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 조각사 10권 (15/520)

「 달빛 조각사 10권 」

[제 1부.해골 병사 위드]

로열 로드의 홈페이지는 다시금 달아오르고 있었다.

최초는 차가운 장미 길드에서 명예의 전당에 올려놓은 동영상으로 시작되었다.

 보십시오! 이것이 북부 원정대의 싸움입니다.

흰 설원에서 시작하여 죽음의 계곡으로 들어가서 벌어지는 전투!

악령 병사나 하수인, 리저드 킹들과 원정대가 싸우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로열 로드 내의 전투가 오베론 명의로 명예의 전당에 등록되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반응은 시시했다.

 "이번에는 어떤 계곡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나 보죠?"

 "또 무슨 허탕을 치려고 저러지?"

사람들은 원정대에 미련을 버렸다. 베르사 대륙의 시간으로 2달이 넘도록 헤매고 있는 원정대는 비웃음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이 바뀌게 된 것은 동영상이 좀 더 진행되고 난 이후였다.

죽음의 계곡으로 깊숙하게 들어가게 되면서부터 나타나는 몬스터의 숫자가 대폭 늘어났다. 정체가 알려지지 않은 엠비뉴의 사제들이 뿌려대는 마법과 원정대의 분전!

 "볼만한데......"

 "역시 명문 길드가 이끄는 원정대답네요. 저런 몬스터들과 호각으로 싸우고 있잖아요."

 "굉장한 전투네."

흰 눈과 얼음으로 둘러싸인 죽음의 계곡에서 펼치는 원정대의 사력을 다한 돌파는 흥미진진했다. 박진감 넘치는 액션영화를 보는 것처럼, 실제 그들 중의 한 사람이 되어서 싸우는 느낌을 주었다.

소문들 듣고 동영상을 시청하는 사람들이 급속도로 늘었다. 명예의 전당은 늘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늘어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분위기가 뭔가 해낼 것 같기도 한데요?"

 "에이, 설마요."

 "등장하는 몬스터들의 수준이 상당히 높아요. 북부라고 해도 저렇게 강한 몬스터들이 떼를 지어서 나오는 곳이 흔하진 않을 텐데......"

 "이번엔 제대로 찾아간 걸까요?"

사람들은 반신반의했다. 그러면서 원정대에 기대를 거는 이들도 생겨났다.

 "용기 있게 북부 대륙까지 탐험을 떠난 원정대는 처음이잖아요. 믿고 기다려 봅시다."

 "원정대가 성공했으면 좋겠네요."

 "후덥지근하고 더워 죽겠어요. 이마에서부터 땀이 줄줄 흘러서 움직이기도 힘들어요. 체력도 금방 소모되고요."

 "서늘한 던전이나 강물 근처는 인산인해라니깐요. 명문 길드들이 차지하고 있는 곳은 차마 들어갈 수도 없고."

 "움직임이 적은 마법사나 성직자들은 낫죠. 전사들은 정말 못 해 먹겠습니다."

베르사 대륙이 더워진 이후로 사람들은 저마다 힘들어하고 있었다.

던전이나 산에 있는 사냥터의 가치가 폭등했다. 체력 소모가 심해져서 사냥도 훨씬 어려워졌고, 각 길드들은 영역을 확장하기 위하여 더욱 치열하게 전쟁을 벌였다.

다만 그러는 와중에도 즐거움을 누리는 이들은 물론 있었다.

재봉사들에게는 그동안 만들어 본 적이 없는 비키니의 주문이 쇄도했다. 몸을 검게 태운다면서 갑옷과 옷을 벗고 선탠을 즐기는 글래머 여성들, 근육질 남성들이 출현한 것이다.

이는 로열 로드에 나타난 또 하나의 변화였다.

강가에는 수영을 하는 살마들이 대폭 늘어나고, 축제가 끊이지 않는다.

한여름의 바닷가처럼 더위를 잊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사람들!

여유로운 마음만 있다면 어디서든 즐거울을 찾을 수 있었다.

강가나 바닷가의 마을과 성들은 눈요기를 하기 위해 모여든 인파로 붐볐다.

하지만 그래도 더위를 미친 듯이 좋아하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한낮에는 강물마저도 미지근할 정도라서 수영을 즐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억지로 더위를 참으면서 활동하고 있었으니 조금씩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원정대가 성공을 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이번에야말로 잘해야 할 텐데."

 "부디 잘 해내기를......"

사람들은 응원을 하기 시작했다. 원정대가 성공하고 돌아오기를 기원하고 있었다.

 "그런데 만약에 정말로 성공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야 차가운 장미 길드는 엄청난 명성을 얻겠죠. 신규 유저를 대거 받아들이면서 부와 세력까지 형성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과연 그걸로 끝날까요? 오베론의 신망과 인덕, 거기에 이런 무모한 도전까지 하는 용감한 길드라면 상상 이상으로 커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최소한 서열 5위권 내로 도약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명예의 전당에 올라오는 동영상을 보는 유저들은 그러한 전망을 내리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가 글을 올렸다.

체이스라는 별명을 가진 유저였다. 모르는 사람보다는 아는 사람이 훨씬 많은 로열 로드의 유명인이다.

1달쯤 전 퀘스트를 하던 도중에, 주점의 주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체이스가 글을 올리니 모든 사람들이 집중했다.

 "체이스 님이다."

 "서열 100위 안에 들어간다는 고레벨 유저? 평소에 글을 잘 쓰지 않는 분인데 도대체 무슨 일일까?"

잔뜩 호기심을 자극한 이후에 체이스는 느긋하게 다음 글을 올렸다.

 제가 들은 이야기는 간단합니다.

 '대륙의 날씨를 다시 시원하게 만들려면 어떤 마녀가 가지고 있던 물건을 신의 제단에 바쳐야 된다.'

 신의 제단은 에데른에 있죠. 그래서 베르사 대륙의 역사서를 보며 마녀들에 대해서 정보를 조사해 왔습니다. 그 결과 얼음의 마녀 세르비안에 대한 기록을 찾아냈죠.

 마녀의 깨진 구슬.

 베르사 대륙의 역사서를 통해서 알아낸 정보입니다. 그 물건은 위치를 알 수 없는 어떤 계곡에 있다던데... 아마도 원정대가 전투를 벌이고 있는 장소가 바로 그곳인 것 같습니다.

체이스의 글은 활활 타오르던 곳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원정대가 마녀 세르비안의 깨진 구슬이 있는 곳을 찾아냈다.!"

 "원정대가 하는 전투가 베르사 대륙의 더위와 관련이 있을 거라고 체이스 님이 말했어!"

 "드디어 베르사 대륙의 더위를 날려 버릴 수 있는 퀘스트가 진행되고 있는 건가?"

마녀 세르비안의 깨진 구슬은 일종의 액세서리에 해당이 되는 물품이었다. 특별한 힘은 없지만 주변의 기후를 조종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끊임없이 사용자의 생명력을 갉아먹으며, 빙계 마법을 전문적으로 익힌 마법사가 아니라면 건드리는 것만으로 몸이 얼어 버린다는 저주받은 아이템이었다.

사람들의 이목은 명예의 전당에 올라오는 동영상에 집중되었다.

