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마법사를 훔쳐라-109화 (109/128)

109.

“분명 살아 있어. 도망을 갔겠지.”

카신은 코반드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렸다.

레드 드래곤인 코반드를 절대 깨어지지 않는, 마력을 담은 얼음으로 꽁꽁 묶어두었다. 그리고 카신 외에는 누구도 개입하지 못하도록 절대 깨지지 않는 보호막까지 만들어두었다.

하지만 주인이 죽을 위기에 처하고 심장이 폭주를 시작하며 그가 뿌렸던 마법은 모두 사라졌다.

“그 누구도 살지 못하는 오염된 공기 속에 풀어졌을 테니, 멀쩡하지는 않을걸세.”

공간이동 마법으로 일단 몸만 겨우 피했으리라.

하지만 어둠의 안개 속에서 피부부터 장기까지 멀쩡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니 혼자 힘으로 숨어 있는 것은 무리다.

“과거에 내가 머물렀던 연구실의 자료까지 훔쳐 간 놈이다. 그놈을 잡아 죽이고, 내가 가진 연구 자료로 한 괴상한 실험을 모두 폐기시키겠다.”

카신이 과거에 했던 연구 중에는 꽤 위험한 것들이 많았다. 호기심에, 또 시간을 때우기 위해 한 연구들이었다.

그에게는 단순한 호기심 해결에 불과했지만, 연구 결과물들은 꽤 위험했다. 그래서 카신은 연구에 대해 흥미가 사라지면 모든 자료를 폐기했다.

하지만 어떻게 훔친 건지 코반드가 과거 그의 연구 자료를 가지고 있었다. 인간은 물론이고, 다른 종족까지 파괴시킬 수 있는 자료를 갖고 있게 둘 수는 없었다.

‘그게 아니라도 죽을 이유는 많지만.’

그 어떤 이유를 대도 살려줄 연유가 없었다. 어떻게든 죽일 것이다. 당장에 찾아내어 존재 자체를 지워 버려야 했다.

“내가 이번에 하는 일에 그 누구도 개입하지 않는 게 내 조건이다. 이거면 네가 내 여자를 몸 바쳐 구해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충분하겠지?”

카신은 칼피온을 응시하며 말했다. 칼피온이 다소 놀란 얼굴을 하더니 픽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장로들을 향해 명령했다.

“로티우스의 말대로 나는 코랄드의 처분에 그 누구의 개입도 허락하지 않는다.”

“하나 코랄드는 오랫동안 장로로 지내며 종족 유지에 많은…….”

“그 누구도, 개입을 허락하지 않는다.”

칼피온이 한 장로가 하는 말을 끊으며 다시 한번 강조했다.

“우린 오래전, 인간의 삶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다고 서로 약조했다. 하지만 코랄드는 그 모든 것을 어겼어.”

누가 말해준 것도 아니다. 하지만 드래곤들은 인간의 삶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규칙으로 삼고 있었다.

과거에 그 법칙이 깨어질 뻔도 했지만, 칼피온이 로드 자리에 오르는 순간 그 법칙은 더 철저하게 지켜졌다. 거기다 그 조항으로 드래곤을 멸족시킬 힘을 가지고 있는 카신과 약조까지 하며 안전을 보장받았다.

“협조하란 말은 하지 않아. 하지만 그 누구도 코랄드를 숨겨주어선 아니 될 것이네. 이것이 이번 일에 대해 로드로서 내리는 명령이다.”

장로들은 오래 살며 서로 친분을 다져 왔다. 그러니 코반드와 꽤나 친분이 있는 드래곤도 있을 것이다.

칼피온은 굳이 친우였던, 그리고 오랜 동료였던 자를 팔게 할 생각은 없었다. 카신이라면 멀쩡하지 않는 코반드를 금방 찾아낼 테니까. 하지만 코반드에게 몰래 도움을 주는 것은 용서할 수 없었다.

“드래곤의 일로 피해를 끼쳤으니, 그 협조는 로드인 내가 직접 하도록 하지.”

* * *

코반드는 그 누구도 모르게 만들어놓은 지하 연구실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피부가 전부 녹아내렸고, 장기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며 눈앞의 실험체들을 둘러보았다. 투명한 관 속에 담긴 수많은 인간들이 앞서 만들어졌던 마법사처럼 체형과 외형이 점점 변형되고 있었다.

“이것들이 완성되려면…….”

