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조각사 12권
-----------------------------------------------------------------------------------
******
깊은 밤, 3개의 달이 떠오르는 토둠에서 위드는 야트막한 야산에 올랏다.
"드디어 결전의 시간이 왔군."
빛을 흡수하여 검게 빛나는 탈로크의 갑옷과 고귀한 기품의 검은 헬멧, 뱀파이어 망토와
검은 부츠까지 신었다.
타크 나이트.
완전한 흑기사의 차림새였다.
위드는 바위에 한쪽 다리를 올린 채로 폼을 잡으며 언덕아래를 보며 서 있었다.
뱀파이어 왕국, 토둠이 그대로 내려다보인다.
오래된 성들이 수십 개나 연결되어 이루어진 모습은 대단히 고풍스러운 광경이었다.
새벽 일찍, 그것도 발룬, 고룬, 세이룬의 3개의 달이 낮게 떠올라서 분위기를 띄운다.
사실 해가 뜨지 않는 토둠에서는 낮과 밤의 구분이 따로 없다.
일정한 시간이 되면 3개의 달이 높게 떠오르는데, 그때는 대낮처럼 무척 환하다.
그때부터가 아침이 시작되는 것이다.
마침 위드가 서 있는 언덕 위로 세이룬이 떠서 비추고 있었다.
휘이잉!
그리고 절묘하게 바람이 불었다.
위드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순간!
이렇게 좋은 풍경에서 분위기를 잡고 있는데, 적당한 바람마저 불어온다.
'이럴 때일수록 서두르면 안 되지.'
최대한 우아하고 멋들어지게 위드는 헬멧을 벗었다.
"후후후."
위드는 옅은 미소도 지었다.
개방된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망토도 펄럭거린다.
생명을 장담하기 힘든 전투를 앞두고 홀로 고독을 즐기는 전사의 모습!
'역시 이 맛이야!'
한참 폼을 잡으면서 언덕 아래를 보며 서 있었다. 그러다가 불쑥 오른손으로 검을 뽑았다.
차가운 로트의 검.
얼음의 기운을 담고 있는 빙설의 검이다.
공격력은 지금 위드의 수준으로 볼 때 그리 높다고 할 수 없지만 매일 검날을
갈아서 예리하게 빛이난다.
'이게 전부가 아니지.'
위드는 왼손으로는 고대의 방패를 들었다.
최고의 대장장이인 드워프들이 심혈을 기울려서 제작한 방패.
미스릴과 알 수 없는 동물의 뼈로 제작되었다.
원래 아름다웠을 무늬에는 때가 잔뜩 끼어서 알아볼 수는 없었다.
검게 퇴색된 방패에 수리도 불가능한 제품.
그럼에도 최고의 유니크 아이템이다.
능력을 완전히 이끌어 내어 사용하기 위해서는 방패 활용술이 필요하지만
중급 대장장이 스킬 덕분에 착용할 수는 있었다.
여기에 니플하임 제국의 보물 중 하나인 바하란의 팔찌까지 착용했다.
귀중한 물건이라서 애지중지했으면서도 특별히 꺼내서 팔에 찼다.
정교하게 세공된 보석 팔찌가 어울리지 않는 화려함을 더해 준다.
"역시 난 최고야."
위드는 한 손에는 검을, 다른 한 손에는 고대의 방패를 들고 바람을 맞으면서 그렇게 서 있었다.
흰색의 장갑은 색깔이 어울리지 않아서 일부러 착용하지 않았다.
맨손을 드러내면서까지 지키고 싶었던 카리스마!
위드는 입을 열었다.
하나의 갑옷을 만들었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강철의 갑옷
해가 지고 달이 지고
바람이 불고 비가 와도
절대로 상하지 않는 갑옷을 만들어야지
두들겨라
우르릉 쿵쾅 쿵쾅
겉모습은 금칠을 해야지
그래야만 비싸게 팔린다네
어디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
3골드?
안 돼요, 안 돼
원가가얼만데.......
최소한 7골드는 받아야 되네
원래 밑지고 장사하는 건데 첫 손님이라서 봐 드립니다
******
어느덧 3개의 달이 떠오른 아침이 되었다.
위드가 언덕 아래도 내려왔을 때메는 일행이 모두 모여 있었다.
눈가가 붉게 충혈되어 마치 조금도 쉬지 못한 듯한 모습이지 않은가.
위드가 의아해서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아, 아니에요. 별일 없었어요."
화령이 고개를 저었지만 그녀는 정말 악몽과도 같은 새벽을 보냈다.
페일, 메이런, 이리엔, 모두 긴장하여 약속한 시간보다 훨씬 일찍 접속을 했다.
새벽부터 갖은 상념들을 다 하고, 또 일부는 폼을 잡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와중에 들려온 위드의 노래!
'최악의 음치!'
'거기에 무슨 저런 가사가 다 있지?'
위드의 노래를 듣다 보니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왔다.
그탓에 전혀 쉬지를 못한 것이었다.
그것도 무려 4절까지 있는 노래!
그들이 어렴풋이 기억을 하는 건 2절까지였다.
그 후부터는 정신이 혼미해져서 떠올릴 수도 없었다.
내 망토는 바람에 날린다
깃발처럼 펄럭펄럭
밤에는 따뜻하게 덮고 잘 수도 있지
언제 빨았는지는 아무도 몰라
망토에 몸을 숨기고 적을 노려본다
킁킁
냄새가 나는구나
망토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
"꼭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
위드의 말에 일행은 굳게 입을 다물었다.
어쨋든 간에 막상 토둠으로 쳐들어갈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긴장감 때문에
사소한 일에는 따지고 싶지 않았다.
그때 검치들이 하나 둘 접속을 했다.
도장에서 접속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확히 약속 시간에 맞춰서 일제히 들어온 것이다.
"오셨습니까, 스승님. 사형제들."
"그래."
검치가 마치 산보라도 나온 것처럼 느긋하게 인사를 받았다.
페일과 마판이 눈을 마추쳤다.
'검치 님은 그렇더라도, 다른 분들은 긴장을 하고 있을 거야.'
'아무래도 보통 때와는 조금 다르시겠지.'
검둘치는 평소처럼 대사형답게 믿음직스러운 얼굴이었고,
검삼치와 검사치는 다소 들떠 잇었다.
"이걸로 방송 출연인가?"
"열심히 싸우기만 하면 되는 거지."
"평소 모습을 보여 주면 되는 거야."
"얼짱 각도로 찍혀야 될 텐데."
프로그램 위드의 방송 개시!
시청률은 낮게 시작했지만, KMC미디어에서 정규 방송을 했고
그러면서 출연을 하게 되었다는 데 매우 고무적이었다.
검치들은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제피가 위드의 주변을 살피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위드 님, 그런데 유린 님이 보이지 않습니다만."
올 사람은 모두 왔는데, 유린이만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질문을 던진 것이었다.
위드는 알고 있다는 듯이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린이는 안 올 겁니다."
"넷?"
"오늘은 집에서 푹 쉬라고 했습니다."
".............."
일행의 불안감이 급상승했다.
'역시 여동생은 빼돌린 거야!'
'평소 위드 님의 성격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겠지.'
오해가 아니라 사실이었다.
실제로 위드는 이번의 전투를 굉장히 힘들게 전망하고 있었다.
'여기 모여 있는 사람들 중에 몇 명이나 살 수 있을까.'
위드는 속으로 생각했다.
처음에 뱀파이어들의 땅에 왔을 때에는 검치들만 505명이나 되었다.
위드와 페일을 비롯한 동료들까지 합하면 516명이나 되는 대인원이었다.
그런데 거듭되는 전투를 거치면서 이제 인원이 삼분의 일가까이 줄어들었다.
