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달빛조각사 13권 : 3. 역사적인 전투 (20/520)

3. 역사적인 전투

그날 밤, 이현은 여느 때처럼 저녁을 차렸다.

매콤한 사천 탕수육.

평소에는 요리 시간이 제법 걸려서 준비하기가 어렵다.

"기름도 많이 들어서 못했던 요리지."

튀김은 설거지도 귀찮지만 기름을 많이 쓴다. 소모되는 기름이 아까워서 집에서는 하기 힘든 음식이다.

자린고비인 이현이라고 해도 이미 썼던 기름은 웬만하면 재활용하지 않았다.

"동생 몸이라도 축나면 안되니까."

자신이 먹기 위한 음식이었으면 간단히 짜파게티를 끓이는 정도로 충분했지만 동생을 위해서 최고의 탕수육을 만들었다. 

이현은 그렇게 저녁 식사를 마치고, 다크 게이머 연합의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 승냥이 검 삽니다.

 - 금으로 만든 촛불 삽니다. 퀘스트에 필요하니 바로 '시골늑대'에게 메일 보내주세요.

 - 사냥에 끼워 주실분. 아직은 풋내기 다크게이며입니다. 레벨 312. 직업은 무투계열.

오늘도 많은 글들이 올라와 있었다.

이현은 아이템의 시세부터 살폈다.

"시간이 넉넉하니 제대로 알아 놔야겠어."

어차피 24시간 동안 접속하지 못하니 여유는 있었다.

이현도 버티지 못하고 끝내는 두 번째 목숨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팔랑카 전투는 말 그대로 죽음의 관문이었다.

끝도 없는 적들의 대열.

드레이크와 싸우면서 상상도 할수 없을 많큼 높은 곳에 올라갔지만, 아래로 보이는 시야 전체에 적들이 있었다.

과거 오크들을 부려서 전쟁을 할 적도 있지만, 그 오크들을 능가하는 숫자가 서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

하늘도 사정은 마찬가지라서, 잠자리르 닮은 초대형 몬스터들이 날아다녔다.

드레이크를 타고 지역을 벗어나려고 했지만 그것도 불가능. 공중 몬스터들끼리도 전쟁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몬스터들끼리는 서로 사이가 안 좋은 경우가 많다. 영역 다툼을 하거나, 천적 관계의 몬스터들이 싸움을 벌인다.

위드가 타고 있던 드레이크도 그런 싸움에 휘말렸다. 그리고 불행히도 위드와 전투를 하며 생긴 상처로 인해 오래 버티지 못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느낌, 해골 기사의 뼈다귀가 박살이 나서 흩어질 정도의 큰 충격이었다.

생명력과 전투에 크나큰 손실을 입은 상태.

목표로 했던 드레이크를 사냥하기는 했지만, 복수심에 차오른 다른 드레이크들이 계속 불을 뿜으로 괴롭혔다.

하늘을 향해 검을 휘둘러 봐도 무의미한 행동이었다.

드레이크들은 한번 당했기 때문에 경계심을 갖고 지상 가까이로는 내려오지도 않았던 것이다.

위드는 작전을 바꾸어 큰 소리로 휘파람을 불었다.

휘이이익!

훈련된 명마라면 어디서든 휘파람 소리를 듣고 돌아올 것이다.

"......"

달리는 백마에 올라타 그림처럼 몬스터들 사이를 뚫으려고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반응이 없었다.

공주가 죽고, 백마도 이미 죽어 버린 후였던 것이다.

반경 10킬로미터 정도가 완벽하게 온통 적이었으니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레미 공주를 호위하던 해골 기사다."

"음험한 말로 레미공주를 유혹하여 도주시키려던 추악한 원흉! 브롬바 왕국 기사단의 명예를 걸고 베어 버려라!"

"돌격하라. 돌격!"

기사단의 위력은 무지막지한 정도였다.

몬스터든 마법이든, 기사단은 베어버리고 돌격했다.

위드로서는 말을 잃어버린 후라서 도망치지도 못하고, 싸워 이길 자신도 없엇다.

뼈마디는 공중에서 추락할 때 심하게 금이 가고 부서져 버렸다. 가만히 있더라도 생명력이 질질 새어 나갈 정도였지만, 위드는 태연하게 제자리에 서서 브롬바 왕국 기사단의 견적부터 뽑았다.

