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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법사를 훔쳐라-45화 (45/128)

#45.

중죄자만 가두는 곳인 만큼 감시는 철저했지만, 카신에게 몸을 완벽하게 숨기는 건 쉬운 일이었다.

공기와 완벽하게 동화한 카신은 감시자의 눈을 피해 지하 가장 깊은 곳까지 조용히 숨어들었다.

하필이면 버려진 히나를 풀토 공작이 거둬갔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카신은 풀토 공작의 자택을 알려준 과거의 스스로를 탓해야만 했다.

당시 다급했던 세이나의 질문에 카신은 어둠 속에서 가장 크고 기척이 많이 느껴지는 저택을 대충 찾아 가리켰다.

그도 그곳이 어딘지 몰랐다.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당연히 허영과 욕심으로 가득 찬 풀토 공작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게 했으리라.

‘아니, 애초에 히나에게 이런 감정을 느낄 줄 알았다면 당장에 빼앗아 데리고 아무도 없는 어딘가로 들어가 나만 바라보게 하면서 키웠겠지.’

만약 그랬다면 히나의 어린 시절을 계속 지켜봤을 것이다. 카신은 그녀의 어린 시절을 놓친 것이 무척 아쉬웠다.

“으으…….”

스으윽.

카신은 고통스런 신음을 흘려대고 있는 풀토 공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기척을 숨기지도 않았건만 고통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건지 다 죽어가는 공작의 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듣고 싶은 것이 있는데.”

풀토 공작의 주위로 검붉은 빛이 형성됐다. 저를 공포에 몰아넣었었던 낯익은 목소리에 공작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어, 어떻게……!”

짧은 시간 동안 모진 문초를 견뎌낸 걸 여실히 보여주듯, 풀토 공작은 신음과도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오, 오지 마……!”

꿈쩍할 수도 없을 정도로 지친 몸이었지만, 카신을 보자마자 그때의 공포가 되살아났다. 바들바들 떨리는 몸과 함께 심장이 몇 번이고 쿵쿵 내려앉았다.

주변을 둘러싼 검붉은 기운을 보는 순간 공작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극한의 공포를 느꼈다.

“히나를 주운 날, 다른 것도 같이 주웠을 텐데…….”

카신은 이제껏 귀족들의 신경전도, 세력도 신경 쓴 적이 없었다. 하지만 가끔 찾아와 고충을 늘어놓는 루이스 덕에 귀족들의 세계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는 대충 알고 있었다.

“공작께서 누구의 아이인지도 모르는 히나를 그냥 주워 키웠을 리는 없겠지.”

갓난아이를 주워 키울 정도로 풀토 공작은 그리 착한 성정이 아니었다. 이용 가치가 떨어진 히나를 죽이려던 것만 봐도 풀토 공작이 어떤 인간인지는 충분히 가늠이 갔다.

“그녀를 키우게 했던 물건.”

그럼에도 풀토 공작은 히나를 주웠다. 비록 직접 기른 건 아니었으나,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갓난아기를 거두어들인 건 무슨 이유가 있다는 거였다.

애초에 어미도 없이 버려진 히나에게 세이나의 이름이 이어졌다는 건 뭔가 함께 남겨 있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건 어디에 있지?”

“히익!”

검붉은 기운이 가까이 다가오자 풀토가 기겁한 채 몸을 바짝 졸였다.

“사, 살려주십시오!”

“제아무리 모반의 주모자라 해도 여기서 사람 한 명 몰래 빼돌리는 건 내겐 일도 아니지. 죽고 싶을 정도의 고통을 느끼게 하면서 목숨을 붙여놓는 것도 말이야.”

“아, 아니, 차라리 단번에 바로 죽여주십시오!”

어둠이 덮쳤을 때의 고통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었다. 차라리 죽는 것이 편할 정도였다.

아직도 온몸을 갉아먹던 어둠을 떠올릴 때마다 숨이 막혔다. 카신이 만들어낸 어둠은 무엇이든 녹일 것 같은 용암을 들이붓는 것 같으면서도, 살점을 도려내는 끔찍한 고통을 만들어냈다.

