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의 전당
이현은 아침부터 들뜬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놀랍게도 주식회사 유니콘! 로열 로드를 창조한 회사로부터 메일로 연락이 온 것이었다.
"나를 꼭 한 번 만나고 싶다라."
메일을 보낸 사람은 홍보부의 장윤수 팀장으로 되어 있었다.
오크와 다크 엘프의 전쟁 퀘스트가 현실 시간으로는 딱 하루 남아 있었다.
"다녀오면 시간이 조금 빠듯한데. . . . . . . 그래도 다녀와야겠지."
이현은 웬만한 일에는 나서고 싶지 않았지만, 유니콘에서 직접 연락이 온 만큼 미적거리지 않았다.
50년 전부터 유니콘 사는 전 세계적으로 높은 점유율을 보인 게임들을 다수 만들어 냈다.
매일 사용료로만 천문학적인 금액을 벌어들이고, 캐릭터 산업이나 만화, 영화, 애니메이션, 디즈니랜드와 같은 테마파크까지 진출하여 엄청난 이익을 창출해 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현금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돈을 쓸어 가던 유니콘 사.
그런데 승승장구하던 유니콘 사에서 최초로 겪은 좌절이 바로 마법의 대륙이었다. 다른 회사에서 개발한 마법의 대륙이 서비스도면서 유니콘 사에서 제작하고 운영하던 각종 게임들은 된서리를 맞았다.
이용객들이 급감하면서 여러 관련 기업들의 매출액도 동반 하락했다.
만약 이때에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았다면 그저 그런 회사로 남아 버렸을지도 모르지만, 유니콘 사에서는 자금과 기술을 총동원해서 놀라운 작품을 만들어 냈다.
로열 로드.
가상현실을 창조해 낸 것이었다.
그 결과 작금에 이르러서 유니콘 사는 과거의 사세를 회복한 것은 물론이고 더욱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왜 오라고 하는 것인지. . . . 나쁜 얘기는 아닐 것 같은데. 우선은 가 보면 알겠지."
이현은 세수를 하고 근처의 세탁소로 갔다. 깨끗한 옷을 빌리기 위해서였다.과거에 세탁소에서 일한 적도 있던 이현은 어렵지 않게 옷을 빌려 입고 유니콘 사가 있는 곳으로 출발했다.
유니콘 본사가 있는 곳까지 가기 위해서는 전철과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야 했다.
번거로운 과정이었지만 그보다는 거리에 비례해서 올라가는 요금 때문에 더욱 불만이 많았다.
"최소한 3천 원은 나오겠군."
이현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지금까지 인생이 잘 풀린 적인 있었던가!
캐릭터를 팔아서 대박을 친 줄 알았더니, 그 돈은 인출해 보기도 전에 곧바로 빼앗겼다.
게다가 전설의 달빛 조각사로 전직해서 하게 된 생고생.
로열 로드에서 최상의 유니크 아이템들은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경우도 있지만, 운이 없기 때문인지 아직 구경해 보지도 못했다.
"설마 기념품으로 인형 따위나 나눠 주면서 집에 가라는 건 아니겠지. 아닐 거야. 절대로 그럴 일이 없어."
유저들을 상대로 한 행사!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었다.
이현은 버스에서 내렸다. 유니콘 사가 있는 거리에는 온통 고층 빌딩들이 즐비했다.
한눈에도 비싸 보이는 건물들.
주위를 오가는 사람들의 복장은 고급스럽고, 도로 위를 굴러다니는 차들 역시 국산보다는 외제가 많았다.
그중에서도 유니콘의 본사는 압도적인 덩치를 자랑했다.
다른 건물들의 4~5배나 되는 규모나 높이.
빌딩 앞의 공터에서는 각종 행사들이 열리고 있고, 나무 그늘 아래의 벤치에서는 이곳을 찾은 외국인들이 모여 않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여러 매체에서 나온 기자들도 많았다.
유니콘 사에서 하는 소소한 움직임은 그대로 뉴스가 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오로지 이현만이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 같았다.
이현은 조금 주눅이 들어서 유니콘 사의 건물로 다가갔다.
그러나 입구에 서자 경비원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제지했다.
"실례지만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이곳은 보안 때문에 허가 받지 않은 사람은 출입이 불가능합니다만. . . . . ."
"홍보부 장윤수 팀장님의 초대를 받고 왔습니다. 제 이름은 이현입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저희들이 확인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경비원들은 건장한 사내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깍듯하게 이현을 대했다.
'그만큼 여유가 있다는 것이겠지.'
이현이 잠시 서서 기다리는 사이에,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설마하니 이런 유니콘 사에 이현이 들어갈 수 있을 리가 없다는 투의 이야기들이었다.
그러나 경비원들은 금방 돌아왔다.
"장윤수 팀장님께서 확인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빨리 오실줄은 몰라서 미쳐 저희들에게 말하지 못했다고, 죄송하다고 하시더군요."
"괜찮습니다."
"홍보부가 있는 곳은 43층입니다. 그러면 좋은 방문이 되시기를."
이현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이현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43층으로 올라가는 도중에도 내내 사은품을 나누어 주고 돌아가라는 건 아닐지 걱정했지만, 사실 그것은 기우였다.
본사의 팀장 정도 되는 인재를 그런 하찮은 일에 놀리리 일이 없는 것이다.
유니콘 사의 홍보부에서는 여러 사업들을 열고, 방송 광고 전략들을 개발한다. 장윤수 팀장은 그중에서도 핵심적인 중장기 홍보 전략을 수립하는 프로젝트 팀에 속해 있었다.
-43. 홍보부가 있는 곳에 도착하였습니다. 좋은 시간 되십시오.
43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렸다.
"반갑습니다. 제가 장윤수 팀장입니다."
장윤수 팀장이 몇 명의 부하 직원들과 함께 마중을 나와 있었다.
이현은 장윤수 팀장과 함께 조용한 상담실로 향했다. 그곳에서 여직원들이 커피를 드실 거냐고 물었을 때에, 이현은 어김없이 대답했다.
"꿀물 부탁드립니다."
"저기, 그건 없는데. . . . . ."
"없으면 인삼차라도 괜찮습니다."
원기 회복과 자양 강장을 위해서는 좋은 음식을 먹여야 한다.
이현은 격력한 운동을 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먹는 게 부실하다 보니 가끔씩 힘이 부족했다.
다행히 인삼차는 있었는지, 이현은 곧 들여오 인삼차를 마시면서 장윤수 팀장과 대화를 나누었다.
장윤수 팀장은 활달하고 밝은 사람이었다.
그는 유니콘 회사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하고 자신의 팀이 말은 업무 등을 이야기해 주었다.
복잡한 전문 용어나 외국어들이 다수 섞여 있었기에 이현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알 필요도 없을 것 같군.'
이현은 마음을 느긋하게 가졌다.
본래 이런 종류의 대화는 아는 쪽이 먼저 지치기 마련이다.
모르는 쪽이 더 마음 편하다.
그저 상대방이 자신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그게 어떤 이득이 있는지만 확인하면 되는 것이다.
'적어도 인형이나 사은품을 받아 가라고 오라고 한 것 같진 않아. 대체 나를 왜 불렀을까.'
이현이 지루해한다는 것을 눈치 챘는지, 장윤수 팀장은 곧 본론을 이야기했다.
"아시다시피 저희 유니콘 사에서는 최고의 유저들의 풀레이 영상을 홈페이지에서 서비스합니다."
이현도 그건 알고 있었고, 몇 번 보기도 했다.
명예의 전당.
소위 말하는 최고 수준의 유저들의 활약상을 담은 별도의 공간이 로열 로드의 홈페이지에 있었다. 그들이 벌이는 전투나 퀘스트, 모험을 하는 동영상을 직접 볼 수 있는 것이다.
