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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법사를 훔쳐라-128화 (완결) (128/128)

128. 완결

화해를 청해온 건 당연히 히나가 먼저였다. 사실 화해라기보단 청탁차 그의 연구실 문을 두드린 거였다.

“이제 그만 괴롭히세요. 결혼한 카신 님이 수업 시간에 더 무자비해졌다고 아주 난리라고요.”

단단히 삐쳤었는지 히나는 세인트에서 그와 마주쳐도 인사도 없이 쌩하니 지나갔다. 일부러 그녀가 지나다니는 길로 다닌 카신은 몇 번이고 절망해야 했다.

카신은 이 모든 원인을 제공한 카터와 그냥 있어도 얄미운 루터에게 혹독한 마법 수업을 해주었다. 불쌍하게도 상급반 학생들은 같은 반이란 이유로 함께 피해를 입어야 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구나. 나는 다음 주에 있을 실기 시험에 다들 합격했으면 하는 마음에 수업 강도를 조금 올린 것뿐이란다. 그래도 내가 가르친 아이들인데, 시험에 합격해야 하지 않겠느냐?”

카터가 카신에게 밉보인 것 같다고 제발 이 횡포를 멈추게 해달라 부탁했다. 웬만해서는 수업에서의 일을 말하지 않는 루터까지 나서서.

처음에는 카터에게 착각이 아니냐고 물었다. 하지만 어디선가 따끔한 시선이 느껴져서 고개를 돌리면 카신과 눈이 마주친다는 카터의 말에 점점 의심이 들었다.

“그보다 우리가 머물 곳이 다 정비되었다는구나.”

“카신 님이 가서 엄청 독촉을 했다지요? 결국 카신 님의 마법으로 완성이 되었다고 들었어요.”

황제가 이렇게 입이 싸도 되나.

카신은 끙, 하며 다시 루이스를 욕했다. 히나가 얼마 전에 황자를 위해 황궁으로 들어갔다더니, 또 이상한 얘기를 듣고 온 모양이었다.

“나는 정비가 잘 되고 있는지 확인하러 간 것뿐이란다. 부족한 부분이 보여 조금 손을 본 것뿐이지.”

하지만 그렇다고 죄를 순순히 인정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할 순 없었다.

카신은 무고하다는 얼굴로 턱을 괴며 뾰로통해져 있는 히나를 지그시 응시했다. 눈을 게슴츠레 뜨고 그를 흘기던 히나가 곧 한숨을 내쉬며 다가왔다.

천성이 착하니, 화를 길게 낼 수도 없는 거였다. 그의 아내는 무척 여리고 온순했다.

“이제는 화가 풀렸느냐? 앞으로 일 년간 함께 살 곳도 마련되었는데, 이제 그만 들어와야지.”

그는 가까이 온 히나를 안아 제 무릎에 앉혔다. 아무리 개인 연구실이라지만, 세인트의 교수 연구실에서 이러는 것이 머쓱한지 히나가 평소보다 긴장하고 있었다.

“조금…… 생각해 보고요.”

시험에 관한 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쉬웠다. 결국 재시험을 다시 보게 됐지만, 재시험 자체가 형평성에 떨어지는 일이었다. 그녀는 -10점이라는 페널티를 갖고, 즉 만점을 받아도 90점밖에 되지 않는 시험지로 다시 시험을 봐야 했다.

더 어려운 시험문제로 85점을 받아 합격했다. 본래라면 95점 이상을 맞아 합격했을 거라 생각하니 여전히 아쉬움이 남았다.

“이번 일은 아무리 생각해도 카신 님이 너무하셨어요.”

“그래도 합격했지 않아?”

히나는 고개를 올려 카신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인간이 이렇게 신비롭고 아름다울 수 있는지 모르겠다. 볼 때마다 항상 감탄이 나왔다.

“사실 오늘 온 건 다른 이유 때문이에요.”

“다른 이유?”