검치들이 353명밖에 살아 있지 않은 것이다.
다른 동료들도 결코 안전하다고 볼 수 없다.
애초에 전투력이 부족한 마판이나 세에취를 포함하여 모두가 위험했다.
금방 다가올 전투를 떠올렸는지 오늘만큼은 모두 씨끌벅적하고 떠들고 있지는 않았다.
"저만 믿으십시오. 최대한 많이 살려 보겠습니다."
위드의 비장한 각오에 메이런과 세에취의 가슴이 살짝 떨려 왔다.
'시작이구나.'
'전쟁의 신이라고 하는 그의 진실한 면모를 볼 수 있는거야.'
마법의 대륙에서 어떤 퀘스트, 던전이라고 해도 격파했던 위드의 전설!
그런 위드와 함께 토둠을 격파하는 선봉에 서게 된 것이었다.
******
위드는 평소답지 않게 푸짐한 아침 식사를 만들었다.
"잘 먹겠습니다!"
"예, 많이들 드세요. 이게 살아서 먹는 마지막 음식이 될지도 모르니."
"............."
지금까지 저급 재료들만을 사용해서 상당한 맛을 내었는데, 이번에는 사냥을 통해
어렵게 획득한 고급 재료들을 마구 사용했다.
중급 6레벨의 요리 스킬!
뱀파이어의 땅에서 검치들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드디어 중급6레벨에 올랐다.
높은 스킬 레벨의 비결은 역시 잡일을 하는 것 이상이 없었다.
길을 다니면서 약초를 발견하면 보이는 족족 잡초 뽑듯이 캐냈다.
그러다 보니 약초학도 어느새 중급9레벨이 되었다.
스킬레벨이 이 정도쯤 되면 아무 곳이나 땅을 파면 최소 고구마라도 캘 수 있을 정도의 경지였다.
여기에 손재주고 고급4레벨이나 된다.
위드가 이 모든 정화를 쏟아 부어 만들어 낸 요리는 약선잡탕죽!
다양한 고급 재료들 간의 조합을 맞추는 데에는 죽 이상의 것이 없었다.
-몸에 대단히 좋은 요리를 드셨습니다.
체력이 40% 늘어납니다.
생명력이 25% 상승합니다.
마나가 13% 증가합니다.
힘이 36 올랐습니다.
민첩이 22 올랐습니다.
독에 대한 저항력이 36% 늘러납니다.
스태미나가 잘 줄어들지 않습니다.
한 그릇의 요리에 담긴 재료들의 가격은 무려 53골드!
물론 위드가 만들 수 있는 요리 중에 가장 비싼 음식은 아니었다.
대도시라면 200골드가 넘는 요리 재료들을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가지를 넣어서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사냥을 통해 구한 재료들이었다.
귀한 재료들을 써서 만든 요리였던 만큼 효과는 확실했다.
만들어 낸 맛깔나는 음식들은 입에 넣는 순간 살살 녹아들정도였다.
여기에 위드는 술까지 풀었다.
"한 병씩만 마셔야 합니다."
산열매와 약초들을 이용해서 담근 술!
토둠에 오면서부터 담근 것이라 숙성한 지는 얼마 안 되었다.
그럼에도 검치들은 시원하게 마셨다.
페일과 제피, 다른 일행도 긴장감을 풀기 위해서 술을 사양하지 않았다.
그들이 난이도 A급의 퀘스트를 해 보고는 건 처음이다.
페가수스나 유니콘, 아직까지 상대하기에는 너무 강력한 몬스터였다.
그런 몬스터들과 싸운다는 상상을 하니 저절로 손발이 굳는다.
막상 전투에 돌입을 하면 몸이 굳어 버릴지도 몰랐다.
술을 마셔도 본인이 어떻게 마시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긴장을 하고 있었다.
전투에서는 스킬이나 스탯만큼이나 사기의 중요성도 컸다.
특히 이렇게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벌이는 전투에서 심리적인 요인이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다.
'다들 너무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아.'
메이런이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위드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위드 님, 저 평소에 궁금하던 게 있었어요. 물어봐도 될까요?"
"예."
"마법의 대륙에서요, 이반포르텐 섬의 미궁 있잖아요."
위드의 기억에 어렴풋이 남아 있었다.
'대악마를 봉인한 장소였던가.'
마법의 대륙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곳 중의 하나였다.
위드가 격파하기 전에는 단 한 번도 깨어지지 않았던 최악의 미궁!
심지어는 위드가 탐험을 끝낸 이후로도 아직까지 다른 침입지를 허용하지 않은 불가해의 미궁이었다.
"그런데 그 미궁은 어떻게 깨신 거예요?"
메이런은 멋진 대답을 기대했다.
위드의 모험담을 잠깐이라도 듣는다면, 일행의 기분도 풀어질 테니까.
위드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 미굴 지하에 쥐들이 많은 하수구 있잖습니까?"
"예, 대형 쥐들이 들끓는....설마?"
"하수구를 통해서 들어가면 되더군요."
"........."
너무나도 간단한 대답!
허달해질 정도의 단순한 해결책이었다.
메이런은 다른 질문을 던지기로 했다.
"지옥불의 스켈레톤 킹요, 기억나시죠?"
스켈레톤 킹!
뼈로 된 몸에, 화염이 이글거리던 몬스터였다.
"그 몬스터도 위드님이 죽이셨잖아요. 물리 공격은 물론이고 마법 방어력까지 대단해서 드래곤을
제외하고는 최악의 몬스터로 꼽혔는데 어떻게 처리하신 거에요?"
"물에 담그니까 죽던데요."
".............."
메이런은 괜한 질문을 해서 오히려 힘만 빠졌다.
그렇지만 실상을 알고 나면 그렇게 무시해도 될 수준은 아니었다.
미궁을 탐험하기 위해서 실제로 지도를 그렸다.
모든 지역들을 상세하게 조사하고, 대악마가 봉인된 장소를 예측했다.
그 장소화 가장 가까운 입구를 찾은 게 하수구였을 뿐!
스켈레톤 킹도 수십 차례의 죽음을 당하면서 약점을 잡아냈고, 마침내 호수에 빠뜨릴 수 있었다.
위드가 성공했던 이유는 철저한 조사와 준비에 있었다.
중간 과정을 모두 생략하고 말하니 쉬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힘든 과정들을 많이 겪었다.
'아무리 그래도 현실에서 돈 벌어서 먹고사는 것보다야 쉽지.'
위드는 어떤 퀘스트를 하더라도 힘들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중퇴로 몸이 아픈 할머니와 어린 여동생을 돌보는 것보다야 훨씬 쉽다.
학벌이 안 되니 무슨 일을 하더라도 월급이 짰다.
힘들고, 위험하고, 더러운 일들을 해도 임시직에 금방 잘리기 일쑤!
심지어 외국인 노동자와도 경쟁을 해야 한다.
취업 시장이 결코 호락호락하지는 않은 것이다.
퀘스트의 난이도로 치자면 특S급!
현실에 비한다면 퀘스트는 그나마 쉬운 편이었다.
그렇게 아침 식사가 끝이 났다.
위드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 준비 되셨습니까?"
"네."
일행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감은 없었지만 어쨋든 피해 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럼 이제 움직이죠. 모두 자신의 몸은 직접 지켜야 됩니다."
위드는 긴장 속에 동료들을 이끌고 드디어 성문을 통과했다.
토둠 안에는 성들 사이로 날개를 활짝 펼친 유니콘과 페가수스들이 날아다닌다.
지붕과 지붕을 단번에 뛰어다니기도 하고, 때론 광장을 마구 내달리고 있었다.
"싸울 준비는 다 됐다."
