 돌아왔다. 그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날아왔다. 여태 행복했던 것만큼의 불행이, 아니, 행복했던 것의 수십 배의 불행이 한꺼번에 덮쳐 왔다.

어떻게든 세이나를 대신전에 보내려는 남자는 더 이상 그녀가 사랑하던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마을의 이득에 눈이 먼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짐승에 불과했다.

“난 당신의…….”

아이를 가졌어요.

하지만 그 말은 끝내 나오지 못했다.

“어차피 아무도 몰랐잖아. 우리가 사귀…… 아니, 잠깐 만났단 건 끝까지 비밀로 하자.”

남자는 과거의 사랑까지 부정했다. 그녀는 저를 타인으로 배제하는 그를 허망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이를 가졌어요. 당신의 아이를…….

며칠 동안 가장 하고 싶었던, 더 큰 기쁨을 위해 숨겨왔던 사실은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사랑을 숨긴 건 마을 사람들을 깜짝 놀래켜 주려고 한 거였다. 임신 사실도 그를 더 기쁘게 해주려고 숨겼다. 결코 끝까지 비밀로 하려고 숨긴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절대 말할 수 없는 비밀이 되어버렸다.

“제발 내 인생도 좀 생각하라고! 신녀를 건드린 죄가 얼마나 큰 줄 몰라서 그래?”

“가, 가지 말아요. 우리 사이를 부정하지 말아요! 난…… 난……!”

당신의 아이를 가졌어요.

“이제부터 난 널 몰라. 우린 아무런 사이도 아니야. 애초에 우리도 아니지. 너와 난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이야. 알겠어?”

도리어 화를 내던 남자는 철저하게 그녀와 선을 그었다. 더러운 것이라도 되는 듯, 시선조차 피했다. 가고 싶지 않다는 세이나가 신관들에게 붙잡혀 끌려가는 끝까지 그는 그녀를 외면했다.

“내 딸을 돌려줘요. 인사라도 하게 해줘요!”

“여보!”

오열하는 엄마. 쓰러지는 엄마를 잡아 일으키는 아빠.

여태 키워준 부모님께 인사도 하지 못했다. 슬픔에 휩싸인 그들을 돌아보는 것도 허락지 않았다. 신녀들은 보호를 명목으로 세이나를 철저히 가두고 감시했다.

“부모님을 만나게 해줘요!”

“안 됩니다. 신력이 더 증폭되고 있어요. 그 신력이 빠져나가기 전에 어서 가서 의식을 치르고 신력을 다스려야 합니다.”

신녀들은 조절하지 못한 신력이 혹여 몸에서 빠져나갈까 싶어 그녀를 데리고 나가는 것에 서둘렀다.

‘엄마와 아빠를 두고 어째서 난 그를 먼저 만나러 간 걸까? 우리가 아니라는 그를 왜 그리 간절히 만나려 한 걸까?’

세이나는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그 짧은 시간에 가족이 아닌 남자를 택했던 것을 무척이나 후회했다.

“엄마! 아빠!”

어째서 이렇게 된 것일까? 신녀가 되기 위해선 이토록 불행해야 하는 걸까? 누군가를 축복해야 하는 신녀는 원래 이렇게 불행한 것일까? 왜 내가 신력을 갖고 있는 걸까? 애초에 불행한 신녀 따위가 남을 축복해 줄 자격이나 있을까?

마을의 풍족함을 위해 희생한 것처럼, 신녀는 세상을 구원하고 타인의 행복을 위해 삶을 희생해야 했다. 억울하고 분통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녀의 한을 들어주지 않았다. 짓밟힌 인생에 대해 그 어떤 보상도 해주지 않았다. 희생을 강요하고, 그걸 당연시 여겼다.

“신녀가 되기 위해서는 6개월 동안 이 안에서 신성 의식을 거쳐야 합니다. 그동안 그 누구도 이곳에 들어올 수도, 나갈 수도 없어요.”

성스러운 성수가 흐르는 동굴, 그곳은 그녀에게 감옥이었다.