잠시 넋을 잃을 뻔했던 히나는 겨우 정신을 붙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고 싶은 곳이 있거든요. 데려다주실래요?”

“네가 가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든 데려다주마. 거기가 어디지?”

“카신 님의 고향, 태어나고 자란 곳에 가보고 싶어요.”

카신은 잠시 놀라 눈을 크게 떴다가 픽, 하고 웃었다.

“내가 나고 자란 곳이라고 해도 그때와는 달라.”

“하지만 가고 싶어요. 그곳에…… 부모님을 모셔두었다고 했지요?”

꽤 심각하게 물어오는 히나를 보며 카신은 하아, 한숨을 내쉬었다.

히나가 가족에 대한 애틋함이 강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는 처음에도, 얼마 전에도 그의 가족관계에 대해 물었었다.

“그래, 그곳에 모셔두었지. 하지만 나도 찾지 않은 지 오래되었어. 제국이 건립되기도 훨씬 전에 갔었지.”

“그래도 가고 싶어요. 전부터 카신 님의 부모님을 뵙고 인사드리고 싶었어요.”

히나는 완강하게 말했다. 본래 시험이 끝나면 바로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오늘 본 재시험을 다시 준비하느라 조금 늦어졌다.

“그곳에 가고 싶다라…….”

카신의 샛노란 눈동자가 허공을 보며 작게 일렁였다.

“변방에서도 시골에 있는 곳이라 별로 재미없는 곳일 텐데.”

“어서 가요.”

히나는 카신의 옷깃을 잡으며 살짝 재촉했다. 결국 카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의 몸이 곧 찬란한 빛에 휩싸이며 사라졌다.

강한 빛에 눈을 몇 번 깜빡이자 뒤바뀐 배경이 들어왔다. 히나는 주변을 빙 둘러보다 바로 앞에 있는 작은 마을을 발견했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이곳이 내가 나고 자랐던 곳이지.”

히나는 자신이 어릴 때 살았던 마을도 아주 작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이곳에 비하면 아니다.

멀리 보이는 작은 마을은 소수 부족이라고 봐야 했다.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본인들의 방식을 고수하며 사는 아주 작은 마을.

“카신 님은 왠지…… 수도처럼 엄청 커다란 곳에서 태어났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도 내가 태어났을 때는 이렇게까지 작진 않았단다. 나라 간의 전쟁에 피해를 입기도 하고, 젊은이들이 도시로 하나둘 떠나더니 점점 규모가 작아졌지. 게다가 겨울에는 먹이가 없어 산에서 내려오는 짐승들에게 당하니, 어찌 보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이 신기한 곳인 게지.”

히나는 조용히 카신을 돌아보았다.

“카신 님이 지켜주신 건가요?”

카신은 잠시 눈을 크게 떴다가 작은 마을을 보며 픽 웃었다. 히나는 참으로 이상한 곳에서 예리했다.

“그래. 적어도 마을 자체는 사라지지 않도록 보존하는 마법을 걸어두었단다. 아주 오래전, 기억도 나지 않을 때지.”

히나에게 말한 것과 달리 카신은 보존 마법을 걸었을 때를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형제들의 자손들에게서 그나마 미세하게 남아 있던 부모의 얼굴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보며, 카신은 이제 마을을 찾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그때, 숱한 위기 속에서 항상 위태롭게 버티고 있던 마을이 다치지 않도록 보존 마법을 걸었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것인데, 내가 지켰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지?”

“카신 님은 상냥하니까요.”

부모도, 형제들도 그에게 냉혹하다며 손가락질을 했다. 그 누구도 그에게 상냥하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카신은 고개를 돌려 히나를 응시했다. 그녀의 올곧은 눈동자가 그를 보며 모두 진실이라 말하고 있었다.

“카신 님만큼 상냥한 사람은 정말 보기 드문걸요.”

