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13권 : 2. 공주의 기사 (19/520)

2. 공주의 기사

위드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어떻게든 할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의뢰를 받았으니 물러설수는 없다.

싸움이 벌어지면 조금의 틈도 없을 테니, 위드는 일단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레이다, 아니 공주님."

"네, 기사님."

레미 공주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위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위드의 눈에 그녀의 작고 고운 발과 종아리가 보였다.

남자들 중에는 여자의 발을 유독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위드에게 그런 취미는 없었다.

"지금부터는 저만 믿고 의지하셔야 합니다. 무슨일이 벌어지더라도 놀라지 마시고, 저만 믿어주셔야 합니다."

"네, 알겠어요. 저의 생명을 그대에게 맡기겠습니다."

위드는 더 이상은 말하지 않고 말에 올라탔다.

인간의 군대도 점점 주변으로 접근해 오고 있고, 돌덩어리와 마법들이 지척에 떨어진다.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기 직전이었다.

백마는 얌전하게 위드를 주인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공주가 뒤에서 그를 끌어 안았다.

히히힝!

가볍게 투레질을 하는 말.

위드는 한손으로는 고삐를 쥐고, 다른 손으로는 검을 잡았다.

띠링!

 - 칼라모르왕국의 기사 콜드림의 애검을 들어 명성이 2,500 증가합니다.

   공격속도가 빨라집니다.

   힘이 늘어납니다.

   민첩이 늘어납니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약한 몬스터들을 위압시킵니다.

   아이스 데몬의 힘이 검신에 남아 있습니다.

위드는 말에 박차를 가하며 적진의 중심을 향해 달렸다.

"달려라, 이럇!"

백마는 한 걸음씩 뗴어놓을 때마다 무섭게 가속도가 붙었다.

로자임 왕국에서 병사들과 함께 리트바르 마굴을 소탕할때의 망아지와는 차원이 다른 명마.

기사들의 돌격은 말의 전투력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좋은 말은 체력과 민첩성이 보통이 아니라서, 일부러 좋은 종자를 구해서 망아지 때부터 기른다.

그렇게 성장시켜서 얻을수 있는 최상의 혈통 말은 부르는 게 값!

모르긴 해도 현재 타고 있는 백마는 엄청나게 비싼 놈이리라.

바람을 가르면서 뛰어가는 속도가 가공할 정도로 빨랐기 때문이다.

쏘아진 화살처럼 질주하고 있었다.

위드는 눈을 크게 뜨고 검을 잡았다.

이제부터 믿을 것은 정말로 검 한자루 밖에 없다. 그리고 등에서는 여리고 갸날픈 공주의 온기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검술 도장.

정일훈은 도복을 입은 채로 차은희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종범아."

"예, 사형."

"여자란 말이다, 외모가 다가 아니다. 마음이 통하면 되는 것이지 않겠느냐?"

최종범은 서둘러 맞장구를 쳐 주었다.

"사형의 말이 맞습니다."

마상범도 거들었다.

"세에취 양은 마음씨가 곱습니다. 그리고 사형을 좋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도장에도 와 보겠다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직접 만든 김밥을 싸들고서 말이다.

약속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심장이 잠시도 가만있질 않는군."

정일훈에게는 수줍은 첫사랑이었다. 그녀를 실제로 만나려니 검술 대회에 나갔을 때보다 더 떨렸다.

최종범도, 마상범도, 이인도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대사형에세 여자친구가 생기다니.

비록 그 대상이 오크이고, 추악하고, 못생겼고, 뚱뚱하다고 해도 축하해 줄수 있었다.

그들도 로열로드에서 모험을 하면서 지켜보았는데 오크 세에취는 현명하고, 정일훈과 마음이 잘 통하는 상대였던 것이다.

"이제 올 텐데....."

정일훈이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한 아줌마가 도시락을 들고 도장으로 걸어왔다.

"......."

최종범과 마상범, 이인도는 숨을 죽였다. 

'저 여자인가!'

'세이취와 조금 닮긴 했군.'

'그래도 나이가 너무 들었는데... 30대 후반, 혹은 40대 아닌가?'

풍만한 체형의 아줌마는 도장을 향해 계속 걸어오고 있었다.

정일훈이 그래도 얼굴 가득 미소를 띠면서 마중을 나갔다.

"잘 왔어요. 이렇게 일부러 와 줘서 고맙습니다. 오는데 힘들었죠?"