검둘치가 든든하게 말했다.
몬스터들이 많고 강해 보였지만, 어쨌든 덤벼들 작정이었다.
일행의 긴강감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한껏 고조되었다.
최강의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페가수스, 유니콘과 싸워야 되는 것이었다.
머릿속으로 떠올렸을 때만 하더라도 공포의 대상이었는데 드디어 싸울 순간이 다가왔다.
그런데 위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기가 아닙니다. 더 좋은 사냥터가 있습니다."
"어딘데?"
"일단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위드는 바싹 엎드려서 네발로 땅을 기었다.
동료들도 따라서 땅바닥을 기었다. 무려 300명이 훨씬 넘는 무리가 일제히 땅을 기어서 이동을 한다.
긴 행렬이 되면 유니콘과 페가수스의 눈에 발각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커진다.
특히 행렬의 뒤쪽에 있으면 훨씬 무서울 수밖에 없다.
빨빨빨빨!
모두 기어가는 속도가 만만치 않았다.
달리는 것보다고 스태미나가 2배 이상 빠르게 하락하고 있었지만
뒤처지지 않기 위하여 다들 최선을 다해서 기었다.
"헉헉, 그런데 위드 님."
마판이 힘겹게 힙을 였었다.
상인이라서 전투 능력은 정말 약하다.
상대방보다 지혜가 높아야 가격을 후려치는 데 도움이 된다.
애초에 도을 벌기 위해 지식과 지혜, 카리스마를 제외한 스탯들은 대부분 포기를 했던 것이다.
그래도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위해 체력은 조금 높여 놓아서 간신히 따라올 수 있었다.
마판이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골목길에서 굳이 기어가지 않아도 걸리지 않을 것 같은데요."
위드는 절대 큰길로 다니지 않았다.
성문을 통과하자마자 샛길로 접어들더니, 빈 상자들이 쌓여 있는 곳 사이를 통과했다.
그러더니 매우 좁은 골목길들만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위드는 낮은 음성으로 이야기했다.
"동물들의 행동을 주의 깊게 보면 배울 점이 참 많습니다."
"네?"
"그들의 오랜 생존의 법칙들을 알게 되면 이점들이 많다는 거지요."
"그럼 지금은 무슨 동물의 생존법을 따라 하고 있는 건데요?"
"바퀴 벌레요."
"............"
호랑이나 사자도 아닌, 바퀴 벌레에게 배움을 얻는 위드!
생존력만큼은 지상 최고의 곤충인 바퀴 벌레를 따라서 움직이고 있었다.
샤샤샤샤샤샤샥.
두 팔과 두 다리를 매우 민첩하게 움직인다.
더듬이를 움직이는 것처럼 고개를 좌우로 맹렬히 내저었다.
끊임없이 눈동자를 굴리면서 주변에 몬스터가 다가오는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노력한 덕분에 다행히 몬스터와 조우하지 않고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한 첫 번째 목적지는 뱀파이어 토리도를 찾았던 흑색 성!
위드는 일행과 함께 무사히 성안의 지하 창고로 들어왔다.
다소나마 긴장감이 풀렸는지, 페일이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휴, 이 성은 어디죠?"
위드는 간단히 답했다.
"토리도를 발견하고 잡아 온 곳입니다. 첫 번째 전투는 여기에서 합니다.
사형들, 모두 활을 꺼내 주세요."
검치와 사범들, 수련생들은 위드에게 받은 무식하게 커다란 활을 꺼냈다.
"이것 말이냐?"
검치는 가장 큰 활을 가지고 있었다.
검둘치, 검삼치로 내려갈수록 조금씩 더 작은 활들을 가졌다.
활도 서열 순으로 챙겨 가진 것!
그때야 페일과 메이런은 이해할 수 있었다.
활이 너무나도 크고 둔해 보여서 사용하기가 힘들 것 같았지만,
이렇게 성 내부에서 싸운다면 상관이 없을 테니까.
전투 시에 불편하다는 단점은 있지만 생존을 위해서 방패를 든 것이다.
위드도 먼지라도 묻을까 봐 아껴 두었던 탈로크의 갑옷과 로트의 검,
고대 방패를 꺼내서 전광석화처럼 닦았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각자 방패도 꺼내 주세요."
검치들은 각자 몸 전체를 가릴 수 있는 거대한 방패들을 꺼내서 무장했다.
방패의 효용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화살이나 적의 무기를 튕겨 낼 수 있고, 방어력도 50% 이상이나 늘려 주었다.
대신에 양손검을 쓰지 못하고, 민첩성이 대폭 하락한다.
"검 갈지, 갑옷 닦기, 방패 닦기!"
대장장이 스킬의 발휘!
검치와 다른 동료들의 무기와 방어구들고 갈고 닦아서 일시적이나마 능력치를 향상시켰다.
"끝났습니다. 그럼 이리엔 님 , 단체 축복 마법을."
"네, 사악한 악에 맞서 싸우는 그의 힘이 최고조로 이르도록 해 주십시오, 블레스!"
위드와 검치등의 몸에 신성한 하얀빛이 어렸다.
유니콘과 페가수스들이 그들이 있는 지하창고의 문을 부수고 난입했다.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생명체들이었기 때문에 신성 마법을 느끼고 쳐들어온 것이다.
-----------------------------------------------------------------------------------
토둠 정벌
문을 부수고 난입한 유니콘은 10마리, 페가수스는 12마리 였다.
"히히힝!"
"푸릉푸릉!"
유니콘과 페가수스는 길게 투레질을 하더니 금세 압으로 내달렸다.
다닥 다닥 따다다다다닥!
한두 발자국을 내디딜 때마다 어마어마한 가속도가 붙는다.
말 종류 몬스터들의 최대 장기라고 할 수 있는 전력 질주!
덩치도 일반 말에 비하면 무려 2배 정도에 달하는 신수들이 성난 콧김을 불어 대며 질주해 온다.
성의 지하였던 만큼 웬만한 광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크기,
비어 있는 상자나 기둥들이 장애물의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무시무시한 돌격 앞에 박살이 났다.
쿠르릉 콰아앙!
콰르르릉!
땅이 울리고 성 전체가 흔들릴 정도였다.
유니콘과 페가수스가 마법력을 느끼고 선공을 취해 올 줄은 위드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즉각적으로 대응 했다.
"사형들은 다섯 부대로 나눕니다. 이름순서로 검백치 사형까지 1부대,
검이백치까지 2부대, 검삼백치까지 3부대, 이런 식으로 합니다.
각 부대의 지휘관은 스승님과 네 분의 사범님들로 하겠습니다.
일단은 5부대가 전면에 나서서 적의 질주를 차단하세요!"
위드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검오치의 지휘 아래 살아 있던 70명이 방패를 앞세우고 돌격했다.
"어디 한번 붙어 보자!"
유니콘과 페가수스의 무서운 질주가 거리를 순식간에 단축해 오고 있었다.
이를 방패 돌격으로 저지하려는 것이었다.
보통의 말들보다도 훨씬 크고 위압적인 신수들!
신수들이 장애물들을 부숴 가면서 놀라운 속도로 달려오는데 정면으로 이를 막기 위하여 뛰어든다.
용감하거나, 혹은 간이 배 밖이로 나오지 않았다면 못 할 행동이었다.
하지만 전력 질주를 저지하지 못한다면 더 큰 피해를 입게 되었으니 망설임은 없었다.
위드도 고대의 방패를 들고 뛰쳐나갔다.
안전한 후방에서 기다릴 수도 있지만, 신수들의 공격력이 얼마나 되는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이다.
방어력과 인내력, 맷집이 가장 뛰어난 위드가 막지 못한다면 아무도 막을 수 없을 테니까.
