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딸의 조각품
이현은 다크 게이머 연합의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다행히 여신상의 조각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명예의 전당에도 관련 동영상들이 올라가서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모양 이지만, 동영상을 보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매일 바뀌는 아이템의 시세조차도 확인하지 않고 정보 게시판부터 들어갔다.
"이대로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미지의 존재들의 생떼!
귀가 간지러울 뿐 아니라, 집중력도 저하시킨다. 조각술을 펼칠 때 저주 뿐만 아니라 체력의 회복 속도마저 느려지는 것을 발견하고는 더 기다릴수 없었다.
"조각술에 그 비밀이 숨어 있을 거야."
문제는 알지만,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없었다. 그리하여 정보들을 찾기 위해 다크 게이머 연합에 온 것이다.
이현의 정보 공개 등급은 어느새 'B'로 조정되어, 더 많은 자료들을 볼수 있었다.
- 귀금속 시세 변동 예정 자료.
- 우토 왕국 가말 마을의 철광석 시세 폭락 예정임.
상인들의 정보들부터 떴다.
다크 게이머 연합에는 정말 많은 직업들이 있었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냥꾼이나 전사를 해서는 큰 돈을 벌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본인이 전투가 적성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리고 매번 홀로 고독하게 던전에서 사냥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비전투 계열 직업을 택하는 편이 낫다.
그래서 상인은 다크게이머들의 상당수가 택하는 직업이었다.
공예, 세공, 천 짜기 등의 직업 스킬을 보조로 키운다면 상당히 짭짤한 직업이 될 수도 있다. 재료들을 모아서 스킬을 활용해 상점에 고스란히 팔수 있기 때문이다.
유저들로부터 구매한 잡템을 팔아도 되지만, 그런 식으로 자본을 모아 가면서 대규모로 시세 차익을 이용한 거래를 한다.
상인이야말로 자본금에 따라서 일확천금을 벌수도 있고, 상회를 조직하여 용병들을 고용하면 나름대로 무력도 갖출수 있다. 그때에는 용병 길드나 청부 길드 등의 결성까지도 가능하였으니 다크 게이머들중에는 상인도 꽤 많았다.
상인이야말로 가장 정보 교류가 빈번하고, 다크 게이머들 가운데 인맥도 넓은 직업이다.
- 조르빈 백작이 용병 모집. 보수 후한 편. 위험도 높음.
- 케말 산맥 몬스터 준동. 던전 발견 가능성 매우 높음. 모험가 우튼. 지원바람.
- 메다 왕국의 수도에서 NPC 시곤이 급하게 레벨 300대 레어 급 이상 방패 찾음. 퀘스트 용도로 보임.
"이런 것들은 아니야."
이현은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정보들의 더 아래 내용들을 살폈다.
- 창술의 비전 기술. 토르 왕국의 창술가 트리안이 전수해 줌. 레벨 250에, 스킬 레벨 중급 이상의 창술가들만이 가 볼것.
- 회계 스킬을 키워주는 방법. 열두 가지 이상의 보석들을 분류하여 보석 감정 스킬의 숙련도를 5% 올림. 그 후에 보석들을 자작 이상의 귀족 NPC에게 시세의 15% 이상으로 팔면 스킬 숙련도를 매우 많이 얻을수 있음. 보석 거래자로서 명성도 얻음.
- 검사의 특징 있는 무기, 샤벨. 매우 폭이 짧은 무기로......
여러 직업들의 정보가 올라와 있는 게 보였고, 조각사에 대한정보도 약간은 등록되어 있었다.
- 조각술과 손재주의 관계에 대한 고찰.
- 손재주의 상승 작용에 대한 고찰.
- 베르사 대륙에 분포한 조각품들의 특성과 효과.
역시 기초적인 정보들 뿐이었다. 이현이 찾는 조각술과 관련된 미지의 존재들에 대한 정보는 보이지 않았다.
"과연!"
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에 다크 게이머 연합에 조각술 스킬에 대한 정보가 있었더라면 오히려 실망을 금치 못했으리라.
"그건 나보다 뛰어난 조각사가 있다는 뜻일 테니까."
안도감을 느끼는 한변, 이현은 더 많은 정보들을 검색했다.
비록 직접 관련된 정보는 없다고 하더라도 단서를 찾는데 도움되는 정보들.
- 각 왕국별 대장장이 기술 격차.
- 해결되지 않은 장인 퀘스트들.
- 유랑 NPC들의 특성.
- 전설의 대장장이 왕국.
- 예술의 발원지.
이현은 정보들을 세심하게 머릿속에 저장했다.
다크 게이머 연합에서 대략적인 정보들을 입수하고 나면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된다.
그 다음에는 도서관이든 조각사 길드든, 어디든 쫓아다니면서 미지의 존재들이 조각해 달라고 하는 이유를 알아내야만 했다.
어쩌면 이현만이 해결할수 있을지도 모를 존재.
