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법사를 훔쳐라-60화 (60/128)

#60.

라우너는 검을 다루는 것에는 항상 자신이 있었다. 또래는 물론, 머리 하나 차이 나는 기사에게도 진 적이 없었다.

어느 정도 컸을 때는 여자의 몸으로 최고의 기사라는 호칭을 얻은 어머니와도 엇비슷하게 싸울 경지에 이르렀다. 물론 어머니가 많이 봐주는 거였지만 말이다.

월등한 실력 탓에 대련할 상대조차 찾기 어려웠다. 황궁 기사단에 들어갔지만, 그를 대적할 수 있는 상대는 거의 없었다. 대련은 언제부턴가 지루해졌다.

그래서 그는 가끔 귀찮거나 흥미를 끄는 다른 일이 생기면 임무를 땡땡이치기도 했다. 그러나 땡땡이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바로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이따금 대련을 해주는 어머니였다.

화난 어머니는 무서웠지만, 한편으로는 기대도 되었다. 어머니는 예나 지금이나 대련만큼은 항상 진지하게 임해주니까.

누구에게도 검술로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는 그도 어머니 앞에서는 무력했다. 하지만 그래서 그 시간이 좋았다. 마음 놓고 덤벼도 지지 않는 상대가 있다는 건 기쁜 일이었다. 언젠가 꺾을 날을 기다리면 훈련도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제대로 덤벼도 절대 뒤지지 않는, 오히려 그를 더 몰아붙이는 상대였다. 하지만 아무리 어머니가 엄하다고 해도 아들인 그를 죽음에 내몰 만큼 가차 없이 몰아붙이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라우너는 몸에 한계가 올 만큼 검기를 끌어 올린 적이 없었다.

“대련이라도……,”

마치 여리여리한 아가씨가 가볍게 춤을 추는 듯한 몸짓으로 대응하는 카신을 보고 있자니 라우너는 배알이 뒤틀렸다. 그가 거대해진 검기로 카신의 아래쪽을 깊이 파고들자, 실체가 없는 검이 가볍게 그의 공격을 막았다.

“제대로 하란 말입니다!”

본래라면 누구나가 피할 공격이었다. 단련된 기사도 막지 못하는 무지막지한 힘이었다. 그도 카신이 피할 걸 예상하고 공격한 거였다. 하지만 카신은 그런 공격을 막으면서도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카신은 그를 비웃고 있었다.

피할 공격을 그대로 받아치고, 언제 힘을 주어 공격을 할지 모른다. 카신의 움직임을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함부로 움직이기 어려웠고, 긴장감이 배가되었다.

“공자가 죽으면 곤란하지 않나.”

농담인지 진담인지도 모를 말장난을 하면서도 카신은 라우너의 허리 안쪽을 깊게 파고들었다. 맞받아치려던 라우너가 짧은 시간 안에 위험을 감지하고는 상체를 깊숙이 숙여 피했다.

라이너가 회심의 일격을 날리면 카신은 보란 듯이 응수했다. 오히려 여유가 없을 만큼 그를 더 몰아붙이기도 했다. 회심의 공격 따위는 없었다는 듯이.

“쥐새끼처럼 잘도 피하는군.”

미세한 근육의 차이. 자신이 버티지 못할 공격을 날릴 때마다 검을 잡고 있는 카신의 손에 미세하게 힘이 들어갔다.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카신의 움직임 하나하나 확인한다고 이제는 눈까지 따가웠다. 하지만 까딱하면 죽을 수도 있었다. 무엇 하나 놓치는 순간 끝이었다. 라우너는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럼 이것도 피해보지 그러나.”

카신이 형체가 없는 검을 휘두르자 끝에 있던 검기의 일부가 그에게 날아왔다. 라우너의 눈이 한순간에 커졌다.

보통의 검기는 검을 감싸는 정도가 다였다. 검기를 검에 모두 두르는 것만도 대단한 거였다. 하지만 카신은 그 검기를 날려 마법처럼 공격까지 하고 있었다. 그 경지까지 올라간 사람은 현재 최고의 기사이자 그의 어머니, 레베스톤 여공작만이 가능했다.

