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법사를 훔쳐라-105화 (105/128)

105.

카신은 그 누구도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아주 긴 세월을 살았다. 너무 길어서 몇 번이고 포기하고 싶은 만큼 기나긴 삶이었다.

그도 처음부터 감정에 무감각한 사람은 아니었다. 살다 보니 이렇게 됐다. 자의에 의해, 타의에 의해.

그는 옆집 수저 개수도 알 만큼 적은 인구가 사는 산두메의 아주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안타깝게도 그릇이 작아 남들보다 발달이 빠른 그를 보고 외려 불안해했다. 마을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를 불길하게 보았다.

어릴 때는 나름대로 순수했다. 그래서 아주 큰 상처를 받았다. 혼자가, 외톨이가 되는 것이 싫어 아등바등 발버둥을 쳤지만, 후에 그를 이용하려는 사람들로 인해 상처를 받고 결국 혼자가 되길 자처했다.

그래도 그의 부모는 노력했다. 특히 그의 모친은 어떻게든 그를 받아들이려고 애썼다. 하지만 모친은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 자체가 카신에게 아주 큰 상처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카신은 결국 상처를 받지 않으려고, 마음의 문을 닫았다. 아주 비겁한 자기 보호를 한 셈이다. 순전히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서만 살았고, 남의 마음 따위는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그 일은 쉽지 않았다. 그는 어릴 때부터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무엇이든 가볍게 넘길 만큼 노련하지도 않았다.

유달리 재능이 많고 마력이 넘치지만, 다치면 울고 작은 선물을 받으면 기뻐하는 아주 평범하고 순수한 사내아이였다. 적어도 카신은 어릴 때의 자신을 그렇게 표현했다.

‘이 아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내 인생이 이렇게 불행하진 않았을 텐데.’

그나마 그를 이해해 주는 건 모친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모친이 깊은 병에 걸려 한 생각은 그가 완전히 세상에 마음을 닫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카신은 아주 많이 후회했다. 상처받는 것이 무서워 사람의 마음을 읽는 마법을 연구하여 스스로에 건 것을.

그리고 하필 처음 듣는 속마음이 여태 받았던 상처와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아주 커다란 비수인 것에 한탄했다.

모친의 속마음을 듣고 나자마자 카신은 집을 나왔다.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일은 아무도 없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남의 마음을 읽는 마법을 없애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그는 확실히 미숙하고 마음이 여렸다. 그렇게나 큰 상처를 받았으면서도, 그가 산속 깊은 곳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모친의 병을 낫게 하는 약에 대한 연구였다.

병을 고치는 연구는 어려웠다. 그는 살가죽만 남을 만큼 먹고 자는 것도 잊고 연구에 몰두했다. 살기 위한 최소한의 식사와 수면만 취했다. 늦어질까 싶어 불안한 마음에 다른 건 할 수도 없었다.

하늘이 그의 노력에 감복한 건지, 다행히 모친이 죽기 전에 약을 완성했다. 카신은 일 년 만에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보는 부친에게 모친을 구할 수 있는 약을 내밀었다.

“저는 가족에 미련이 없습니다. 부디 건강하세요.”

그래도 그를 나아주고 길러준 부모였다. 아무리 저를 불길해하더라도 마지막 순간만큼은 조금이라도 아쉬워해 주길 바랐다. 고맙다고, 미안했다고, 또 고생했다는 말을 은근히 기대했던 것도 같다.

‘그 어떤 의사도 고칠 수 없다고 했는데……. 역시 이 녀석은 불길해.’

하지만 그건 너무 큰 바람이었다. 부친은 겉으로는 약을 받고 기뻐했지만, 속으로는 그의 능력을 꺼려 했다.

카신은 또다시 후회했다. 조금 늦더라도 마음을 읽는 마법을 없애고 왔어야 했는데.

그가 연구한 약을 먹고 모친은 살았다. 다시 건강도 되찾았다. 그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카신은 다시 집을 나왔다.

“감사했습니다. 행복하세요.”

그게 부모에게 한 마지막 말이었다.

카신은 다시 깊은 산속에 틀어박혔다. 이번엔 아주 오래 있었다. 가장 하고 싶었던 속마음을 읽는 마법을 일 년 만에 해독했지만, 그럼에도 그는 나오지 않았다. 쓸쓸하지 않기 위해 더더욱 연구에 몰입했다.

몇 년인지 모른다. 어쩌면 몇십 년이 넘었을 수도 있다. 연구는 즐거웠지만 그래도 공허해서 견딜 수가 없을 무렵, 그는 세상에 다시 나왔다.

‘세상이 많이도 변했군.’