아직 멀었다. 아마 앞에 있는 마법사들이 완전히 만들어지기 전에 카신은 그를 발견할 것이다. 어차피 발각되기 전에 마법사들이 만들어진다고 해도, 카신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한 나라에서 뛰어난 마법사를 찾는 것은 어렵지만, 작은 마력을 가진 인간은 널리고 널렸다. 그는 연합군의 마법사들은 물론이고, 병사들 중에서 미처 발견되지 못할 만큼 작은 마력을 가진 인간들을 전부 골라냈다.

카신에게서 훔쳐 낸 연구 자료는 엄청났다. 마력을 가지고 있는, 마법에 잠재 능력이 조금만 있는 인간이라면 얼마든지 뛰어난 마법사로 새로 탄생할 수 있었다. 가지고 있는 마력을 수십, 수백 배로 폭등시키고, 그 어떤 어려운 마법도 자유자재로 쓰게 된다.

더 놀라운 것은 전에 만들어졌던 마법사들도, 지금 눈앞에 있는 실험체도 아직 완벽한 게 아니라는 거였다.

“몇 번만 더 실험한다면 겁쟁이 로드는 물론이고, 로드를 따르는 드래곤들까지 몰아낼 수 있었을 텐데……!”

그 전에 제이드에게 준 부대는 열한 번째이며, 지금 눈앞에 있는 실험체는 열두 번째였다. 반복하면 반복할수록 마법사들은 엄청난 힘을 갖고 더 완벽한 마법사로 새로 태어났다.

열한 번째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열두 번째는 벌써 강대한 마력을 보이고 있었다. 수로 밀어붙인다면 드래곤까지 어찌할 수 있을 만큼.

이대로 서너 번만 반복하면 드래곤을 물리칠 부대를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더는 실험체가 부족했다.

“고작 한 달짜리니, 어쩔 수가 없지.”

광대한 마력과 마법을 쓸 수 있는 대신, 목숨이 한 달 남짓이었다. 이미 연합군에선 잠재적으로 마력을 갖고 있는 인간들은 거의 다 썼다.

지금쯤이면 제국을 쳐서 더 많은 실험체를 모았어야 했다. 전쟁에서 승리하면 연합군만큼이나 수가 많은 제국군으로 새로운 마법사들을 만들 계획이었다.

“로티우스, 그 망할 것이!”

히나를 이용하여 카신을 죽이고, 또 제국군을 실험체로 써서 겁이 많은 드래곤들을 전부 몰아낸다. 이게 그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지금 무너지려 하고 있었다.

남아 있는 한쪽 눈도 흐릿해지려 했다. 강인한 드래곤의 몸을 가졌음에도 재생이 잘되고 있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젠장, 젠장!”

몇 번이고 욕설을 내뱉었지만, 화가 풀리지 않았다. 이대로 모든 계획이 허물어지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코반드는 그 지독한 검은 연기가 없음에도 계속 녹아내리는 몸을 부여잡으며 책상으로 기다시피 걸어갔다. 그가 급한 손놀림으로 한쪽 구석에 모아놓은 낡은 연구 자료를 꺼냈다.

“이대로 죽을 순 없어. 이대로는!”

이제 가망이 없는 몸이라면, 이 몸으로라도 실험을 하리라.

어차피 죽을 목숨이었다. 카신이 오나, 오지 않으나.

“분명 방법이 있을 게야!”

카신의 연구 자료는 꽤 어려워서 단번에 이해하기 힘들었다. 새로운 마법사를 탄생시키는 마법 또한 연구 기록을 수십 년 동안 공부한 끝에 이해하고 실험에 옮긴 것이다. 그때의 그는 이런 연구가 있다는 것조차 모를 만큼 무지했으니까.

지금의 실험을 이해하자마자 나머지 자료들은 거의 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실험에 성공한 기쁨에 젖어 있기도 했고, 새로운 것을 다시 도전하기엔 한 가지를 오래 연구한 바람에 지치기도 해서였다.

나머지 연구들을 뒤적이던 코반드는 어느 한 장의 연구 자료를 천천히 읽어보았다. 여전히 카신이 남긴 기록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처음 봤을 때만큼은 아니었다.

“마법사들의 마력을 몰아넣는다고?”

코반드는 아직 실험 중인 실험체들을 쭉 훑어보았다. 한 부대 정도 될 만큼 엄청난 수였다.

“이 마법사들의 마력도 한 곳에 옮길 수 있을까?”

실패를 한다고 해도 선택권은 없었다. 이대로 죽는 것보다는 나았다.

코반드는 빠르게 연구 기록을 다시 읽었다.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더 많았지만, 그래도 그도 여태 스스로 연구한 것이 있었다. 카신의 이론과 자신이 한 연구를 토대로 한번 시험해 볼 가치가 있었다.