차라리 문초를 당하거나 죽는 게 나을 만큼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풀토 공작은 나중에 황실 근위대가 나타나 잡혀가면서도 어둠에서 벗어난 것에 크게 안도했었다.

“그게 어디 있는지 어서 말하는 게 좋을 거야.”

아이를 버리지 못할 정도의 물건이었다면 발견되어 화제가 되었을 터. 풀토 공작의 자택은 이미 황명을 받은 로티스 공작이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히나에 관련된 그 중요한 물건이 따로 발견됐다는 말은 없었다. 어디에 꽁꽁 숨겨놓았거나 사라졌다는 뜻이었다.

“그, 그 펜던트라면 여, 여기 없…….”

“그러니까, 어디에 있다는 거지?”

애초에 어디에 있든 상관없었다. 카신에게 장소는 중요하지 않았다. 깊은 바닷속이라도 어디에 있는지만 안다면 찾을 수 있었다.

그 어떤 고문에도 실토하지 않았던 풀토는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바로 앞에 있는 카신이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평생 죽지 못한 채로 그 끔찍한 고통을 느끼게 해주겠다고.

“여, 영지! 영지에 숨겨놓았습니다!”

“정확히 말해라.”

“성의 가장 꼭대기 층에서 제일 오른쪽 구석에 있는 창고의 침대 안에 있습니다.”

카신은 애초에 황제의 사람이 아니었다. 제국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도 결코 아니었다. 중죄인을 빼돌리는 것에 절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무서웠다. 풀토 공작은 망설이지 않고 모두 털어놓았다. 그런 고통은 평생에 한 번 느낀 걸로도 충분히 넘쳤다.

“사, 살려…….”

겁에 질려 살려달라 외치는 풀토 공작을 두고 카신은 미련 없이 그 자리를 나왔다.

“풀토 공작의 영지라.”

풀토 공작의 영지라면 수도에서 꽤 멀었지만, 상관없었다. 카신은 풀토 공작의 영지가 어딘지를 떠올리며 공간이동 마법을 시현했다.

위잉―

신비한 빛깔의 마력이 그의 주변을 둘렀다. 그리고 순식간에 장소가 바뀌었다. 역시나 풀토 공작의 성은 마찬가지로 근위대가 단단히 지키고 있었다.

성의 주변부터 엉망진창이었다. 작은 것 하나라도 발견하기 위해 이 잡듯이 뒤집어엎은 흔적들이 여실히 보였다.

높다란 하늘 아래에서 가장 높은 곳을 찾던 카신은 기척을 숨기고 성 안으로 숨어들었다.

“침대 밑이라…….”

아무리 샅샅이 뒤졌다고 해도 먼지만 가득한 이곳은 예외였다. 형식상 대충 훑고 지나간 것 외에는 딱히 조사하지 않은 것 같았다. 풀토 공작의 영지에 있는 커다란 성에서 뒤질 곳은 많으니 당연하리라.

“쓸모없는 물건을 숨기기엔 딱 좋은 장소였겠군.”

아무리 대귀족이라고 해도 대신전의 물건을 관계도 없는 사람이 갖고 있는 건 엄연한 금법이었다. 나중에 중요한 물건이 될지도 모르는 걸 보관하려면 그 누구도 찾지 않는 곳에 두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었으리라.

카신은 꽤나 넓은 창고 안을 한 번 훑었다. 정돈되지 않은 물건들 위로 먼지가 꽤 쌓여 있었다. 그는 쓰이지 않는 침대가 나란히 세 개가 있는 것을 보았다.

“신녀가 품고 있던 물건이니, 내 힘에 반응하겠지.”

별로 건드리고 싶지 않을 만큼 지저분한 이곳에서 어서 나가고 싶었다. 카신은 그 자리에서 힘을 발현시켰다.

어둠의 힘.

신력과는 상반된 힘이었다. 세이나가 오랫동안 품고 있던 펜던트는 당연히 그의 힘을 거부할 것이다.