정일훈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작은 행동이었지만 엄청난 용기를 낸 것이다.

그녀가 상처를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외모가 아닌 마음이 중요하기에 그녀를 반갑게 맞이하려고 했다.

그런데!

"누구세요?"

아줌마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도장 안에서 초등학생 쯤으로 보이는 어린 꼬마 애가 나왔다.

"엄마! 내 도시락 가져왔어?"

"여기. 다음부터는 잊지말고 꼭 가져가야 돼."

"응, 알았어. 앗, 사범님! 안녕하세요!"

꼬마는 정일훈과 다른 사범들에게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고 도장으로 들어갔다.

꼬마의 어머니도 다시 돌아갔다.

"크흠-!"

정일훈은 무안함에 길게 헛기침을 하고 다시 차은희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대로에서 오가는 여자들과 눈이 마주칠 때마다 몸이 굳어간다.

'저 사람인가?'

김밥을 싸 들고 온다고 했다. 빈손으로 다니는 여자는 아니라고 봐야한다.

그때 고운 피부에, 눈에 번쩍 뜨일만한 미녀가 보였다.

십만 명에 1명. 시내 중심가에서 하루 종일 서 있어도 마주칠까 말까한 미녀였다.

그녀는 큰 쇼핑백을 2개 들고 도장을 향해 걸어오는 중이었다.

정일훈은 생각했다.

'저 여자는 아니겠지.'

사제들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저 여자는 아닐거야.'

'근데 이쪽으로 오네.'

'무슨 일일까. 카드 가입하라는 걸까? 물건을 팔려는 걸까. 카드 가입하라고 하면 꼭 해야지. 몇마디 말이라도 붙여볼수 있었으면....'

이인도가 가장 간절히 원했다.

모두 정신이 없었기에 무거워 보이는 쇼핑백을 들고 낑낑대며 다가오는 걸 보면서도 달려가서 도와주지도 못했다.

저무 젊고 예쁜 숙녀라서, 힘들어 하는 것을 보면서 말을 붙이기도 힘들었다.

'홰 계속 여기로 오지.'

'이쪽으로 오는 이유가 뭘까.'

'우리가 무슨 잘못이라도 저질렸나?'

네 남자의 머릿속에는 무수한 상념들이 스쳐 지나갈 뿐이다.

그녀가 다가와서 정확하게 정일훈 앞에 섰다. 그리고 다정하게 말했다.

"안녕하세요, 일훈 씨!"

정일훈의 눈에 의혹이 스쳤다.

"제 이름을 어떻게 알고 오셨죠? 혹시 다른 도장의 스카우트 제의라면....."

아무리 미인계를 쓰더라도, 도장을 떠날 마음은 없었다.

지금 받는 대우도 나쁘지 않았을 뿐더러 스승과 사제들과 떨어지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 검을 더 깊이 익히고 배울 때라고 여겼으니 돈과 명예에 한눈팔 새도 없었다.

한데 그녀는 보조개가 파일 정도로 환하게 웃으면서 물었다.

"네? 스카우트라니, 저 말고 누구를 기다리고 계셨어요?"

이제 정일훈이 놀랄 차례였다.

"뭐, 뭐, 뭐, 뭐요?"

도장의 대사형!

진검을 들고 비무를 할 때에도 잔잔함을 유지하던 그가 진심으로 경악했다.

"서, 서, 서, 서, 설마... 뭐, 뭐, 뭐, 뭔가... 자, 자, 자, 잘못... 모, 모,모, 못! 혹시 제가 무슨 약속을 하고 잊어버린 건...."

"검둘치. 정일훈씨 아니세요?"

"마, 마, 마, 맞는, 데, 데, 데,데."

"제가 세에취에요, 일훈 씨!"

정일훈은 대답도 못하고 넋이 나간 인간처럼 차은희를 보고있을 뿐이었다.

다른 사제들도 정신을 놓고 가만히 있었다.

'말도 안돼.'

'불가능해.'

'세상에 왜 이런 일이.'

'그녀는 오크 세에취였는데.....'

'잠깐. 로열로드에서는 외모를 바꿀수 있잖아. 우리는 그냥 똑같이 했지만, 그녀의 경우에는 외모를 바꾸었던 거야. 왜 진작 이걸 생각지 못했지?'

로열로드에 익숙하지 않은 그들은 이제야 비로소 자각한 것이다.

"....."

"....."

"....."

도장 안에는 기나긴 침묵이 흘렀다.

