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와 왕의 위엄
무덤의 건축 예정 장소에서 위드는 풀죽을 끓여서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누어 주고 있었다.
"힘드실 텐데 드시고 천천히 하세요."
"고맙습니다."
석재를 나르느라 힘들었던 이들은 그릇째로 풀죽을 들이켰다.
-체력이 35증가합니다.
공복감이 해소되었습니다.
갈증이 완전히 해결됩니다.
중급 요리 스킬 4에 중급 손재주 9레벨!
위드가 만들어 주는 풀죽은 시원하면서도 맛있었다.
요즘 들어서 요리 스킬에는 소홀해졌지만 사기에 가까운 스킬들은 음식의 풍미를 더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위드를 존경하고 좋아했다.
퀘스트를 공유해 준 것만 해도 고마운데 음식까지 공짜로 만들어 주다니,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풀죽의 재로는 말 그대로 풀 그 자체였다.
풀을 죽처럼 끓인 것에 불과했다.
그런 풀죽을 끓여 주고서 사람들의 진심 어린 감사를 받는 위드.
퀘스트에 참여한 유저들 가운데에는 정말 레벨이 낮고 돈이 없는 이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밥이라도 주지 않으면 굶어서 퀘스트에서 참여를 할 수가 없다.
그런 이들을 부려 먹기 위하여 풀죽을 쑤어서 나눠 주는 것이었다.
석재를 운반하는 노가다를 맡기려면 전체적인 분위기가 좋아야 한다. 아무리 사람들이 많더라도 한번 분위기가 망가지면 끝장이었다.
등 따습고 배부르면 나태히지기 마련.
레벨이 낮은 이들일수록 퀘스트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으니 제일 열심히 일한다.
이런 이들이 바람잡이가 되어서 열심히 해 줄수록, 무덤을 만드는 일은 훨씬 쉬워질 수밖에 없다.
"고맙습니다. 위드님!"
풀죽을 마신 어린 소녀가 꾸벅 인사를 한다. 현실 세계라면 고등학교를 다닐 만한 10대 중후반의 귀여운 소녀였다.
"뭘요, 맛있게 드셔 주시니 저도 좋지요."
위드도 미소로 화답을 해 줬다.
오늘 하루만도 벌써 수만 번 지은 미소였다.
아무리 자주 웃는 사람이라고 해도 수만 번씩 웃을 수는 없다.
하물며 위드의 미소는 가식의 극치를 달리고 있지 않던가!
눈은 웃고 있지만 입술은 미묘하게 뒤틀렸다.
이른바 썩은 미소!
그럼에도 음성은 다정다감했다.
"레몬 님, 석재를 벌써 8개나 옮기셨군요."
"기억해 주셨네요?"
"그럼요, 제 풀죽을 맛있게 마셔 주시는 분인데. . . 아직 해가 지지 않았으니 한두 번만 더 옮기면 되겠군요. 그러면 오늘은 상당히 많이 일한 축에 속하시겠는데요."
"아, 이제 그만 하려고 했는데. . . 알겠어요. 금방 다녀올게요!"
레몬이라는 어린 소녀는 후다닥 돌산이 있는 곳으로 달려 갔다.
어느새 무덤을 만들기 위해 참여한 이들은 석재를 운반할 때마다 위드가 만든 풀죽을 먹는 것이 정해진 일처럼 되어 버렸다.
풀죽이라고 해도 음식 재료가 아예 안 들어갈 수는 없는 상황!
한 가지만 먹으면 제아무리 위드가 만든 음식이라고 해도 질릴 수가 있다.
그래서 고기라도 가끔씩 섞어 주었으니 매일 100골드가 넘는 막대한 지출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것도 다 투자라고 생각했다.
요리 스킬의 향상!
아주 뛰어난 음식을 만드는 건 아니지만, 풀죽만 해도 어마어마한 양을 만들다 보니 숙련도가 꾸준히 올라갔다.
평상시에 매일 100골드씩 호주머니에서 나간다면 위드는 아마 잠을 못 자고 미쳐 날뛸지도 몰랐다.
단돈 1쿠퍼도 아까운 마당에 100골드씩 풀죽을 쑤어서 남들에게 무료로 나누어 주다니, 위드를 아는 이들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무덤을 만들기 위해서 인부들을 쓰고 있다. 그런 만큼 최소한의 지출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던가!
'어쨌든 내 일을 도와주고 있으니까 사람으로서 도의를 생각해서라도 맛있는 걸 먹이고 싶다.'
헌신적인 자선 사업가의 마을.
얼굴 표정과 사람을 대하는 말투에서는 완전 성인이 따로 없었다.