놀라기도 잠시, 라우너가 낮게 날아오는 검기를 피해 다급히 엎어졌다. 검기에 스친 머리카락이 살랑이며 허공에 흩어졌다. 그의 몸이 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어떻게든 끝내야 해.’

라우너의 몸은 진작부터 한계였다. 손끝을 저려왔고, 눈도 침침해졌다.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지만, 이도 곧 한계에 부딪히리라.

하지만 라우너의 눈만큼은 총명함으로 빛나고 있었다. 여기서 죽는다고 해도 그 누구보다도 의욕을 끓어오르게 만드는 카신에게 어떻게든 한 방을 먹이고 싶었다.

몸이 바닥에 닿기 전에 라우너는 검을 쥐지 않은 다른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그리고 마지막 힘을 쥐어짜며 카신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당신, 죽일 거야!”

한계를 넘어 끌어낸 라우너의 검기가 카신이 한 것과 마찬가지로 검에서 벗어나 날아갔다. 응축됐던 검기가 대련장을 덮을 정도로 점점 거대해졌다.

카신의 시선에서 보기엔 모든 힘을 다 담아 날린 라우너의 검기는 아직 미숙하기 짝이 없었다. 어떻게 검기를 날린 것에는 성공했지만, 날린 검기를 끝까지 응축시킬 힘까진 턱없이 부족했다.

목표를 공격하지 못하고 분산시키는 건 무자비하게 힘을 난사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혼자 군대를 토벌하러 간 거라면 모를까, 지금 상황에선 쓰잘데기 없는 공격이었다.

“끝났군.”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라우너가 모든 힘을 쏟아부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일어날 힘도 없으리라.

여유롭게 자신에게 날아오는 검기만 튕겨내고 말려던 카신은 뒤쪽에 히나가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순간 카신의 눈이 번뜩이며 동공이 세로로 찢어졌다. 짐승과도 같은 그 눈동자가 무척 사나웠다.

화아악!

빛이라곤 일절 없는 검고 음산한 마력이 카신을 중심으로 튀어나와 대련장을 순식간에 둘렀다. 빠르게 증식된 어둠이 허공까지 뒤덮으며 여기저기 넓게 흩어지던 라우너의 검기를 모두 삼켰다.

털썩.

넋을 놓고 두 사람의 대련을 보고 있던 베라미와 루터가 코앞까지 온 어둠에 놀라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끝없이 어두워 온몸이 빨려들 것 같은 거대한 어둠이었다. 칼날을 목에 들이대는 것보다 어둠을 보는 것이 더 소름 끼치고 두려웠다.

화아악―

히나의 몸이 어둠의 힘에 반응하며 영롱한 빛을 내기 시작했다. 한순간이었지만, 주변을 모두 덮었던 어둠의 크기에, 성력도 엄청난 기세로 빛을 뿜어냈다.

가장 놀란 건 저도 모르게 본래의 힘을 드러낸 카신, 본인이었다. 히나를 보호해야 한다는 다급함에 가장 강하면서도 쓰기 편한 힘이 완전히 개방되어 튀어나왔다.

“이게…….”

성력.

카신이 자신의 몸에서 신비한 빛이 흘러나왔다고 말해준 적은 있었다. 하지만 히나는 한 번도 제 눈으로 그 빛을 확인한 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나타났을 때는 카신만 알아봤을 정도로 희미했고, 두 번째 또한 어둠의 힘의 잔재에 반하여 생긴 성력이었기에 그렇게 강하지 않았다.

“……성력이구나.”

처음 보았지만, 히나는 이 빛이 바로 세이나가 말한 성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카신의 힘이란 걸 알고도 불쾌하고 기분이 나쁜 어둠이었다. 하지만 성력이 어둠을 비추자마자 마음이 편해졌다.

“히나, 괜찮니?”

히나의 앞에 가볍게 내려앉은 카신이 걱정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카신 님, 이 힘이 제 힘인가요?”

눈앞을 순식간에 덮었던 어둠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공기 중에 남은 잔재로 인해 히나의 몸은 계속 신성한 빛을 내고 있었다.