명예의 전당에 오른다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명예의 전당에 올라오라고 하지만, 저희들은 일정한 인원을 유지합니다. 대상이 많을수록 관심이 분산되기 마련이거든요. 일단 저희들의 기준은 명성이 6천을 넘는 유저에 한해서 개인을 홍보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드립니다."
"그래서 제가 그 대상에 선정이 된 것입니까?"
"맞습니다. 어떠십니까, 명예의 전당에 자신의 플레이 영상을 공개하실 의향이 있습니까? 매주 1개씩 자신이 깬 퀘스트나 치열했던 전투의 동영상을 올려 주시면 됩니다."
소의 최고 지존들의 퀘스트와 모험.
공인된 최고 레벨인 바드레이를 비롯해서, 500명의 유저들이 명예의 전당에 등록되어 있다.
그들은 자신의 플레이 동영상을 그곳에 공개하여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었다.
그러나 이현에게는 그다지 관심 밖의 일이었다.
"저는 유명해지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로열 로드에서 누가 저를 알아보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요."
"그렇습니까?"
장윤수 팀장의 눈이 동그래졌다.
무척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 되길 원한다.
로열 로드에서 최고의 목표도 황제였다.
전 대륙을 일통한 군주!
그 꿈을 이루어 줄 수 있는 새로운 공간.
그런데 명성을 높일 기회를 초개와 같이 발로 걷어차 버리는 이현이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대단한 분이로군요."
장윤수 팀장은 감탄했다.
"사실 지금까지 봐 온 분들은 대체로 거의 두 가지 부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청 번째, 자신의 능력이라면 이 정도의 보상은 당연하다는 부류."
대체로 고레벨의 유저나 길드의 마스터들은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것도 그리 기뻐하지 않았다.
"두 번째는 비굴한 사람들이죠. 명예의 전당에서는 아무래도 500명이 경쟁자가 되기 마련입니다. 일반 유저들이야 명예의 전당에 오른 자체만으로도 대단히 우러러보지만, 그들 가운데에서는 또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조금 이라도 눈에 잘 띄는 곳에 배치해 달라고 애걸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현 님께서는 욕심과 거리가 먼 초연한 태도를 보여 주시는군요."
장윤수가 깊이 감복해서 말했다.
이현은 가만히 그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역시 여기까지 온 건 차비가 아까운 일이었어.'
후회가 막심하던 찰나.
장윤수가 말을 이었다.
"사실 명예의 전당에 오르면, 명성 외에도 얻을 수 있는게 한둘이 아닌데 말이니다. 우선 우리 회사 측에서도 약소 하나마 홍보비를 지급해 드리게 되겠죠. 인기도에 따라서 차등 지급이 될 테지만 그래도 평균적으로 매달 몇 백만 원씩은 받아 가더군요."
"며, 몇 백만 원요?"
"예. 조회수 순위가 좀 낮은 분들도 그 정도는 받아 갑니다. 아무래도 로열 로드의 유저들 숫자가 워낙 많고, 명예의 전당이 인기가 높은 코너라서요. 운영과 홍보에 도움이 되는 만큼 본사에서도 약간의 보상을 해 드립니다. 그런데 이 금액은 대중 매체와 관련된 비용에 비하면 푼돈이라고밖에 말 할 수 없는 돈입니다."
" . . . . . ."
장윤수는 힘주어 말했다.
"기회를 얻는 것이죠. 스스로를 홍보하고 유명 인사가 되는 기회! 명예의 전당에서 유명인이 되면 각종 게임 관련 방송사에서 영입 경쟁을 벌이게 될 겁니다. 그러면 몸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겠죠."
방송사에서는 초반에 상위 랭커들 위주의 방송들을 만들어 왔다. 그런데 그들의 이야기는 식상하기 짝이 없었다.
단순히 레벨만 높을 뿐이지 어떤 사냥터가 효율적인지, 혹은 어쩐 직업으로 전직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초반에는 효과적이었지만, 방송자체의 질이나 재미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동여상이라고 해 봐야 강한 몬스터를 때려잡는 게 전부였던 것이다.
더군다난 당시 높은 수준에 이르렀떤 랭커들은 지금은 평범한 수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길드의 원조나, 아니면 명성이나 스킬의 효과를 무시한채로 레벨만 급히 올리는 성장을 하여서 후반으로 갈수록 다른 이들보다 뒤처지는 결과가 나오고 있었다.
그로 인해 방송에 노출된 게이머들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게 되자 방송사들은 이제 각 분야에서 뛰어난 이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하려고 했다.
명예의 전당에 오른 유저들은 1순위 영입 대상이었다.
"우린 유니콘 사에서도 홍보를 위해 그러한 일을 적극적으로 장려합니다. 명예의 전당 자체가 영울들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설립된 것이니까요. 그런데 이런 모든 기회를 떨치고 순수하게 로열 로드를 즐기시는 분을 만나게 되었으니 어떻게 제가 놀라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현 님, 참 대단하시군요."
" . . . . . ."
이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무실에 있는 홍보 팀 직원들 다수가 존경 어린 눈으로 이현을 보고 있었다.
"돈과 명예를 초개처럼 버리는 태도라니"
"마땅히 배워야 할 덕목이야."
"역시 사람은 돈의 노예가 되지는 말아야 하는데."
이현은 덥석 장윤수의 손을 잡았다. 직원들이 떠드는 이야기에는 조금도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저도 명예의 전당 윗자리로 올려 주시면 안 될까요?"
이현이 떠나도 나자 홍보부에서는 다시금 업무를 개시했다.
장윤수 팀장은 인삼차가 깨끗하게 비워진 찻잔을 보며 생각에 잠겼 있었다.
"이현이라 . . . . . "
"왜 그러세요, 팀장님?"
홍보우의 직원 서정희가 다가와서 물었다.
"아니, 그냥 꽤 오랫동안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인물이어서 말이야."
장윤수 팀장을 오랫동나 봐 왔던 서정희는 그 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장윤수 팀장이 어떤 사람이던가.
로열 로드를 개발하고 서비스할 때에 실질적인 홍보 전략을 만든 중추적인 인물이었다.
황제가 될 수 있는 게임!
이것 역시 장윤수의 머릿속에서 나왔다.
그런 장윤수가 한 사람을 만나 보고 이렇게까지 오랫동안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은 처음이었다.
"겨우 유저 1명한테 마음을 쓰시다닌 팀장님답지 않아요."
"내가? 과연 그럴까."
장윤수는 고개를 저으며 1장의 서류를 내밀었다.
"이걸 본다면 서정희 씨도 아무렇지 않게 여길 수는 없을걸."
서정희는 서류를 조심스럽게 받아서 읽어 보았다.
장윤삭 내민 것은 이현의 신상 파일이었다.
로열 로드는 완벽한 내부 정보 보안을 자랑한다. 그렇기에 유니콘 사의 직원이라고 해도 래벨, 직업, 능력치, 아이템 등 세세한 정보는 알 수 없었다.
이현의 신상 파일에 나와 있는 것은, 그가 게임을 시작한 날짜였다.
이현은 현재의 시점으로부터 정확히 9개월 전에 로열 로드에 가입했다.
"말도 안 돼요! 그러면 시작한 지 아직 1년도 되지 않았다고요?"
서정희가 비명을 지르듯이 외쳤다.
그러자 홍보부의 모든 시선이 장윤수와 서정희에게 쏠렸다.
"나도 직접 보기 전에는 믿을 수가 없었지. 단 9개월 만에, 적어도 명성으로는 명예의 전당에 오를 정도가 되었다는 이야기인데. . . . . ."
"믿을 수 없는 일이에요."
"아마도 9개월간 굉장히 열심히 로열 로드를 했겠지."