KMC미디어, CTS미디어를 비롯한 게임 전문 방송국에서도 정규 방송을 중단하고 속보를 내보내기로 결정했다. 베르사 대륙의 소식들을 실시간으로, 정확히 알려 주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이러한 큰 이슈를 놓칠 수 없었다.

방송 화면이 죽음의 계곡 전투를 보여 주는 가운데, 원정대는 마침내 죽음의 계곡 깊숙한 곳까지 다다랐다. 그리고 그곳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떠올랐다.

본 드래곤!

언데드 최강의 생명체였다.

     * * * * * *     

본 드래곤이 포효하며 발을 구를 때마다 지축이 뒤흔들렸다.

쿠아아앙!

 "으악! 피해!"

 "당이 갈라진다.!"

 "벽에 가까이 붙지마라! 위에서 얼음 덩어리들이 굴러 떨어지고 있어!"

원정대원들은 혼란에 빠졌다.

단 한 번도 잡힌 적은커녕 나타난 적도 없는 본 드래곤.

이곳이 보통의 평원이라면 훨씬 쉽게 싸울 수 있었으리라. 대지에 발을 붙이고 생명력이 다할 때까지 시원하게 적과 붙으면 된다.

그런데 이곳의 땅바닥은 얼음이다. 굉장히 미끄럽고 불안정하다. 설상가상으로 본 드래곤이 움직일 때마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렸다.

 "기사들은 돌전하라!"

 "망할. 균형을 잡기가 힘들어!"

검을 들고 달려가던 기사나 검사, 워리어 들은 얼음이 흔들릴 때마다 미끄러져 넘어지기 일쑤였다. 아무리 강력한 돌격이라 하여도 발이 꼬이는 것은 막을 수 없었던 것.

원정대 사이에서 불평이 터져 나왔다.

 "이대로라면 뭉쳐 있다가 개죽은을 당한다. 마법사들은 뭣 하나. 공격 마법을 사용해!"

 "마법을 쓰려고 해도... 빌어먹을! 본 드래곤의 포효 때문에 몸이 말을 안 듣는다."

본 드래곤의 포효.

일종의 드래곤 피어였다.

열등한 생명체에게 가하는 정신적인 압박!

멧돼지나 여우 같은 짐승들은 수천 마리가 모여 있다고 해도 모두 쓰러져 죽어 버린다.

그런 가공할 본 드래곤의 정신적인 공포에 마법사들은 몸을 떨었다.

 -마법이 실패하였습니다.

  마나가 역류합니다.

수인을 맺는 손이 떨리고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애써 성공한 주문들도 열에 아홉 이상이 실패하고 있었다.

 "파, 파이어...월. 크아아악!"

공격을 하려던 마법이 실패하여 오히려 마법사의 몸에 불이 붙어 활활 타올랐다.

그런 광경들은 마법사들의 입을 얼게 만들었다.

 "맙소사. 세상에......"

 "이런 몬스터는 처음 봐."

본 드래곤의 레벨을 400대 후반 정도로 알려져 있다.

원정대에는 레벨이 300대 후반인 유저들도 상당수 있었다. 하지만 레벨 100개 정도의 차이라고 말하기에는 믿기 힘들 정도의 강함이었다.

레벨은 높아질수록 그 격차를 더욱 현격하게 드러낸다.

더군다나 본 드래곤은 대형에 마법과 비행이 가능한 보스몬스터!

더욱 상대를 하기 힘든 이유였다.

 "어, 리, 석, 은, 인, 간, 들, 이, 여!" 

본 드래곤이 의사를 전달했다.

뼈로만 만들어진 몸..

눈이 있어야 할 부위에 검푸른 광채가 빛나고 있었다.

 "이, 곳, 은, 모, 든, 이, 들, 의, 무, 덤."

본 드래곤이 말을 할 때마다 얼음들이 저절로 파열됐다. 

 "너, 희, 들, 의, 안, 식, 처, 가, 될, 장, 소, 이, 다."

본 드래곤은 뼈로 된 날개를 펼쳤다.

파라라락!

몸에 접고 있을 때도 컸던 날개가 활짝 펼쳐졌다.

죽음의 계곡을 가득 덮을 정도로 넓은 날개.

본 드래곤은 웅장하게 하늘로 치솟았다. 긔고 거꾸로 하강하며 발과 머리를 이용해서 사람들을 집어삼켰다.

 "젠장."

 "제대로 걸렸구나. 여가기 우리의 무덤이 되고 말 거야!"

차가운 장미 길드만 믿고 따라온 일부 원정대원드르이 눈가에 절망이 어렸다.

본 드래곤!

신화에서나 나오던 전설적인 몬스터와 싸워야 하다니.

하지만 차가운 장미 길드는 오히려 더욱 의욕에 불타올랐다. 동맹 길드들 또한 조금도 투지를 잃지 않았다.

 "본 드래곤이다."

 "놈을 사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본 드래곤이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사냥당한 적이 없는 몬스터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그 이유가 본 드래곤이 무적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대륙에서는 본 드래곤이 발견된 적이 없다. 즉 대단히 희귀하다는 특성상, 단지 만날 수가 없었을 뿐이다.

레벨이 400이 넘는 보스 급 몬스터들은 출현하자마자 던전을 장악하고 있는 길드들이 힘을 모아 집단 사냥에 나선다.

본 드래곤이라고 해도 결국은 몬스터!

 "공격해라!"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놈을 처치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여기까지 온 것이 무의미한 일이 될 거야."

오베른이 이끄는 원정대는 본 드래곤을 향해 우르르 달려들었다.

쿠르르릉- 쾅쾅!

본 드래곤이 사용하는 화염 마법, 빙계 마법이 작렬했다. 검사, 기사, 워리어, 팔라딘 들이 그 사이를 뚫고 용감하게 돌진했다.

 "크, 아, 아, 아, 아!"

본 드래곤의 절규.

죽음의 계곡의 언덕에서 산사태가 일어난다. 눈과 얼음들이 거침없이 흘러내렸다.

 "마법사 부대는 공격 마법을! 뭐든 써서 본 드래곤을 격추 하라!"

오베론의 지휘에, 마법사들은 목숨을 걸고 따랐다.

 "내 모든 마나를 이곳에 모아......"

 "환하게 불태우리니......"

 "적을 향한 분노의 일격이 되어라."

 "마나 번!"

마법사들이 가지고 있는 마나를 한꺼번에 사용하는 공격마법.

그 후에는 마나가 소진되어서 장시간의 휴식이 필요하기에 잘 사용하지 않는 마법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너무나 급박했다.

땅바닥의 얼음들이 쩍쩍 갈라지고, 양옆의 절벽에서는 눈과 얼음들이 쏟아진다. 이러한 혼란 상황에서는 본 드래곤에게 강력한 일격을 먹여 줄 필요가 있었던 것.

마법사들로부터 생성되어 일제히 날아간 빛의 기둥들이 본 드래곤에게 작렬했다.

상당수 마법사들은 마법 실패로 인하여 목숨을 잃었지만, 그러한 희생마저도 감수했다.

꽈아아앙!

하늘을 날아다니던 본 드래곤은 그대로 지상으로 추락했다. 얼음이 크게 부서지면서 바닥에 거꾸로 처박힌 것이다.

 "이때다."

 "지금이 기회야."

 "다시 날 수 없게 만들자."

 "공격하라!"