위드는 달려가면서 두 번째 명령을 내렸다.
"로뮤나 님, 마법을! 지금 강한 마법은 필요 없습니다. 땅을 진흙으로 만들어 주세요."
"알겠어요."
로뮤나의 주특기는 화염계 공격 마법이었다. 그래도 보조계열로 몇 가지의 마법을 습득해 놓기는 했다.
마침 워터 클레이 마법도 쓸모가 많았지 때문에 배워는 놓았다.
"물이여, 대지를 흠뻑 적셔서 적의 발길을 잡아끌어라. 워터 클레이!"
로뮤나가 마법을 영창하니, 대지가 축축한 늪처럼 변했다.
목표로 한 신수들의 마법 방어력은 엄청났다.
공격을 하더라도 절만의 피해도 입지 않으리라.
하지만 이것은 직접적으로 공격을 한 게 아니라 환경을 바꾼 것이기 때문에 영향을받았다.
푸르릉!
푸힝!
페가수스와 유니콘의 발들이 질척질척한 땅을 파고들었다.
그러면서 달려오던 속도가 아주 조금 느려졌다.
약한 몬스터라면 균형을 잃게 만들거나 아예 넘어지게 할 수 있었지만,그 정도에는 미치치 못한 것이다.
그나마도 금세 다시 빨라지려는 기미가 보였다.
유니콘과 페가수스가 양 날개를 활짝 펼치려고 했다.
공중으로 날아오른다면 구태여 지상에 발을 디딜 필요조차 사라지게 된다.
자신들의 몸체보다고 2배, 3배나 되는 거대한 흰색 날개!
푸륵푸륵!
위드와 검오치, 수련생들로 이루어진 5부대가 부딪친 것은 그때였다.
위드는 부딪치기 직전에 눈을 감았다.
-눈 질끈 감기 스킬을 사용하셨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고통과 아픔도 사라집니다.
콰콰쾅!
굉음을 내면서 부딪친 격돌!
거센 충격이 온몸으로 퍼지고 위드의 생명력이 절반이나 빠졌다.
-매우 치명적인 돌격을 당하셨습니다.
조각사의 특성상 생명력은 많지 않다고 해도, 방어력은 어딜 가고 꿀리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도 단번에 절반의 생명력이 줄어들었다.
위드가 이런 피해를 입은 사이에 수련생들이라고 무사하진 않았다.
무려 12명이나 되는 수련생들이 회색으로 변해서 사라져싿.
그들로서는 할거할 수 없는 힘을 가진 유니콘과 페가수스의 돌격!
격돌의 순간 방패를 들고 정직하게 정면에서 부딪친 수련생들은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
살아남은 이들은 그 짧은 순간, 먼저 부딪친 사람들의 결과가 좋지 못함을 확인하고는 몸을 비틀었다.
유니콘과 페가수스의 돌진해 오는 힘을 살짝 옆으로 흘린 덕분에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이다.
1차 격돌로는 처참한 상황이었다.
살아난 수련생들의 방패는 어김없이 망가져 있었다.
위드가 중급 대장장이 스킬3레벨을 이용하여 만든 강철 방패들이 한계를 초과하는 타격에 부서진 것이다.
위드가 받은 타격도 생명력이 줄어드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큰 충격을 입어 혼란 상태에 빠지셨습니다.
8초간 이동이 불가능합니다.
공격력이 36%하락하고, 방어력이 23% 저하됩니다.
스킬을 사용하지 못합니다.
혼란에 빠진 것이다.
위드의 전투 역사상 매우 드물게 발생한 일이었다.
맷집을 키우기 위해서 일부러라도 맞고 다녔다.
수도 없이 맞아 봤지만 급소를 내주거나 후방을 공격당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유니콘의 돌격에는 매우 큰 힘이 담겨 있어서, 정면에서 막았음에도 혼란 상태에 빠졌다.
매우 위험한 순간이었지만, 유니콘과 페가수스들도 멀쩡하진 못했다.
충돌의 여파로 인해 신수들도 비슷한 타격을 입어서 제자리에서 헤롱거리고 있었다.
예상보다도 훨씬 강한 유니콘들을 보며 위드의 경계심이 터욱 커지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찌지직.
고대의 방패에 미세한 실금이 생겼다.
-고대의 방패 내구력이 1 하락하였습니다.
수리도 불가능한 유니크 아이템!
최소 수백만 원 이상은 받아먹을 것이라면서 기대에 부풀어 있던 고대의 방패!
애지중지 보물처럼 아끼다가 이제야 꺼내서 첫선을 보였다.
그 고대의 방패에 내구력이 1이나 하락해 버린 것이다.
"감히 내 돈을....."
위드의 투지가 불타올랐다.
"전군 화살 발사 준비!"
처처척!
검치들과 페일, 메이런이 모두 시위에 화살을 매겨서 힘껏 당겼다.
목표는 말할 필요도 없이 유니콘과 페가수스들!
5부대의 희생 덕분에 제자리에 서서 멈춰 있다.
남은 거리는 불과 20 미터정도.
바로 코앞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가까웠다.
"발사!"
화살들이 일직선으로 목표들을 향해 쏘아져 나간다.
검기들이 쏘아 낸 화살은, 활의 크기만큼이나 비정상적으로 거대했다.
공성 별기로 착각해도 될 정도로 큰 화살들이 유니콘과 페가수스의 몸에 꽂혔다.
"푸헤에에헹!"
신수들이 아픔의 고통을 내지르며 비틀거렸다.
검치들은 무기술을 익혔다.
어떤무기를 다루더라도 동일한 숙련도를 보여 준다.
그들이 다루는 활은, 검과 똑같이 강했던 것이다.
레벨400이 넘는 신수들이라고 해도, 280명 가까운 검치들의 일제 화살공격에 아예 피해를 받지 않을 수는 없다.
하지만 아직 1마리도 죽은 몬스터는 없었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페가수스도 생명력이 아직 사분의 삼이 넘게 남아 있는 듯 멀쩡한 모습이었다.
연속된 타격에 신수들이 주춤거리고 있을 때에 위드가 외쳤다.
"모두 발검. 공격 개시!"
검치들이 활을 버리고 검으로 무장한 채 신수들에게 돌진했다.
"죽어랏!"
"아우들의 복수를 해 주마!"
그리고 검을 휘두르면서 근접전을 벌였다.
유니콘과 페가수스의 최대 약점!
엄청난 마법력과 더불어서 정령술, 거기에 하늘까지 날아다닐 수 있다.
지상에서는 강대하기 짝이 없는 신수이지만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는 전투 능력이 훨씬 떨어진다.
"움직일 공간을 주지 마!"
"막아. 몸으로라도 부딪쳐!"
유니콘들은 네발로 날뛰며 난동을 부렸다. 앞발과 뒷발로 차고, 주둥이로 물어뜯고, 이마로 들이받는다.
검치들은 공격을 피하기 위해 땅을 구르며, 좌우로 빙글빙글 돌았다.
정면공격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았던 만큼 옆으로 돌면서 허벅지와 엉덩이를 집중 공략했다.
"크어억!"
"정말 세다, 이놈들!"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신수들에 의해서 목숨을 잃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아무리 검치들이라고 하여도 싸우고 있는 신수들이 너무 강하고, 숫자도 많았다.
레벨 400이 넘는 22마리의 신수들을 한꺼번에 감당하기란 무리였다.
그때에 화령이 나섰다.
"매혹의 댄스!"
그녀의 주특기라고 할 수 있는 부비부비 댄스!
날뛰고있는 유니콘들의 사이를 오가면서 춤을 추었다.
아찔하도록 위험해 보이는 광경이었지만, 의외로 그녀는 안전했다.