정일훈은 포함한 사범들 넷과 관장 안현도는 아무 말이 없었다.

수련생들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차은희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일훈이 저놈에게 저런 재주가 있었다니.'

안현도는 정일훈에게 검의 재능이 있음을 알고 발굴해 냈을 때 보다도 더 놀랐다.

'저토록 예쁜 여자가 대사형의 여자 친구라니.'

'아니야. 이건 현실이 아닐거야. 꿈이라면 빨리 깨어나자.'

안현도와 사범들, 수련생들은 차은희가 싸온 김밥도 먹지 않았다. 아니, 먹고 싶은 기분 자체가 들지 았았다.

얼굴이 예쁜 것은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처음에 억지로 김밥 하나들 입에 넣었더니, 맛까지 있었다.

'크윽! 귀엽고 앙증맞게 말아 놓은 이 김밥좀 봐.'

'요리까지 잘하다니.'

'나는 평생 라면만 끓여줘도 되는데.'

안현도와 사범, 수련생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돌맹이를 씹는 것처럼 김밥을 먹기 어려웠다. 음식을 두고 망설이는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리라.

한참 만에야, 그나마 나이가 많은 안현도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 그래, 네가 세에취라고?"

차은희는 공손하게 대답했다.

"네, 어르신."

그녀는 화사한 베이지색 블라우스에, 무릎까지 내려오는 귀여운 치마를 입었다. 몸 전체의 볼륨이나 라인이 일품이었다. 한창때의 숙녀로서의 매력을 한껏 발산했다.

화령, 정효린과 견줄 정도의 미모는 아니었지만 일반인 중에는 굉장히 예쁜 편이다.

안현도가 고개를 끄뎍였다.

"그래. 우리 일훈이를 잘 부탁한다."

그 말만을 남겨놓고 조용히 일어나서 관장실로 향했다.

깔끔한 태도.

하지만 실제로는 배가 아파서 빨리 자리를 뜬 것이었다.

남은 차은희는 다른 사범들의 집중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최종범이 말문을 텄다.

"형수님, 궁금한게 있는데 여쭤바도 될까요?"

순간 정일훈은 팔불출 처럼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후흐흐."

형수님이라는 말! 이토록 즐겁게 들릴줄 몰랐다.

차은희는 박속처럼 하얀 이를 드러내며 부드럽게 웃었다.

"네. 물어보세요."

최종범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학교는 어디까지 나오셨는지요."

"그게요....."

차은희가 대답을 하려는데 정일훈이 얼굴을 굳이호 꾸짖었다.

"종범아, 이놈! 학교가 뭐가 중요하냐."

정일훈은 고등학교 중퇴였다.

다른 사범들이나 수련생들도 중학교 중퇴나, 고등학교 중퇴가 대다수다. 가방끈이 긴 바닥은 아닌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소위 말하는 엘리트로 분류될 정도였다.

최종범은 그래서 무심고 질문을 던져 본 것이었는데, 정일훈은 다르게 생각했다.

'그녀도 고등학교때 사고를 쳐서 졸업을 못했다면 창피해 할거야.'

사나이다운 깊은 배려.

정일훈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였다.

차은희는 미소를 머금고 대답했다.

"괜찮아요. 대답 못할 이유도 없는걸요. 저 하버드 나왔어요."

"예?"

최종범은 당황했다.

"하버드라면 번화가에있는 재수 학원 이름인가요?"

"미국 보스턴에 있는 대학인데요."

"커헉!"

단말마의 비명 소리, 그 후에 이어진 깊은 침묵.

사범을과 수련생들이 아무리 무식하다고 해도, 하버드 대학이 어떤 곳인지는 알았다.

이번엔 마상범이 물었다.

"실례지만 지금 하시는 일이....?"

"병원에 있어요."

"아, 간호사시군요."

"아뇨. 의사예요."

"의, 의사요?"

"네. 정신과 박사인데요."

마상범은 눈앞이 아찔했다.

정일훈에게 여자친구가 생긴것은, 30대 중반이 얼마 남지 않은 사범들에게는 숨이 턱턱막히는 일이었다.

수련생들고 절박했다.

"안 돼. 우리도 하릴없이 나이만 먹고 있는데...."

"20대 후반, 30대가 코앞인데. 저토록 어여쁘고 똑똑하신 형수님이라니."

미래가 한층 어두컴컴해졌다.

먹구름이 깊게 내리깔리고, 천둥 벼락이 떨어진다.