위드의 해골 안광이 번뜩였다.

'검. 기사들이 착용하는 검이겠지. 적어도 레벨 270 이상. 화살을 비롯한 투척무기를 방어하며, 상처를 회복시켜주는 신성력이 있었던 것 같아.'

감정을 해야만 알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사들이 다른 몬스터와 싸우는 광경을 관찰하면서, 무기의 대략적인 정보를 파악했다.

전장 전체를 관조하는 폭넓은 시야.

거대한 팔랑카 전투에서 명검이나 방어구들의 위치를 정확히 포착했다.

'그래도 지금으로써는 정면에서 싸우기는 무리야.'

몸이 멀쩡하더라도 자신을 갖기 힘든데, 신성력이 있는 무기는 언데드로서는 더욱 꺼림칙했다. 

죽음을 거부할수 있는 힘으로 되살아나면 언데드의 장점도 얻지만 약점도 생긴다.

위드는 인근에서 돌을 던지고 있는 사이클롭스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캬오오!"

"쿠와아아앙!"

사이클롭스들은 귀찮은 벌레라도 본 듯이 괴성을 지르며 바윗덩어리들ㅇ르 주워 맨 바닥으로 힘껏 내던졌다.

과아아아앙!

위드의 지척에 바윗덩어리들이 작렬할 때마다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울린다.

"죽여!"

"브롬바 왕국 기사들은 패배를 모른다!"

기사단장이 선두에 서서 위드를 잡기 위해 사이클롭스들을 향해 돌진한다.

"이, 이, 인간들."

"맛도 없는 인간들이!"

"건방진 놈들."

사이클롭스들은 방향을 바꾸어 기사단을 향해 바위들 던졌다.

바위들이 기사단을 덮치면서 엄청난 피해가 생기는 것이 위드의 눈에도 똑똑히 보였다.

기사들의 돌격은 일반 보병, 같은 기사라고 하더라도 제자리에 서서 막을수는 없다. 그러나 활처럼 원거리 투척 무기에는 비교적 약했다.

투구의 틈으로 화살이 들어올 수도 있고, 무엇보다 말이 죽는 것이다.

사이클롭스들이 내던진 바위는 말 뿐만 아니라 기사조차도 박살을 내 놓을 정도였으니, 짧은 순간 엄청난 피해가 일어났다.

하지만 기사단은 브롬바 왕국의 깃발을 더욱 높이 추어올렸다.

"전부 쓸어버려라!"

"왕국의 명예를 위하여!"

불을 향해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그들은 자신들의 명예와 긍지를 지키기 위해 10배나 되는 거인들을 향해 용감하게 덤벼들었다. 

기사들의 전력을 다한 돌진, 말이 쓰러지도록 달려서, 들고있던 창을 힘껏 내질렀다.

"크어어어!"

사이클롭스들이 발에 상처를 입고 넘어졌다.

기사들은 창을 내리꽂고 검을 휘두르면서 사이클롭스를 베었다.

남은 사이클롭스들은 바위를 몽둥이처럼 휘두르면서 저항했다. 말들이 뒤엉키고 쓰러지고.... 난전도 이런 난전이 없었다.

'지금이 기회다.'

위드는 사이클롭스들의 뒤에서 뛰어나와서, 질주를 멈춘 기사들을 상대했다.

사이클롭스들의 바위를 피하는 것은 의외로 쉬운편.

눈이 하나라서 그런지 정확도가 많이 떨어지고, 사각지대도 존재했다.

투척을 위해서는 집채만한 바위를 일단 머리위로 들어올려야 한다. 미리 경계하고 방향만 잡을수 있다면 피하는 게 불가능 하지는 않다.

단지 무시무시한 파공음을 내며 날아다니는 바위에 맞으면 그대로 사망이라는 위험 때문에,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오금이 저려 엄두도 내지 못할 뿐!

"나는 브롬바 왕국의 실버 나이트인...."

"난 스켈레톤 나이트 위드다."

위드는 짧게 인사를 나누고 기사와 승부를 벌였다.

사이클롭스들이 바위를 던지고 있어서 아주 짧은 틈밖에 싸울 시간이 없다. 

그런 찰나의 시간을 이용하여 기사를 제압하고, 다른 기사들이 도와주기 위해서 오면 쏟아지는 바위의 틈으로 몸을 날려 도망쳤다.