원정대의 전사들은 추락한 본 드래곤을 향해 쇄도했다.

 "크, 오, 오, 오......!"

본 드래곤은 뼈마디로 이루어진 꼬리를 채찍처럼 휘두르며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했다.

 "쳐라!"

오베론이 용감하게 부르짖으며 땅딸막한 몸으로 뛰어올랐다. 공중에서 날렵하게 2회전을 하며 망치로 본 드래곤의 몸통을 두들겼다.

강하게 두들긴 한차례의 공격에는 오베론의 전력이 다 들어 있었다.

 "윙 스매쉬!"

일정 확률에 따라 상대방을 스턴 상태에 빠지게 만들며, 그 자체의 데미지도 굉장한 워리어 전용 스킬!

본 드래곤은 대형 몬스터라서 물리적인 스턴 공격에는 면역이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그 데미지는 여지없이 들어갔다.

다른 워리어나 팔라딘, 검사, 기사 들도 본 드래곤에게 다가가서 칼질을 개시했다.

 "연속 베기!"

 "스마이트!"

 "홀리 어택!"

무려 200여명의 고레벨 유저들이 붙어서 공격을 한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처럼 차곡차곡 본 드래곤을 두들기고 있었다. 본 드래곤이 거대한 육체를 움직이며 저항했지만, 워리어들이 선두에 서서 그러한 공격들을 몸으로 받아 주었다.

성직자들은 그들의 떨어지는 체력과 생명력을 회복시켜 주기에 바빴다.

다른 원정대원들도 정신을 차렸다.

차가운 장미 길드나,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동맹 길드 소속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북부까지 따라올 정도로 용기 있는 자들인 만큼 힘을 내서 싸웠다.

 "우리가 본 드래곤을 죽이는 건 힘들겠지만, 나머지 몬스터라도 처리하자."

 "사제들 그리고 악령 병사, 추종자 들이 우리의 몫이다."

원정대원들 일부는 몬스터 소탕전에 나섰다. 그러면서 죽음의 계곡 안은 난전에 접어들었다. 

오베론이 소리쳤다.

 "드럼!"

 "예, 대장!"

 "얼마나 더 쳐야 되지?"

 "지금 확인해 보겠습니다."

드럼은 로브를 휘날리면서 민첩하게 얼음 바닥을 쭉 미끄러져 왔다. 그가 사용하려는 마법은 일정한 간격 안에서만 통하기 때문이다.

 "움트고 있는 생명력, 그 전부를 보여 다오. 뷰 라이프 포스!"

몬스터의 상태와 잔여 생명력을 확인할 수 있는 마법.

드럼의 눈앞에 본 드래곤의 상황이 떴다.

띠링!

 본 드래곤 쿠렌베르크

 사악한 악룡이 증오의 힘을 버리지 않아 언데드로 되살아났다.

 본래 포악한 레드 드래곤이었지만 언데드로 변한 이후 더욱 광폭해졌다.

 생명력 : 74%

 마  나 : 12%

 "커억!"

드럼은 숨이 멎을 것처럼 놀랐다.

신나게 본 드래곤을 때리고 있던 오베론이 물었다.

 "얼마나 남았지?"

 "아직도 74%나 남았습니다."

 "뭐라고?"

 "본 드래곤의 생명력이 어마어마합니다. 죽으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는 얘깁니다."

지금까지 때려 놓은 것이 겨우 약 사분의 일 정도!

대형 몬스터 본 드래곤답게 무지막지한 생명력을 자랑했다.

     * * * * * *

위드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팔다리에는 힘이 넘치고 몸은 너무나도 가볍다.

 "이것은?"

위드는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고는 깜짝 놀랐다. 앙상한 해골에 갈비뼈, 근육과 살이라고는 전혀 붙어 있지 않았다.

 "내가 스켈레톤으로 변한 건가?"

해골 병사.

그것도 보스 급이라고 할 수 있는 근원의 스켈레톤으로 변하고 말았다.

위드는 과거를 떠올렸다.

불사의 군단 퀘스트를 해결했을 때였다. 그때에 바라볼로부터 죽음을 거부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본 드래곤의 브레스에 의하여 생명력이 다 떨어진 이후, 스켈레톤으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보다도, 급한 일이 있지."

위드는 서윤과 알베론의 안위부터 확인했다.

본 드래곤의 브레스가 보급대를 쓸어버렸지만 서윤은 그 전부터 몬스터들과 싸우고 있었기에 화를 면했다.

알베론도 다행히 아직 무사했다.

사제가 상인들이나 생산직 직업들이 모여 있는 보급대에 붙어 있어봐야 득 될 건 하나도 없다. 

알베론의 레벨과 스킬이 상승될 때마다 프레야 교단의 공적치가 오른다. 축복과 치료를 통해 레벨을 올리라고 원정대의 성직자들이 모여 있는 장소로 파견했는데, 그 덕에 살 수 있었던 것이다.

위드는 파티가 설정되어 있는 알베론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알베론.

알베론은 주변의 다친 사람들을 바쁘게 치료하던 중에도 즉시 반응했다. 위드와의 친밀도가 있으니 어떤 경우라도 말을 잘 듣는 편이었다.

 -위드 님, 살아 계셨군요. 돌아가신 줄 알았습니다.

 -프레야 여신님의 가호 덕분에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정확히 말하자면 네크로맨서들의 능력에 의한 것이지만, 이 또한 여신님의 축복이 있기에 가능했을 테니.

 -모든 조화가 여신님의 뜻대로.

 -모든 조화가 여신님의 뜻대로.

상대방을 치켜세우는 것만이 아부가 아니다. 상대방이 존중하는 대상도 아부의 수단으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위드의 아부는 조금이라도 불리한 상황에 처하면 저절로 튀어나왔다.

언데드로 변한 것을 프레야 교단의 사제인 알베론에게 지적당하여 친밀도가 하락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친밀도가 수준 이하, 신뢰도마저 낮다면 언데드로 변한 것 때문에 알베론이 변절할 수도 있다. 하지만 착한 알베론은 위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었다.

 -그보다도 알베론, 명령이다. 이 죽음의 계곡에서의 모든 치료와 지원 행위를 중단해.

 -예. 위드 님의 말씀이라면 따르겠습니다.

 -우선 조심해서, 눈에 띄지 않게 뒤쪽으로 물러 나오도록.

알베론은 전투의 와중에 몸을 뒤로 뺐다.

성직자들이나 마법사들은 마나 보충을 위한 명상을 위해서라도 별도로 휴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았으니 의심을 사진 않았다.

위드는 이번에는 금인이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금인아.

 -주인. 골골골!

 -와일이와 같이 알베론을 우리가 머물렀던 은신처에 데려다 놓고 와라.

 -알겠다, 주인!

위드는 금인이와 와이번까지 동원해서 알베론을 피신시키도록 했다.

 '어차피 내가 스켈레톤으로 변해 버려서 신성력이 통하지도 않으니까.'

게다가 알베론을 그대로 내버려 두어도 될 만큼 전투가 안전하질 못했다.

 "크악!"

 "놈들의 저주 마법을 막아!"

 "사제들부터 처리해야 된다."

엠비뉴 교단의 사제들과 몬스터들!

본 드래곤으로 인하여 죽음의 계곡은 아비규환이나 다를바가 없었다.