강하고 아름다운 빛. 성력이 끝을 모르고 주변을 모두 비추었다. 불쾌감이 감돌았던 카신의 기분이 진정을 한 것은 물론, 놀란 루터와 베라미도 한결 차분해졌다. 카신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성력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 네 힘이다.”

어둠으로 인한 불쾌감은 모두 정화되었다. 주변이 온화한 기운으로 넘쳐 났다. 하지만 그럼에도 성력은 사라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의 몸은 더 강하게 빛을 뿜어냈다.

“왜 갑자기 나타난 걸까요?”

카신의 어둠은 신녀나 인간을 떠나 동물까지도 불길하게 여기며 피하는 힘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히나에게 이런 질문을 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그녀의 힘이 자신의 어둠에 반응한다는 걸 알아도 모른 척했다.

“이제 그만 빛을 제어하렴, 히나.”

대답을 회피한 채 카신은 말을 돌렸다. 피하려고 말을 돌린 것도 있지만, 슬슬 걱정이 됐다.

아직도 히나의 몸에서는 영롱하고 따뜻한 빛이 강하게 나오고 있었다. 공기 중에 남은 잔재에도, 그의 옷깃에 스며든 희미한 향에도 반응하던 힘이었다. 오로지 어둠의 힘만 완전히 개방시켰으니, 이토록 강하게 오래 지속되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하면 사라지는데요?”

“그건…….”

히나의 힘이 마력이 아닌 성력이라 설명하기 어려웠다. 아니, 마력이라고 해도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마력은 숨을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방출하고 봉쇄하는 게 가능했다.

성력은 현재 방출하는 것도 자의로 된 게 아니었다. 그러니 봉쇄하는 것도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닐 것이다. 여태 알아서 사라졌기 때문에 봉쇄하는 방법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카, 카신 님, 저…… 몸이 이상해요.”

그토록 바라던 힘이었다. 하지만 히나가 두 눈으로 처음 확인한 자신의 신비로운 힘에 감동한 시간은 아주 짧았다.

눈이 부실 만큼 강한 빛. 마음대로 튀어나온 힘이 계속 지속될수록 머리가 멍했다.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토기가 올라왔다.

“우욱……!”

“히나!”

빛은 사라지지 않았다. 한 번 폭주한 힘이 끝없이 흘러나오며 주변의 미세한 먼지에도 따뜻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제어되지 못하고 계속 이렇게 광대한 힘이 나온다면 히나의 체력이 버티지 못한다. 계속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안 돼!”

힘없이 휘청거리는 히나를 받아 안으며 카신은 그녀에게 그 무엇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 절대적인 결계를 쳤다. 그리고 그는 공기 중에 미세하게 어둠의 힘을 흩뿌렸다.

휘이익!

강한 바람이 불었다. 미세한 어둠이 강풍에 멀리까지 날아갔다. 동시에 카신은 그의 세포 하나하나를 곤두세우며 주변의 모든 것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감각을 풀어 헤쳤다.

어둠의 힘을 단번에 알아채고 정화시키는 강한 신력을 가진 인간. 역시나 세이나일 거라 추정되는 인물이 그의 어둠을 눈치채고 신력을 내뿜었다. 카신은 곧바로 공간이동 마법을 걸어 세이나의 앞으로 이동했다.

“고쳐, 어서!”

이곳이 어디인지 인식하기도 전에 카신은 눈앞에 보이는 세이나에게 외쳤다. 주변에 출처도 모를 스산한 기운을 정화하기 무섭게 갑자기 카신이 나타나자 세이나가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곧바로 이성을 되찾은 그녀는 카신의 품에 있는 히나에게 품위를 지키며 다가갔다.

“어떻게 된 거죠?”

카신은 히나를 그토록 사랑한다면서, 인생의 전부라면서 이 순간까지 평정을 잃지 않은 채 대신녀로서의 위엄을 지키려 하는 세이나를 보니 화가 났다. 하지만 지금 히나를 멈추게 할 수 있는 건 세이나밖에 없었다.

“어둠에 반응해서 나온 힘이 멈추질 않아.”

히나는 이미 혼절한 상태였다. 마법사도, 기사도 아닌 평범한 인간으로 과도한 힘을 썼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일단 장소를 옮겼으면 합니다만…….”

