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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 멜루시네-69화 (69/117)

#69화.

트리톤으로 돌아온 지도 어느덧 보름 남짓. 다행히도 멜루시네는 이제 몸을 거의 회복한 듯 보였다.

황궁에 다녀온 뒤 달라진 게 있다면 멜루시네의 침실이 키에론이 기거하는 본성으로, 그의 방과 가까운 곳으로 옮겨졌다는 것.

또 그녀가 지내던 별궁의 후원에는 대공의 지시로 꽤나 큰 연못이 만들어졌는데, 그 안은 매일매일 새로운 바닷물로 채워졌으며 해가 진 뒤로는 후원의 출입이 철저하게 금지되었다.

가느다란 초승달이 은은하게 비추는 밤, 아무도 들어올 수 없기에 더욱 고요한 후원에 찰방거리는 물소리만이 가만가만 퍼졌다.

“키에론도 들어 올래?”

며칠째, 매일 밤마다 멜루시네는 키에론이 만들어 준 자신만의 작은 바다를 헤엄쳐 다니느라 여념이 없었다.

물 위로 빼꼼히 말아 올라온 그녀의 꼬리가 신나서 살랑거렸다. 끝이 양 갈래로 갈라진 초록빛 꼬리지느러미는 희미한 초승달에 비쳐도 무수한 색으로 반짝거렸다. 꼭 보석이라도 박힌 것처럼.

“됐어.”

바로 옆 잔디 위에 비스듬히 누워있던 키에론이 손에 든 잔을 기울였다.

황궁에서 그녀가 몹시 아팠던 뒤로 키에론은 아예 바다를 대공성으로 옮겨와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 물고기가 멋대로 쓰러지지 않게 하기 위한 방책이었으나 막상 해놓고 나니 안주로 삼기에도 퍽 맘에 드는 광경이었다.

수면 위로 살짝 드러난 여자의 새하얀 가슴에 그의 시선이 뭉근히 얹혔다. 계속 목을 축였는데도 그의 혀끝이 자꾸 메마르는 기분이다.

“그럼 나도 이제, 그만할래.”

멜루시네가 물에서 천천히 빠져나왔다.

젖은 분홍색 머리카락이 그녀의 동그란 어깨와 풍만한 가슴을 지나 허리까지 내려왔다. 그 머리칼 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안 그래도 축축한 그녀의 허벅지 위로 더욱 많은 물줄기를 만들어 내며 주르륵 흘러내렸다.

달빛에만 의지해야 하는 어스름한 후원 안에서도 멜루시네의 실루엣은 유독 부드러운 곡선으로 흐르는 것 같았다.

그를 직시하며 바른 걸음으로 점점 다가오는 여자를 키에론은 가만히 기다렸다.

“있잖아... 키에론. 나, 하고 싶어.”

키에론의 옆에 몸을 쭈그려 앉은 멜루시네가 꼭 물가의 새처럼 높고 가는 목소리로 재잘거렸다.

“실컷 헤엄치지 않았나. 뭐, 밤새 계속해도 상관없고.”

새삼스러운 걸 묻는다는 키에론의 반응에 멜루시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헤엄치는 거, 말고....”

잔을 입가로 가져가던 키에론이 동작을 멈췄다.

“그럼.”

제게로 와 닿는 금색 눈동자에 멜루시네의 심장이 다시 콩닥콩닥, 크게도 뛰기 시작했다. 눈앞의 남자에게까지 이 소리가 들리는 건 아닐까. 멜루시네는 이제 별게 다 신경이 쓰였다.

그와 짝짓기를 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황궁에서도, 돌아오는 길에도, 심지어 대공성으로 돌아와서도 아무 일이 없었다.

물론 아팠을 때야 멜루시네도 너무 힘들어서 그런 생각을 할 여유조차 없었지만 이곳으로 돌아온 후로는 날씨도 다시 온화하고 몸도 꽤 회복됐는데도 남자는 그녀를 정말 껴안고만 잠들었다. 멜루시네는 그게 못내 서운했다.

그녀의 세렌히데에게서 아기도 갖고 싶었지만, 멜루시네가 그리운 건 조금 더 강렬하고 선명한 것. 키에론이 그녀를 안을 때에야 가득 채워지고는 하는 소름이 돋도록 저릿한 감정이었다.

“이젠... 나랑 안 할 거야?”

애초에 그녀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지 않았던 키에론의 한쪽 눈썹이 묘하게 휘었다. 어떻게 나오나 지켜봐야겠다는 짓궂은 생각은 덤이었고.

“무엇을.”

그가 일부러 무심하게, 더 느릿하게 대답하면서 여자의 눈을 마주 봤다.

“음....”

멜루시네의 시선이 남자의 다리 사이로 은근히 뭉쳤다. 어느 때보다 반짝거리는 파란 눈동자에는 호기심까지 섞인 선연한 욕망이 비쳐 보였다.

발칙하기 그지없는 여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키에론이 손을 뻗어 젖은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매일 밤 그녀를 그저 끌어안고 잠들면서도 할 수 있는 한 깊숙이, 더 끝까지 파고들고 싶었던 제 속을 절대 알 수 없겠지.

“넣어줘, 나, 그거.... 앗!”

순식간에 몸이 뒤집히고 시야가 뒤바뀌었다.

눕혀진 그녀의 등에 닿는 잔디의 감촉이 부드러웠다.

남자의 커다란 그림자 아래 깔린 멜루시네가 좀 전까지 자기가 했던 말들은 잊고 눈만 끔뻑였다.

놀란 얼굴의 양옆을 짚은 키에론이 그녀의 파란 눈동자 바로 앞까지 제 눈을 바짝 내렸다.

“멜, 다시 말해봐.”