그러나 위드의 본심 깊은 곳에서는 능구렁이가 여러 마리 똬리를 틀고 있었다.
'최대한 부려 먹어서 빨리 작업을 진행시키자. 이번 퀘스트를 하기 위해 받은 작업 비용은 10만 골드니 지금가지 쓴 돈 700골드를 제하면 건축비는 9만9300골드가 남아 있군. 게다가 참가비로만 1만 골드 이상 벌었으니 결국 대흑자가 되겠어.'
과도한 노동!
착취!
썩은 미소와 풀죽으로 철저하게 부려 먹는 악덕 기업주 위드!
로열 로드의 홈페이지는 로자임 왕국에 이슈로 한껏 달아 오른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누군가 불을 지르기 위해 다시금 글을 올렸다.
제목 : 왕의 무덤을 만드는 이들
안녕하세요. 저번에 난이도 B급의 의뢰라는 글을 작성했던 사람입니다. 이번에는 동영상을 첨부하였으니 직접 보세요.
본인이 본 것을 동영상으로 녹화해서 그대로 인터넷에 올린 것이었다.
생생한 화면!
그리고 음향까지 그대로 수록되어 있는 것에 사람들은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
막 플레이를 누르는 순간, 그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광경이 보였다.
어린아이와 소녀들이 어깨 가득 무거운 석재를 지고 움직이고 있었다.
"언니, 무거워."
"조금만 참자. 퀘스트를 위해서는 꼭 해야 할 일이잖아."
의젓한 대화를 나누는 자매들!
한편에서는 노인들도 식재를 짊어지고 운반하고 있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수천 명이 사람들이 비틀 거리면서 석재를 운반한다.
때때로 석재에 깔려서 땅에 넘어지기도 했다. 석재들이 우르르 무너지면서 그를 덮친다.
동영상을 보던 사람들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도대체 이건 뭔가!
'무슨 강제 수용소의 형장인가?'
석재들을 나르는 이들 너머로 보이는 것은 세라보그 성이었다.
-이게 조각술의 현실.
-역시 조각사를 선택하지 않은 건 현명한 일이었습니다.
-변방의 왕국에서 시작한 이들을 돕기 위한 불우 이웃 성금이라도 모금을 해야겠군요.
난이도 B금의 퀘스트를 공유받은 데 대한 부러움과 시샘은 끝났다.
시간이 흐르면서 무덤을 만들 장소에 석재들이 거대하게 쌓였다.
인간의 힘으로 돌산을 가공하여 통째로 옮겨 온 것이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주변에 있는 바위란 바위는 전부 긁어 모은다!
왕의 무덤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종류의 석재들이 필요했다. 내부와 외부르 전부 건축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색과 형태가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인간들 수천 명이 달라붙으니 불가능한 일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가 정말 해냈구나."
"흐흑. 너무 감동했어."
기뻐서 우는 이들 또한 셀 수도 없었다.
그렇지만 아직 무덤을 세우는 일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작업이다.
깡!깡!깡!
위드는 어느 정도 석재들이 모였을 때부터 작업을 개시했다.
마법으로 갈라지고 도끼질로 부서진 바위들의 면은 고르지 않다. 정과 끌을 이용해서 석재 면을 평평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러면서 쌓을 위치에 따라서 별도의 조각술도 펼쳐서 형태와 모양을 만들어야 했다.
그나마 위드가 세우려는 무덤의 형태가 단순하였기에 망정이지, 정상적으로 된 거대한 구조물이라면 엄두도 나지 않을 일이었다.
"과연 무슨 무덤을 만들까?"
석재를 나르고, 작업에 참여한 이들은 무척이나 궁금해하고 있었다.
그러는 가운데 위드가 가공한 석재들을 사람들에 의해 정해진 위치에 차곡차곡 쌓였다.
이 일은 의외로 순탄하게 진행이 되었는데, 로자임 왕국 길드들이 나선 덕분이었다.
중앙 대륙 길드들, 발전된 국가 길드들은 성을 차지하고 있지 않더라도 할 일이 아준 많았다.
공식적으로 길드들은 집단적으로 이익을 창출할 수 있게 되어있다. 돈을 모아서 상점의 소유권을 사거나, 아니면 길드 소유의 시장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돈을 벌면서 길드의 재산을 늘려 나가는 것이었다.
성을 가진 길드의 경우에는 더욱 다양한 사업들을 창출하는 게 가능했다.