동물의 귀소본능처럼 카신은 태어나 자란 마을로 향했다. 그를 가장 힘들고 슬프게 한 사람들이 많은 곳에 어째서 돌아갔는지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부모는 죽고 없었다. 남아 있는 형제가 그를 보고 따졌다. 어째서 부모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고 늦었는지에 대해.

“하, 이러니 어머니가 말도 꺼내지 못하게 했지.”

“불길한 놈.”

부모가 생각했던 말들을 형제들은 그에게 대놓고 꺼냈다. 이미 부모의 속마음을 몇 번이고 읽었던 그는 대수롭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었다.

부모는 행복하게 떠났다고 했다. 카신은 욕을 하는 형제들을 무시하고, 부모님의 묘지 앞에 추모를 한 뒤에 다시 떠났다.

아주 긴 여행을 했다. 지치면 어디 눌러앉아 쉬기도 하고, 또 연구가 하고 싶으면 연구도 하고. 어느 곳에서는 신처럼 추앙받기도 했으며, 또 다른 곳에선 악마로 취급받아 쫓겨나기도 했다. 평범한 척 조용히 살다가 떠나는 일도 많았다.

그러다 조용히 혼자 있고 싶을 때는 사막의 모래바람을 맞으며 모래가 깊은 무덤을 만들 만큼 오래 누워 있기도 했고, 사람이 못 사는 극도로 추운 곳을 여행하기도 했다.

태어난 마을을, 부모의 묘지를 몇 번 찾아갔지만, 그 일은 어느 순간 그만두었다. 그의 형제들도 다 죽고, 그 아이들도, 그 아이들의 아이들도 죽었다. 형제의 후손들에게서 부모의 얼굴이 거의 남아 있지 않게 되었을 때, 그는 마을로 가는 것을 멈췄다.

아주 긴 시간 동안 여행을 했다. 시간이 갈수록 마법이나 연구에 대한 갈망은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살아온 세월이 너무 길어서인지 어쩌다 한 번씩 하는 연구로 그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그러던 중, 그는 한 드래곤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 드래곤은 세계 최강의 생명체야. 모든 생명이 내 발 아래에 있어야 한다고.”

그가 만난 드래곤은 오만했다. 감히 세상을 군림하려 했다.

카신은 그 드래곤에게 조금 더 접근했다. 한 번에 드래곤의 힘을 파악한 카신은, 제 실력을 숨기며 그만이 할 수 있는 기묘한 마법을 보여주어 흥미를 끌었다.

“이봐, 넌 인간인데도 꽤 강한 것 같은데 어떤가? 우리 계획에 참여하는 것이?”

그 드래곤은 장로 중에서도 꽤 영향력이 있는 드래곤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장로들 사이에서도 정점에 올라서고 싶어 했다. 카신은 그 마음을 전부 간파했다.

마법을 가르쳐 주며 이용당하는 척했지만, 실제로는 그가 드래곤을 이용하고 있었다. 힘을 조절하여 더 약한 척하는 수고로움까지 보이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는 드래곤들의 일부가 드래곤을 제외한 모든 생명체를 멸할 계획을 세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몇몇 장로들도 내 편으로 만들었지. 우리는 세상을 새로 일굴 거야. 그 안에 너도 끼워주마.”

장단을 잘 맞춰주었던 것인지, 드래곤은 카신을 신뢰했다. 그리고 카신의 존재를 철저히 숨겼다. 그에게서 신비로운 힘을 배우고 정점에 서기 위해서 말이다.

그건 그에게 있어 꽤 고마운 일이었다.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으니, 드래곤을 멸살시키는 게 더 편해졌다. 하지만 알려졌다고 해도, 크게 문제 될 게 없기도 했다.

“어, 어째서…….”

카신은 모든 계획을 알자마자, 그 자리에서 드래곤을 죽였다. 큰 배신이라도 당한 것처럼 구는 드래곤에게 카신은 가차 없이 말했다.

“드래곤의 씨를 모두 말려주겠다. 그게 내가 태어난 이유인 것 같군.”

드래곤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는 그가 강하다는 걸 깨닫는 순간, 바로 죽이려 들 것이다. 그는 이용만 당한 채 상처받는 건 어릴 때만으로도 충분하다 생각했다.

그 뒤로 계획에 동참한 드래곤을 모두 죽이고 다녔다. 그게 신이 자신을 만든 이유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부모조차 기피하는 자신이 살아 있는 이유가 없게 되는 거니까.