'이대로는 안 돼.'

'낭비할 시간이 없다.'

사범들과 수련생들이 벌떡 일어났다.

"로열로드에 접속해야해!"

"어서 접속해야지."

"오크 마을! 오크 마을 부터 가야겠다."

그들에게 크나큰 목표가 생긴 셈이었다.

그 시각, 이미 안현도는 관장실에서 캡슐로 들어가서 접속해 있었다. 모라타에서 되살아 나자 마자 맹렬히 오크 마을을 향해 뛰는 중이었다.

KMC미디어의 영상실에는 긴박함이 흘렀다.

"두 번째 방어선 돌파!"

"세번째 방어선과 충돌합니다."

"창병 일곱 도륙,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브롬바 왕국 기사 사망! 레벨 360정도로 추정."

강 부장은 방송 스케줄을 확인하느라 잠깐 화면을 못 보고 있었다.

"몇 분만에 죽였지?"

영상실의 직원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거의 순식간에.... 1분도 지나지 않앗습니다."

"말을 탄 상태로 말이야? 레벨 360대의 기사가 얼마나 강한지 알텐데. 뭔가 착오가 생긴것 아닌가?"

"말을 멈추지도 않었습니다. 한 방향으로 그대로 달려가면서 마상 격투를 벌여... 짧은 순간에 열번이 넘는 칼질을 했습니다."

"그게 가능해? 말을 탄 채 검을 휘두르면 균형이 흐트러지잖아."

"저도 잘.... 저라면 당연히 못했겠지요. 그런데 그는 했습니다."

"괴물이로군."

찬탄밖에 나오지 않는 전투의 연속!

처음 위드는 공주를 뒤에 태우고 백마를 탄 채 적진으로 향했다.

궁수 부대가 쏘아낸 화살 공격을 놀라운 속도로 과감하게 돌파했다. 화살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속력을 내어 탄착지점을 넘어버린 것이다.

마법사들의 일제 마법 공격도 말의 절묘한 방향전환으로 피했다.

폭발하는 화염과 얼음조각, 벼락의 폭풍!

스켈레톤 나이트의 믿음직한 승마스킬을 발휘하여, 백마와 함께 돌파했다.

그리고 창병을과 궁병들이 있는 진영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위드가 두 발로만 말을 조절하며, 어느해 빼앗은 창과 검을 휘두를 때마다 어김없이 창병들이 목숨을 잃었다.

저항할수 없는 돌격!

기사는 말을 타고 돌격하면 기본 공격력이 훨씬 커진다.

최소 2배에서 3배.

심지어는 말의 속력에 따라서 최대 공격력에서 7배 이상 차이가 난다.

방패로 막으면 방패가 부서질 정도고, 철판 갑옷이라고 해도 우그러지고 박살이 나 버린다.

일반 보병으로는 질주하는 기사를 막을수 없었다.

지상에서도 안정적인 공격력과 매우 뛰어난 방어력 그리고 강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지만, 말을 탄 기사야말로 직업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것이다.

위드는 무섭게 속력이 붙은 질주 상태의 돌격으로 방어선을 그냥 꿰뚫었다.

말은 엄청난 속도를 내고 있지만, 그 위에 있는 위드의 움직임은 현란하기 이를데 없었다. 손 아래에서 검이 춤을 추는 것만 같았다.

가공할 힘과 속도.

혼자서 적진의 한 복판으로 뛰어들어서 검을 휘둘러 보병들을 베어버리고 통과한다.

그리고 상대 또한 어엿한 기사인데도 대번에 싸워서 이겨버린 것이다.

죽음을 거부할수 있는 힘에 의해 부활한 상태라고 해도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강 부장이 의혹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원래... 기사의 직업을 경험해 봤나?"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본인은 조각사라던데."

"부업일지도 모르죠."

단순한 추측이지만, 방송사에서는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사실상 웬만한 것들은 영상으로 볼수 있기 때문에 캐릭터에 대한 정보는 세세하게 캐묻지 않는다. 알려 주지도 않는 것이 원칙.

위드가 어떻게 살아났는지도 알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아이템이나 스킬, 캐릭터의 정보는 자신만의 중요한 비결이라고 봐도 되기 때문에 방송 계약을 했다고 해서 알려달라 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였다.

"주변이 온통 전쟁터야."

"나도 저렇게 구해주는 기사가 있다면...."

"낭만이야, 낭만. 기사님과 함께 백마를 타고 짜릿함을 즐길수 있다니."