일주일간 거두어들인 세금으로 상업과 기술력에 투자할 수 있다. 상업이 일정 수치 이상 늘어나면 새로운 상점에서 판매하는 물건의 수량이 다양해지고, 가격도 조금 저렴해진다. 기술력이 높아지면 이전에는 볼 수 없던 무기나 방어구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므로 각 길드들은 경쟁적으로 상업과 기술 발전에 투자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이 소속된 곳이 발전하기를 바랐고,
발전도에 따라서 유저들의 숫자가 늘어나기도 했던 것이다.
어떤 길드들은 현명한 치세로 많은 이들의 추앙을 받고, 작은 마을에서 시작해서 성벽을 쌓고 큰 성으로 발전시키는 경우도 간혹 있었다.
상금을 걸고 광산을 개척하는 일도 길드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다.
만약 금광이라도 찾아낼 수 있다면 대번에 상업 수치가 향상되는 것은 물론이고, 매주 정기적인 수입원이 생기는 것이었다.
대체로 초반에는 광산을 수호하는 강력한 몬스터들이 존재하는데, 이들을 물리쳐야만 광산을 차지할 수 있었다.
물론 광산을 찾아낸다고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라서, 그 곳에도 꾸준한 투자를 해야만 했다.
인부들을 투입하고, 광산에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몬스터들을 퇴치한다.
그 이후에 나타나는 몬스터들의 처리는 길드 퀘스트로 다른이들에게 부여할 수도 있어 꽤나 인기가 높은 편이었다.
중앙 대륙의 각 길드들의 번영과 경쟁으로 충돌할 때에 로자임 왕국의 길드들은 아직 갓난아기와도 같았다.
막 걸음마를 뗀 상태!
왕국에서 시작한 유저들이 그리 많지 않다 보니 길드의 규모도 작았다.
광산을 발견해도 그곳을 차지하는 퀘스트를 받기에는 아직 국가 공적치가 높지 않았다.
돈도 별로 없고 가난한 로자임 왕국의 길드들에게 왕의 무덤을 만들라는 위드의 의뢰는 가뭄의 단비와도 같았다.
"적그 협조하겠습니다."
"맡겨만 주세요."
위드는 각 길드에 일을 부여하기 전에 검치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저기, 이카 길드에서도 왔는데, 노동을 시켜도 괜찮겠습니까?
-. . . . . .
이카 길드는 검치들을 죽인 적이 있었다.
검치에게서는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그러다가 돌아온 대답은 뜻밖의 것이었다.
-일을 시켜줘라.
-돌려보내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속 좁은 인간처럼 굴 수야 없지. 사내가 넓은 가슴으로 포용하며 살아야지. 그렇게 옹졸하게 굴면 되겠느냐?
-그렇다면. . . . . .
-일을 원한다면 시켜 줘라. 그럼 난 바빠서 이만.
다른 이들이었다면 검치의 아량에 탄복을 금치 못했으리라.
자신들을 죽인 적들.
그들에게 관용과 포용의 정신을 보여 준다.
이것은 정말로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위드는 검치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얼마나 복수심이 사무쳤으면. . . . . .'
다른 이의 손을 빌리지 않는다.
복수는 오직 자신이 직접 해야만 성이 풀리는 것이었다.
위드는 각 길드에 골고루 일을 부여했다.
로자임 왕국 길드들의 조직적인 힘을 빌려서 무덤 건축 사업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넓은 사각형의 형상으로 쌓여 올라가는 무덤.
그런데 한 층 한 층 석재들이 쌓일 때마다 조금씩 면적이 줄어들었다.
상부로 올라갈수록 점점 작아지는 것이었다.
"아!이것은 . . . . . ."
그때쯤에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나 석재를 나르는 사람들이나 무엇이 만들어지는지를 알아차리게 되었다.
"피라미드다!"
"왕의 피라미드를 만드는 거야."
한때는 과학 기술로 설명할 수조차 없었던 건축물.
그 피라미드가 이곳에 세워지고 있었다.
다만 고대의 신비와 전설로 불리던 그 피라미드는 아니었다.
내부적인 구조는 훨씬 단순하다.
위드가 참고할 만한 건축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조각술이야 외관만 보고 펼치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 대충 따라 할 수 있지만 피라미드의 내부에 대해선 거의 지식이 없었따.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거야.'
위드는 머리를 쥐어짜 내도 피라미드의 내부를 따라 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복잡한 미로 형식의 통로나 초자연적인 신비들은 없었다.
물론 피라미드 내부의 지도를 구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인터넷상에서 고고학 자료 등을 통해서 얼마든지 검색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복잡한 미로처럼 만들면 한정 없이 일이 커지고 만다.
그래서 위드는 필살기를 발휘했다.
그가 본 가장 살기 좋았던 장소.
어릴 때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잠시 살았던 아파트를 떠올린 것이다.
30평형 아파트!