“조, 조금만 시간을 더 주세요! 적어도 부모님이라도 만나게 해주세요! 저도 마음의 정리는 필요하잖아요!”

멀리 있는 대신녀까지 찾아올 정도로 높은 신력이었다. 빼앗기지 않기 위해, 놓치지 않기 위해 대신전에선 그녀에게 조그만 자유도 허락하지 않았다. 더 옭아매고 억압했다. 세이나는 숨이 막혀서 죽을 것 같았다.

당시 대신전은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었다. 점점 신력을 가진 사람들의 수가 줄어들었고,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는 대신녀의 존재로 인해 불안에 떨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제대로 조절하지도 못하면서 대신녀 이상의 신력을 뿜어낸 세이나의 존재에 득달같이 달려드는 건 당연했다.

“아아, 난…….”

아이를 가졌어요.

못다 한 말이 가슴속 깊은 곳을 짓눌렀다. 이 사실을 차가운 시선으로 무작정 외부와 차단하고 가두려고만 하는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었다. 그녀에게 오로지 믿을 수 있는 아군은 없었다.

“아가, 널 포기하지 않을 거야.”

만약 임신 사실을 알린다면?

그녀의 몸에서 아이를 억지로 떼어낼 것이다. 그녀를 부모에게서 강제로 떼어놓은 것처럼.

신녀는 아이를 가질 수 없었다. 신을 모시는 몸이어서란 말은 그저 듣기 좋은 핑계 불과했다. 신력은 유전과는 전혀 상관없었지만, 혹여 아이를 낳으며 귀한 신력이 빠져나갈 수도 있다는 속설 때문이었다.

이제 막 나타난 신력은 당연히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녀가 지금 이 시기에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그 방대한 신력이 아이로 인해 조금이라도 빠져나가는 걸 막기 위해,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아무에게도 들킬 수 없어.”

다행히 동굴 안에 들어가자마자 배가 불렀다. 음식은 삼 일에 한 번, 누군가가 동굴 입구에 며칠 먹을 것을 갖다 놓았다.

의식을 치르는 동안 그 누구도 만나지 못한다. 세이나에게 숨 막히는 감옥과도 같았던 동굴은 곧 아이를 숨기기에 있어 최적의 장소가 되었다.

“나의 아이…….”

신을 위해 기도하며 신력을 다스리고, 신녀로서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동굴.

세이나는 매일매일 정성스레 기도했다. 하지만 그녀의 기도는 신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대신전을 위한, 제국을 위한, 마을을 위한 기도도 하지 않았다. 세이나는 오로지 아이만을 위한 기도를 정성스레 올렸다.

“내가 줄 수 있는 건 이 이름밖에 없구나. 하지만 내가 가진 모든 것이야. 나의 유일한 행복이었고, 내가 살았다는 증거야. 그러니 네가 히나를 가지렴, 아가.”

그곳에서 세이나는 오직 아이를 위해서만 기도했다.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네가 나 대신 행복한 히나가 되렴. 행복했던 히나를 네가 이어가.”

처음 대신녀에게 받았던 펜던트에 히나의 이름을 새기며 아이를 품었다. 유영하듯 배 속에서 신비롭게 움직이는 아이는 점점 더 강한 생명력을 보여주며 세이나의 의지를 키워주었다.

“히나가 되어 행복해야 돼, 아가.”

소소한 것에 행복하고 미소를 지었던 해맑은 히나.

히나라는 이름을 갖고 태어날 아이는 그 누구보다도 행복해야 했다. 웃음을 잃지 않은 채, 어른이 되어도 아이처럼 맑은 미소를 짓는, 그런 아이가 되어야 했다. 그녀가 행복하지 못했던 것을 대신하여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행복한 아이가 되길 바랐다.

“어서 태어나렴, 아가.”

의사에게 보인 적도 없으니, 아이가 어떤 상태인지 알지 못했다. 언제 태어날지는 당연히 몰랐다. 짐작만 할 뿐이었다.

“어서, 어서 태어나야 해, 히나.”