어떤 눈먼 공격에 알베론을 위태롭게 만들지 모른다. 알베론이 죽으면 퀘스트는 물론이고, 프레야 교단과의 우호도도 최악으로 떨어진다. 경험치와 스킬 숙련도를 위하여 위험을 감수하기에는 부담이 너무 컸다.

알베론을 후방으로 돌리고 나서야 위드도 약간 숨을 돌릴 여유가 생겼다.

 "스탯창!"

 캐릭터 이름 : 위드     성향 : 언데드

 레벨 : 319             직업 : 근원의 스켈레톰

 생명력 : 35,080        마나 : 28,210

 힘 : 1,050             민첩 : 969

 체력 : 713

 지혜 : 663             지력 : 655

 투지 : 598             지구력 : 406

 인내력 : 497           맷집 : 387

 *죽음을 거부할 수 있는 힘이 발휘되고 있음.

  언데드 상태에서 사용하는 스킬들의 레벨은 죽음을 거부할 수 있는 힘의 숙련도에 좌우됩니다. 

  다만 최초에도 초급 8레벨의 스킬 레벨이 부여됩니다.

스텟들이 변화해 있었다.

생명력과 마나, 힘, 민첩 등이 비정상적으로 증가했다.

 "직업의 특성인 것이군."

위디는 턱뼈를 들썩이며 말했다.

예술이나 통솔력, 행운, 신앙 등이 사라진 대신에 기본적인 전투 계열 스탯들은 큰 폭으로 올라 있었다.

 -프레야의 교단에서 축복을 내린 탈로크의 갑옷은 성향이 다른 언데드 상태에서는 착용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오히려 육체를 약하게 만들것입니다.

 "아이템 해제"

위드는 탈로크의 갑옷을 벗어서 배낭에 넣었다. 다른 장비들도 언데드 상태에서 착용하기 껄끄러운 것들은 모조리 벗어 버렸다.

대장장이 스킬이 중급에 오라서 직업의 제한을 덜 받더라도, 애초에 성향이 다른 물건들이었다.

 "조금이라도 괜찮은 물건들은 전부 속성이 좋은 쪽으로 붙어 있으니까."

프레야 교단의 일을 상당수 맡아 하면서 딱히 입을 만한 방어구들이 없었다.

그 대신 위드는 배낭을 주섬주섬 뒤적여서 다른 물건들을 꺼냈다.

성자의 지팡이!

리치 샤이어를 잡고 얻은 물건이었다.

띠링!

 -성자의 지팡이를 착용하였습니다.

  언데드의 속성에 맞춰 지팡이의 속성도 변합니다.

  지팡이의 진정한 힘이 깨어납니다.

  흑마법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성자의 지팡이를 착용했다. 그러자 뼈밖에 남지 않은 위드의 전신에서 무럭무럭 시커먼 기운들이 퍼져 나왔다.

 "감정!"

 타란한 성자의 지팡이 : 내구력 90/90. 공격력 79~98.

 인간들에게 위대한 성자로 추앙받던 고리안에게는 숨겨진 비밀이 있었다.

 그는 인면수심의 악마였다.

 피와 살육, 뇌물을 즐기던 부패하고 타란한 성자!

 지팡이에는 강력한 마력이 깃들어 있다.

 제한 : 어둠의 계열의 직업.

        성직자나 성기사들이 착용할 경우 지팡이의 속서이 변함.

 옵션 : 신앙 -600

        매력 -200. 지구력 +100.

        지능 +80. 지혜 +100

        마법 공격력 35% 증가.

        험난한 지형에서의 체력 소모 감소.

        인간을 죽일 대 악명 30 상승.

        살아 있는 제물을 바쳐 생명력과 마나를 회복할 수 있다.

        흑마법 사용 가능.

        악인의 손에 들어가면, 추가적으로 나쁜 힘을 상승시킴.

언데드 상태에서 진정한 힘에 눈을 뜬 타락한 성자의 지팡이!

위드는 크게 만족스러웠다.

 "역시 나쁜 짓을 해야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이야. 어리바리 착하면 남들에게 이용이나 당하고, 서러움만 쌓이기 마련이지."

먼저 때린 놈이 이긴다.

한 대라도 더 때려야 속이 시원하다.

맞으면 잠이 안 온다.

돈 많은 놈이 장때이다!

이런 주옥같이 명언들도 있지 않은가.

역시 세상은 바르고 곧게 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위드가 착용할 수 있는 물품은 몇 가지가 더 있었다.

 "감정!"

 바르칸이 직접 저술한 네크로맨서의 마법서 : 내구력 30/30

 흑마법에서 두 번째로 어려운 학문인 언데드의 제조에 대해 적혀 있는 마법서. 기초 수준에서부터 고급 단계에 이르기까지 언데드에 대한 모든 제조법이 적혀 있다.

 천재적인 마법사 바르칸 데모프가 직접 저술하여,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다만 언데드를 생성하고 다루는 데에는 막대한 마나가 필요하므로 함부로 사용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제한 : 직업 마법사. 레벨 300. 지혜 500. 마나 8,000

        네크로맨서로의 전직이 가능함.

 옵션 : 흑마법에 대한 저항력 +25

        언데드를 제조하는 능력 +2

        지성을 갖춘 보스 언데드를 만들 수 있다.

        언데드의 생명력이 향상되며, 신성력에 대한 저항력이 생긴다.

 "나쁘지 않군."

근원의 스켈레톤.

스켈레톤 메이지와 스켈레톤 워리어의 특성을 골고루 갖추고 있는 덕분에 네크로맨서의 마법서를 읽을 수 있었다.

붉은색으로 쓰여 있는 수많은 주문들.

네크로맨서의 마법들이 잔뜩 수록되어 있다. 언데드를 제조하는 마법들도 있지만, 공격마법들도 상당수 적혀 있었다.

위드는 우선 본 드래곤을 제조하는 마법부터 읽었다.

 바르칸이 직접 저술한 쉬운 언데드 제조법

 본 드래곤 : 모든 마법사들이 만들어 보고 싶어 하는 최강의 언데드.

 드래곤의 사체가 반드시 필요하며, 다수의 마법 시약들을 투입해야 함.

 좀비나 구울처럼 즉시 일으킬 수 있는 몬스터와는 달리, 생성하는 데 최대 백 일의 시간이 걸린다.

 마법 방어력과 지적인 능력은 정상적인 드래곤에 비하면 현저히 떨어지지만 생명력과 육체를 활용하는 능력은 증가한다.

 하지만 본 드래곤의 약점으로는......

위드는 마법 책을 열심히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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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조각사 10권.

ⓒ copyright 2008.2.24 Nam Hui Sung.

-이 소설의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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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부.근원의 스켈레톤] 

CTS미디어의 베르사 대륙 이야기.

신혜민과 오주완이 방송하는 이 프로그램에서는 오늘 직업에 대한 최신 정보를 알려 주기로 되어 있었다.

 "오주완 씨, 특정한 조건을 충족시키면 특수 퀘스트가 발동된다던데,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요?"

 "네. 유니콘 사에서 밝힌 바에 의하면, 생산직의 경우에 각 직업 스킬들이 일정한 경지에 오르면 고유한 퀘스트가 생성된다고 합니다."

 "3차 전직 퀘스트인가요?"