조각술의 끊어진 흔적을 이어야만 한다.
"다시 로열로드에 접속해야 겠군."
하지만 그 전에 쪽지함을 확인했다. 지난번에 파스크란의 창을 찾던 사람에게 쪽지를 보낸적이 있으니까.
보낸 이 : 하우프만
제목 : 파스크란의 창을 가지고 계신가요?
답장이 와 있었다.
"제법 빨리 보냈군."
이현은 제목을 클릭해 보았다.
가지고 계시면 제발 저에게 팔아 주세요.
돈은 달라는 대로 드리겠습니다.
지금 가진 돈이 대략 1,500만 원 정도 됩니다.
파실 의향만 있다면 그 이상도 충분히 협의가 가능할 것입니다.
지금 매우 급하기 때문에 빠른 답장 부탁드립니다.
"커헉! 1,500만 원!"
이현의 심장이 쿵쾅거리고 뛰었다.
30억 9천만 원이나 되는 거금에 계정을 판 경험이 있다. 그때는 오히려 너무 비싼 가격에 팔려서 현실성이 없었다. 금세 다시 빼앗기기도 했지만.
하지만 1,500만 원은 현실이다.
빳빳한 백만원짜리 지폐 무더기가 무려 열 다섯 뭉치나 된다.
"이 돈을 저축해 놓으면, 금리 7%짜리 상품에 넣는다면 매년 백만원이 넘는 이자가..... 이런 대박을 놓치다니!"
이현은 너무나도 슬펐다.
어른들은 흔히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말을 한다. 이현도 그 말에는 적극 공감했다.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야. 대략 98%쯤 되지. 나머지 2%는 인정이나 배려, 친구, 약속, 이런 걸거야.'
200원 더 비싼 소금을 샀던 아픈 기억을 그대로 간직하고 매일 반성하는 이현이었다. 그런데 1,500만 원이다 되는 돈을 그냥 지나쳐 버리고 말았다니!
이현은 그날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이고 내 돈! 아, 안 돼! 1,500만 원!"
프레야 여신상은 금세 빛의 탑과 함께 모라타의 2대 명물로 불렸다.
"이게 프레야 여신상이구나."
"대륙 전체를 뒤져봐도 이런 조각상은 흔치 않을걸. 각 교단에서 세운 조각물들은 있지만, 유저가 만든 것으로는 최초일 거야."
"성직자들이 받는 혜택이 상당하다더군."
"빛의 탑으로 인해서 전투 계열 직업들도 모라타 근처를 떠나려고 하지 않는다고 들었어."
"다른 곳에 더 좋은 사냥터가 있다고 하더라도, 빛의 탑의 효과가 있으니 굳이 더 멀리 가려고 하지 않지. 가는 시간 동안 시간의 소모도 있고 말이야."
"그럼. 효율로만 따진다면 모라타 근처에서 사냥을 하는 편이 제일 낫지. 같이 파티할 동료들도 금방 구할수 있잖아."
유저들은 프레야 여신상을 올려다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모라타로 오면서 완전히 낙후된 지역을 생각했다. 그런데 선술집이나 대장간을 비롯해서, 꼭 필요한 건물들은 빠짐없이 갖추어져 있었다.
상인과 장인들도 최소한의 공급 역할을 해준다.
여신상의 아름다움 또한 발군이었다.
여신상에서 300미터 떨어진 곳에는 건축가 파보가 만든 여신의 계단이 있다. 나선형으로 된 계단을 밟고 올라가면 여신상을 더 가까운 곳에서 관찰할수 있었다.
물론 관람료를 내야 했지만, 관광객들은 줄을 이었다.
높은 계단 위에서 경치를 보고, 이를 따로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갈무리해서 기념으로 가지기 위함이었다.
"빛의 탑도 그렇고 위드라는 조각사, 생각했던 것보다 더 대단한 것 같네."
"조각술 만이 아니라 다른 스킬들도 상당한 수준까지 올렸다고 하니, 그쪽 분야에서는 가장 부각되는 존재라고 할수 있지. 명문 길드에서도 가입 제의가 끊이지 않을걸."
"그래도 이제 힘들지 않을까? 다른 유저들도 조각술을 익히게 될 테니까 말이야."
그 말을 들은 다른 유저들은 콧방귀를 뀔 뿐이었다.
"알고 봤더니 굉장한 노가다 직업이래. 누가 위드만큼 노가다를 할수 있겠어."
"그건 그래."
"조각사라고 해도 한계는 있으니까. 어떤 직업이든 마찬가지지만 말이야."
워리어들은 거칠고 끈질기지만, 최전방에서 싸우는 탓에 자주 죽는다.
기사들은 명예를 잃어버리면 약해진다.
궁수들은 근접한 적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을 보인다.
마법사들은 뛰어난 공격력을 가졌지만, 방어력이 형편없다. 스쳐도 죽는다.