여자 작가들도 전투에 푹 빠졌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순진무구한 공주! 의뢰를 맡긴 기사와 함께 백마를 타고 있다.

로맨스 소설에나 나올 법한, 꿈에 그리던 낭만적인 이야기가 아니던가.

물론 그 기사는 잘생긴 미남 청년이 아니라 살점 하나 붙어 있지 않은 해골 기사였지만 말이다.

"저 가슴에 푹 안겨 보고 싶잖아."

"로열로드에서 기사들은 정말 든든하고 멋있는 거 같아."

강 부장은 위드의 전투를 보는 한편, 영상실 내부를 진두지휘했다.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연출부 직원들은 영상 절대 놓치지 마!"

"넷!"

"분석실 직원들! 오늘 일감에 따라서 올해 인센티브가 정해질 수도 있어. 졸지 마. 졸려도 자면 안돼."

"이 전투가 끝날 때 까지는 절대 안 자겠습니다, 부장님."

"다른 직원들도 특이 사항이나 못 보던 것을 발견하면 꼭 말하도록 해."

영상실에서는 스크린 모니터가 여러 각도에서 수십개나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팔랑카 전투.

베르사 대륙의 역사속에 있는 전투의 재현이다.

오래된 과거의 전투들은 역사서에 기록된 문장 외에는 알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그 가장 치열했던 전투의 현장을 다시 볼수 있었다.

"희퀴 로브 발견! 정체는 파악하지 못했으나 마법 방어력이 매우 뛰어납니다."

"자이언트류의 소수 종족도 있습니다. 이백 개체가 넘는데요."

"특기는?"

"괴력을 발휘하고 있고... 무기나 마법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좋아. 일단 참고해 두고...... 아직까지 미 발견 종족으로 기록해 두지. 스킬쪽은 정리 됐어?"

"지금 하고 있습니다. 마법사들 쪽에서 최소한 57개 이상의 새로운, 아니 아직 발견하지 못했던 마법들이 나왔습니다."

수백년 전의 마법사들이 사용하는 마법이나, 기사나 전사들의 스킬들을 팔랑카 전투에서 눈으로 볼수 있었다.

현재에는 실전되어 전해지지 않는 직업과 마법들도 상당 수였다.

그 마법들의 효과와 위력을 밝혀 낼수 있었다.

실전된 마법의 복구, 혹은 새로운 마법을 개발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마법사들에게는 가뭄의 단비와도 같을 것이다.

마법사들은 2차 승급을 마친 이후부터는 본인의 특성에 맞는 수련을 통해 자신만의 마법을 창조하거나 정보들을 모아 고대의 마법을 복원할수 있다.

이런 마법적인 자료나 아이템, 직업, 종족 등은 모두가 귀한 자료였다.

모험가들에게는 더 특별하다.

정보를 입수해서 희귀한 퀘스트를 찾아다니는 이들이라면 팔랑카 전투로 인해 특별한 의뢰를 받을 가능성도 높다.

소수 종족, 당시에 전쟁에 참여했던 왕국 중 아직 명맥을 잇고 있는 곳도 있으니까.

그들에게 팔랑카 전투에 대해서 말을 한다면 반응할 가능성이 있다.

"대박이다."

"정보의 양도 어마어마하고, 이 전투의 규모를 봐."

"시청률은 따 놓은 거나 다름이 없겠구나."

"적어도 1달은 이 팔랑카 전투가 논란이 될걸."

분석실 직원들이 기쁨에 차서 소리쳤다.

위드가 토둠에 가고 난 이후로 잔잔한 것들만 보여줘서 얼마나 실망을 했던가!

하지만 역시 위드는 사건을 몰고 다님이 분명했다.

남들은 억지로 하려고 해도 힘든 퀘스트들과 생고생을 도맡아서 하고 있으니 말이다.

'수베인 왕국. 내가 있는 헤로타이 성에서 금방인 곳인데... 무슨 의뢰를 받을수 있지 않을까?'

강부장 조차도 몸이 근질근질해서 참기가 어려웠다.

몇 분이 지났다.

"위드. 위드는 뭘 하고 있지?"

분석실 직원들이 급하게 작성한 자료를 읽고 있던 강 부장이 고개를 들지 않은 채로 물었다.

"......"

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영상실에 있는 수백명이 넘는 사람들 중에서 한 사람도 강 부장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다른 부서의 직원이 대답하기 어렵다고 해도, 강 부장이 지휘하고 있는 직원들만 50명이 넘는다.