서정희는 장윤수의 말을 들으면서 더욱 화가 났다.
그녀는 로열 로드가 막 탄생한 시기부터 플레이를 해 왔다. 자랑은 아니지만 지금도 퇴근하면 곧바로 캡슐로 들어가서 접속을 하고 했던 것이다.
홍보부에서 받는 월급이 적지 않은 편이라서 좋은 아이템으로 무장했다.
그런데도 그녀의 명성은 2,500을 넘지 못했다.
전투 전문 마법사로 전직을 한 뒤 늘 퀘스트를 하고 사냥을 다니는데도 말이다.
"명성치는, 열심히 한다고만 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란 걸 아시잖아요."
"맞아."
"누구는 피부 미용도 포기하고 만날 밤을 새우고 잇는데. . . . "
"그래서 재미있다는 거야."
"네?"
"기대되는군. 그의 직업이나 어떤 퀘스트를 진행하고 있을지가 말이야. 아마 일주일 후에 공개할 동영상을 보면 알 수 있겠지."
명예의 전당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자신의 동영상을 등록 할 수 있게 되어있었다.
장윤수는 두 팔을 쭉 펴며 웃었다.
"역시 이 일을 선택한 보람이 있군. 정말 오랜만에 관심을 가져 볼 만한 이가 나타났어."
오크 장로가 말한대로 열 번의 해와, 열 번의 달이 떠오른 다음 날 이른 아침!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다.
"취익!"
"취이익!"
"취취췩!"
위드는 오크들과 함께 다크 엘프의 성을 보고 있었다.
"산맥의 아침. 붉은 해가 떠오르고 거센 바람이 분다. 취췻. 구름도 다가온 전투를 예감하는지 무거워 보이고, 나는 다크 엘프들과의 전투의 최전선에 서 있다. 취!"
위드는 한쪽 발을 바위 위에 올리고, 가슴을 쭉 펴고 고개는 치켜들었다.
나름대로 목솔를 착 깔아서 하는 독백!
"싱그러운 아침에 나는 희망을 품는다. 취취췻. 우리의 용기와 승리를 향한 열망. 버리기에는 고귀한 정신. 영혼. 나는 노래하고 싶다. 추이익! 저 다크엘프들이 강하다면 더욱 노래를 부르라. 우리의 승리를 기원하는 노래를. 모두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승리할 수 있으리라."
위드는 한참이나 분위기를 잡고 독백을 했다. 명예의 전당에 영상을 보내게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시청자가 된다. 그러므로 멋진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 그런데 이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그윽하고 깊이 있는 눈을 하려고 했지만 도저히 무리였다.
조각 변신술!
부리부리한 눈동자를 번뜩이며 인상을 쓰는 오크 카리취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독백을 하면서 멋진 시라도 낭송하고 싶었지만, 아는 시구절도 없다.
"취취익! 내 팔자다."
위드는 겉멋을 부리는 것을 포기한 채로 다크엘프의 성을 주시했다.
2밤새 내린 비로 인해 산맥에는 자육한 안개가 끼었다.
신비로운 부뉘기.
나무와 새들이 안개속에 있었다. 물기를 머금은 나뭇잎들은 생동감이 넘치고, 일찍 깨어난 새들이 먹이를 찾기에 분주하다. 아침이 되어 안개가 조금씩 걷히고 있지만, 아직은 날씨가 추웠다.
높은 지대인 만큼 기온이 많이 낮았다. 이렇게 추운날에는 어김없이 찾아오는 감기기운!
"에취! 취이익!"
벌써부터 추위를 느끼는 오크들!
감기를 방지하기 위해 위드는 재봉스킬을 이용해 만든 큰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오크들은 평상시처럼 간단한 방어구들을 입고 있을 뿐이었다.
성은 가파른 산의 정상에 세워져있었다. 주변의 삼면은 절벽이고, 그나마 나머지 한 곳도 다크엘프의 마음을 지나야만 통과할 수 있다. 산의 비탈면을 따라서 똬리를 틀 듯이 지어진 집들은 유사시 공격자들에게는 큰 장애물로 작용하리라. 그런데 마을이 아니라 당장 외성을 뚫는 것도 만만치는 않은 일이었다.
7미터가 넘는 성벽에 가시덩굴이 빽빽하게 쳐져 있다. 다크 엘프들이 생명 마법을 이용해서 성벽 전체에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었다.
성벽의 앞에는 짙푸른 녹연이 피어오른다. 극독이 흐르는 강.
근처에 다가가기만 해도 중독이 되어서 생명력이 하락하고 심지어는 죽기도 한다.
이러한 장애물만 해도 뚫기가 만만치 않은데, 성벽위에는 피부가 새까만 다크엘프들이 활과 정령술,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오크들이 진군해 오는 순간 그들의 광역 마법이 여지없이 작렬할 것이었다.
외성과 마을을 뚫어야 비로소 네크로맨서들이 만든 신전으로 들어갈 수 있다.
'해도 해도 너무하는군.'
절로 불평이 쏟아져 나왔다.
저런 곳을 대체 어떻게 뚫으란 말인가?
위드의 주변에는 그의 부족 오크 2만 마리 정도가 있을뿐이었다. 그런데 성벽에서 전투를 준비하는 다크 엘프들고 최소한 1만은 되어보인다.
다크 엘프들이나 오크들이나 본래의 전투력은 호각이라고 해도, 이런 대규모 공성전에서는 마법과 궁술에 능한 엘프들이 유리하다는 것이 정석이었다.
게다가 든든한 성에서 지키고 있으므로 오크들의 공격은 자살 행위나 다름이 없었다.
"카리취, 너만 믿는다. 취익!"
오크 장로는 위드의 등을 두들겨 주었다.
카리스마와 흉험한 얼굴.
건장한 오크 카리취라면 저런 난공불락의 요새도 뚫을 수 있다는 믿음이 오크들 사이에 퍼져있다.
"장로, 나만 믿어라. 취췻!"
"믿는다. 취칫. 오늘내로 승리, 거두자."
"꼭 오늘이어야 하나? 췻!"
"우리 밥 없다. 취취취."
"......"
대책 없는 오크들!
애초에 2만 마리씩이나 동원되었지만, 그들이 전투식량을 준비했을 리가 만무했다.
며칠만 지나면 굻어서 제풍네 나가떨어질 지경인 것이다.
'식량도 없고, 거기에 감기까지 걸린 오크들이라!'
위드는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럴수도 없었다.
오크들이 그를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또다시 죽게 되는군.'
퀘스트로 인해 죽음의 고비에 몰리기도 수차례! 이번의 위기야말로 헤어 나올 길이 막막하였다.
'적어도 그냥은 죽지 않겠다!'
위드가 각오를 다질 때였다.
바람도 없는데 나무들이 일제히 요동을 친다. 그리고 돼지 머리를 한 오크들이 배후에서 나타났다.
"취익! 취바르 부족이 왔다"
오크 로드 취바르가 이끄는 지원군 1만!
1만의 오크들이 도착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할 뿐이었다.
저 멀리서 숲이 움직였다.
"가르체 부족이 2만을 데려왔다."
"홀취 부족도 1만 5천이 왔다."
다크 엘프의 성이 있는 곳은 유로키나 산맥에서도 고산지대에 속해 있었다.
위드는 바위 위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온 천지 사방에 오크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이 순간 유로키나 산맥에는 나무보다 오크들이 많다. 그것도 훨씬 더 많다.
"취익! 취익!"
위드에게서 주체할수 없는 콧바람이 튀어나온다.
해일처럼 모여드는 오크들의 군대.
갓 성년이 되어 최초로 전쟁에 참여한 오크도 있지만, 대부분은 성년 오크. 전투 오크들이었다.
오크 투사와 전사들이 이끄는 대규모 오크 원정대였다.