멀쩡한 사이클롭스들이 있는 곳으로 더욱 깊숙하게 브롬바 왕국 기사들을 유인했다.

재해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을 큰 혼란을 유도하고, 그 안에서 전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이클롭스가 있는 장소로 마폰 왕국의 기사들까지 뛰어 들었다.

"브롬바 왕국의 졸개들을 쳐라!"

"외눈박이 괴물의 목을 자르자!"

"우와아!"

대혼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앙숙인 브롬바 왕국과 마폰 왕국의 싸움터에 인간들의 다른 왕국도 끼어들었다.

자연스럽게 몬스터들의 주의도 이쪽을 향하고, 사이클롭스들은 발을 구륻다가 열이 받치는지 머리위로 바위들을 던졌다.

하늘로 솟구치던 바위들이 떨어지면 인간의 몸이 그냥 박살이 나고, 사이클롭스들도 자신들이 던진 바위에 맞아 쓰러졌다.

위드는 대혼전이 벌어진 틈을 타서 정면 충돌을 피하고 기사들과 일대일 승부를 벌였다.

그렇게 17명이나 되는 기사들을 죽이고 나서야 무릎을 꿇었다.

생명력이 겨우 30도 남지 않았을 때였다.

"우워어."

"피해라!"

쉽게 위드의 목숨을 취할수 있는데도, 브롬바 왕국의 병사들이나 마폰 왕국의 병사들은 물러서기에 바빴다.

그들은 연방 하늘을 보면서 물러나고 있었다.

위드도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러자 작은 점이 급속도로 커지는 것이 보였다.

적어도 직경이 10미터는 넘을 듯한 바위가 그가 있는 곳을 향해 떨어지는 중이었다.

'승냥이 떼에게 먹히느니 마지막은 화려한게 좋지.'

위드는 검을 땅에 꽂은 채로 가만히 기다렸다.

콰아아앙!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의 하나인 팔랑카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것이다.

베르사 대륙의 역사서. 팔랑카 전투 원본.

탐욕과 시기심이 절정에 달했던 시절.

인간들은 밀과 철을 확보하기 위한 확장 전쟁을 그치지 않았다.

이종족들 역시 처음에는 인간들에게 자항하기 위해서 뭉쳤으나, 그 의도는 변질되었다.

욕망을 추구하는 인간들의 영향을 받아서, 자기 종족의 이득을 위한 싸움을 벌이게 된 것이다.

인간들이 영역다툼을 하며 스스로의 힘을 갉아먹는 사이, 번식력이 뛰어난 몬스터들은 대륙 전체로 독버섯처럼 퍼졌다.

(새롭게 복원된 내용. 팔랑카 전투의 비사.

오래된 언어로서, 언어학과 고고학을 상급까지 익힌 모험가만이 해독할수 있음.)

당시만 하더라도 몬스터들의 지능은 상당히 뛰어난 편이라서 조악하나마 언어를 사용할수 있었으며, 대규모의 집단 활동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작센 평야에서, 대륙의 주도권을 놓고 결전을 벌였다.

최후의 승자는 인간이 아닌 몬스터들이 되었다.

하지만 그 위험한 전장에서 살아 나온 소수의 패잔병들이 퍼트린 해골 기사의 활약 이야기가 잔잔하게 회자되었다.

그는 이스란 왕국의 레미 공주의 부탁을 받아 그녀를 구출하려고 했다고 한다.

그는 대단히 용맹하였고, 놀라운 마상전투 능력을 갖추었다. 하지만 다른 공중을 나는 몬스터들에게 한눈이 팔린사이에 애마와 공주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분노에 찬 기사는 공주에 대한 애통한 마음을 다하기 위하여 싸우다가 그 자리에서 최후를 맞았다고 한다.

지리적으로 작센 평야는 브롬바 왕국에 위치해 있었다.

기름진 광대한 평야. 베르사 대륙의 가장 넓은 곡착지대다.

하지만 브롬바 왕국이 몰락하면서 영토가 갈가리 찢겨 나가고, 브레만 왕국에 속하게 되었다.

당시 백만이 넘는 인간과 이종족, 몬스터들의 시신들은 따로 모아서 거대한 지하 무덤에 매장하였다고 한다.