여자의 코끝이 남자에게 깨물렸다. 따끔해서 눈을 찡긋하니 이번엔 눈 아래쪽을 혀로 핥는다.

“하고 싶어, 키에론. 왜, 안 하는지...몰라.”

그라고 아무런 생각이 없었을까. 품에서 멜루시네가 조금만 꿈틀거려도 바로 몸이 반응했다. 밤새 뻐근하게 발기한 물건을 개새끼처럼 잠든 그녀의 등에 붙이기도 했다.

이제는 저 연못에서 헤엄치는 모습만 봐도, 인어인 채로 물살을 가르는 장면에조차 발정하는 짐승보다 못한 게 자신이다.

오히려 그래서 더 그는 멜루시네를 안지 않았다.

오롯이 처음으로 갖게 된 제 것이라서일까.

이 여자 옆에서는 감당이 되지 않을 정도로 자꾸만 치솟는 정염에 스스로가 불쾌해진다.

키에론은 그동안 죽음과 삶에 대한 태도 만큼이나 감정이란 것에 무심했다. 아니 감정과 비슷한 무엇이든, 그게 설사 본능의 한 자락이라 할지라도 제 안에 파고들려는 모든 것을 거부하고 스스로를 방어해왔다.

그런데 이 여자, 멜루시네는 자꾸만 그에게로 곧게 헤엄을 쳐온다.

파고가 높은 물살을 넘고 밀물처럼 다가와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두 다리로 땅 위를 단단히 딛고 또 뛰어서.

제대로 발음할 줄도 모르는 그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부르면서.

“다시.”

“키에론... 하고, 싶어.”

이게 왜 듣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멍청한 여자의 재촉하는 말이, 이 밤 내내 그의 귓가에 계속 맴돌았으면 좋겠다는 어이없는 생각이 대체 어디에서 온 것인지도.

“또.”

“하자. 해... 줄 거야? 음.”

묻는 대로 기꺼이 몇 번이고 답해오는 입술을 그가 가득 베어 물었다.

바닷물을 이렇게 억지로 끌어다 왔는데도 여자의 바다 내음은 예전처럼 돌아오질 않는다.

그래도 이제는 상관없다.

흔들리는 배 위, 거친 풍랑이 아니어도 적막한 가운데 이 여자의 심장 뛰는 소리에는 반응할 테니. 그런 저 자신이 불쾌해도, 그 불편함까지도 이제는 별 상관없지 않겠는가.

방금 물에서 나온 여체를 끌어안으며 키스를 이어갈수록 그의 옷도, 몸도 똑같이 젖어 들었다.

멜루시네의 입 안을 유영하던 남자의 혀가 가는 목을 타고 내려와 예전보다 조금 더 부풀어 오른 듯한 젖가슴 위쪽을 할짝댔다.

“흐으, 읏....”

원래 관계를 시작하면 닿는 곳마다 무턱대고 깨물고 짓씹기 바쁜 그다. 그런데 오늘따라 그녀의 젖가슴에 쪽, 쪽 소리 내어 입을 맞추고 딱딱하게 선 유두 위를 슬쩍 굴리며 빨아들이는 혀와 입술의 움직임이 지나치게 보드랍고 조심스러웠다.

꼬리지느러미로 파도조차 치지 않는 물결을 가만히 가를 때처럼 발끝부터 간지러운 기분이 다리를 타고 올라온다.

키에론이 그녀의 손을 붙잡아 제 셔츠 깃에 올려놓았다.

“벗겨 봐.”

“아아, 응... 으?”

“보고 싶었다며.”

그는 지난밤, 제 맨몸과 그 위에 새겨진 흉터를 훑던 여자의 파란 눈동자를 떠올렸다.

목 아래 자상을 쓰다듬고 등에 새겨진 징그러운 흔적을 어루만지던 손길과 목소리도. 정작 그걸 보고 싶은 건 자기 자신일 수도.

멜루시네가 파르르 감기는 눈꺼풀을 애써 들어 그를 올려다봤다.

하지만 옷을 제대로 끄르는 법 같은 걸 그녀가 알 리 없었다. 게다가 제 옷깃을 붙잡게 한 뒤 정작 그의 혀는 여자의 깊숙한 가슴골을 지나 배꼽까지 단번에 미끄러져 내리는 바람에 멜루시네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몸만 달달 떨 뿐이었다.

그의 입술이 안 그래도 젖었던 몸 위, 아직 납작한 배 위를 더욱 난잡하게 적셨다.

따스한 미풍이 그 위를 스쳐 지날 때마다 가슴께로 오싹한 쾌감이 모였다가 아래까지 고여 들었다.

이상해. 이상했다.

“멜.”

키에론이 그녀의 몸을 타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혹시나 그가 쥐여 준 옷을 놓칠까 멜루시네는 손아귀에 힘을 꽉 줬다.

“헤엄은 꼬리로 쳤으면서, 여긴 왜 이렇게 젖었지.”

남자가 손끝으로 허벅지 사이, 꽉 다물린 음부 위를 스윽 쓸었다.

이미 비어져 나온 애액에 손가락이 맨질거린다.

벌써 아래는 터질 것처럼 발기했지만 키에론은 서두를 생각이 없었다.

초승달이 뜬 높이를 보면 아직 초저녁이다. 수평선 너머로 동이 트려면 한참이 더 걸릴 테다.

오히려 지금 그에게 중요한 건 부푼 제 욕망보다 멜루시네의 반응이었다.

어떻게 하면 이 여자를 더 흠뻑 적실 수 있을까. 어떻게 이 작고 도톰한 입술 새로 끊임없이 소리를 지르게 만들까.

어느 때보다 부드럽게 여자의 골반을 감싸 쥔 키에론이 그렇게 그녀의 다리 사이로 제 얼굴을 파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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