"바랑취의 8천오크가 왔다. 취치치칫!"
"게르바게의 9천 오크도, 취췩! 가, 같이 왔다."
"살취는 오크 투사들만 1천을 데려왔다."
각 오크 연락병들은 소식을 전하기에 바빳다.
일부 오크들은 이미 다크엘프 요격대와 한차례 전투를 벌이고 상처투성이로 도착했다. 다크 엘프들은 성을 지키는 것만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공세도 취했던 것이다.
스물다섯 오크 로드의 부대가 도착해야 했지만, 다섯 부족이 오지 못했다. 그런데도 다크 엘프의 성 주변은 오크들로 온통 미어터지고 있었다.
해가 하늘의 가장 높은 곳에 떠오를 때 최종적으로 집결한 오크들의 숫자는, 무려 40만이 넘었다.
글레이브를 들고 녹슨 헬멧과 장갑을 입은 오크들이 지르는 함성과 콧바람에 퀴가 먹먹할 정도였다. 성 위에 있는 다크 엘프들이 일제히 마법과 정령술을 준비했다.
바람, 불, 물, 땅의 정령들을 불러내고 오크들의 공격에 대비했다.
다크 엘프들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이런 대군 앞에서 긴장하지 않을 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위드가 속해 있는 마을은 오크 로드 불취의 소속이었다.
불취는 터벅터벅 위드에게 다가왔다.
"카리취, 너의 용맹, 익히 들었다. 취익!"
"고맙다, 췩!"
불취는 매우 강한 오크였다.
위드도 불취에 대해서는 몇차례 들은 적이 있었다.
오크 로드 중에서도 상위 급에 속하며, 와이번을 잡은 적도 있다고 했다.
불취가 입가에 있는 칼자국을 실룩이며 말을 이었다.
"네가 우리 오크들에게 공격하라는, 취치치치익! 명령을 내려라."
"내가 그래도 되는가? 취칙!"
"자격 있다. 취익! 오크들의 전통이다. 제일 얼굴 흉악한 오크가 공격을 개시하면서 적을 공포에 질리게 하는 것이다."
이 곳에 모여든 오크는 40만을 넘었다.
그런데도 위드보다 인상이 더럽고 못생긴 오크는 1마리도 없다는 것이었다.
위드에게 새롭게 매력 스텟이 생성되고, 또 달빛 조각사라는 직업이 부여하는 매력 스탯이 추가로 있었다. 지금까지 만들었던 조각품들을 통해서 모든 스탯이 조금씩 상승한 것도 있다.
그런데도 이 매력이 별로 소용이 없었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는 게 아닌 것처럼 위드의 용모는 도저히 매력 스텟으로 해결이 불가능한 수준이었던 것이다.
불취는 친근하게 웃었다.
"대단한 영예다. 취익! 네가 부럽다. 어서 해라."
"......"
위드는 불취의 치켜세움에 어깨를 으쓱했다.
사방에 있는 오크 대군이 오로지 그의 진군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위드는 글레이브를 높이 치켜들고 소리쳤다.
"오크! 오크! 오크!"
"오크! 오크! 오크!"
위드가 먼저 외치자, 40만 오크 대군이 따라서 '오크!'를 외쳤다.
산맥의 전역이 오크들의 고함 소리로 가득 찼다.
땅이 흔들리고, 그 울림은 멀리까지 퍼져서 계속 메아리쳤다.
오크들의 포효 소리.
돼지 머리를 하고 있지만, 건장한 체구의 전사들이 있는 힘껏 고함을 지른다.
북을 치고 뿔피리를 분다고 해도 이보다 박력 있진 않을 것이다.
산맥이 오크들로 뒤덮여 있었다.
오크들이 말하는 소리, 오크들이 취익대는 소리가 산맥을 가득 채웠다.
"오크! 오크! 오크!"
"오크! 오크! 오크!"
위드는 있는 힘껏 소리를 드높였다.
오크들이 외치는 소리 또한 갈수록 커진다.
오크들의 사기가 회정점에 이르렀을 때, 위드는 힘차게 글레이브를 휘둘렀다.
"다 부숴 버려라! 취이이이이익!"
"쿠어! 쿠어! 쿠어!"
오크들이 물밀듯이 다크 엘프의 성을 향해 몰려 들어갔다.
-선택의 길-
"취이익! 콜록!"
감기 걸린 오크 40만의 대진군!
나무들, 바위들이 장애물이 되어서 오크들의 움직임이 원활하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해도 몇만의 오크들이 한꺼번에 다크 엘프의 성으로 진격해 들어갔다.
다크 엘프들의 대응도 무척이나 기민했다.
"파이어 필드!"
"아이스 스톰!"
"체인 라이트닝!"
불이 대지를 뒤덮고, 얼음의 폭풍이 불었다.
뇌전이 지그재그로 달리며 오크들의 육신을 폭발시킨다.
수천 마리의 오크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오크들은 계속 진군할 뿐이었다.
다크 엘프들은 마법을 퍼붓다가 오크들이 일정 거리 안에 들어오자 활을 쏘았다.
다크 엘프들은 기본적으로 정령술과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그들이 쏘는 화살에는 각종 마법의 속성이 걸려 있었다.
화살에 맞은 오크들은 결빙되거나, 아니면 눈이 멀었다.
함정이 설치되어 있어서 땅이 꺼지고 독화살이 발사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오크들은 진군을 멈추지 않았다.
모든 함정과 마법, 화살 공격을 오로지 숫자로 감당해 내며 달려드는 것이었다.
"취이이익!"
"오크! 오크! 오크!"
오크들의 집념!
오크들의 눈동자에는 오로지 투지만이 가득했다.
땅의 정령이 일어나서 막고, 불길이 이글거린다.
화려한 폭발이 끈이지 않았다.
다크 엘프들은 오크들의 접근에 사력을 다한 마법으로 대했다.
협소한 지형으로 인해 한방향만 막으면 되지만, 그 길로 끝도 없는 오크들이 몰려들고 있으니 공포에 질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글레이브를 허공에서 돌리고, 괴성을 지르며 전진하는 오크들!
오크들은 막대한 피해를 감수하면서도 성벽 아래까지 진출했다.
"취이익! 우리도 쏘자."
"화살을 쏘자. 취치칙!"
이제 오크들도 화살을 쏘았다. 화살이 없는 이들은 돌팔매질이라도 했다.
조악한 오크의 활은 명중율과 사정거리가 현저하게 떨어지기에 성벽 아래에서 위로 올려 쏴야 했다.
오크들은 가지를 잘라 낸 통나무도 들고 왔다.
수십 마리의 오크들이 가져온 통나무를 성벽에 대고 기어 올라간다.
통나무에서 떨어지는 오크들, 악착같이 기여올라 성벽에 도착한 오크들!
다크 엘프의 성은 난전으로 접어들었다.
위드는 여전히 카리취의 모습으로 다크 엘프의 성이 잘 보이는 바위 위에 앉아 있었다.
독 연기가 피어오르고 마법과 정령술이 난무하는 현장.
다크 엘프의 독술과 정령술은 오크들에게 큰 피해를 주었다.
존재하는 거의 모든 정령들이 이자리에 모인것 같았다.
불의 정령 카사, 물의 정령 운디네, 바람의 정령 실프, 땅의 정령 노움!
다크 엘프들이 불러낸 정령들이 하늘을 날아다니고 땅을 뒤집었다.
온 사방이 격전지였고, 다크 엘프들의 일부는 성문을 열고 나와 유격대로 활약하면서 오크들을 주살했다.
"취익!"
"카리취! 몸이 근질근질하다."
"우리도 공격하자. 취취!"
위드가 공성전이 시작된 이후로 그 자리에 멈추어서 그대로 있자, 조바심이 난 오크들이 재촉해온다.