외관은 피라미드인데 내부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정확히 30평짜리 아파트였다. 그것도 아주 단조롭게 방 3개와 욕실 2개짜리 대한민국 기본형 아파트.
물론 베란다 확장 등은 전혀 하지 않았다.
실제로는 기겁할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아무튼 피라미드의 건축은 그렇게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내부가 워낙 단순하기에, 안쪽의 공간과 통로를 놔두고 주변을 석재로 쌓는 작업이었다.
그러면서 방들과 욕실들은 미술품으로 장식을 해 두었다.
물론 만들 때 페일 들이 물어보긴 했다.
"그런데 피라미드 안에 욕실이 왜 필요한 거죠?"
". . . . . . ."
"물도 안 나오는데. . . . . . ."
". . . . . . . ."
"시체가 목욕도 하나요?"
"크흠! 위대한 예술가는 발상부터 다른 법입니다. 다빈치의 생각을 일반인들이 어떻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이유를 따지기 전에 먼저 그 흐름과 본질을 보아야만 하는 법입니다."
"그러면 아예 욕조도 만들죠."
". . . . . . . ."
피라미드의 내부에는 관이 있는방, 미술품들을 놓을 수 있는 거실과 방 2개를 만들어 놓았다.
미술품들은 물론 마판이 급히 달려와서 대신 저렴하게 구입해 줬다.
피라미드를 건축하는 데에 지금까지 든 돈은 풀죽 값으로 든 단돈 1.600골드, 유노동 무임금 원칙을 철저하게 적용한 악덕 기업주 위드가 아니라면 아무도 뽑을 수 없는 견적서였다.
그런데 미술품들을 구입해서 꾸미는 비용만 4만9,700골드가 들었다.
이것마저 아끼려고 들면 얼마든지 절약할 수 있겠지만, 성공적으로 왕의 무덤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는 아끼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판단에서였다.
'잘못하면 실패할 수도 있으니까.'
어떤 몬스터를 잡으라는 의뢰라면 다시 시도하면 된다.
그러나 이번 퀘스트가 실패했을 경우에는 엄청난 타격이 아닐 수 없었으니 위드도 진지하게 최선을 다했다.
최고급 양탄자를 구입해서 최선을 다했다.
최고급 양탄자를 우입해서 무덤 안에 깔고 벽에는 그림들을 걸었다. 물론 위드가 직접 조각한 조각품들도 몇 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렇지만 피라미드만 덩그렇게 있어서는 모양이 안 난다!
석재들이 쌓여 가면서 점점 형태를 갖추어 가는 피라미드지만 꼭 무언가가 빠진 듯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크기는 거대해도 웅장한 면이 부족하였다.
세라보그 성 근처에 뜬금없이 피라미드가 만들어지니까 훌륭한 왕의 무덤이라는 느낌이 안 나는 것이었다.
왕의 무덤 하면 위세가 남달라야 하는데, 단순한 무덤만으로는 부족하다.
이곳이 왕의 무덤임을 알릴 수 있는 상징적인 물건. 그러면서도 무덤을 한결 돋보이게 하기 위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아하! 그게 없었군."
위드는 피라미드 주변의 거대한 자연 암석에 달라붙었다.
규모가 큰 암석이 통째로 놓여 있었다.
아찔한 높이에서 줄에 몸을 의지하여 조각술을 펼쳐 본 경험은 있지만, 이번에는 바위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었다.
얼음보다 훨신 단단하기에 아주 까다로운 작업이 필요했다.
바위를 가르고, 때리고, 부수고!
대롱대롱 허공에 매달려서 정과 마나를 주입한 조각칼을 쓰기를 며칠째.
바위를 초대형 조각상을 만드는 것이지만 그 자체는 복잡하지 않고 굉장히 단순했다.
유려한 선이나 세밀한 조각술 따위는 없다!
평평한 면과 크기로 압도하는 조각상!
머리는 현왕 시오데른을 형상화하고 몸통은 사자의 그것으로 이루어진, 단순하지만 큰 조각상이었다.
단 하나의 바위로 이루어진 괴물 조각상.
현왕 시오데른은 몬스터의 끊임없는 침략을 받는 변방 국가인 로자임 왕국을 일으켰다. 숙적 브렌트 왕국와의 전쟁에서 이기고 또 이기면서 군대를 양성하고, 번영의 토대는 닦았다.
국왕이 제 입으로 자랑했던 내용들.
위드는 그 내용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조각술을 펼칠 때에는 그저 그 형상만을 조각해서는 안 된다. 외관도 중요하지만, 조각사가 그 조각물에 갖는 느낌이나 형태가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감정은 때로는 위대한 힘을 발휘한다.