그후 수십 세대를 거치면서도 밀을 얻기 위한 싸움은 끊이지 않았고, 소유 왕국은 계속 바뀌었다. 작센이라는 평야도 사라지고, 인간들이 건설한 성벽과 요새들로 인하여 지형조차 바뀌었다.

현재는 몬스터들이 연합하여 스스로를 불렀던 이름을 딴 팔랑카 전투로 더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베르사 대륙의 역사서》팔랑카 전투의 기록에서

이현은 끊임없이 불평했다.

"그놈의 스켈레톤 나이트로 되살아 나지만 않았어도....."

여전히 스켈레톤 나이트로 되살아난 것은 심히 유감이었다.

언데드라고 해서 다 엇비슷한 수준은 아니다.

근원의 스켈레톤은 보스급이었다. 물리적인 능력도 괜찮은 편이지만, 무엇보다 마법능력이 탁월하다.

강력한 흑마법!

네크로맨서 스킬들을 활용하면서 시원하게 싸울수 있다.

시체들을 이용해 듀라한과 데스나이트, 스켈레톤의 망자들을 일으켜 싸웠을 때의 짜릿함! 

그에 비해 스켈레톤 나이트는 마법에는 무지한 해골 기사였다. 햇빛에도 약하고, 신성마법에도 크게 취약점을 드러낸다.

대낮에는 사냥당하기 쉬운 언데드였다.

팔랑카 전투도 대낮에 벌어져서 조금 약화되었다.

마법의 대륙시절이라면 기사도 환영이었다. 강대한 힘으로 모든 적들을 부숴버리던 시절이었으니 기사라고 해도 나쁠게 없다.

하지만 역시 전장에서의 대륙 살상을 위해서는 네크로맨서만한 직업이 없다.

"네크로맨서 마법만 쓸수 있었어도....."

이현은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네크로맨서 마법을 사용할수 있는 언데드로 태어났다면 정말 화려하게 팔랑카 전투를 뒤집어 놓았으리라. 대규모 전장이야말로 네크로맨서들에게는 자신의 앞마당처럼 반가운 곳이니까.

사이클롭스를 부활시키고, 좀비와 구울들을 일으킨다. 해골 병사나 기사들도 일으키는게 불가능하지만은 않았다.

마침 성자의 지팡이나 네크로맨서의 마법서까지 있었으니 금상첨화였다.

"하기야. 언데드의 종류도 한둘이 아니라서 네크로맨서 스킬을 사용할수 없는 다른 것으로 부활할수도 있지. 유령체나 짐승류로 부활할 수도 있었을 테니까. 위험성이 너무 큰 기술이야."

본인의 선택에 따라 되살아 나는게 아니라서 운에 맡겨야 한다는 점이 불안한 스킬.

이현은 이제 마음을 비우고 아이템의 시세를 검색했다.

베르사 대륙에서 부활을 하고 나면 이번에 획득해서 사용하지 않을 무기류와 방어구들은 팔아버릴 셈이었다.

"경매로 올려놓는 편이 좋겠지."

이현은 시세를 확인한 다음, 아이템 거래 사이트로 가서 경매 물품들을 등록했다.

브롬바 왕국 기사의 검. 경매 시작 가격 1,000원.

마폰 왕국 기사의 검. 경매 시작 가격 1,000원.

영애로운 기사의 갑옷. 경매 시작 가격 1,000원.

축복의 장갑. 경매 시작 가격 1,000원.

전쟁의 갑옷. 경매 시작 가격 1,000원.

사이클롭스의 투구. 경매 시작 가격 1,000원.

팔랑카 전투에서 획득한 아이템을 등록해 버린 것이다.

토둠에서 얻은 아이템들은 거의 재료나 잡템들이 많다.

페가수스나 유니콘. 신수들과 싸웠으므로 부득이하게 벌어진 일이었다.

모라타에서 직접 아이템을 제조해서 팔아야 제값을 받을수 있고, 바가지도 씌울수 있다. 하지만 완성품인 갑옷이나 검 등은 경매 사이트를 통하는 편이 더 쉽게 구매자를 찾을수 있었으므로 등록을 한 것이다.

뱀파이어의 창고에서 획득한 콜드림의 애검은 레벨 제한만 440이다. 만약 팔기로 한다면 기대만큼의 높은 가격은 받을수 없을지도 몰랐다.

사람들끼리 실컷 경쟁이 붙어야 가격이 오르므로, 직접 사용하면서 적당한 가격이 매겨질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나으리라.