 "그것과는 조금 다른데요, 예를 들어서 대장장이의 경우에는 자신만의 공방을 운영할 수 있습니다."

 "공방이라면... 대장간요?"

 "그렇습니다. 축적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공방을 개설할 수 있는 것이죠. 직원을 두고 운영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지금까지 대장간은 왕이나 귀족, 성주들만이 건립할 수 있었다. 그러면 대장장이들이 취직을 해서 운영되는 형태였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실력을 쌓은 대장장이들은 스스로의 이름을 걸고 대장간을 차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향후 국가나 마을의 경우에는, 이러한 공방이 많을수록 기술력의 발전 속도가 향상된다는 정보가 들어와 있습니다. 앞으로 생산직들은 희망을 가져도 될 것 같습니다."

 "긍정적인 일이네요. 많은 생산직 분들이 꿈을 키워 나가실 수 있겠어요."

 "다시 직업 퀘스트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와서... 하지만 각자 구체적으로 어떤 퀘스트가 생성될지는 모릅니다. 대장장이의 예를 들었지만, 확실히 공방을 만들 수 있는 퀘스트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수많은 갈림길의 하나일 뿐, 직업과 관련되 퀘스트는 많이 있으니 절대 포기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오주완은 땀을 흘리며 계속 설명했다. 빼곡한 대본을 들여다보면서 무려 2시간째 방소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요, 직업 스킬을 마스터하면 어떻게 되는 거죠, 오주완 씨?"

 "아직 그런 사람은 1명도 없습니다. 유니콘 사에서 비공개적으로 밝힌 바에 의하면 근처에 간 사람도 없다고 합니다. 

로열로드는 매우 방대한 게임이니까요. 더군다나 현실을 기반으로 했기에, 스킬을 마스터하기란 굉장히 힘든 일입니다."

 "그래도 직업 스킬을 마스터하면 뭔가 얻는 게 있지 않을까요?"

 "대단한 명성과, 만약에 왕국에 소속되어 있다면 작위를 얻을 수 있겠죠."

오주완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평범한 발언을 하면서 넘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신혜민은 그의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1년 넘게 같이 방송을 하고 있어서 아는데요, 오주완 씨는 뭔가 숨길 때마다 눈을 깜박이는 버릇이 있어요."

 "하하, 그런가요?"

 "뭘 알고 계신지 말씀해 주세요."

 "이거야 원. 안되는데......"

오주완은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만 순순히 얘기했다.

 "직업의 마스터가 되면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끝이 아니다? 스킬을 다 마스터하면 생산직들은 마지막 과정에 도달한 게 아닌가요?"

 "아닙니다. 그때부터 새로운 시작이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스킬을 이용해서 대륙을 위해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베르사 대륙의 메인 스토리들이 하나씩 떠오르게 되면, 퀘스트들을 수행하는 당사자들은 그 직업을 마스터해야만 깰 수 있다는 정보입니다. 이것은 각 종족의 퀘스트와도 연관이... 여기까지만 말하겠습니다. 더 이상은 정말 저도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이거든요."

 "더 재밌는 일들이 많이 벌어지겠네요."

 "그러리라 확신합니다. 막상 저는 아직 직업의 마스터와는 거리가 한참이나 남아 있어서 아쉬울 뿐이죠."

 "직업 스킬들이 고급의 경지에 오르면 성장이 굉장히 어려우니까요. 말씀 고맙습니다."

 "저야말로 오늘도 아리따운 신혜민 씨와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어머, 칭찬 감사드려요. 요즘 과일을 많이 먹은 덕분인 것 같아요."

 "저도 오늘 과일을 사서 집에 들어가야겠군요."

신혜민과 오주완은 슬슬 방송을 종료할 준비를 했다.

1부에서는 패널들을 초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고, 2부에서는 정보들을 전해 주었다. 이제야말로 2시간에 걸친 방송을 마치고 쉴 시간이었다.

 '페일 님과 신나게 데이트를 해야지.'

신혜민이 대본을 정리하며 방송 종료를 위한 멘트를 준비할 때였다. 갑작스럽게 PD로부터 방송 연장 사인이 떴다.

 '에, 이제 끝낼 시간인데?'

베르사 대륙 이야기의 방송 화면도, 느닷없이 죽음의 계곡에서 싸우고 있는 원정대의 모습을 비췄다. 북부 원정대의 전투가 실시간으로 연결된 것이다.

오주완이 당황하고 있는 사이에, 신혜민은 재빨리 대응했다.

 "네, 시청자 여러분. 베르사 대륙 이야기는 원제나 시청자 여러분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신속하고 정확한 방송! 

방송을 종료하지 않고 최근에 들어온 속보를 연속해서 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주완도 그때에는 빠르게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 적응했다. 방송 화면이 비추어지는 내용을 보면서 원정대의 일이라는 것을 짐작했다.

오주완이 재빨리 해설했다.

 "얼마 전에 북부 원정대에 대한 내용을 시청자 분들께 알려 드린 적이 있었죠. 드디어 오베론 대장이 이끄는 원정대가 죽음의 계곡으로 진입한 것 같습니다."

  오주완은 로열 로드 내에서 폭넓은 인맥을 자랑한다. 신망이 두터운 오베론과도 안면이 있는 처지라서, 원정대에 대한 소식들을 그로부터 직접 들을 수 있었다.

  그때 PD가 신혜민과 오주완이 쓰고 있는 헤드폰을 통해 이야기를 전했다.

 -체이스가 알려 준 소식. 현재 원정대가 진입하는 계곡에 마녀 세르비안의 깨진 구슬이 있을 확률이 대단히 높다고 함! 세르비안의 깨진 구슬은 현재 대륙의 더위를 날려 버릴 수 있는 주요한 아이템임.

2시간에 걸친 방송으로 인한 신혜민과 오주완의 피로가 싹 날라갔다. 누구보다도 로열 로드를 좋아하고, 또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정보를 준다는 데 자긍심을 가지고 있는 두사람이었다.

신혜민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마녀 세르비안의 구슬을 찾기 위한 원정대의 모험! 현재 실시간으로 보내 드리고 있습니다. 본 베르사 대륙 이야기 방송 시간과 관계없이, 원정대가 모험을 마칠 때까지 계속해서 보내 드릴 것을 

  시청자 분들에게 약속 드립니다."

새벽까지라도 방송을 하면서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을 보여 주어야 했다.

이미 베르사 대륙 이야기는 방송국 시간표에 황금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것은 다른 어떤 프로그램보다 우선해서, 필요하다면 시간을 늘려도 된다는 허락의 표시!

신혜민과 오주완이 보는 화면은 오베론을 기준으로 해서 만들어져 있었다.

땅딸막한 키를 가진 드워프가 보는 죽음의 계곡.

원정대의 혈투.

악식 엠비뉴 교단의 사제들과 몬스터 무리와의 전투.

아울러서 본 드래곤이 하늘을 날아다니며 원정대를 먹어치우고 있다.

드워프 오베론의 시야를 기준으로 이모든 것들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신혜민은 속으로 생각했다.

 '페일 님도 이걸 보고 있겠구나.'

로열 로드 유저들이라면 정보에 민감했다. 매우 희귀한 퀘스트의 발생이나 전쟁의 발발 같은 경우, 순식간에 수백만명이 시청을 하기도 한다. 불과 몇 분 사이에 시청률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길거리에 있는 대형 멀티비전 앞에 몰려드는 인파도 수만 명에 달할 정도였다.