훌륭한 음악가가 만든 노래에는 그 음악은 사람을 울리게도 웃기게도 할 수 있다.
작가의 글이나 미술가의 그림이나, 어떤 것도 감정이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현왕 시오데른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말했다. 위드는 그 내용들을 잊지 않고 있었다.
혹시나 퀘스트를 주는 줄 알고 유심히 들은 내용이 지금 아주 유용하게 쓰이고 있었다.
대상을 이해하는 것!
이 재능이야말로 조각사의 일차적인 필수 요건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사자의 몸에서는 날렵하면서도 중후한 느낌이 난다. 만수의 제왕. 조금은 게으르지만 좌중을 압도할 수 있는 기운. 가만히 서 있을 때는 모르지만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 네발에는 어느 것도 감당할 수 엉ㅄ는 숨은 힘이 깃들어 있다. 그 사자가 아이들을 지키듯이, 그렇게 로자임 왕국의 수호신이 되려고 할 것이다.'
현왕 시오데른과 사자.
사자처럼 살아온 왕을 위한 조각상은 마지막 자신의 휴식처가 될 피라미드를 내려다보는 모습으로 조각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위압적인 눈의 조각을 마치는 순간.
띠링!
명작! 사자 괴물 상을 완성하셨습니다.
뛰어난 손재주를 가진 조각사!
그의 명성은 대륙 널리 퍼져 있을 정도이다.
그의 땀과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 결정체.
사자 괴물 상!
견고한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사자는 강하고 용맹한 기질을 갖추고 있다.
현왕 시오데른을 닮은 괴물 상은 로자임 왕국의 번영을 위해 포효할 것이다.
예술적 가치 : 4,700.
특수 옵션 : 사자 상을 본 이들은 생명력이나 마나 회복 속도가 하루 동안 30%증가한다.
이동 속도 15% 상승.
마법 저항력 20% 상승.
생명력 최대치 15% 상승.
체력 20% 증가.
전 스탯 16 상승.
사자의 포효 발동.
사자 상이 보이는 영역에서 지상 몬스터들의 능력치 저하.
짐승들의 사기 저하.
필드에 있는 사자들의 능력이 오름.
사자 상 인근에는 몬스터들이 접근할 수 없음.
다른 조각품과 중복 적용되지 않음.
지금까지 완성된 명작의 숫자 : 3
-중급 조각술 스킬의 레벨이 9로 상승했습니다. 조각술이 한층 더 섬세해지고 세밀해집니다.
-중급 손재주 스킬의 레벨이 10이 되어 고급 손재주 스킬로 변화됩니다! 도구나 손을 이용한 공격력이 증가하며,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혁신적인 재주를 부릴 수 있습니다.
손과 관련된 특화 기술을 획득하실 수 있습니다.
손바닥이나 주먹을 이용한 공격 스킬들을 작업의 여부와 관련 없이 익히실 수 있습니다.
-스킬 : 마인든 핸드 획득!
-명성이 630 올랐습니다.
-예술 스탯이 16 상승하셨습니다.
-인내가 12 상승하셨습니다.
-지구력이 6 상승하셨습니다.
-동부의 불가사의에 사자 괴물 상이 포함됩니다.
-사자 괴물 상의 소유권은 위드 님에게 있습니다. 향후 사자 괴물 상에 생명을 부여할 수 있다면, 그는 위드님에게 충성을 바치게 될 것입니다.
-명작 조각품을 만든 대가로 전 스탯이 1씩 추가로 상승합니다.
- 호칭! 뛰어난 손재주를 가진 장인을 획득하셨습니다.
손재주를 궁극의 길까지 끌어올리는 자!
마술과도 같은 손재주를 가진 이에게 붙는 명예로운 호칭.
최고의 1인에게만 수여된다.
위드는 사자 상의 얼굴 부위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큰 웃음을 터트렸다.
"우흐흐흐!"
어느새 버릇처럼 바뀌어 버린 썩은 미소.
본래 예술가들이나 명인들을 볼 때에 일반인들이 제일 감탄하게 되는 것이 뭔가!
그것은 그 사람의 손재주였다.
일반인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복잡하면서도 기기묘묘한 손놀림!
'드디어 고급이 되었구나!'
그리고 마인드 핸드.
고급 손재주가 되면서 얻은 스킬인 만큼 남달리 좋을 것을 믿었다.
위드는 획득한 기술을 바로 확인해 보았다.
"스킬 확인. 마인드 핸드!"
마인드 핸드 : 전설에 나오는 장인의 손.
마음의 힘으로 세 번째 손을 사용할 수 있다.
세 번째 손으로 물건을 들거나 적을 공격하는 것이 가능하다. 중복 스킬 시전과 마음의 손으로 스킬을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함.