“만약 성공만 한다면…….”

그래서 마력을 수십, 수백 배로 증폭시킬 수만 있다면 카신을 이길 수도 있지 않을까?

이대로는 억울해서 못 죽는다. 당장 죽는다고 해도 카신을 저승길 동무로 데려가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절대 그냥 두지 않을 테다, 로티우스.”

코반드는 이를 갈며 제 몸을 토대로 실험을 하기 시작했다.

* * *

카신은 바로 막사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히나가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은 함부로 출입할 수 없습니다.”

새하얀 제복을 입고 있는 신관이 앞을 막았다. 카신은 신전의 마크가 그려진 눈앞의 막사를 보며 천천히 입을 뗐다.

“신녀의 상태가 위중하다고 들었습니다만.”

막사 안에서 세 명의 기척이 느껴졌다. 시중을 들고 있는 신녀 두 명과 아주 미약한 힘을 내고 있는 세이나.

“내가 봐드리지요. 대신녀께 해를 끼칠 생각은 절대 없습니다.”

두 명의 신관이 서로를 보며 눈짓을 주고받았다.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한 명의 신관이 어딘가로 향했다. 아마 계급이 높은 신녀에게 물으러 가는 것이리라.

예상대로 꽤나 높은 신력을 가진 신녀 한 명이 신관과 함께 다가왔다.

“대마법사님께서 신녀님을 봐주신다고 했다고요?”

“그렇습니다. 아마 이 중에서 가장 나을 겁니다.”

신녀들의 치료술은 무척이나 뛰어났다. 그래서 굳이 제국군의 도움을 받지 않고, 오히려 해를 끼칠까 싶어 출입까지 차단한 거였다.

하지만 상대는 대마법사였다. 거기다 세이나는 지금 아주 위중한 상태다.

그들은 신관을 대표하는 세 명의 신녀 중 한 명인 세이나를 어떻게든 살리고 싶었다. 지금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대마법사에게 매달려야 했다.

“들어오시지요.”

막사가 열리고 신녀가 카신을 안내했다. 카신은 작은 막사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끊어질 것 같은 숨소리로 생명줄을 겨우 연명하고 있는 세이나를 볼 수 있었다.

“고칠 수 있으시겠습니까?”

정신을 차린 것이 놀라울 만큼 세이나의 상태는 아주 심각했다. 카신은 착 가라앉은 눈으로 세이나의 앞에 섰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겠군.’

어딜 다친 게 아니었다. 신녀들이 신력으로 치료를 한 것인지, 자잘한 상처도 없었다.

하지만 기력이 쇠퇴할 만큼 쇠퇴했다. 살아 있는 생물이라면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생명 에너지가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기력을 보충시키려 노력하고 있습니다만, 그 어떤 방법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세이나는 긴 눈꺼풀을 들어 올려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보고 있었다. 그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고, 말도 하지 못하면서 어떻게든 정신을 차리려 했다.

정신력만큼은 최고였다. 카신은 세이나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눈을 감는 것이 억울하겠지.’

히나에 대한 집착이 엄청나지 않았던가.

겨우 찾게 된 딸을 더 보고 싶었을 것이다. 히나가 전쟁 후에 무사히 돌아가는 모습도, 또 귀족가의 영애로 행복하게 사는 모습도. 어미 노릇을 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을 눈에 담고 싶었으리라.

그래서 세이나는 이미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목숨줄을 끈덕지게 잡고 있는 거였다. 카신은 히나에 대한 세이나의 모정을 이 이상 끊고 싶지 않았다. 이제는 그토록 싫어하던 그까지 목숨을 걸고 살린 그녀를 히나의 ‘엄마’로서 인정해야만 했다.

“부디 저희 신녀님을 살려주십시오.”

카신은 간곡하게 부탁하는 신녀를 향해 말했다.

“살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신녀의 몸이 어떻게 변할지는 책임질 수 없습니다.”

“어떻게든 살려만 주십시오. 제발 부탁드립니다.”

신녀는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도 모른 채, 카신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카신은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알면서도 굳이 언급하지 않은 채 세이나의 이마에 한 손을 얹었다.

‘만약 결과를 알면 절대 치료하게 두지 않을 테니까.’

살아난 세이나가 절망을 하게 될까? 아니면 그를 원망하게 될까?

미래는 모른다. 하지만 카신은 세이나가 살았으면 했다. 그래서 그 두 눈으로 히나가 행복해져 가는 모습을 지켜봐 주길 바랐다. 그녀는 히나의 엄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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