상인들은 권력과 돈은 있어도 스스로를 지킬 힘이 모자라다.
용병들은 어떤 조건에서도 생존 능력이 높지만, 갈수록 위험한 청부들이 기다리고 있기에 장비를 맞추다 보면 금세 가난해 진다.
모험가들은 모험을 즐겨야만 한다. 미궁에서 열흘쯤 헤메고 나서도 길을 찾으려고 드는 탐구 정신이 필요하다. 성공하면 명예와 돈을 얻지만, 아무것도 없는 던전에서 고생만 하고 끝나는 허탈한 경우도 많다.
그 외에 다른 직업들도 다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조각사의 경우에는 엄청난 조각물들을 만들수 있다.
한 지역을 발전시킬수도 있는 불가사의, 명작, 대작 조각품들!
분명 엄청난 효과를 가지고는 있지만 한계도 있다.
보통의 노력으로는 조각품들을 찍어내듯이 대작들을 만들지 못한다. 프레야 여신상도 다른 이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만들기 위해 족히 수개월의 시간이 걸렸으리라.
작품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모든 것들을 버리고 매진해야 한다. 도중에 집중력을 잃어버리면 절대로 성공할 수 없는 직업이었다.
위드가 여신상으로 다가갔다.
다시 접속했을 때에는 한밤중이라서, 마을 너머 보이는 빛의 탑이 각 경계면들을 통해 중앙의 탑으로 달빛을 모아주었다. 수많은 빛의 광선들이 하늘로 퍼지면서 빛이 춤을 추고 있었다.
빛의 군무.
모라타의 예술적인 아름다움이 보이는 시간이다.
밤마다 퍼지는 빛들과, 점차 발전해 가는 모라타 마을의 변화들!
여신상도 달빛조각술로 완성되어서, 밤에도 빛을 뿜어내고 있다. 달빛을 받으면 더 환한 빛을 내면서 주위를 비추는 것이다.
빛의 탑과 여신상으로 인하여 모라타의 경치는 쓸쓸하지 않았다.
위드가 보기에도 둘은 딱 어울렸다.
"나이트 클럽 같군."
조명 아래에서 횃불을 들고 춤추는 여자!
위드의 감수성이 아니라면 보통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어쨌든 지금은 해야할 일이 있었다.
위드는 구경하는 무리를 헤치고 여신상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뭐야."
"여기 줄 서서 구경하는 거 안보여?"
험악하게 항의 하는 관광객도 있었지만, 위드인 것을 알고 입을 다물었다.
그는 여신상을 직접 만든 조각가이기도 했고, 모라타의 영주였으므로.
그렇게 여신상의 발치 아래에 있는 제단까지 걸어갔다.
"뭘 하는 거지?"
"몰라. 자기 작품을 감상하려는 걸까?"
여신상 주변에 있던 많은 구경꾼들이 위드의 행동에 관심을 기울였다.
위드는 제단에 잘 익은 사과 1개를 올렸다.
프레야 여신에게 바치는 제물!
그러고는 고개를 숙였다.
"프레야 여신에게 모라타의 영주가 기원을 올립니다."
계절이 한 번씩 바뀔때마다 할수 있는 기원!
여신상이 수백가지 상서로운 빛무리에 횝싸였다.
위드가 조각술을 펼칠 때 보여주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빛무리.
- 여신의 치료.
몸의 모든 나쁜 기운들이 정화됩니다.
생명력이 최대치로 회복됩니다.
마나가 최대치로 회복됩니다.
모든 신체적인 능력이 일주일간 상승합니다.
행운이 일주일간 기록적인 수준으로 오릅니다.
생산과 지배에 관여하는 능력이 일시적으로 향상됩니다.
신앙심이 10 오릅니다.
모든 나쁜 상태를 원상태로 돌리는 여신의 치료!
기원을 바라면서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부가적으로 나타난 효과였다.
위드도 미리 알았더라면 친한 사람들을 이곳에 데려왔겠지만, 기원을 해 봤던 사람이 아직 1명도 없다.
기원은 아무나 할수 있는 것이 아니고, 상징물이 있는 지역의 지배자만 계절에 따라 단 한번 할수 있다. 다른 종교적인 상징물들이 있는 장소는 수도나 자유도시라서, 명문 길드의 수장이라고 해도 할수 없었다. 기원이 있다는 사실만 성직자나 사제들을 통해서 들었을 뿐.
위드가 최초였다.
"무슨일이 벌어지는 거야?"
"더 가까이 가보자."
유저들이 여신상으로 접근을 하려고 했지만,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밀어내서 위드가 있는 제단으로 다가갈수 없었다.
- 모라타의 주인이여, 나에게 바라는 것을 말하라.
여신상의 뒤로, 빛으로 이루어진 환영이 생겨났다.
프레야 여신의 재림!
위드는 고개를 올려서 그 환영을 보았다.