사실 신혜민과 오주완은 방송이 얼마나 길어져도 상관이 없었다. 그들 스스로가 로열 로드를 너무나도 즐기고 있었으므로!

신혜민이 기대를 담아 말했다.

 "자, 그러면 원정대가 꼭 본 드래곤을 해치우고 마녀 세르비안의 깨진 구슬을 획득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오주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차가운 장미 길드 혼자서는 무리겠지만, 원정대에는 뛰어난 유저들이 많이 있으니까요."

 "원정대가 대규모로 결셩된 보람을 느낄 수 있겠네요. 그런데 오주완 씨."

 "예?"

 "본 드래곤의 위력은 어느 정도나 되나요?"

 "일단 본 드래곤 정도의 몬스터라면 굉장히 강력합니다 .웬만한 길드들이라면 엄두도 못낼 위험한 몬스터. 혼자서 밤길을 걷다가 만나면 오금이 저리는 그런 녀석이요."

 "밤에 본 드래곤을 만나다니, 정말 상상만 해도 끔찍한데요."

베르사 대륙에서는, 밤에는 몬스터들의 능력이 50%나 증가한다. 단지 밤에는 몬스터들도 대체로 휴식을 취하는 편이다. 그러므로 출현하는 몬스터들의 숫자가 줄어들어서 사냥은 가능했다.

하지만 애초에 1마리씩밖에 없는 보스 급 몬스터라면 밤에 사냥하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이 없는 일이었다. 아이템이나 경험치의 보상은 커도, 웬만하면 다들 그런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때 화면에, 오베론이 땅에 처박힌 본 드래곤의 몸통에 용감무쌍하게 도끼질을 하는 것이 보였다.

장작을 패듯이 가차 없는 드워프의 손길!

신혜민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모쪼록 많은 고생을 하신 원정대 분들의 노고를 생각해서라도 꼭 성공하시길 바랍니다."

 "예. 마법사들이 다시금 대형 마법을 준비하고 있네요. 지금 막 본 드래곤의 몸통을 조준한 것 같습니다."

 "파이어 필드 마법인 것 같은데요."

 "드럼이 이끄는 마법사 부대의 일제 공격이 개시되었습니다!"

신혜민과 오주완은 축구 경기를 중계하듯이 그렇게 전투를 설명하고 있었다.

     * * * * * *

위드도 본 드래곤과 원정대가 싸우는 것을 보고 있었다.

 '본 드래곤. 확실히 토리도보다는 강하군.'

토리도는 뱀파이어 로드다. 흡혈과 석상화의 권능, 상당히 파괴력이 강한 공격 마법들을 사용한다.

하지만 본 드래곤은 대형 몬스터로서, 수많은 원정대원을 말 그대로 짓밟고 있었다. 코끼리가 개미 떼를 상대하는 것처럼!

 "시원하곤, 클클클."

위드는 사악한 미소를 터트렸다.

조각사라고 직업을 밝혔을 때, 저 원정대원들이 얼마나 무시를 했던가!

타인의 불행은 나의 행복!

물론 오베론을 비롯하여 몇 명은 길드로 영입하기 위하여 위드를 우대해 주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투 계열 원정대원들은 조각사라고 무시하는 형편이었다.

생산직 직업들은 이미 무기나 방어구를 만드는 인부처럼 무시당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버렸다. 그나마 스킬 경지가 높으면 약간은 존중해 주지만, 근본적으로 필요할 때만 찾는 사람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돈만 주면 언제든지 부려먹을 수 있는 일꾼 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그나마 가끔 쓸모가 있는 생산직 직업들이 이러한 대우를 받고 있는데, 예술 계열 직업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원정대원들이 그동안 요리사, 조각사, 건축사 들의 도움을 받기는 했지만, 그 근본적인 인식이 바뀔 정도는 아니었다.

그것은 현재 생산직 계열의 직업들과 예술 계열 직업들이 죽임을 당한 것으로도 드러나는 사실이었다.

위드는 본 드래곤의 브레스가 뿜어졌을 때를 떠올렸다.

 "충분히 보호해 줄 수도 있었어."

성직자들이나 마법사들이 방어 마법을 펼쳐 줄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만약에 그랬더라면 상인이나 요리사를 비롯한 생산직 계열의 직업들이 몇 명은 살았으리라. 남달리 생명력이 강한 위드도 어떤 방식으로든 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보호 마법을 써주지 않았다.

 "살릴 가치가 없었다는 거지."

마나를 소모해서 살려 봤자 싸움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도 않을 보급대는 그냥 전멸시킨다. 지켜 주기 위하여 전력을 분산시키지 않아도 되고, 좀 더 전투에만 집중할 수 있다.

오베론의 결정은 아니었겠지만 성직자나 마법사들의 순간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위드가 그들을 원망하는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세상이 그런 것이다.

 "역시 본 드래곤이 제법 강하긴 하군."

땅에 처박혔던 본 드래곤이 일어나면서부터 원정대의 희생도 늘어나고 있다.

대혼전의 상황!

다크 게이머와 검치 들이 의외의 활약을 하고 있었다.

 "여보! 나 아파 죽겠어!"

볼크는 엠비뉴 사제들의 틈으로 들어가서 무자비하게 양손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조금만 참아요. 만날 엄살이나 부리고 있어. 힐!"

데어린은 남편과 다른 다크 게이머들을 치료해 주었다.

다크 게이머들은 무모하게 본 드래곤에 달려들기보다는 몬스터들을 처리하면서 착실하게 적들을 줄여 나갔다.

검치들도 각자 흩어졌다.

 "이놈들!"

 "맛 좀봐라!"

이미 위드의 검 갈기 스킬과 방어구 닦기를 통하여 공격력과 방어력을 향상시켰다. 그 덕에 검치들은 몬스터와 충분히 자웅을 겨룰 수 있었다.

또한 그들은 눈치가 보통이 아니었다.

 "위험해, 검삼백오십구치!"

 "이크!"

검치들은 몬스터들에게 둘러싸이지 않았다. 철저하게 준변의 상황을 인지하고 최적의 움직임만을 보여준다. 각자 따로 흩어져 있는 몬스터만을 하나씩 제압하고 다녔다.

성직자나 마법사 들의 지원을 받지 않고서도 각개전투를 벌이는 검치들!

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본 드래곤은 무난히 잡을 수 있겠어."

아무리 강한 몬스터라고 해도 원정대의 세력을 이기지는 못할 듯싶었다.

 얼어붙은 북부의 대륙. 피가 흘러 계곡을 적시네

 본 드래곤이여, 영웅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진 못하네

바드들이 목청을 드높여 열창을 한다.

댄서들은 그에 맞춰서 춤을 추었다. 얼음판 위에서 미끄러져 넘어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춤을 먼추지 않았다.

바드와 댄서들의 도움.

샤먼이나 소환술사, 정령사 들도 각자 자신의 맡은바 임무를 다하고 있다.

원정대도 막대한 피해를 입겠지만 전투 자체는 이길 것으로 보였다.

 "몬스터들이 다 처리되면 본 드래곤만 남으니깐. 대충 절반 정도는 죽겠지만 그래도 승리는 어렵지 않을 거야."