위드는 불취 부족 오크들 500마리를 거느리고 있었다.
"취칙. 아직 기다려라."
전투가 한참 격렬하게 벌어지고 있는데도 위드는 움직이지 않았다.
추악한 오크의 모습으로 그대로 앉아 있기만 했다.
'이건 말도 안 되게 무모한 전투로군.'
위드는 한숨이 나올 것만 같았다.
다크 엘프의 성은 아무리 무식한 사람이라 해도 섣불리 공격을 결정하기 힘들 정도였다.
성벽과 지형은 어디서나 효과를 발휘하는 법이다.
하물며 산의 정상에서 마법과 정령술을 펼치는 다크 엘프들을 상대로, 정면 공격을 감행하다니!
게다가 하늘도 오크들의 편이 아니다.
밤이슬을 맞으면서 모여든 오크들은 감기에 걸려서 체력이 떨어져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유로키나 산맥의 오크들이 강하다고 해도 이 정도의 악조건이라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위드라면 무슨 수를 써서든지 꼼수를 만들어 냈을 것이다.
이대로 전쟁이 지속된다면 이기더라도 오크들의 피해가 너무 크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 덕분에 전투는 더욱 격렬하고 재미가 있었다.
무식하게 개돌격하는 오크들!
사력을 다해서 막으려는 다크 엘프들.
수만, 수십만의 전투가 유로키나 산맥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그 자체로 하나의 장관이었다.
오데인 요새의 공방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박력있는 전투였다.
종족부터 다른 오크들과 다크 엘프들의 전투이다 보니 더욱 긴장감이 어렸다.
'초기의 전투는 아무래도 다크 엘프들이 유리하군.'
위드는 냉정함을 잃지 않고 전투를 분석했다.
얼핏 보기에는 오크들이 신 나게 전공을 세우고 있는 것 같았다.
다크 엘프의 성을 향해 기세를 올리며 진격해 들어가는 오크들의 앞에는 그 어떤 것도 멀쩡하지 못할 것만 같다. 수만의 오크들이 줄을 이어서 성으로 쳐들어가고, 그 뒤로는 그 보다 훨씬 많은 오크들이 기다리고 있다. 오크들은 다크 엘프의 성을 짓밟을 기세로 경사 높은 산을 달려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크 엘프들은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오크들의 숫자가 수십만에 이르러도 길이 협소하여 그 병력을 효율적으로 쓸 수는 없었다.
전투에 실제 동원되는 병력은 많아야 2만.
그 불리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아래에서 위로 쏴야 하는 화살 공격도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산을 뛰어올라야 하기에 체력이 좋은 오크라고 할지라도 쉽게 지치고 만다.
다크 엘프들은 지형과 마법, 정령술에 의존하면서 거의 피해 없이 오크들을 물리치고 있었다.
"오크들, 무식하다."
"돼지 같은 오크들! 이곳이 너희들의 무덤이다."
다크 엘프들은 오크들을 조롱하면서 전투를 이끌었다.
보통 인간이라면 이런 전투에서 듣는 욕설 정도는 어지간하면 참아 넘긴다.
그런데 이들은 오크였다.
단순 무식하고 성질 나쁜 오크.
"취이익!"
"너, 너, 너 기다려라! 취취췻. 까만 놈."
격장지계도 아니었는데, 오크들은 완전히 흥분하여 덤벼들다가 화살에 맞아 죽었다.
오크들은 성문을 두들기고, 성벽을 기어오르려고 하지만 그때마다 다크 엘프들에 의해 격퇴됐다. 초기에 발생하는 피해의 대다수는 오크들이 입고 있었던 것이다.
짧은 시간에 오크들이 거의 4만 가까이 죽어 나간 것에 비해 다크 엘프들은 눈먼 화살에 맞은 수십 정도가 고작이었다.
하나 그렇다고 해서 다크 엘프들의 승리를 예상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전쟁은 초기였고 남아 있는 오크들의 숫자가 너무 많았던 것이다.
전술과 전략, 지형. 이 모든 변수를 무시할 정도로 많은 오크들!
질보다 양!
1마리를 죽인다고 해도 2마리, 3마리가 이어서 달려드는데에는 장사가 없었다.
(jjang5175왈: 역시 다굴엔 장사없지..)
다크 엘프들이 집단적으로 마법을 영창했다.
다크 엘프들 중에서도 로브를 입고 있는 이들 100명이 함께 마법을 외운 것이었다.
"플레어!"
다크 엘프들로부터 거센 불길이 뿜어져 나왔다.
멀리 있는 위드의 얼굴이 달아오를 정도로 화끈한 화력!
불길은 성의 근처에 다가온 오크들을 한 번에 모조리 통구이로 만들어 버렸다.
"취익!"
"취익! 취익!"
호전적인 오크들. 그러나 이런 엄청난 마법 공격 앞에서 오크들은 투지를 상실했다.
아직 다크 엘프의 외성도 부수기 전인데 오크들이 겁에 질려버리고 만 것이었다.
여전히 오크들은 다크 엘프의 성을 공격하고 있었지만 그 기세는 조금 전만 못했다.
사기가 극도로 낮아졌기 때문.
그때 위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다리던 때가 왔군.'
위드는 그가 다스리는 오크들을 둘러보았다.
"취칫. 이제 우리가 가자!"
"카, 카리취!"
"무모하다, 취익!"
방금 전까진 왜 전투를 하지 않느냐고 안달을 내던 오크들이 선뜻 나서려고 하지 않았다.
"괜찮다, 취익! 나만 믿어라."
그러나 위드는 오크들을 데리고 억지로 앞장을 섰다.
다른 오크 로드가 이끄는 오크들은 위드와 오크들에게 쉽게 길을 터 줬다.
성벽에서 전투를 벌이게 된 위드와 오크들!
이 무렵에는 다크 엘프들의 마법과 정령술도 많이 약화되어 있었다.
마나가 거의 소진된 탓이었다. (jjang5175왈: 마나오링..ㄷㄷㄷ)
위드는 바로 이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공격! 공격해라. 취이이익!"
위드의 육중한 몸체가 성벽에 걸쳐진 통나무를 밟고 뛰어 올랐다.
빠지직!
통나무가 대번에 부러졌지만, 위드는 무사히 성벽 위에 내려섰다. 그러고는 마구 글레이브를 휘둘렀다.
다크 엘프들은 독수리를 능가하는 시력, 그리고 궁술과 날랜 움직임을 자랑한다. 마법도 잘 쓰는 만큼 공성전에 있어서는 거의 최고의 종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마나가 거의 떨어졌다. 궁술은 바로 근처까지 다가가면 별로 소용이 없다.
날랜 움직임도 동료들이 장애가 되어서 별다른 장점으로 작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위드의 목표는 널려 있었다.
성벽에 있는 다크 엘프들이 모조리 적이었다.
활과 마법을 쓰는 다크 엘프들.
위드는 신나게 다크 엘프들을 공격했다. 부하로 데리고 온 오크들고 다크 엘프들을 열심히 공격했다.
일단 근접전이 벌어지게 되면 소검이나 레이피어를 주로 쓰는 다크 엘프들에게 오크들이 밀릴 까닭이 없다.
위드와 오크들은 잠깐 동안에 많은 다크 엘프들을 사냥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창 공격을 세운 다음에 위드는 재빨리 성벽을 뛰어내려서 전장을 이탈했다.
시간이 흐르며 다크 엘프들의 마나가 조금이나마 회복되고 있었던 것.
위드는 전투를 하는 가운데에도 끊임없이 눈치를 봤다.
눈치 보기와 상황 판단.
어떤 궁지에 몰려도 살아날 구멍을 만들어 내는 것이야말로 위드의 장기였다.
"파이어 필드!"