“상냥하다니, 나는 마을이 나라 간의 전쟁이나 위협에 휘말리지 않도록 보존 마법을 걸어둔 것이 다야. 마을을 지키려고, 적어도 이렇게 줄어드는 것을 막으려고 했다면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겠지.”

“카신 님은 최선의 노력을 한 거예요. 그럼에도 마을이 줄어든 거잖아요? 그럼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예요. 아무도 카신 님을 탓할 자격이 없는 거라고요.”

그가 위대한 힘을 가진 걸 알았던 마을 사람들은 그를 나무랐다. 원망했다. 어째서 망해가는 마을을 보며 아무것도 하지 않냐고, 그것밖에 못하냐며 욕을 했다.

하지만 그때의 그가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었다. 최선을 다한 거였다.

“내가 상냥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히나, 너밖에 없을 게다.”

조금 더 힘을 키운다면, 신비한 능력이 있다면 어디서나 환영받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힘을 키우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더 뛰어난 마법사가 되어도 어디를 가나 원망과 힐난을 받았다.

후에 깨달았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그것을 다 충족시켜 주기엔 자신은 상냥하지 않다고.

“몇 번이고 더 말해줄 수 있어요. 카신 님은 상냥해요.”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고, 상처를 받기엔 이제 가슴이 너무 무뎌졌다고 여겼다. 하지만 히나의 말에 그는 위로받고 있었다. 그는 확실히, 히나에게 위로받았다.

히나가 그의 손을 꽉 잡았다. 카신은 마주 잡은 손을 보며 힘을 주었다. 따스한 온기가 손에서부터 온몸으로 퍼져 갔다.

“이제 가요. 카신 님의 부모님을 봬야죠.”

“그래.”

카신은 히나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과거에는 사람이 죽으면 마을 뒤편에 있는 땅에 묻었다. 묘지가 있는 곳으로 가면 갈수록 무성하게 수풀이 우거진 것으로 봐서, 아마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듯했다.

얼마 가지 않아 주인 없는 무덤이 쭉 이어져 있는 게 보였다. 무덤들은 대부분이 관리가 되지 않아 풀숲에 뒤덮여 있었다.

“히나?”

히나가 그의 손을 놓으며 뛰듯이 빠르게 걸었다. 그녀가 나란히 묻어 있는 두 무덤 앞에 멈춰 섰다.

비석에는 이끼가 끼고 풀이 자라 글자가 보이지도 않았다. 비석 위에 있는 이끼까지 손수 걷어내는 히나를 보며 카신은 큰 보폭으로 다가갔다.

「로건 로티우스」

「사야 로티우스」

이끼가 사라지며 아주 오래된, 가물가물한 이름들이 눈앞에 들어왔다. 카신은 그 이름을 확인하고 잠시 숨을 멈추었다.

“카신 님의 부모님, 맞죠?”

어쩐지 가슴이 조금 무거웠다. 아니, 아주 많이 무거웠다. 말을 하는 것이 버거웠다. 그는 대답 대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카신 님의 아내인 히나라고 해요. 너무 늦게 인사드리지만, 죄송합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카신은 한 손을 심장 위에 올렸다. 쿵쿵, 뛰어대는 심장이 손끝에서부터 강하게 느껴졌다.

“카신 님을 제게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꼭 행복하게 살게요. 그러니 지켜봐 주세요.”

예쁘게 눈을 감은 히나가 양손을 두 무덤의 묘석 위에 올렸다. 그녀의 손끝에서 하얀빛이 피어났다.

따뜻하고 행복한 힘, 성력이었다. 성력이 그녀가 손을 올린 묘석을 중심으로 묘지가 이어진 땅, 전체에 잔잔하게 퍼졌다.

“두 분께서도 카신 님이 아들인 걸 자랑스러워하시고, 항상 행복하세요.”

마음이 편안해졌다. 히나의 성력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의 진심 어린 말 한마디가, 곱고 예쁜 마음이 그를 안락하게 만들고 있었다.