'엄청난 미모를 가지고 있겠지.'
풍요와 아름다움을 주관하는 프레야 여신이다. 남자들의 눈을 멀게 만들 정도의 미모를 가지고 있으리라.
그러나 위드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얼굴형을 볼수는 없었다. 다만 예상과 다르게 조금 통통한 인상이었다.
위드는 자신이 바라는 소망을 얘기했다.
"조각술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위드가 바라는 것은 풍년에 대한 기원이나 광산의 혜택, 상업의 더 빠른 발전이 아니었다. 그것도 무척이나 이루고 싶었지만, 당장 다급한 것은 조각술 이었다.
"제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존재들을 조각하는 법에 대하여 알고 싶습니다."
인근은 온통 유저들로 인해 소란스러웠고, 뒤늦게 프레야 여신이 나타난 것을 알게 됨으로써 모라타 마을에서도 유저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저기요!"
"잠깐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예욧!"
브레야 여신이 대답하는 목소리는 위드에게만 들렸다.
- 그들은... 태초부터 있어 왔지만 형태를 갖추지 못한 존재들. 조각술을 사랑하는 자여, 그대가 가야 할 길은 작은 이들의 왕국, 고집세고 섬세한 그들이 커다란 자부심을 느끼는 장소에 길이 있을 것이다.
주변이 점점 어두워 졌다.
여신상으로부터 일어났던 신성한 빛들이 사라지면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그 빛이 사라졌을 때, 프레야 여신은 더나고 없었다.
위드도 어느새 사람들의 틈에 섞여서 그 자리를 피했다.
'키 작은 이들의 왕국이라, 자부심을 느끼는 장소.'
위드가 가야할 목적지가 생겼다.
하지만 그 전에 마을 장로부터 만나보고 떠나려고 했다.
모라타의 흑색 거성!
영주성이 되어 어느정도 보수가 이루어 진 곳으로 다가갔다.
어느덧 새벽이 지나 날이 환하게 밝아 왔다.
유저들로 인해서 늘 붐비는 장소였지만, 지금은 여신상에서의 이변 때문인지 사람들을 구경하기 어려웠다.
위드를 본 주민 자경대원들이 알은체를 했다.
"영주님, 성에 들어가시려는 겁니까?"
"그렇다."
"성에 영주님의 귀환을 알리겠습니다."
자경 대원들은 밧줄을 잡아당겨 위에 매달려 있는 종을 치려고 했다.
"되었다. 괜히 바쁘게 일하고 있는 이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하오나 영주님께서 돌아오셨는데....."
"허허허, 괜찮대도."
위드는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쥐꼬리만한 권력에서 느끼는 행복함!
이래서 권력은 일단 잡으면 놓기 싫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마을 잔치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응?"
"소나 돼지라도 1마리 잡고, 푸짐하게 먹어야 되는게 아닌지."
"....."
위드는 할 말을 잃었다.
모라타의 교육수준은 실로 한심한 상태!
정식 병사도 아닌 자경대원에게 규율이나 충성심 따위가 있을 리가 없었다. 위드에 대한 친밀도는 최상이지만, 그래서 이런 정도의 반응을 보일수 밖에 없는 것이다.
교육 수준이 낮으면 기술과 상업의 발달도 조금은 느려지고, 주민들 중에서 기사나 마법다 등이 탄생하기 어렵다. 종교에 대한 믿음만큼은 빠르게 전파되지만, 대신에 치안의 악화도 순식간이다.
다른 어떤 마을 중에는 주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종이 도적떼나 산적이라고도 하니 말 다한 셈이다.
마을이나 성, 대도시 등을 발전시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크흠! 내 나중에 신경쓰도록 하겠다. 돼지... 는 좀 무리고, 토끼라도 잡도록 하지."
"고맙습니다. 영주님."
위드는 헛기침과 함께 영주성에 들어가서 둘러보았다.
과거 토리도가 이끄는 진혈의 뱀파이어들이 차지하고 있을 때 들어와 봤던 장소다.
부서진 기구들이나 주민들의 석상, 거미줄 등이 쳐 있던 장소가 깔끔하게 치워졌다.
"의뢰 받으러 왔습니다."
"여기 상단 등록하러 왔어요."
여신상의 소문을 듣지 못한 것인지, 영주성 안은 상인과 용병들로 북적였다.
모험가들은 자신들의 발견물을 보고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기초적인 보수가 마쳐진 다음에 주민들과 모험가들을 위한 장소들이 생겨났다. 마을 관리, 몬스터 토벌, 이주, 상단 등록, 의뢰, 세율 책정, 발견물 보고 등의 업무가 가능했다.
영주성의 유지비는 더 많아졌지만, 통치를 위해서는 필요했다.
모험가의 발견물만 하더라도, 보고가 될 때마다 주변 지역에 대한 정보력이 향상된다. 그리고 지역 장악도가 올라서, 인근 지역들에 대한 정치력 행사가 가능했다.