그제야 카신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지금 그가 있는 곳이 황궁에서 순례 때마다 신녀들이 머무는 작은 신전이란 것을 깨달았다.

주변에 어린 신녀들이 카신을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갑작스레 덮쳐 온 스산한 기운을 세이나가 정화하기 무섭게 영롱한 빛을 뿜어내는 작은 소녀를 안고 나타난 카신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그러지.”

카신은 곧바로 공간이동 마법을 펼쳤다. 품에 안겨 있는 히나, 그리고 세이나와 함께 이동한 곳은 그의 별궁이었다.

급박한 상황이었으니 어쩔 수 없긴 해도, 하필이면 골치 아픈 신녀들의 눈에 띄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히나였다.

“결계를 풀어요, 어서!”

별궁에 도착하자마자 날카로운 고음이 귀를 찔렀다. 평정을 잃지 않았다고 여겼던 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세이나가 공기조차 통하지 않는 결계를 두드리며 카신에게 외치고 있었다. 초조하게 일렁이는 눈동자를 보며 카신은 표정을 일그리며 결계를 풀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히나의 힘은 어둠의 잔재에도 반응해.”

세이나를 찾기 위해 또다시 어둠의 힘을 광범위하게 방출했다. 세이나를 찾자마자 바로 거두어들이긴 했지만, 성력은 희미한 잔재에도 반응을 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차단되는 절대 결계에 대량의 공기를 집어넣고 히나를 가둔 거였다.

“절대, 내 힘에 반응하지 마세요.”

카신이 그 뜻을 이해하기도 전에 세이나는 몸에 있는 신력을 서서히 내보냈다.

“신이시여, 제 부름에 응답하여…….”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맑고 청명한 목소리는 그 어떤 불순한 것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주변을 차분히 정화하고 있었다.

꽁꽁 숨겨두었던 어둠의 힘이 상반되는 힘을 느끼며 맞서기 위해 튀어나오려 했다. 카신은 치솟는 불쾌감을 참으며 세이나가 하는 양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이제 풀어도 돼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카신은 히나를 가둬놓았던 결계를 없앴다. 세이나가 히나에게 다가가 그녀를 세세히 살폈다.

아까만큼은 아니었지만, 성력은 아직도 강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위험했다. 카신은 초조함을 감추지 못한 채 물었다.

“제어할 수 있겠나?”

성력은 아니지만, 마력이 폭주하는 경우는 항상 존재했다. 이성을 잃을 만큼 미쳐 버리거나 한계가 있는 마력을 억지로 늘리려는 욕심에서 대부분 마력이 폭주했다.

카신은 그들의 최후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시현자가 혼절을 해도 폭주한 마력은 계속해서 마법을 일으켰고, 주변을 모두 부수는 것도 모자라 끝내는 마법사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폭주한 마법사를 멈추게 하는 방법은 딱 두 가지였다. 죽이거나, 압도적인 힘으로 제압하는 것. 그렇지 않으면 생명을 모두 갉아먹을 때까지 폭주한 마력이 주변을 끝없이 파괴했다.

“히나의 상태는 지금…….”

“알고 있으니, 쓸데없는 얘기는 그만하죠.”

현재 히나의 증상은 마력이 폭주했을 때와 똑같았다. 마찬가지로 히나를 보자마자 그 사실을 깨달은 세이나는 카신의 설명을 듣기도 전에 자신의 신력으로 폭주한 성력을 억제하려 하고 있었다.

새로운 힘인 성력을 비슷한 성질을 갖고 있는 신력으로 진정시킬 수 있을지 아직 확신할 수 없었다. 애초에 성력이 폭주를 할 거란 예상조차 못 했으니, 제압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카신은 세이나를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 분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세이나가 유일한 희망이었다.

“히나, 엄마가 꼭 널 지켜줄게.”

키우지 않아도 모성애는 있다는 건가.

불안한 건지 세이나의 손이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어떻게든 손끝에 모든 신력을 집중시키며 성력을 제어하려 했다.

카신은 고상한 신녀의 모습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 세이나를 보며 깊이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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