위드가 물러나자마자, 조금 전까지 그가 있던 자리는 불바다가 되었다.
"끄아아악!"
"몸이 타오른다!"
다크 엘프들은 자신의 동료가 있는 곳에도 서슴없이 마법을 시전했다.
인간이 아니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다크 엘프들이나 오크들이나 생명의 소중함보다는 어떻게 해서든 적을 제압하려는 호전성이 우선이었다.
위드는 오크들을 적극 활용했다.
다크 엘프들의 마나와 체력은 한정되어 있었다.
오크들이 끊임없이 공격을 하니, 일부 다크 엘프들은 틀림없이 체력이나 마나가 바닥까지 떨어졌다.
위드는 그럴 때마다 직속부대를 이끌고 그 곳을 공격했다.
그리고 다크 엘프들이 마나를 회복할 때쯤에는 곧바로 퇴각했다.
물론 위드와 직속 부대만이 명령을 받아서 퇴각한 것이고, 다른 오크들은 더욱 무섭게 몰아치다가 다크 엘프의 마법에 당해 전사를 해야 했다.
위드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40만 오크 대군을 적극 이용해야 한다.'
적이 약한 부위를 찌르고, 반격할 때에는 서슴없이 다른 오크들을 몰아넣는 치사함!
다크 엘프들이 오크들에게 신경을 쓰는 사이에 위드는 조용히 공적을 챙겼다.
그런 식으로 몇 번 더 성공을 거두자, 다크 엘프들을 100마리 이상 잡을 수 있었다.
위드뿐만이 아니라 직속부대가 사냥한 다크 엘프들의 숫자를 합치면 더욱 많으리라.
확인해 보지 않았지만 퀘스트 공적치가 꽤나 올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야비하다고 해도 좋다! 사실이니까!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야만 했다.
오크들이 7만 정도 죽었을 때에는 다크 엘프들의 숫자도 3천 넘게 줄어 있었다.
'곧 끝나겠군.'
살아 있는 다크 엘프들이 7천을 넘는다고 해도 거의 다 상처 입고 지친 상태.
성벽에 의존하여 버틸 뿐이었다.
그런데도 다크 엘프들은 워낙에 뛰어난 궁술을 가졌다.
그들의 저격술에 오크들의 주력이라고 할 수 있는 오크 투사들이 연이어 암살을 당했다.
공성 병기가 없으니 성벽을 오르기에도 만만치 않고, 오크들은 여전히 지지부진 전투를 끌어가고 있었다.
"힘내라. 취이익!"
"다크 엘프들을, 취치칫. 공격하자!"
길이 협소하여 전투에 참여하지 못하는 오크들이 괴성을 질러댔다.
위드는 전투를 마무리 짓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놈이 온다."
"제일 못생긴 놈이다!"
오크와 다크 엘프들의 시선이 일제히 위드에게 향했다.
그런데 위드는 이번에는 성벽을 오르지 않았다.
성문!
크고 거대한 성문으로 걸어갔다.
위드는 글레이브를 잠시 벗어 두고, 품에서 작은 조각을 꺼냈다.
토끼 조각상.
걸작으로 만든 다섯 생명 조각상 중의 하나였다.
"조각 파괴술! 이 모든 것들이 힘이 되어라."
위드는 조각상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부쉈다.
그 순간!
위드의 몸에 빛이 어렸다.
조각 파괴술을 사용하셨습니다.
걸작 조각상이 파괴된 고통! 슬픔!
예술 스텟이 5 영구적으로 사라집니다. 명성이 100 줄어듭니다.
예술 스텟이 1:4의 비율로 하루 동안 힘으로 전환됩니다.
-조각술의 숙련도가 0.1% 상승합니다.
위드가 가진 1천이 넘는 예술 스텟이 모조리 힘으로 전환되었다.
그것도 4배로 증폭이 되어서 말이다.
걸작 조각상을 부순 대가로 명성이 줄어들고 예술 스텟이 소모되었다.
그 대가로 위드의 몸에는 무엇이든 부술 수 있을 것 같은 괴력이 흘렀다.
"크아아아!"
위드는 괴성을 지르며 글레이브를 움켜쥐었다.
근육으로 울퉁불퉁한 팔뚝에 핏줄이 섰다. 주체할 수 없는 힘이 넘쳐흐른다.
이 순간, 위드는 예술을 이해하는 조각사가 아니었다.
오크로 변신해서 지식이나 지혜도 바닥이다.
모든 것이 힘!
힘으로 전환이 되어 있었다.
위드는 성문을 향해 있는 힘껏 글레이브를 내리쳤다.
콰아아앙!
글레이브가 산산조각 났다.
숫제 가루가 되어서 주변으로 튀었다.
"취이익?"
"취취취!"
완전히 흥분해 버린 오크들.
위드는 주변에 떨어져 있는 글레이브를 닥치는 대로 주워서 성문을 마구 내리쳤다.
위드가 힘을 쓸 때마다 성문에 조금씩 금이 가더니 열 번쯤 지나자 마침내 쩍하고 갈라졌다.
"우와아아!"
"성문이 뚫렸다, 취익!"
오크들이 무섭게 환호했다.
그러자 다크 엘프들 셋이 매우 빨리 부서진 성문에 모여 들었다.
"오크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진형을 갖춰라!"
"식물을 자라게 해서 벽을 쌓아!"
"인라지 마법으로 새로운 성문을 만들자!"
다크 엘프들이 창을 들고 위드를 향해 돌격해 왔다.
위드를 처리하고 씨앗을 심기 위해서였다.
인라지 마법!
식물을 순식간에 자라게 하는 엘프 특유의 마법.
그것을 이용해서 부서진 성문을 나무로 완전히 틀어막아 버리려고 했다.
엘프이므로 가능한 전술이었다.
"죽어라, 이 오크야!"
다크 엘프들은 적대감 가득한 눈으로 창을 찔러 왔다. 그들 셋의 합공!
"다 덤벼라. 취이이익!"
위드의 손에서 글레이브가 신묘한 움직임을 보였다.
돌고, 손아귀에서 벗어나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적을 향해 휘둘러진다.
파바박!
창대를 연속으로 후려치는 글레이브!
방어구 닦기나 다림질 스킬을 썻다고는 해도, 저 많은 창들에 맞으면 목숨이 위태롭다.
지금 입고 있는 방어구들은 한마디로 싸구려!
새로 장비를 구하기에는 시간이 모자랐다. 그렇다고 재료 아이템들을 상요해서 좋은 장비를 만들기에는 돈이 아까웠다.
오크로 변한 이후에 중갑옷을 입을 수 있게 된 것까지는 좋았는데, 재료도 그만큼이나 많이 들었던 것이다.
자고로 몸의 면적이 넓으면 옷감이나 철도 많이 드는 법.
위드는 사냥으로 줍거나 아니면 불순물이 많은 철을 이용해서 방어구를 만들어 입고 있었다.
그렇기에 다크 엘프들의 창술에 제대로 맞으면 순식간에 죽을 수도 있다.
"취이이이익!"
조각 파괴술을 전부 힘으로 전환한 만큼 지금 위드에겐 미칠듯한 힘이 흐른다.
(jjang5175왈 : 말이 조금 안되 잖아! 수정!ㄷㄷㄷ)
조각 파괴술을 이용하여 가지고 있던 예술 스텟을 전부 힘으로 전환한 만큼, 지금 위드에겐 미칠듯한 힘이 흐른다.
힘과 민첩으로 절반씩 나누었다면 더 강해졌겠지만, 조각 파괴술의 특성상 그것은 불가능했다. 오로지 힘!
창대를 쳐 낸 위드는 가운데 다크 엘프를 노리고 공격했다. 목표가 된 다크 엘프는 창을 돌려 막으려고 했지만, 위드의 글레이브는 그보다 훨씬 강했다.