위드는 영주성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많은 유저들이 있었지만 2층은 아직 치워지지도 않은 상태였다.
1층에도 빈방들이 많았지만, 2층은 아예 폐쇠되어 있다. 영주의 집무실 정도만 대충 마련되어 있었다.
'성의 보수가 덜 된 모양이군.'
위드는 1층의 의뢰 접수창구로 발길을 돌렸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순서가 돌아왔다.
"영주님이 아니십니까?"
위드는 크게 헛기침을 했다.
"커험!"
"현재 남아 있는 의뢰들은 몬스터 토벌과 지금 막 떠나는 상단들의 호위 그리고 광산 개발을 위한 의뢰가 있습니다. 농작물 보호도 있긴 한데, 백작님께서 하실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접수창구에 있는 직원은 알아서 설설 기었다.
영주의 특권으로 모라타 성에서 진행하는 의뢰는 뭐든지 할수 있다.
상단의 의뢰는 먼 거리를 이동할 때 편하고 좋다. 마차를 타고 움직이면 훨씬 편하고, 번거로운 일도 줄어든다.
광산 개발은 광부들과 파티를 결성해야 했다.
그들을 보호하면서 갱도를 파 내려간다. 보석, 미스릴, 금, 은, 철, 구리 등의 광물을 발견하면 대박!
광산이 개발되면 적지만 이윤을 분배받을수도 있어서 대박을 꿈꾸는 이들이 참여하곤 했다.
농작물 보호는 멧돼지나 참새, 고라니 등을 막는 역할을 하는 것인데, 초보들이나 받는 퀘스트.
위드는 의뢰를 받는 대신에 접수창구의 직원에게 물었다.
"장로는 어디에 있지?"
"장로님은 프레야의 기사님들과 함께 성벽 밖 마을들을 순찰하고 있습니다."
"순찰?"
"예. 이주민들이 대규모로 발생해서요. 성벽 밖에 소규모 마을 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언제쯤 돌아오는데?"
"마침 오늘이 돌아온다고 한 날짜입니다. 여기서 기다리시겠습니까? 제가 음식을 좀 내오겠습니다."
위드는 하릴없이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마음은 없었다.
모라타 성에서 내 놓는 음식도 결국은 그의 호주머니에서 나가는 셈이었으니, 다시 거리로 나왔다.
위드는 은밀하게 모라타의 새로 지어진 건물들을 방문했다.
술집!
"캬아! 좋다."
"북부에 오고나서 이렇게 끝내주는 술맛을 보는 것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말이야."
"모라타에서는 술을 마음껏 마실수 있어서 좋군."
술꾼들, 관광객들이 많았다.
용병과 모험가들도 술집에서 간단한 요기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순박한 모라타의 시골 처녀들이 술과 안주들을 테이블까지 나르는게 보였다.
'훌륭해.'
위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술집은 모라타가 발전하기에 필수적인 건물이었다.
시장이나 교역소, 여행 안내소만이 필요한 건물이 아니다. 술에 붙는 세금이 60% 정도라서, 술집에서 얻는 이윤과 세금의 수입이 엄청났다.
위드는 영주만의 명령어를 사용했다.
"술집 건물 관리창!"
- 모험가의 휴식처(술집)
모라타 광장에 인접해 있는 유일한 술집.
건축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깨끗하다.
넓은 내부 공간, 500개가 넘는 좌석에, 술과 안주들을 적당한 가격으로 이용할수 있음.
판매 상품 : 기본 안주류 일체.
과일을 발효시킨 술.
발효된 주류액을 끓여서 만든 술.
맥주.
고용인 : 주방장 제나, 미아 외 주민 10명.
유지, 관리 비용 : 600골드
매일 방문하는 손님 : 평균 7,200명.
최근 일주일간 순이익 : 2,642골드 43실버 56쿠퍼.
모라타에 있는 유일한 술집.
북부 전체를 뒤져 유일한 술집이라고 봐도 된다.
중앙 대륙의 항구 도시에서 주로 마시는 아콰비트, 럼주 등의 주류는 판매하지 않고 대중적인 발효주와 증류주, 맥주 정도 만을 판매했다. 그럼에도 독점 영업으로 인해 대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술집 내부에 좌석이 부족해 손님들이 기다리다가 돌아가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할 정도였다.
이어 위드는 여관으로 향했다.
이곳도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리고 있다.
모라타의 마을 규모에는 가당치 않을 정도로 큰 여관, 객실의 숫자가 무려 300개나 되는 데도 방을 구하기 어려웠다.
덕분에 웃돈을 주고 방을 판매할 정도였다.
여관에서 잠을 자게 되면 피로가 완전히 회복되고, 신체적인 능력이 활성화 된다. 여관에서의 하룻밤 후에는 며칠간 피로 회복 속도가 빨라지고 음식의 맛이 좋아지니 서로 여관을 이용하려고 했다.