시간이 지나갈수록 조급해졌다. 의식이 끝나가고 있었지만, 아이는 태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세이나는 빌고 또 빌었다. 의식이 끝나기 전까지, 누군가가 이 부른 배를 발견하기 전에 아이가 어서 태어나길 간절히 기도했다.

“내가 널 지킬 수 있게 해줘, 아가.”

6개월은 무척 길고도 짧은 시간이었다. 가장 행복했지만, 제일 괴롭고 고통스러웠다.

“으아아앙!”

간절한 기도 탓이었을까.

폭우가 내리던 날, 그녀의 아이가, 행복해야 할 히나가 태어났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작은 핏덩이를 끌어안으며 세이나는 산고로 지친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모든 게 그녀를 도왔다. 후에 안 사실이지만, 당시에 마침 수도에서 매해 진행되는 의례적인 축복 기도가 있었다. 대신전의 중심인물들이 자리를 비운 상태인 동시에 의식이 끝나기 일주일 전이었다. 도망가기 딱 적합할 때였다.

“아가, 널 지켜줄게.”

세찬 폭우는 아이의 작은 울음소리를 아무도 듣지 못하게 해주었다. 도망가는 것을 들키지 못하도록 도와주었다.

“미안해, 히나. 나의 아이…….”

세이나는 도망치는 내내 히나를 위해 기도했다. 히나를 위협하는 그 어떤 장애물도 다가오지 못하도록 작은 생명체에게 그녀가 갖고 있는 모든 신력을 불어넣었다.

“아아, 안 돼…….”

세찬 폭우는 그녀를 도망치게 해주면서도 발목을 잡았다. 며칠 동안 이어진 굵은 빗줄기는 그녀를 금방 지치게 만들었다.

몸은 한계에 이른 지 오래였다. 그녀는 정신력으로 버텼다. 대신전과 가장 가까운 마을인 수도까지 가기 위해 산기슭을 맨발로 달렸다. 무릎이 까지고 발바닥은 상처투성이였지만, 멈출 수 없었다. 신성한 기운을 내는 무리가 쫓아오는 것을 느끼며 세이나는 허물어지는 다리를 몇 번이고 일으켰다.

“아직은…… 아직은 잡히면 안 돼.”

겨우 도망 온 곳이 수도였다. 세이나는 수도에 도착하자마자 기쁨의 눈물을 흘려야 했다. 당시에 그녀는 몰랐지만, 다행히도 수도에서 축복 기도를 하고 돌아오는 대신전의 중심 세력들과 길이 엇갈려 마주치지 않았다.

동굴에서 한 것이라곤 히나를 위해 기도한 일뿐이었다. 신력을 다루는 법은 그 누구에게도 배우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어떻게 하는지 배우지 않아도 태어날 때부터 숨을 쉴 수 있는 것처럼 신력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었다.

“아가야, 내가 널 지켜줄게.”

아이의 체온이 떨어질세라, 건강에 문제가 생길까 싶어 신력을 남발하다시피 쏟아부었다. 탈진할 만큼 퍼붓고도 안심이 되지 않아 도망가면서도 아이를 위해 기도했다.

어떻게, 어디로 갔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저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아이를 살려야 한다는 의지만이 삶의 유일한 목표인 것처럼 무작정 달렸다.

“저, 저기요!”

아무도 없는 새벽. 폭우로 인해 보이지 않는 시야.

어둠 속에서도 선명한 존재감을 느낀 세이나는 아주 간절히 그 누군가를 불렀다. 위험한 기운이 남자의 주변을 맴돌고 있는 게 보였지만, 주변엔 그 어떤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한시가 급한 그녀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여기서 아주 부유하고 사람이 많은 집이 어디에 있죠?”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는 남자는 무척이나 이질적이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빗방울도 그의 몸에는 닿지도 않았다.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처럼 보였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수상한 남자. 하지만 꺼림칙한 기운을 무시할 만큼 세이나는 더 절박한 상황에 있었다.

