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휘두른 칼 끝에
빛 한자락 스미지 않던 유리 수조의 모서리가
쩍, 소리와 함께 금이 갔다.
칠흑의 바다처럼 검은 머리카락과 짙은 눈썹.
그 아래 보름달처럼 형형한 금빛 눈동자가 인어를 느른하게 응시했다.
“꺼내 와. 산 채로.”
어둠에서 그녀를 구해주고.
“멜루시네. 그게, 이제부터 네 이름이다.”
또 이름 지어준 남자.
매일, 밤새 보고 있어도 지겹지 않았다.
“좋아….”
마치 잔물결이 입술 주변을 간질이다 심장까지 흘러내리는 기분.
여자는 직감했다.
그토록 기다려오던 제 세렌히데, 운명의 상대를 드디어 만났다는 걸.
*
“왜. 도망이라도 치려고?”
그의 첫 전리품이 된 물고기, 자신의 소유.
이젠 제 것이 되었는데도 저 여자는,
인어는 아직도 바다에 속한 존재 같다.
“똑똑히 봐둬. 멜루시네.”
그에게 붙잡힌 턱을 바르르 떨면서,
여자는 눈 앞에 펼쳐진 바다를 바라봤다.
“다신 볼 수 없을 테니.”
키에론이 제게로 파고들 때마다
그녀는 온몸이 반으로 쪼개질 것만 같았다.
마치 바다 한가운데서 느닷없이 풍랑을 만난 것처럼 어찌할 바를 모르고 휩쓸려간다.
“하으… 흐. 키에론….”
그녀가 그리웠던 건 아마도 이 아득한 감각.
혹은 남자의 온기와 절실해 보이는 부딪음.
아래로, 더 아래로.
하나로 얽힌 두 사람이 심해까지 깊숙이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