영상실은 어느새 조용해져 있었다.

"다들 왜 대답이 없어?"

강 부장이 고개를 들었다.

과연 이번에는 또 얼마나 엄청난 광경을 보여 줄 것인가.

강 부장이 전면의 스크린으로 시선을 올렸다.

위드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놀랍게도 드레이크 위였다.

"뭐, 뭐야. 어떻게 된 거지?"

직원들 대신에 오동만이 대답했다.

"그게 드레이크들의 심한 공격을 받았습니다. 공중에서 불을 쏘고 발톱으로 할퀴어서, 이를 피하기 위해 상당히 고전했습니다."

화살이나 마법을 기마술로 피하는 것만 해도 굉장했다. 그런데 드레이크가 불을 쏘며 추격해 온다면 여간 짜증이 나지 않았을 것이다.

멀쩡한 평야라고 해도 따돌리기 어려운 마당에, 지상에는 몬스터와 적 병사들로 가득했다.

"그런데?"

"그러다 어느 순간 뛰어올라서 드레이크 위에 올라탄 것이죠."

인간에게 길들여진 드레이크가 아니었으니 그 후에 매섭게 저항했다. 불을 뿜어내고, 공중에서 몸을 뒤집으면서 위드를 떼어내려고 드레이크는 최선을 다했다.

동료 드레이크들도 그 광경을 보았다.

그들은 동족을 돕기 위해 주둥이에서 불을 뿜었다.

위드는 그럴 때마다 타고 있는 드레이크의 반대편으로 전광석화처럼 움직이면서 근처에 있는 다른 놈들을 공격했다.

공중전!

드레이크 무리와 함께 하늘에서 숨이 넘어갈 듯한 전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후와와와와와와!"

위드가 터트리는 고함소리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였다.

드레이크가 날갯짓을 할 때마다 공중으로 긴박하게 솟구친다.

드레이크 무리와 싸우는 것을 구경하는 사람도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커어억!"

"너무 멋있다!"

"이거야 말로 시청률 20%는, 아니 30%는 충분할 거야."

"대박이다, 대박! 올해에는 상여금도 제대로 받을수 있겠구나."

대지 위에는 역사적인 팔랑카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수십만의 인간들과 타 종족들이 세상의 패권을 놓고 다툰다.

그곳의 하늘에서 드레이크들과 공중전을 벌이는 것이다.

태양이 따갑게 비추고, 구름들도 옆에서 흘러가고 있다.

드레이크들의 엄청난 속도와 불규칙적인 움직임, 그에 대항해서 싸우고 있는 해골 기사 위드!

침을 삼키는 것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흥분이 되었다.

"이거 진짜 그림이다. 공주를 지키기 위해서 저렇게 영웅적으로 싸우는 기사라니...."

이야기가 좋았다.

너무나도 낭만적이라서 웬만한 감수성을 지닌 사람들이라면 모두 빠져들 수밖에 없으리라.

그때 직원 한 사람이 갑자기 박수를 쳤다.

"앗!"

"왜, 무슨일인데? 뭐라도 발견했어?"

"그게...그러니까......"

"그러니까 뭐!"

"공주가 죽었는데요."

"뭐, 뭐?"

"그러니까... 아래쪽의 화면을 보세요. 방치되어서 죽었습니다. 백마랑 같이요."

"....."

완전하게 전투에 몰입해 버린 위드는 공주와 백마의 안위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던 것!

혼자서 드레이크에 올라타고 나서 기사답게 호쾌하게 싸우다 보니 정작 공주는 몬스터들에 의해 죽어버린 후였다.

여성 작가들은 좌절했다.

"레미 공주우!"

"아악! 우리 공주가 죽다니!"

공주에게 완벽하게 감정 이입을 하고 있던 그녀들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은 충격 그 자체!

영상실에 모여있던 직원들도 낙담하긴 마찬가지였다.

위드에 대한 기대심리가 워낙에 높다 보니 공주를 살리지 못한게 안타까웠다.

"내 상여금."

"내 휴가...."

"진급도...."

직원들은 앓는 소리를 하면서도 희망을 가졌다.

이 팔랑카 전투가, 위드의 전투가 방송되었을 때에 시청자들에게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는 알수 없다.

지금은 전신 위드의 활약을 바로 앞에서 볼수 있다는 점에서  KMC미디어에 근무하는 보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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