초당 마나 소모 2.
약간의 마나 소모를 감수한다면, 두 팔이 아니라 세 팔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조각칼이나 정과 같은 조각 도구를 사용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줄에 매달려서 작업할 때도 있는 위드에게는 상당히 좋은 기술이다.
더군다난 전투를 하면서도 쓸 수 있다지 않은가.
'활용하기에 따라서 가치가 크겠군.'
조각사란 직업은 정말 적성에 맞거나 아니면 끊임없는 도전과 발굴 정신으로 난관을 극복해야 한다.
훌륭한 조각품을 만들었을 때에 보너스로 받는 스탯은 위드에게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안겨 주었다.
조각사로서 순수하게 강해지기 위해서는 이런 스탯을 조금씩 쌓아 나가는 것이 중요했다.
다만, 대단한 걸작들을 마구잡이로 만든다고 해서 비약적으로 강해지진 않는다.
조각품을 완성해서 얻는 스탯들은 대체로 지구력이나 인내, 예술 같은 것이었다. 전투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힘, 민첩, 지혜, 지식 등의 스탯이 아니다.
힘이나 민첩 등은 명작을 만들 때에 한해서 1씩만 올라 간다.
그렇기에 아무리 놀라운 조각품들을 만들더라도 보조적인 도움을 줄 뿐이었다.
위드가 사자 상의 머리 부분에 매달려 있을 때에, 피라미드를 쌓던 이들과 주변에 모여 있는 군중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연 암석 위에서 열심히 조각술을 펼치는 위드!
며칠간 내려오지도 않고 식사도 암석 위에서 해결하면서 조각술을 펼친다.
워낙에 거대한 바위인 탓에 하루 사이에 큰 변화는 없었다.
그런데 조금씩 얼굴 비슷한 형체가 생겨나고, 상체와 어깨등이 만들어지더니, 이제는 멋진 사자상이 완성된 것이다.
그리고 완성된 사자상은 은은한 광채를 내뿜었다.
위엄과 힘!
로자임 왕국의 상징!
그러면서 사자 상을 본 이들에게 다양한 효과를 부여해 주었다.
"체력이 늘었어!"
"나는 생명력이. . . . . . . ."
"스탯들을 확인해 봐!"
사람들은 저마다 정보창을 띄워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지금까지 타인의 능력치를 올려 주는 것은 성직자나 사면, 혹은 바드처럼 몇몇 직종에 국한되어 있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조각사도 능력치를 올려 주는 것이 가능했다.
그들 중에는 조각사의 역할에 대해서 알고 있는 이들도 있었지만, 사자 상이 주는 놀라운 효과 앞에서는 충격에 휩싸이고 말았다.
"모든 스탯이 늘어나다니. . . . . . . "
"마법 저항력까지 올려주잖아!"
"하루! 하루 동안 스탯을 올려 준다니 이건 엄청난 효과다. 앞으로 모든 사냥 팀들은 이 사자 상을 먼저 방문해야 할 것 같아."
"조각사라니, 이런 의미가 있었구나."
사자 상을 보며 조각사에 대해서 다시금 인식을 바꾸게 된 사람들이 많았다.
'조각사를 필히 1명쯤 알아 두어야겠다!'
하지만 정작 본인들이 조각사로 전직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너무나도 발 보고 또 겪어 보기도 했기 때문이다.
노가다 직업인 조각사로만큼은 절대로 전직할 생각이 없고, 조각사와 친해질 생각만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별로 알려져 있진 않던 정보들도 흘러 나왔다.
"사자의 포효! 이건 투지를 크게 상승시켜 주는군."
"투지가 무슨 쓸모가 있다고. . . . . . . ."
"몰랐어? 사실 본인의 레벨보다 더 강한 몬스터를 잡을 때에는 위축이 되어서 실력을 제대로 보여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야. 그런데 투지가 높으면 더 강한 몬스터와 싸우더라도 본 실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가 있어."
레벨이 낮은 이들이 팀을 이루어서 강한 몬스터를 잡는다.
이게 말처럼 쉽게 되지 않는 이유는 투지 스탯 덕분이었다. 투지 스탯이 없거나 낮으면 강한 몬스터에게 제대로 맥을 못 춘다.
약한 이들이 아무리 많이 모이더라도 사냥이 어려운 이유가 이것이었다.
그런데 투지 스탯을 꾸준히 올려놓으면 아주 강한 몬스터를 만나더라도 주눅 들지 않고 싸울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더 강한 몬스터를 이길 수 있다는 소리는 아니지만 말이다.