퍼서석!
다크 엘프의 생명력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세 다크 엘프를 동시에 상대하면서 위드는 창을 완전히 피할 생각 따위는 버렸다.
날카로운 정면을 피해서 옆으로 몸을 움직였다. 최소한의 희생은 감수한 것이었다. 찔러 오는 창 사이로 뛰어들며 거대한 몸집으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는 글레이브.
힘과 기술이 절묘하게 조화되었다.
세 다크 엘프는 결국 위드를 이겨내지 못하고 죽었고, 성문은 위드가 장악했다.
위드는 사자후를 터뜨렸다.
"오크들이여, 취치이익. 모조리 부숴라. 빼앗아라. 약탈하라!"
스킬: 사자후를 사용하셨습니다.
사자후 스클의 영향 범위 안에 있는 모든 아군의 사기가 200% 상승합니다.
존재하는 모든 혼란 상태가 해제됩니다.
5분간 통솔력이 195% 추가 적용됩니다.
그간 다크 엘프들에 의해 피해만 입고 의기소침해 있던 오크들이 대번에 원기를 회복했다.
"취익!"
"싸우자, 취르르르!"
성난 오크들이 일제히 열린 성문을 통해 성안으로 진입했다.
다크 엘프들은 외성을 포기하고 마을에서 맞섰다.
위험한 함정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고, 장애물도 만들어져 있었다. 정령술과 마법, 궁술을 이용해 소수의 습격대를 운용하며 오크들을 괴롭혔다.
그러나 오크들은 무식하게 숫자로 밀어붙였다.
함정이나 장애물, 마법을 모두 밀어 버리는 오크들!
그들의 박력 앞에 다크 엘프들은 조금씩 세력을 잃어 갔다.
안전한 성벽 위에서 마나가 회복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오크들에게 노출된 것이다.
아직도 주력은 온전히 버티고 있으나, 오크들에게 조금씩 밀려서 마을의 외곽에다 방어진을 펼쳐야 했다.
"꾸엑, 이건 내 거다!"
"내가 먼저 집었다, 취칫!"
집으로 들어가서 약탈하는 오크들.
위드는 눈물을 삼키면서 그 광경을 바라봤다.
금이나 은과 같은 보물이라고 할 것은 없어도, 다크 엘프들은 매우 귀한 돌이나 과일 열매, 동물 가죽들을 모아 놓고 있었던 것이다.
팔면 당연히 돈이 되는 물건이고, 로자임 왕국에서는 몇 배나 되는 이득도 볼 수 있다.
본래 약탈한 물건은 원가가 들지 않은 만큼 명성도 얻기 쉬운 일이었다.
(원가 안드는 거랑 명성이랑 무슨 관련이 있는거지? 이윤을 얻기 쉬우면 모르겠지만..ㄷㄷ)
위드는 배가 심하게 아파 왔다.
당연히 약탈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그럴 겨를이 없었다. 프레야 교단의 퀘스트를 처리하기 위해, 네크로맨서의 신전! 그곳에 가야했다.
까마득한 절벽 위에 세워진 철옹성!
다크 엘프와 오크들의 전투가 벌어지는 그곳으로 부란과 베커, 호스람, 데일 들은 병사들을 데리고 기어오르고 있었다.
오크들이 침공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방향에 미리 매복하고 있다가 위드의 명령에 의해서 절벽을 타는 것이었다.
"끄으응!"
"힘내자."
병사들은 서로를 격려하면서 열심히 절벽을 기어올랐다.
까딱 손이라도 놓치면 그대로 떨어져서 죽으니 살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프레야 교단의 사제들도 거친 바람에 로브를 펄럭이며 절벽을 탔다.
체력이 약한 사제들이 아무 장비없이 절벽을 오르는 건 지극히 위험한 일이었다.
위드가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이들을 부릴 리는 만무했다.
뱀파이어 로드 토리도!
대형 박쥐로 변신한 그가 주위를 선회하며 병사들이 추락하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데스 나이트도 병사들을 따라 오르면서 힘이 빠진 이들을 도와주었다.
만약에 절벽 위에 다크 엘프가 적어도 몇 명이라도 지키고 있었다면 병사들은 몰살을 면치 못했겠지만, 다크 엘프들은 모두 오크들과의 전투에 동원되었다.
그 덕에 병사들은 아무 희생없이 절벽을 기어오를 수 있었다.
"이제야 왔구나."
위드는 병사들과 약속한 장소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예, 대장님. 저희들이 왔습니다. 이제 아무런 걱정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부란이 가슴을 탕탕치면서 대답했지만, 위드에게는 지극히 신뢰가 안 가는 일이었다.
'차라리 오크들이 믿음직스럽지.'
오크들의 규모, 전투 능력!
거기에 비한다면 병사들이나 왕실 기사들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로자임 왕국으로 무사히 귀환시켜 명성치를 되찾아야 하니 죽어서는 안 되는 이들이었다.
한마디로 전투에 별로 도움 안되는 상전들!
그러나 전투에 적극적으로 참여시켜서 병사들을 성장시켜야 위드에게도 공적치라는 떡고물이 떨어지는 것이니 억지로 이곳까지 끌고 와야 했다.
"네크로맨서의 신전으로 최대한 빨리 가자."
위드는 왕실 기사와, 토리도, 데스 나이트를 앞세워서 길을 뚫었다.
"취췻! 그들은 누구냐!"
오크들을 만나면 위드는 한마디만 외쳐 주면 될 뿐이었다.
"이들은 내 포로다. 건들지 마라. 취잇!"
"인간을 잡다니 부럽다. 췩췩!"
(데스 나이트랑 토리도는 어케 된거냐. 오크. 너네들은 맹인..아니 맹오크냐;;ㄷㄷ)
위드가 여전히 오크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오크들을 만나면 간단히 해결이 되었다.
네크로맨서의 신전 앞에는 다크 엘프들이 쓰러져 있었다.
위드는 병사들과 함께 신전 내부로 들어갔다.
슈샤아악!
음침한 기운이 감도는 신전 내부!
"취치칫!"
어딘가에서 오크들의 콧바람 소리가 들렸다.
이곳에도 오크들이 난입해서 다크 엘프들과 전투를 하고 있는 것이리라.
"시간이 없다. 네크로맨서들만 잡는다."
위드는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옛, 대장님!"
오크들과 다크 엘프들! 모조리 죽이면 그 전리품이 만만치 않을 테지만 시간을 아껴야 했다.
'프레야 교단의 퀘스트를 해결하는 게 우선이야.'
괜한 욕심을 부려 시간을 지체하다가 오크들이 네크로맨서들을 다 죽이기라도 하면 큰일이 난다. 위드는 곧바로 네크로맨서들이 있을 신전의 내부로 향했다.
"취익!"
"이 미개한 오크들!"
다크 엘프와 오크들은 서로 싸움을 벌이고 있었기에 위드는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이곳은 지나갈 수 없다!"
다크 엘프들이 길을 막으면 사제들이 마법을 외웠다.
"여신의 아름다움은 만인의 눈을 멀게 만든다. 블라인드!"
눈을 멀게 만들고, 토리도와 데스 나이트가 임시로 상대해 주면서 모든 관문을 돌파!
위드는 곧 네크로맨서들이 있는 장소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큰 지도가 걸려 있었다.
유로키나 산맥의 지도!
다크 엘프의 성이 있는 장소는 검은 점이, 그보다 동쪽에 붉은 점이 찍혀 있었다.
"뱀파이어 로드 토리도! 토리도가 어떻게 이곳까지! 설마 인간에게 굴복한 것인가. 그리고 신...성력이 느껴지는 이들은 프레야의 사제들!"
검은 로브를 착용하고 있는 네크로맨서들은 놀라움을 표시했다.