여관에도 일주일의 순이익이 4,000골드가 넘게 나왔다.
음식도 판매하기 때문에 가능한 수치.
여관에서의 음식은 술집과는 달리 소화가 편하고, 포만감을 올려주는 것들이 많았다.
"나중에는 레스토랑도 차려야 겠군. 그러면 더 많은 돈을 벌수 있을 거야."
건물이 하나씩 올라갈 때마다 영주의 즐거움을 알수 있을 것 같았다.
주민과 유저들이 이용하면서 영지를 발전시키고, 강대한 세력을 일구어 낸다.
모험과 퀘스트도 베르사 대륙의 흥미로운 요소라고 할수 있지만, 영주들은 더 특별한 만족감을 느꼈다.
베르사 대륙의 일부를 통치한다는 자부심!
마을과 성을 직접 경영하며 자신의 것 같은 애착을 갖게 되는 것이다.
위드는 그 다음으로 농가와 곡물 창고로 향했다.
모라타의 인근 지역에는 땅이 길게 개간되어 밀이 자라나는 중이었다. 곡물 창고에도 밀 포대들이 가득 쌓여있고, 농가에서는 농부들이 일을 한다.
식량을 수확하면서 마을 내 식료품의 물가가 안정적으로 조절되고, 남는 식량은 상인들의 마차에 실려 북부의 다른 개척지 마을로 비싼 값에 팔려 나간다.
프레야 교단 신앙소의 효과로 올해는 대풍년이었다.
- 곡물 창고
수확한 곡물을 저장할수 있는 창고.
밀과 보리가 비축되어 있다.
비축량 : 밀 32,000톤.
보리 19,000톤.
모라타의 농경지는 총 197,000 평!
식량난을 타개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농경지 확대 정책을 편 덕분이다.
얼음이 두껍게 덮여 있던 땅들이 녹으면서, 비옥한 토양이 만들어 졌다. 모라타의 주민들과 새로 유입된 방랑민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농경지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였다.
"보리빵은 백만 개라도 금세 만들겠어."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모라타로 이주한 주민들이 지나치게 늘었다.
성벽으로 보호받는 모라타 마을의 영역과 주택 숫자는 5,400호!
현재 모라타의 총주민은 6만이 넘는다.
이 중, 마라타에 주민으로 등록한 유저는 100명이 안 되었다.
순수한 주민들로만 보면 많은 숫자였다. 그러나 원래부터 모라타에 살던 주민들을 제외한 53,000여 명은 모두 농부다.
밀 농사를 지으면서 마을 밖에 지푸라기로 허름한 집을 지어서 살고 있다.
모라타 성벽 너머 광대한 개간 지역에 빈민촌이 형성되고 있는 셈이었다.
"주택 관리창."
- 모라타 마을 주택 분포도
모라타 성 : 1
목조 주택 : 960
부실한 초가집 : 12,953
초가집의 위생이 악화되면서 전염병이 창궐할 우려가 큼.
날씨가 추워지는 겨울이 오면 주민들의 절반 이상이 얼어 죽게 될 것임.
모라타의 치안에 않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몬스터의 습격에 극도로 취약함.
몬스터들이 출현하면 프레야의 기사들이 부지런히 나가서 요격을 해 준 덕분에 초가집에 사는 주민들은 무사했다. 그러나 북부는 아직도 혼란스럽기 짝이 없기에. 그런 몬스터 무리가 대대적으로 진격이라도 한다면 취약하기 이를데 없다.
"지역 정보창!"
띠링!
- 모라타 지역
니플하임 제국에 소속되어 있던 지방.
과거에는 황후를 배출하였을 정도로 영화를 누리던 지역. 니플하임 제국이 몰락한 이후로 뱀파이어들의 지배를 받았다.
현재는 용병과 모험가들이 모여들고, 프레야 교단의 보호 아래에 주민들이 새로운 희망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
군사력 : 22 경제력 : 260
문화 : 570 기술력 : 190
종교 영향력 : 83
지역 정치 : 6 인근 지역에 대한 영향력 : 13%
구舊니플하임 제국의 영향력 : 2%(영향력은 군사, 경제, 문화, 기술, 종교, 인구, 의뢰 등의 분야와 관련이 깊음)
도시 발전도 : 97
위생 : 36 치안 : 72%
주민들은 최근 자주 발생하는 몬스터의 습격에 대해 우려하고 있지만, 그나마 프레야 여신상의 완성으로 위안을 얻고 있다.
상수도 시설과 주민들이 거주할 주택이 부족.
오래전에 벌어졌던 축제를 추억하는 주민들이 많다.
다수의 조각품들이 주민의 삶을 행복하게 해 주고 있다.
예술가들에 대한 끝없는 신뢰와 지원은 마을의 품격을 높여주었다. 주민들은 다른 마을들보다 많은 예술품들에 대해 긍지를 가지게 되었으며 더욱 다양한 문화시설들을 바란다.