"예쁜 여자다. 키히힝!"
그녀만 다가오면 유니콘이 온순한 양처럼 날뛰는 것을 멈추었던 것이다.
여자를 유독 밝히는 유니콘!
화령의 가공할 매력에 사로잡혀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행복하다. 키히히히히힝!"
매혹의 댄스가 가진 상대방을 잠재우는 능력.
유니콘들은 입가에 흡족한 미소를 띠며 가만히 서 있었다.
화령은 3마리의 유니콘을 재빨리 잠재우고, 근처의 페가수스에게로 향했다.
'페가수스에게는 안 통할지도 몰라.'
어쩌면 발길질에 차여서 순식간에 죽음을 당할 수도 있었다.
방어력이 약한 댄서가 몬스터들 사이에서 춤을 추는 건 그만한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페가수스도 똑같았다.
"키헤헤헹!"
매우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심지어는 엉덩이까지 좌우로 흔든다!
남자나 늑대나 말이나, 수컷을의 성향은 모두 동일했던 것이다.
화령은 페가수스도 2마리를 잠재우고 나서는 체력이 다 떨어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러자, 전투는 그나마 쉬워졌다.
활동하는 신수들의 숫자가 줄어든 만큼 거치들의 포위방도 두꺼워졌고, 상대하기도 편했다.
"다리를 베어 버려! 못 움직이도록!"
검삼치가 소리를 질렀다.
몸통을 수십 차례 공격했지만 가죽의 엄청난 방어력 앞에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런데 발목과 허벅지를 벨때마다 유니콘과 페가수스가 고통스러워 하는 것이었다.
"여기가 약점이다."
"약점인 다리만 집중적으로 노려!"
검치들이 잘 싸우고는 있었지만, 미처 피하지 못하고 뒷발에 차여 나가떨어질 때에는
거의 죽음 직전에 이를 정도의 타격을 받았다.
그럴 때마다 이리엔이 위험을 감수하고 다가가서 치료를 통해 살려냈다.
위드는 일단 물러나서 냉철하게 상황을 주시했다.
'승산은 있다.'
초기에 큰 피해를 입었지만 이길 수는 있을 것 같았다.
만약에 전혀 승산이 없었더라면, 지금까지 해 왔던 모든 노력을 수토로 하더라도 즉시 도주했으리라.
다만 고대의 방패의 내구력을 깍아 놓았던 놈만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잡고!
그런데 아직 1마리도 사냥을 성공하진 못했지만, 신수들도 제법 피해를 받고 있었다.
거머리처럼 달라붙는 검치들로 인하여 생명력과 체력이 야금야금 약화되고 있는 것이었다.
'이길 수 있다.'
위드는 확신했다.
"포위말을 풀어 줘서는 안 됩니다. 마법과 정령술을 쓰게 해서도 안 됩니다. 그것들만 막으면 우리가
이길 수 있습니다!"
혼신을 다한 위드의 외침은 검치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알았다!"
"크흐흐흐."
"이놈들이 우리의 밥이 된단 얘기로군."
검치들은 위드의 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웬만큼 모험의 경험이 많은 편이었더라면, 처음부터 본인들의 판단에 따라서 고집을 부릴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위드의 말을 철저히 믿었다.
'위드는 돈거래 할 때만 빼면 매우 믿을 만해!'
완벽한 신뢰 관계!
더군다나 검치들은 싸우면서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점점 움직임이 약해진다.'
'잡을 수 있다.'
검치들은 다른 곳에는 신경쓰지 않고, 본인들이 담당하고 있는 몬스터들에게만 무섭게 집중했다.
주변의 상황이 어떻게 변해 가든 완전하게 전투에만 몰두하는 재능.
위드는 여기에 힘들 더했다. 본격적인 전투를 위해서 가지고 있는 모든 전력을 더하기로 했다.
"토리도! 콜 데스 나이트 반 호크!"
"불렀는가."
뱀파이어 로드 토리도가 망토를 휘날리며 뒤쪽에서 뛰어왔다.
주종 관계는 청산되었지만 토둠을 정상화하는 전투에는 함께하기로 한 것이다.
데스 나이트 반 호크도 연기와 함께 갑옷을 입고 나타났다.
위드가 빼앗았던 헬멧도 돌려주어서 스산한 느낌을 잔뜩 풍기고 있었다.
"제일 오른쪽 놈을 잡아."
"알았다."
데스 나이트와 토리도는 묵직하게 대답을 하며 평소처럼 적을 향해 움직였다.
"오른쪽 놈. 가장 오른쪽 놈부터 잡습니다."
"옙."
"알겠어요."
페일과 메이런이 가볍게 대답을 한 후에 지금까지 여기저기로 쏘아 오던 화살을 가장 오른쪽에 있는
유니콘에게 집중 했다. 위드도 예리카의 활로 1마리만을 노렸다.
그들이 함께 쏘는 화살들은 유니콘의 생명력을 끊임없이 갉아먹었다.
토리도와 반 호크의 가세로 마침내 첫 유니콘이 쓰러졌다.
"히힝!"
땅 위로 유니콘의 둔중한 몸이 떨어졌을 때 난 큰 소리는 희망을 주는 소음이었다.
유니콘이 죽은 자리에는 뿔과 가죽, 보석, 무릎 보호대가 푸짐하게 떨어졌다.
위드의 눈이 삽시간에 그곳을 훑었다.
'켈트 보호대, 220골드, 보석들, 평균 103% 시세로 팔면 400골드, 가죽 7장, 325골드, 뿔! 8개를 모아
재료비 2000골드만 추가하면 유니콘 뿔 활을 제작할 수 있다.
최소 5000골드에다 레어나 유니크가 나오면 78000골드에도 팔린 적이 있는 물건.
일단 뿔은 제외하더라도 최소 945골드!'
위드늬 눈동자가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유니콘의 레벨이 높기도 하였지만, 일반적인 던전의 몬스터가 아니다.
토둠에서 누군가에게 한 번도 사냥된 적이 없는 신수!
누구의 손때도 붇지 않은 신선한 상태였다.
이런 경우에는 좀 더 많은 아이템을 얻을 수 있었다.
더군다나 유니콘은 좋은 재료 아이템을 많이 떨어뜨리기로 정평이 나 있는 몬스터.
운마 ㄴ조금 좋다면 이 이상을 기대 해 보는 것도 가능하다.
위드가 함성을 질렀다.
"유니콘을 사냥해서 나오는 돈으로 보리 빵을 사면 3.118.500개를 살 수 있습니다!"
돈 계산을 할 때만 엄청나게 빨리 돌아가는 머리였다.
"허억, 보리 빵을 그렇게나 많이!"
"몽땅 잡아 버리자!"
"우오오오!"
"이제부터 굶주림과는 이별이다!"
검치들이 의욕에 불타올랐다.
위드도 이제는 활을 놔두고 검을 뽑아 든 채 전장에 뛰어 들었다.
이것으로 지휘는 충분히 할 만큼 했다.
검치들에게 첫 사냥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
전투의 전문가들이었으니 잠시 동안의 격돌로 알아서 상대하는 법을 터득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위드가 해야 할 일은 사냥을 계속할지 도주해야 할지에 대한 결정이었다.
'모조리 사냥해 버린다.'
결정이 내려진 만큼 위드는 거침없이 신수들에게 덤벼들었다.
"달빛 조각 검술!"
이번에는 페가수스를 상대로 했다.
검치들과 싸우느라 생명력과 체력이 현저하게 떨어진 페가수스!
검치들과 같이 포위망을 치고 공격했다.
위드는 현란하게 움직였다.
"일점 공격술!"
날뛰는 페가수스의 다리만을 집중해서 베었다.