군중은 조각술이 보여주는 효과에 잔뜩 매려되었고, 그때부터 길드의 메시지 창에는 대화들로 가득했다.
-길드 마스터님, 굉장한 직업을 발견했습니다.
-조각사라는 게 별 의미 없는 쓰레기 직종이 아니었습니다.
이에 각 길드에서는 위드를 포섭하기 위한 작전을 세웠다.
하지만 위드는 그대로 사자 상에 매달린 채 감격에 겨워 할 뿐이었다.
중급 조각술 스킬 9레벨!
그리고 고급 손재주 스킬!
뛰어난 손재주를 가진 장인이라는 호칭은 그냥 주어지는게 아니다.
본래 호칭이라는 것은 '어떤 퀘스트를 수행한 자', 혹은 '어떤 몬스터를 잡은 이'라고 붙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지만 생산 스킬과 관련되 호칭은 조금 다르다.
제일 뛰어난 사람에게만 부여되는 호칭은 그 분야에 있어서 1인자라는 뜻이었다.
고급 손재주를 최초로 터득한 자!
뛰어난 손재주를 가진 장인.
그것은 곧 현재 손재주에서 최정점에 이른 사람이 위드라는 이야기였다.
페일의 소개로 메이런은 일행과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메이런이라고 해요. 직업은 레인져고, 지금은 페일 님의 여자 친구가 되었답니다."
"반가워요."
수르카와 이리엔, 로뮤나는 활짝 웃으며 새로운 동료를 반겨 주었다.
한때 페일은 로뮤나를 좋아했다. 어릴 적부터 소꿉친구였던 그녀를 떠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메이런을 만나 진정한 사랑을 깨달았다.
사랑을 알게 된 남자는 어딘가 믿음직스럽고 여유로워 보이는 범. 로뮤나 들은 그 사실을 먼저 눈치 채고, 그 사람을 소개해 주기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서로를 알게 된 건 짧은 시간이지만 아주 좋아하고 있습니다."
"정말 페일 님을 만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페일과 메이런은 따뜻한 눈빛을 나누었다.
연인들만의 교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수르카가 메이런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 보더니 놀라는 것이었다.
"앗! 그런데 혹시 어디선가 본 적이 있지 않으세요?"
"그러고 보니 나도 본 사람 같은데. . . . . . ."
"응. 나도야. 무척 자주 본 얼굴 같은데. . . 미묘하게 다르긴 하지만."
이리엔이나 로뮤나도 갑자기 메이런을 보면서 이상하게 여기는 것이었다.
분명히 처음 만나는 것인데도 자주 본 것처럼 익숙했다.
페일도 고개를 갸웃했다.
"실은 나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왠지 낯익은 듯하기는 했는데. . . . . . ."
메이런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심을 내리고서 말했다.
"혹시 로열 로드와 관련된 프로그램 좋아하세요?"
"네? 아! 그러고 보니. . . . . . ."
"맞아요. 제가 신혜민입니다."
메이런이 현실에서의 정체를 밝히자, 일행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미안해요. 일부러 숨기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굳이 밝히고 싶지 않았어요. 아무래도 선입견을 갖고 보실 것 같아서. . . . . . ."
메이런이 주저리주저리 변명을 늘어놓았지만, 일행은 그녀의 말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런 곳에서 로열 로드의 진행자를 만나게 되네. 무지 신기하다."
"프로그램 진행자도 진짜 로열 로드를 하는구나."
"그런데 화면에서 보던 것과 얼굴이 좀 다르네."
"그러게. 처음에 딱 보고서는 못 알아봤잖아."
"바보. 텔레비전에서는 화장발이랑 조명발이 있잖아."
"아! 그렇구나. 그래도 무지 예뻐요, 언니!"
"고, 고맙습니다."
프로그램 진행자와 연예인은 조금 다르다. 방송국 소속의 아나운서와 비슷한 개념이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보면 일반인들이 알 수 없는 극비 정보들도 입수하고 그러나요?"
"꼭 그렇지는 않아요. 저는 진행자라서, 대체로 방송에 나오는 것들에 대해서만 조금 더 자세히 아는 편이에요."
"아이템이나 장비 같은 것도 선물로 받고 그래요?"
"가끔 보내오는 분들이 있긴 한데,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에요."
"와! 그래도 부럽다. 그런데 우리 페일이 어딘가 그렇게 마음에 들었어요?"
"그냥 딱 만나는 순간에 내 남자다라는 느낌이 왔거든요."
그러다가 로뮤나가 갑자기 물었다.
"근데 프로그램 진행자가 이렇게 놀고만 있어도 돼요?"
"아! 실은 취재를 하기는 해야 하지만. . . . . . ."