카신은 길게 들이마셨던 숨을 천천히 내뱉었다. 여전히 심장은 진정되지 않았지만, 그나마 나아졌다.

“이분들이 내 부모님인 것은 어찌 알았지?”

묘석에서 손을 뗀 히나가 눈을 뜨며 그를 향해 돌아보았다. 그리고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제가 말했잖아요? 카신 님은 상냥하다고.”

히나가 주변을 쭉 훑어보았다.

“관리 하나 안 된 무덤들인데, 그나마 제일 깨끗한걸요. 그것도 나란히.”

카신은 부모의 무덤을 보았다. 수풀이 무성하긴 했지만, 엉망진창인 다른 무덤들보다는 그나마 나았다. 하지만 부모의 무덤도 관리가 됐다고 하기엔 형편없는 몰골이었다.

부모가 모두 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왔을 때, 형제들 몰래 보호 마법을 걸어두었다. 마을에 건 보존 마법보다도 훨씬 더 오래전이었다.

‘그래, 그때 걸어두었었지.’

그때는 마법의 수준이 많이 떨어지던 때였다. 완벽하게 관리가 되도록 마법을 걸지도 못한 것은 물론이고, 시간이 지나 마법의 효능이 점점 떨어지는 것도 어찌하지 못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때 건 마법이 거의 소용없어졌다고 봐야 했다.

그럼에도 히나는 그의 작은 마법을 알아차렸다. 그마저도 거의 잊고 있었던 마법을.

‘어쩌면 나는…….’

부모님의 사랑을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어머니가 병들었을 때도 필사적으로 약을 만든 것이며, 부모의 부고 소식을 들었을 때도 형제들에게 욕먹을 것을 알면서 계속 찾아간 거였다.

부모의 얼굴이 남아 있는 형제들을, 자식들을, 후손들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누가 보면 전혀 닮지 않았다고 하겠지만, 부모와 닮은 작은 부분까지 하나하나 찾아내기 위해 마을에 계속해서 왔었다.

“카신 님, 슬퍼하지 마세요.”

“뭐?”

슬퍼한다고? 외로워한다고? 내가?

카신은 히나를 바라보았다. 히나가 손을 뻗으며 그를 크게 안았다.

“제가 카신 님의 가족이에요. 언제까지나, 영원히 함께할 가족.”

오래전, 인간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것이 지긋지긋하여 종착점도 없이 여행을 다녔다. 한곳에 열흘 이상 머물지 않으며 계속해서 이동했다.

그러면서 한 노부부를 만났다. 자식을 모두 떠나보냈는지 하루 번 돈으로 겨우 하루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부부는 불행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 누구보다도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살고 있었다.

카신은 그 부부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열흘 이상 그 마을에 머물며 계속 관찰했다. 이유도 모른 채 계속.

지금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때의 그는 그 노부부가 부러워서 시선을 떼지 못한 거였다.

하지만 이유를 안 지금은 그들이 부럽지 않았다.

“카신 님을 행복하게 해줄게요. 있는 힘을 다해서 카신 님과 행복할 거예요.”

“그거참 든든하구나.”

카신은 잠시 묘석을 보았다. 뜻하지 않게 마주한 부모 앞에서 그는 히나를 꼭 힘주어 안았다.

“사랑해요, 카신 님.”

“나도 너를 영원히 사랑하마.”

이제는 텅 빈 껍데기가 아니었다. 더 이상 삶이 고독하지도, 지겹지도 않다.

‘난 오랫동안 지금 이 순간을 바란 거야.’

카신은 히나로 인해 대마법사가 되어서도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었다. 그는 세상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은 환한 미소를 지은 채 히나에게 입술을 맞추었다.

‘당신들에게 사랑을 받지 못한 몫까지, 모두 히나에게서 받아내겠습니다.’

세상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살 자신이 있었다. 카신은 부모를 향해 속으로 맹세했다.

‘평생, 영원히 행복하겠습니다. 날 낳아주어 감사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태어나서 정말 다행인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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