위드는 전투가 끝날 때까지 나서지 않을 작정이었다.

검치 들이야 이런 전투에서 죽을 사람들이 아니었다. 자신의 목숨은 알아서 챙기리라. 그러므로 위드가 나설 필요는 전혀 없었다.

 "어차피 이 몸을 하고 나설 수도 없지."

현재는 스켈레톤의 모습으로 변했다.

몬스터라고 오인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만 같은 상황!

성직자들의 치료 마법도 역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그러므로 원정대의 눈에 띄어 좋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위드는 숨어서 상황만을 살폈다.

 "그런데 저 여자는 뭘 하는 거야?"

이상하게 서윤이 눈에 띄었다.

본 드래곤이 일생의 대적이라도 되는 것처럼 원정대의 선두에서 검을 휘둘렀다. 그 흉흉한 기세에 오베론이 물러날 정도로, 서윤의 공격은 맹렬했다.

버서커, 광전사의 특성대로 본 드래곤에게 끊임없는 공격을 가한다.

수많은 상처를 입으면서도 선두에서 싸우는 그녀 때문에 전투가 더욱 치열해지고 있었다.

전황이 뒤바뀐 것은 그때였다.

 * * * * * *

몬스터들이 어느 정도 줄어들었을 대에 원정대 내에서 큰 소란이 일어났다. 일부 원정대원들이 동료의 등에 대고 검을 휘두른 것.

 "크억!"

 "갑자기 왜......"

 "우린 같은 편이다. 공격을 멈춰!"

 "성직자들은 현혹 상태를 해제하는 신성 마법을 펼쳐라. 어서 빨리!"

성지자들은 동료들이 엠비뉴의 사제들이 쓰는 현혹 마법에 사로잡힌 줄 알고 신성 마법을 사용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일부 원정대원들은 공격을 그치지 않았다. 방어에 급급하던 이들이 속절없이 죽어 갔다.

그리고 터져 나온 성직자들의 비명!

 "해제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

 "이놈들이 아군을 공격한다!"

몬스터들에게 현혹된 것이 아니었다.

결정적인 순간의 배신!

테로스와 진홍의 날개 길드에서 검을 거꾸로 쥔 것이었다.

진홍의 날개 길드에서는 이때만을 기다리고 참아 왔다. 특수한 아이템으로 얼굴을 바꾸고, 갑옷과 검도 적당한 것을 구입해서 장비했다.

그러던 차에 결정적인 순간 마각을 드러냈다.

테로스는 위장하고 있던 갑옷을 본래 자신의 것으로 바꿔입고, 얼굴에 그려 놓았던 그림들도 지웠다.

 "다 쓸어버려라! 본 드래곤은 우리의 차지다!"

바바리안 워리어 플라인은 바로 곁에 있던 오베론을 요격했다.

 "크윽! 어째서......"

 "우리 진홍의 날개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소. 그래도 본 드래곤은 우리가 처치할  테니, 당신의 역할이 헛된 것만은 아니오."

플라인은 오베론의 등을 길게 베었다.

치명적인 일격!

오베론은 본 드래곤과의 전투 중에 갑작스럽게 원정대원들끼리 내전이 벌어져서, 그쪽에 신경을 쓰느라 전혀 대비를 하지 못했다. 결국 완벽한 무방비 상태에서 동료에게 상처를 입은 것이다.

오베론은 평소의 그답지 않게 진심으로 분노했다.

 "지금까지 우리를 속인 것이냐!"

 "속은 사람이 잘못이지. 우리도 원정대에 속해서 나름대로 헌신했소. 이제 우리의 몫을 찾을 뿐이지."

 "비겁한 나는 이대로 쓰러지지 않......"

오베론은 워리어답게 꿋꿋하게 일어서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그의 뒹에 떠오르는 그림자가 있었다.

 "그러면 확실히 죽여 주지."

공포의 암살자 데인이 시퍼런 단검을 휘둘렀다.

 -암살자의 치명적인 일격이 터졌습니다!

  육체의 마비!

  독이 빠른 속도로 전신으로 퍼집니다.

  상처 부위를 지혈하지 않으면 생명력이 계속 하락하게 됩니다.

데인의 단검에는 극독이 묻어 있었다. 오베론의 몸은 마비되어 움직여지지 않았다.

플라인과 데인의 눈이 마주쳤다.

 "괜히 회복하기라도 하면 곤란해."

 "바로 처리해 버리지."

플라인과 데인은 무기를 휘둘렀다. 본 드래곤이 날뛰는 근처에서 오베론에게 합공을 퍼붓는 것이다.

아무리 오베론이라고 해도 몸이 마비된 채로 두 사람의 공격을 견딜 수는 없었다.

 "비겁한 놈들! 이 복수는 언제고......"

오베론은 복수를 다짐하며 죽었다.

원정대에서도 오베론의 죽음을 눈치 챘다.

 "대장님이 죽었다."

 "배신자들이 우리의 대장을 죽였다. 놈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해!"

원정대는 자중지란에 빠지고 말았다. 오베론의 세력과 동맹 길드, 테로스가 데려온 사람들 사이에 격렬한 전투가 빚어진 것이다.

테로스는 직접 전투에 참여하는 대신 다크 게이머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어차피 돈에 움직이는 이들이다. 차가운 장미 길드보다 더 큰 돈을 준다고 하면 되겠지.'

진홍의 날개 길드는 공식적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그들이 챙겨 놓은 재산은 상당히 남아 있었다.

 "볼크, 계약을 하고 싶다."

테로스는 다크 게이머들 중에 볼크를 찾았다.

벨소스 왕의 무덤. 그들이 했던 난이도 A급 퀘스트에서 참여했던 인연으로 안면이 있었다.

 "우리와 뜻을 함께하자. 원정대를 나와서 우리를 돕는다면 돈을 달라는 대로 주겠다. 원한다면 본 드래곤에게서 나온 아이템도 절반 정도 분배해 줄 용의가 있다."

테로스는 볼크와 다크 게이머들이 제안을 받아들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돈에 살고 돈에 죽는 인간들이니 언제든 포섭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의리나 우정 따위의 막연한 감정보다는 현실에 충실한 용병들!

하지만 볼크는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것 같군."

 "왜? 내 제안에 무슨 문제가 있기라도 한 건가? 오베론 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우리와 계약하자는 이야기야."

 "미안해. 선금을 받았어."

 "그런......"

다크 게이머들의 제4 법칙!

돈을 받은 만큼 약속을 지킨다. 아무리 많은 이득을 거둘 수 있다고 해도 이행하고 있는 계약만큼은 절대적으로 수행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르고 있찌만, 다크 게이머들은 돈이 걸린 계약을 어기지는 않았다.

믿을 수 없는 무리로 평판이 낮아지게 되면 돈을 벌 수 없다. 그러므로 다크 게이머 들은 때때로 순간의 이득을 포기하면서라도 약속된 계약을 이행했다.

돈밖에 모르는 철면피 소리를 듣더라도 그에 맞는 행동을 보여주는 것을, 테로스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테로스의 얼굴이 굳었다.

 "더 많은 돈을 줄 수 있다. 저들이 약속한 금액의 2배, 아니 3배를 지급하지."

 "그래도 할 수 없어. 계약은 반드시 지킨다. 그 계약이 종료된 후라면 몰라도 지금은 안 돼."