모든 타격을 하나의 지점에 집중하는 최고의 기술!
찰나의 틈과 흐름을 잡아내지 못하면 쓰지 못하는 기술이다.
페가수스가 발버둥을 치고 있어 위드의 공격은 빗나갈 때도 많았다.
하지만 다른 검치들도 모두 다리만을 노리고 있었으니 페가수스가 입는 피해는 갈수록 커져 갔다.
움직이면서 날뛸 때 마다 다리가 노출되고, 그러면 검치들이 곧바로 응징했다.
몇 대를 맞아서는 꿈쩍도 하지 않을 대단한 방어력을 가진 신수들.
그러나 한 방울씩 떨어지는 낙숫물이 바위에 구멍을 내는 것처럼 생명력이 점점 줄어들었다.
위드는 토리도와 반 호크를 비롯한 주력은 다른 신수를 지정해서 싸우도록 했다.
"페일 님, 메이런 님! 1마리씩만 집중에서 치세요!"
전체적인 전황을 약간씩 유리하게 만드는 것보다 1마리씩이라도 최대한 빨리 죽인다.
설혹 예측하지 못한 사태가 벌어지더라도 확실하게 이기기 위한 방법이었다.
쿠우웅!
콰앙!
여기서지서 신수들이 쓰러졌다.
토리도와 반 호크, 제피를 비롯한 일행의 집중 공격에 쓰러진 신수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생겼다.
"이얏. 우리가 해냈다!"
"스승님이 잡았다!"
검치가 소속된 조가 상대하던 신수가 죽은 것.
위드가 포함된 조도 금세 페가수스를 잡아내고, 곧바로 다른 신수들에게 달라붙었다.
검둘치, 검삼치들도 경쟁적으로 사냥을 하면서 점점 더 많은 신수들이 쓰러지고 있었다.
"푸히힝!"
화령에 의하여 잠들었던 신수들이 깨어났을 때에는 이미 대세가 넘어간 후!
나중에는 부서진 문으로 9마리의 유니콘들이 추가로 난입을 했다.
잠깐 위기가 찾아오는 듯싶었지만 위드와 검치들은 힘겹게 전열을 가다듬어 그들마저도 철저하게 사냥했다.
그렇게 보이는 모든 신수들을 처리했을 때였다.
띠링!
토둠의 1개 성에 있는 신수들을 퇴치하였습니다.
남아 있는 성 : 46개.
명성이 30 오릅니다.
전투 경험치를 추가로 60% 받습니다.
사냥에 따른 추가적인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현재 위드롸 동료들, 검치들의 명성은 바닥을 기고 있었다.
비열하고 옹졸한 궁수 페일.
어린아이도 등쳐 먹을 줄 아는 야비한 상인 마판.
말보다 주먹이 먼저인 수르카.
뱀파이어의 퀘스트를 하다 보니 칭호들도 안 좋은 것들만 붙었을 뿐 아니라, 명성들도 하락했다.
그런데 전투 명성을 획득함으로써 조금이나마 만회를 할 수 있었다.
한번의 전투로 거둔 성과는 무척이나 컸다.
신수들을 물리치면서 획득한 아이템도 어마어마했지만 토리도의 성에 잠들어 있던 뱀파이어 들이 깨어났다.
"로드께 인사드립니다."
뱀파이어 퀸과 뱀파이어 종자들의 가세!
100마리의 뱀파이어 부대를 얻었다.
이들의 레벨은 200대 중반에서 후반 사이였지만 나름 쓸모 있는 전력의 추가였다.
대신 수련생을이 총 28면이나 사망했다.
최초의 격돌이 있었을 때에 12명이 죽은 피해가 일단 가장컸다.
전투 중에도 몇명이 목숨을 잃었고, 유니콘이 난입했을 때에도 7명이 죽었다.
"뱀파이어의 성이 이렇게 생겼구나."
살아남은 일횅은 성을 돌아다니면서 구경을 했다.
오래된 예술품들로 치장되어 있는 장소!
금은로 된 잔이나 은 촛대, 오팔이나 사파이어가 박힌 장검 등 귀한 보물들도 많다.
위드와 마판이 약속이나 한 듯 스스슥 양쪽 벽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그들이 앞으로 움직일 때마다 게 눈 감추듯이 사라지는 귀중품들!
싹쓸이!
부수입이라고도 할 수 있었으니 하나도 남겨 놓지 않았다.
예숨품들은 감정을 하더라도 즉시 가격을 알 수는 없다.
희소성, 예술성, 역사적인 가치에 따라서 가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장검이나 갑옷도 사용할 수는 있지만 실전에서의 성능은 떨어지는 편이었고,
내구도가 매우 낮아서 실용적이진 않았다.
위드가 넌지시 물었다.
"이것들 가격이 얼마나 할까요?"
마판은 고뇌 끝에 답했다.
"양은 많아도 예술품들치고는 좀 평범한 편입니다.
그러니 12,000골드 정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예상도 대충 그 정도였기 때문이다.
예술품을은 정말 뛰어난 물건이 아닌 이상 거액에 팔리기는 어려웠다.
"이 예술품들은 몽땅 팔아 치워야겠습니다. 그리도 그 돈은 골고루 분배하도록 하죠."
"네!"
귀중한 예술품의 경우에는 소장 가치가 있을 법도 하지만 그들에게 현금만큼 좋지는 않았다.
그렇게 성을 구경하던 도중에 어떤 그림을 발견하게 되었다.
벽에 걸려 있는 그림에서는 음험함 기운이 물씬 풍겨 나오고 있었다.
창백한 얼굴의 뱀파이어가 소녀의 목덜미를 보며 입맛을 다시는 그림이었다.
잘혹한 명화를 감상하셨습니다.
괴팍한 뱀파이어가 아마도 화가를 협박하여 그렸을 것으로 생각되는 그림.
썩 뛰어난 실력을 가진 화가의 작품은 아니다.
게다가 공포에 붓이 떨려 실수를 한 부분들이 작품의 전체적인 평가를 낮게 만들었다.
투지가 10% 늘어납니다.
어두울 때 전 스텟이 7 상승합니다.
어두울 때 회복 속도가 15% 증가합니다.
그림을 봄으로써 약간의 부가적인 능력도 상승시킬 수 있었다.
"그럼 다음 성으로 가죠."
위드는 다른 성으로 찾아갔다.
토리도의 성보다 약간 더 규모가 큰 성!
32마리의 신수가 있는 장소였다.
이번에도 위드는 검치들과 함께 선봉에 섰다.
새로얻은 뱀파이어 부대는 나중에 전투가 안정권에 접어들었을 때에나 사용했다.
뱀파이어들은 신수들에게는 취약해서 쉽게 죽어 버린다.
뱀파이어들의 성장!
뱀파이어들이 죽지 않고 강해질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신수들이 주는 경험치는 막대했다.
위드도 한 번의 전투를 치르면 경험치가 20% 이상 쑥쑥 올라갈 정도였고,
검치들은 전투를 끝내면 거의 레벨이 하나씩 오를 정도였다.
두 번째 성에 있는 신수들을 퇴치하였을 때에는 110마리의 뱀파이어를 획득할 수 있었다.
경험이 쌓인 덕분에 검치들의 사망도 16명으로 줄어들었다.
이때 위드는 말했다.
"그래도 아직 전투마다 죽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한번에 10명 이상씩 죽어나간다면 토둠의 신수들을 퇴치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다 죽어 버릴 겁니다.
지금부터 피해는 최대한 없어야 합니다."
유니콘과 페가수스를 상대하는 방식을 터득한 후였다.
위드는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더욱 살리기 위하여 아껴 두었던 재료들을 꺼냈다.