"취재라면. . . . . 역시 피라미드요? 제가 위드 님한테 말해서 독점 인터뷰라도 시켜 드릴까요?"
"아니에요. 역시 인터뷰는 포기할래요."
메이런은 환하게 웃었다.
"페일 님과 친해진 건 어떤 대가를 바라고 한 게 아니잖아요."
"메이런 님. . . . . ."
메이런이 웃으며 한 말에 페일은 크게 감동했다.
"그렇게 쳐다보지 마세요. 당연한 일인데요. 업무적으로 만나 인터뷰를 하면 그 보상으로 소정의 정보료를 지급하는데, 그러면 위드 님한테도 기분 나쁜 일이 될 수 있잔하요."
". . . . . . ."
그 순간 페일과 수르카 들은 메이런이 무언가 큰 착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꼭 그렇지도 않을 텐데. . . . . . '
'위드 님에 대해서 전혀 모르시는구나.'
그날 이후로 많은 길드들이 위드에게 사람을 보내왔다.
그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세력을 자랑한 뒤 힘을 합치자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우리는 로자임 왕국의 최대 길드입니다. 규모나 제정 면에서 우리 길드를 따라올 수 있는 곳이 없죠. 우리들과 함께 하시면, 절대 손해 보실 일은 없을 겁니다."
"만드시는 조각품나다 합당한 가격으로 구입해 드릴 뿐만 아니라, 매일 일정 액수의 일급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냥을 원한다면 사냥 파티에 소속시켜 드리고, 아이템도 지급해 드리죠."
"좁은 변방의 왕국을 떠나 중앙 대륙으로 오지 않으시겠습니까? 지금까지 많은 제의를 받으셨겠지만, 그들보다 좋은 대우를 보장하겠습니다."
조각사를 완전히 무시하면서, 레벨 200까지는 책임지고 키워 준다는 것이었다.
보통 생산 직업의 레벨이 낮은 걸 감안하여 한 제안이겠지만, 현지 위드의 레벨은 그보다 높았다.
그 외의 조건들도 여럿 달려 있었다. 만든 조각품은 자신들의 길드에만 판매하도록 하며, 임대해 준 아이템은 반드시 다시 반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이템을 팔아서 먹소나는 위드에게는 그다지 가치 있는 제안은 아니었다.
레어 급, 혹은 유티크 급의 아이템을 빌려 준다고 해도 사냥 외에는 쓸모가 없는 것.
위드가 다니는 사냥터는 극히 위험한 곳들이다. 언제 잃어버릴지도 모르는데, 그런 부담 가는 물건을 받을 수는 없었다.
"여러분들이 바라는 일을 해 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위드는 각 길드의 모든 제안들을 거절했다.
조건이 좋다는 것은 그만큼 바라는 것도 많다는 뜻.
사냥 파티에 끼기 위해서 좋은 조각품들을 만들어서 바치는 일은 할 수 없었다. 차라리 이번에 크게 명성을 날린 이후, 만들어 낸 조각품을 적당한 가치의 아이템과 교환하는 편이 나으리라.
처음에는 어떻게 해서든 위드를 포섭하고 싶어 했지만, 길드들은 곧 위드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자 상을 만든 초기에는 각 길드들이 서로 위드를 모셔 가려고 아우성이었다. 위드의 조각품을 보고 놀라운 효과를 체험하고는 경쟁적으로 달려든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길드들의 생각도 바뀌었다.
'어차피 조각상이다. 중복해서 능력치 증가가 적용되지도 않잖아.'
'제일 좋은 것 1개만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닐까?'
'이 조각품은 너무 커서 우리들이 독점할 수도 없는 것이다. 다른 조각품들도 들고 다닐 만큼 크기가 작진 않을 것 같아. 휴대성에서 뒤떨어지겠군.'
'하루 밖에 적용이 안 된다면, 매일 마을로 돌아와서 조각상을 볼 수도 없는 노릇.'
위드의 의견대로 따르기만 한 것은 조각사라는 직업에 대한 이해도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조각사는 자유롭게 움지이면서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어떤 길드에 속해서, 장인처럼 조각품들을 만들어서 배분하는 데에는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었다.
초대형 사자 조각상이 완성되고 나서 얼마지나지 않아 피라미드도 그 웅장한 거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규모가 너무나도 커서 한동안은 작업을 더 해야 했다.
피라미드의 완성은 상층부로 갈수록 더욱 힘들어졌다.
높은 곳까지 석재를 들어 올리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석재를 운반할 임시 비탈길을 만들었다.
피라미드의 높은 지역까지 흙과 모래로 비탈길을 만들고, 이를 통해서 석재를 운반하는 방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