테로스는 다크 게이머들을 자신의 세력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크, 오, 오, 오!"

그러는 사이에 본 드래곤과 몬스터들은 더욱 활개를 치고 있었다.

원정대의 주력이라고 할 수 있는 고위 유저들은 그들끼리의 전투에 바쁘다. 다크 게이머들은 자중지란과는 상관없이 중립을 지키며 몬스터와 싸우고 있었지만, 그들이 전부를 막아 낼 수는 없었다.

 "키요오! 인간들을 죽여라!"

 "악을 믿어라. 악을 따르라!"

상처 입은 본 드래곤과 몬스터들이 우리에서 풀려난 맹수처럼 날뛰었다.

죽음의 계곡은 말 그대로 많은 이들의 무덤이 되어 가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균형이 무너졌다. 인간들에게 우세하던 힘의 축은 몬스터와 본 드래곤에게로 넘어가고 말았다.

 "이런 망할!"

 "저놈의 배신자들 때문에."

서로 간의 싸움을 중단하고 다시금 몬스터에게 집중했지만 이미 때가 늦었다.

설상가상으로 아직도 서로를 믿을 수 없는 상황!

차가운 장미 길드가 죽련인 원정대에서는 테로스나 그 부하들을 신뢰하기 어려웠다. 다시금 완전히 힘을 합한다면 기회가 있겠지만 그러지를 못하니 갈수록 피해만 누적되고 있었다.

마침내 본 드래곤을 억제하던 방어선이 돌파당했다.

본 드래곤을 잡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공격으로 움직임을 봉쇄해야 하는데, 공격하는 이들이 부족하여 여유를 주고 만 것이었다.

 "크, 어, 어, 어, 어!"

본 드래곤이 날개를 활짝 펼쳤다.

그 풍압에, 테로스와 그 부하들이 원정대의 전사들과 함께 멀리 날아 떨어졌다.

 "젠장!"

테로스는 서둘러 일어서려고 했다.

번뜩!

순간 본 드래곤의 눈에서 빛이 일렁였다.

본 드래곤은 숨을 크게 들이쉬기라도 하는 것처럼 입을 쩌억 벌렸다.

푸화학!

강력한 브레스가 테로스와 원정대 전사들을 뒤엎었다.

 "으아악!"

 "제발 살려줘!"

 "몸이... 몸이 녹아내린다."

본 드래곤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브레스!

한자리에 몰려 있던 성직자, 정령사, 마법사 등 체력이 약한 이들에게 그대로 밀려들었다.

 "막앗!"

 "피해라!"

놀란 날파리 떼처럼 도망치려는 자들과, 방어 마법을 펼치는 이들이 뒤섞였다.

브레스는 그곳을 휩쓸고 지나가 버렸다.

발 빠르게 피한 자들은 살아남았지만 애써 막으려던 자들은 큰 피해를 입었다. 몸이 새카맣게 변해서 생명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맹독을 품고 있는 브레스에 당한 결과였다.

애초에 합심해서 방어 마법을 펼쳤더라면 전사들을 삼키고 조금씩 약화된 브레스를 막아 낼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지를 못했다.

 "치료의 손길!"

 "힐!"

 "리커버리!"

성직자들이 서둘러서 회복 마법을 펼쳤다.

독으로 줄어드는 생명력을 보충해 주는 것!

 "안티 포이즌!"

 "포이즌 큐어!"

일부 성직자들은 해독 마법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부지런히 노력한 덕분에, 브레스에 적중되어 바동거리던 동료들을 살려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이미 절망적으로 변해 버렸다.

남아 있는 원정대의 숫자는 400여명 정도였다.

아직도 상당히 많은 숫자가 남아 있기는 했다. 그럼에도 더 이상 본 드래곤과 싸울 수는 없었다.

직접 전투를 담당할 전사들이 부족했다. 궁수, 바드를 비롯하여 댄서, 성직자나 마법사, 정령사 들처럼 물리력에는 취약한 직업들만이 남은 것이다.

 "젠장! 역시 이번 일도 맡는 게 아니었나."

볼크가 불평을 터트렸다.

지난번 퀘스트에 이어서 다시 목숨을 잃게 생겼다. 죽을 경우에는 많은 보상금을 받기로 약속이 되어 있다지만, 다크 게이머에게 죽음이란 그 자체로 큰 손실이다.

볼크와 데어린을 비롯한 다크 게이머들은 한곳에 뭉쳤다.

 "어떻게 하지?"

 "계약상 도망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시원하게 싸워 보자!"

다크 게이머들은 오랜만에 피가 끓어올랐다.

로열 로드로 돈벌이를 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이 대륙을 사랑한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굳이 다크 게이머라는 직업을 택하진 않았으리라.

몬스터와 싸우면서 가정을 돌보아야 할 가장이 된 탓에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불가항력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본 드래곤과 몬스터들을 맞아 싸우면서 가슴이 뜨거워진 것이다.

 "으아아아!"

 "저놈을 죽여 버려라!"

 "토막 내! 토막 내!"

광분한 다크 게이머들은 하찮은 몬스터들은 그대로 무시하고 오로지 드래곤을 향해서만 돌격했다.

 "우히히히힛!"

 "좋아! 아주 화끈한데?"

본 드래곤에게 걷어차여도 웃는다.

좀비처럼 다시 일어나서 돌격하는 다크 게이머들!

검치들은 그사이에 몬스터들을 감당하고 있었다. 마법사들과 성직자들의 주변을 지켜 주면서 싸웠다.

하지만 검치 들은 자신들의 최대 장점을 발휘하지 못했다.

수십 명이 하나처럼 자릴 바꿔 가면서 싸우는 방식을 취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크윽!"

부상을 당해 쓰러지고 죽어가는 검치 들이 생겨났다.

이를 보고 위드는 전투에 개입하고자 결심했다.

 "내가 나설 수밖에 없겠군."

검치 들의 죽음을 간과할 수는 없다. 그리하여 우선 귓속말을 보냈다.

 -검십육치 형.

 -어? 위드냐?

비장한 얼굴로 싸우고 있는 것에 반해 검십육치는 매우 평온한 어조로 답했다.

그는 이곳에 있는 검치 들 중 가장 연장자였다. 상당히 많은 아수라장을 현실에서 겪어 왔던 그였기에 평상심을 잃지 않았던 것이다.

 -아까 브레스 맞던데. 죽은 거 아니었냐?

 -죽었습니다. 조금 사정이 긴데, 다시 살아났습니다. 아무튼 지금 도와 드릴게요. 일단 뒤로 피하시죠.

 -아니야. 그럴 필요 없어.

검십육치의 말은 다소 뜻밖이었다.

 -우선 내가 죽을 때까지 기다려 줘.

 -예?

 -이 기회가 아니라면 내가 언제 여자 앞에서 이렇게 멋진 모습을 보여 줄 수 있겠느냐.

검십육치의 뒤에는 예쁜 성직자가 바들바들 떨며 치료 마법을 펼치고 있었다.

춥고, 배고프고, 위험하기 짝이없는 몬스터들이 도사리고 있는 장소에서 목숨을 걸고 지켜 주는 남자!

검십육치는 그것을 위하여 한 몸 희생하기로 한 것이다.

현실에서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상황이었다. 불량배들도 검십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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