썩은 드래곤 본.
본 드래곤을 사냥하고 획득한 재료였다.
위드는 이것들로 무기와 방어구를 만들었다.
본 소드 : 내구력 130/130 공격력 64~79.
드래곤의 뺘로 만든 검!
많이 부식된 뼈를 재료로 이용하여 검신이 반듯하지는 않다.
하지만 검으로서의 구실을 하기에는 충분한 편이다.
수리를 하기 위해서는 실력이 뛰어난 대장장이가 필요함.
제한 : 성기사 사용 금지.
레벨 300. 민첩 520.
옵션 : 매우 섬세한 손재주로 사용하기 편하게 만들었음.
착용제한 20% 감소
명성 +200
민첩 +30
독공격 데미지 초당 60씩 추가.
공포와 전이로 몬스터들을 위축시킴.
심한 악취.
본 브레스트 아머 : 내구력 130/130. 방어력 85.
치명적인 결함을 가진 갑옷!
오래된 뼈로 제작된 갑옷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충격을 받으면 깨질 수 있다.
제한 : 레벨 320. 힘 650.
옵션 : 매우 섬세한 손재주로 사용하기 편하게 만들었음.
착용제한 20% 감소.
물리 데미지 감소.
마법 방어력 +35%
정신 혼란 계열 마법에 대한 면역.
심한 악취.
-대장장이 기술의 숙련도가 2.3% 상승하였습니다.
-대장장이 기술의 숙련도가 3.1% 상승하였습니다.
썩은 본 드래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숙련도를 올려 주었다.
완성된 검과 갑옷의 재질 또한 최고의 수준은 아니었지만 기대보다는 훌륭했다.
"옵션이 많이 붙진 않았지만 그래도 최소 2만 골드씩은 받을 수 있겠어."
만약 더 뛰어난 대장장이가 만들었다면 재료의 능력을 극한까지 끌어 올렸을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위드의 부족한 대장장이 기술로는 이 정도가 한계였다.
검 한 자루를 만드는 데 필요한 본 드래곤의 뼈는 3킬로그램!
방패나 갑옷 하나를 만드는 데 필요한 본 드래곤의 뼈는 대략 5~15킬로그램 정도였다.
본 드래곤을 사냥하고 입수했던 뼈는 총 230킬로그램!
검을 10개, 나머지는 방패와 방어구를 제작했다.
일명 본 아머 세트!
띠링!
-대장장이 스킬의 레벨이 중급 4레벨로 상승했습니다.
만들어진 아이템들의 공격력과 방어력이 일정 수치만큼 증가합니다.
무기를 다루는 능력이 향상되어 추가적인 데미지를 입힐 수 있습니다.
폭넓은 경험을 가진 대장장이 칭호를 획득하였습니다.
명성이 350 늘어납니다.
위드의 스킬이 한 단계 상승했다.
더군다나 다음 중급 5레벨도 얼마 남지 않았을 정도였다.
위드는 만들어진 무기와 방어구를 고스란히 검치와 사범들에게 바쳤다.
"스승님, 받으세요."
"정말 주는 것이냐?"
"예. 아껴 왔던 재료이지만 스승님이 쓰실 무기라고 생각해서 기쁜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위드야."
짧고 진한 감동!
뭐든 맺고 끊을 때를 잘해야 한다.
선물의 효력은 이때가 지나면 점차 감소하기 마련이니까.
위드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대신에 유니콘과 페가수스에게서 나온 대장일이나 재봉을 위한 재료 아이템은 저에게 좀......"
"그래야지. 우리한테는 필요도 없으니 전부 네가 가져라."
검치와 사범들에게 재료 아이템의 가치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래서 기어이 넘겨받을 수 있게 되었다.
수련생들도 몇 개씩의 무기와 방어구를 나누어 가졌고, 대신에 재료를 주기로 약속했다.
그때부터는 신수들과의 전투가 훨씬 편해졌다.
본 소드와 본 아머, 본 쉴드를 착용하고 있는 이들이 주력으로 나섰다.
방어구의 도움 덕분에 죽는 이들이 크게 줄어들어서, 전투가 끝나도 불과 5명에서 6명 정도가 죽었을 뿐이다.
아직은 규모가 작은 성들만 찾아다니고 있었지만, 거느리는 뱀파이어들의 숫자도 상당히 늘어나고 있었다.
---------------------------------------------------------------------------------------
지옥의 실미도
이현은 MT를 준비하면서 아무것에도 나서지 않을 셈이었다.
'내가 안 하더라도 누군가는 해 주겠지.'
무사안일주의야말로 몸을 편하게 할 수 있는 최고의 계책.
그런데 조원들끼리 모여서 준비 회의를 가질 때였다.
일단 회의의 진행은 박순조가 맡았다. 서윤도 특별히 학교에 와서 준비 회의에 참여한 상태였다.
"그럼 각자 할 수 있는 일들부터 나눠 볼게요. 혹시 밥 지을줄 아는 사람?"
"......"
박순조의 말에 모두 침묵을 지켰다.
"...밥은 대충 지으면 될 테니까요. 그럼 그다음으로, 텐트 칠 줄 아는 사람?"
"....."
"집이아닌 야외에서 자 본 사람? 산에서 자 본 경험이면 더 좋고요."
"....."
서윤이야 원래 말이 없다고 해도, 다른 이들도 고개를 숙인 채로 침묵했다.
학교에서 공부한 것 외에는 다른 경험이 없엇다. 그 흔한 여행도 다녀 보지 못한 이들만 모인 것이다.
이현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런 무능한 놈들!'
박순조의 이마에도 땀이 흥건하게 흘럿다.
모두 이런 경험이 생전 처음이였기에 뭐부터 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엇다.
10분이 지나고, 20분이 넘어도 회의는 제자리만 맴돌았다.
부득이하게 이현이 의견을 말했다.
"예산이 한정되어 있으니까 필요한 물품들부터 정리를 하는 게 어떨까요.
각자 잘하는 게 없더라도 남은 시간 동안 준비를 하면 될 테니까 말입니다."
"맞아요. 물건들부터 맞춰 보는게 좋겠어요."
민소라가 찬성하자, 그때부턴 각자 필요한 물건들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텐트!"
"뭘해먹으려면 버너와 코펠도 필요하죠."
"고기랑 술이 있어야 되겠고... 식수도 없으면 안 되죠."
"밤에 자려면 이불 세트도 있어야겠어요."
"씻어야 되니까 수건도 필수네요."
"휴대폰 충전기"
"화장품도 있어야 되고 그릇이랑 컵, 숟가락, 젓가락."
"빼먹을 뻔했다! 여행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사진이잖아요. 카메라도 가져가야 돼요."
살림살이들을 통째로 챙겨 올 생각인 듯했다. 그러다 최상준이 얼굴을 찡그렸다.
"근데 이 물건들, 1인당 5만원이라는 예산으로 준비를 해야 되는데..... 그리고 다 우리가 짊어지고 가야 하잖아.
대체 어떻게 짊어지고 다닐 셈인데?"
여기서 다시 계획은 벽에 부딪쳤다.
"돈이 문제인데."
"5만원이라는 돈으로 할 수 있는건 정말 아무것도 없어요."
"다른 조에서는 어떻게 준비를 하고 있을까요?"
"제가 아는 조는 라면을 한 박스 사서 매일 끓여 먹는대요."
학점과도 관련이 있는 MT!생존 능력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기에 대부분의 다른 조들은 라면을 사자는 쪽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끼니마다 라면만 먹어야 하다니! 이마를 찌푸리면서도 이유정이 어쩔수 없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역시 라면이 좋은 의견 같은데요. 국물로는 술안주도 할수 있고, 밥도 말아 먹으면 되잖아요."
