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법사를 훔쳐라-104화 (104/128)

104.

세상과 함께 카신의 몸도 어둠에 침식되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그는 슬프고도 아름다운 힘을 느꼈다. 모든 걸 포기하고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뜬 카신은 히나가 있었다는 곳에서 보이는 찬란한 빛을 멍하니 보았다.

‘저게 죽으면 나온다는 빛인가?’

칼피온이 말했다. 성력을 가진 아이가 죽는 순간 내뿜던 빛은 평소에 나왔던 빛과 달리 아주 슬펐다고.

그때는 한 사람에게 나오는 똑같은 성력이 죽을 때는 달리 나온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확실히 히나가 죽으며 세상을 밝히는 힘은 가슴이 아팠다.

‘육체가 사라져도 흘러나오는 힘이었던가.’

히나가 죽어서 슬픈 건지, 아니면 죽음에 달해서 나온 슬픈 성력 때문에 슬픈 건지 구분할 수 없었다. 다만 그는 현재 가슴이 아팠다. 어서 어둠에 침식당해 소멸하고 싶을 만큼.

히나를 떠올리는 마지막 슬픈 성력이 점점 사라졌다. 죽은 히나를 떠올리게 하는 빛이 없어지자 아쉬우면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은 그녀를 떠올리는 힘일지언정 그립지만, 동시에 가슴이 아팠으니까.

‘나도 금방 따라가마.’

의지를 가진 심장에게 그의 몸을 제물로 바쳐 불러일으킨 어둠이었다. 지금은 더디게 움직이지만, 어둠은 곧 작은 나라만큼의 영토를 장악할 것이다. 그러면 한 시간도 되지 않아 세계를 집어삼키리라.

세상 따위, 이제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카신은 모든 걸 포기한 채 다시 천천히 눈을 감으려 했다.

위잉―

긴 속눈썹이, 눈꺼풀이 그의 샛노란 눈동자를 가리기 적전, 칼피온의 힘이 느껴졌다. 이동 마법이었다.

‘다 소용없거늘.’

카신은 어둠에 다가오지 못하는 칼피온이 공간이동으로 한 번에 다가와 그를 막으려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둠을 멈추지 않는 한, 칼피온은 눈앞에서 순식간에 삼켜지리라.

그 어떤 것에도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눈을 감아 세상과 차단하려던 카신은 익숙한 기운에 눈을 번쩍 떴다. 그가 눈앞에 보이는 히나를 보고는 급히 숨을 들이마셨다.

루터를 끌어안은 채 히나가 울고 있었다.

“히나?”

어디서 구르다 온 건지 온통 시커먼 모습으로 서럽게 눈물을 흘리는 히나를 어둠이 삼키려 들었다. 그는 빠른 속도로 손안에 있는 심장을 움켜쥐었다.

그의 입에서 울컥 피가 솟구쳤다. 하지만 심장이 뒤틀리는 고통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눈앞에 있었다. 카신은 심장에 남아 있는 모든 힘을 쥐어짜, 그녀를 삼키려는 어둠을 모두 되돌렸다.

시간이 빠르게 되돌아가는 것처럼 지상과 허공에 번져 있던 어둠이 심장 속으로 후루룩 들어왔다.

히나를 삼키기 직전, 심장은 어둠을 모두 거둬들였다. 어둠이 사라지자 히나의 몸이 허공에서 땅으로 끝없이 하강했다. 그가 다급히 몸을 날려 떨어지는 히나를 받아 함께 쓰러졌다.

“히나!”

이동되자마자 눈앞에 어둠이 사라지고, 떨어졌다. 이대로 또 죽는구나, 싶은 순간 그녀의 몸을 누군가가 받았다. 꼭 감은 눈을 뜬 히나는 그녀의 아래에 있는 카신을 발견하고는 무거운 루터를 질질 끌며 재빨리 옆으로 비켜 나왔다.

카신을 보는 순간 북받친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여태 심장을 꽉 조이던 긴장이 한순간에 확 풀렸다. 히나는 차마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고, 카신을 보며 서러움을 토로했다.

“히나, 왜 우는 거니?”

과도하게 힘을 사용해서인지 심장이 당장에라도 터질 것 같았다. 숱하게 느꼈던 고통 중에서도 단연 최고였다. 하지만 그에겐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울지 마렴, 히나.”

카신은 히나가 걱정할까 봐 고통을 최대한 눌러 담아 말했다.

“카신 님! 루, 루터 오라버니가…… 죽어가요. 나를 살리려고 오라버니가…….”

태어나 처음으로 카신은 정신이 혼미한 걸 느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정신줄을 꽉 붙잡았다.

그는 마법을 쓰는 것 자체가 힘들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았다. 지금 상태로는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웠다. 방금 전 몸을 제물로 바친 대가였다.