네크로맨서들은 총 12명이었다.
그들은 뼈로 된 지팡이와 마력이 느껴지는 구슬을 쥐고 있었다.
위드는 조각 변신술을 해제하고 앞으로 나섰다.
"사악한 네크로맨서들아, 이곳이 너희들의 무덤이 될 것이다."
위드가 눈짓하자, 토리도와 데스 나이트는 양 옆으로 펼쳐지듯 자리를 잡았다.
사제들은 신성 마법을 쓸 준비를 하고, 병사들은 전투가 벌어지면 언제라도 튀어 나갈 준비를 했다. 왕실 기사들은 네크로맨서들을 1명씩 맡았다.
네크로맨서들의 제일 까다로운 마법은 저주와 어둠의 군대를 불러내는 것! 바로 죽은 자들을 언데드로 만드는 것이었다.
스켈레톤과 구울, 좀비, 혹은 그 이상의 강한 언데드 몬스터들!
시체를 이용한 다양한 흑마법은 마법사 계열에서 네크로맨서들을 최강의 존재로 만들어 주었다.
"프레야의 종... 네가 우리의 일을 망쳤구나."
주위를 둘러본 네크로맨서들은 음울한 어조로 말했다.
시체가 없었으므로 네크로맨서들이라고 해도 전투력이 반감될 수밖에 없다.
이미 그들의 사기는 최저까지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네크로맨서의 수장인 듯한 이는 싸울 의사마저 보이지 않았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왔구나. 결국 이렇게 되고 마는가. 한번 잘못 끼운 단추는 영영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것인가."
"바라볼 님!"
네크로맨서들이 안타까운 듯이 외쳤다.
바라볼은 고개를 저었다.
"평생 신의 섭리를 믿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이 순리라면 나는 따를 준비가 되어 있다. 나를 죽여라."
바라볼은 천천히 걸어 나와 위드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바라볼님, 저희들도 함께 하겠습니다."
다른 네크로맨서들고 마찬가지로 무릎을 꿇었다. 왕실 기사들이 언제라도 그들의 목을 칠 수 있게 말이다.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사악함에 물들지 마라."
위드는 검을 뽑아 들었다.
네크로맨서들의 목을 자르기 직전!
네크로맨서들을 죽이면 프레야 교단의 퀘스트를 완수할 수 있다. 그런데......
'잠깐... 이건 무언가가 이상하다.'
위드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생각.
얼렁뚱땅 달빛 조각사로 전직한 아픔!
그 덕분에 일이 순조롭게 처리되면 위드는 의심부터 하게 됐다.
'퀘스트의 난이도는 대충 맞는 것 같은데....'
본래 이 퀘스트는 난이도가 B급이었다.
뱀파이어 로드 토리도와 진혈의 뱀파이어 일족을 처리하는 임무 또한 난이도 B급의 퀘스트였다. 그야말로 죽을 고생을 다하면서 완수한 퀘스트다.
이번에 네크로맨서들을 퇴치하라는 임무도 나름대로 상당히 어려웠다. 이들과 한편인 다크 엘프들을 피해서 이곳까지 들어와야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정작 마지막에 네크로맨서들이 너무 순순히 죽어준다는 말이지!'
위드는 갈등에 갈등을 거듭했다.
퀘스트를 바로 끝낼 수는 있다. 헤레인의 잔과 파고의 왕관을 되찾는 것에 이은 연계 퀘스트!
당연히 프레야 교단으로 돌아간다면 많은 보상을 받을 수도 있으리라.
꼴깍!
바라볼과 네크로맨서들이 들고 있는 뼈 지팡이와 마력구슬.
'저건 최소한 레어 급 아이템인데... 저것들을 내다 팔면 못해도 백만 원은 되겠다. 특별한 옵션이라도 달려 있으면 가격은 천정부지로 뛸 테지. 그런데 저런 아이템 1~2개도 아니고....'
강렬한 유혹에 위드는 군침을 삼켰다. 들고 있는 검에 저절로 힘이 실렸다.
바라볼의 목을 베기 위해 조금씩 다가가는 검.
그런데 그렇게 되면 영영 이 찝찝함은 해결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쿵쾅쿵쾅!
위층에서 들려오는 오크들의 발걸음 소리.
시간이 많지 않았다.
위드는 검을 거두었다.
"말하라, 네크로맨서들이여. 너희들이 생각하는 신의 섭리가 무엇이며, 잘못 끼운 단추는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보통 사람들이었다면 재빨리 네크로맨서들을 죽이고 퀘스트를 완수했겠지만, 위드는 시간을 끌었다.
"위드님!"
"저들을 처단하는 것이 프레야 여신님의 뜻입니다!"
사제들이 조금 투정을 하였지만, 말 그대로 투정일 뿐이었다.
위드의 신앙심은 사제들을 압도하고 있다.
그런 만큼 사제들은 금세 불만을 거두었다.
바라볼은 고개를 들고 물었다.
"나를 죽이지 않는 것인가, 프레야의 종."
"나는 종이 아니다. 그리고 너희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라. 나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있는가?"
"우리들은....아니다. 그리고 너희들이 우리의 이야기를 믿어 줄리가 없다. 꺼져라, 프레야의 종들! 지옥에 가서도 너희들을 저주하겠노라."
"....."
당장이라도 목을 쳐 버리고 싶었지만, 기왕 인내심을 발휘하기로 했으니 조금 더 참기로 했다.
"기회를 주겠다. 믿음과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너희들이 진실한 말을 한다면 나 역시 너희들을 믿어 주겠다."
"정말인가? 약속할 수 있는가?"
"그렇다. 그러나 다만 너희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뿐이지, 너희들을 죽이지 않는다는 약속은 아니다."
바라볼은 잠시 망설이다가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렇게까지 말하니 이야기해 주겠다. 세상은 바르칸 데모프 님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다. 바르칸 데모프 님은 불사의 방법에 대해 연구를 하던 진실한 마법사였다. 그런데...."
바르칸은 마법적인 열정으로 가득한 사내였다.
마법에 대한 그의 재능은 전 대륙에서 인정해 줄 정도로 천재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불사의 연구를 진행하게 된다.
왜 인간이 죽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 불치병으로 죽어가는 인간들을 보살피기 위해 시작한 연구였다. 그런데 그의 제자 샤이어는 세상을 향한 앙심을 품고 있었다.
"샤이어라는 자는 간악한 술수를 이용해 바르칸 님을 어둠의 힘에 종속시켰다. 그러면서 불사의 연구를 엉뚱한 방향으로 활용하여 언데드 군단을 만들어 냈다. 죽어도 금방 되살아나는 언데드 군단! 어둠의 마나의 힘에 빠져 버린 바르칸 님은 더데드 군단과 함꼐 이성을 잃고 세상을 파괴했다. 샤이어는 각 어둠의 세력과 결탁해서 불사의 군단을 이끌었지. 바르칸 님의 옆에서 헐겁을 일으키는 데 동참했던 우리 네크로맨서들의 스승들 또한 이 죄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리라. 우리들은 벨제뷔트의 신전에 있는 고서적에서 이러한 사실을 알아내고, 피와 죽음을 연구하는 네크로맨서로서 모든 것을 원래대로 만들려고 한다. 어둠의 마나에 잠식된 바르칸 님을 정상으로 되돌리고, 이 모든 악의 근원인 샤이어를 처단하는 것이다."
띠링!
정말의 평원에 사는 유배자들 완료.
사악함에 사로잡혀 있는 것으로 알려진 네크로맨서들은 본래의 마나가 가진 순수함을 일지 않았다. 그들은 세상을 향한 복수가 아닌, 잘못된 것을 원래대로 돌리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었다.
퀘스트 보상: 프레야 교단의 대사제에게 받으십시오.
위드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퀘스트 성공!
'굳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