"물론 당장 팔 생각은 없지만... 그러고 보니 파스크란의 창도 있었지."

뱀파이어의 보물 창고에서 발견했지만 고르지 않은 창!

분명 다크 게이머 연합에서 누군가 구한다고 요청하는 글을 봤다.

이현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그 글을 찾아 글쓴이에게 쪽지를 보냈다.

예전에 파스크란의 창을 구한다고 하신 분이죠? 얼마에 사실 예정이었습니까?

이현이 할 일은 그것으로 끝이 났다.

정말 오랜만에 하루를 편안하게 쉴수 있어서 실감이 안날 정도였다.

"거의 백일 정도 만의 휴식이로군."

다크게이머에게 주 오일 근무제 따위란 당연히 없다. 남들이 놀고 쉴때 더 열심이 사냥을 하고, 스킬들을 키워 놔야 했다.

이현은 컴퓨터를 끄기 전에 다크 게이머 연합의 홈페이지에 정보 글을 하나 올렸다.

북부 몬스터에 대한 정보들.

서윤과 함께 죽음의 계곡을 찾기 위해 북부를 횡단하면서 썼던 기행기.

획득할수 있는 음식 재료나 이동경로, 몬스터들의 서식지에대한 정보들.

더 많은 수익을 얻고 더 많은 몬스터를 사냥하기 위해 주로 혼자 다니는 다크 게이머들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소중한 정보이리라.

받은 만큼은 베푼다.

다크 게이머 연합에서 얻은 정보의 대가로, 이현도 스스로 알고 있는 것들을 약간씩을 풀었다.

현재 정보 등급은 'C'.

이현은 스스로 작성한 글의 조회수가 올라가는 것을 보고 부엌으로 향했다.

"쉬는 날에 김치나 담가 둬야겠군."

김치를 담그고 일찍 잘 생각에 움직임이 빨라졌다.

"소금은 역시 일반 천일염을 써야지. 비싸다고 좋은 게 아니라니까."

로열로드의 홈페이지에는 오늘도 수백만 명의 유저들이 접속했다. 그들은 실시간으로 명예의 전당에 올라오는 동영상을 시청하고 있었다.

 - 빛의 탑 길드가 잔혹한 우롤바가 있는 동굴로 들어갔다.

 - 조금만 있으면 우롤바가 나올거야.

빛의 탑은 인원수가 3만명이 넘는 거대 길드.

최고 수준의 고레벨 유저는 없지만, 인원수에 걸맞게 큰 세력을 가졌다.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영토안에 우롤바의 레어가 있었다.

잔혹한 우롤바.

대표적인 보스급 몬스터로, 베르사 대륙의 시간으로 1개월에 한번씩 되살아나는 마수 조련사다.

본 드래곤의 브레스에 비할 정도는 아니어도, 그가 휘두르는 전기 채찍에 스치면 몸이 마비되고 체력이 고갈된다. 함께 등장하는 마수들도 매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에, 여간해서는 사냥하기 어렵다.

이 우롤바를 빛의 탑 길드가 대규모의 인원을 동원해서 습격하기로 한 것이다.

"베르사 대륙의 정의를 세우기 위하여 우리는 이 자리에 왔다. 비겁한 몬스터 우롤바여, 숨어있지 말고 떳떳하게 나타나라. 나 헤르트는 너를 처단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

길드 마스터 헤르트가 거대한 동굴 안에서 당당하게 외쳤다. 그러자 우롤바가 등장했다.

그리고 당연하게 벌어진 전투!

빛의 탑 길드에서는 이번 전투를 위하여 아이템을 새로 맞추고, 전투의 신 티르에게 막대한 재물을 바치고 축복을 받았다.

'길드의 영광을 드높일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지금까지 우롤바를 사냥한 길드는 여섯도 되지 않는다. 헤르메스 길드를 비롯한 명문 길드들만이 사냥에 성공했다.

빛의 탑 길드도 그 반열에 오르기 위하여 투자를 아끼지 않은 것이다.

"우롤바가 가진 보물. 채찍을 갖고 말테다."

전사들은 스탯에 대한 욕심도 많다.

조각사의 직업을 가진 위드는 걸작이나 명작, 대작을 만들면 스탯이 오른다. 하지만 조각사만이 특별 스탯을 획득할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전사들의 경우에는 위험을 무릅쓰고 보스급 몬스터 사냥에 성공하면 명성과 함께 가끔씩 스탯을 얻었다.