아무리 그 힘을 거두었다고 한들, 심장을 빼내고 모든 힘을 포기한 후폭풍은 견디기 힘들었다. 이대로 죽지 않은 게 다행일 만큼 상태가 최악을 달리고 있었다.

“화산이…… 폭발했어요. 눈앞에 있는 모든 게 다 타들어가고, 루터 오라버니도…….”

“그러니? 이제 걱정하지 마렴, 히나.”

카신은 겨우 한 손을 올려 히나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 어째서 이렇게 움직일 힘이 나오는지는 그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히나를 안심시켜야 한다는 강한 의지가 그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그가 히나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내려 그녀의 품에 있는 루터의 머리 위로 손을 얹었다.

“모두 괜찮을 거란다.”

손끝에서 꺼져 가는 생명이 느껴졌다. 겨우 숨이 붙어 있지만, 죽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대로 두면 루터는 죽는다. 하지만 루터가 아무리 그에게 눈엣가시라도, 히나에겐 아니었다. 루터가 죽으면 히나는 평생 죄책감을 갖고서, 죽은 루터를 떠올리며 슬퍼할 것이다.

“네 옆에는 내가 있잖니.”

세상 그 어떤 것에도 무능하고 보잘것없이 보이더라도, 히나에게만은 누구보다 강해 보이고 싶었다. 그녀가 그 어느 때고 그를 믿고 든든하게 의지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이대로도 몸이 회복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그의 심장은 큰 타격과 충격을 받았다. 육체도 회복 불가능 수준이었다. 마법을 써서 숨이 끊어져 가기 직전의 루터를 살릴 수 있을지도 걱정이 되었다.

‘그보다 나는…… 살 수 있는 걸까?’

마법을 쓰다 숨이 끊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세상을 멸(滅)할 제물로 써야 없어질 만큼 질긴 생명이었지만, 지금은 꺼져 가는 루터의 생명처럼 간당간당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카신은 망설이지 않고 루터의 몸에 치유 마법을 흘려보냈다. 그의 끈질긴 생명 모두를 담아서.

“루터는 살 게다.”

말을 내뱉는 것도 힘겨웠다. 하지만 카신은 전혀 고통 따위 느끼지 않는 것처럼, 평소와 같이 평온한 목소리로 히나를 안심시켰다.

“네 오라비를 죽게 만들 순 없지.”

온몸의 힘을 끌어내 치료했지만, 그럼에도 루터를 완전히 치유하긴 힘들었다. 하지만 다행히 누군가에게 발견될 때까지 목숨을 붙여놓는 것까진 가능했다.

외상이 심각해 보이지만, 운이 좋은 건지 내상은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의 그로서는 절대 루터를 살리지 못했을 것이다.

‘보호 마법 하나는 제대로 배웠군.’

아마 죽기 전에 쳤던 보호 마법의 힘이 그의 몸 속에 끝까지 남아 있어 내부의 손상을 지극히 적게 입은 것이리라. 그래도 가르친 보람은 있었다.

적어도 오늘 루터가 죽어 히나를 평생 슬프게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카신은 루터에게 생명을 붙이자마자 축 늘어지는 몸을 지탱하지 못한 채 히나에게 몸을 기울였다.

“카신 님, 저 너무 무서워서…….”

눈물을 쏟아내며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한 히나가 울먹이며 두 손을 벌려 그를 와락 안았다. 그런 그녀를 받아주는 것이 무척 고통스럽고 힘겨웠지만, 행복했다. 히나가 먼저 이렇게 안기는 일은 거의 없으니 말이다.

‘나는 살 수 없는 건가.’

이대로 죽는 건 억울했다. 히나가 살아 있는 줄 알았다면 세상을 멸하려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세상을 없애려 한 자업자득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억울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내가 이대로 죽으면 히나가 슬퍼하겠지.’

다른 것으로 인해 히나가 평생을 슬퍼하는 건 싫었다. 그 상대가 오라비인 루터라도 말이다.

하지만 자신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거라면, 그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그녀가 슬퍼하는 건 싫었지만, 그래도 그를 잊지 못한다는 것은 마음에 들었다.

‘여전히 뒤틀렸군.’

히나의 마음에 영원히 남았으면 했다. 강인하고, 의지가 되는 대마법사로. 그래서 죽은 자신을 떠올리며 슬퍼하기도 하고, 때로는 의지를 하기도 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그것이 죽기 전 그의 유일한 소원이었다.

“괜찮다, 히나.”

카신은 두 팔을 들어 힘겹게 히나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질긴 생명을 가진 몸이 회복을 하고 있지만, 목숨을 위협하는 고통이 번져 나가는 것과 달리 무척이나 더뎠다. 그는 죽음을 직감했다.

“카신 님은…… 괜찮은 거죠?”

그가 히나를 안은 손에 힘을 더 꽉 주었다.

“그래, 괜찮다.”