재봉 산업의 기술들이 과거부터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철을 다루는 기술은 초보적이며, 무기나 방어구를 제작하는 대장장이들이 매우 미숙함.
지역 신앙으로는 프레야를 믿고 있다. 주민들의 신앙은 굳건하여, 쉽게 변심하지 않을 것이다.
프레야 교단의 영향을 받아 적당한 향략과 풍요로움을 좋아하며, 근면한 특징을 보인다.
특산품 : 가죽과 천.
영토 전체 인구 :61,689.
매달 세금 수입 : 27,860골드.
마을 운영비 지출 내역 : 군사력 2%, 경제 발전 34%, 문화 투자 비용 12%, 의뢰 및 몬스터 토벌 15%, 마을 보수 22%, 프레야 교단에 헌금 15%.
다소의 문제는 있어도, 모라타는 과거와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다.
'문화 투자 비용? 이게 무슨 일이지? 난 이런곳에 투자를 한 적이 없는데.'
위드가 남쪽 마을 입구 주변에서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에 잠길 무렵이었다. 큰 체격에, 수염이 더부룩하게 난 산적같은 남자가 다가왔다.
"혹시 직업이 조각사가 맞습니까?"
위드는 반사적으로 그의 전신을 훓어봤다.
미스릴 부츠!
반면에 가죽옷과 망토는 여행복으로 허름했고, 먼지가 두껍게 쌓여 있다.
'번잡함이 싫어서 다른 사람이 알아볼수 없도록 마을로 들어오면서 옷을 갈아입은 고레벨 유저다.'
부츠까지는 여간해서는 잘 안 살피기 때문에 안 갈아 신는 경우도 많다. 미스릴 부츠에 이동속도 옵션이 붙어 있다면 적어도 현금 기준으로 3백만 원이 넘는 고가의 아이템!
위드는 짧은 순간 눈치부터 살핀 후 신중하게 대답했다.
"맞습니다만."
마음속에 걸리는 게 몇 있으니 불안하기는 했다. 그럼에도 선뜻 대답을 한 것은, 상대가 조각사냐고 물어왔기 때문이다. 직업이 조각사가 맞느냐고 물었다면, 조각과 관련된 용무가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위드가 하루 이틀 눈칫밥을 먹고 산 것이 아니었다.
'내가 언제 바가지를 씌운 일이 있던가? 불량품을 조각해 준적이 있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무슨일로 나를 찾아 왔지?'
꺼림칙해 하는 위드의 속내도 모른채 산적 같은 사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겨우 찾은 것 같군요. 모라타 마을 전체를 뒤졌습니다. 여신상을 조각하는 동영상을 명예의 전당에서 보고 알아본 것입니다. 부탁드릴게 있습니다. 조각사 위드 님이 맞으시다면, 조각품을 깎아 주셨으면 합니다."
위드가 미안한 듯 고개를 저었다.
"저를 찾아 주셔서 고맙지만 지금은 조각품을 만들지 않습니다."
상대의 수준이라면 몇 골드 정도는 뜯어낼수 있겠지만, 지금은 정상적인 조각술을 펼치기에 어려움이 있어서 거절했다.
그러자 산적같은 사내는 솥뚜껑 같은 손으로 덥석 위드의 팔목을 붙잡으며 애원했다.
"꼭 부탁드립니다. 제 딸을 조각해 주십시오."
"따님요?"
위드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많은 사물을 대상으로 조각품을 펼쳤지만, 가족을 조각해 달라는 경우가 가장 어려웠다.
'너무 예쁘게 해도 마음에 안 들어 하고, 실물보다 못생겼으면 난리가 나지.'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는 예뻐한다지 않는가.
아이를 위해 맛있는 음식을 요리해 주거나, 예쁜 옷을 만들어 바가지를 씌우는 편이 편했다.
"예, 그렇습니다. 딸... 을 조각해 주십시오."
산적같은 남자에게서는 간절함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위드는 조각을 해 주기로 했다. 이유는 몰라도 절박해 보이고, 또한 마을 장로가 아직 오지 않았으니까.
그러자 구경하던 유저들은 혀를 끌끌 찼다.
"저 아저씨 안됐군."
"저 조각사가 보통 돈을 밝히는게 아닌데."
"잘못하면 완전히 홀라당 벗겨 먹히겠어."
모라타에 있는 유저들 중에는 고수들도 많다. 그들도 위드처럼 부츠만 보고도 남자가 상당한 고레벨 유저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저주야 알베론에게 해재시켜 달라고 하면 되겠지.'
위드가 마음을 굳히고 나서 말했다.
"그럼 따님을 이곳으로 데려오시지요."
그러자 남자는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 합니다."
"그럼 그림이라도...."
"없습니다."
"그러시다면, 우선 어떻게 생겼는지부터 말씀해 주시지요."