그렇다고 매번 성공할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목숨을 걸고 싸워야 되는 끔찍한 놈들이 대상이었다.

잔혹한 우롤바는 충분히 그 대상이 될수 있다.

전사가 아닌 모험가나 도굴꾼의 경우에는 위치가 파악되지 않은, 즉 한번도 털린적이 없는 유명인의 무덤이나 던전을 파헤쳤을 때에 스탯들이 오른다는 소문이었다.

성직자들은 빈사 상태에 빠져있는 이들을 치료함으로써 신앙심이 높아지고, 수도숭은 마물들을 구원해 주면서 신앙스탯을 얻는다.

비슷한 예술 계열의 직업인 화가도 그림을 그려 스탯을 받을수 있다. 건축가도 놀라운 건축물을 세우면 스탯으 받는다고 한다. 대장장이들은 당연히 명품 무기나 방어구를 제작하면 스탯을 얻었다.

조각사나 다른 생산계열의 장점은, 추가 스탯을 얻을 때에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적어도 건축이나 조각을 하다가 그리고 그림을 그리다가 생명이 위험해 지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전사들은 위험한 보스 몬스터를 사냥했을 때에 얻는 스탯이 더 많고, 전리품과 명성까지 얻을수 있으니 강한 몬스터와 싸울수록 투지가 샘솟았다.

"이야합!"

"우롤바를 쳐라."

"채찍을 휘두르지 못하도록 접근전을 펼쳐!"

"접근전만이 우리가 살길이다!"

전사들이 우롤바를 향해 돌진했다.

그러는 사이에 동굴 내의 마수들이 등장했다.

바위속에 사는 록 웜들이 성직자와 마법사들을 덮쳤다.

"살려 줘."

"우리부터 도와줘!"

난리가 났지만, 우롤바와 싸우고 있는 전사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빛의 탑 길드는 규모는 컸지만 실질적으로 이끌어주는 유저가 부족한 탓에 2,000명이나 되는 길드원들의 손발이 맞지 않았다.

명예의 전당을 통해 유저들이 보고 있었는데도 그렇게 우롤바와 마수들 앞에서 패퇴했다.

마지막에 서로 살겠다고 던전을 빠져 나갈때의 모습이 압권이었다.

 - 시간만 낭비했네.

 - 괜히 눈만 버린것 같아요.

 - 아무리 보스급 몬스터를 사냥하는 게 처음이라지만 빛의 탑 길드는 너무 쉽게 무너진 것 같네요.

사람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어떤 유저가 아이템 경매 사이트를 다녀오고 나서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 위드! 위드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의 경매 사이트 계정으로 가 보세요!

위드가 브롬바 왕국과 마폰 왕국 기사의 무기들, 사이클롭스의 투구를 팔고 있다는 사실이 확 퍼졌다.

 - 도대체 무슨 일이!

 - 위드가 또 어디서 뭘 하고 있었던 걸까요?

위드에 대해서라면 미친듯이 환호하는 팬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본 드래곤을 이기고 나서 한동안은 위드에 대한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신비롭게 모습을 감추고 활동을 하니 그만큼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마련이다.

그러던 차에 다시금 자신의 경매계정에 물품들을 등록한 것이다. 

 - 무기들의 성능이 상당히 뛰어난 편입니다.

 - 경매 가격이 벌써 5십만원 돌파.

 - 역시 위드네요. 세상에, 사이클롭스를 사냥하다니....! 혼자서 한 걸까요? 동료가 있었을것도 같은데요.

 - 위드는 거의 혼자서 다니는 걸로 압니다. 사이클롭스가 강한 몬스터라고 해도, 본 드래곤 마저도 사냥한 위드에게는 당연히 적수기 안되는게 정상입니다.

 - 크으! 그 사냥동영상을 봐야 하는 건데. 일점 공격술에, 폭풍처럼 휩쓸어 버리던 위드의 전투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아요.

 - 그런데 브롬바 왕국이 어디죠?

 - 저는 마폰 왕국도 전혀 모르겠어요.

 - 북부에 있는 신생 왕국일까요?