그러자 박순조가 동의를 구했다.
"그럼 우리도 라면으로 할까요?"
2박3일.
최소 여섯 끼 이상이 라면!
아직 MT의 일정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쉽지만은 않으리라는 예상이 있었다. 그런데도 라면만을 먹고 억지로라도 버티자는 의견으로 결정되기
직전이였다.
"뭐 다른 대안이 없으니...."
"라면을 사는 것으로 할까요?"
최상준과 민소라도 합의를 보고 그렇게 확정이 될 무렵.
결국 이현이 나서기로 했다. 이들에게 맡겨 놓느니 본인이 준비하는 편이 더 일이 편할 것 같았으니까.
금요일 오전.
아침 일찍 시장 근처로 이유정과 박순조, 최상준이 모였다.
이현 때문이었다.
그는 라면을 강력하게 반대했다.
"저로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매끼마다 라면을 먹을 수는 없습니다."
라면이 불량 식품은 아니다.
오히려 라면이야말로 이현에게는 가장 소중한 음식이었다.
생활고에 찌들던 시절에는 싸를 사서 밥을 해 먹는 것도 만만치 않게 부담스러울 때가 있었다.
한창 먹어야 할 시기에 허기를 때우는 데에는 라면이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
할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끓여 먹었던 라면과 김치의 맛은 지금도 잊지 못할 정도였다.
'그래도 여섯 끼를 라면만 먹을 수는 없어.'
어릴 때부터 라면을 너무 먹어서 온갖 종류의 비법들을 다 터득했다. 그러나 이제는 라면은 가끔 먹는 음식으로 놔두고 싶었다.
더구나 여섯 끼를 라면만 먹는다면 균형적인 영양분 섭취에 무리가 따른다.
"차라리 제가 먹는 것과 자는 것, 생활에 필요한 도구들을 준비하겠습니다."
이렇게 이현이 예산에 맞춰서 필요한 물품들을 알아서 장만한다고 했지만, 미덥지 못해서 확인차 나온 것이다.
이현은 정확하게 시간에 맞춰서 나타났다. 그러고는 동생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였군"
"예"
"그럼가자"
이현은 그들을 데리고 농수산물 도매시장으로 들어갔다.
막 시장으로 들어갈 때만 하더라도 이유정은 영물을 알수 없엇따.
"마트가 훨씬 더 편하잖아요. 그런데 왜 시장에 온 거예요?"
은근히 구식이라는 핀잔도 담겨 있었다. 시장의 시대는 저물고 마트가 상권을 장악한지 오래였으니까.
이현은 복잡하게 설명하기도 싫었다. 사야할 물건들이 많은데 벌써부터 힘을 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가 보면 알아. 그리고 여긴 보통 시장이 아니라 도매시장이야."
도매시장은 입구에서부터 종류별로 정육점, 쌀가게. 야채가게. 그릇 집 등 온갖 종류의 점포들이 있었다.
가격표를 보는 순간 이유정은 입이 다물리지 않았다.
"말도 안돼! 돼지고기가 100그램에 1.400원 이잖아!"
마트에서는 2.200원 정도에 파는 고기가 거의 절반 값! 쌀이나 야채, 과일들의 가격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것들 다 수입산이죠?"
이유정이 물었을 때, 이현은 고개를 저었다.
"돼지고기는 원래 이윤이 잘 안 남아서 거의 수입을 안해.
생선들은 수입산이 있겠지만, 그거야 어디든 마찬가지고."
"그런데 왜 이렇게 싸요!"
"소규모 매장들이잖아. 자릿세가 크지 않고, 또 10년 이상 거래해 온 곳들로부터 물건을 떼어 오니 쌀 수밖에 없는거지."
이유정은 엄마를 따라서 장을 몇 번 봐 왔기에 가격 차이가 얼마나 심한지를 알 수 있었다.
가게 주인들은 이현을 보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젊은 총각, 오늘은 두 번을 오네?"
이미 새벽에 여동생의 밥을 차려 주기 위해서 시장을 한바퀴 돌았는데, 다시 왔다는 이야기였다.
"예. 안녕하세요. 이 친구들과 MT를 가게 되어서 여러가지가 필요할 것 같네요."
"그럼. 어서 와. 당연히 싸게 많이 줘야지. 근데 총각도 대학생이었어?"
"....."
이현은 고기부터 골랐다.
'예산이 한정되어 있으니 가격대가 큰 것부터 골라야겠지.'
삼겹살, 목살, 갈비 들을 각각 2킬로씩 골라냈다.
8명이 2박3일간 먹어야 하는 양이었으니 고기부터 산 것이다. 이걸로도 좀 부족할지 모르지만 돼지고기만 구워 먹을 것은 아니니 상관없다.
"얼마 안 되지만 족발은 서비스야."
"고맙습니다."
이현이 다음에 간 곳은 야채 가게!
요리를 할 때에도 그렇고, 고기를 먹을 때에도 신선한 야채들이 없으면 입맛이 안 살아난다.
그런데 이곳에서 박순조와 최상준은 어이가 없엇다.
보람 야채 21호
다퍼줘 야채 19호
야채 가게들의 이름부터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진열된 야채들은 거의 없고, 무식하게 큰 봉투에 다 담겨 있거나 박스째 쌓여있었다.
이현은 상추와 파, 배추 등을 박스로 골랐다.
"얼마죠?"
"상추가 한 박스에 3.000원, 파3.000원. 배추는 5.000원이네."
"미나리랑 부추, 마늘, 고추랑 감자도 좀 주세요."
"얼마나 필요한데?"
"많이요. 8명이 2박3일간 먹을 거거든요."
"학생들이구만. 그럼 많이 줘야지!"
야채 가게 주인은 박스 하나에 푸짐하게 담아 주었다. 덤으로 고구마도 8개나 얹어 주었다.
"이건 7.000원만 받을게."
이현은 받기 전에 잠시 주저했다.
"이렇게 팔면 얼마 안 남으실 텐데..."
"요즘 고구마가 많이 싸졌거든. 어여 가져가."
각자 상자를 하나씩 드록 있는 상황에서 이현이 물었다.
"과일도 먹어야 되겠지?"
"네? 네. 먹을 수 있다면 먹어야죠."
이유정은 당황해서 얼떨결에 대답했다.
1인당 5만 원이라는 빠듯한 예산을 가지고 계획을 짰을 때만 하더라도, 실제로 살 수 있는 것들이 없을 듯했다.
당연히 과일이라고는 꿈도 못 꾸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이현을 따라서 가게까지 가게 되었다.
"아줌마"
"총각 왔나?"
"예. 딸기가 어떻게 해요?"
"두 상자 4.000원 인데, 앞쪽에 있는 건 3.000원에 줄게."
"좋은 걸로 두 상자 주세요. 싸게요."
"자! 여기 튼실한 놈들로만. 그냥 3.000원에 줄게."
박순조와 최상준은 괴성을 질렀다.
"케엑!"
"무슨 가격이 이렇게 싸?"
이상한 나라에 온 것 같았다. 마트에서 카트를 끌고 다니면서 구매를 할 때에는 이런 곳이 있는 줄도 몰랐다.
어쨌든 일행의 경악 속에서 딸기까지 사고도 예산이 한참이나 남았다.
이유정이 신이 나서 물었다.
"이제 텐트나 코펠, 버너 등을 살 수 있겠어요!"
이현은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MT 준비는 나한테 맡긴다고 했잖아. 내가 알아서 준비 할 거야."
"도구들을 빌려 오는 건 안 된다고 했는데요."
"다 알아서 할게. 그보다, 돼지고기만 먹을 수는 없으니 다른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