힘을 증폭시키자 불길한 어둠이 방 안을 서서히 잠식했다. 그의 힘이 침대까지 삼키려 들었을 때, 어느 한 곳이 하얀빛을 내며 어둠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저긴가.”

손가락을 끄떡이자 침대 속에 숨겨져 있던 펜던트가 공중으로 휙 하니 올라왔다.

파지직!

상반된 힘이 부딪히자 번쩍이며 스파크가 튀었다. 끝까지 어둠의 힘에 반항하는 펜던트의 신력에 구역질이 치밀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방 안을 잠식하던 어둠의 힘이 사라졌다. 카신은 평범한 마력으로 펜던트를 가져와 손에 쥐었다.

“겨우 얻은 거야.”

히나의 마음을 확인했다. 아마 그는 그녀에게 있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리라. 확신할 수 있었다. 애초에 그녀는 외톨이었으니까.

어둠의 힘을 쓰며 올라오는 불쾌감보다 더 짜증 나는 건 그에 맞서는 신성한 신력이었다. 서로 상반되는 힘이 부딪히는 건 더 이상 사양이었다.

“내게 딱 맞는 아이야. 이제 와서 빼앗길 순 없지.”

세이나가 히나에게 행복만을 빈 것이 다행이었다. 만약 히나에게 그 이상의 신성한 기운이 조금이라도 발현됐다면 평생 그녀를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모든 게 신의 뜻이 아닌가 싶었다. 신이 따분한 인생을 사는 그를, 모든 걸 가졌음에도 남들의 소소한 행복을 부러워하는 그를 가엽게 여겨 히나를 내려준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신력으로 만들어진 히나의 빛이 어둠의 힘을 쓰는 그를 편하게 하는 우연이 일어날 리가 없었다.

“이것이 대신녀와 히나를 이어주는 유일한 연결 고리겠지.”

대신전의 신녀임을 의미하는 펜던트를 보는 것만으로도 언짢았다. 당장에라도 이 기분 나쁜 물건을 없애고 싶었다. 하지만 펜던트에는 이런 불쾌감 속에서도 그를 미소 짓게 만드는 것이 있었다.

「히나.」

단단한 무언가로 내리찍어 쓴 듯, 글자가 삐뚤빼뚤했다. 하지만 단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선명했다.

글자 하나하나를 새기면서 들였을 정성과 시간이 여실히 보였다. 이제는 히나의 이름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당시의 간절했던 세이나를 향한 안타까운 마음이라곤 일절 없었다. 그는 세이나를 결코 동정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세이나에게 히나를 빼앗길 테니까.

“이걸 어쩐다…….”

펜던트를 없애면 히나가 세이나의 딸이라는 증거는 세상에서 사라진다. 히나의 빛은 어둠의 힘을 가까이 들이대지 않는 이상 나타나지도 않았다. 이 세상에 어둠의 힘을 갖고 있는 인간은 그가 유일하니, 히나가 대신녀의 딸이란 걸 증명할 수 있는 건 현재로썬 아무것도 없었다.

신력이 깃든 신녀의 펜던트라고 하나 없애지 못할 건 없었다. 조금의 힘만으로도 존재 자체를 사라지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카신은 펜던트를 노려볼 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당장 없앨 필요는 없겠지.”

아주 오래된 펜던트였지만, 아직도 신력이 강경하게 남아 있었다. 당시의 세이나가 히나의 행복을 얼마나 간절히 바랐는지 보여주는 듯했다.

“그래도 안 돼.”

평생 히나에게 주지 않으리라. 세이나가 네 어머니라고도 절대 말해주지 않을 것이다. 그녀에게 소중한 사람은 그, 하나여야만 했다. 가족 노릇도 못 하는 어미 따위는 그녀에게 필요 없었다.

“나만이 유일하게 히나를 가질 수 있는 거야.”

이미 결정을 내렸다. 번복의 의지는 결코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돌아가는 카신의 발걸음은 무척이나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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