위드는 넉넉하게 굵은 나무토막을 하나 꺼냈다. 설명을 들으면서 즉석에서 떠오르는 구체적인 형상대로 조각품을 만들어 주려는 것이다.
마을에서 수백번도 넘게 사람들의 조각품을 주문받고 깎아준 경험이 없다면 불가능한 시도!
너무 세밀하게만 하지 않는다면 조각품의 특성상 대충 넘어갈수 있다.
'눈, 코, 입 만 잘 붙어 있어도 둔한 사람은 못 알아봐.'
소형목조 조각술의 비애라고도 할수 있다.
어차피 남자도 설명만으로는 충분히 알려주지 못할테니 서로 조금씩은 양보를 하면 될 일.
'어려운 시도라고 바가지나 듬뿍 씌워 줘야겠군.'
그런데 산적은 생김새를 이야기 하는 대신에 설명을 했다.
"그 애의 엄마는 참 아름답습니다. 눈빛이 정말 맑고, 착한... 저에게는 너무도 과분한 아내이지요."
"....."
"그녀와 제가 결혼한지 5년이 되었을 때였습니다. 좀 늦었지만 기다리던 임신도 했고, 출산 일자도 받아 놓았지요. 그런데......."
"그런데요?"
"병원에 가서 검진을 해 본 결과 그녀가 병에 걸렸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남자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수술을 해서 병은 고쳤지만 아이를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그때의 충격으로 그녀는 다시는 애를 가질수 없는 몸이 되어 버렸습니다."
"....."
"조각해 주십시오. 그때 그녀가 가졌을 아이를. 우리의 딸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행복했어야 할 제 딸의 모습을.... 조각해 달란 말압니다. 으허허허헝!"
남자는 목 놓아서 울었다.
거리의 한복판이라 근처에서 듣고 있던 유저을의 눈시울도 시큰해졌다.
"제, 제, 젠장!"
"난 사냥이나 가야겠다."
"망할 몬스터들. 다 죽여버릴거야."
사냥터로 가서 만만한 몬스터들에게 화풀이를 하려는 속셈이었다.
위드의 얼굴은 창백하게 굳어있었다.
"제 조각품을.... 혼자 간직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아내 되시는 분께도 보여드리려고 합니까?"
"보여 줄 겁니다."
"그분도 로열로드를...."
남자는 옷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예.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조각사님의 명성을 듣고 온 것입니다. 그렇다고 저희를... 너무 이상하게 보진 마십시오. 저희는 미친게 아닙니다. 단지 우리의 딸을,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딸을 한번이라도 보고, 작별의 인사라도 나누고 싶습니다. 그래야만 마음 편히 잊을수 있을 것 같기에.... 딸의 얼굴이라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고 싶은 겁니다. 이게 미련하고 멍청한 짓이라는 건 압니다. 알지만, 그래도...."
산적같은 남자가 다시 말했다.
"딸을 조각해 주시는 대가로 얼마를 드리면 됩니까? 원하시는 액수를 드릴테니, 제발 제 딸을 조각해 주십시오."
다시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애원하는 남자.
위드는 한숨을 쉬며 답했다.
"지금은 조각품을 깎지 못할것 같습니다."
"돈, 돈이 부족해서 입니까? 다른사람들의 10배, 아니 20배라도 내갰습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저도 준비가 덜 되어 있고, 나무토막은 따님을 조각하기에 적당한 재료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
위드는 얼음조각상을 만든 적이 있다. 얼음은, 날카롭고 예쁘지만 너무 차가웠다.
가슴까지 시리던 그 느낌.
그때 조각품의 재료가 조각 전체의 분위기를 좌우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생명을 잃은 나무토막은 따뜻함도 느낄수 없고 딱딱하게 굳어 있을 것입니다. 딱 한번만 보겠다고 하시지만, 가족입니다. 그런 가족을... 나무토막에 조각할수는 없습니다."
위드는 단호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차갑지 않고, 생명의 온기를 느낄수 있는... 굳어 있지 않은 재료. 두 분이 정말로 사랑하는 따님을 조각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저도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하겠지만, 언제 완성된다고 약속도 드리지 못합니다."
남자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기대했던 것과는 다소 다른 상황이지만, 위드가 이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서 말하는게 아니라는 것쯤은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진심으로 남자와 그 아내가 낳았을 딸을 조각해 주기 위한 것이다.
"고맙습니다. 저는 리튼 왕국의 셀지움에서 아내와 함께 기다리겠습니다. 그리고 저의 이름은 만돌입니다."
"제 이름은 위드입니다. 따님의 조각품이 완성되면 셀지움으로 가져가도록 하겠습니다.
"오지 않으시더라도.... 원망하진 않겠습니다. 그런데 조각품의 가격이 얼마지요?"
만돌은 살짝 긴장한 채로 물었다.
그러자 위드가 나직이 웃으며 답했다.
"1쿠퍼 입니다."