사람들은 브롬바와 마폰이 중앙대륙의 어디에 존재하는 왕국인지 의문에 빠져들었다. 심지어는 북부에 있는 소국일거라 추측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북부에는 아직 왕국 자체가 생기지 않았으니, 반박하는 글들이 줄을 이었다.

그러던 차에 누군가가 답을 찾아냈다.

 - 브롬바 왕국, 마폰 왕국. 수백년 전에 존재했던 고대 왕국들입니다.

 - 정말인가요? 믿을수 없어요.

 -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베르사 대륙의 역사서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어떤 유저가 베르사 대륙의 역사서를 통째로 인용해서 올려놨다. 그래서 사람들은 브롬바 왕국과 마폰 왕국에 대해 알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위드처럼 역사서를 통째로 외우고 다니지는 않았던 것이다.

 - 어떻게 고대 왕국의 무기를....

 - 과연 이번에는 무슨 모험을 했을까요? 고대 왕국의 유물 발굴? 고대의 던전 탐험?

 - 크으! 보고 싶다. 보고 싶어.

사람들의 호기심은 극에 달했다.

몸이 달아서 정말 아무도 말릴수가 없을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막무가내로 KMC미디어의 홈페이지로 달려갔다.

 - 위드가 모험을 한게 사실인가요?

 - 고대 왕국에 간 건가요?

 - 위드의 모험을 방송하실 계획이 있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내일 꼭 해주세요.

 - KMC미디어의 능력을 믿습니다. 채널 고정하고 기다릴테니 특별편성이라도 해서 보내주세요.

생떼를 쓰면서 시청자 의견 게시판에 도배를 하는 무리!

KMC미디어 직원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었다.

"야근이다, 야근!"

"저녁 도시락 주문해. 이것들 다 편집하기 전에는 집에도 못 갈거야."

직원들은 눈물을 머금고 업무에 빠져야 했다.

위드의 모험의 특성상, 분량이 짧게 끝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팔랑카 전투만 따로 추스른다고 해도 최소 몇시간 분량은 나올 것이다.

레미 공주와의 만남, 백마를 타고 난 후의 돌격, 공중전, 사이클롭스와 기사단의 전투까지!

빠뜨릴수 없는 명장면들이 많다.

게다가 역사적인 팔랑카전투다.

위드의 모험만을 방송하는 게 아니라, 전투중에 나온 스킬이나 아이템, 몬스터들에 대한 정보도 즉석에서 제공을 해야만 한다.

때문에 방송국의 모든 팀들이 분주하게 일을 하고 있었다.

최종 편집본이 나오기 전에 진행팀에서도 만반의 준비를 했다.

작가들은 영상을 보며 방송에 쓸 대본을 실시간으로 작성하고, 진행자들은 전투에 대한 정보들을 암기하느라 밤을 꼬박 세웠다.

시청자들의 열화와 같은 반응에 방송예정일을 단축하려다 보니 벌어진 일.

신혜민은 방송중에 자신이 읽어야 할 대본을 확인하고 있었다.

"고결하고, 모험심 가득한 전신 위드의 전투! 숨쉴수 없는 격정과 가슴 벅차오르는 환희 그리고 공주와의 로맨스가 있는 팔랑카 전투를 시청자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꼬꼬댁, 꼬꼬!

양념반프라이드반!

이현을 배반하고 서윤에게 간 닭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병원의 간호사들이 쌀이나 좁쌀, 깨, 닭 사료까지 구해다 주었지만 헛수고였다.

"너 왜 안 먹니?"

"이러다가 굶어죽어."

서윤의 병실에서는 간호사들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닭을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서윤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여리고 착한 서윤이, 기르던 닭이 죽기라도 한다면 마음의 상처를 크게 받게 될 테니.

양념반프라이드반은 힘없이 드러누워있을 뿐이었다.

"....."

서윤은 애처롭게 닭을 쓰다듬었다.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것이 이것밖에 되지 않음에 안타까워하면서.

'주인에게 돌아가고 싶니?'

서윤의 눈빛이 서글퍼졌다.

양념반프라이드반을 데려온 것이 실수인 것만 같았다.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했던 자신!

그녀는 닭에게 조차도 믿음과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현. 그사람에게 데려다 줘야 해.'

서윤이 결심을 하고, 양념반프라이드반을 들어 올리려고 할 때였다.

무엇을 느낀 것인지 닭이 홰를 치면서 강하게 저항했다.

절대로 가고 싶지 않다는 몸짓!