사람이 많으면 화목하겠지. 돈이 많으면 부족함 없이 클 수 있겠지. 사람이 많은 곳이니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분명 한 명이라도 있을 거야. 당황하긴 해도 그 많은 사람들 중 누군가 한 명은 널 버리지 않을 거야, 아가.

어렸던 그때는 그런 막연한 생각을 하며 부유하고 사람이 많은 집을 찾았다. 아니, 더 성숙한 생각을 하게 됐더라도 급박했던 그 상황에선 똑같은 말을 했으리라.

“분명 축복 기도는 끝이 나고, 다 돌아간 걸로 아는데…….”

남자는 미간을 찌푸리며 마치 그녀가 더러운 것이라도 되는 듯 세이나를 기분 나쁘게 훑어보았다.

“그 기운, 불쾌하기 짝이 없구나.”

세이나의 귀에는 그 무엇도 들리지 않았다.

그녀의 모습은 누가 보면 귀신이라고 비명을 지르며 도망갈 만큼 형편없는 몰골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기분 나쁜 표정을 지을 뿐,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불쾌감만 드러낼 뿐이었다.

“가장 부유하고 사람이 많은 집……. 제발 알려주세요, 네?”

세이나는 특유의 붉은 머리카락이 축축하게 젖으며 얼굴에 달라붙어 있는 것도, 하얀 사제복이 빗물과 진흙에 젖어 제 색을 내지 못하고 있는 것도 알지 못했다. 애초에 그녀는 다리에 생긴 수많은 생채기가 짓물러 가는 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알려주세요, 제발…….”

시간이 정지하기라도 한 듯, 가만히 있던 남자의 손가락이 그녀의 뒤를 가리켰다. 긴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세이나가 고개를 돌렸다.

순간 남자에게서 숨이 턱턱 막힐 만큼 불쾌하고도 끔찍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동시에 그가 가리킨 방향에서 세찬 물줄기와 안개가 거둬지며 커다란 저택이 보였다.

도저히 인간이 갖고 있다고 믿기지 않는 어둠의 끔찍한 힘. 신력을 폭발적으로 방출하고 있는 세이나에겐 역겹기 그지없는 힘이었지만, 그녀는 그 힘을 불쾌해할 겨를이 없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몇 번이고 감사 인사를 전하며 세이나는 저택까지 뛰어가 그 앞에 히나를 내려놓았다.

아이를 만지고, 안아주며 교감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고통에 몸부림을 치고 있는 몸과 함께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세이나는 안타까울 정도로 짧은 시간을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

“이런 엄마라서 미안해, 히나.”

네 이름이 히나라고, 직접 불러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름을 알려줄 시간이 없다는 건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예상했던 일이었다.

“네게 줄 게 이것밖에 없구나.”

세이나는 대신전에 오기 전, 선물로 받았던 펜던트를 아이에게 걸어주었다. 그것이 처음 신녀가 되며 받는 상징적인 소중한 펜던트라는 건 그녀의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신녀를 상징하는 중요한 펜던트는 오직 아이에게 이름을 전달할 수 있는 매개체에 불과했다.

“항상 널 위해 기도할게, 히나.”

아이와 더 있을 수 없었다. 신성한 기운을 가진 무리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며 세이나는 마지막까지 아이에게 신력을 불어넣었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폭우처럼 세이나의 눈에도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슬픔을 끌어안으며 저택의 문을 두드렸다.

“항상 건강하고 행복해야 해.”

아이를 두고 떠나며 세이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화목했던 가족도, 단란했던 마을에도 미련을 버렸다. 기쁨 감정도, 슬픔 감정도 전부 없앴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언가를 그리워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항상 죄스러운 마음으로 불행하게 살아야만 아이가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의 모든 축복은 너에게로. 너의 모든 불행은 나에게로.”

세상 모든 불행을 안는 한이 있더라도 아이에 대한 축복을 멈추지 않으리라.

빗속에서도 불어넣은 신력으로 희미한 빛을 내는 히나를 두고 세이나는 그렇게 떠났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