주변엔 아무것도 없었다. 여전히 얇은 막 속에 갇혀 소리를 지르며 절규하고 있는 코반드를 제외하고는 무(無)의 세상이었다. 어둠에 삼켜졌던 주변 땅은 되돌릴 수 없었다.

아주 일부라도 고독한 무의 세상을 히나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카신은 눈물을 왈칵 쏟아내는 히나가 혼절할 때까지 결코 그녀를 안은 손을 풀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가 정신을 잃고 나서야 그도 겨우 붙잡고 있었던 정신줄을 놓을 수 있었다.

* * *

세이나도 히나의 성력을 느꼈다. 히나가 살아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붕괴되었던 그녀의 정신이 빠르게 돌아왔다.

정신을 차렸을 땐, 세상을 장악하던 어둠이 사라진 뒤였다. 세이나는 미치기라도 한 것처럼 카신이 있는 방향으로 쉬지 않고 뛰었다. 히나가 카신에게 있을 거라는 예감 하나만 믿고서 말이다.

장신의 카신이 작은 히나를 꼭 안고 있어, 히나는 겉으로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소중한 것을 보호하듯, 무언가를 품에 꼭 품고 있는 카신을 보는 순간, 세이나는 그 안에 히나가 있다는 걸 바로 직감할 수 있었다.

“히나!”

히나는 무사했다. 뒤늦게 발견한 루터도 치료가 빨리 이루어지면 무사할 듯했다. 하지만…….

세이나는 죽어가는 카신을 보며 잠시 망설였다. 인간이 어떻게 심장을 빼내고도 살아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심장 고동이 무척 미약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뛰고 있다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이대로 두면 죽어.’

이 와중에도 몸이 회복하려 아등바등하고 있었지만, 그보다 몸이 파괴되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죽는다면…….’

신력을 쓰는 세이나에게 있어 카신은 악의 축이었다. 그 증거로 주변을 둘러보면 알 수 있었다.

무(無)의 세상.

세이나는 어둠의 힘에 삼켜졌던 공간을 둘러보며 잠시 숨을 멈췄다. 아무리 신력을 불어넣고 정화를 시킨다고 해도, 앞으로 이 주변엔 그 어떤 생명도 자라나거나 탄생할 수 없으리라.

“나는…….”

세이나는 신력으로 주변을 정화하며 남아 있는 어둠의 기운을 막아 이곳에 접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마 여기 오기까지 꽤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녀가 밟고 있는 땅은 극심하게 오염되었으니까.

이대로 두면 카신은 죽는다. 오염된 공기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지만, 아무리 질긴 목숨이라도 다른 사람들이 올 때까지 카신은 버틸 수 없다.

세이나는 히나와 루터에게 시선을 돌렸다. 오염된 공기가 앞에 있는 두 사람에게만은 영향을 끼치지 않고 있었다. 아마 카신의 의지가 남아 있는 잔재라서 그런 모양이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결계를 쳐야겠어.’

다른 사람이 올 때까지 어둠의 잔재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결계를 치고 기다릴 셈이었다. 안타깝지만, 세상에 해가 되는 카신은 여기서 죽어야 했다. 실제로도 그는 세상을 없애려 하지 않았던가.

“카신 님…….”

혼절한 히나가 작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카신을 찾았다. 아주 작은 목소리였지만, 그 어느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히나에게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던 세이나에게는 히나의 작은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이 악한 남자가 네게 그렇게 소중한 존재니?’

신녀로서 평생을 히나를 위해 살아왔다. 히나가 원하는 것이라면 그 어떤 것이든 들어주고 싶었다. 설사 그것이 세상을 멸하는 일이라도 말이다.

세이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카신을 보았다. 히나까지 망치려 들 것 같은 카신의 집요한 집착이 두려웠다. 그는 그녀도 어찌하지 못할 아주 강하고 악한 힘을 가졌다. 그래서 그를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두고 싶었다.

“여기서 죽이자, 히나. 응?”

그녀의 말을 들은 건지, 아니면 우연인지 히나의 눈꼬리에 맺힌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검은 화산재가 묻어나 있는 뺨에 투명한 눈물이 지나가며 바닥에 툭 떨어졌다.

“네가 불행해질 거야, 히나.”

무척이나 마음이 아팠던 히나의 성력. 그리고 혼절한 얼굴로 슬픈 눈물을 떨어뜨리고 있는 히나. 히나의 모든 행동들이, 힘이, 죽어가는 카신을 슬퍼하는 것만 같았다.

세이나는 한 손을 올려 히나의 뺨에 그려진 눈물 자국을 닦아주었다. 그리고 어느새 다 커버린 그녀를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있는 힘껏 꼭 안아보았다.

“엄마가 널 지켜줄게.”

평생 히나를 지켜줄 것이다. 그 어떤 위협에서라도.

세이나는 히나를 품에 안은 채 눈을 감았다. 그녀의 뺨을 타고 눈물이 툭,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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