거창한 이유를 만들어서인지, 그는 살인귀라도 된 것처럼 상관도 없는 드래곤까지 모두 죽이고 다녔다. 당시에는 드래곤의 수가 셀 수 없이 많았고, 언제고 또 그런 계획을 세울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때 카신은 칼피온을 만났다. 그는 상처받고 또 상처받은 채로도 어떻게든 혼자가 되지 않으려 아등바등거리는 칼피온에게서 과거의 자신을 보았다.

“같이 가겠느냐?”

누군가에게 이런 제의를 한 건 처음이었다. 그렇게나 큰 상처를 입었음에도 그들을 배척하지 않고, 영웅이 되겠다는 칼피온이 어떻게 자랄지 지켜보고 싶었다.

어쩌면 과거의 자신을 동정해서 그런 제의를 한 걸지도 모른다. 과거의 그는 무척 가여운 외톨이였으니까.

칼피온과 지내는 시간은 꽤 즐거웠다. 표현하지 않았지만, 뭐든 척척 배우고 해내는 걸 보며 흐뭇했다. 자식이 있다면 이런 기분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자식이 장성하면 독립을 하듯이, 칼피온도 그의 곁을 떠났다. 비겁하게 자기 보호를 하며 세상과 척을 지던 그와 달리 칼피온은 아주 강했다. 너무 잘 버텨주어 조금 부럽기도 했다.

“내가 그보다 더 위에 서겠어.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호기롭게 말한 것처럼 칼피온은 혼자의 힘으로 로드가 되었다. 카신은 다시 외톨이가 되었다. 드래곤 사회에 균형이 잡히자, 이제는 그럴듯한 사명을 부여하며 살아갈 수도 없게 되었다.

그는 또 긴 시간을 떠돌아다녔다. 드래곤을 죽이느라 더 완벽한 존재가 되어 이제 더는 연구할 것도 없었다.

그 어느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감정에도 더 무뎌졌다. 생명이 태어나 죽는 것은 너무 당연했고, 그 짧은 삶 동안 치열하게 경쟁하며 치고받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여행하는 것이 귀찮아지자 카신은 떵떵거리던 한 사내의 바람을 들어주어 제국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가장 편안한 삶을 보장받고 말이다. 어쩌면 조금 지쳐서 쉬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이런 전지전능한 힘 따위 원한 적 없다. 평범한 행복을 갖고 싶었다. 남들이 조금만 노력하면 가질 수 있는 아주 소소한 행복 말이다. 그 행복이 간절했다.

그때였다. 카신은 히나를 만났다.

“전…… 그, 그러니까…….”

세차게 뛰는 심장 소리가 카신의 귀에까지 들렸다.

“저, 전 오늘부터 대마법사님을 모시게 될 히나라고 합니다.”

한순간 찬란한 빛을 낸 것과 달리 히나는 작고 수줍은 목소리로 제 소개를 했다. 그리고 그 순간, 한 번도 돌아간 적 없었던 카신의 시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모든 게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길고 지루한 주마등을 보던 카신은 히나가 비쳐졌을 때부터 속이 메스꺼웠다. 불쾌하기도 하고, 이유 없이 눈물도 났다.

살면서 죽음을 수도 없이 상상했다. 카신은 죽는 순간까지 절대 후회 따위는 없을 거라고 확신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후회가 되었다.

“저는 카신 님이 좋아요.”

겨우 히나에게서 고백을 받았다. 히나가 더 성숙해지면, 결혼을 하면 그가 그토록 바라던 단 하나의 염원, 즉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카신 님이 구해주세요.”

자립심이 강했던 히나가 이제는 의지도 하게 됐다. 그때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인생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최고치의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장 행복했던 건 따로 있었다. 카신은 히나가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했던 말을 떠올렸다.

“제가 전쟁에서 무사히 돌아오면 저와 결혼해 주시겠어요?”

전쟁이 무사히 끝나면 하고 싶은 모든 걸 하려 했다. 그토록 갈망했던 행복을 마음껏 누리려고 벼르고 있었다.

‘난 죽는구나.’

카신은 지난 삶을 모두 돌아보며 쓰게 웃었다. 눈물도 흘렸다. 아이처럼 소리 내어 울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또 혼자였다.

‘너와의 약속은 모두 지켰다, 히나.’

히나도 구해주었고, 루터도 구했다. 단 하나, 돌아가면 결혼을 해달라는 약속은 결국 지키지 못하게 됐지만.

그래도 그 외 모든 약속은 지켰다. 목숨을 다해. 오랜 세월 동안의 갈망까지 모두 포기하면서 말이다.

‘그러니 가끔 이 가엽고 불쌍한 나를 한 번씩 떠올려 주겠니?’

신은 없다. 만약 신이 있다면 한 인간의 인생을 이렇게 불행하게 할 수는 없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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