간호사들은 그것을 보면서 적지 않게 감동했다.

"닭도 영물인가 보다. 느끼고 생각하는 게 사람들 못지 않네."

"집을 그리워하지만, 그래도 새 주인의 마음을 헤아리다니 정말 착한 닭이잖아. 먹이만 조금 먹어준다면 좋을 텐데......"

서윤과 간호사들의 애절한 바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양념반 프라이드반은 가만히 잠만 자고 있으려고 했다.

그러던 와중에 다른 간호사가 병실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서윤이 먹을 밥을 식판에 담아온 것.

반찬은 비타민이 풍부한 채소류와 삼겹살이었다.

꼬꼬댁!

그 순간, 양념반프라이드반이 깃털을 휘날리며 식판으로 날아올랐다. 그러고는 삼겹살을 쪼아먹기 시작했다.

또도도도도독.

식판을 뜷어 버릴 것만 같은 맹렬한 기세.

".....!"

엄청난 양을 먹고 나서, 닭은 평온하게 잠이 들었다.

'닭이 삼겹살을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어보기는 했지만....'

'닭도 별거 없구나. 돼지랑 똑같구나.'

간호사들은 깨달음을 얻었다.

서윤도 깊은 생각에 빠졌다.

'난 사랑을 받으려고만 했지, 내가 먼저 다가서려는 노력을 한적은 없었던 것 같아.'

유일하게 편안함을 느낄수 있는 상대가 이현이었다.

로열로드에서는 그가 해준 음식을 먹기만 했다. MT에서도 그가 해준 음식을 먹었다. 그런데 고맙다는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그에게 해준 건 아무것도 없구나.'

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부터라도 조금씩 바꾸어 가고 싶었다.

'다음에... 요리를 해 줘야지.'

학교에서 점심시간에 어디서 밥을 먹는지는 알고 있었다.

'내가 직접... 도시락을 싸 가야지. 음식을 만들어 주고 싶어.'

서윤은 요리 메뉴를 정하느라 상념에 빠졌다.

"얘들아, 밥먹자."

이혜연은 마당으로 나왔다.

이현이 키우고 있는 닭들의 밥을 주는 건 얼마 전부터 그녀의 몫이 되었다. 닭이 예쁘다고 직접 밥을 주고 싶다고 하니, 이현도 오빠로서 거절하지 못한 것이다.

이혜연은 기쁘게 밥을 주는 일을 했다.

"오늘 밥은 갈비란다."

꼬꼬댁!

첫째인 삶은달걀이, 살점이 조금 달라붙어있는 갈비를 쪼아 먹는다.

둘째부터 계란프라이, 어미닭, 백숙, 프라이드, 양념 그리고 새로 교체된 양념반프라이드반도 남은 갈비를 쪼았다.

알에서 깨어난지 얼마 안된 병아리들!

병아리들은 어미닭이 주는 벌레를 먹고 성장했지만, 벌써 머리가 커졌다고 갋리 근처에서 기웃거리고 있었다.

"참 화목한 광경이네."

이혜연은 행복을 느꼈다.

닭들과 병아리들이 사이좋게 갈비 근처에 모여 있다. 이 얼마나 앙증맞은 광경인가.

닭들이 먹은 후에도 뼈는 상당향이 남았다.

음식을 버릴수 없었기에, 이혜연은 멀리 앉아 기다리고 있던 동물을 하나 더 불렀다.

"보신아, 이리 온."

왈왈! 

닭들이 먹고 남은 갈비뼈는 개의 몫이었다.

개의 이름은 몸보신!

동네에서 어슬렁거리는 새끼 개를 먹으려고 데려왔는데, 정이 많이 들어 잡아먹지 못했다.

"많이 배고팠지."

이혜연은 몸보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먹을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법이 있지만, 몸보신은 괜찮았다.

멍멍!

오히려 더 만져 달라는 듯이, 뜯어먹던 갈비뼈도 내려놓고 발라당 누워 애교를 부렸다.

보통 영특한 개가 아니라서 새들을 잡기도 하고, 배설물도 알아서 처리했다.

그럴 때마다 이혜연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 보신이 착하기도 하지."

소녀와 개.

평화롭기 그지없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몸보신은 잊지 않았다.

그가 새끼였을 무렵, 친히 이름을 지어주며 번들거리든 이혜연의 눈빛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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